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렵, 최참판댁에서는 서희가 별당 연못가에 서 있었다. 계획으로는 오늘중에 도솔암으로 가게 돼 있었다. 해서 밤기차를 타고왔으며 진주서는 집에 잠시 들렀다가 서둘러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부사댁에서 시간을 잡아먹고 자동차는 진주로 되돌려 보냈으며, 무의식적인 계획의 변경이었지만 오늘은 도솔암에 가지 않겠다는, 역시 무의식적 마음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역사, 사연이 똬리를 틀듯 둘러싸여 있는 평사리의 최참판댁, 고래등 같은 기와집, 꿈에서도 잊지 못했던 탈환의 최후 목표 - P281
였던 평사리의 집을 거금 오천 원을 주고 조준구로부터 되찾았을때, 그것으로 서희의 꿈은 이루어졌고 잃었던 모든 것을 완벽하게회수했던 것이다. 그때 서희의 감정은 기쁨보다 슬픔이었고 허망했다. 그리고 뭔지 모르지만 두려움 낯설음, 과거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낯설음이었다. 서희는 회수한 평사리의 집에 꽤 오랫동안 접근하지 못했다. 그렇다. 서희는 과거를 두려워한 것이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일들은 모두 음산한 비극뿐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평사리의 집은 의식 속에 방치된 채, 서희는 현실에 쫓겼는지 모른다. 연못가에서 서희는 새삼스럽게 그토록 열망했던 곳을 찾는 순간부터 회피하려 했던 그 모순을 의아하게 되새겨본다. 그리고 처음으로 옛집에 돌아온 사람같이 집안 여기저기를 마음속으로 짚어보고 매만져보는 것이었다. 호열자에 할머니 윤씨가 떠났을 때 홀로남은 서희, 그때 열 살이었던지, 역시 어미를 호열자로 떠나보낸 봉순이는 열한 살, 열두 살이었던지 짚베 옷을 입고 낙엽이 떨어져내려앉는 연못을 바라보며 서 있었던 광경을 마치 한폭의 그림 보듯 서희는 눈을 감고서 골똘히 바라본다. 평사리의 집은 그런 그림이 천폭 만폭, 쌓여 있는 곳이다. - P282
서희는 별당 마루에 가서 걸터앉는다. 근처에서 서성거리고 있는안자를 불러 따끈한 작설차 한잔 마시고 싶다는 말을 한다. 왜 오늘 도솔암에 가는 것을 포기했는가, 서희는 그 일에 대한생각을 쉽게 버릴 수 있었다. 길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생각도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자신만을, 서희는 자기 자신만을 지금 현재생각하고 싶었다. 자신을 위한 시간 속에 있고 싶었다. 박의사, 박효영, 그의 자살은 서희 자신에게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추구다. 물론 그것은 길상과 무관하지는 않다. 안자가 다기를 올려놓은 다반을 들고 왔다. "가보아라. 혼자 있고 싶다." "네." 안자가 물러갔다. 자동차 안에서부터 서희는 안자에게 자기 감정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감추려 하지 않았다기보다 전혀 신경을 쓰 - P282
지 않았다는 것이 옳았다. 천천히 작설을 덜어서 넣고 주전자를 기울여 물을 부은 뒤 다완에 옮겨 붓고 두 손으로 다완을 싸안는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를 한동안 느껴보다가 마신다. 황혼에 물들어가고 있는 하늘, 대기에서 차가움을 뿜어내는 일몰의 시기, 작설차는 정답게 서희 심장을 적셔주었다. 분(分) 초(秒)로 나누어보면 흘러가버린 시간이 얼마인가. 천문학적 숫자다. 그 많은 숫자 속에 순수한 자신의 시간이 거의 없었던 것을 서희는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것은 서희에게 매우 충격적인 자각이었다. 가문과 자식과 그리고 남편이라는 존재, 그것과그들을 중심하여 모든 것을 돌게 하였던 자기 자신은, 애정이든 의무이든 자기 자신은 시계바늘 같은 것이나 아니었는지. 중심에서멀리 벗어난 박의사는 자신에게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는 서희를위한 시계바늘이었는지 모른다. 의술(醫術)을 원했다면 박의원 아닌 곳에도 있었다. 박효영의 심중을 알면서 주치의를 변경하지 않았던 이유는? - P283
그때, 서울서 내려올 때, 급성맹장염으로 부산에서 수술을 받았을때 진주서 달려왔던 박효영의 얼굴이 서희 눈앞에 풀쑥 솟아올랐다. 사랑은 박효영뿐만 아니었고 서희 자신 속에도 있었음을 강하게 느낀다. 서로의 사랑이, 한쪽은 개방되고 한쪽은 밀폐된 사랑이 박효영을 불행하게 하였고 자살에 이르게 했다. 서희는 흐느껴 울었다. 소매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았으나 흐르는 눈물은 멎지 않았다. 그가 앉은 별당, 어머니 별당아씨가 거처하던 곳, 비로소 서희는 어머니와 구천이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과연 어머니는 불행한 여인이었던가, 나는 행복한 여인인가 서희는 자문한다. 어쨌거나 별당아씨는 사랑을 성취했다. 불행했지만 사랑을 성취했다. 구천이도, 자신에게는 배다른 숙부였지만 벼랑 끝에서 그토록 치열하게 살다가 간 사람, 서희는 또다시흐느껴 운다. 일생 동안 거의 흘리지 않았던 눈물의 ‘둑이 터진 것처럼. 어느새 사방은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 P283
길상은 손자 재영의 돌잔칫날 생각을 한다. 그날의 고통스러웠던 침묵, 가끔 만나 술잔을 나누며 비교적 격의 없이 지내는 사람들이었는데 입이 붙어버린 듯 말을 할 수 없었던 그날의 고통스러움을 생각한다. 손님들이 다 돌아가고 빈 자리에 홀로 앉아 왜 자신이이곳에 있는가 하며 자신에게 물었고 자신의 삶의 진실한 의미를물었던 일, 관수의 유서 생각도 났다. ‘...... 내가 죽으믄 모두 고생만 하다 갔다 할 기고 특히 영광이 가심에 못이 박힐까. 그러나 나는 안 그리 생각한다. 그라고 후회도없다. 이만하믄 괜찮기 살았다는 생각이고.....‘ 그것은 길상이 되풀이하여 생각해보는 구절이었다. 주어진 자기 삶에 밀착하여 혼신으로 끌어안고 치열하게 살다 간 송관수, 길상은 자기 삶이 얼마나 낭비적인 것인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마치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지렛대를 받쳐가면서 그것은 정체(停滯)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생활도 애정도 바로 그 정체 상태였다. 순환이 안 되었다. 약동도 없었다. 한 개인의 삶은 객관적인 것으로 판단되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불행이나 행복이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모호한가. 가령 땀흘리 - P294
고 일을 하다가 시장해진 사람이 우거짓국에 밥 한숟 말아먹는 순간 혀끝에 느껴지는 것은 바로 황홀한 행복감이다. 한편 산해진미를 눈앞에 두고도 입맛이 없는 사람은 혀끝에 느껴지는 황홀감을체험할 수 없다. 결국 객관적 척도는 대부분 하잘것없는 우거짓국과 맛좋은 고기 반찬과의 비교에서 이루어지며 남에게 보여지는것, 보일 수 있는 것이 대부분 객관의 기준이 된다. 사실 보여주고보여지는 것은 엄격히 따져보면 삶의 낭비이며 진실과 별반 관계가 없다. 삶의 진실은 전시되고 정체하는 것이 아니며 가는 것이요움직이는 것이며 그리하여 유형무형의 질량(質量)으로 충족되며 남는 것이다. - P295
길상의 생각은 그러한 변두리로 맴돌고 있었다. 젊은 날, 상전으로서 어린 서희를 지켰고 간도까지 그를 수행해 갔으며 타국, 사고무친한 곳에서 절치부심(切齒腐心), 조준구에 대한 복수와 최씨가문의 잃은 것의 탈환을 맹세하는 서희를 길상은 도왔다. 회령(會寧)에서 돌아오는 길, 학성(鶴城) 부근에서 마차가 굴러 서희가 부상을 당하는 일로 인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으며 뜻을 이루고 서희가 귀국하는 날까지 결정적 역할을 했던 길상이, 그러나 그는 가족과 동행을 포기하고 간도에 남아서 그곳 조직에 합류했다. 그때부터, 포승에 묶이어 왜경에게 끌리어 조선으로 나왔고 옥고를 치렀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길상은 아내와 두 아들의 비호를받으며 견디어왔다. 어찌하여 길상은 사랑하는 가족을 보내면서 그곳에 혼자 남았던 것일까? 만주에 있는 오늘의 홍이처럼 독립운동단체의 뒷바라지를 했으며 직접 운동에는 참가하지 않았던 길상이는 가족과 함께 돌아올 수도 있었다. 대의(大義)를 위하여, 물론 그렇다. 그러면 왜경에게 체포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돌아오지 않았을까?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라를 찾아야 한다는 충정은 흔들릴 수없는 확고한 신념이었지만 그러나 길상의 경우, 대의와 가족을 두고 선택한 길은 결코 아니었다. 자아(自我)와 가족을 두고 선택한길이었다. 실로 어렵게 그는 자기 설 자리를 선택했으며 지킨 것이다. 이씨왕조(李氏王朝)가 간신히 그 잔명(命)을 이어가고 있었을 - P295
무렵, 최참판댁을 찾아온 하동 이부사댁 이동진이, 서회의 부친 최치수에게 작별을 고했을 때 최치수는 물었다. "자네가 마지막 강을 넘으려 하는 것은 누굴 위해서, 백성인가, 군왕인가?" "백성이라 하기도 어렵고 군왕이라 하기도 어렵네. 굳이 말하라한다면 이 산천(山川)을 위해서, 그렇게 말할까?" 이동진의 산천과 김길상의 강산, 청백리로 이어졌던 선비 이동진의 산천과 버려진 생명을 우관대사가 거두어 길렀으며 윤씨부인 요청에 따라 최참판댁 하인이 된 김길상의 강산은 다르다. 이동진이 이 산천을 위하여 강을 넘었다면 길상도 이 강산을 위하여 간도에 남았다. 그러나 다 같은 길이었지만 길상의 경우는 일종의 귀소본능(歸巢本能)이라 할 수 있었다. 제 무리에 어우러지기 위한 귀소 본능, 이동진은 돌아오기 위해 떠났지만 길상은 제 무리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남은 것이다. - P296
절에 와서 관음탱화를 그린 것도 입적한 지 오래인 우관대사 뜻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귀소 본능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애정 때문에 길상은 자신과 동류였던 그 무리에대한 그리움이 잊혀졌던 것은 아니었다. 아픔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심신을 저미듯 그렇게 살다간 김환, 우관이며 혜관 관수 석이용이 영팔노인 그 밖의 수많은 사람들, 용정촌 연해주의 그 끌끌한사내들, 그 뜨거운 피를 잊지 못하는 것이며 그들로 인하여 끝없이인내하고 협조하는 가족들마저 낯설어지는 것이었다. 밤은 깊어갔다. 얼마 동안이나 생각에 잠겨 있었던지 자정이 지난 것 같았다. 그러나 서희는 돌아오지 않았다. 길상은 절 마당으로나갔다. 법당에도 불은 꺼져 있었다. 초가 다 타서 저절로 꺼진 것같았다. "법당에서 잠들었는가?" 하늘에도 달이 교교히 떠 있었다. 바람 소리도 없고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도 없고 네모난 절 마당은 달빛에 바래지기라도 한 듯 하얗게 떠 있는 듯, 처마 그림자가 새까맣게 내려앉아 있었다.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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