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들은 늘 소재를 찾아 떠도는 존재 같지만, 실은그 반대인 경우가 더 잦다. 말하자면 소재가 스스로 늦은밤 작가의 작업실 문을 두드리며 차랑차랑 열쇠 꾸러미 흔들리는 듯한 소리를 내는 일이 더 빈번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작가의 역량과 응대가 시험대에 오른다. 성해나의 두번째 소설집 『혼모노』에 실린 이야기들은 그렇게 찾아온 손님들에 대한 성실하고 치열한 기록이다. 묘한 것은 그 기록들이 소재의 서사학적 구조 자체에천착하기보다는, 그 구조를 떠받치는 사람들의 누추한 상처를 투시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건축, 영화, 메탈, 조형예술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지독하고 뜨겁고 불온하며 그래서 더더욱 허무한‘ 사람들만 남는다. 반짝이는 ‘스테인리스스틸‘ 때문에 더 밝게 빛나는 상처들. 

이기호 소설가 - P362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충무로는 성해나라는 걸출한 배우를 잃었다. 그야말로 의문의 1패.‘
성해나의 작품은 실제로 그 인물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생각해낼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구체적이면서도 명료하다. 실로 우습고 담백하기까지 하다. 뛰어난 연기력이다.
책을 읽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명의 인물과 한곳의 장소를 검색해봤다. 완전히 속아버렸다. 질투 나는 재능이다. 성해나의 앞에서 나는 그저 "존나 흉내만 내는 놈" 에 불과하다. 가끔 대본을 보다 풀리지 않는 인물이 있다면 그에게 전화를 걸어 해독을 요청해볼까 싶기도 하다. 천재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거늘.

박정민 배우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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