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치가 산골에서 처음 이 항구에 왔을 때, 이곳이 그에게는 경이로운 신천지였다. 항구 가득히 정박한 작은 배들과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장식한 어마어마하게 큰 윤선이 뱃고동을 울리며 입항하는 광경이며 상점마다 물건이 가득가득 쌓여 있었고 잡화상의 밤은 화려했으며 홍등가(紅燈街)의 불빛은 그 얼마나 매혹적이었던가.
그러나 몽치는 이내 그런 황홀감과 작별을 했다. 소금에 전 누더기를 입고 파도에 휩쓸리며, 파도가 오면 뒤로 나자빠지고 파도가 가면 앞으로 고꾸라지며 고기떼를 쫓아가는 배, 끝없이 넓은 바다 위에 나뭇잎 같은 배, 어로 작업은 그야말로 혈투였으며 흥분의 도가니였다. 몽치는 생사를 건 것 같은 생생한 그 삶의 현장을 사랑했다. 수만 맹수들의 포효 같은 파도와 맞서는 것이 통쾌했다. 걸걸한 바다사내들의 목청이며 핏발선 눈동자, 힘줄 솟은 적동색 팔뚝이며 짧게 해치우는 대화, 욕설로 정을 주고 속담으로 비아냥거리는 사내들, 누더기의 모습으로, 막걸리 한잔 국밥 한그릇 입가심하고 항구의 거리를 누비는 몽치였지만 그는 자꾸만 가슴이 커지는것을 느꼈다. 두려울 것이 없었다. 두려움은 산중, 바람소리밖에 없었던 아비 시체 곁에서 이미 다 겪어버렸다. - P286

산짐승의 울부짖음과 산 속에 있는 모든 생령(生)들의 그 가만가만 부르며 화답하는 숲속을 치닫고 벼랑을 타며 바람이 키웠고 햇빛이 보살핀 아이, 지감은 지식을 베풀었으며 해도사는 세상의 이치를 깨우쳐주었다. 휘는 우의를, 영선은 누이 같은 사랑을주었다. 그렇게 예비된 육신과 영혼이 파도에 부딪치고 바다에 내던져지고, 나약하며 사악하고 선량하면서 노회하고, 어리석음과 지혜로움, 열정과 냉담, 온갖 특성의 인간들 속에서 몽치는 폭을넓히며 대응해 가고 있는 것이다.
밤거리를 배회하다가 간신히 소주 한 병을 구한 몽치는 서문고개 언덕, 휘의 집으로 갔다. 빈집같이 집안이 조용했다. 안방은 깜깜했고 작은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 P287

눈을 부릅뜨고 죽은 조준구의 형상은 끔찍했다.
몽치는 부릅뜬 조준구의 눈을 쓸어서 감겨주었다.
끔찍했을 뿐만 아니라 삶의 기능, 존재했던 육체의 마지막 한오리 한방울까지 훑어내고 짜내버린 종말의 모습은 너무나 처참했고 머리끝이 치솟는 것 같은 공포감을 안겨주었지만 한편으로는 깊은연민을 느끼게 했다. 생명에 대한, 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연민이었다. 호박덩이 같았던 두상은 쪼그라져서 조그맣게 돼 있었다. 몸도 줄어들어서 아주 작아져 있었다. 손가락은 모두 펴진 채, 그 다섯손가락은 갈고리처럼 굽어져 있었다. 3년을 넘게 병상에 있었는데 어쩌면 조준구의 마지막 일 년은 살아 있었다기보다 죽음을 살았는지 모른다. 죽은 후의 과정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진행되었으니 말이다. 시신을 씻을 때 욕창으로 탈저(脫疽)된 부분이 문적문적 떨어져나왔고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수의를 입히고 갈고리 같이 된 손가락을 펴고 두 팔을 가지런히 한 뒤 염포(殮布)로 묶고,
그러는 동안 몽치는 땀을 많이 흘렸다. 거들어주는 휘도 땀을 흘렸다. 염습을 끝내고 나왔을 때 별안간
"아이고 아이고오!"
머리를 푼 병수댁네가 들린 사람같이 곡성을 올렸다. 그 소리는 심야의 정적을 찢고 사람을 놀라게 했다. 곡성은 마치 한줄기 빛이되어 시공을 뚫고 저 머나먼 저승의 나라, 명부(冥府)의 캄캄한 삼도천까지 울리어 가고 있는 듯 이상하고도 이상한 귀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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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양현이, 가족들 사랑을 한몸에 받는 양현이, 의전학생인 양현이, 시샘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기생의 딸인 양현이, 집안과는 아무 상관도 핏줄도 없는 양현이, 그런 그가 장중의 구슬 같은 존재라는 것은 분노를 살 만한 일이 아닌가. 집안의 큰며느리로, 그 역시 귀하게 당당하게 자란 처지고 보면, 덕회의 입장에서보면 절대적으로 약자인 양현이 주인처럼 행세한다,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더 이상 얘기를 듣지 않아도 일목요연하게 명희는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양현의 고통을 가족들이 알아서는 안된다는 것, 자기 한 사람으로 인하여 가정의 불화가 초래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 그것 때문이겠는데 양현의 고통은 참는 것에 있는것이 아니며, 덕회의 악의를 견디어내기 힘들어서도 아니며 서희나 환국이를 기만해야 하는 자신의 태도에 있는 것 같았다. 명희는생각만 해도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울음을 멈춘 양현은 다소 진정이 되었는지 구겨넣어 두었던 것을 꺼내고 보니 후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는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 P175

올해 한해만 죽기로 결심하고 공부를 한다면 내년 봄에는 졸업이다. 그리고 어느 길을 택하든 간에 양현은 자연스럽게 최씨네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결코 양현은 자유로운 천지를 꿈꾼적이 없었지만 하여간에 독립을 해야 한다는 문제는 양현에게 초미의 현실이었다.
‘일년만 참으면 돼. 일년만 꾸욱 참자.‘
양현은 형무소에 있는 아버지가 그리웠다. 만나지 못한 기간을따진다면 어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러나 만나려고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사람과 아무리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의 경우는 다르다. 해서 더욱 그리웠는지 모른다. 그 그리움 때문에 자기만을 따돌린 덕희의 처사가 그토록 깊이 상처가 되었는지 모른다. 여하튼 덕희는 자기 자신의 생각에도 지나쳤다 싶었는지 요즘 많이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다. 게다가 양현이 명희집에서 잔다는 전갈을 받았을 때 사실 덕회는 전전긍긍했다. 명희가 진상을 알게 되고 어른들이나 남편의 귀에라도 들어가는 날에는 여간한 낭패가 아니기 때문이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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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일본의 동물적 탐욕은 그 얼마나 많은 조선 백성들의운명을 바꾸어왔는가, 두메산골, 골짝골짝마다 핏줄같이 시내 흐르는 곳에서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유민이 되어 떠도는 이 그 얼마인가. 만주로 가고 중국으로 가고 연해주로 가고 하와이 일본으로, 피값도 안되는 노동력을 팔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건만 도시에는 여전히 거지들이 떼지어 다니고 지게 하나에 목숨을 건 사대육부 멀쩡한 사내들이 정거장마다 부둣가마다 허기진 눈빛으로짐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 바로 이들에 소속되었던 사람들이 방안에 앉은 사내들 부모들이었다. 정면 돌파를 했든 측면 지원을 했든지 간에 그들의 유대는 동지로서 깊고 강한 것이었다. 그들의 열정 - P64

은 투명하고 깨끗했다. 고관대작을 지냈던 자, 지주들, 친일파, 그들 자손들이 동경 유학길을 떠날 때 산간 벽촌에서 그들은 외롭게싸웠으며 일본의 치졸한 문화를 묻혀와서 이 강산에 뿌릴 때 왈 신식이라 했던가? 이 무렵 강쇠는 때묻은 바지저고리 입고 광주리엮어서 등에 메고 활동사진관 앞을 지나다가 왜놈한테 봉변을 당하고 있었으며, 이 가난한 독립 투사인 아비는 술병 하나 달랑 들고서 첩첩산중, 눈 쌓인 지리산 골짜기를 지나면서 목이 터져라!
「한오백년」 그것도 두 구절밖에 모르는 가락을 되풀이하여 부르다가, 졸지에 잃은 딸아이 생각을 하다가, 죽은 지 오래된 김환을소리쳐 부르며 욕설을 퍼붓다가, 눈길에 무릎을 묻고 울다가, 그러던 강쇠는 해도사 산막에 당도하자 술병 놓고 절 한번 하고 휘에게 학문을 가르쳐줄 것을 우격다짐으로 부탁했던 것이다. 수천 년 경험의 축적인 내 역사를, 수천 년 풍토에 맞게 걸러내고 또 걸러내어 이룩한 내 문화를 부정하고 능멸하며, 내 땅에서 천 년을 자란거목을 쳐뉘며 서구의 씨앗 하나 얻어다가 심을 때, 어디 내것을보존해야 한다는 논박이라도 나올 것 같으면 - P65

"뭐 까짓것 무당 푸닥거리 같은 짓거리, 개의할 것 없어요." 하며 그들의 사상을 계몽주의라 했었지. 송관수는 그들을 믿지 않았다. 진보적 식자라는 그들도 믿지 않았다. 형평사 운동으로 알게된 그 진보주의자들 역시 이론의 수식가(修飾家)가 태반이었으며학식은 처세요 의복 같은 것, 일본서 한창 유행인 풍조를 옮겨왔다는 것이 대부분의 실정이었다. 결국 그들이 지니고 온 지식의 정체는 내것을 부수고 흔적을 없게 하려는 것, 소위 개조론이며 조선의계몽주의였다. 부지불식(不知識)의 경우도 있었겠으나 동경 유학생과 기독교와 일본의 계몽주의 삼박자는 잘 맞는 셈이었다. 일본은 숨어서 어떤 미소를 머금었을까? 주권과 강토는 이미 그들 - P65

수중에 있는 것, 내용이 문제 아니었을까. 창조의 활력인 사고와관념과 사상, 즉 혼의 산물인 유형 무형의 것들을 부수어내고 공동(空洞)을 만들기만 한다면 일본은 손 안 쓰고 코 푸는 격, 그 텅텅비어버린 곳에다가 괴상한 현인신(現人神)이며 만세일계(萬世一系)를 집어넣고 꾹꾹 눌러 다져놓는다면 조선족은 영원히 사라질것이다. 이모, 최모, 그들 추종자들이 계몽주의 기치를 높이 쳐들고 눈가림의 두루마기 점잖게 입고 우국지사로 거룩할 때 북만주설원에서는 모포 한 장에 의지하고 잠들었을 독립군.
밖에는 밤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흔들리는 등잔불과 부슬부슬 내리는 빗소리는 어쩐지 음산했다. 방문을 열고 나가면 앞산에서 도깨비불이 오고가고 할 것만 같았다. - P66

나룻배의 사공 목소리가 맑은 햇빛을 뚫고 울려왔다. 그리고 배는 하류를 향해 내려갔다. 맞은편은 전라도 땅, 강물에 기슭을 적신 가파로운 산에는 수목이 울창했다. 백로가 환상같이 흰 깃을 펴고 날아간다. 산기슭에 잠긴 물빛은 산그늘 때문인지 푸르고도 녹색이다.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武陵桃源)이구나.‘
하얼빈에서 신경까지, 언덕 하나 없는 광활한 대륙이 눈앞에 떠올랐다. 숨이 막히게 끝이 없었던 광막한 대지, 그것은 어떤 공포감이었다. 홍이는 영광에게 바다는 불안하다고 말했다. 만주의 그 끝없는 벌판을 연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들고나고 하는 배들의 그 뱃고동 소리 때문이었을까. 떠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떠나지않고 있는 것은 더욱 견딜 수 없는 일이다. 보연이 나오면서 홍이는 차츰 전과 같이 침착해졌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으나 사실 그는 떠나는 데 있어서 극복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앞으로 싸워야 하는, 전부를 내던져서 싸워야 하는 신념에 대한 회의였다. 그러나 그 회의는 그를 조선에 주저앉힐 만큼 큰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회의라기보다 홍이 자신의 인간적인 약점이었는지 모른다.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이로구나!"
이번에는 목소리를 내어 말해본다. 그리고 이곳 이땅에서 씨앗이 하나 떨어져 자기 자신이 생겨난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 P84

"배신감을 느꼈다는 자네 심정 이해하네. 그러나 소수를 제외하고 대다수는 집착할 그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그게 조선의 현실이다. 모두가 피해자며 조선이라는 땅 자체가 집착할 그아무것도 없는 감옥인 게야."
"그렇겠지요. 그럴 겁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냉담하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느꼈을까요."
"이서방, 파도가 눈에 뵈지 않는다고 바다가 조용한 건 아닐세. 상어떼가 무리를 지어 날뛰고 피래미 한 마리 숨을 곳이 없다면 조용한 그 자체는 더 무서운 것 아니겠나? 그러나 절망하지 말게. 민중들은 아직 순결하다. 친일파는 말할 것도 없지만 지식인들이 일본인이라 할 때 대다수 민초들은 왜놈 왜년이라 하네. 역사적인 자부심과 피해 의식은 그들 속에 굳게 간직되고 있어. 그들은 일본인을 두려워하면서도 모멸하고 복종하는 체하면서도 결코 섬기지 않아. 그들은 조선의 대지(大地)이며 생명이다. 감옥에서 탈출할 수있고 그럴 계기가 주어진다면 민초들은 다 뛸 것이야. 의병의 의기는 아직 그들에게 등불로 남아 있어."
"형님은 사회주의입니까?"
"아니다." - P93

"지금도 맘에 맺혀 있습니까?"
"아, 아니다. 그런 것 없다. 세월이 가버렸는데 머할라꼬 그런 기이 남아 있겠노."
"세월이 가도 못 잊는 일이 있지요."
"못 잊는 일이야 많제."
한복은 조심스럽게 물 웅덩이를 건너뛰었다.
"하지마는 나는 내 한이 많아서 남 원망할 새도 없었다. 원망을 받아야 할 내가 누구를 원망하겠노."
"이제 그런 생각 하지 마시오. 형님이 무슨 죄졌다고."
"와 나한테 죄가 없겠노. 전생에서 지은 죄가 있었겄제."
"쓸데없는 소리."
한복은 한숨을 내쉬며
"나를 키운 거는 바람이고 빗물이고 마을사람이다."
"......"
"내 어릴 적에 거두어주시든 영만이어무니(두만네)도 생각이 나고, 오늘겉이 창대비가 쏟아지는 빗길을 가는데 이어 한자락을 짤라 매듭을 지어주면서 쓰고 가라 하든 낯선 아지매, 그런 사람도 가끔 생각이 난다."
"잊어버리시오."
세월이 가도 못 잊는 일이 있다 했으면서도 홍이는 한복이 더러 잊으라 한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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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소설 · 역사소설·사상 소설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박경리의 「토지」에 구축된 소설적 공간안에서 가장 찬란한 작품의 하나이다.
토착적이고 전통적인 세계에 대하여 뜨거운 애정을 보내면서도 그것이 근대적인 것 앞에 패배해가는 과정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그 실상을 편견 없이 그려낼 수 있는 박경리의 능력은 역사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구체적인 삶의 일상속에 용해시키고, 삶의 동력을 한이나 숙명과 같은 낭만적 요소로 파악함으로써 영원에의 귀의를끌어들였다. 박경리는 낭만주의니 사실주의니하는 사조적 구분 자체를 넘어선 세계를 창조해낸것이다.
-金仁煥 고려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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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최참판댁에서는 서희가 별당 연못가에 서 있었다. 계획으로는 오늘중에 도솔암으로 가게 돼 있었다. 해서 밤기차를 타고왔으며 진주서는 집에 잠시 들렀다가 서둘러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부사댁에서 시간을 잡아먹고 자동차는 진주로 되돌려 보냈으며, 무의식적인 계획의 변경이었지만 오늘은 도솔암에 가지 않겠다는, 역시 무의식적 마음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역사, 사연이 똬리를 틀듯 둘러싸여 있는 평사리의 최참판댁, 고래등 같은 기와집, 꿈에서도 잊지 못했던 탈환의 최후 목표 - P281

였던 평사리의 집을 거금 오천 원을 주고 조준구로부터 되찾았을때, 그것으로 서희의 꿈은 이루어졌고 잃었던 모든 것을 완벽하게회수했던 것이다. 그때 서희의 감정은 기쁨보다 슬픔이었고 허망했다. 그리고 뭔지 모르지만 두려움 낯설음, 과거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낯설음이었다. 서희는 회수한 평사리의 집에 꽤 오랫동안 접근하지 못했다. 그렇다. 서희는 과거를 두려워한 것이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일들은 모두 음산한 비극뿐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평사리의 집은 의식 속에 방치된 채, 서희는 현실에 쫓겼는지 모른다.
연못가에서 서희는 새삼스럽게 그토록 열망했던 곳을 찾는 순간부터 회피하려 했던 그 모순을 의아하게 되새겨본다. 그리고 처음으로 옛집에 돌아온 사람같이 집안 여기저기를 마음속으로 짚어보고 매만져보는 것이었다. 호열자에 할머니 윤씨가 떠났을 때 홀로남은 서희, 그때 열 살이었던지, 역시 어미를 호열자로 떠나보낸 봉순이는 열한 살, 열두 살이었던지 짚베 옷을 입고 낙엽이 떨어져내려앉는 연못을 바라보며 서 있었던 광경을 마치 한폭의 그림 보듯 서희는 눈을 감고서 골똘히 바라본다. 평사리의 집은 그런 그림이 천폭 만폭, 쌓여 있는 곳이다. - P282

서희는 별당 마루에 가서 걸터앉는다. 근처에서 서성거리고 있는안자를 불러 따끈한 작설차 한잔 마시고 싶다는 말을 한다.
왜 오늘 도솔암에 가는 것을 포기했는가, 서희는 그 일에 대한생각을 쉽게 버릴 수 있었다. 길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생각도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자신만을, 서희는 자기 자신만을 지금 현재생각하고 싶었다. 자신을 위한 시간 속에 있고 싶었다. 박의사, 박효영, 그의 자살은 서희 자신에게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추구다. 물론 그것은 길상과 무관하지는 않다.
안자가 다기를 올려놓은 다반을 들고 왔다.
"가보아라. 혼자 있고 싶다."
"네."
안자가 물러갔다. 자동차 안에서부터 서희는 안자에게 자기 감정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감추려 하지 않았다기보다 전혀 신경을 쓰 - P282

지 않았다는 것이 옳았다. 천천히 작설을 덜어서 넣고 주전자를 기울여 물을 부은 뒤 다완에 옮겨 붓고 두 손으로 다완을 싸안는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를 한동안 느껴보다가 마신다. 황혼에 물들어가고 있는 하늘, 대기에서 차가움을 뿜어내는 일몰의 시기, 작설차는 정답게 서희 심장을 적셔주었다.
분(分) 초(秒)로 나누어보면 흘러가버린 시간이 얼마인가. 천문학적 숫자다. 그 많은 숫자 속에 순수한 자신의 시간이 거의 없었던 것을 서희는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것은 서희에게 매우 충격적인 자각이었다. 가문과 자식과 그리고 남편이라는 존재, 그것과그들을 중심하여 모든 것을 돌게 하였던 자기 자신은, 애정이든 의무이든 자기 자신은 시계바늘 같은 것이나 아니었는지. 중심에서멀리 벗어난 박의사는 자신에게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는 서희를위한 시계바늘이었는지 모른다. 의술(醫術)을 원했다면 박의원 아닌 곳에도 있었다. 박효영의 심중을 알면서 주치의를 변경하지 않았던 이유는? - P283

그때, 서울서 내려올 때, 급성맹장염으로 부산에서 수술을 받았을때 진주서 달려왔던 박효영의 얼굴이 서희 눈앞에 풀쑥 솟아올랐다. 사랑은 박효영뿐만 아니었고 서희 자신 속에도 있었음을 강하게 느낀다. 서로의 사랑이, 한쪽은 개방되고 한쪽은 밀폐된 사랑이 박효영을 불행하게 하였고 자살에 이르게 했다.
서희는 흐느껴 울었다. 소매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았으나 흐르는 눈물은 멎지 않았다. 그가 앉은 별당, 어머니 별당아씨가 거처하던 곳, 비로소 서희는 어머니와 구천이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과연 어머니는 불행한 여인이었던가, 나는 행복한 여인인가 서희는 자문한다. 어쨌거나 별당아씨는 사랑을 성취했다. 불행했지만 사랑을 성취했다. 구천이도, 자신에게는 배다른 숙부였지만 벼랑 끝에서 그토록 치열하게 살다가 간 사람, 서희는 또다시흐느껴 운다. 일생 동안 거의 흘리지 않았던 눈물의 ‘둑이 터진 것처럼.
어느새 사방은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 P283

길상은 손자 재영의 돌잔칫날 생각을 한다. 그날의 고통스러웠던 침묵, 가끔 만나 술잔을 나누며 비교적 격의 없이 지내는 사람들이었는데 입이 붙어버린 듯 말을 할 수 없었던 그날의 고통스러움을 생각한다. 손님들이 다 돌아가고 빈 자리에 홀로 앉아 왜 자신이이곳에 있는가 하며 자신에게 물었고 자신의 삶의 진실한 의미를물었던 일, 관수의 유서 생각도 났다.
‘...... 내가 죽으믄 모두 고생만 하다 갔다 할 기고 특히 영광이 가심에 못이 박힐까. 그러나 나는 안 그리 생각한다. 그라고 후회도없다. 이만하믄 괜찮기 살았다는 생각이고.....‘
그것은 길상이 되풀이하여 생각해보는 구절이었다. 주어진 자기 삶에 밀착하여 혼신으로 끌어안고 치열하게 살다 간 송관수, 길상은 자기 삶이 얼마나 낭비적인 것인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마치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지렛대를 받쳐가면서 그것은 정체(停滯)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생활도 애정도 바로 그 정체 상태였다. 순환이 안 되었다. 약동도 없었다.
한 개인의 삶은 객관적인 것으로 판단되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불행이나 행복이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모호한가. 가령 땀흘리 - P294

고 일을 하다가 시장해진 사람이 우거짓국에 밥 한숟 말아먹는 순간 혀끝에 느껴지는 것은 바로 황홀한 행복감이다. 한편 산해진미를 눈앞에 두고도 입맛이 없는 사람은 혀끝에 느껴지는 황홀감을체험할 수 없다. 결국 객관적 척도는 대부분 하잘것없는 우거짓국과 맛좋은 고기 반찬과의 비교에서 이루어지며 남에게 보여지는것, 보일 수 있는 것이 대부분 객관의 기준이 된다. 사실 보여주고보여지는 것은 엄격히 따져보면 삶의 낭비이며 진실과 별반 관계가 없다. 삶의 진실은 전시되고 정체하는 것이 아니며 가는 것이요움직이는 것이며 그리하여 유형무형의 질량(質量)으로 충족되며 남는 것이다. - P295

길상의 생각은 그러한 변두리로 맴돌고 있었다. 젊은 날, 상전으로서 어린 서희를 지켰고 간도까지 그를 수행해 갔으며 타국, 사고무친한 곳에서 절치부심(切齒腐心), 조준구에 대한 복수와 최씨가문의 잃은 것의 탈환을 맹세하는 서희를 길상은 도왔다. 회령(會寧)에서 돌아오는 길, 학성(鶴城) 부근에서 마차가 굴러 서희가 부상을 당하는 일로 인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으며 뜻을 이루고 서희가 귀국하는 날까지 결정적 역할을 했던 길상이, 그러나 그는 가족과 동행을 포기하고 간도에 남아서 그곳 조직에 합류했다. 그때부터, 포승에 묶이어 왜경에게 끌리어 조선으로 나왔고 옥고를 치렀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길상은 아내와 두 아들의 비호를받으며 견디어왔다. 어찌하여 길상은 사랑하는 가족을 보내면서 그곳에 혼자 남았던 것일까? 만주에 있는 오늘의 홍이처럼 독립운동단체의 뒷바라지를 했으며 직접 운동에는 참가하지 않았던 길상이는 가족과 함께 돌아올 수도 있었다. 대의(大義)를 위하여, 물론 그렇다. 그러면 왜경에게 체포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돌아오지 않았을까?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라를 찾아야 한다는 충정은 흔들릴 수없는 확고한 신념이었지만 그러나 길상의 경우, 대의와 가족을 두고 선택한 길은 결코 아니었다. 자아(自我)와 가족을 두고 선택한길이었다. 실로 어렵게 그는 자기 설 자리를 선택했으며 지킨 것이다. 이씨왕조(李氏王朝)가 간신히 그 잔명(命)을 이어가고 있었을 - P295

무렵, 최참판댁을 찾아온 하동 이부사댁 이동진이, 서회의 부친 최치수에게 작별을 고했을 때 최치수는 물었다.
"자네가 마지막 강을 넘으려 하는 것은 누굴 위해서, 백성인가, 군왕인가?"
"백성이라 하기도 어렵고 군왕이라 하기도 어렵네. 굳이 말하라한다면 이 산천(山川)을 위해서, 그렇게 말할까?"
이동진의 산천과 김길상의 강산, 청백리로 이어졌던 선비 이동진의 산천과 버려진 생명을 우관대사가 거두어 길렀으며 윤씨부인 요청에 따라 최참판댁 하인이 된 김길상의 강산은 다르다. 이동진이 이 산천을 위하여 강을 넘었다면 길상도 이 강산을 위하여 간도에 남았다. 그러나 다 같은 길이었지만 길상의 경우는 일종의 귀소본능(歸巢本能)이라 할 수 있었다. 제 무리에 어우러지기 위한 귀소 본능, 이동진은 돌아오기 위해 떠났지만 길상은 제 무리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남은 것이다. - P296

절에 와서 관음탱화를 그린 것도 입적한 지 오래인 우관대사 뜻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귀소 본능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애정 때문에 길상은 자신과 동류였던 그 무리에대한 그리움이 잊혀졌던 것은 아니었다. 아픔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심신을 저미듯 그렇게 살다간 김환, 우관이며 혜관 관수 석이용이 영팔노인 그 밖의 수많은 사람들, 용정촌 연해주의 그 끌끌한사내들, 그 뜨거운 피를 잊지 못하는 것이며 그들로 인하여 끝없이인내하고 협조하는 가족들마저 낯설어지는 것이었다.
밤은 깊어갔다. 얼마 동안이나 생각에 잠겨 있었던지 자정이 지난 것 같았다. 그러나 서희는 돌아오지 않았다. 길상은 절 마당으로나갔다. 법당에도 불은 꺼져 있었다. 초가 다 타서 저절로 꺼진 것같았다.
"법당에서 잠들었는가?"
하늘에도 달이 교교히 떠 있었다. 바람 소리도 없고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도 없고 네모난 절 마당은 달빛에 바래지기라도 한 듯 하얗게 떠 있는 듯, 처마 그림자가 새까맣게 내려앉아 있었다.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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