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 성별이 화제가 되면 남성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매 맞는 남편도 있다", "여학생(여직원) 휴게실은 있는데, 남학생(남직원) 휴게실은 없다", "조선 시대에 비하면 여성의 지위가 나아졌다", "평등을 원하면 여자도 군대 가고 숙직해라", "돈은 내가 내고 포인트는 그녀가 쌓는다(데이트 비용)", "여자들은 불만만 많고 노력은 하지 않는다"…………. 이들은 성차별은 일부 여성들이 겪는 특수한 사례에 불과하며, 한국은 남녀가평등한 사회일 뿐 아니라 점차 여성 상위 시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음양의 이치처럼 원래 대칭적이며 성역할 내용은 자연의 이치에 맞는 합리적인 분업이다. 이런 조화와 균형을 깨뜨리고 분란을 일으키며, 모든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이들이 페미니스트"라는 것이다. 혹은 여성을 ‘보호‘하는 법이 그렇게 많이 만들어졌는데, 성차별? 이제는 없는 거 아닌가? 그리고 만일 법을 어기는 사람이 있다면, ‘페널티‘로 제재하면되지 ‘성차별 주장‘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 P23
사회 문제를 자연 현상으로 유비하는 것은 지배층의 오래된통치 전략 중 하나이다. 이를 본질화(naturalization)라고 하는데, 인간이 만든 것을 ‘신의 뜻‘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듯이, ‘자연의법칙‘이나 ‘과학‘으로 규정하면 영원한 진리처럼 여겨지는 효과가 생겨난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언어와 현실의 관계는 즉자적이거나 자명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언어가 있어야 현실도 인식할 수 있다는얘기다. 실재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현실(present)은 특정한위치(position)에서 언어를 만드는 권력에 의해 구성된 재현 (re/present)이다. 여성주의나 후기 구조주의는 ‘삶을 아는‘ 과정을중요시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도전한다. - P26
오늘날 이러한 인식은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여전히 만물의 영장이고, 인간은 여성과 남성으로 뚜렷이 구별되며, 종의 재생산을 위한 출산은 여성의 생물학적 본질이라는 통념은여전하다. 그리고 이를 거스르는 동성애는 비정상이라는 통념까지. 이러한 통념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우리의 통념을 재고해야 할까. 예를 들어, 여성의 출산은 자연의 질서일까, 사회적 선택일까. 여성주의는 출산이 여성의 의무가 아니라 선택 사항이며, 성별 분업의 하나라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당대 한국 사회의 저출산 - P27
더 근본적으로는 자연의 개념 자체, 어디까지가 자연의 영역인가라는 질문 역시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자연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발명되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것(Cogito ergo sum)이 아니다. 오히려 살아 있기 때문에 생각할수 있다는 것이다. 죽은 몸은 생각할 수 없다. 신분을 하늘의 질서로 생각했던 (봉건사회가 사라진 것 같지만 여전히 다른 다양한 형태의 격차가 맹위를 떨치는 시대다. 우리는 계급의 양극화가 신이 정해준 질서, 절대로 변화시킬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몸의 차이들 - 성별, 인종, 나이, 장애 등은 그렇게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강하다. 특히 암수(sex)의 구별과 그 ‘귀결‘인 성별은 자연의 질서라고 생각한다. - P28
니라 주체 일방의 논리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지만, 그 약속을 정하는 데 모든 사회구성원이 참여하지도 않으며, 약속은 계속 변화한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오해, 오식(誤), 편견,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객관적, 중립적, 보편적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해에 따라 진리가 폭력이 될 수도 있고, 백해무익한 정보가 절실한 신앙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언어는 신이 만든 공정한 말씀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사회적 산물이다. 누군가 먼저 말한 사람(주체)이 있는 것이다. 당연히, 언어는 필연적으로 당파적이다. 이분법은 언어가 만들어지는 가장 일차적인 - P29
이분법적 사고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제3의 성‘이든 모든 인간의 해방과 상상력을 제한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 글에서 이분법을 문제 삼는 것은 이분법이 대칭적이지 않음을 밝히려는 것이지, 이분법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는 처음부터 이분법적‘ 논리가 없었다면, 어떤의미도 형태를 갖추기 힘들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국어 시간에가장 많이 하는 연습은 반대말, 비슷한 말 공부다. 모든 언어가마찬가지인데 어떤 개념도 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개념을 이해하려면 반대말이나 유사어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전조차 이용할 수 없다. 사전은 "무엇은 무엇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후자의 ‘무엇‘을 모르면 단어를 찾아도 이해할 수 없다. - P30
이처럼 언어의 지위는 언어가 만들어진 역사적 맥락에 따라달라진다. 언어가 정해지면, 자신과 외부의 차이는 자연스러운것이 된다. 다시 말해, 이분법은 무엇인가를 자연스러운 것으로인식하게 만드는 인식의 절차이자 과정이다. - P32
이처럼 이분법은 두 개가 아니라 하나를위한 사고다. A가 아닌 것을 사용하고 배치하고 규정할 수 있는A의 권력을 말한다. 젠더(gender, 性別)는 남성의 여성 지배를 의미한다. 양성은 두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성성 하나만 존재한다. 남성성은젠더가 아니다. 남성적인 것은 남성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 P33
사실,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실제‘로 순수하게 존재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젠더는 나이, 인종, 계급 같은 다른 사회적 모순과 갈등하고 교차하고 조우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젠더는 원래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므로 양성 개념은 여성과 남성을 대립 구도처럼 보이게 할 뿐 남성과 여성 내부의 차이를 말하지 못한다. 우리는 흔히 여성다움이나 남성다움과 관련하여, "남성과 여성의 차이보다 개인별 차이가 더 크다."라고 말하지만, 성별화된 사회에서 인간은 개인보다 특정한 성정체성집단의 구성원으로서 강력한 영향과 제재를 받는다. 강력한 성별 규범은 내부의 차이가 드러나지 못하게 한다. - P34
을 받는다시 말해, 모든 것이 성별화된 사회라 해도 우리가 실제로남성과 여성으로 인식하는 ‘진짜‘ 남성과 여성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은 대단히 적다. 그래서 ‘부자 남성‘과 ‘예쁜 여성‘이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성별 사회에서 여성은 외모와 나이, 남성은 사회적 자원 여부가 남성과 여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 P36
모든 인간은 인간이기 전에, 남성과 여성이어야 하는 젠더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은 진정한 남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상대방의 기존 자원까지 갖추어야하는 압력이 추가되었다. 요즘 여성은 젊고 예쁜 데다 ‘능력 있는 개념녀‘여야 한다. ‘아줌마‘는 여성이 아니고(아저씨‘는 비칭이 아니기 때문에 남성으로 간주된다), ‘노숙자 남성‘은 남성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나 여성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회가 싫어하는‘, ‘저렇게 되고 싶지 않은‘, ‘바람직하지 않은‘, ‘매력적이지 않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은 남성과 여성이 아니다. 한편, 갓난아이나 노인은 성별 범주 이전에 나이가더 먼저 적용되는 구성원들이다. 이는 간혹 인종이나 특수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무속인, 종교인・・・・・・ )에게도 적용된다. 이처럼남성과 여성은 문화적 구성물이며 규범의 산물이지 생물학적 분류가 아니다. - P37
인터섹스는 통념처럼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과도한 사회적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문젯거리가 된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섹스 스펙트럼도 컬러 스펙트럼처럼 생각할 수 있다. 자연 세계에는 저마다 다른 파장, 주파수(wavelengths)가 있고 이는 빨강, 파랑, 오렌지, 노란색 따위로 변색된다(translate). 그러나 우리는 인위적 필요에 의해 그리고 다른 색깔과의 차이를 통 - P41
해, 오렌지와 레드 오렌지를 구별한다. 이 두 가지 색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구별될 필요가 있을 때 구별된다는 것이다. 마치 평소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가 흑백이라는 구분이 필요할 때, 그 색깔을 호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섹스 스펙트럼이바로 이것이다. 자연은 섹스 해부학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인간의 생식 기관은 크기, 모양, 형태가 다 다르다. - P42
이러한 현상은 분명히 젠더 계급 동맹을 주도하는 여성 주체의 문제이다. 노동 시장의 남성 중심적 제도와 문화는 단시일에변화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여성들은 지난 30여 년간 최선을다했고 그만큼 깨달아 가고 있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에서 이제는 "엄마, 다시 태어나면 그남자(아버지랑 결혼하지마. 나 낳지 말고 엄마 인생 살아."라고 외친다. "엄마처럼 살 - P52
지 않을 거야."라고 외친 딸들의 반면교사가 된 여성들이나 그이후의 여성들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는 얘기다. 평등의 기준이 경쟁, 승부, 부패, 우열이 작동 원리인 남성 중심의 ‘사회‘인 한, 진정한 양성평등은 없다. 평등한 세계에 대한대안적 사고가 가능해지고,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중 하나가 돌봄 노동이든, 자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든, 평등보다 책임감으로의 여성주의 윤리의 전환이든 다른 세계가 기준이되어야 한다. - P53
남성들은 자신의 삶에 아무런 변화 없이, ‘양성평등‘에 두려움을 느낄 것이 아니라 여성주의를 보편적인 사회 정의로 인식해야 한다. 동참까지 바라진 않지만, 한국 남성들은 자기 계발과시간 기획처럼, 인간으로서, 가족 구성원으로서 자기 관리부터선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매출액 상위 100개 대기업 여성 임원 비율은 2.3%이다. 한국의 남녀 평균 임금 격차는 100:52~62 사이를 몇 년째 맴돌고 있 - P55
다. 남성은 여성의 두 배 정도의 임금을 받으면서 집안일은 하지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맞벌이부부의 경우에도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여성의 6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상위‘는 어불성설이다. 늦은 귀가 시간, 세계 최고의 술 소비량, 매일 매일의 회식・・・・・… 이러한 일상 문화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가사와 육아 노동에서 면제된 남성이 스스로 그 노동에 참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현재 한국 사회가 여성의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성차별이극심한 사회에서 남성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모색을 제안해야 한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사회 정의의 문제이자, 남성 개인의 양심의 문제이다. 젠더 문제에 관한 한 남성에게는 ‘양심의 자유‘ 보다 ‘양심의 의무‘가 더 중요하다. 나는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여성 문제에 대한 ‘외면의 정치‘가 인간 본성으로 굳어질까 두렵다. 사회는 ‘여성 문제‘를 부담이나 갈등으로만 여기지 말고, 여성주의에서 대안적 삶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 - P56
이런 정치학을 채택한 이유는 퀴어란 용어의 등장 배경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레즈비언과 게이란 용어가 끊임없이 백인 중심의 경험으로 설명되었고, 1980년대 미국 사회에서 주류 혹은일군의 레즈비언 게이 운동이 ‘동성애란 성적 지향만 빼면 이성애와 다를 것 없다‘며 지배 규범적 문화 시민 되기 기획을 진행했다. 규범적 시민 되기는 일평생 남성 아니면 여성(이성애자라면일평생 ‘이성‘만, 동성애자라면 일평생 동성‘만)이라는 한 가지 젠더만 사랑하는 것을 새로운 규범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바이섹슈얼을 비롯해 다양한 성적 선호/지향이 배제되었고 트랜스젠더퀴어 역시 부적절함으로 추방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젠더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 비이성애-비동성애를 실천하는 다양한 존재와 역사가 삭제되었다. - P65
퀴어 정치학의 두 번째 의미는 정체성은 타고나며 동일한 정체성은 단일한 이해를 표방하는 집단이라고 주장하는 정체성 정치라기보다 정체성을 규정하고 그에 따르는 역할을 부여하는 권력 작동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다. 이것이 레즈비언 게이 정치학과 가장 큰 차이다. 레즈비언 게이 정치학은 레즈비언과 게이라는 정체성을 초역사적 성격으로 가정하고 각 범주가 안정적 섹슈얼리티/정체성이라고 확정하면서 논의를 전개하는 경향이 있다. 비록 퀴어 정치학이 레즈비언 게이 정치학의 어떤 성과를공유한다고 해도, 퀴어 정치학은 정체성을 안정되고 초역사적사건으로 가정하기보다 젠더와 섹슈얼리티라고 여기는 것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배치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권력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탐문한다. - P66
퀴어 범죄학의 또 다른 경향, 그리고 이 글에서 채택할 방법은미셸 푸코(Michel Foucault)와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가 사용한 비평(critique) 개념을 채택하는 데서 출발한다. 여기서 ‘비평‘은 ‘이것은 이래서 잘못되었고 저것은 저래서 잘못되었다‘며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과 권력 작동을 통해 발생하는 배제에 도전하고 이를 폭로하는 작업이다." 즉 옳고 그름을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사건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은폐되는 것. 당연시되는 것, 은폐와 당연시 여기는 태도로발생하는 폭력과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권력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이때 비평은 앞서 설명한 퀴어의 개념과 정확하게 연결된다. 이러한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매튜 볼(MatthewBall)은 퀴어를 젠더와 섹슈얼리티에서 분리하고, 퀴어가 어떤구체적 현상을 지칭한다는 가정을 피하고자 한다. - P73
람의 장발이 경찰의 단속 대상이다. 혹은 전직 국회의장의 명백한 성추행/성폭력 사건은 실제판결 내용과 무관하게 단순 해프닝처럼 취급되면서 ㅇㅇㅇ 전지검장의 행위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폭력이자 검찰 집단 자체의도덕적 문제로 다뤄지는 것처럼 음란 행위가 심각한 폭력이자범죄가 되고, 성폭력이 단순 해프닝이나 음란 행위로 해석되는것은 폭력에는 관대하고 음란에는 엄격한 한국 사회의 태도를반영한다. 이것은 한국에서 작동하는 지배 규범의 한 모습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존재를 인지 가능한 범주로 보고 어떤 존재를 인지 불가능한 존재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 P82
누가 괴물이고 무엇을 보호하는가? 지배 규범의 도덕 윤리를 밑절미 삼아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규정된/추방된 존재가괴물인가, 많은 괴물을 재/생산하며 사회구성원에게 가해지는성/폭력을 방치하고 방조하는 지배 규범 혹은 한국 사회가 괴물인가? 쾌락을 생산하는 음란 행위와 성행위를 범죄로 판결하는 현행법, 혹은 사회 규범이 정말로 보호하는 것은 성/폭력을재생산하는 바로 그 자신 아닌가? 지배 규범의 윤리에 따라 괴물로 추방된 존재인 나는 나와 같은 괴물을 ‘보호‘하기 위해 ‘괴물‘을 보호하는 사회에 질문하고 싶다. 괴물을 보호하라. 그런데누가 괴물이고 무엇을 보호하는가.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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