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무어라고 부르면 좋을까. 제육체의 일부를 입에 물려갓 태어난 목숨의 허기를 달래주는 사람.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던 생각보다 감정이 앞서던 허수아비와 마음을 갖고 싶어하던양철나무꾼과 자신감이 없어 용기조차 없는 줄 알고 살아간 사자를 합쳐놓은 것 같은 사람. 그릇이면 그릇, 솥이면 솥, 움푹 파여 있어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만 하는 물건만을 관장하는 사람.
이 사람도 누군가의 젖을 물고 오직 응애응애 울며 채워달라고채워달라고 보채던 아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 P64

나 걸어갈 때
발밑에 쌓이던 가시들
아무래도 내가 시계가 되었나 봐요
내 몸에서 뾰족한 초침들이
솟아나나 봐요
그 초침들이
안타깝다
안타깝다
나를 찌르나 봐요
밤이 오면 자욱하게 비 내리는 초침 속을 헤치고 - P65

백살 이백살 걸어가보기도 해요

저 먼 곳에
너무 멀어 환한 그곳에
당신과 내가 살고 있다고
아주 행복하다고

김혜순, 「생일」에서 - P66

침묵은 무엇을 지키는 데에 쓰이기도 하지만 무엇을 행사하는데에도 쓰인다. 침묵은 경청과 묵살이라는 두 극단을 모두 포함한다. 침묵이라는 것은 내가 행할 때는 가장 신중한 방패지만, 타자가 행할 때는 가장 뾰족한 창일 수 있다. 나의 침묵은 방패처럼 나를 보호해주지만, 너의 침묵은 뾰족한 창처럼 나를 찌를 수있다. 나는 말보다는 침묵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우선 말해볼 것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 그러므로 실은 우리를위해서, 매사에 번번이 계속해서. - P70

 친구는 살아오면서잃은 것에 대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나는 잃은 것에 대해 말할 게 없는 사람이다. 친구는 잃었다는 상실감이 충격이 될 만큼 무엇을 가진 적이 있던 사람이고,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손에 쥔 적이 없어서 잃을 것도 없지만 온통 잃어버린 것투성이인 것 같은 사람이다. 어쨌거나 지쳐 있다는 것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아무것도 손에 쥔 게 없는 초라한 두 사람이 함께 스웨덴의 상하이로 간다. 가서 나는 이 시구를 읽어줄 것이다.


지친 것들에게도 도리가 있다. 벼락 맞아 꺾인 도리, 뼈만 남은도리, 풍경을 뼈로 완성한 도리. 같은 노래를 반복해 부르지 않는도리.

허연, 산맥, 시호테알렌」에서 - P91

날이 어둑해지자 뿔뿔이 앉았던 사람들이 자연스레 벽난로앞에 모여 앉는다. 한 사람은 우비를 입고 마당에 나가 모란꽃을툭툭 치고, 한 사람은 술안주를 내오고, 한 사람은 휴대폰을 받느라 들락거리고, 한 사람은 팔짱을 끼고 유리문에 기대어 장대비가 오는 바깥을 바라본다. 모두의 귓속에는 빗소리가 스민다.
예순에서 스물 몇까지, 서로 다른 나이를 살고 있는 우리 대여섯 사람은 계절마다 한 번쯤은 만난다. 서로 말은 궁하지만 마음은 족하다는 이 모임. 크게 불편한 사람도 없고 크게 재미 보는사람도 없는, 헐렁하지만 어딘가 다정한 모임. 아침부터 만났지만, 점심과 저녁 두 끼를 함께 먹었지만, 날이 어둑해지고서야 대화가 대화를 신속하게 잇기 시작한다. 여전히 앉은 자리 간격은꽤 넓은 편이지만, 모종의 한솥밥 냄새가 그때부터 풀풀거리기시작한다. 오늘의 첫 주제는 몽골. - P93

내 세대는 부모에게서 늘 한국전쟁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요즘 젊은이들은 전쟁 체험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전쟁 체험을입에 달고 사는 세대와 전쟁 얘기를 직접적으로 들어본 적 없는세대 사이에 존재하는 내 세대. 그런 까닭에 이상하고도 외롭게,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지나가는 세월의 길목에서 서성이는 내 세대. 1950년대는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과도 같다. 너무 많은 것이 달라져버린 그때와 지금을 이어줄 단어는 외국이라는 말밖에 - P95

싱겁고 느슨한 모임 속에서 느리게 반응하고 성기게 대화하며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나는 꽤 먼 곳으로 꽤 가파른 곳으로 떠밀려 온 것만 같다. 대화의 간격 속에 묻어 나온 세월의간격이 까마득해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현기증이일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두리번거린다. 무언가 한참이나 잘못된 듯싶어 절망스럽기도 하고 절망이 아무렇지 않기도 하다. 이상한 것이 손 안에 쥐어져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바통 비슷한것이 슬프지만 슬픔이 전부는 아닌 괴이한 물질. 이것은 세월의 선의일까? - P96

아, 어쩌면
누군가가 여기에다 부려놓은
고통을 내가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많이 닮았을지도 모른다

조은, 「소용돌이」에서 - P97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세심한 배려와 살가운 표현에 능숙한 성격이 나는 언제나부럽다. 좋은 마음을 전하려 어어, 하는 사이에 기회는 물 건너가고, 좋아하는 누군가를 만나러 나갔다가 아무 표현도 못하고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기가 일쑤다. 하고 싶은 유일한 말을 그래서 시에다 적고는 한다.


하고 싶은 유일한 말은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반짝인다.
전당포 안의
은그릇처럼.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사월과 침묵」 에서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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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시인. 아무도 내게 시를 써보라고 권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를쓰는 사람이 되었다. 시집 읽는 걸 지독하게 좋아하다가, 순도100퍼센트 내 마음에 드는 시는 직접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했다. 그 생각을 했던 도서관은 지금 사라지고 없다. 그곳에 다시 가고 싶을 때마다, 나는 인파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바쁜걸음들 속에서 혼자 정지한 듯한 시간이 좋다. 혼자가 아닌 곳에서 혼자가 되기 위하여, 어디론가 외출하고 어디론가 떠난다.
그곳에서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열망보다 내 마음에 드는 시를 꼭 쓰고 싶다는 소망을 꺼내놓는다. 소망을 자주 만나기 위해서 내겐 심심한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노력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심심하기 위해서라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심심함이 윤기 나는 고독이 되어갈 때 나는 씩씩해진다. 조금 더 심심해지고 조금 더 씩씩해지기 위하여, 오직 그렇게 되기 위하여 살아가고 있다.

시집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눈물이라는 뼈와 산문집 마음사전』을 펴냈다.

사람을 잘 사귀는 이들을 보면 참으로 부럽단 생각이 든다. 잘다가가고, 잘 대해주고, 자주 연락하고 자주 만나고 잘 논다. 유쾌하고 단순하게 깔깔거리는 사람들이 참으로 부럽다. 나는 누군가에게 잘 다가가질 못한다. 잘 대해주지도 못한다. 자주 연락할 줄도 모르고 자주 만날 줄도 모르고 잘 놀 줄도 모른다. 사람은 언제나 어렵다. 사람 앞에서 나는 언제나 서툴다.
그나마 내가 친해질 수 있었던 사람들은 먼저 내게 다가와준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다가왔던 사람들 몇몇은 더 즐거운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고 또 멀어져갔다.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미안한 마음과 마주하는 혼자만의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고마워하는 마음과 마주하는 혼자만의 시간도 많아졌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오래 교차될 때, 나는 그리움이란 직물을 직조해낸다. 혼자만의 방에서, 이직물에 풀을 먹이고 다림 - P7

질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사람과 사귀는 나만의 방식이다. 그 직물을 무릎담요처럼 덮고서 나는 시를 썼다.
사람을 만나러 나가지 않는 대신에, 사람의 삶을 엿보는 일을은밀하게 즐겼고 혼자 상상하며 그 삶을 완성해보곤 했다. 친구들의 시를 엿보며 그 상상력을 은밀하게 훔치곤 했다. 사람을 만나서 나의 결핍을 채우는 대신에, 내 결핍의 영역에 존재할 은밀한 상처들을 해석하는 일을 해왔다. 나혼자 잘 살기 위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반드시, 선물로 내밀 만한 것을 만들기 위한 시간이 필요해서 그랬다. 건네받은 선물은 많은데 건네줄 선물이 궁색했던 나에겐, 이 방법밖에 없었다. - P8

이번 선물은 시옷의 낱말들이다. 사람이, 무엇보다 사람의 사랑이, 사랑의 상처가, 실은 그 선물이, 그리하여 사람의 삶이, 삶의 서글픔이, 그 서글픔이 내는 한 줄 시가 된다. 세상을 바꾸려는 손길이 아니라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려는 시선이 되는 그런 시에다 옷을 입히듯 나의 이야기를 입혀보았다. 나의 이야기가 내가 좋아하는 시 구절과 사이좋게 사귀는 모습을 보고 싶어 - P8

서였다.
나는 떠올리는 것으로써 친구를 사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에게 세 걸음 이상 다가오지 않아준 배려 깊었던 친구들을 떠올리며, 나에게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아준 한결같았던 친구들을 떠올리며 혼자서 설레어한다. 세 걸음 이상 다가가지도 멀어지지도 않는 것으로 누군가에게 우정을 다하는 아직 만나본적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설레어한다.


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밤은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

신대철, 박꽃」에서 - P9

사라짐첫눈이 왔다. 눈이 내리던 밤에 나는 사람들과 술집에 있었다.
창밖으로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을 골똘하게 쳐다보았다. 사람들은 아, 하고 신음과도 같은 짧은 탄성을 뱉었다. ‘아‘ 속에는 얼마나 많은 아련한 추억들이 담겨 있을까. 추억 한 자락이 없다면 도저히 불가능할 가냘픈 그 깊은 탄식이 들릴 때, 이 첫눈을 보고있을 많은 이들의 입술이 떠올랐다. 모두의 입술 속에서 일제히,
조용히 새어나오는 탄식과 그 탄식을 먼발치에서 받아내며 떨어지는 희디흰 눈송이들. 어떤 눈송이들은 지금쯤 우리집 장독대위로 소복소복 떨어져 내릴 테고, 어떤 눈송이들은 지금쯤 바다위로 떨어져 내려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 P17

보이니?
눈 오는 숲은 일요일이다.
영원히 계속될 듯.
하지만 마침내 그칠 것이다.
그때 눈은 숲의 내부로 스며든다.

내 손이 닿지 않는 데까지
낙망하지는 말아다오.
어쨌든 지금은
순수한 현재,

황인숙, 「흰눈 내리는 밤」에서 - P23

이렇게 소중한 것이 함부로 지지 않도록, 잘 지킬 수는 없는것인가 하고. 그녀는 밤새 연꽃에 우산을 씌워준 채 비를 맞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소중한 걸 지킨다는 게 무언지 종내에는 알게 될까. 그래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떤 걸 종내에는지킬 수 있는 능력이 생길까. 그녀는 철들지 않고 살아온 날들에곱표를 한다. 이 시를 읽고 또 읽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 P40

남천은 자기 몫의 온도가 부족할 겨울을 대비하는 것이다. 우선,
잎을 버릴 계획을 세운다. 잎을 다 버려야 아주 적은 에너지만으로도 건조하고 추운 겨울을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잎을 버리기 위해 나무는 잎자루에 떨켜를 만든다. 떨켜는 잎이 광합성해서 만든 탄수화물과 아미노산이 줄기를 통해 이동하는 것을 막는다. 그럴 때 나뭇잎에 축적된 오도가도 못하던 영양분이 색소변화를 일으키고 낙엽을 물들이는 것이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도종환, 「단풍 드는 날」에서 - P44

 그러니까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표현은 틀린 표현이다.
상상력이 정확하다라는 표현이 오히려 더 옳다. 보이는 세계와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 숨겨진 공간들, 그 경계의 영역들, 그이상한 미지의 세계에 대해 느끼는 우리의 모호함을 시인은 상상력의 힘으로 정확하게 호명해낸다.


음악은 (…) 붙들려 있는 듯싶다가 다시 떠나는 무엇이다. 지속되는 것과 흘러가는 것 사이를 잇는 가느다란 줄 달아나버리는것. (…) 소멸되는 빛 속에 간직된 불안정한 동요.

미셸 슈나이더,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에서 - P46

상반되는 두 쌍의 동사가 세 번 나오는 이런 문장이 있다. 붙들려 있다와 떠나다, 지속되다 흘러가다, 소멸되다와 간직되다.
이 여섯 낱말은 음악이라는 모호한 물리적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동원되었다. 음악은 명명백백한 세계가 아니다. 경계에서 창조되는 경계의 세계다. 붙들렸는가 싶으면 떠나고, 지속되는가 싶으면 흘러가고, 소멸된 줄 알았던 것들이 간직돼 있다는 것을 우리 - P46

상상력는 음악을 들으며 느낀다. 서로 모순된 단어를 두 개씩 세 쌍을나란히 배열해야만 설명될 수 있는 세계 음악은 바로 그런 세계이고, 음악이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가 바로 그 세계다. 우리는 살면서 종종 느끼곤 한다. 붙들렸는가 싶으면 떠나버리고, 지속되는가 싶으면 흘러가버리고, 소멸됐는가 싶으면 간직되어 있는 신비한 어떤 것을 그 느낌이 만져질 듯 만져질 듯 우리 주변을 감싼다. 그때에 우리는 기쁘면서 애달프고, 허무하면서 뿌듯하다.
이 이상한 느낌을 가장 정확하게 제시하는 것이 음악의 세계다.
과녁의 정중앙에 화살이 날아가 꽂힌 듯한 정확함 때문에, 음악을 듣는 우리 마음은 된통 애잔해지는 것이다. - P47

주법은 진동의 미세한 입자를 시간 속에 끼워 넣으며 악기의 경계와 세계의 경계를 건드릴 뿐인데 이 건드림, 이 건드림이 직조해내는 무늬, 진동의 미세한 입자들이 뿜어내는 숨과 그 숨의 웅숭그림이 천변만화해내는 세계,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뒤표지에서 - P47

악기는 악기의 몸과 악기 바깥의 세계 그 경계를 연주자가 건드려줄 때에 연주된다. 주법은 음이라는 미세한 입자를 흔들어시간 속에 퍼뜨려놓는다. 입자는 흔들리며 파도처럼 공간으로퍼져나간다. 그때 비로소 음악이 들린다. 경계에 도사린 무수한숨결을 우리는 음악을 통해서 지각할 수가 있다. 음악이 경계의숨결을 무늬로 그려내지 못했다면, 우리는 감지 가능한 많은 세계를 다 놓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 P48

문자는 그 자체가 기호이자 그림이다. 그게 문자가 지닌 일차적인 매력이다. 그런데 한자는 기호보다 그림 쪽에 약간 더 치우쳐 있다. 그 점 때문에 나는 서예도 좋아하고 전각도 좋아한다.
잘하진 못하지만, 혼자서 입춘대길을 써서 해마다 현관문에 붙여놓을 정도는 된다. 벼루를 꺼내 먹을 오래 갈아 준비해놓고 화선지를 펴 문진을 올려놓은 다음, 호흡을 가다듬고 붓을 드는 느린 동작들이 좋다. 찬찬히 찬찬히 좋은 구절을 고전 속에서 찾아내어 천천히 천천히 한 획 한 획을 긋는 일은 나를 사람답게 만든다. 찬찬함과 천천함 덕분에 내가 사람다워지는 느낌이 난다. - P53

그릇 하나하나마다 이야기가 피어올랐다. 마룻바닥을빼곡히 메운 채 동그랗게 포개진 그릇들 사이에 나도 동그란 그릇처럼 쪼그려 앉아 그 얘기를 들었다. 엄마의 움푹 팬 물건을바라보려니 허기가 졌다. 어째서 엄마가 애지중지해온 물건들은이토록 움푹 패어 있어 무언가 채워넣게 생긴 걸까. 채워 넣고채워 넣는 것으로 평생을 보냈을 엄마의 하루하루가 난데없이몰려와서, 그릇만 물끄러미 쳐다보았을 뿐인데도 허기가 포만감처럼 밀려왔다. 엄마를 무어라고 부르면 좋을까. 엄마라는 이름에 담긴 슬픔들이 국그릇 엎어지듯 쏟아졌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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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아침, 광교산으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시집 <수학자의 아침>에서 ‘여행자‘를 읽었다. 갑자기 먼 곳으로 떠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폭우에 넓어진 하천이 새로웠고 산빛은 먹먹하게 깊어서 우림의 숲을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던것이다.
휴일답지 않게 한산한 버스에다 냉방이 잘 되어선지 이 습한 곳을 떠나 미시령쯤 지나간다면 좋겠다싶은, 잠깐 간절해지는 십 분이었다.
어디로든 떠날 수 없으니 느끼고 싶어졌다.
시인의 여행 산문집을 읽기로한다.
<그 좋았던 시간에>를 읽는다. 문장보다 사진을 보는 시간이 더디다
<시옷의 세계>도 읽고 싶다.
작은 싸이즈의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가 눈에 먼저 띄었다. 그렇게 계통없이, 맥락없이, 뜬금없이, 널 뛰는 독서중이다.
읽었던 책들이고
<시옷의 세계>를 제외하곤 실망했던 책들인데... 다시금 읽힌다. 미처 알아채지 못한 기운을 감지한다.

인용되는 ‘정희진‘의 책들, 신간들 또한 기다리고 있다.
시리즈를 처음부터 다시 읽을까? 어쩔까? 어정쩡하고있다.
‘버지니아 울프‘를 읽고나니 ‘정희진‘, ‘레베카 솔닛‘, ‘임은정‘도 마구 읽고 싶다.
마음이 바쁘다.
시간이 없다.
언제나 시간과 마음이 문제다.
어제부터 아침, 저녁 바람이 달라졌다. 가을이 묻어있다. 곧 이 여름을 추억하게 되리라. 시간이 쏜살같다. 60키로다.

여튼 우선은 다음도 김 소 연이다.




사랑에 대한 산문을 쓰겠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하면, 둘중 하나는 표정을 찡그리거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응한다. 왜 사랑 타령을 하느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다. ‘멜로melo‘적인 사랑 타령이겠거니 지레 거부감을드러낸다. 식상해서 도저히 흥미를 느끼지 못하겠다는표정임에 틀림없다.
멜로. 원래는 ‘노래‘라는 뜻의 그리스어다. 멜로드라마는 노래가 곁들여진 연극이 그 기원이다. 프랑스혁명이후부터 흥행하기 시작한 멜로드라마는 기존의 정통극과 달리 통속성과 오락성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 통속성과 오락성은 멜로드라마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되었다. 스토리텔링에서 ‘사랑‘이라는 주제는 이후로 대중이 가장 잘 몰입하고 가장 손쉽게 음미하는 소재가 되었다. - P11

나는 사랑에 무능력했던 나의 경험들이 사랑에 대한무지와 두려움에서 기인되었다고 생각해왔다. 언젠간 이 - P12

두려움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위해서, 사랑을 멜로로 연결 짓고 식상해하던 습관이 사랑에 대한 결례라는 걸 우선 알아채야 했다. 사랑의 적들은 사랑의 반대편에 있지 않고 사랑의 내부에 매복해 있다는 것도 알아채야 했다. 사랑의 적들이 겹겹이 덧씌워진 채로 사랑은 본래의 얼굴을 잃은 지 오래되어 보였다.
사랑에 대하여 무지한 채로도 사랑을 했던 나같은 이들이, 사랑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으로써 사랑을 소외시켜왔던 것이다. - P13

세상에서 사람이 비루해지거나, 사람 앞에서 세상이비루해지는 걸 자주 목격했다. 사랑이 그 비루함을 어떻게든 구원할 수 있다고 여겼다. 사랑의 뒤꽁무니를 좇는사랑이 아니라, 사랑이 끝나면 다른 사랑을 이어가면서,
사랑에 의해 사람이, 혹은 사람에의해 사랑이 마모되는류의 사랑이 아니라, 단 하나의 사랑을 인간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그녀는 알고 싶었다. 어떻게 사랑을 시작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사랑을 완성하는지를.
사랑의 무수한 결을 차곡차곡 조심스레 펼쳐서 잘 키워갈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랑의 기쁨을 만끽하기에 인간의 삶은 너무 길고,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기에 인간의 삶은 너무 짧은 것 같았다. - P23

 사람들은 여전히 둘을 비교했다. 누군가 비교를 하더라는 말을 전해주기도 했다. 누가 누구를 버렸는지를 궁금해하고, 누가 더 안 좋아지고있는지를 평가했다. 그와 함께 술을 마시던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그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지금 그와 함께 있다며, 그녀를 불러내려 할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짓궂었고, 사람들은 여전히 두 사람을 묶어서 생각했다.
자세한 속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 가까운 이들에게 무슨말이든 하고 나면, 돌아서서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했던 말들이 벌떼처럼 그녀를 에워싸고 윙윙댔다. 그녀는 자신이 뱉은 말들 속에서 벌에 쏘인 것처럼 앓았다. 퉁퉁 부은 붓기와 따끔거림이 그녀의 신체가 되어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입 밖으로 뱉어지는 이야기는 매번 어리석었다. 정교할 수 없고 정확할 수 없는 엉터리였다. 아예입을 다물면, 그만큼의 오해가 또 다른 편에 쌓여갔다. - P31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문제적인 제도, 가장 부패한제도, 가장 비인간적인 제도는 가족이다. 가족은 곧계급이다. 교육 문제, 부동산 문제, 성차별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부뿐만 아니라 문화 자본, 인맥, 건강, 외모, 성격까지 세습되는 도구다. 간단히 말해, 만악의 근원이다.

정희진, 「가족 밖에서 탄생한 가족: 가족의 탄생」, 「혼자서 본 영화, 교양인,
2018, p. 27.



편한 사람. 나를 믿어주는 사람.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
어떤 일이 있어도 내 편에 서줄 사람. 이런 사람을 두고 우리는 ‘가족 같은 사람‘이라 칭한다. 타인이 가장 친밀히여겨질 때 ‘가족 같다‘는 표현을 쓸 만큼, 가족이란 말은 - P34

유대의 최대치를 표현한다. 날로 험해지는 세상에 비해 날로 나약해지는 개인은 어떻게든 보호를 받고 싶은데, 그럴 때 우선 떠올리게 되는게 가족밖에는 없다는 듯.

우리는 아주 친밀한 사람에게 ‘가족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특별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실재하는 가족은 특별함을 일찌감치 지나쳐 온갖 문제가 산적한 집합체가되어 있다. 우리들 내면에 간직된 상처의 가장 깊숙하고거대한 상처는 대부분 가족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 P35

옳은 방식이 미리 결정되어 있을 때, 우리가 그은 것을 모두에게 강제할 때는 그 삶 자체가 배척당한것일 수도 있다.

주디스 버틀러, 젠더 허물기, 조현준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5. p. 68,


서로를 선택할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에, 좋아할 수없는 사람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당위가 가족에게는 있다. 이 당위가 인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줄아는 능력을 보장해주면 좋으련만, 사랑이 지닌 위험으로 기울 때가 많다. 그래서 타고난 사랑의 능력을 훼손당하기도 하고, 인간을 무의식적으로 불신하기도 하며, 미지에 대한 당연한 불안에 내성이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사랑의 압력과 폭력에서 기인된 트라우마가 심장 깊숙이 각인되어버리기도 한다. 오래된 제도로서의 가족은서로를 계속해서 희생해야만 존속될 수 있다. 개인의 서사가 두려움 없이 전달되고 이해되며 존중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 P39

어떻게 하면 사랑이란 걸 잘 줄 수 있는지를,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사람들은 궁리한다. 사랑을 잘 주는 일은그래서 곧잘 자기계발서의 주요 아이템이 되어왔다. 특히 구애의 기술에 대해서는 매뉴얼이 차고 넘친다. 자신의 사랑이 잘 전달되기를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매뉴얼이 머릿속에 그럴듯하게 장착되어 있다.
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받는 자의 제대로 된 행동인지, 잘 사랑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지침들은 거의 없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결여와 반대에 있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결여 없이 시작되는 노력과 궁리는 없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는 자는 사랑에 대하여굳이 궁리하고 배울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 P73

상처를 남기고 종결된 사랑은 대개 초라함과 추악 사이에 놓여 있다. 상처를 남기지 않고 종결된 사랑은 별로없다. 사별의 경우가 아니고서는 사랑했던 사람을, 사랑이 시작될 때의 그 아름답던 사람으로 기억해주는 이 역시 별로 없다. 이미 초라함과 추악 사이에 버려진 사랑을스스로의 발화로 인해 보다 더 초라하고 보다 더 추악한것으로 재편하면서까지 자신의 실책을 덮어버리려 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지나간 사랑은 봉인해야 옳다. 입을다무는 게 낫다. 마치 처음 포옹을 하던 그 순간처럼,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온전히 포갬으로, - P83

그녀는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어디까지 용서해야하고, 어떻게 용서를 해야 하는지, 용서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지, 처절하게 질문을 해본 적이 누구나 있다는 사실을말이다. 용서에 대한 우리의 질문은 종교적인 차원에서의용서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공허한 넋두리일 뿐이라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심리치유자이며 작가인 스캇 펙은 이 용서라는 개념을 용인이라는 개념과 대비하여 설명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흐릿한 이해를 앞세운 후 잘못을 저지른 자를 외면하고 체념하는 것을 용인이라고 한다면,
당신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라며 잘못을 분명히 해두는것을 앞세운 후에 그자를 다시 포용하는 것은 용서라고. - P100

사랑에 위기가 올 때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게 된다. 한계랄 것도 없고 직시랄것도 없다. 뻔하디뻔한, 좁디좁은 자신의 그릇. 그 초라한 됨됨이 앞에서 원래의 자신보다 좀더 큰 그릇이 되려고, 그걸 억지로 해보려고 애를 쓰느라 남모르게 힘이 든다. 사랑에 위기가 올 때에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척을 하느라 힘들어한 적이 없는 사람은 없다. 돌연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왜 나를 괴롭히면서까지이해와 관용을 한없이 펼쳐야 하는가. 나는 어쩌다가 매번 그런 역할만을 맡는가. 한숨에 회한이 섞인 채로 이렇게 되뇌게 된다. "도대체 왜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해야 할까?" - P101

 용서받은 자가용서한 자의 미덕을 닮아가는 경우보다 용서한자가 용서받은 자의 악덕을 닮아가는 경우가 더 빈번하다. 사람을더 많이 만날수록, 경험이 더 쌓일수록, 세월이 더 흐를수록 용납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흐지부지 용납하고 있는사람이 되어간다.
도대체 어디까지 용서해야 옳을지를 고민할 때에 그녀는 멈칫한다. 용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거둔다.
사람이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의 윤리마저자기 자신으로부터 스르르 빠져나가버리는 사태가 두려워서다. 무엇보다 용서하는 주체의 ‘용서-하다‘라는 말의 자격을 그녀는 갖고 있지 않다고 여긴다. 용서라는 말이 용서를 하고 싶어 한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용서를 받고 싶어 한 누군가에 의해서 발명된 말 같아서다. - P104

지우개 가루를 호호 불어버리는 그 시간동안에, 그녀는 그리움으로 인하여 괴롭지 않았다. 그리워만 하느라 애가 닳던 시간들은 이미 저 너머로 가 있었고 그녀는 견딜 수 없는 어떤 상태에서 조금 비켜나 있을 수 있었다. 실물도 없이 사진도 없이, 다만 기억만으로 그리운 얼굴을 완성할 수 있었던 그녀의 경험을 무엇이라 이름 붙이면 좋을까. 가려운 부위를 벅벅 긁는 시간과 닮은 것은아닌지, 치통 같은 것에 복용했던 진통제와 닮은 것은 아닌지 견딜 수 없을 만큼의 지루함을 게임이나 오락영화같은 것으로 때우는 것과 닮은 것은 아닌지. 보고 싶은사람과 연결되어 문자를 주고받거나 화상 채팅을 하는것하고는 어느 정도 비슷한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때 이후로 그녀는 사람의 얼굴을 선으로 그리는 데에 따른 두려움 같은 게 사라졌다. 그림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냥 그리고 싶으면 마음껏 그릴 수있는 자유가 생긴 셈이었다.
- P108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았을때도 그녀는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은 그 그림을두고 수련이 피어 있는 모네의 정원을 상상할 수도 있고,
모네의 정원에 기웃대는 빛의 다양한 실체를 보며 경이로위할 수도 있다. 모네가 인상주의 화가로서 어떤 경지에도달했는지, 모네의 예술적 집념이 무엇이었는지를 분석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수련> 연작이 주는 경이로움은화폭에 표현된 것에 국한될 리가 없다. 모네의 수련은 단지 짚 더미이거나 양산을 쓴 여인이거나 바람에 살랑이는 들판이어도 된다. 하지만 하필 수련이, 눈이 멀어가는 - P110

노년의 화가 앞에 펼쳐져 있었고 수면에 고요히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모네는 잘 보이지 않는 시력으로 수련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지금 자신 앞에 펼쳐져 있는 그것. 언제나 한결같이 그 자리에 수런거리고 있는 그것. 그것을 그 큰 화폭에 담아내기까지, 250점에 가까운 연작을 계속해서 그려내기까지 수련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만한 그림들을 그릴 그만한 시간이 모네에게는 있었다.
이것은 풍경을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풍경을 그려낸 시간을 그린 것에 해당된다. <수련> 연작이 인상주의를 넘어서서 추상의 세계를 여는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이라고 평가를 받는 것도, 모네가 자신의 황량하고 드넓은 시간을 드넓은 화폭에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 P111

외로움이 윤기 나는 상태라는 실감은 그녀에게 그리오래된 것은 아니었다. 외로울때면 쉽게 손을 뻗어 아무에 가까운 사람과 애인이 되었던 시절도 있었고, 외롭다는 사실과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 늘 누군가와 연결되어 아무 말이든 나누어야 잠이 들 수 있었던 시절도 있었고 혼자서 식당에 찾아가 밥을 먹는 일이 도무지 어색해서 차라리 끼니를 굶던 시절도 있었다. 연락처 목록을 뒤져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야지만 겨우 숨을 쉴 수 있을것 같은 나날도 있었고,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히는 게 두려워 누군가가 그녀를 생각하고 있다는 확인을 해야 안도가 되는 나날도 분명 있었다. 누군가와 연결이 되어야만 겨우 안심이 되던 그 시절들에 그녀는 사람을 소비했 - P119

리베카 솔닛이 제안하는 산책도 구애가 필요치 않다.
구애의 절차가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행위이다. 평범하디평범한 행위인 산책. 걷는 것. 나란히 걷는 것. 같은 길 위에 서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 마주 보는 것이 아닌 것.
구애의 방식보다 더 깊고 정확한 구애 같다. - P151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곁에 두되, 다른 노선은 정녕 없는 걸까.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안을 연료로 사용할 수는 없는 걸까. 이 시스템으로부터 이탈하는 데에 필요한 용기를 서로 보태기 위한두 사람. 거대하고 획일화된 악습들의 연쇄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관성을 멈추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두 사람. 시스템의 바깥에서 자기 자신의 내적 질서와 부합되는 새롭고 자그마한 시스템을 함께 모색하는 두 사람, 이인삼각처럼 헛둘헛둘 발을 맞추는 것에 사랑을 사용하면 좋겠다. 목표를 향해서 헛둘헛둘 뛰어가는 게 아니라, 목표를 지워버린 채로 출렁이는 불안의 요동에 리듬을 맞춰그렇게 하면 좋겠다. - P155

가장 아껴 말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가장 용기 있게 말해야 할 단어가 ‘우리‘라는 단어라고 이제 나는 생각하게 되어버렸다. 어떨 때는 남용되거나 오용되고 어떨 때는 의미를 소실한 듯 사어처럼 들리기도 하는 단어이다.
드넓은 복수형으로 쓰이지 않고 단 두 사람으로 쓰일 때에만 겨우 제 뜻을 표상해내는 듯 유약해진 단어이다.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민감한 단어이다. 이 유약하고 민감한 단어를 어떻게 다루어야 좋을지 고민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고민의 방향이 대체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왔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병률은 이런단어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향하게 다룰 때가 더러 있다. "우리라는 말도 이제 힘이 없습니다"라고 적고야 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병률이 이 문장을 적어둔 자리의 맥락 속에서 이 씁쓸하고 쓸쓸한 문장은 야릇한 힘을 얻는다. 애써 우리를 우리라고 위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안도감과 우리를 우리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차피 우리는 우리일 수밖에 없다는 안전한 결속, 어느 한쪽에 의해서 보이지 않게 행해질지라도 괜찮을 듯한 든든 - P178

같은 게 배어 나오고야 만다. 그는 어느덧 이렇게 문장을 다스려 가장 단정하게 다룰 줄 아는 시인이 되어 있다. 시인은 문장을 다스리는 데에 있어서 가장 능란해야옳지만, 능란한 문장을 쓴다는 걸로 가장 좋은 시인이 될수는 없을 것이지만, 문장을 정말로 능란하게 다루려면그 문장의 깊이만큼 깊이 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문장을 한 걸음 앞에 던져놓고서, 그 문장과 닮은 사람이 되기위해 문장을 쓴다. 그래서 문장은곧 서약과 다름없다. 이병률이 한번도 직접적으로 적어둔 적은 없지만, 바다는 잘 있습니다』곳곳에는 서약을갈음하는 문장들이 불씨처럼 숨어 있다. 자신이 쓴 시와더 겹쳐지고 더 닮아가는 그가 가장 분명하게 다짐을 해둔 문장을 오래 들여다본다. - P179

"기다린다 이제 밥을 기다리는 일과/주문을 기다리는 감정의 경중은 같다"는 그 "지탱하려고 지탱하려고감정은 한 방향으로 돌고 도는 것으로 스스로의 힘을 모은다"는 그, 그래서 지탱이 가능해짐으로써 또다시 새로워지는 그. 지금 이병률은 인간의 한 생애에서 가장 괜찮은 순간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그는 사람들이 으레시인에게 기대해온 열정이나 낭만의 상태가 아니다. 그의시는 대단한 결기로 포장되어 있지도 않고 냉소나 환멸로 손쉽게 치환되어 있지도 않으며, 그래도 그럭저럭 살만하지 않으냐눙치려 들지도 않는다. 낙담의 자리에서
"지탱하려고 지탱하려고" "힘을 모으는, 은은하고도 든든한 모습으로 그는 서 있다(「생활이라는 감정의 궤도). - P180

그는 "발을 땅에 붙이고서는 사랑을 따라잡을 수가없다"(이토록 투박하고 묵직한 사랑」)는 걸 알고 있는사람이다. 사랑이 이 지상으로 내려와서 우리 곁에 넉넉하게 머물러주기를 밑도 끝도 없이 기다리는 시인들과사랑이 우리 곁에 이제는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 P180

든 온몸으로 입증하려는 시인들이 많고 많은 와중에, 이병률은 우리들 속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사랑과 가까워지는 것에 힘을 모으는가보다. 한 발짝 물러선 것이 아니라 들어올려서 나는 이런 사람이 쓴 새 시집을 가장 먼저읽은 사람이 되었다. 행운이라 할 만하다. 나는 항상 가장 나쁠 때에 가장 운이 좋았다.

우리가 살아 있는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와 다를 테니
그때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
- 이 넉넉한 쓸쓸함」 부분 - P181

우리 시대의 유일무이한 리얼리스트
-최승자, 『빈 배처럼 텅 비어

시인 최승자는 잘 알려져 있다. 이성복, 황지우와 더불어시의 해체를 도모한 3인방으로 잘 알려져 있고, 그 누구보다 독하고 끔찍한 시를 온몸으로 썼던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고, "정신분열증"으로 인해 병원에서 지낸 세월이 태반이었던, 아슬아슬한 우리 시대의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불행한 시인의 대명사처럼 최승자를 인용했고, 문학에서 페미니즘을 논할 때마다 최승자를 여전사처럼 앞세웠고, 새로운 여성 시인에게서 독한 목소리를발견할 때마다 ‘최승자‘라는 어머니의 뒷줄에 세우고 ‘최승자처럼 쓴다‘며 계보‘를 매겼다. - P182

최승자가 쓴 시도 잘 알려져 있다. ‘아픈‘ 최승자의
‘독한‘ 시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미 죽어 있다"고 말했던 최승자의 독한 탄식에 충격을 받았고 감동을 받았다. 그의 독한 어법은 사랑받았고 예찬받았다. 모든 예찬속에서 진정한 승자처럼 보이는 최승자의 삶은 그럼에도불구하고 점점 더 악화되어갔다. 널리 알려진 모든 것이그러하듯이, 최승자의 시는 실제로 읽히는 일보다 풍문으로 퍼져가는 일을 더 많이 겪었다. 실제로 읽힐 때에도읽혀왔던 방식으로만 읽힐 뿐, 새롭게 읽히는 적은 드물었다. 그간 최승자에게 바쳐졌던 찬사와 걱정 들은, 그가이 세계에 일체의 편승도 하지 않았다는 염결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염결함을 알아보는 이는 많았어도, 그염결함을 잘 이해하는 이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들은 최승자의 시세계에 전적인 탑승을 하지 않음 [못함]으로써, 이 세계에 편승하고 있었던 우리의 염결하지 못함을 되려 염결하게 지키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P183

사랑했던 그대여 나는

김치수와 김현을 비롯한 많은 비평가는 최승자 시의 키워드를 ‘사랑‘이라고 파악했다. "미흡한 사랑을 통해서 확인하는 것은 〈존재의 쓸쓸함〉"이며, "이별의 아픔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불가능을 겪은 경험"이며, "운명론적 불행"이라고 해석했다.

잡탕찌개백반이며 꿀꿀이죽인
나의 사랑 한 사발을 들고서,
그대 아직 연명하고 계신지
그대 문간을 조심히 두드려봅니다.

- 그대 영혼의 살림집에 부분 - P184

만장하신 여러분
나를 죽이고 싶어 환장하신 여러분
오늘 내가 죽는 쇼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십년 후 똑같은 시각에
똑같은 염통을 달고
이 장소로 나와주십시요.

「무제2」 부분

이 위의 시에서 상정한 10년 후는 대략 1994년이었다.
최승자는 "죽는 쇼"를 그때 끝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한 번 죽고 다시 살아나서 가까스로 시를 쓰며 연명해왔을지도 모르겠다. 연명이라는 말에도 최승자에게 가혹한 요청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담긴 것 같아서 고쳐 적어본다. 최승자는 자주 아프지만 자주 회복했고, 회복할 때마다 시집을 출간해왔다. 어쩌면 시집 출간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회복되어갔는지도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다시 "십년후 똑같은 시각에/똑같은 염통을 달고/ 이 장 - P206

소로" 우리들이 나간다면, 최승자와 거의 비슷한 모습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우리가 더 이상 죄 짓기를 거절하고, 최승자처럼 차라리 아프기를 각오한다면 말이다. 최승자는 "우리가 천사처럼 보이지않는 것은/세상 환영에 속아 살고 있기 때문이다"라 말하고 있다. "우리는 ㅅ도 아니고 도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우리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ㅅ이 될 수 있고 詩가 될 수 있을까. - P207

내가 궁금했던 것은 사랑에 대한 개념이 아니라 사랑함에 대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랑함은 사랑과는 다른 얼굴이어야 한다. 사랑은 사랑을 재배하는 능력이어야 한다. 사랑을 돌아보고 돌보는 것이어야 한다. 사랑을 사랑해온, 사랑을 명사로 고정하는 사랑의 담론들에 비켜서서, 사랑이 더 이상 감정의 영역에 머물러 있게내버려두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학습해온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힘도없다. 하지만 사랑함은 그렇지 않다. 삶이 사랑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세상이 사랑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세상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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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의외의 일들을 선호한다. 구경하는 것보다 뛰어드는 것을, 공부하는 것보다 경험해보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고나서 후회를 배우는 것을 선호한다.
실내에 있는 것보다 야외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계절이 바뀌는 것과 계절이 깊어가는 것을 흘러가는 것들을,
조각나지 않고 길게 이어진 휴식을, 청소를 하고 향을피운 후에 책상에 앉는 것을 좋아한다.

시집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 『수학자의 아침『i에게』와 산문집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 <한 글자 사전> <나를 깬 세상의 전부>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등을 썼다.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시골 마을을 발견했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할아버지와 자그마한 와사비소금 한 병을 소중하게 포장해주는 할머니를 만났다. 그런 할아버지와 친구가 되는 그런 할머니로 늙어가야지 하며 빙그레웃었다. 집에 돌아와 냉장고 속 어묵을 꺼내고 무 반토막을꺼내어 멸치 우린 물에 넣었다. 팔팔 끓여 푹 익힌 어묵과 무를 와사비소금에 찍어 먹었다. 그 다음날도 먹었다. - P122

1월 3일
델리, 비벡 호텔에서

인드라간디의 새벽은 그다지 위험하지 않았다. 두렵던 마음이 안도감으로 바뀌자 무거운 배낭도 가볍게만 느껴졌다. 아홉시 반에 로비에서 만나자던 인도인 가이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아침부터파하르간즈를 헤매기 시작했다. 지도를 보고서 길을 찾는다는 게 의미가 없다는, 쉼터주인의 말씀이 백번 옳았다. 첫 인도 식사를 했다. 커리만 먹고 두 달을 지낸대도 기뻐할 수 있을 맛이었다. 바나나 라씨를 디저트로 마셨는데 다 먹고 나자 컵 밑바닥에 파리가 익사해 있었다. 맛있었는데. 너 때문이었던 거니. - P126

1월 29일
우다이푸르, 드림헤븐 루프탑에서

세탁물을 찾아왔는데, 멋지게 찢어진 나의 청바지는 모든구멍들이 깔끔하게 누벼졌다. 세탁소 아저씨가 "이건 서비스야, 완벽하지?"라며 자랑스러운 미소를 짓지 않았더라면 화를 낼 뻔했다. J와 함께 라자스탄 전통 댄스 공연을 보았다.
그리고 J의 배웅을 받으며 터미널에 갔다. 버스에 올라탈 시간이 되자 J가 비닐봉지 두 개를 건넸다. 오렌지 세 개, 과자두 개, 바나나 세 개가 담겨 있었다. 이 애는 여기에 오래 머물면서 얼마나 많은 배웅을 이렇게 했을까. 비닐봉지를 머리맡에 놓아두고 싱글 슬리퍼 칸에 누웠다. 폭이 너무 좁아서 어깨가 꽉 들어찼다. - P134

2월 21일
뭄바이, 타지마할 호텔에서

무더위가 창궐하고 있다. 나는 타지마할 호텔에 묵지도 않으면서 이 호텔의 로비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척을 하며, 책을 읽거나 엽서를 쓰면서 소일하고 있다. - P145

2월 28일
뭄바이, 공항에서

무엇에든 카메라를 들이댔다. 지갑 속에 들어 있던 지폐와동전을 하나하나 꺼내어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서, 정겨운 간디의 얼굴들을 프레임에 담았다. 라씨 한 잔, 차이 한 잔, 커리한 접시마저 카메라에 담아두었다. 중앙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사고 엽서를 부쳤다. 깨끗하게 빨아 창가에 널어둔 운동화를 신었다. 신고 다니던 조리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숙소 주인의 배웅을 받으며 공항 가는 택시를 탔다. 공항으로 향하는 그 밤길에서, ‘인도‘라는 나라에 정이 듬뿍 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다이푸르에서 만났던 J를 공항에서 우연히 만났다.
J가 차이를 사주었다. 마지막 차이. - P148

어느 해 여름에는 친구의 고향집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다폐가에 들어갔다. 작은 대문 옆에 걸린 우편함에 비에 젖었다가 다시 말라버린 고지서며 편지 같은 것들이 터질 듯이 꽂혀있었다. 청첩장 같은 것도, 연하장 같은 것도, 성탄카드 같은것도 꽂혀 있었다. 너무 오래되어 흰 봉투가 누렇게 변해 있고 제대로 다물려 있지도 않았다. 이 집의 주인인 양 그것들을 꺼내어 읽어보았다. 모르는 사람의 이름을 한 글자 한글자 읽어보았다. 다시 우편함에 꽂아두고 집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아무도 없지만 누군가 있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가 있었으니까. 노인이 살았나보네. 아이가 살았나보네. 남아 있던 것들을 통해서 살았던 사람을 상상해보았다. - P156

폐사지들을 두루 방문하고 나서 내게 남은 잔상은 오로지 이끼였다. 햇빛이 비스듬한 시각, 곁에 있는 사람의 옆얼굴에서나 보이던 솜털 같은 이끼. 길에 카펫처럼 깔린 이끼,
바위를 망토처럼 덮고 있는 이끼, 불상에 표정처럼 끼인 이끼.
팔다리나 머리가 잘린 채로 훼손된 석상도 아름답게 감싸며세월의 깊이를 풍겨오던 이끼. - P158

시간이 덧없이 흘러간 흔적을 보았다고 표현해야 할까. 아니면 시간이 켜켜이 쌓여갔다고 표현해야 할까. 버려진 장소라고 느꼈다면 덧없는 시간의 흐름이 더 느껴졌을 것이지만그렇지만은 않았다. 그 장소가 이끼에게 오랜 세월에 걸쳐 천천히 천천히 스스로를 내어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곳은무언가가 뿌리를 내린 장소였다.
이끼는 장소의 허락을 받은 듯이 온전히 그곳을 차지했다.
폐사지들은 시대와 사건들을 초월한 채로 이끼의 장소가 되어갔다. 거기에 아침부터저녁까지 햇살이 깃들고, 자주 바람이 훑고 지나가고, 가끔 빗방울이 차곡차곡 쌓여갔을 것이다.
그 곁에 인간의 무덤들이 들어서도 이끼는 구분 없이 그곳으로 번져갔다. 서로 다른 목적과 서로 다른 시간을 이끼가 어우르고 있었다. - P159

고양이가 다가왔다 멀어지고, 새소리가 들리고, 강줄기가 지나가는 물소리가 합쳐졌다. 폐허에는 언제나 온전치 못함에서 발생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이면을 간직한 아름다움이 배어 있다. 훼손된채로 세월 속에 간직되어있는 그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 비극과 참담과 세월. 이세개의 꼭짓점이 먼 곳에서 한데 만나는 소실점 같은. - P160

어떤 여행지에서는 여행을 멈추는 게 더 좋은 여행일 때가있다. 여행을 멈추고 방을 얻어 많이 자고 많이 먹으면서 많이쉬는 것이 더 좋은 여행이 될 때가 있다. 이렇다 할 찾아갈 장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없는 장소인 것은 아니다.
그곳은 지내기 좋은 빵집과 찻집이 있고, 오래 머물기 좋은 서점과 도서관이 있고, 무엇보다 모든 것이 저렴하다. 모두가 인심이 좋다. 그런 도시에서 방을 얻어 한참 동안 머물고 나면또다시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여행을 떠날 힘을 얻는다. - P168

좋은 것에도, 나쁜것에도 즉각적으로 입 바깥으로 표현하며 동행자와 함께 그감정과 소회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나쁜 일에 대한 푸념이 하루의 여백 곳곳에 전시되었다. 먼저 여행을 제안한 것부터 소급해서 반성과 후회를 범벅하며 이유를 알 수 없는 한숨을 짓는 나와, 매번 푸념을 앞세웠다 나의 한숨 때문에 또다시 푸념을 거두며 한숨을 짓는 친구. 우리 둘의 남인도 여행은 이렇게 요약이 되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어딘지 모를 불편함을 안고서, 슬리핑 버스의 한 칸씩을 차지하며 각자 누워 커튼을 친 후, 우리 둘은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 구불구불한 길을지날 때에는 누운 채로 이리저리 굴러가며 끝없는 잠을 잤다. - P174

잠이 깨어 눈을 떴을 때, 창 바깥에는 뿌연 안개가 뒤덮인대도시가 있었고, 말끔하게 차려입고 출근하는 인파를 한가득 실은 버스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 아직 내가 인도에 있구나!‘ 했다. 비몽사몽 잠깐의 시간, 나는 이 년 전부터 내내 그골목에 앉아서 울고 있어왔거나 이 슬리핑 버스 속에 누워 있는 줄로만 알았다. 여기는 두번째로 찾아온 인도이며, 이 년전과 달리 친구가 옆에서 동행하고 있다는 걸 한 박자 늦게알아챘다. 지금 집에 돌아가는 중이라는 것도. 나는 슬리퍼를꺼내 신고 버스 복도로 나왔다. 친구 방의 커튼을 열었다. 친구는 전에 없던 평화로운 얼굴로 꿀 같은 잠을 자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껴 친구가 눈을 떴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친구에게 고백했다. 고맙다고. 옆에 있어줘서 너무 안심이라고. - P175

겨울에 꺼내는 여름

어떤 날은 외투가 무거워 집에 일찍 돌아옵니다.
외투를 벗고 잠옷을 꺼내 입는 홀가분함을 겨울이라 불러봅니다.
외출모드의 보일러를 적정온도로 맞춰서방바닥이 따뜻해지길 기다립니다.
무릎 담요도 덮었지만 수면양말도 필요합니다.
성에가 낀 북향 창문을 열면 매서운 바람이 기습해 들어옵니다.
이제는 앙상해져 볼품이 없는 숲을 내다봅니다. - P178

담요를 벗고 카디건을 벗고 양말을 벗고 잠자리에 듭니다.
두꺼운 이불을 덮어도 코끝이 약간 시립니다.
발이 이불 바깥으로 빠져나오지 않게 몸을 웅크립니다.
깜깜한 방안을 빽빽하게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생각들이차례차례 펼쳐집니다.
여름이 펼쳐집니다.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던 바다가 펼쳐집니다.
뚜벅뚜벅 멀리까지 걸어가는 내가 보입니다.
어느덧 몸에서 살얼음이 빠져나가고 어느덧 잠이 듭니다. - P179

겨울은 여름을 떠올리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여름을 떠올리며 그때 미처 하지 못했던 한 가지를 아쉬워할 수 있는 계절이다. 여름을 열렬히 그리워하는 밤. 성에가 낀 얼룩덜룩한유리창을 보면서, 다음번 여름엔 소낙비가 내릴 때에 유리창청소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창 바깥에 서 있는 메타세쿼이아 숲을 선명하게 내다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귤피차를 마시다 안경알에 낀 성에가 사라지길 기다리는 잠깐 동안에, 여름의 냄새가 다녀간다. 겨울의 반대편에 여름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는다. - P179

너무나 유명한 나무 한그루라서, 누구나가 한 번쯤 사진에담아봄직한 나무라서, 그 나무를 어디서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본 적이 없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너무나 흔한 사진이라서, 별다를 게 없는 사진이라서, 게다가 한 그루 나무 사진이라서, 나는 본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도 못했다. 본 적이없는데 본 것 같은 느낌을 다만 신기해했다. 한 그루 나무일뿐이지만, 이 나무가 누구나의 나무인 것이 좋다. 모두가 찾아와 사진에 담게 되는 나무라서 좋다. 누가 사진에 담아도 멋질 수밖에 없는 멋지게 생긴 나무라서 더 좋다. 무엇보다 이나무를 맨 처음 만났던 그 거실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다. - P182

남루함이 빛난다

ItalyFirenze

엄마는 팔십 평생을 보아왔어도
해 지는 모습은 질리지가 않는다 하셨다.
엄마의 남루한 가구들의 모서리가 반짝거렸다.

프하라, 산토리니, 피렌체..
해가 지는 걸 보겠다고 모여든 여행자들 사이에서
나도 눈을 가늘게 뜨고 오직 지는 해만 바라보았다. - P184

아침 일찍부터 돌아다녀
발은 붓기 시작하고
땀을 흘려 옷에서는 짠내가 나고
꾀죄죄해진 몰골이었지만

황금빛을 받아
잠시나마 나는 빛이 났을 것이다.

오늘도 꿈같은 하루였구나 생각하며
배낭 속에서 카디건을 꺼내 입고서
쌀쌀한 황금빛 골목을 터덜터덜 걸어
숙소로 돌아갔을 것이다. - P185

관광지

나는 관광지가 고향인 사람이다.
경주 노서동 사거리 봉황대 앞에서 살았다.
옆집은 기념품 가게였고
수학여행객들로 항상 붐볐다.

사방치기나 비석치기 같은 걸 하고 놀던
꼬마였던 내게 다가와 - P204

외국인 관광객들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동전을 쥐여주려고도 했다.

도망치듯 대문 안으로 들어가
혼자서 욕을 해댔다.
수학여행 철마다 내 골목을 누비고 다니던
이방인들을 무작정 미워했다.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고
어른들에게 혼이 났고
나는 자꾸 골목을 빼앗긴 느낌만 들었다.
친구들과 골목 담벼락에 바짝 붙어서
그들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던 시간.

그들이 되어 나는 다른 도시를 그렇게 지나갔다.
그 아이들 속에 내가 있는 것 같았다.
골목 속 나는 웃고 있고 골목 속 나는 숨어 있다. - P205

휴양지의 리조트에서 나는 친절한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다. 돈을 내고 팁을 주면서, 방도 치워주고 식탁도 치워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 P205

하염없이 물놀이를 하고 하염없이 낮잠을 자고, 휴양지에서하염없는 휴양을 하고서,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불렀다. 친절한 사람이 내 트렁크를 차에 실어주었다. 휴양지를 벗어나자소낙비가 쏟아졌다. 소낙비를 맞고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였다. 무너질 듯 무너질 듯 서로 지붕을 기댄 채로 지어진 집들이 보였다. 비현실적인 휴양지와 비현실적인 공항 사이, 아주잠시, 친절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을 스쳐지나갔다. - P206

내가 마음먹은 일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실천할 능력이부족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마음먹었는지를 새까맣게 잊어버리기 때문이었다. 필리핀의 어떤 섬으로 휴가를 떠났을 때의일이다. 단지 나는 짧게 다녀올 여행지를 고르고 있었고 멀지않은 곳이기를 바랐다. 기왕이면 바다가 있었으면 했고 관광객들이 들끓지 않는 조용한 곳이었으면 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찾아간 곳은 필리핀의 다바오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이었다. 필리핀의 전통 수상가옥으로 한 채 한 채가 지어진, 아주 아담한 그 숙소에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었다. 깨끗한 바다. 간단한 스노클링으로도 만날 수 있는 알록달록한 열대어들. 매일매일 산해진미가 차려지는 레스토랑,
매일 저녁식사와 함께 펼쳐진 민속 공연, 파도 소리가 귓전에서 들리는 방, 방에서 내다보는 아무도 없는 바다, 열대우림의 산책로. - P215

대문 앞에 멈춰 서서 집안을 들여다보니 마당에서 가족들이 저녁식사를 하며 모여앉아 있었다. 경계심을 잔뜩 품은 한남자가 나에게 다가왔을 때, 버스 티켓과 숙소의 바우처를 번갈아 보여주며 내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이 동네에 친구가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는데, 그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다고 했다. 도움을 주어 고맙다며 기꺼이 대답을 했지만, 그순간, 눌러두었던 두려움들이 모두 동원된 듯한 커다란 무서움에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이 사람의 도움이 과연 믿을만한지에 대한 판단 불가능함이 주는 두려움, 그렇다고 다른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해결책이 없다는 두려움, 이 모든두려움을 안고 나는 그 사람의 차에 올라탔다. - P230

내가 요 근래에 주로 맺어온 관계는 대체로 교류나 친목에 해당한다. 나의 교류란 주로 성과에 대하여 서로 거래하거나 응원하거나 침투하는 것이다. 거리와 감정과 체면 같은 것을 미세하게 측정하고, 적정선을 지키기 위해 항상 긴장을 해야 한다. 나에게 친목이란, 준거집단에 소속되기 위해 인맥을형성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어느 정도는모두가 모두에게 경쟁 상대이기 때문에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겸손을 스스로에게 무장시키고, 선을 지키기 위해서 다정함과 호의도 과하지 않은 선에서 유지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감정 노동이라고 일축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나‘라는존재는 대개 누군가의 도구로 취급된다. 사람을 만나서 힘을얻고 용기를 얻고 살아 있다는 기쁨을 얻는 일은 점점 드물어진다. 눈치를 보고 눈치를 주고 말조심을 하면서 경계심을최대한 갖추고 있되 경계심을 들켜서는 안 된다. 알고 지내는사람은 많지만, 친구라고 부를 만한 편한 사이는 두어 사람에불과하다. - P243

결속력 없이도 행할 수 있는 다정한 관계, 목적 없이도 걸음을 옮기는 산책, 무용한 줄 알지만 즐기게 되는 취미생활,
이름도 알지 못하는 미물들에게 잠깐의 시선을 주는 일, 아무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 싱거운 대화,
미지근한 안부 식물처럼 햇볕을 쬐고 바람을 쐬는 일. 인연이희박한 사람, 무관한 사람, 친교에의 암묵적 약속 없는 사람과나누는 유대감이 수수한 마주침을 누리는 시간이 나는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간에 사람은 목소리와 표정과 손길로실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P245

어떤 경우에도

어떤 경우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한 걸음도 앞으로 걸어갈 수 없는 시간이 올 것은 몰랐다.

어떤 경우에도
바깥을 두리번거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 P248

바깥을 돌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올 것은 몰랐다.

어떤 경우에도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고 마음먹던 시절이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인간을 이해하면 내가 훼손될 수 있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어떤 경우에도
인간을 용서해야 한다고 마음먹던 시절이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감옥에 갇힌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어떤 경우에도 도처에 새로 알게 되는 일들이 생긴다.

어떤 경우에도 도처에 새로 만나는 사람이 생긴다.

어떤 경우에도 도처에서 나는 새로 태어나야 한다.
죽을 때까지 완전하게 숨이 멎을 때까지 - P249

아무것도 아닌 장면을 오래 들여다볼 때가 많다. 하염없이.
생각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장면인 줄 알지만 그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내가 아는 말 중에 가장 기만에 가까운 말이 되어간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도무지 아무것도 아닐 수는 없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것이 요즘 나의 주된 업무이다. 아무것도 아닌 장면을 차곡차곡 모아서 이불을 내다 널듯이 세상에 내다널고 싶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가 우리집을 올려다보며, 아나도이불널어야겠다 생각할 수 있기를바라면서, 화분을대문바깥에 쪼로록 내다놓을 줄 아는 집처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발길이 머무는 사람이 없을 수는없는 것처럼.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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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아무도 살지 않던 땅으로 간 사람이 있었다
살 수 없는 장소에서도 살 수 있게 된 사람이 있었다
집을 짓고 창을 내고 비둘기를 키우던 사람이 있었다

그 창문으로 나는 지금 바깥을 내다본다
이토록 난해한 지형을 가장 쉽게 이해한 사람이
가장 오래 서 있었을 자리에 서서

우주 어딘가
사람이 살 수 없는 별에서 시를 쓰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가축을 도살하고 고기를 굽는 생활처럼 태연하게

잘 지냅니까,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할 줄 아는 말이 거의 없는 낯선 땅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잠깐의 반가움과
오랜 두려움뿐이다

두려움에 집중하다 보면
지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싶었던 사람이
실은 자신의 피폐를 통역하려 했다는 것을
파리처럼 기웃거리는 낙관을 내쫓으면서
나는 알게 된다

아파요, 살고 싶어요, 감기약이 필요해요,
살고 싶어서 더러워진 사람이 나는 되기로 한다

더러워진 채로 잠드는 발과
더러워진 채로 악수를 하는 손만을
돌보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했던 사람이
불구가 되어간 곳을 유적지라 부른다
커다란 석상에 표정을 새기던 노예들은
무언가를 알아도 안다고 말하진 않았다

그 누구도
조롱하지 않는 사람으로 지내기로 한다
위험해, 조심해, 괜찮아,
하루에 한 가지씩만 다독이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아무도 살아남지 않은 땅에서 사는 사람이 있다
살 수 없는 장소에서도 살 수 있게 된 사람이 있다
집을 짓고 창을 내고 청포도를 키우는 사람이있다


김소연 시집 <수학자의 아침>중에서

시인 정지용은 여행을 ‘이가락離家樂‘이라 했다. 집 떠나는 즐거움.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우선 근사한 여행지를 전제하지않아서 좋다. 그저 집을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그뜻이 좋다. 집을 떠나면 우선 나는 달라진다. 낯선 내가 된다.
낯설지만 나를 되찾은 것 같아진다. 내가 달라진다는 게 좋다.
달라질 수 있는 내 모습을 확인하는 일이 무엇보다 좋다. - P32

나에게 여행은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구별 짓고,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로 기꺼이 나아간다. 낯설어져서 비로소 새로워지는 나를 자랑하고 싶을 때,
엽서를 사러 나간다. 엽서를 고르는 데에 한나절, 엽서에 쓸문장을 고르는 데에 한나절을 쓴다. 엽서를 부치면 나는 내용을 잊는다. 그 내용을 기억하는 건 친구들의 몫이다. "나는 이곳에 와 있어"로 시작되는 엽서 한 장을 쓰기 위해서 어떤 하루를 다 쓴다. - P35

이번 여행에선 친구들이 내 가방을 들어주었다. 발에 깁스를 한 탓에 내 두 손은 목발을 붙잡아야 했다. 이번 여행에선친구들의 사진을 많이 찍어주었다. 해줄 수 있는 게 너무 없어서였다. 이번 여행에선 주로 앉아 있었다. 앉아 있는 그 자리에서 친구들이 멀리까지 갔다가 내게 돌아와 자신들이 본것에 대해 얘기해주면 나는 귀를 기울여 그 얘기를 들었다.
상상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던 나도 들려줄 이야기가 있었다.
두 사람의 뒷모습에 대해서. 걸음걸이에 대해서. 돌아올 때에달라진 표정에 대해서. - P59

터키에서 나는 길을 잃고 방황한 적이 없었다. 무거운 배낭때문에 힘들었던 적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보면, 잘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어도 그 말만 남기고 그냥 가는 사람은 한 번도 없었다. 주변 사람들을 불러와서, 내가 길을 제대로 알 때까지 나를 도와주었다. 교통카드 없이 현금만 갖고버스를 타서 당황했을 때에도, 버스기사는 괜찮다며 그냥 태워주었다. 내릴 정류장을 몰라서 옆에 서있던 승객에게 말을붙였을 때에도, 버스에 탄 승객들 모두가 한꺼번에 나에게 대답을 해주었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지도를 보고 있을 때에도 누군가 다가와 배낭을 들어주고 숙소까지 동행해주었다. 민박집 여자는 배부르다고 말할 때까지빵을 주었고, 차를 따라주었다. 매일매일 과일을 함께 먹자고나를 불렀고, 시시때때로 차를 마시자고 나를 불렀다. 금의환향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지만, 금의환향한 자가 누렸을 법한대접을 받았다. 터키를 여행한 다음부터는 여행가방을 끌며길을 헤매는 듯한 여행객을 보면, 나도 터키사람이 된다. 길만 가르쳐주지 않고 찾아가고 싶은 그곳까지 데려다준다. - P68

고산증 덕분에 호흡이 가쁘고 심장에 압박을 느끼고 두통과 메스꺼움에 시달렸지만, 그 도시가 좋았다. 가깝게 내려앉은 구름도 좋았고, 산등성이를 타고 형성된 빨간 지붕의 마을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거리를 걸어다니는게 좋았다. 긴장을바짝 하며 소매치기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움츠렸지만,
골목골목을 구석구석 걸어보고 싶어했다. 결국 지갑을 잃어버리고 말았지만, 당장 이 도시를 떠나야겠다 낙담했지만, 숙소로 돌아와 코카차를 끓여주는 한 사람의 미소 덕분에 오래오래 그 도시에 머물렀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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