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웰은 북쪽에 있는 가난한 광업도시 위건으로 간다. 광부들의 삶을 조사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라는 놀라운 작품이 될 글을 쓰기 위해서다. 3월에 돌아온 그는 사회로부터 한층 더 멀리 떨어진 하트퍼드셔의 윌링턴으로 이사하기로 마음먹는다. 런던에서 북쪽으로 64킬로미터 떨어진 그곳은 인구가 100명 남짓 되는 조그만 마을이다. 오웰의 이모 넬리가 자신이 세 들어 살고 있던 이 마을의시골집을 곧 내줄 것이다. 집세가 싸고 몹시 외딴곳에 있는 집이다.
거실은 전에 식료품 가게였던 공간인데, 오웰은 그 가게를 다시 열어 돈을 벌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동네 사람들은 다들 다른 곳에서 물건을 사지만 말이다. 오웰은 채소와 닭들을 키우며 가난한사람들의 삶의 조건에 관한 책을 써낼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결혼할 계획도. - P107

이 무렵 케이는 오웰과의 섹스를 그만둔다. 케이는 아내가 되는일에는 관심이 없다. 사실 자신과 그 친구들은 "결혼을 경멸하는 쪽에 가까웠다"고, 훗날 케이는 어느 라디오 인터뷰에서 웃으며 말한다. "오웰은 여자들을 제법 좋아했어요. 하지만 그들을 삶에서 중요한 존재로 바라본 적은 사실 한 번도 없었죠. 여자들은 아주 부차적인 존재였어요. 케이는 오웰에게 줄곧 이렇게 말했었다. "자, 들어봐. 혹시 다른 사람이 생기면 주저 없이 말해줘. 난 그런 걸 질질끄는 게 싫거든." 그리고 실제로 오웰은 케이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던 유일한 남자였다. "있지, 내가 결혼하고 싶은 여자를 만났어." 결혼식 날이 상당히 가까워질 때까지 그 말을 미뤄두긴 했지만 말이다.
케이에게는 아일린이 그런 결정을 내림으로써 치러야 할 대가가 선명하게 보였다. "아일린이 그 모든 걸 포기해야 한다는 게 참비극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학위와 커리어 이야기였다. "저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예요." - P111

결혼식이 끝난 뒤 오웰은 교구 장부의 빈칸을 채워 넣는다.
"에릭 아서 블레어, 33세. 미혼." 그는 서명한다. "직업"이라고 쓰인 칸옆에는 "작가"라고 쓴다. 아일린의 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인다. "아일린 모드 오쇼네시, 30세. 미혼." 그리고 "직업"칸 옆에 아일린은 줄 하나를 긋는다.
소규모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술집에서 점심을 먹는다. 나중에 아일린이 리디아에게 말한 바에 따르면, "블레어 부인은 쉬지않고 이야기를 했던 반면,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에이브릴은 종일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떠나기 전, 블레어 부부는 신혼부부에게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은제품 일부를 선물로 준다. 그런 다음 "점심을 먹고 나서 가족들은 차를 타고 돌아갔고, 신혼부부만 남았다. 조지는 글쓰기를 시작할 것이었고, 아일린은 주부로서 해야 할 일들을. 그리고 가게 일을 해야 했다." 리디아는 이렇게 썼다. 오웰은그동안 가게를 열고 싶어 했지만, 아일린이 와서 그 일을 대신할 수있게 될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 P117

오웰에게 결혼 생활의 첫 몇 달은 목가적으로 다가온다. 한 전기 작가는 이렇게 쓴다. "아일린이 얼마나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고 성격이 얼마나 남달랐든 간에, 당시 오웰의 친구들은 한 가지 점에서 폭넓은 의견 일치를 보였다. 아일린이 오웰을 격려해 주었고, 부정적인 생각에서 해방시켜 주었으며,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는 것이었다. "오웰의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오웰이 정말로행복했다는 걸 알 수 있었던 유일한 해가 있다면 그 친구가 아일린이랑 함께 보낸 결혼 첫해였어요. "1970년대 초반에 맨 먼저 오웰의 전기를 집필했던 스탠스키와 에이브럼스도 이에 동의한다. 문명이 닿지 않은 듯한 시골집에서 새신랑으로 사는 동안 오웰은 그때까지 살아온 어느 순간보다도 행복하다. 두 전기 작가는 이렇게쓴다. "오웰의 삶에 대한 어떤 연구를 봐도 1936년의 그 여름은 확실히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오웰은 건강했고, 사기도 하늘을 - P118

찔렀다. 일도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었다. 시골에서 생활하는 즐거움을 누렸고, 그건 그가 오랫동안 바라 온 것이었다. 무엇보다 아일린과 결혼해 함께한다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 즐거움은 질병이나 부재로 흐트러지지 않은 채 한 주, 또한 주 계속되었다. 사실, 여러요소와 환경이 그런 식으로 결합해 오웰에게 행복이라는 이상을 실현해 준 시기는 1936년의 그 여름이 유일했을 것이다.‘
작가에게는 창작할 수 있는 조건이 곧 행복의 조건이다. 지독한가난과 불행 속에서 (혹은 오웰처럼 빈털터리에 기관지염까지 않으며 가축우리 같은 집에서) 글을 쓴다고 해도, 적어도 당신은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건 당신 자신과 망각 사이에 단어들을 쌓아올림으로써 삶에서 창작이라는 행복을 어렵사리 길어 올리는 것이다. 그건 엔트로피와는 구별되는 ‘작용‘이며, 정신적으로 죽은 상태와는 다른 ‘삶‘이다.  - P119

아일린은 여러 해 동안 경제적으로 자립한 여성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무급으로 일하며 "완전히 빈털터리가 된다"는 게무슨 뜻인지 몸소 깨닫기 시작했다. 확실한 건 리디아가 예견한 대로 아일린이 집 안과 정원과 가게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육체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아마도 아일린은 직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기만의 커리어를 꾸릴생각 따위는 포기해야 하리라는 것을. 아일린은 자신이 줄을 그었던 결혼증명서의 빈칸 속에서 살기 시작한 참이다.
사우스올드의 시가에서 노라에게 쓴 첫 편지에, 아일린은 오웰의 의존적인 태도와 교묘한 술수를 재미있다는 듯 묘사한다. 하지만 바로 거기, 그 페이지 위에 진실이 있다. 오웰이 달리 어떻게 그렇게 많은 작품을 완성하겠는가? 그것도 계속 빠른 속도로 말이다.
결혼식 사흘 뒤, 오웰은 <코끼리를 쏘다>라는 에세이를 송고한다.
다음 6개월 동안에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집필하고, 서른두권 - P121

의 책에 대한 열두 편의 서평을 쓴다. 그리고 기사도 두 편 쓰는데,
<서점에서의 기억들>과 길고 상세한 기사 <소설을 옹호하며>가 그것이다. 그가 글을 쓰는 동안 아일린은 (그곳에서 두 달이나 머무르며!)
‘끔찍한‘ 거주자가 된 이모님을, 넘쳐흐르는 물을, 오물 구덩이를가게 일을, 집안일을, 정원 일을, 오웰이 앓는 여러 가지 병을, 닭들을, 염소를, 그리고 손님들을 돌본다. 아일린은 의학 논문을 퇴고하는 데 동생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던 오빠와 함께 (일하는) 휴가를가져보려고 몇 번이나 시도하지만 좌절된다. 그때까지 아일린은 그모든 상황을 이해할 시간이 없었다. 심지어 절친한 친구에게 편지한 통을 쓸 시간도 없었다. - P122

노라에게 전하는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불행의 목록 아래에는점점 분명해지는 아일린의 깨달음이 숨어 있다. 자기의 커리어뿐아니라 자기의 삶 역시 남편의 작업보다 부차적인 것이 되리라는자각이다. 그럼에도 아일린은 리디아에게는 오빠에게 의지하면 된다고 말한다. "지구 반대편에 있다가도 내가 ‘당장 와줘‘라고 전보를치면 오빠는 와줄 거야. "127 아일린은 말한다. "조지는 안 그러겠지.
그에겐 그 어떤 사람보다도 자기 작업이 먼저니까." 리디아는 안심이 되지 않는다.
아일린은 마치 그것들을 하나하나 짚어내면 견딜 수 있게 되기•라도 할 것처럼 신혼 생활의 현실들을 노라에게 전한다. 하지만 우•리가 바란다 해도, 용에 이름을 붙인다고 그것이 길들인 용이 되지는 않는다. 그 용들은 여전히 저 바깥에서, 혹은 위층에서,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 P122

나는 고백하듯 이 글을 쓴다. 마치 이 집을 늘 정돈된 상태로 유지하는 일이 내 몫이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 집은 마치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던 "집 안의 천사"가 내 손에 살해당한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천사는 여전히 여기 어딘가에 숨어서는, 사람들이 오기 전에 쿠션을 바로잡고 아이들이 아무렇게나흩어놓은 부스러기들을 치우는 일을 내 의무로 만들어놓는다. 울프는 하녀들이나 아이 엄마들의 노동과는 관계없는 삶을 살았기에, 그가 죽여야 했던 천사는 내 천사와는 달랐다. 그건 "매력을 발산해야 하고... 달래야 하고…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성공하기 위해거짓말을 해야 하는" 천사였다. ‘집 안의 천사‘라는 이 여성성 모델은 여성이 "인간관계와 도덕성, 그리고 성에 관해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게 막는다. 울프는 이렇게 쓴다. "내가 죽이지 않았다면 그 여자가 나를 죽였을 것이다. 그 여자는 내 글에서심장을 뽑아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천사를 죽일 수는 없다.
우리의 임무는 어떻게든 우리 아이들에게 세상의 광기와 부당함을해석해 주는 것, 그 애들에게 절망을 안겨주지 않는 방식으로 그렇 - P124

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달래고‘,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없을 때는 위로한다. 그런 행위에는 우리와 그 애들모두를 해치는 거짓말이 얼마나 섞여 있는 걸까. 그건 나도 모르겠다. 이 책은 당신이 감당해야 할 하나의 위험이다. 세상의 부당함을보여주는 일이 당신을 괴롭히고 해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어쩌면 이 책은 그 부당함에 맞설 수 있도록 당신을 단단히 무장시켜 줄 지도 모른다. - P1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