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추가로 두 잔이나 넉잔이나 여섯 잔눕자마자 잘 수 있도록 잠자리에 들기 전에 두어 잔, 새벽 4시에 깨었는데 다시 잠이 오지 않을 때 몇 잔 더. 한편 맨정신을 유지하는어려운 일은 그냥 살아가는 일이라고 해도 괜찮지 싶다-술대신 행동을 적정하여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 핵심이다. 두려움과 불안과 불면의 밤을 관리하기 위해서 무엇을 마실까 하는 게 아니라무엇을 할까 하는 것, 삶이 무탈하고 안전하고 유의미하다는 느낌을 북돋기 위해서 무엇을 할까 하는 것,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취미를 가지고 어떤 육체적 자양분이나 정신적 자양분을 흡수할까하는 것. 여기에는 또 다른 시행착오가 필요한데, 이 시행착오는그냥 마시면 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해야 겪을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상당히 더 까다롭다. - P196

나는 자유로운 저녁과 주말을 어떻게 쓰기를 좋아할까? 내게 혼자 있는 시간과 함께 있는 시간의 적절한 혼합 비율은 얼마일까? 나는 타인이 나를 얼마나 접촉하고 사랑하고의지하면 좋겠는가? 내가 정말로 허기를 느끼는 대상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에 재미를 느끼고, 무엇에서 위안을 얻고,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일까? - P197

술을 끊는 일은기차 사고에서 빠져나오는 일과 좀 비슷하다. 당신은 멍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일어나서, 한동안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다 머리가 맑아지고 트라우마가 잦아들면, 자신도 모르게 망연히 잔해를보며 서 있게 된다. 저기차에서 내린 나는 이제 누구지? 이제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지? 거기까지 어떻게 가지? 이것은 겁나는 시기이고, 나는 스스로에게 이것이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는사실을 자주 상기시켜야 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기인 건 맞지만, 모든 것이 가능한 시기이기도 하다고. - P199

저는 아빠에게서, 아빠를 보면서 술 마시는법을 배웠으니까요. 아빠는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늘 마티니를 한 피처 가뜩 만들었죠. 그걸 한잔 마시면, 아빠에게서 긴장감이 스르르 빠져나갔어요. 아빠가 마음속에만 꽁꽁 담아둔 어떤 뾰족한 감정들이 술 앞에서는 감당할 만한 수준으로 무뎌진다는 걸, 저는 막연하게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아빠에게는 늘 슬픔의 기운이 있었죠. 이유는 제가 영영 알 수 없었지만, 아빠의 눈을 보면 그랬어요. 아빠가 가끔 동작을 멈추고 우리를 모두지나쳐서 방 건너편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면. 그럴 때 아빠는 미간이 아주 살짝 찌푸려졌고, 표정이 조용히 깊어졌고, 뭔가를 원하고찾는 듯한 분위기였어요. 슬퍼 보였고, 생각이 딴 데 있는 듯했고,
멀게 느껴졌어요. 그걸 보면 전 제가 느끼는 감정이 저런 것이겠구나 싶었어요. 저는 그 표정을 알아요. 아빠가 술을 마시면 한결 편안해졌다는 것, 아빠의 얼굴이 부드러워졌다는 걸 알아요. 그리고나중에 제가 규칙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을 때 그것과 똑같은현상을 경험했다는 걸 알아요. 그건 말하자면 우리가 세상과 관계맺는 방식이 10도쯤 어긋나서 초점이 맞지 않는다는 기분, 그런데술이 그걸 바로잡아줘서 우리가 내면의 균형을 되찾게 되는 듯한기분이죠.
- P202

제가 제일 좋아했던 건 아빠와 마시는 술이었다고 말씀드려도놀라지 않으시겠죠. 아빠는 대화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어요. 아빠가 던지는 캐묻듯 분석적인 질문들, 태도에서 드러나는 슬픔의 기색 저는 아빠의 지성과 통찰력에 주눅 들었고, 아빠 앞에서 종종말문이 막혔고, 제가 뭐라고 말하든 부적합하거나 지루한 말일 거라고 확신했어요. 술은 그 상황을 누그러뜨려서, 더 정상적인 평면이라고 느껴지는 차원으로 우리 둘을 내려보냈어요.  - P203

어떤 하나의 사건 때문에 건강했던 사람이 아파지는 게 아니고, 어떤 하나의 비정상 세포가 분열하거나 돌연변이를 거쳐서 사람의 미래를 바꾸는게 아니니까요. 그저 느리고 불분명한 과정이 있을 뿐이죠. 우리는자신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죠. 알지만 알지않으려 하죠. 자신이 충분히 끊을 수 있다고, 관리할 수 있다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불안해서 홀짝홀짝, 부정하려고 벌컥벌컥.
- P205

한편 술을 끊은 요즘 내가 쓰는 수단은 예의 그 충동들을 더 건전하게 다룰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더 안전하게 스스로를 위로할 방법을 찾아내는 것, 고통으로부터 달아나는 대신그것을 대면함으로써 나아질 수 있는 전략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일은 쉽지 않다. 이 일을 해내려면, 가끔은 불안이 들이닥칠 때 사소하되 낯선 조치를 취해야 한다.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든지, 목욕을 한다든지, 가만히 앉아서 차를 마신다든지. 또 가끔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아야 한다. 지난 4월은 내 아버지의 3주기이자 어머니의 2주기가 되는 달이었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다. 어머니의 기일 무렵 어느 날, 저녁에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채로 집에 혼자 있게 되었다. 나는 가끔 내가 감정에 대해서 공포증을 겪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날 거실에 우두커니 서 있노라니, 감정이 마치 오래되고 익숙한 적처럼 슬금슬금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 P221

사라지는 것이 또 있다. 두려움도 약간 사라진다. 마취제 없는삶은 격렬한 운동과도 좀 비슷하다. 각자 선택했던 중독의 대상이없는 채로 고통스러운 순간을 반복하여겪다 보면, 결국에는 감정의 근육이 길러진다. 우리가 술을 마셔서 혹은 굶어서, 먹어서, 도박을 해서, 살을 찌워서-감정을 몰아낼 때, 우리는 그 감정을 이해할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셈이다. 자신의 두려움과 자기 의심과 분노를 이해해볼 기회를, 마음속에 묻혀 있는 감정의 지뢰들과제대로 한번 싸워볼 기회를. 중독은 우리를 보호해줄지 몰라도 성장을 저지한다. 사람을 한층 더 성숙시키는 인생의 여러 두려운 경험들을 우리가 온전히 겪지 못하도록 막는다. 중독을 포기하면, 그래서 그런 힘든 순간들을 온전히 겪기 시작하면,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근육들을 구부리게 된다. 자라게 된다. - P224

중독은 즐거움과 기쁨과 놀라움을 마비시킨다. 우리가 진정한 친밀감, 진짜 웃음, 진실된 통찰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붙잡는다. 마취제를 버릴 때, 우리는 자신의 인간성에서 가장 의미 있는 측면들을되찾을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는 셈이다. 삶을 살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는 셈이다. 그걸 상상해보라. - P225

여성 해병대가 없다면, 우리는 무력하다. 희망이 없다. 내가 베리처럼 솔직하지 못하고, 걱정이 지나치고, 자존심이 결여된 반응이내 입에서 나오는 걸 듣고 앉았던 적이 몇 번이나 되는지, 일일이 셀 수 없을 지경이다.
어느 편집자가 내게 다른 곳에서 받을 수 있는 돈의 4분의 1에불과한 돈으로 글을 써달라고 하면, 나는 말했다. "아, 그러죠, 그정도면 괜찮습니다."
예전 상사가 내게 불합리한 호통을 백만 번째 치더라도, 나는묵묵히 삼켰다. 일에서만이 아니다. 사귀는 남자가 내게 내 본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거나 치장하는 게 좋겠다고 암시하면, 나는 순순히 따랐다. 그를 만족시킬 일을 하고, 그를 만족시킬 말을하고, 무엇이 되었든 그가 기대하는 바를 행했다.
내가 아는 남자들은 대체로 그러지 않는다. 지금 언뜻 생각해보아도, 개에게 뼈다귀 던지듯 알량한 연봉 인상을 제안받으면 책상에서 고개를 들고 상대에게 이렇게 대꾸할 남자가 다섯 명은 떠오른다. "농담이겠죠." 어쩌면 그들도 그렇게 대응하는 것이 괴롭고 초조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그렇게 한다. 여자들은?
- P243

이것이 바로 여성의 분노다. 속에 묻힌 분노 금기가 된 분노우리는 그것을 느낄 줄조차 모를 때도 많다.
그동안 발전해온 페미니즘이 도움이 되기는 했다. 이제 여자들은 사적인 관계에서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데 좀 더 능숙해졌다.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생각은 이제 사실상반박의 여지가 없는 생각이다. 여자가 하는 노동의 가치가 남자가하는 노동의 가치와 동등하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신념을 철저히 내면화하기까지는 아직 갈길이 멀다. 우리가 그런 신념을 뼛속까지 새겨서 적절한 말을-가령 "싫습니다" "아쉽지만 그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같은 말을ㅡ술술 내뱉게 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직은 너무 많은 여자들이 착해야 한다는 부담을 짊어지고 있다.  - P244

그러니, 여성 해병대를 만들자. 새벽같이 일어나서, 자긍심으로 고개를 높이 쳐들고 이층 침대를 박차고 나가자. 무력감을 떨치고, 분노를 경험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억지로라도 익히고, 자신의감정과 요구를 남들에게 정확하게 말하는 기쁨을 배우자.
만약 그것으로도 안 된다면, 남성 해병대가 갖고 있는 다른 도구라도 빌리자. 무기 말이다. - P245

내 경우에, 그 교수는 내가 엄청나게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조언을 듣고 싶었고, 그것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는 내 글을 칭찬했고, 내게 기자가 되라고 격려했다. 나는? 나는 막 학업을마친 상황이었고, 숫기가 없었고, 자신감이 별로 없었고, 이제 세상에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압도되었고, 겁먹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우상으로 여기던 마음을 버리고 그가 잘못된 혹은 도를 넘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또 내가순진했던 게 아닌지, 남자와 함께 마티니를 마시면서 거기에 야릇한 의미가 없다고 가정했던 것이 잘못이 아닌지 걱정되었다. 내가그런 일을 가능케 할 만한 행동을 했던 게 아닌지, 사귀고 싶다는신호라도 내보냈던 게 아닌지 걱정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내보낸 것은 다른 신호들이었을 것이다.
불안정의 신호,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의 신호,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갈망의 신호, 이것은 강력한 감정들이고, 어떤 사람들은 어떤 남자들은 이런 감정을 포착하는 능력이 남다른 것 같다. 그들은 인정 욕구를 정확히 가려내고대상에게 접근한다.
- P249

이것은 그로테스크한 상황이지만 특별할 것은 전혀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런 일은 노상 벌어진다. 돌아보면, 그때 내가 가장 괴로워했던 문제는 특별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우리 문화는 육체적인 측면이 아닌 측면에서도 자신에게 만족하는 여자아이, 자신을 한 온전한 인간으로서 본질적으로 귀한 존재라고 느끼는 여자아이를 길러내는 데 능하지 못하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겁먹고 불안정했던 스물한 살의 나는 그런 시기의 표본과도 같았다.  - P250

그러다 어느 시점에, 너무 수치스럽고 역겨워서 그도 나도 견딜 수 없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없는 용기를 끌어모아서 그의 연구실로 그를 만나러 갔다. 너무 불편하고 이상해서 이 상황을 더는 견디지 못하겠다고 더듬더듬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친구로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그가고개를 들어 나를 보면서 이렇게 대답했던 것도 기억난다. "글쎄,
연인이 되지 않을 거라면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우리는 다시는 말을 섞지 않았다.
권력 남용은 어떤상황에서도 잔인한 짓이다. 하지만 성적인측면에서의 권력 남용은 특히 더 잔인하다. 몇 해전에 그 교수가심장마비로 돌연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딱히 슬프지는 않았다. - P251

어느 시점에 나는 예전에 거식증과 길고 끈질긴 싸움을 벌일때 입었던 청바지들이 보관된 서랍장을 정리하게 되었다. 작다 못해 해골에게나 맞을 듯한 사이즈의 청바지들은 나쁜 기억이 묻은물건들이었다. 더 건강하게 살려고 애쓰기 시작한 사람의 인생에는 존재할 자리가 없는 물건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오랫동안 그청바지들을 붙들고 있었고, 그럼으로써 언젠가 다시 그 담배 굵기만 한 청바지들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언젠가 다시 그 청바지들이 맞는 몸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따라서 지금 거식증으로부터 ‘회복‘했다고 느끼는 상태가 잘해봐야 일시적이고 최악의경우에는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붙들고 있었다.
- P257

내가 생각하는 요령은, 두려움과 감정을 관리하는 법을 익히는것처럼 물건을 관리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물건 무더기들에 논리를 좀 적용해보는 것이다. 좀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내가 중요한 전화번호를 몇 개 버린다고 해서 세상이 정말로 무너질까? 기억이 담긴 물건들을 버린다고 해서 내 과거도 정말로 함께버려질까? 저 리본들이 다 없다고 해서 내가 죽을까? 손톱만큼이라도 문제가 생길까?
아니, 아닐 것이다. 그래도 저 은행 명세서들은 계속 갖고 있어야 할 것 같다………… 혹시 모르잖아.
- P259

부모님의 집은 혼돈 그 자체였다. 우리는 38년동안 쌓인 물건들을 일일이 살펴보고, 내버리고, 상자에 담아야 했다. 어느 구석을 보나, 어느 표면을 보나 거기에는 수십 년 치의 감정이 숨어 있었다. 그러니 내가 내 집에서 발휘하는 정리벽은 그에대한 아주 강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었다. 내가 내면의 무질서와격변처럼 느낀 상황에 대한 방어 행동이었다. 그것은 두려움에 압도된 나머지 통제력을 갈구하는 행동인데, 나는 과거에 거식증을겪을 때도 그랬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혼돈으로 느껴질 때,
우리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을 통제하려고 든다. 무엇이든 좋으니 무언가를, 이를테면 자신이 섭취하는 칼로리를, 자신의 몸무게를, 자신의 환경을 공황에 빠진 사람은 이상한 짓도 하게 된다. - P267

난데없이 끔찍한 방식으로 세상에서 지워져버린 수천 명의 사람들과는 달리, 이 남자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에 의식적으로 또한 준비하면서 다가갈 기회가 있다. 할 말을 할 기회가, 모두를 소집하는 자극으로 작용하는 재난이 없어도 서로를 도울 기회가 있다. 물론 이 또한 지치는 일이지만, 그래도 중요한 일인 데다가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리고 덕분에 나는 멍한 감정과 수동적인 태도를 가르는 구분선이 아주 희미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헌혈을 할 수 있다. 구호 단체에 후원금을 보낼 수 있다. 편지를 쓰거나 청원서에 서명할 수 있다. 또한 나는 내 작은 세상 안에서도 활동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각자의 작은 세상들은 지금처럼 모두가 뒤엉킨 감정으로 멍한 시기에도 우리가 반드시 알아봐야 할 선물이다. - P281

하지만 순환이란 본래 그런 것이니 어쩔 수 없다. 계절의 순환도, 감정의 순환도, 여름의 불안은 왔다가도 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 또한 올여름에 내 몫의 좋은 날을 누릴 것이다.
기분 좋고 낙천적이고 마음 가벼운 날, 내 내면의 풍경이 바깥 풍경과 일치하거나 적어도 좀 더 비슷해지는 날, 내가 맨발에 밟히는 모래와 살결에 와닿는 더운 공기를 즐길 수 있는 날, 그런 것들이 모두 괜찮게 느껴지는 날. 그리고 나는 나쁜 날도 겪을 것이다.
밝고 가벼운 것들이 모두 미워지는 날, 어두운 고치를 그리워하는날,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꽃들을 보면서 그 향기 나는 작은 머리통들을 뜯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날.
그런 날이 오면, 나는 요령껏 대처할 것이다.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처방책이 있기 마련이다. 따뜻한 날씨 우울증이 찾아왔을 때쓸 전략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확신하는바, 바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신이 영화관을 발명하신 것이다. - P295

나는 내 집에 있다.
내가 이 사실을 깨닫는 데는 11년이 걸렸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1년하고 일주일하고 사흘이 걸렸다. 나는 1984년 8월 8일여기 보스턴으로 이사 왔다. 그때는 여기서 영원히 살겠다는 생각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1년, 길어야 2년쯤 머물 거라고 생각했다.
보스턴은 기착지라고,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나 런던처럼 더 크고더 색다른 장소로 옮길 때까지 잠시 짐을 내려놓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잠깐 머무르는 거라고, 장소에 대한 나의 애정은 유동적이라고, 내가 애착을 느끼는 대상은 장소 그 자체보다는 사람들과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문득 깨달았다. 세상에 내 삶은 여기에 있어, 나는 어디로도 가지 않을 거야. 나는 지금 내 집에 있어. - P296

그래서 나는 쇼핑하러 갈 것이다. 내 능력껏 문제를 풀 것이다. 어쨌든 이번 고비는 넘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옷장이 언젠가 다시 기능부전을 일으키리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내가 여자라서 그런 것도 있겠고, 그것이 겉으로 드러날 만큼 견고한 내면의 평안을 찾아가는 과정의 한 부분이라서 그렇기도 하다. 이혼을 앞둔 내 친구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은 지난17년 동안 기혼자처럼 옷을 입어왔는데 이제 다가오는 인생의 새로운 단계에서는 어떤 모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하다며, 새 옷과 화장품을 사는 데 한밑천을 쓰고 있다고했다. 이것은 내면과 외면을 일치시키려는 시도라고, 두 가지가 발맞추어 가도록 하려는 시도라고, 친구는 말했다. 이것은 평생에 걸치는 과정이다. 우리에게 블루밍데일이 있는 게 그 때문이다. - P307

이제는 나도 자신을 제법 잘 알기 때문에, 그 질문에 대한 답도안다. 그날 아침에 나는 싱숭생숭했고, 초조했고, 약간 외롭고 우울했다. 이전 며칠 동안 너무 많이 먹었고, 일을 미뤘고, 친구들에게연락한다거나 푹 잔다거나 하여 기운을 되찾아야 했지만 그러지않았다. 이럴 때 운동이 실제로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좀 더 활기찬모드로 전환하는 방법, 무기력함과 그렇게 무기력한 자신이 나태하다는 기분에서 벗어나는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날 아침처럼 운동이 과거의 운동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운동이 나 자신을 벌주는 방법, 말그대로 나자신을 때려눕히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날 물결이 거칠 테고 노 젓기가 불쾌하고 힘들고 외로우리란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나갔다. 그런 것은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혐오 활동이다. 그리고 내가 지겨운 것은 바로 이런형태의 운동이다. - P312

그 산책들은 육체의 움직임과 사교의 즐거움을 둘 다 균형 있게 갖춘 활동이었다. 우리는 걷고, 말하고, 이따금앉아서 쉬면서 물도 마시고 야외에 나오게 되어 지칠 줄 모르고 신난 개들을 지켜본다. 그렇게 걷고 돌아오면, 육체적으로 활기를 되찾은 느낌뿐 아니라 다른 측면으로도 재충전된 느낌이 들었다. 세상과 이어져 있는 기분, 만족스러운 기분, 내 개와 좋은 대화와 숲의 고요함 등등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들과 더 가까이 있는기분 사실 나는 걷기를 운동으로 ‘쳐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파야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생각이 든다. 아마 처음 떠올리는 생각인 듯한데, 우리의 마음 또한 여러 면에서 하나의 근육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체육관에서 운동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체육관 밖에서도 돌봐야 하는 근육이라는것이다.
- P313

화를 터뜨리는 편이 언제나 효과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화를내면 반드시 문제가 해결된다거나 상처가 낫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지 않아도 나쁜상황이 열을 내면 더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는 싸움을 잘 고르는 것 못지않게 대상을 잘 고르는 것도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와 정신적으로 치고받을 의향과 능력이있는 사람은 누구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누구인가? 화내는 것이효과가 있으려면 어느 쪽에게든 생산적이거나 유익하려면 관련된 두 사람이 기본적으로 서로 신뢰해야 한다. 두 사람 모두 괴로운 시기를 견뎌보겠다고 생각할 만큼 그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
이상한 일이지만, 분노라는 동전의 뒷면은 친밀함일 때가 많다.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겁나면서도 때로 가치 있는 일인 것은 그 때문이리라.
그러니, 비록 싫은 감정이기는 해도 나는 분노에 찬성표를 던지겠다. 열띤 언쟁과 눈물과 분해서 이를 가는 상황에 찬성표를 던지겠다. 내가 그 일에 영젬병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것이 갈고닦을 가치가 있는 기술이라고 믿는다.
자, 다 들었으면 그만 좀 꺼져. - P325

신체적 결점이 실제로 있는 것이든 우리 생각일 뿐이든,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가짜라거나 쓰라리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자기 코가 코끼리 코만 하다고믿는 열두 살짜리 아이로 살아가는 것은 절대 재미난 일이 못 된다. 나는 또 이런 과장이 고통의 더 깊은 근원을 알려줄 수 있다고생각한다. 내가 머리카락이나 피부나 몸무게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날, 나는 그 불편함이 사실은 좀 더 복잡한 현상이라는 것, 그것은 외적인 면이 아니라 내적인 면에서 스스로 매력적이지 않다고(초라하다고, 흠 있다고, 나쁘다고) 느끼는 감정과 관련된다는 것, 내가 문제를 밖에서부터 바로잡고자 소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자들이 특히 자주 품는 그 소망의 논리는 이렇다. 내 머리카락이나피부가 완벽해진다면 좋을 텐데, 그러면 내 나머지 부분들도 다 그럴 텐데.
과장은 이 점에서도 도움이 된다. 우리는 결점을 말도 안 되게부풀려 말함으로써 그것이 주는 압박을 좀 덜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비웃을 수 있고, 우리를 너무나 지치게 만드는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 숭배도 비웃을 수 있다. - P330

내가 흥미롭게 느끼는 지점은, 문화적으로 지지받는 판타지와 실제 판타지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것이다. 새하얀 웨딩드레스의 판타지에도 실제로는 어둡고 복잡한 실들이 엮여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평범한 꿈이든 특이한 꿈이든, 여자아이들이 실제로 품는 꿈은 신부가 되고 싶은 꿈보다 훨씬 더 풍성하다. 또한 여성이현실에서 겪는 체험과 훨씬 더 비슷하다. 그런 꿈은 우리가 자신에게 바라는 바를 반영하고(강해지고 싶다, 똑똑해지고 싶다, 아름다워지고 싶다), 우리의 실제 모습을 반영한다.(가족에 대한 혼란한 감정, 분노와 섹슈얼리티, 세상을 안전하지 않은 장소로 느끼는 기분.) 그런 꿈은우리의 은밀한 야망, 연결감에 대한 갈망, 우울의 씨앗을 보여준다.
그런 꿈은 여성으로 자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 P336

오늘 아침 일찍 나는 강에 배를 띄우고, 청명한 8월 말 하늘 아래강을 거슬러 오르며, 배의 리듬에 수면에부딪혀 반짝이는 햇빛에 노가 물을 가르는 느낌에 넋을 잃고 몰입했다. 나는 스스로 강하고 유능하다고 느꼈고, 내 몸이 내가 가르친 대로 움직인다고 느꼈다. 그리고 계속 노를 저으면서 나는 내팔을 생각했고, 힘과 아름다움의 관계를 생각했고, 내가 여성의 몸매와 체형을 규정하는 표준 방정식을 거스르는 데 이 스포츠가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를 생각했다. 평소 내 팔은 스웨터나 긴팔 옷에 싸여서 남들 눈에 띄지 않게 가려져 있다. 나는 팔을 내보이지 않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내가 내 팔에서 느끼는 만족은 전적으로 사적인 것이고, 이 점이 그 만족감을 특히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 몸매에 관한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나 자신의 열정과 어떤 일을 할 줄 아는 능력들에서 비롯한 미적 기쁨, 안에서 나와 밖으로 드러난 아름다움, 날개가 된 나의 팔, 이것이 바로 해방의 정의라고, 나는 믿는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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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내 행동의 본질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내가 한편으로는무언가를 간절히 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결코 충분히갖지 못할까 봐 겁먹었다는 사실, 음식은 그 사실을 끔찍하고 강력하게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던 것이다. 음식을 통제하는 것은 그런갈등을 표현하는 동시에 부정하는 방법이었다. 그때 나는 내 인생의 중요한 사람들에게 화나 있었다. 나를 버린 것처럼 느껴졌던 남자친구에게, 내게 소극적이고 거리감 있는 태도를 취한다고 느껴졌던 부모님에게, 멀리 이사해버린 언니에게. 하지만 그 화를 표현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대신 그것을 몸에 걸치기로 했다. 당신 때문에 내가 어떻게 됐는지 보여? 내가 얼마나 절망적이고 불행한지보여? 나는 사람들이 겁났고, 실망할 것이 겁났다. 더 깊은 차원에서, 나는 식욕뿐 아니라 감정적 욕구와 성욕까지 모든 욕구가 겁났다. 그래서 그것들을 억압하고, 짓누르고, 의지로 없애버리기로 다짐했다. 욕구가 없다면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일도 없으니까. - P166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굴복하지 않는 것, 굴복하지 않는 것, 굴복하지 않는 것이 규칙이었다. 그것이 내가 삶을 꾸리고자신을 규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신 달리러 나갔다.
그날 달리는 기분이 어땠는지 지금도 기억난다. 온몸이 아팠다. 갈비뼈와 무릎뼈가 말 그대로 피부에 쓸리는 것처럼, 온몸이팽팽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피곤했다. 그러다 한순간, 발을 헛디뎌서 인도에 엎어질 뻔했다. 그때 내 꼬락서니와 느낌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나는 꼴사납게 깡충거리듯 성큼성큼 세 걸음을 디뎠고, 쭉 뻗은 팔은 균형을 잡으려고 버둥거렸고, 눈은 부릅떴다. 겁에 질렸다. 그리고 혼자 캄캄한 밤중에 통제를 잃고 발버둥 치는내 꼴이 순간 눈앞에 그려졌다. 간신히 추스르고 계속 달렸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내가 그 부엌에서 친구들과 중국 음식을 먹고맥주를 마시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친구들에게 합류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배가아픈 척하고(때로는 두통이 있는 척했다) 내방으로 사라졌다. 내방의 바깥 창턱에는 이럴 때에 대비하여 놓아둔 큐브 치즈와 사과 봉지가 있었다. 그걸 집어와서 몰래 먹는 것이었다.
그런 순간에 나는 내가 외롭다는 사실, 내 삶이 엉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알아도 어쩔 수가 없었다. - P167

그날 밤 나는 포도주를 잔뜩 마셨다. 그러고는 끝내 울면서 두분에게 말했다. 나한테 문제가 있는데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내가 거식증인 것 같다고. 지금 기억나는 것은 두 분의 눈뿐이다.
걱정과 약간의 두려움이 깃들어 있지만 주로 무력한 표정이었던눈 두 분은 공감하지 못했고, 나는 설명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에게 이 일이 벌어져도-어쩌면 그 경우에 더욱더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어머니가 우편으로 보낸 쪽지를 받았다. 거기에는 이렇게만 적혀 있었다. "먹어라." - P170

하지만 그런 순간은 드물었고, 대부분의 순간에 나는 모든 것을 부정했다. 나는 사철 따뜻한 날에도 추웠는데, 그 사실을 부정했다. 현기증이 잦았고 앉았다가 일어나면 눈앞이 캄캄해지곤 했는데, 그 사실도 부정했다. 스물셋, 스물넷, 스물다섯 때였는데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다시피 했고, 사회생활은 허울뿐이었고, 성생활은 물론 없었다. 나는 이런 사실들도 부정했다. 고립되어 사는건 견딜 수 있었다. 몸무게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한없이지루하게 사는 것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통제력을 잃고서는 살수 없었다. 나는 우울에 익숙해졌다. - P171

섭식장애에서 회복된 지인이 내게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어느시점에 그냥 결정을 내렸어요. 미치느니 뚱뚱한 게 낫겠다고." 어느 시점이 되면, 당신이 입힌 손상이 당신의 삶에 행복에, 관계에 그냥 너무 뚜렷해진다. 어느 시점이 되면, 보통 당신이 몇 년동안 치료를 받아서 그 행동의 의미와 자신이 그 행동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머리로는 진작 알던 시점에, 그것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전혀 없다는 사실을 어느 시점이 되면, 집착이 너무나 철저하고 깊고 지독하게 지루해진나머지, 당신은 더 이상 이럴 수 없고 다른 대처법을 찾겠다고 선택할 수밖에 없어진다.
나는 이제 몸무게가 안정적이고, 이 일은 대체로 과거가 되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아직 대처법을 찾지 못한 여자들이무수히 있다. 나는 여름 해변에서 꼬챙이 같은 다리를 가진 그들을본다. 찰스강에서 죄수처럼 수척하고 음침한 얼굴로 강둑을 달리는 그들을 본다. 나는 그들을 붙잡아 세우고 몸을 흔들면서 말하고싶다. "당신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요. 당신이 뭘 하는지 알아요. 제발 내 말을 믿어요. 그래 봤자 소용없어요."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깨우쳐야 한다는 것을 안다. 어떤 이들은 영영 깨우치지 못하리라는 것도 안다.
- P173

하지만 변화가 보장된 방법이란 없다. 당신이 그냥 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굶는 일을 아주 조금씩 그만두었다. 아침에 하나만먹던 베이글을 하나하고 반 덩이 먹게 되었다. 그냥 배가 너무 주려서 그러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그다음에는 크림치즈를 발랐다. 1985년에는 몸무게 재보는 일을 그만두었다.(이후 지금까지 재보지 않았다.) 1986년에는 찰스강에서 스컬 보트를 타기 시작했는데,
이 어렵고 만만찮은 스포츠는 내게 식욕 말고도 터득할 것을 안겨주었다. 역시 그해에, 나는 섭식장애를 가진 여자들의 상호 조력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각 단계마다 배우는 것이 있다. 당신은경직성을 포기한다고 해서 반드시 통제력을 잃는 건 아님을 배운다. 자신의 힘을 느끼는 방법에는 좀 더 지속가능한 다른 방법들도있다는 걸 배운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이 부담스럽고 위험하게 느껴지더라도 혼자인 것보다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나은 일이란 걸 배운다. - P174

요즘 나는 좋은 날일때도 있고, 나쁜날일 때도 있고, 그저 그런 날일 때도 있다. 그리고 아마도 최고의 날은 어떤 날인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는 날일 것이다. 내가 음식을 결정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것이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몇 시간 넘게 굶주린 것이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음식이나 몸무게를 절대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둘 다를 무척 의식하면서 산다. 내가 음식에 대해서 완벽하게
‘정상‘이 되는 날이 오기나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만약 정상이라는것이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면, 오늘날의 이 문화에서 완벽하게 ‘정상‘인 여성이 한 명이라도 있을지 잘 모르겠다.
- P175

나는 이 외로움과 오래도록 친밀하게 지내왔다. 가끔은 내가이 외로움을 타고난 게 아닐까, 나 자신이 남들과 다르거나 뭔가부족해서 세상과 떨어진 존재라고 강하게 느끼는 이 감정을 타고난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릴 때 어느 봄날에 내 방에 앉아서 창밖에서 살랑거리는 나뭇잎들을 보며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이름붙이지 못했던 어떤 기분을 느꼈던 일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것은세상에 참여하지 못하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세상은 저 창밖에서나 없이 분주히 돌아가고 있는데 나는 거기 참여할 능력이 없거나의지가 없다고 여겨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늘 친구가 있었고 지금도 있고 그것도 많다. 하지만 내가 겪는 외로움은 현실의 상황이나 논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내 안에 산다. 작고 끈질긴 악마 같은 그것은 가장 고요한순간에, 그러니까 계획 없는 저녁이나 일요일 아침 같은 때 활개를친다. 그것은 공허감이다. - P184

내 경우에 이 공허함은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스스로 만족스럽거나 안정적이라고 느끼기 위해서, 나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예의 실시간 해설을 유심히 들어보면, 그 목소리는 더 크고 무서운 질문들을 던진다. 커피를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 이 사람은 누구지? 이 사람은 무엇에서 삶의쾌락과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지? 두렵고 공허한 시간을 편안하고만족스러운 시간으로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하지? - P186

요전날 밤, 내 개와 함께 거실에 앉아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를 틀어보았다. 무덤에서 망자의 목소리를소환하려는 것처럼 음침한 일로 들리지만, 사실 나는 이 일로 수용에 관한 작은 교훈을 하나 배웠다. 상실을 수용하는 것, 나를 떠난사람을 수용하는 것, 더 이상 내 곁에 없는 사람을 수용하는 것에대하여.
아버지는 5년 전에 뇌종양으로 돌아가셨다. 정신분석가였던아버지는 놀라운 지성의 소유자였고, 병을 진단받았을 때 막 책을쓰기 시작한 참이었다. 뇌종양은 집필을 결딴냈다. 아버지는 오른손으로 펜을 쥐는 것조차 힘들었고, 생각은 점차 산만해졌다. 하지만 투병의 첫 몇 달 동안은 병이 아버지의 의지만큼은 꺾지 못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삶을 지탱해준 힘이었던 일을 그만두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와의 대화를 테이프에 녹음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 P188

하지만 그 테이프는 다른 것도 담아냈다. 나와 아버지, 그리고내가 이해하기로 이상하고 강렬하고 어긋난 관계였던 우리 둘의애착 관계가 거기 담겨 있었다.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심리치료를10년 이상 받도록 만들 만한 것이었고, 그런 우리의 대화를 듣고있노라니 그 옛날로 시간 여행을 하여 그 옛날의 관계를 18분 동안엿듣는 관찰자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흠모했고, 아버지를 공경하면서도 두려워했으며, 아버지의 인정을 몹시 바랐다. 내게 아버지는 신인 동시에 미친 과학자였고, 전능하고 탁월하고 곧잘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어서 내가 가끔씩만 가닿을 수 있고 그나마도 불완전하게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와의 접촉은 짧은 순간 갑자기 이뤄졌다가 끊어졌다. 평소 자신의 생각이라는 구름에 둘러싸여 있던 아버지가 잠깐 땅으로 내려와서 아주 잠시-10분, 18분-자신의 통찰력과 영민함을 내게 발휘한 뒤 다시휙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감정적 거리감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를 아버지가 투병하는 동안 더 잘 이해하게 되었는데-아버지는 우울증과 술과 내면의 어두움과 오랫동안 대체로 혼자만 아는 싸움을 벌여왔고, 그런 힘들에 떠밀려서 일로 사라졌으며, 그래서 늘 생각이 딴 데 가 있는 사람이 되었다-하지만 어렸을 때는여느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 그 관계의 결함이 내 탓이라고 여겼다.
아버지가 내게 실망했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에 비하면 무가치한사람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내게 거리를 둔다고 여겼다.
- P190

‘인간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날 밤 아버지와 내가 식탁에 앉아서 테이프를 녹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아 계셨고 나는 포도주잔을 생명줄처럼 움켜쥐고 앉아 있었다. 우리가 둘다 서툴렀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둘다 불완전하고 부자연스러운 방식으로나마 투병 기간 내내 서로에게 곁을 주려고 노력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잃어버린 기회와놓친 연결감과 이런저런 후회도 떠오르지만, 무엇보다도 크게 느끼는 것은 일종의 평온함이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노력했어. 마지막에는, 우리 둘 다 최선을 다했어. 이런 감상에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평화도 있었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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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부모와 사이가 좋은 자식들도 죄책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내 아버지는 11개월의 투병 끝에 올봄에 돌아가셨는데, 작년에 아버지가 아프기 시작했을 때 나는 죄책감을 잔뜩 느꼈다. 전단 결과를 들었을 때 처음 또렷하게 떠오른 생각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보여드리지 못한다면, 나는 남은 평생 죄책감을 느낄 거야.
그런 생각은 사실 도움이 되었다. 나는 아버지가 아픈 동안 함께 시간을 많이 보냈고,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확실히 느끼고 떠나셨다는 점을작은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래도 이런 죄책감이 우리 내면에숨은 무언가를 보여주는 건 사실이다. 죄책감은 강한 힘이다. 그속에는 사랑이 있고, 의무감도 있고, 우리가 과거에 남들에게 무언가를 말하거나 보여주지 못했다는 데 대한 회한도 있다.
내가 그때 느꼈던 그 감정은 이제 과부가 된(나는 ‘싱글맘‘이라는 표현이 더 좋지만) 어머니에게로 듬뿍 옮겨갔다. 어머니는 내가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강하고 자신을 잘 억제하고 미래지향적인 사람이지만, 그래도 나는 어머니가 혼자 집에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움찔하게 된다. 나는 어머니에게 줄기차게 전화를 건다. 줄기 - P122

차게 걱정한다. 엄마가 괜찮은가? 슬퍼하시나? 기운 내고 계신가?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엄마에게 좀 더 잘해드려야 하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생활을 개선해드려야 하는데,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죄책감이 평범하고 오래된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 우리가 죄책감과 사랑을 본능적으로 하나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이것이 삶임을 깨닫는 데도 긴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모두 나이 들수록 삶이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니라 더 쉬워진다는 신화를 믿으며 자라는데(그리고 이것은 진짜 신화일 뿐이다), 나이 드는 부모의모습만큼 그 믿음이 사실이 아님을 잘 보여주는 것은 많지 않다.
실제로는 우리가 나이 들수록 잃은 것이 많아진다. 점점 더 크고버거운 과제가 나타난다. 실수를 되돌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부모의 죽음을 생각해보는 일이 겁나는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모님 은혜의 시기가 끝나면, 우리의 순수의 시대 중 후반부의 한 단계도 끝난다. 그분들이 언제까지나 거기 계시진 않을 것이다. 우리 삶이 더 간단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 P123

그야 정확히 말하자면 다행스럽다기보다는 마음이 좀 가볍다는 기분, 한시름 덜었다는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병은 사람을 망가뜨렸고, 잔인했고, 지켜보기 참혹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병으로 죽을 때는 애도 과정의 상당 부분이 기억과 안도라는 기묘한 순환으로 전환되는 듯싶다. 당신이 이따금 그 참혹함을 떠올렸다가는 이내 그 일이 끝난 것이 모두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느끼는 것이다. 꼭 다 끝났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런 이미지에 몸서리치고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지워버리려고 애쓰는 것이랄 수 있다. - P126

하지만 사실 아버지는 없다. 크리스마스에 갓난이 조카의 기저귀를 가는 언니를 서서 지켜볼 때 나를 휩쓸고 간 감정이 그것이었던 것 같다. 같은 방, 전혀 다른 이야기. 아홉 달 전에는 슬픔의 장소였던 곳이 지금은 기쁨과 새 시작의 장소였다. 그러니 그때 본아기의 모습은 내게 연속성을 일깨워주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무력함이 아기의 무력함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아버지를돌보았고, 우리는 아기를 돌볼 것이다. 아버지는 갔지만, 아기는 여기 있다.
- P127

하지만 가끔은 그냥 견딜 수가 없다. 일주일 전, 내가 대학에있을 때 어머니가 보내왔던 편지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때는 내가특히 힘들었던 시기였다. 나를 지지하고 공감하는 차원에서, 어머나는 자신이 대학 시절에 무척 외로웠다는 이야기와 20대 때 스스로 무척 불안정하고 덜 형성된 존재로 느꼈다는 이야기를 적어주었다. 정말 상냥하고 어머니다운 그 편지를 보고 있으니, 그동안 내가 살면서 혼란스럽거나 우울하거나 막막했을 때 어머니에게 전화했던 일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밤중에 듣던 어머니의 목소리가깊고 한결같던 이해가 떠올랐다. 내가 어머니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편지 봉투를 움켜쥐고 앉아서 흐느껴 울었다. 너무 격렬해서 몸이 다 아픈 울음이었다.
울음은 마음을 좀 편하게 해준다. 하지만 고통을 정말로 줄여주진 못한다. 무엇보다도 힘든 점은 이런 순간에 내 기분을 정말로 낫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내가 정말로 기대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엄마라는 것이다. - P133

지금 작품들을 보는 내 마음을 저미게 하는 것은 그런 분투 어머니가 특정 시기에 겪었던 어려움이다. 암이 재발하기 전 몇 년동안의 콜라주에는 시간과 인간의 필멸성에 대한 생각이 지속적으로 담겨 있고, 작품들에는 ‘달력‘ ‘신전‘ ‘제단‘과 같은 제목이 붙어있다. 뼈 단층 촬영 사진을 닮은 예의 1987년 작품의 제목은 ‘확률게임‘이다. 또 어떤 해는 누락되어 있다는 사실로 눈길을 끈다. 어머니가 작품 하나하나 꼼꼼하게 기록해둔 공책을 보면 1991년 5월에서 1992년 5월까지가 비어 있는데, 그 일 년은 어머니가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돌본 시기였다. - P138

어머니가 즐겨 하신 말씀 중에 "인생은 드레스 리허설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었다. 술을 끊기 전 몇 달 동안 나는 저 말을 수시로 떠올렸다.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인생의 힘든 순간들을 겪어내는 데 술에 지속적으로 의지하면, 삶의 모든 일이 현장이 아닌 연습인 양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 여름에 밤이면밤마다 전화를 붙들고 애통해할 때, 나는 실제로 애도한 게 아니라애도를 연습한 것이었다. 희석된 고통은 직면한 고통과 결코 같지않다. 술과 자신감의 방정식, 술과 불안의 방정식도 마찬가지다.
칵테일 파티에서 마티니로 얻은 세련됨은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힘겨운 작업을 거쳐서 내면으로부터 얻은 세련됨과 결코 같지 않다. - P155

굶으면 또 내가 강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좋은 날에는 -내 식단을 고수하는 날에는 퇴근할 때 식료품 가게와 식당이 즐비한거리를 걸어서 오면서 내 의지를 시험했다. 고급 식료품 가게, 던킨 도너츠, 과자 가게, 노천카페, 빵집을 지나쳤다. 도넛에 발린 달콤한 시럽 냄새를 맡았다. 프렌치프라이, 데리야키 치킨윙, 홈메이드 귀리빵 냄새를 맡았다. 그러면 내가 대단한 통제력을 갖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저 많은 음식들 속에서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강렬한 식욕을 참을 수 있다니. 나는 강하고 남들과 다른 사람이었다.
좋은 날에는 또 내가 우월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길에서 사람들을 보면서 식료품 봉지를 든 사람들, 카페에서 먹고 있는 연인들-내가 그들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들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그들은 식욕에 굴복했지만 나는 그것을 초월했고, 그들은충동에 굴복했지만 나는 그것을 정복했다. 나 자신이 사실상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느끼던 시기에, 굶기는 내가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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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스러운 일이야! 친구는 내가 혼자 일하는 작고 단정한 작업실을 들여다보았다. 나 한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설 여지도없는 방이지만, 그곳에는 내가 일하는 동안 내 소매를 잡아당길 사람이 없고, 방해할 사람도, 모임이나 회의에 가자고 끌어낼 사람도없다. 얼마나 편할까! 친구는 결혼했고,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고,
어린 두 아이의 엄마다. 마지막으로 혼자 밥을 보낸 게 언제였는지기억도 안 난다고 했다. 나로 말하면, 혼자 밤을 보낼 수 없었던 게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친구는 중얼거렸다. "늘 혼자 있다니 얼마나 즐거울까."
글쎄,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내가 누리는 이런 수준의고독이 즐거운 것은 사실이다. 사치와 안도감이 있다는 것도 엄청난 자유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친구가 잠시 벗어난시간과 혼자 있는 시간을 쉴 시간과 빈 시간을, 고독과 고립을 헷갈리고 있다는 것도 안다. 마치 내가 일하지 않는 동안은 만면에미소를 띠고 집 안을 어슬렁거리며, 빵을 굽고, 끝도 없이 거품 목욕을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친구는 이 시간에서 끝없는 평온과 고요만을 보았다. 나로 말하면, 이 시간에서 그보다 좀 더 걱정스러운 것, 그보다 분명 더 어려운 것을 본다. 내가 이렇게 많은 시간을혼자 보내는 것은 그 시간을 늘 혹은 틀림없이 즐기기 때문이 아니다. 내게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 같기 때문이다.
- P17

고립은 고독과는 무관하다. 물론 고독한 시간을 쉽게 얻을 수 있는것은 확실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사회적 의무로 꽉꽉 채워진주중에 참석한 파티에서, 방 안 가득한 스물다섯 명의 사람들 속에서도 고립될 수 있다. 고립되었다고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도망치고 싶은 기분 거리를 두고 싶은 기분, 내가 겉모습 너머에서는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혹은 문제투성이인지 아무도 모르게 하기 위해서 장벽을 세우고 그 뒤에 숨고 싶은 강박과 관계된 느낌이다.
‘날 여기서 꺼내줘.‘ 그런 기분이다. ‘나는 불편해. 혼자 있고 싶어‘
고립은 또한 음흉하다. 우울증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것은 잡초처럼 슬금슬금 자라나서 당신을 붙들고는 다시는 놓아주지 않는 어떤 마음 상태다. 당신은 한동안 혼자 지내며, 그저 고독할 뿐인데… 그러다 어느새 고립된다. 당신은 만족하고 있는데……그러다 어느새 외롭다. 당신은 스스로 잘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데...… 그러다 어느새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상태에 갇힌다. 고독과고립의 경계선은 무척 가늘고 모호하며,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다.
- P18

지금 마흔여섯인 그레이스는 여전히 금요일 밤에 혼자 닭요리로 저녁을 먹고 TV를 보면서 보내는 날이 많다. 하지만 걱정은누그러졌다. 그를 은둔으로 몰아넣었던 두려움,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무방비 상태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누그러들었기때문이다. 그레이스는 예전보다 더 바람직하고 더 풍요로운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데다가 생계가 되어주는 일을 갖고 있다. 좋은 심리치료사 덕분에 자신을 훨씬 더 잘 인식하게 되었고, 자신에게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것을 자신이 즐긴다는 사실도 더 또렷하게 느끼게 되었으며, 그 시간에서공허함이 아니라 뿌듯함을 느끼는 능력도 더 기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고독과 고립의 차이다. 고독은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고립은 무섭다. 고독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찍는 것이지만, 고립은 우리가 하릴없이 빠져 있는 것이다.
- P19

내가 고립되고자 하는 충동에 본격적으로 굴복하기 시작한 것은 약 2년 전술을 끊은 뒤였다. 이전까지 내가 너무 오랫동안 술로 무디게 누그러뜨려왔던 감정들이 두려움, 오래된 상처와 실망, 너무 오래되거나 갓 생겨난 터라 그 근원을 확인하기도 어려웠던 슬픔-그때 온 기세로 돌아와 들이닥쳤다. 그러니 내가 고분고분 웅크리기 시작한 것은, 고립의 목소리가 너무나 유혹적으로 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종종그 충동에 탐닉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 일인지, 아니면 자기 파괴적인 일인지 헷갈린다. 한동안 숨어 있어도 괜찮은 걸까? 이 안전한공간에 매일 밤 안락하게 웅크리고 있어도 괜찮을까? 아니면 더활기차게 사교 생활에 몸을 던져야 하나? 성장이 저지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종류의 성장은 저지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혼자 있는다는 것, 그 모든 다양한 형태는-혼자 살거나, 싱글이거나, 배우자나 가족이나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을 갖거나-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다. 고독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돌볼의욕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교적인 생활을 가꾸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다.  - P24

내가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야, 수줍음의 동굴을 나가서 이웃과 어울리려고 애써볼 기회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잡담을 나눠야 한다는 사실과 내가 탐내는 유대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놓고 저울질해보았다. 내가 평생 불안에 지배당한 채살아왔다는 사실, 두려움을 안고 사는 것이 삶을 제약한다는 사실,
변화란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저야 정말 좋죠. 초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함께 날짜와 시간을 정한 뒤, 나는 프랭크에게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고 문을 닫았다. 내가 용감하고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된기분이었다. 내가 훌륭한 일을 해냈다는 것, 두려움과 고독 대신위험과 친목에 표를 던졌다는 것을 나도 알았다. 그리고 약속한 날이 오자(잊지 말길 바란다. 변화는 어렵다! 생물학이 운명이다!), 나는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심한 독감에 걸려서 몸져누웠다.
나는 정말 아팠다. 혹은 아픈 척했을지도 모른다.(요즘 독감이 도나 봐요, 저도 갑자기 걸렸지 뭐예요!) 아무튼 그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아주아주 좋았다. - P39

나는 친구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물론 단점은 있어. 하지만나 혼자 사는 게 정말로 좋아." 장점도 몇 가지 꼽아 보였다. 내 시간을 내 맘대로 보내고, 생활 규칙을 알아서 정하고, 내 취향을 맘껏 탐닉할 자유.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하고도 소통하거나 협상하거나 타협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나의 물리적, 정신적 공간을 스스로 구축하는 설계자라는 사실이 안겨주는 주기적인 작은성취감, 나는 말했다. "이건 선택의 문제, 스타일의 문제야. 그리고나는 이 스타일이 편해."
친구는 진지하게 끄덕이면서 들었다. 하지만 내 말을 전혀 믿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P43

내 경우 그 이유는 내면적인 것, 기질적인 것, 섹슈얼리티처럼대단히 개인적인 것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처럼 나도 어릴 때는 언젠가 내가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다. 가족을 이룰 것이라고, 아이가 갖고 싶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부 여자들(또한 남자들처럼, 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또 흘러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안에서 그럴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들지않는 듯했다. 인생의 많은 결정들이 이런 식이다. 우리가 고를 선택지가 처음부터 빤히 보이고, 해답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소극적으로 나타난다. 나는 문득 내가 성인이 된 뒤 대부분의 기간을 지난 18년 중 15년을ㅡ혼자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고좀 놀란다. 그 기간 동안-부엌에서 예의 명랑하고 작은 깨달음을 얻었던 날까지 대체로 나는 혼자라는 상태를 일시적인 상태로 여겼던 것 같다. 스타일의 문제라기보다는 상황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사실 나는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살아왔던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선택한 고독의 수준이 어떤 면에서든 내게 좋았기 때문에, 나와 내가 잘 맞았기 때문에 그래 왔을 것이다. - P46

그날 밤 부엌에서 켈로그 만찬을 준비하며 내 집의 단정함과조용함을 즐길 때, 그 시간이 고마운 선물이자 일종의 승리로 느껴졌다. 예전에 내가 애쓰며 괴로워했던 일들이 과거로 좀 더 멀리 물러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원래 숫기 없는 성격이다. 타인과의 소통을 늘 부담스럽게 느껴왔고, 앞으로도 아마 어느 정도는 계속 그럴 것이다. 따라서 나는 혼자 있는 걸 늘 대단히 편하게여겼지만, 그러면서도 그 상태를 만끽할 줄은 잘 몰랐다. 혼자 방에앉아 있으면서도 초조해지지 않는 것, 연애의 틀 밖에서도 안락과 - P49

위로와 인정을 얻을 수 있다고 느끼는 것, 내가 가진 자원만으로도-나라는 사람, 내가 하는 선택만으로도-고독의 어두운 복도를 끝까지 걸어서 밝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 이런 것은 잘하지 못했다.
나는 시리얼 그릇을 들고 거실로 가서 TV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정말로 명랑하게. 이게 내 집이야. - P50

이렇게 생각하는 내 마음이 상당히 슬프긴 해도, 이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친구관계에 작별을 고할 때를 아는 것은 계속이어갈 때를 아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나는 호프를 한때잘 작동했던 관계, 저만의 장소와 시간 안에서는 아주 아름답게 작동했던 관계라는 작지만 소중한 범주로 분류하게 될 것 같다. 한줌의 옛 직장 동료들도 이 범주에 속한다.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어깨를 겯고 싸웠던 사람들, 내가 존경하고 동경했던 사람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전쟁터를 떠나고 나서는 관계가 끊어진 사람들. 재활원에서 만났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과 내가 공유했던 경험은 너무나 독특하고 특정 맥락에 좌우되는 것이었기에, 그 유대감은 우리가 병원에서 걸어 나오기가 무섭게 거의 즉시 사라졌다.
어쩌면 호프와 나는 서로에게 놀랍게도 앞으로 오랫동안 연락하고지낼지도 모른다. 우리의 우정이 또 다른 종류의 작지만 소중한 범주, 즉 일상적 접촉이나 지리적 근접성이 없어도 살아남는 관계라는 범주로 바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 가능성이 현실이 될 만큼 우리가 오래 알고 지내진 않았고, 공통의 역사를 충분히 쌓지도 못했다. 그러니 처음에는 상황적 친구였고 그다음에는마음의 친구였던 내 친구 호프는 이제 과거의 친구가 될 것이다.
훗날에도 내가 순수한 애정으로 똑똑히 기억할 친구가.
- P71

여자들은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데 능하다. 우리는 파트너가 바라는 모습으로 자신을 바꾸는 데 익숙하고, 본능적으로 자신의 욕구와 욕망보다 상대의 욕구와 욕망을 더 중요시하고, 관계에서 발생한 어떤 실패에 대해서도 쉽게 자신을 탓한다. 그러니 꿈이좌절되는 것은 거의 필연적인 결과다. 우리 자신의 바람이라는 패는 연애 관계의 패섞기에서 십중팔구 사라져버린다. 나는 엘리자에게 이렇게 말해본다. "너는 사랑받는다고 느낄 자격이 있어. 네가충분히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 특별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네 마음속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해. 더 많이 원해도 괜찮아." 엘리자는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본다. 그 표정으로 보아,  - P76

그러면 꿈에 굶주린 평범한 20세기 여성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느 정도가 충분할까? 사랑받고 싶은 내 바람이 과하고 비현실적인지, 아니면 정상적이고 건전한지 어떻게 구별할까?
이것은 어려운 질문이고, 어려운 질문이 늘 그렇듯이 그 해답은 애매하고 개인적인 수준으로만 존재하는 편이다. 나는 엘리자같은 여성을 보면(그리고 나는 그와 비슷한 궁지에 처한 여성을 아주많이 안다) 자존감의 언어를 떠올리곤 한다. 그는 자신이 갈망하는수준의 만족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느끼지 않는 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진심으로 믿지 않는 한 그 갈망을 채울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그저 사랑받기만을-한없이 한없이 사랑받기만을 원한다는 건 사실 내적으로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혼자서도 충분히 귀한 존재라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 느낌을 바깥의 다른 사람으로부터 - 아마 지나치게 많은 양을 얻어야 하는 상태라는 것을 뜻할 때가 많다.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자기애는 타인으로부터 받는 사랑이든 사랑 그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도 잘 안다. 나는 혼자서 진심으로 편안하다고 느낄 때면 자신감이 있고, 자신을 돌볼 능력이 있고, 자신이 귀하다고 느낄 때는-마이클의 애정을 덜 필요로하고, 내면의 쓰라린 허기를 덜 예민하게 느끼는 편이다.  - P80

락에서, 내가 더 애정에 굶주리고 불안정한 상태일 때는 그 갈망이격화된다. 사랑받는 느낌이란ㅡ진정으로 사랑받는 느낌이란-일종의 균형이 필요한 일이다. 그 느낌은 상대와 내게서 절반씩 생겨나야 한다. 사랑은 솟구쳤다가 가라앉았다가 하는 역동적인 감정이다. 가끔씩 밀려드는 의문과 실망과 애매함의 파도는 사랑의 자연스러운 물결에 반드시 있기 마련인 그 일부다.
이런 깨달음이 마냥 좋은 건 아니다. 나도 이런 현실이 싫고,
그래서 자주 맞서려고 한다. 아직도 나는 동화적인 환상, 어린 시절부터 뇌리에 새겨온 신념, 즉 언젠가 완벽한 사람이 나타나서 나를 사로잡아 모든 것이 분명하고 밝고 모호함 따위는 없는 미래로데려갈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기가 끔찍이 어렵다. 하지만 나도 인간일 뿐인 것을 어쩌겠는가. 나는 사랑받고 싶다. 한없이 한없이한없이. - P81

자기 아이가 없고 아이들과 많이 어울리지도 않는 나 같은 사람이 너처럼 작은 존재에게 이토록 다양하고 강한 감정들을 느낀다는 것, 이상한 일이지. 예전에 나는 아이들이 좀 겁났어. 아이들은 보통 정신이 덜 형성된 존재들이고 그런 그들이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는 건 시간문제라고 여겼어. 하지만 네 곁에 있을 때는 그런 두려움을 덜 느껴. 꼭 그렇진 않더라도, 두려움이 물러나고 그보다 더 강한 다른 감정들이 떠올라. 몇 주 전에 내가 작은 선물을 갖고 찾아갔단다. 까맣고 노란 줄무늬에 날개가 달린 꿀벌 가방이었어. 너는 그걸 메고 아장아장 돌아다녔지. 그런 순간에 너는어찌나 귀여운지, 나는 너를 덥석 안아 들고 네가 숨 막힐 때까지껴안고 싶은 충동을 힘껏 눌러야 해.  - P93

네 작은 존재에, 완벽한 아기 피부에, 두 살 짜리의 걸음마에 흘려서 넋이 나가는 것 같단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타인의 애정이란 내가 얻어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어. 사랑받으려면 시험을 통과하고, 지적 후프를 뛰어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여겼어. 그러니 그저 존재하기만해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깊이 사랑받을 수 있다는사실을 너를 통해 알게 된 것이 내게는 놀라운 일이야. 이것이 네가 내게 준 선물이란다. 네 존재만큼이나 소중한 선물이란다. - P94

내가 그런 언쟁에 대해서 놀라는 점은, 가벼운 짜증이나 약간의 의견 차이를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파국적 결과가 올 수 있다는듯이 그런 것이 위협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어쩌면 여자들의관계에는 어머니의 사랑을 연상시키는 무언가가 작동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여자친구들 사이의 친밀감과 따스함과 애정은 최초의 중요한 유대감이었던 어머니와의 유대감에 필적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능가할 수도 있는 듯싶다. 우정에는 우리가 어머니와 나눴던친밀감보다 더 평등하고 어쩌면 더 풍성할지도 모르는 친밀감을안겨줄 가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 멋진 친구가 나타난 순간 우리 내면에서는(가장 진정한 의미에서의) 슈퍼맘이라고 적힌 스위치가 탁 켜지고, 우리가 한때 가졌다가 잃었거나 처음부터 갖지못했던 감정들에 대한 갈망이 불붙는다. 그것은 완전한 신뢰와 솔직함, 흔들리지 않는 충실함과 애정, 감정적 동조라는 환상이다. 이처럼 기대가 한껏 부푼 상황에서는 흔해빠진실패가(가령 귀고리를잃어버린 일이 들어설 여지조차 없다.
- P100

친밀감은 무섭고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결국 편안함과 깊이를 만들어내는 것은친밀감이다. 내가 존중받고 이해받는다는 느낌, 세상이 좀 더 편하게 느껴진다는 기분을 얻게 해주는 길도 친밀감이다.
그러니 내 마흔 살 생일의 가장 큰 선물은 그레이스와 개들과함께 조용히 산책했던 일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애써 얻은 신뢰가이 관계의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우리의 단단한 유대감을 느끼는 것도 선물이었다. 다 큰 여자 둘이서 세상을 함께 걸어나갈 때 드는 놀랍도록 따뜻하고 자유로운 기분, 그것이 선물이었다. - P103

도시 삶의 현실, 내가 의문을 제기해본 적조차 드문 이 현실이나는 대체로 마음에 든다. 이 현실이 우리의 도시 생활이 쇠락해가는 몇몇 이유를 알려주는 건 사실이다. 사람들은 갈수록 서로 소외되고, 낯선 사람을 대할 때 경계하게 되고, 뉴잉글랜드 토박이들특유의 약간 쌀쌀한 태도도 문제다. 그래도 대체로 나는 이웃들과의 거리에 대해서 특이할 것 없고 설명하기 쉬운 이유를 갖고 있었는데, 그 이유란 집이 내게는 은둔처라는 것이다. 집은 내가 고독과 프라이버시를 맘껏 누릴 수 있는 장소다.  - P111

타인과의 접촉이 이처럼 단순하고 편안한 경우는 드물다. 우리 삶의 다른 영역들에서는 일터, 사교 모임, 가정에서 만남이날카로운 판단, 불안의 기색, 퍼뜩 떠오르는 자의식으로 점철될 수있다. 나는 인생에서 유례없이 공식 활동이 많았던 지난 두 달 동안 특히 그랬다. 3월 중순에 내가 평생중독과 씨름해온 역사를 기록한 책이 출간되었고, 이후 나는 폭풍에 휘말리듯이 공식적인 자리에 쫓아다녔다. 최근에 세어본 바로 그동안 인터뷰를 54회 했고,
TV에 마지못해 십여 차례 출연했고, 보스턴에서 샌디에이고까지온갖 신문에 얼굴이 실렸다. 그 모든 일로 나는 남들의 시선을 예민하게 의식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참석하는 개 주인 모임은 그래서 더 중요해졌다. 이 모임은 집이 내게 늘 그랬던 것처럼 내가 쉴안식처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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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월 구일

  유월 들어서 오늘 첫 휴일을 쉰다. 밀린 잠을 자고 며칠 동안 엉망으로 겨우 꾸린 북플도 정리하려던 계획은 그동안 쓰지 않던 근육들이 동원되었던 탓에 삭신은 여기저기 쑤시고 무기력해져서 미뤄뒀던 일들은 다시 밀리게 되었다. 소파와 한 몸이 되어서 지난주에 보지 못한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면서 펑펑 울었다. 눈이 퉁퉁 부었지만 어쩐지 머리가 가벼워진다. 박준 시인의 산문집‘운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처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지만 뭔가 비워지는 것 같기는 하다. 노희경의 대사들은 도무지 모른 척할 수가 없게 만든다. 우리들의 일상이고 내 주변의 일상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결국 대본집을 구입하고 말았다. 7월15일 발간 예정이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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