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여성주의는 양성평등일까?
이 책의 제목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는 내용에 충실한 표제다. 책의 요지는 간결하다. 인간은 애초부터 양성(兩性)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평등의 기준이 남성일 때 여성에게 ‘양성평등‘은 평등(等)이 아니라 이중 노동이 되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다. 따라서 이 책은 ‘여성주의(feminism)=양성평등(gender equality)‘ 이라는 오해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목표로 삼는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주의가 본격적인 사회 운동으로 등장한 시기는 1980년대 초반이다. 이후 여성 운동의 이념으로서 주도적역할을 해 온 양성평등 담론은, 최근 몇 년간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유례 없는 미소지니(misogyny, 여성에 대한 혐오) 현상을 통과하면서 ‘엉뚱한 길을 가게 되었다. 양성평등은 일종의 ‘지향‘ 인데 그것이 마치 ‘현실‘에서 이미 실현된 것처럼 남녀가 모든 - P7
면에서 대등하기 때문에, "남성도 여성을 혐오하고, 여성도 남성을 혐오한다"는 대칭적 논리로 오독된 것이다. 본래 언어는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이데올로기‘지만, 최근 ‘양성평등‘이라는 말처럼 반대 진영에 의해 완벽히 전유된 경우는 드물다. 그 효과도 엄청났다. 지난 30여 년간의 여성 운동의 경험과 역사는 재검토가 불가피해졌고, 많은 여성 운동 단체들이 전망을 모색하느라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여성주의는 성차별이 있는 현실을 다시 증명해야 할처지가 되었다. 여성 운동은 "여자 일베, 미러링이라는 또 다른혐오………"로 폄하되었다. 양성평등이라는 ‘무기‘는 여성이 쥐었을 때는 칼날이었지만, 남성이 쥐었을 때는 무소불위의 칼자루가 된 것이다. - P8
정희진이 양성평등을 질문하고 루인이 양성 개념을 문제화했다면, 권김현영의 글은 양성평등 프레임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현실을 다룬다. 미성년자의제강간(擬制强姦)은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하면, 동의 여부에 관계없이 강간으로 처벌하는 것이다. 권김현영의 글은 미성년자의제강간이라는 문제를 통해 청소년의 사회적 성원권과 성적 권리에 관한 여성주의 시각의 한 모델을 보여준다. - P14
이 책은 2년여의 준비 기간 동안 수십 차례에 걸친 필자들의사전 세미나와 상호 토론, 합평회, 아이디어 교환과 제안을 통한집단 창작물이다. 특히 이 ‘들어가는 글‘은 모든 필자가 수십 번의 첨삭을 교환한 합작품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연구 커뮤니티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깨달았고 각자의 사유를 교환하고 확장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더불어 커뮤니티가 지속되려면 상호믿음과 비판, 윤리적 태도가 필수적임을 깨닫게 된 성장의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가 비판받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역사를 채우겠는가."라는 나혜석의 말을 기억하며 독자들의 비판을 기대한다. 2016년 겨울, 필자들을 대신하여 정희진 씀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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