야망의 강한 맥박이
나의 모든 혈관 속에서 요동치고 있다.
그 순간, 흐르는 피는
내면의 내밀한 상처를 누설한다.
-샬럿 브론테 - P557

나는 눈앞에서 나의 인생이 이야기 속 초록빛 무화과나무처럼 가지를 뻗어나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모든 가지 끝에서, 통통한 자줏빛 무화과처럼, 찬란한 미래가 손짓하며 윙크했다. 어떤 무화과는 남편이고 행복한 가정과 아이들이었다.
어떤 무화과는 유명한 시인이었고, 다른 무화과는 뛰어난 교수였으며, 어떤 무화과는 에제, 그 대단한 편집자였다. [...]
어떤 무화과를 선택해야 할지 결정할 수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나는 나 자신이 무화과 나무 둥치에 앉아서 굶어 죽어가는 것을 보ㅡ았다. [..] 그리고 내가 결정하지 못하고 거기 그대로 앉아 있자 무화과들은 쭈그러들더니 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땅으로, 내 발치에 툭 하고 떨어졌다.
ㅡ실비아 플라스

고통이 있다ㅡ 너무 지독한ㅡ
그것은 본질을 꿀꺽 삼킨다ㅡ그리고 심연을 몽환으로 덮는다ㅡ기억이 그 주변에서ㅡ 횡단하여 ㅡ그 위를ㅡ밟고 다닐 수 있도록ㅡ
마치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이ㅡ안전하게 가듯이ㅡ그곳에서 뜬 눈은ㅡ
그를 떨어뜨리리ㅡ뼈 하나하나를
ㅡ에밀리 디킨슨

샬럿 브론테는 본질적으로 무아지경에 빠져 글을 쓴 작가였다. ‘모든 사람이 왜 내가 눈을 감은 채 글을 쓰는지 의아해했다.‘ 고 그녀는 자신의 로헤드 [기숙학교 시절] 일기에서 언급했다.‘
위니프리드 제린이 지적하듯이, 초고의 들쑥날쑥한 행들은 브론테가 눈을 감고 글을 썼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제린에 따르면 브론테가 눈을 감고 글을 쓴 것은 ‘신체의 환경을 차단해 내면의 시야를 더 선명하게 하기 위한 의도적인‘ 습관 때문이다. 내면의 풍경이라는 낭만주의적 수사학은 제린뿐 아니라 브론테의수사학이기도 하며, ‘사고의 무아경과 정신의 고양‘이라는 워즈워스의 말뿐만 아니라 ‘경외심을 품고 눈을 감아라‘라는 콜리지의 말을 상기시킨다. 같은 일기에서 브론테는 ‘요즘 내내 나는반은 절망적이고 반은 황홀한(방해받지 않고 그 꿈을 끝까지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절망적이고, 아주 생생하고 현실감 있 - P558

게 지옥의 세계[어린 시절 꿈꾼 환상 속 세계인 앵그리아]의 한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황홀한) 꿈속에 살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는 확실히 낭만주의적이다. 독특하게 여성적이기도 하다. 브론테의 어휘와 상상력 대부분은 그녀가 몰두했던 19세기 초의작가들(워즈워스, 콜리지, 스콧, 바이런)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그녀가 무아지경이 될 정도로 빠져서 썼던 반복적인 주제와 은유는 우선 자신의 젠더에 의해, 즉 험난한 자신의 성적 운명에대한 의식과 세계 속에 처한 이상한 ‘고아 같은‘ 위치에 대한 불안에 의해 결정된 것 같으니 말이다. - P559

에 의해서지만)그렇다면 브론테가 문학에서 (앵그리아 이야기와 『교수』에서)남성으로 분장한 일과 우리가 도취적 글쓰기라고 불렀던 ‘여성적‘ 성향 사이에 어떤 중요한 관계가 있는가? 우리가 살펴보았듯 남성이 지배하는 문학적 전통에서 글을 쓰는 많은 여자들은 처음에는 남성을 모방할 뿐 아니라 은유적 남성으로 분장함으로써 자신들의 모호한 상황을 해결하려 한다. 마찬가지로샬럿 브론테가 자신의 반항적인 충동을 실천하는 동시에 회피하는 행위을 묘사하기 위해 이 말을 사용한다면) 도취적 글쓰기는 분명 여성이 작가가 되는 것에 대한 불안을 덜기 위한 시도다.‘ 그러나 도취적 글쓰기와 남성 분장은 둘 다 문학적 불안을 해결하는 방식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훨씬 더 깊은 연관이 있다. 우선 남성적 사회에서 여성의 연약함을 여성이 의식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여성 작가는 남성으로 분장함으로써 그런 평가를 더 쉽게 내릴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여성작가는 남자로 가장함으로써 중요하고 권력을 가진 타자가 여성 작가를 보는 것처럼 자신을 볼 수 있다. 또한 남자로 분함으 - P565

로써 여성 작가는 자신의 금지된 환상을 벌할 수 있게 되며 환상을 실행할 수 있는 남성의 권력을 얻는다. 특히 마지막 사례는 브론테가 이중적인 감금-탈출 이야기를 (이 이야기는 자신의 표면상 도덕을 은밀하게 전복시키고 있다) 몽유병 환자처럼 반복하면서 써나간 것이다. 이런 영향은 도취 속에서 글을 쓰는작가의 꿈같은 문장으로 퍼져나갈 것이며, 마찬가지로 자신의절망을 완전히 인식하고 있는 예술가의 문장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왜냐하면 여성을 전업 작가로 내모는 ‘야망의 강한 맥박‘
은 종종 ‘비밀스러운 마음의 상처‘를 드러내고, 그 상처에서 흐르는 피는 복잡한 방어, 분장, 회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P566

「교수를 단지 역할과 억압 면에서만 논한다면, 그것은 어떤의미에서 첫 장편소설로 이뤄낸 젊은 소설가의 성취를 하찮게 만드는 것이다. 이 소설이 작가가 희망했던 대로 현명하며 ‘분명하고 평범한‘ 교양소설이 아니고, 숨겨진 의도의 복잡성에 플롯이 늘 부합하지도 않긴 하지만, 이 작품은 샬럿 브론테의 작가 전체 이력에 걸쳐 점점 중요해질 주제를 처음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은유적으로 눈을 감은 채 글을 쓴브론테는 여기에서 자신의 소명과 상처를 탐색했고, 완전성을향한 다른 길을 발견하려고 마치 꿈속에서처럼 더듬거리며 노력했다. 결국 우울증에 시달리는 젊은 크림즈워스는 처음에 프랜시스 앙리에게 끌린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좀 더 창백한변형인 듯 그들 둘 다 부적응자이기 때문이다. 히스클리프의 박탈이 캐서린의 상처받은 추락과 병치되는 것처럼 크림즈워스의 병은, 실비아 플라스의 「튤립」의 시구를 인용해보자면, ‘[프랜시스의] 상처에 말을 걸고, 상처는 응답한다.‘ - P595

거울을 보고 있는데 끔찍한 얼굴(짐승의 얼굴)이 갑자기 내 어깨 위로 나타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버지니아 울프 - P597

걱정 마. [...] 어느 날 갑자기, 네가 예상도 못하고 있을 때 나의 짙은색 외투 안에 감추어둔 망치를 꺼내 너의 작은 머리통을 달걀 껍데기처럼 부숴줄 테니까. 네 머리는 달걀 껍데기처럼 부서져서 피와 뇌수로 흥건해질 거야. 언젠가, 언젠가. [...] 언젠가 내 옆에서 걷고 있는사나운 늑대가 너에게 달려들어 너의 징그러운 내장을 찢어버릴 거야. 언젠가, 언젠가. [...] 지금, 바로 지금, 부드럽게, 소리 없이, 소리없이
-진리스

나는 나의 영혼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말했지ㅡ그녀는 말했어, 줄은 다 끊어졌고ㅡ활은 산산조각났다고ㅡ
그녀를 고치기 위해 ㅡ나는 일을 했지
다음 날 아침이 될 때까지ㅡ
-에밀리 디킨슨

「교수가 샬럿 브론테 자신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더 그녀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던 갈등과 주제에 대한 흐릿한 몽환의 진술이라면, 『제인 에어』는 완전함으로 도피하는 데 대한앵그리아적인 환상인 분노로 물들어 있는 작품이다. 버니언의남성적 『천로역정』에 나타난 신화적인 탐색 (그러나 독실한 신앙에 대한 내용이 아닌) 플롯을 빌렸지만, 이 소설에서 젊은 소설가는 그녀의 내적 현실과 그녀를 에워싼 (감금, 고아 신세, 굶주림, 분노에서 광기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현실에 확실히 눈을 뜬 것처럼 보인다. ‘과거에 자신을 구속했던 사슬을 부수고나온‘ 에너지 넘치는 여성을 상징하는 불같은 이미지의 루시아가 교수에서는 축소된 모습이었지만, 『제인 에어』(1847)에서 이 인물은 영웅이자 거리낌 없이 드러난 열정적인 반항의 상징이 된다. - P598

빅토리아 시대 평론가들은 『제인 에어』의 조악함이나 섹슈얼리티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기보다 (그들은 이 책에 나오는 이런 요소를 싫어했다) 사회조직과 관습, 그리고 사회규범을 거부하는 이 작품의 ‘반기독교성‘ (간단히 말해서 이 작품의 반항적인 페미니즘)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은 충분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평론가들은 로체스터의 거만한 바이런적인 성적 에너지 때문이 아니라 제인의 바이런적인 자존심과 열정 때문에,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 사이에 일어난 반사회적인 성적 동요 때문이 아니라 여자 주인공이 사회적 운명에 순종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엘리자베스럭비는 ‘그녀는 우리의 타락한 본성 중에서 가장 나쁜 죄인 교만의 죄를 최대한도로 물려받았다‘고 선언했다. - P600

다시 말해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이 경악한 것은 제인의 분노였다. 또한 이 책에 대한 당대 비평가들의 반응은 최근의 비평가보다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억압된 분노를 신화화하는 것과 억압된 섹슈얼리티를 신화화하는 것은 유사할지라도, 억압된 분노를 신화화하는 것이 사회질서에 훨씬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검은 눈썹의 바이런풍 남자 주인공을 사랑하는 특별한 여성은 소설이나 응접실 안에 수용될 수 있는 존재다. 반면 응접실과 가부장적인 저택에서 완전히 도망치기를 열망하는 여자는분명히 수용될 수 없는 존재다. 제인 에어는 매슈 아널드, 엘리자베스 릭비, 모즐리 부인과 올리펀트 부인이 의심했던 대로 그런 여자였다. - P601

수식어 처럼 보인다는 필요한 단어다. 제인이 마시엔드에서 친척을 찾음으로써 순례의 끝에 이르렀다고 할지라도, 자아를찾기 위한 제인의 순례 여정은 추상적인 ‘원칙과 법‘이 자기 존재의 가장 심오한 원칙과 법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배울 때까지 완성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초기에 템플 선생의 가르침이 자기 본래의 생명력에 단지 덧붙여진 것일 뿐이라고 제인이 인식한다는 점이 이미 위 사실을 암시한다. 제인이 템플 선생의 교훈을 철저히 이해한 것은 세인트 존 리버스를 만난 뒤다. 많은 비평가들이 주목했듯 리버스 가족 세 명은 무엇인가를 암시하는 상징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에이드리언 리치에 따르면, 제인의 진정한 ‘자매들‘인 다이애나와 메리는 사냥의 여신 디아나와 동정녀 마리아의 이중적인 면을 지닌 위대한 어머니를 연상시킨다.  - P643

그러나 처음에 세인트 존은 제인에게 로체스터가 제안한 삶의 방식에 대한 실행 가능한 대안을 제공한다. 로체스터는 그이름의 유래처럼 방탕한 쾌락의 삶, 화려한 장미꽃 길(숨겨진가시가 있지만), 정열적인 결혼을 제공하는 듯 보인다. 반면 세인트 존은 원칙의 삶, 가시밭길(숨겨진 장미가 없는), 정신적인 결혼을 제공하는 듯 보인다. 세속적인 미인 로자몬드 올리버(매우 진한 여운을 남기는 또 하나의 인물)에 대한 세인트 존의 금욕주의적 거부는 정열적이고 바이런적인 제인에게는 혼란스럽다. 하지만 적어도 세인트 존은 위선적인 브로클허스트와는 달리 자신이 설교한 것을 최소한 실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인트 존이 설교하는 내용은 노동을 통한 자기실현이라는 칼라일적인 가르침이다. ‘오늘이라고 부르는 동안에 일하라, 일할 수 없는 밤이 오리니. 그의 말을 따른다면 제인은 손필드에서 섬겼던 주인을 성스러운 주인으로 대체하고 사랑을 노동으로 대체해야 할 것이다.  - P644

무엇보다 브론테는 ‘굶주림, 반항, 분노‘로 『제인 에어』를 썼고, 그것을 존 버니언의 비전에 대한 ‘반종교적인‘ 재정의이자 거의 패러디로 만들었다. 이는 결국 브론테가 자아 부정의 십자가를 거부했다는 의미다.  미스 럭비가 정확하게 ‘갱생되지 않은, 미숙한 영혼의 화신‘으로 보았던 평범한 제인 에어는 동등성을 향해가는 놀라운 순례의 결과, 에밀리 디킨슨이 15년 후에 묻게 되는 쓰라린 질문(‘나의 남편이 여자들은 말한다/선율을 타면서-/이것이-길인가?) 에 답변하고 있다. ‘아니다!‘ 제인은 손필드에서 도망치면서 선언한다. 그것은 길이 아니라고. 이것이, 펀딘에서 진정한 마음으로 결합한 이 결혼이 길이라고 제인은 말한다.
제인의 길이 제한되고 고립되어 있긴 해도, 그것은 적어도 희망을 상징한다. 샬럿 브론테는 이후 다시는 이런 낙관주의에 젖지못했다. - P653

나는, 인간이기에, 홀로 태어났다.
나는, 여자이기에, 단단히 포위되어 있다.
나는 돌에서 쥐어짜 얻은
적은 영양분으로 산다.
ㅡ엘리너 와일리

음식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굶주린 사람들을 보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의 주위 사람들이 빠져 있는 니힐리즘을
반격하고자 하는 샬럿의 광적인 노력에 반대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리베카 웨스트

가장 극단적인 상징의 시대에
벽은 매우 얇고,
거의 투명하다.
공간은 주름진 아코디언,
거리는 변한다.
그러나 또한, 창자는 납작해지고
우리는 굶주린다.
ㅡ루스 스톤

제인 오스틴, 메리 셸리, 에밀리 브론테의 소외당한 인물들을괴롭혔던 굶주림과 똑같은 배고픔을 묘사하는 가운데, 샬럿 브론테는 여성들이 그들 자신이 고안한 소설을 지속시키는 것에굶주려 있는 만큼, 음식에도 굶주려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따라서 소설을 시작할 때 폭식하는 목사들의 ‘비낭만적인‘ 장면을보여주면서 화자는 ‘식탁에 놓인 최초의 음식은 착한 가톨릭 신도가 (심지어 영국국교회 신도라도) 수난주간의 성 금요일에먹을 만한 음식이 되어야 한다. 즉 구운 양고기가 없고 쓴 허브가든 이스트를 넣지 않은 빵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1장] 물론헨리 필딩부터 존 바스까지 소설가들은 독자들 앞에 그들의 입맛이 물리거나 감질나는 식사를 차렸다. 그런데 『셜리』에서 브론테는 입맛 떨어지는 첫 번째 코스로 식사를 시작하고 있는 것 - P658

이다. 브론테는 목사들의 향연이 왜 여자 주인공들의 단식으로이어지는지 고찰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디킨슨의 말로 하자면사실상 『셜리」에서 브론테는 어떻게 여자의 배고픔이 ‘창문 밖사람들의 방식‘인지 설명할 뿐만 아니라, 왜 ‘[창문 안으로들어가는 것이‘ 욕망을 ‘없애버리는‘ 방식인지 설명한다.[579편] 그 이유는 남자를 유지해주는 음식과 허구가 정확하게 바로 여자를 병들게 하는 음식과 허구이기 때문이다. ‘사도‘ 목사들이 내뱉는 말은 바로 여자들이 굶주려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리하여 브론테는 여기에서 성경에 나오는 낙원의 신화에 대한 페미니즘적인 비판을 암시한다. - P659

네가 발견한 대로 그 문제를 받아들여라. 질문하지 마라. 항의도 하지 마라. 그것이 최고의 지혜다. 너는 빵을 기대했지만 돌을 얻었을 뿐이다. 그것으로 너의 이를 부러뜨려라. 비명도 지르지 마라. 신경은 순교했으니까. 너의 정신적인 위장이 만약 네가 그런 것을 가지고 있다면) 타조만큼 강하다는 것을 의심하지 마라. 돌도 소화할 것이다. 너는 달걀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지만, 운명은 너의 손 안에 전갈을 놓았다. 놀라지 마라. 그 선물을 너의 손가락으로 꼭 쥐어라. 전갈이 너의 손바닥을 찌르게 놔두어라. 상관하지 마라. 시간이 지나면, 너의 손과 팔이 부어오르고 고통으로 오래 떨린 다음, 전갈은 짓눌려 죽을 것이다. 그러면 너는 울지 않고 견뎌내는 방법이라는 위대한 교훈을 배울 것이다. 네가 이 시험에서 살아남으면 (어떤 사람은 이 시험에서 죽기도 한다) 남은 인생 동안 너는 더 강해지고 더 현명해지고 덜 예민해질 것이다. [7장] - P664

너에게 이미지 하나를 보여줄게. 희미한 파도 속에서 나타나는 설화 석고처럼 아름다운 이미지를. 우리 둘 다 머리를 길게기르고 거품처럼 하얀 팔을 들어 올린 채, 별처럼 빛나는 타원형의 거울을 보고 있어. 그것은 점점 더 가까이 미끄러지듯 다가오지. 사람의 얼굴을 또렷이 볼 수 있을 정도야. 너와 똑같은형태의 얼굴, 창백함이 그 반듯하고 순수한 (이 말을 쓰는 것을양해해줘. 이 표현이 적절하거든) 생김새를 손상시키지 않는 일굴이 우리를 바라보는데, 그건 너와는 다른 눈이야. 나는 그 교활한 눈길에서 초자연적인 유혹을 느끼겠지. 그것은 손짓해 부르고 있어. 우리가 남자라면 그 신호에 벌떡 일어설 거고, 그 차가운 유혹자에게 가려고 차가운 파도도 무릅쓸 거야. 그러나 우리는 여자니까,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안전하게 서 있겠지.[13장] - P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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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 공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여성의 공간은 삶의 기관들을 제한하고 그 공간이 무한하게 보일 때까지 축소시킨다. 사탄은 그 광대한 공간에서 전율했다! 밖에 있는 자들에게는 제한적이지만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무한하다.
-윌리엄 블레이크

여자는 자신 안에 악마가 있는 것처럼 글을 쓴다. 그것이야말로 여성이 무엇이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쓰는 유일한 조건이다.
-패니 펀에 대한 너새니얼 호손의 글

나는 회수할 수 없는 것을 탐색했다.
나의 복사본을 ㅡ빌리려고ㅡ 초췌한 위안이 솟아오른다.

어딘가 움켜쥔 사고 안에ㅡ
천국의 사랑 같은 다른 창조물이 ㅡ잊힌 채 --
살고 있다는 믿음으로

나는 우리를 분할하는 벽을 잡아 뜯었다.
서로 맞서고 있는 방 안에서ㅡ
자신과 ㅡ공포의 쌍둥이 ㅡ사이의
벽을 떼어내야 하듯이ㅡ

에밀리 디킨슨

울프가 밀턴의 악령이라고 요약했던 복잡한 문화의 신화가여성 작가에게 끼친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이들은 ‘가부장적시‘에 둘러싸인 채 예술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세울수 있었을까? 브론테, 울프, 울스턴크래프트 같은 작가들의 논평은 밀턴이 제기한 문제를 지적인 여자들이 예리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문제들 탓에 여성들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실낙원』의 비밀스러운 메시지는 방에 가득 찬 일•그러진 거울처럼 여성 독자들을 에워쌌기 때문이다. 키츠가 의•아해하며 제시한 논평은 (‘혹시라도 뱀의 감옥 안에 있는 사탄을 생각한다면 누구의 머리인들 현기증을 느끼지 않겠는가?)여성 혐오적인 신화와 전통이 구축해놓은 뱀의 또아리 같은 이미지 속에 감금되어 있는 여성들에게 더 강력하게 적용되는 것같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많은 여성 작가들이 밀턴과 그가 대표하는 모든 것에 한결같이 유순하게 대응했다.  -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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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가 만들어 낸 근대 문명의 테두리 안에서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을 찾아보려는 이러한 연속적인 시도와는 좀 다른 시각에서 위기를 바라보고, 처방을 내리는 사상가들이 있다. 그것은 푸코나 들뢰즈, 료따르처럼 자신의 역사를 거리를 두고 서술하면서, 그전까지의 ‘근대 기획‘과는 좀더 급진적인단절을 이루어 냄으로 현재의 다양한 모순들을 극복해 가려는 움직임이다.
푸코 역시 근대가 지닌 양면성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자유와 해방의역사로 표방되어 온 근대는 실은 배제와 감시가 강화되는 관리 사회로의 이행 과정이기도 했음을 푸코는 군대, 감옥, 병원, 학교 등에서 관리가 제도화되는 과정을 통해 밝혀 낸다. ‘진보사관‘을 철저히 거부하는 푸코는 그 동안의 역사가 공식/비공식의 이분화, 비극/ 희극의 이분화, 유심론과 유물론의 이분화를 토대로 쓰여져 왔음을 밝혀 내고 그런 이분법을 넘어선 역사를 써내기 위해 추상화의 수준을 낮추고 아주 자세한 기술을 통해 역사를써내려 하였다. 그가 계보학적 방법을 활용하여 그 동안 있어 온 절대적 진리 주장들을 발생시킨 은폐된 조건들을 추적해 간 <감시와 처벌> 그리고<성의 역사 1>는 서구 문명 안에 살면서 자신의 사회를 상대화시켜 본 착실 - P142

한 작업이며, 그 작업은 ‘서구적 주체‘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푸코에게 있어 근대는 표면적으로 개인의 자유가 늘어나는 시대인 것 같지만 실은 행동의 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감시하고 검열하는 장치를 발전시킨 시대이다. 이런 시대적 진전은 성욕과 감정적 친밀성까지를 일일이관여하고 조종하는 고도로 세련된 제도화로 이어진다. 권력은 집중되어 있지 않으며 그런 면에서 권력에 대해 저항한다는 것 역시 매우 복잡해져 버렸음을 푸코는 저작을 통해 매우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푸코는 지식과 권력 간의 관계를 어디까지나 구체성을 통해 보여주려 하였다는 면에서, 그리고 섣불리 처방을 내리기를 거부했다는 면에서 탈근대적 언어를 만들어간 문명 비평가들의 대열에 선다 - P143

급진적 근대론이건 탈근대론이건 이들 서구 지식인들이 벌이는 논의의다양함은 바로 그들이 현재의 위기 상황에 대해 매우 활발한 논의를 펼치고있다는 증거이다. 사실상 근대 기획을 제대로 이어 가자는 논의건 단절을이루자는 논의건, 내가 선 자리에서 볼 때는 매우 비슷한 문제 의식과 상황인식을 깔고 있다. 적어도 서울에 살고 있고, 남한의 지식인들에게 글을 쓰고 있는, ‘비서구인‘인 내가 보는 입장에서는 그 둘간의 차이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 전자는 자신들의 역사 속에서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연속성‘을강조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단절성‘을 강조하고 싶어하는 면에서 차이가날 뿐 내게는 크게 대립된 입장으로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 P151

한편 파시즘이 득세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독일의 지성계는 근대성이 초쾌한 현재의 위기를 보는 시각에서도 좀 독특한 자세를 취한다. 파시즘의상처와 위협이 아직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독일 지성계는 ‘합리‘와 ‘이성‘의 개념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민중봉기로 근대 혁명을이루어 냈고 파시즘의 병을 가장 적게 앓은 편인 프랑스는 또다시 전혀 새로운 ‘감성‘으로 시대를 쓰고 싶어하는 경향을 보인다. 어쩌면 프랑스 지성인들은 나름대로 ‘이성‘을 토대로 한 ‘근대사‘를 살아 보았고 이제 그 ‘이성‘을 가장한 질서에서 미련없이 벗어나고 싶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전통에매이지 않는 편인 미국 지식인들 역시 탈근대적 논의에 적극 참여하는 편이다. 어쨌든지 서구의 자기 성찰적인 지식인들은 각자가 선 자리에서 자신들이 만들어 온 세계를 돌아보게 되었고, 포괄적인 삶의 영역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이제 자신들이 가져온 근대적 체험을 바탕으로 ‘근대‘의 방향을 크게 수정하고 싶어하고 있다. - P152

이들은 개별 국가 단위의 경제 체제가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들의 선조들이 봉건제에서 자본제로 넘어설 때처럼 재빨리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고자 한 것이다. 개별국가 단위를 넘어선 공동체로 삶의 터전을 넓히면서 동시에 보다 작은 지역단위, 내지 자치적 주민적 공동체를 활성화함으로써 융통성 있게 지역/문화재편을 시도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역사 속으로, 또 주변에 있는 다양성을 찾아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허약한 자기 문화를치유해 갈 거리를 찾으러 나선 것이다.
비단 책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최근에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를 통해서도이들이 하고 있는 자기 성찰 작업을 쉽게 볼 수 있다. 자신들의 근대사를거리를 두고 그려 낸 것으로 <1900년>, <당통>, <리틀 도리>, <정복자 펠레>,
<시네마 천국>, <개 같은 내 인생>, <장미의 이름> 등이 있고, 사회에서 극단적으로 고립되고 소외된 인간상을 그린 영화로 <카프카>, <파리 텍사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내 고향 아이다호>, <버디>와 같은 - P154

영화가 있다. 파시즘의 대두를 개인의 삶과 연결시켜 본 <레들 대령>, <하누>과 같은 영화, 그리고 파시즘의 폭력을 어처구니 없이 당한 아이나 여자의 눈으로 반이성적 시대를 그린 <양철북>이나 <소피의 선택>과 같은 영화에서 그들이 가졌던 독특한 근대적 체험을 읽어 낼 수 있다. 악마적 분위기를 그린 <델리카트슨>, <요리사, 도둑, 아내와 연인> 역시 근대성의 어두움을 암시해 주는 훌륭한 영화이며, 고도 기술 관리 사회의 종말론적 절망을기독교적 메시지로 풀어 가려는 <터미네이터 1>, <다크맨>도 그들이 여전히기독교적 언어를 통해 의사 소통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을끈다. 극히 반동적인 고도 기술 독재 체제가 기독교적 성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핸드 메이즈>나 <브라질> 등의 영화에서도서양이 보는 후기 산업 사회에 대한 인식과 상상력의 지평을 읽어 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그들의 역사의 깊이를 본다. 구체적인 문제와 고통을 보고, 그것을 풀어 가는 데 전념해 온 사람들을 만난다.
자생적 근대화를 하였다는 것은 사회 개혁을 해내는 ‘중심‘이 있었음을의미한다. 자신들의 허약한 상태를 있는 대로 드러내 놓는 것, 드러내 놓고토론하는 장이 열려 있는 것, 바로 그런 상태를 뜻한다.  - P155

내가 아닌 나를
나인 줄 알고 살다가
가끔 나를 만나면
낯설어 얼굴 돌린다.

아아
무아의 세계로
갈 수는 없는가

-조만철

이 시는 정신과 의사인 내 오빠가 쓴 것이다.
쉰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낯선 자기를 거울에서 보는 것은, 그리고 무아의 세계로 가버리고 싶어하는 것은그가 가진 불교적 색채 탓일까, 식민지 주민으로서의무의식 탓일까? - P157

어느 억압된 주체는 해방을 원할 때 거치게 되는 일반적 과정이있다. 먼저 자신들이 억압당하고 있는 존재임을 인식하는 계기를갖는 단계를 거친다. 대부분의 억압 상태는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서 억압당한 주체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식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자신이 세뇌당한 소수 집단, 곧 ‘타자화된 존재‘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자연스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그러한 자의식이 생기면 그는 자신을 억압해 온 ‘중심‘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다. 그들은 지금까지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여 온 전제들을 의심하게 되며, 지금까지 ‘중심‘에 있던 집단이 더 능력있고 도덕적으로 우월하며 사회적으로 필요한 존재라는 등의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게 된다. - P158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을 억압하는 지배 구조를 거리를두고 상대화시켜 볼 수 있는 능력이다. 거리를 두지 못할 때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갖가지 투쟁은 지배 구조 속에 말려들어가 버리고만다. ‘보편성‘을 주장하는 지배적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자첫 한풀이만 하는 사태가 벌어질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중심‘을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는 피해 의식에서 벗어나는 일과 같이 가야하는데, 이것은 ‘중심‘을 더 이상 보편적인 주체가 아니라 하나의주체로 상대화시켜 보면서, 타자화되어 온 자신을 재발견하는 ‘시선‘을 가지게 되는 것을 뜻한다. 억압당하고 짓밟히기만 해온 존재로서가 아니라, 타자화된 표면 아래서 꿈틀거려 왔던 존재를 찾아내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억압을 당해 온 이들은 새로운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 가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대항 담론의장이다. 그 새로운 담론의 장에서 자신들의 손상되지 않은 모습, 터져 나오지 못하게 눌려 있던 기억을 더듬어 억압 기재를 교란시키면서 자신들의 역사를 써갈 거점을 마련해 가게 된다. 억압을 드러내고 고발하면서 지배 담론에 틈새를 내는 것, 그리고 기운을 차리고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은 탈식민화 작업에서 필수적인 작업들이다. - P158

경험과 유리된 지식을 재생산해내는 데 길들여졌던 주변부가 자신들의 타자화된 모습을 발견하고 그것을 거점으로 새롭게 자신을 만들어 가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지배자의 눈치를 살피거나 그들의 발상 속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공간을 확장해 가는 것은 어떤 작업을 통해 가능할까?
그 동안 우리는 자기에 대해서도 모르고 그렇다고 세계에 대한 배려나 이해가 있지도 않는 상태에서 부유해 왔다. 지배 담론에서 규정한 단일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인지해 왔고, 그래서 주체성과 능동성을 잃은, 또 다양성이 무시된 존재로 살아 왔다. 일상적 생존의 장에서는 뛰어난 적응력으로,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조바심으로 순발력을 발휘하지만 그것은 이미 승산이 결정되어 있는 ‘장기판‘ 위에서의 놀음이었다. 이제 다시 정체성 논의를 끄집어내는것은 모든 입장들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구도, 또는 ‘장기판‘ 위가 아니라 각자 만들어 가는 자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우리가 장기판 자체를 바꾸고 싶어한다면, 기존의 판 위로 더 이상 올라가서는 안된다. 이제 우리는 각자가 새로운 판을 짜기 위한 자리를 스스로 정한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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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봄밤


부활절 날 밤
겸손히 무릎을 꿇고
사람의 발보다
개미의 발을 씻긴다

연탄재가 버려진
달빛 아래
저 골목길

개미가 걸어간 길이
사람이 걸어간 길보다
더 아름답다

봄눈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다른 사람에게 눈물을 보이지 말라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절벽 위를 무릎으로 걸어가지 말라
봄눈이 내리는 날
내 그대의 따뜻한 집이 되리니
그대 가슴의 무덤을 열고
봄눈으로 만든 눈사람이 되리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였다고
올해도 봄눈으로 내리는
나의 사람아

미안하다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그리운 부석사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摩지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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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 새에 대해 정말 잘 아네." 이나코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 경건할 만큼 무력감이 드러난 목소리는 감정의 고양뒤에 따라오는 피로와 공복으로 인한 단순한 반응이자, 동시에 그 이상의 것이기도 했다. 이사나는 자신의 공복감을새삼 느끼며 이나코의 말을 깊이 새겼다. 둘은 잠든 진을 남겨두고 내려가, 자신들을 위한 식사를 만들어 용암 덩어리에 앉아 먹었다. 그리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일광욕을 했는데, 하루 사이 햇볕이 더 강해져 서로의 머리에 물을 끼얹어주었다. 진의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말 한마디 없이, 이나코의 거무스름한 빛을 띤 건강한 피부가 햇빛의 영향을 서서히 받아들이는 것에 비해, 셸터에 틀어박혀 지내온 이사나의 피부는 순식간에 담홍색으로 타며 부어올랐다. 어제 탄부분에 다시 또 햇빛이 닿자 쑤시고 아프기까지 했는데, 불쾌하지는 않았다. - P111

다카키가 말이 없었기 때문에, 이사나는 오그라드는 남자가 찍은 그라비어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이라고 하는것의 근본적인 기묘함은 화면에 실재하지 않는 사람의 상상력이 화면의 ‘현재‘에 편재한다는 사실이다. 그 사진에서도 오그라드는 남자의 정열인지 악의인지, 여하튼 무척이나 생생하고 농밀한 감정이 전 자위대원 및 둥그렇게 진을치고 그를 감싸고 있는 청년들을 뒤덮고 있었다. 전 자위대원이 자동소총을 분해해서 용암 자갈에 깐 천 위에 각각의부품을 펼쳐놓은 상황이었다. 붉은 고기 빛깔을 띠는 총신의 번호는 사진 속에서도 확실히 읽을 수 있었다. ‘게릴라는 육상자위대 장비인 64식 7.62밀리 소총을 손에 넣어 실전훈련에 사용하고 있다. 이 설명을 읽으면 설령 아주 관대한 - P157

국가권력이라도 그냥 넘길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이 정도로 치명적인 장면을 찍히면서, 전 자위대원과 청년들은 열정적이고 순진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렌즈 이쪽의 오그라드는 남자는 이렇게 아름답게 미소 짓는 자들의 사진을어찌 찍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 침묵의 고함을 지르는듯했다.
"여기에서 농성하는 걸 당신이 반대하지 않으니 서둘러의논할 건 없겠지만." 다카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순서에 따라 이야기를 진행하자면 나는 자유항해단이무기를 분배받고 뿔뿔이 흩어지는 것에 찬성하지 않아. 꼬맹 씨가 말했던 것처럼 자유항해단은 이제 만들어져가고 있으니까. 아직 확실한 형태와 실질을 갖추지 못했어. - P158

아직 확실한 형태와 실질을 갖추지 못했어. 확실한건 모두 뭉쳐 있다는 것뿐이지. 우리가 뿔뿔이 흩어져버리면 자유항해단은 그대로 해산이야. 이나코가 말한 대로 보이의 꿈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매한가지가 돼버려.
그럼 두 번째 길, 여기서 농성하며 싸우는 것만으로는 자유항해단 안에서 확실한 건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거야. 그건수동적이니까. 수동적인 건 좋지 않아. 우리 측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아니라 기동대나 다른 무언가가 오는 걸기다렸다가 그들이 어떻게 나오는지에 반응하며 그제서야 행 - P158

동을 시작하는 거니까. 애초에 그러려고 자유항해단을 만든건 아니잖아? 불합리한 죽음을 타인에게 강요당하지 않고스스로가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하며 살고 싶다고, 우리는자유항해단의 출발점에 그런 마음이었던 거 아니야?"
"여기 농성하고 있는 데로 기동대가 공격해오고 머지않아 자위대까지 공격해올 거라 치고, 거기에 대응해 반격하는 건 수동적이지 않다고 생각해. 내가 얼마나 수동적이지않은지는 바로 보여주겠어." 다마키치가 말했다. - P159

"수동적으로 시작해서 난폭함만을 과장하는 걸로는 절대로 능동적인 것으로 전환될 수 없어.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어." 다카키가 매정하게 말했다. "나도 당신이 말하는 제삼의 길을 생각해봤는데 말야, 물론 그건 옳아. 서둘러 크루저를 손에 넣고 자유항해단의 원래 계획대로 공해로 자취를감추는 걸 생각해보라는 거지?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가지금 무장한 채 이즈나 보소까지 이동해서 요트항으로숨어드는 게 가능할 거라 생각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어떨지는 그야말로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 아닌가?" 이사나가 되물었다. "이럴 때야말로 원래의 구상에 따라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왜처음부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포기하고 시도해보려 - P159

고도 안 하는 거야? 처음 구상이 원래 현실적으로 시도해볼수도 없는 것이었다면 그 구상은 애초부터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이고, 그 구상을 품고 있었던 인간자체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게 되겠지? 그러면 어떤변호로도 오그라드는 남자와 보이가 자유항해단의 구상을위해 자진해서 죽었다고 타인을 설득할 수 없어."
"그러면 당신은 현실적으로 무얼 해 보이겠다는 거지?"
"자유항해단에 관한 상세한 사실들을 경찰 측은 아직 다파악하지 못한 것 같으니까, 시간 여유가 있다면 난 내일 아내랑 교섭하고 올게. 크루저를 한 척 입수하는 일쯤은 불가능하진 않을 테니까. 할 수 있는 한 어떻게든 그 배 위에서원래 구상에 따라 시작해보지 않겠어? 실제로 해보면 네가 예상하는 대로 난관에 부딪히는 일이야 많겠지만. 뿔뿔이 흩어지거나 수동적으로 기다리고만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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