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자체도 교훈적이다. 사과 바구니는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지 않다. 바구니는 유리처럼 투명하고, 사과들은 공중부양 하듯 바구니 안에 떠 있다. 사과는 빨간색도 아니고 금색인데, 뚫어져라 보면 사과들이 납작한 그림에서 삼차원 형체로 변하면서 녹은 금박 같은 것이 사과 속에서 빛을 발한다. 따라서 이 그림은 선물(바구니 전체 안의 선물(사과들 안의 또 다른 선물(빛나는 에너지)을 보여준다. 각각의 사과는필시 각각의 셰이커교도를 대변할 것이다. 각자 내면의 선물로 따뜻하고 은은하게 빛나지만, 사과들의 크기가 모두 같기 때문에 누구도 공동체에서 두드러지지 않는다. 사과들을 한데 담고 있는 용기, 즉 투명한 바구니는 짐작건대 최초의 감상자들에게 신의 은총을 의미했을 것이다. 하이드는 책 표지를 대충 선택하지 않았다. - P240

만약 내가 인터넷에서 돈을 지불하지 않고 음악이나 영화를 훔쳤다면, 다시 말해 인터넷에서 뭔가를 얻어낸 다음 그것을 정신적 가치는있지만 금전적 가치는 없는 선물로 치부했다면, 나는 그 선물이 내 손에 도달하는 데 매개체가 되어준 창작자에게 무엇을 얼마나 빚진 걸까? 감사의 말 한마디? 진지한 관심? 시주 그릇에 넣는 라테 한 잔 값의 팁?
분명한 답은 그것이 결코 ‘공짜‘는 아니라는 것이다. 저작권 분쟁이확산되면서 이런 이슈들에 대해 엄청난 디지털 잉크가 쏟아졌다. 분명히 말하지만 해결책의 일부는 신세대 e청중에게 선물의 이치를 교육하는 것이다. 선물은 주는 사람이 선택권을 행사할 때 선물이다.  - P243

내가 만난 선물』의 독자들은 모두 이 책에서 통찰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본인의 예술 활동에 대한 통찰뿐 아니라, 일상을 너무 넓게차지하고 있어서 오히려 자세히 볼 틈이 없었던 문제들에 대한 통찰을얻었다고 했다. 누군가 나를 위해 문을 잡아주면 나는 그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빚진 걸까? 내 정체성을 다지려면 크리스마스를 가족과함께 보내야 할까? 만약 동생이 신장을 기증해달라고 부탁하면 즉각그러겠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동생에게 수천 달러를 청구해야 할까?
범법 행위를 요구받는 입장이 되기 싫으면 마피아의 선물은 사양하는게 좋지 않을까? 내가 정치인인데 로비스트에게 포도주 상자를 받아도 될까? 다이아몬드는 정말 여자의 ‘베스트 프렌드인가? 아니면 현금화가 불가능한 격정적인 손등 키스에 더 가치를 두어야 할까?
한 가지는 보증할 수 있다. 선물』을 읽기 전의 당신과 읽은 후의 당신은 같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이 책이 선물로서 가지는 위상이기도 하다. 선물은 단순한 상품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영혼을 변화시키니까. - P244

헨리 왕의 궁정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도사리고 있고,그들 모두 나름의 잇속을 챙기거나 참수의 도끼를 피해 다닌다. 독자가 이들의 뒤를 빠짐없이 따라가게 하는 것은 보통 재능이 아니다.
역사소설 쓰기에는 난관이 많다. 다수의 등장인물과 그럴듯한 속옷은 그중 단 두 가지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어떤 말씨를 써야 할까? 16세기 어휘는 못 알아들을 것이고, 현대 속어는 못 들어줄 것이다.  - P248

우리가 역사소설을 읽는 이유는 『햄릿』을 계속 보는 이유와 같다. 중요한 건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다. 우리는 플롯을 알지만 등장인물들은 플롯을 모른다. 맨틀은 크롬웰이 안전을 확보한 듯한 시점에 남겨두고 책을 끝낸다. 앤 왕비뿐 아니라 그를 저주하던 네 명이 방금 참수됐고, 더 많은 이들이 무력화됐다. 비록 ‘여우가 집에 간 사이 닭장이
‘누리는 평화‘에 불과하지만 잉글랜드는 평화를 목전에 두었다. 하지만사실 크롬웰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고, 그의 적들은 무대 뒤에 모여 불평을 토하고 있다. 책은 처음처럼 피에 젖은 닭털들의 이미지로 끝난다.
하지만 책의 끝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결말이란 없다." 맨틀이 말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결말의 실체에 대해 기만당한 것이다. 결말은 모두 시작이고, 이것도 그중 하나다. - P250

올해 레이철 카슨의 기념비적 저서 『침묵의 봄이 출간 50주년을 맞았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20세기 환경 서적 중 가장 중요한 책으로 꼽는다. 이 책은 20세기에 인간이 병충해 방제의 목적으로 만들어 대대적으로 사용한 무수한 화학약품이 생물권을 파괴하는 독이 된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레이철 카슨은 이때 이미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생태주의 작가였고, 해당 분야의 선구자였다. 카슨은 일반 독자들도쉽게 이해할 수 있게 과학을 설명하는 방법을 알았다. 또한 뭔가를 구하려면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카슨이 저술한 모든 것에서 자연 세계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빛을 발한다. 그녀는 ‘침묵의 봄』이 풍차를 향한 자신의 마지막 돌격이 되리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자신이 가진 수사학적 무기들을 골고루 연마했고, 연구들을 광범위하게 종합했다. 그런 다음 단순하면서도 극적인 프레젠테이션과 방대한통계자료를 결합했고, 환경보호를 위한 구체적 실천이 시급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이 책의 영향은 엄청났다. 많은 단체들, 입안들, 정부 기관들이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그 핵심 통찰들은 오늘날까지 주효하게 남아 있다. - P253

카슨에 대한 인신공격의 대부분은 20세기 중반의 여성관-약한 정신 능력, 지나친 감상주의, ‘히스테리‘ 경향에 기초한 젠더 차별적 비방이었다. 일례로 전 미국 농무부 장관 에즈라 태프트 벤슨(Ezra TaftBenson)이 황당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사적인 편지에서 카슨이 매력적인데도 미혼인 걸 보면 "필시 공산주의자일 것이라고 썼다. (대체 무슨뜻일까? 공산주의자는 자유연애에 탐닉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섹스를 배격한다는 뜻일까?)레이철 카슨은 이 모든 것을 꿋꿋이 견뎌냈다. 비방에 굴하지 않고 품위와 존엄과 용기로 맞섰다.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는지는 얼마 안가 분명해졌다. 그녀는 암으로 투병하다 1964년 초에 세상을 떴다. 이로써 『침묵의 봄』은 그녀의 임종 유언이 됐고, 더한 영향력을 얻었다. - P254

『침묵의 봄』은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도적잖은 파문을 몰고 왔다. 내 아버지는 숲을, 특히 캐나다 북부 대부분을 뒤덮은 침엽수림을 파괴하는 해충 침습을 연구하는 곤충학자였다.
아버지는 1930년대 내내 삼림 곤충학자로 일하며 살충제 혁명의 도래를 보았다. 처음에는 기적과 같았을 것이다. 살충제에 내성 있는 곤충은 아직 없었고, 1차전의 결과는 싹쓸이 압승으로 보였다. 약품 제조업 - P254

체들은 해충 문제에 대한 화학적 해법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그 대상은 삼림 해충에 그치지 않았다. 사과·면화·옥수수를 비롯한 각종 작물의 해충, 질병 매개 곤충, 짜증 나는 모기, 노변 야생화로 확대됐고, 결국은 모든 벌레와 원치 않는 곳에 자라는 모든 것으로 번졌다. 약품 살포는 싸고, 효과적이고, 인간에게 안전합니다. 쓰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일반 대중은 약품 회사들의 홍보를 믿었다. 마시지만 않으면 사람에게 안전해요. 1940년대 우리 어린 시절의 즐거움 중 하나는 플리트건을 휘두르는 것이었다. 플리트건은 DDT 살충제를 담은 분무기인데,
그걸 뿌리면 실제로 어느 벌레나 죽었다. 우리는 플리트건을 들고 집파리를 추적 암살하거나 장난삼아 서로를 쏘면서 뿌연 DDT 입자들을흡입했다. - P255

그런데 이런 때에 레이철 카슨이 비밀을 폭로했다. 우리가 그동안속아왔다고? 단지 살충제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진보와 발전과 발견에대해서도 전부 다 거짓이었다고?
그러니까 이것이 『침묵의 봄』의 핵심 교훈 중 하나였다. 진보라는 명찰이 붙은 것들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다른 교훈도 있었다. 사람과 자연을 가르는 경계는 우리의 인식에만 있을 뿐 실재하지 않는다. 즉우리 몸의 내부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연결돼 있고, 우리의 몸에도 생태계가 있어서, 그리로 들어가는 것-우리가 먹거나 흡입하거나 마시거나 피부로 흡수하는 것은 우리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금은 이것이 당연한 상식이 됐기 때문에 일반의 생각이 이와 달랐던 시대를 상상하기 쉽지 않다. 세상은 레이철 카슨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카슨 이전의 자연은 그저 ‘그것(it)‘이었다.  - P257

레이철 카슨이 살아 있다면 지금의 우리에게 무슨 말들을 했을지 궁금하다. 베트남전쟁 때 미군은 베트남 정글들을 말려 죽일 독성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를 태평양 너머로 무지막지하게 실어 날랐다. 카슨이 이를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인류가 파멸의 낭떠러지로 향한다고 경고하지 않았을까? 이때 파괴된 정글들은 여태 회복되지 않았고, 당시 고엽제에 노출됐던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아직도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카슨의 경고는 거기서 끝나지않았을 것이다. 에이전트 오렌지의 해양 유출에 따른 결과를 상상해보라. 바다 남조류의 죽음은 곧 지구적 재앙이다. 지구 대기권 산소량의50~80퍼센트를 해조류가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 P261

카슨이 살아 있다면 자신이 뿌린 희망의 신호들도 봤을 것이다. 카슨 덕분에 사람들이 문제의 일부에라도 경각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개인이 모든 문제를 놓치지 않고 파악하기란 어렵다. 우리의 첨단 기술 문명은 구멍투성이고 그 누출물들이 우리에게 떨어지고 있다. 우리가 혁신을 할수록 우리가 호흡하고, 먹고, 피부로 흡수하는 화합물의목록이 길어진다. 폴리염화비페닐, 염화불화탄소 냉매, 다이옥신 등은유해성이 밝혀져 얼마간 통제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유해 화학물질들이 환경에 만연하고, 해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화학물질들이 여기에 가세한다. - P262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본인이 직접 피해자가 되지 않는 한, 보이지 않는 독성을 걱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지 않는다. 인간은 단기적종이다. 인류사의 대부분을 그렇게 살았다. 대개의 사냥꾼과 약탈자처럼 우리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포식했다. 하지만 우리의 보금자리인 지구를 망치는 일을 멈추지 않으면 우리는 정말로 단기적 종으로 끝난다.
내 아버지의 암울한 예언처럼 바퀴벌레가 지구를 접수하게 된다. 환경운동가들을 악마로 만드는 일 - 레이철 카슨에게 일어났고 지금도 계속 일어나는 일은 이 운명을바꾸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인식이 높아졌다. 환경 단체들로 가는 기부금 비중은 여전히 초라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인류 최대의 질문에 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들이 많아졌다. 그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인가?  - P262

환경 단체들이 피라미드를 이루고 그 위에 그린피스, 세계자연기금,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Birdlife International) 같은 국제단체들이 있다. 이들 덕분에 지금의 우리는 카스의 시대에 비해 지구 생명의 자초지종에 대해 훨씬 많이 안다. 해류가 어디로 흐르는지, 숲이 어떻게 영양분을 보충하는지, 바닷새 무리들이 어떻게 해양 생물을 풍요롭게 하는지를 안다. 우리는 1940년대 이후 어류 자원의 90퍼센트를 파괴했다. 하지만 해양 공원 지정으로 회생을 도모 중이다. 우리는 새들이 어디에 둥지를 트는지, 그들이 계절이동을 하며 어떤 위험을 헤쳐나가는지 안다. 우리는 서식지 보존의 중요성을 알고, 체계적으로 보호지역을 지정해나가고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중요조류서식지(IBA) 지정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방대해진 지식에 비해 공동의 정치적 의지는 강하지 않다.
변화를 향한 에너지와 보존 활동은 앞으로 풀뿌리 네트워크에 기댈 수밖에 없고, 지금도 대부분 거기서 나온다. - P263

제가 1960년대에 처음 청중과 질의응답 세션을 갖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묻곤 했습니다. "언제 자살할 생각이세요?" 저는 여성시인이었고,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의 망령이 아직 떠돌던 시대였고 자살이 필수로 여겨졌습니다. 여권운동 초기에는 이런 질문이 왔습니다. "남자들을 증오하세요?" 1980년대가 되자 사람들이 글쓰기 과정에 대해 묻기 시작했습니다. 1985년 이후에는 시녀 이야기』에 대해말하고 싶어 했고, 그건 지금도 그렇습니다. 국가가 여성의 신체를 관리하는 정책에 대해 제가 정곡을 좀 세게 찌른 모양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질문이 들어옵니다. "희망이 있나요?" 제 대답은 "언제나 희망은 있죠"입니다. 희망은 내장형입니다. 그리고 잘 옮습니다. 희망이 있는 곳에 희망이 더 많아집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들은노력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노력뿐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좀비의 진정한 의미일지 모릅니다. 그들은 우리입니다. 다만 희망을 뺀 우리를 보여줍니다.
여러분에게 희망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 P285

하지만 책을 쓰는 데는 다른 이유들도 있다. 플롯보다는 내용과 관련된 이유들. 우리는 기이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한편에서는 온갖 생물학, 로봇공학, 디지털 기술이 매순간 발명과 발전을 거듭하며 한때 불가능이나 마법의 영역에 있었던 위업들을 실현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우리의 생물학적 터전을 숨 막히는 속도로 파괴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수세기 동안 서구에서 찬양과 홍보의 대상이었던 민주주의가 첨단 감시 기술과 기업 자본의 힘에 의해 안에서부터 붕괴하고 있다. 현재 인간사회는 세계 인구의 단 1퍼센트가 전체부의 80퍼센트를 장악한 극단적 가분수 피라미드를 이룬다. 이는 본질적으로 위태로운 구조다. - P291

어린 내 눈에 사진 속 인물은 동화에 나오는 마법의 생명체 같았다.
적어도 천 살은 된 듯한, 믿을 수 없이 나이 든 여자. 화려한 착장에 당대의 화장법에 충실했음에도, 그 효과는 카니발 분위기였다. 변장한멕시코 해골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총기와 냉소가 빛났다.
그녀는 자신이 뿜어내는 엽기적 인상까지는 아니어도 다분히 기묘한분위기를 즐기는 듯했다. - P294

이것이 이자크 디네센 단편집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1934)에서 의도했던 분위기였을까? 그중 「엘시노어의 저녁 식사(The Supper atElsinore)」에서 데 코닝크 집안의 세 남매는 살아 있는 메멘토 모리(죽음의 상징)로 묘사된다. "오빠의 용모 못지않게 두 자매의 모습에서도, 독특한 분위기의 미모로 유명했던 집안 내력을 한눈에 실감할 수 있었다. 심지어 벽에 걸려 있는 세 남매의 어린 시절 초상화마저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만 세 사람의 머리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전반적으로해골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었다." - P294

이자크 디네센은 『라이프 지의 사진을 찍을 당시 이미 투병 중이었다. 하지만 9년 후 뉴욕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도 당당함은 여전했다. 그녀는 최고의 명사 대접을 받았고, E. E. 커밍스와 아서 밀러를 포함한 유명 작가들이 그녀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녀가 참석하는 자리에는 인파가 몰렸고, 더 많은 사진들을 낳았다. 그 후 3년만에 그녀는당연히 미리 알고 있었을 죽음을 맞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녀의 현란한 자기표현은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죽음을 앞 - P294

둔 투병 시기에는 한때 빼어났던 미모가 망가진 모습을 카메라로부터숨기고 은둔을 택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디네센은 세간의 스포트라이트에 자신을 온전히 노출시켰다. 혹시 그녀는 자신의 문학을 지배한모티프 중 하나-거의 확실한 죽음에 맞선 용감하지만 부질없는 제스처-를 직접 체현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솔깃한 추측이다.
뉴욕은 디네센의 마지막 무대로 어울리는 곳이었다. 1934년에 그녀가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로 미국을 사로잡으며 인기를 얻은 곳이 바로 뉴욕이었다. 당시 이 책은 단편집은 판매가 저조하고, 작가가 무명이며, 이야기 자체도 괴이하고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고루한 이유로 출판사들에게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 결국 해리슨 스미스 & 로버트 하스라는 미국의 작은 출판사가 출간을 결정했다. 단, 조건이 있었다. 유명 소설가 도로시 캔필드(Dorothy Canfield)의 서문을 달아야 하고,
작가에게 선인세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 P295

카렌 블릭센은 도박을 했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도박에서 이겼다. 『일곱 개의고딕 이야기』는 모두의 예상을 깼다. 무엇보다 ‘이달의 북클럽(Book ofthe Monch Club)‘의 선택을 받았다. 대대적인 관심과 대량 판매를 보장받는 일이었다.
이제는 카렌 블릭센이 조건을 내걸 차례였다. 그녀는 이자크 디네센이라는 필명을 쓰기로 했다. 디네센은 결혼 전 성이고, 이자크는 ‘웃음‘을 뜻하는 이름 아이작(Isaac)의 덴마크어 버전이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노령에 예상치 못한 늦둥이를 낳고 기뻐서 붙인이름이었다. 블릭센의 미국 출판사는 필명을 쓰지 말 것을 권했지만소용없었다. 그녀는 다중성을 띠기로 작정했다. (그녀는 이를 통해 남성 - P295

또는 적어도 중성이 되고자 했다.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여류‘ 작가의 새장에 갇히고 싶지 않았던 걸까.)작명은 적절했다. 카렌 블릭센의 작가 데뷔는 사실상 늦고 예상치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1931년 파산 상태로 아프리카에서 덴마크로 귀국했다. 결혼은 파경을 맞았고, 그녀의 아프리카 커피 농장은 빛에 넘어갔고, 연인이었던 영국 귀족 출신 맹수 사냥꾼 데니스 핀치 해턴은경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엄밀히 말해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가 그녀의 첫 책은 아니었다. 갓 스무 살 때 처음 단편집을 낸 후 그녀는 글쓰기 대신 결혼과 아프리카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 삶은 이제 끝났다.
마흔여섯 살의 그녀는 적막함과 절박함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 느낀 건 아니었다. 그녀는 창의적 에너지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 P296

디네센에게는 사라진 나라가 보인다. 그녀는 그곳을 세심함과 애정을가지고 묘사한다. 거기에는 편협함, 속물주의, 억눌린 삶 같은 불쾌한 측면들도 포함돼 있다. 그곳으로 돌아갈 방법은 스토리텔링밖에는 없다.
그 나라는 영원히 사라졌고, 다만 회자될 뿐이다. 그녀의 작품은 금욕적이고 명민한 노스탤지어의 맥이 관통하고, 그녀가 종종 배치하는 냉소적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애가 느낌을 잃지 않는다.
그럼에도 디네센이 창작 과정에서 느꼈을 즐거움과 그녀가 이날까지 독자에게 제공해온 즐거움은 결코 적지 않다.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는 주목할 만한 커리어의 서막이었고, 이자크 디네센을 20세기의주요 작가 반열에 올렸다. 제임스 조이스가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끝에서 미노스의 미로 설계자 다이달로스를 불러냈듯"옛날의 아버지 - P300

여, 옛날의 장인(匠人)이여"-앞으로 많은 독자와 작가들이 이자크 디네센을 부르게 될 것이다. "옛날의 어머니여, 옛날의 이야기꾼이여, 지금 그리고 영원히 저를 도우소서.‘
「라이프」지의 사진 속에서 그녀가 우리의 시선을 당당하게 마주한다. 생생한 눈빛과 화려한 치장의 불가사의한 해골의 모습으로. - P301

1963년에 우리가 몰래 읽던 또 다른 여성은 시몬 드 보부아르였다.
하지만 우리 같은 식민지 출신 소녀들의 어린 시절은 빳빳이 풀 먹인페티코트와는 거리가 멀었고, 대단히 프랑스적이지도 않았다. 우리는차라리 제국의 변방에 살던 졸부의 딸과 더 공통점이 많았다. 레싱은1919년 이란에서 태어나 영국 식민지였던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의대농장에서 자랐고, 두 번의 결혼 실패 후 장래도 전망도 없이 도망치듯 영국으로 갔다. 우리 식민지 소녀들이 장래도 전망도 없이 유럽으로 내뺐던 것처럼.
‘레싱의 에너지 중 일부는 변방 출신이라는 배경에서 왔을 것이다.
바퀴가 회전할 때 불꽃이 튀는 곳은 가장자리다. 또한 그녀의 성장 배경은 타자들의 입장과 역경에 대한 통찰을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영원히 주변인에 머무를 것이며, 언제까지나 ‘진짜 영국인‘은 되지 못할것임을 알았다. 그것을 안다면 잃을 것도 적다. 그래서인지 도리스는무엇을 하든 혼신을 다해서 했다.  - P309

나는 시몬 드 보부아르는 실제로 만난 적이 없다. 어릴 때는 상상만해도 오금이 저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도리스 레싱은 실제로 만난 적이 있다. 그것도 여러 번. 그 만남들은 모두 문학적 맥락에서 일어났고,
매번 그녀는 젊은 여성 작가가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선배였다. 친절했고, 도움과 관심을 아끼지 않았고, 영국 내 비영국인 작가들의 위치에대해 남다른 이해를 갖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로 희화된다. 여성 작가들은젊은 여성 작가들에게 악녀 크루엘라 드빌 아니면 착한마녀 글린다이다. 지금까지 나도 내 몫의 크루엘라들을 만났다. 하지만 레싱은 글린다들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여성 작가들의 귀감이었을 뿐 아니라, 머나먼 오지 출신 작가들의 좋은 본보기였다. 그녀는 너무나 뚜렷이 보여주었다. 아무 배경이나 기반이 없는 사람도 재능과 용기가 있다면,
역경과 맞서 싸울 뚝심이 있다면, 그리고 약간의 행운이 따라준다면작가가 오를 수 있는 최고봉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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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디킨스의 은밀한 의도는 따로 있었다. 한때 이 작품의 가제였던 ‘쇠망치 (The Sledgehammer)‘가 암시하듯, 그의 의도는 그가 열중했던 사회정의를 향한 작은 문학적 봉기였다. 그는 이 작품에서 탐욕과빈곤을 대비시키고, 개인적 박애의 확산이라는 해독제를 제안했다. 조지 오웰도 언급했듯, 디킨스는 사회적 부당함에 격노하는 사람이었지만 전면적 정치혁명을 촉구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중 어느 것도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 에버니저 스크루지의 압도적인 장수와 인기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스크루지는 햄릿처럼, 자신을 낳은 원작에서 독립한 캐릭터들 중 하나다. 크리스마스캐럴』을 읽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스크루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유가 뭘까? 내가 불멸의 스크루지를 처음 접한 것은 언제였으며,
어째서 나는 스크루지라면 사족을 못 쓰게 되었나? 날 때부터 스크루지를 알았던 것처럼 느껴진다. 1940년대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읽어주던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은 게 처음이었을까?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그때는 라디오 시대였으니까.  - P196

어찌 됐든, 디즈니 만화의 스크루지 맥덕을 알게 된 일곱 살 무렵에는 나도 ‘스크루지‘란 이름이 의미하는 바를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는맥덕의 늙고 교활한 껍데기 속에 다정하고 관대한 맥박이 뛰고 있다는깨달음도 포함돼 있었다. 아기 오리 세쌍둥이가 스크루지 삼촌이라면좋아 죽는 것이 분명한 신호였다. 맥덕은 장난치고 놀 때는 어린 조카들 못지않게 유치하게 행동했기 때문에 웃기기도 엄청 웃겼다.
이것이 원작의 스크루지를 이해하는 한가지 열쇠다. 그는 마음속으로는 어린아이다. 우리가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처음 만나는 그는 겉은 늙은이지만 상처 입은 아이다. 스크루지를 쓰면서 디킨스는 자기내면을 깊이 파고들었고, 자신의 창조물에 자신의 숨겨진 고통을 상당량 투영했다. 디킨스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절망적이었던 시기, 그의 무책임한 아버지가 채무자 감옥에 갇히고 어린 그가 학교를 떠나구두약 공장에서 일하며 궁핍한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시절을 결코 잊은 적이 없었다. 그 시절이 영원히 이어지진 않았다.  - P197

비참한 곳에 방치되고 잊힌 의지가지없는 아이의 모습을 한 외로움.
이것이 스크루지가 연기한 디킨스의 악몽이다. 노년까지 이어진 스크루지의 구두쇠 성향을 낳은 것은 바로 이 악몽이다. 스크루지의 어린누이가 학교에 와서 그에게 집에 가자고 했던 순간도 아니었고, 스크루지가 페지위그 씨의 수습생으로 일하던 시절의 다사다난함도 아니었다. 스크루지의 유명한 욕설 "망할 성탄!(Bah! Humbug!)"에는 이런 뜻 - P198

이 있다. "나는 인간적 나눔과 행복의 가능성 따위 믿지 않아. 인생에서가장 중요한 시기에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것들이야." 환대와 박애라는 크리스마스 정신은 사기에 불과했고, 스크루지의 어린 시절이 그명백한 증거였다. 얼마쯤은 디킨스의 어린 시절도 그랬다. ‘누추하기짝이 없는 학교‘는 구두약 공장이었고, ‘아들을 방치하는 무정한 아버지는 빚지고 감옥에 가면서 아들에게 고통을 안긴 아버지였다. 스크루지의 심장은 여물기도 전에 시들어버렸다. 디킨스의 심장이 그렇게될 뻔했기 때문이다.
구두약 공장 시절로 인해 디킨스는 평생 두 가지 충동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다. 하나는 파산에 대한 공포였다. 이 공포는 그를 광적으로돈벌이에 주력하게 했다. 다른 하나는 아랑을 베풀려는 욕망이었다.
만약 과거에 누군가 관대함을 베풀었다면 어린 디킨스는 구두약 공장의 노동을 면했을지 모른다.  - P199

어린 팀을 더 간단하고 더 간접적인 방식으로 보내버리며 연민을 일으키는 것쯤 디킨스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팀은 구조될 수 있는 아이다. 과거에 구조되지 못했던, 또는 너무 늦게 구조됐던 스크루지와는 다르다. 그리고 스크루지 본인이 구조자가 될 수있다. 어린 시절 그에게 아무도 베풀지 않았던 구원의 관대함을 이제그가 팀에게 베풀 수 있다. 그는 ‘제2의 아버지‘가 될 수 있다. 그것은디킨스 본인은 결코 가져보지 못했던, 그래서 그가 그렇게 반복적으로만들어냈던 자애롭고 유능하고 재정적으로 든든한 아버지다.  - P200

우리 시대는 영혼의 구원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시대다. 대신 지연된 깨달음과 치유 과정을 즐겨 말한다. 어쩌면 스크루지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최선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해석이 무엇이든, 스크루지는 문학 캐릭터를 위한 유일하고 진정한 시험을 통과했다. 즉 그는 오늘날까지 새롭고 생생하게 남았다. 스크루지는 죽지 않는다! 티셔츠에 어울릴 문구다. 그렇다. 그는 살았고, 우리는 그와 함께 기뻐한다. - P201

대아, 맞다. 글쓰기. 삶.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것이 문제다. 삶을 살 수도 글을 쓸 수도 있지만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기는 어렵다. 삶은 글의 주제가 되기도 하지만 원수이기도 하니까.  - P202

독자에게 바치는 기도


미지의 독자여, 그대가 누구든
그대가 가까이 있든 멀리 있는, 현재의 사람이든 미래의 사람이든, 심지어 과거의 혼령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아니면 인생의 중반에 있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또는 이 가상의 양극을 잇는 연속선상의 어디에 위치하든
종교가 무엇이든, 종교가 있든 없든, 정치적 견해가 무엇이든, 정치색이있든 없든
키가 크든 작든, 머리가 풍성하든 벗겨지기 시작했든, 건강하든 아프든,
골프 선수든 카누 선수든 축구 팬이든, 어떤 스포츠를 하고 어떤 취미에 - P211

빠져 있는
그대가 작가이든, 독서 애호가이든, 아니면 교육제도의 강제에 따라 원치 않은 독자가 된 학생이든
그대가 어떤 방식으로 읽든 종이책으로 읽든 전자책으로 읽든
욕조, 기차, 도서관, 학교, 교도소, 비치파라솔 아래, 카페, 옥상정원, 손전등으로 밝힌 이불 속, 기타 무수히 많은 장소 중에서 그대가 읽는 곳이 어디든
우리 작가들이 말을 거는 상대는 언제나 바로 그대, 미지의 존재이자 유일무이한 존재인 그대입니다.
오 독자여, 영원히 살기를! (그대 개별 독자는 영원히 살지 않겠지만, 이렇게말해야 재밌고 듣기 좋으니까요.)우리 작가들은 그대를 상상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상상해야 합니다.
그대가 없다면 글쓰기란 의미도 목적도 없는 활동이 되고 맙니다.
글쓰기는 읽을 자유가 존재하는 미래를 상정하기에 본질적으로 희망의 행위입니다. - P212

미지의 독자여, 우리는 마술처럼 그대를 만들어내고 불러냅니다. 보세요, 그대는 존재해요! 그대가 방금 여기서 그대의 존재에 대해 읽었다는것 자체가 그대가 존재한다는 증거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말하려는 것이다. 2010년 7월 10일에 내가 이 말들을 쓸 수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여러분이 종이와 화면을 통해 지금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 - P212

‘정치적 대리인으로서의 작가‘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어려운 일이다. 나는 작가들을 딱히 정치적 대리인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 동네북이라면 모를까. 정치적 대리인은 의도적으로 선택한 행위이자 본질적으로 대단히 정치적인 행위를 암시하는데, 모든작가가 이렇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많은 작가들이 정치에 있어서 벌거벗은 황제를 본 아이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황제의 나체를 언급한다. 주제넘고 싶어서도, 찬물을 끼얹고 싶어서도 아니다. 단지 그들 눈에 옷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은 사람들이 왜 자신에게 고함치는지 몰라 어리둥절해한다. 위험한 종류의 순진함일 수는 있지만 흔한 일이다. 소설 『악마의 시』의 저자에게 파트와의 사형언도가 내려졌을 때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저자 살만 루슈디 (SalmanRushdie) 본인이었다. 루슈디는 그저 자신이 무슬림 이민자들을 문학적지도에 올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 P214

소설가나 시인이 항상 이런 의도를 가지고 글을 써야 한다는 뜻은결코 아니다. 소설을 그것이 내세우는 대의의 타당성이나 ‘정치적 정당성‘으로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검열로 이어지는 사고방식이다.
혁명은 종종 젊은 작가들을 잡아먹는 결과를 낳았다. 권력투쟁의 승자들이 한때 허용됐던 작품들을 이단으로 선언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내 모태 공산주의자 친구가 최근 자기 부모의 공산주의그룹을 두고 한 말처럼, "그들은 언제나 작가들에게 가혹했다".
혁명가, 수구 반동, 종교적 정통파, 또는 각종 대의의 열성 지지자들에게 소설과 시는 수상쩍은 것이며 부차적인 것이다. 많은 이들이 글 - P216

쓰기를 대의에 봉사하는 도구로 취급한다. 만약 작품이나 작가가 선을지키지 않거나 나아가 대놓고 선을 넘을 경우 해당 저자는 기생충으로매도되거나 배척당한다. 또는 처리된다. 파시스트들에 의해 재판도 없이 총살당해 암매장된 에스파냐의 위대한 시인 로르카(Federico GarciaLorca)처럼.
하지만 소설가와 시인에게는 글쓰기 자체가 직업이자 예술이며, 글쓰기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이는 설사 다른 충동이나 영향력이 글쓰기에 개입할 때도 변함없다. 자유에 다가가는 사회란 인간의 광범위한 상상력과 자유분방한 발언이 허락되는 곳이다. 작가에게 무엇을 어떻게 쓰라고 참견하지 못해 안달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중 일부는 토론회에 패널로 나와 ‘작가의 역할‘이나 ‘작가의 도리‘를 논한다.
마치 글쓰기 자체는 경박한 소일거리에 불과하다는 듯이, 애국심 고취, 세계 평화 함양, 여성의 지위 향상 등 뭐라도 대외적인 역할과 도리를 갖다 붙일 수 없는 글쓰기는 아무 가치가 없다는 듯이. - P217

짧게 답하면 이렇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환경‘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 마시는 물, 먹는 음식- 이 없다면 어떤 문학도 없을 겁니다. 우리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요. 사람은 대개 물 없이 사흘이면 죽습니다. 우리가 호흡하는 산소가 처음부터 지금처럼 지구 대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건 아닙니다. 산소는 녹색식물이 만든 것이고, 녹색식물이 지금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식물을 모두 없애버리면 우리도 없어집니다. 지구 온도가 더 올라가면 우리 행성은 살수 없는 곳이 됩니다. 모든 생명체가 해당되진 않겠죠. 바다가 끊어 없어지지 않는 한 일부 심해 생물들은 분명히 살아남을 겁니다. 하지만인류는 도리 없이 사라집니다.
이런 이유로 환경 보존은 문학 존속의 전제 조건입니다. 환경을 지금과 비슷하게라도 보존하지 못하면 여러분과 저의 글쓰기, 모두의 글쓰기는 그저 무의미해질 뿐입니다. 그걸 읽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을 테니까요. - P222

하지만 저는 예술과 자연이 그렇게 대단히 분리돼 있다고 생각하지않습니다. 예술은 원래 자연과 뒤얽혀 있었고 애초에 자연에서 나왔으며, 특히 문예는 한때 인간 종(種)의 존속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는것이 저의 전제입니다. 저는 이 문제를 두 갈래로 고려하고 싶습니다.
한편에는 구술이나 문자를 통한 스토리텔링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이야기의 기록과 전파 방법으로서의 글쓰기 자체가 있습니다.
먼저, 스토리텔링, 서사 행위라고도 하죠. 저와 함께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실까요. 도시와 마을이 있기 전으로, 농경이 시작되기 전으로요.
스토리텔링에는 두 가지가 요구됩니다. 언어와 상징적 사고. 이 두능력은 아주 오래됐습니다. 최근 연구에서 네안데르탈인이 확실히 언어를 보유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네안데르탈인에게는 장례 의식과 음악과 신체 장식도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네안데르탈인이우리와 별개의 종이며 우리의 출현으로 멸종했다는 이전의 주장과 달 - P224

리 인류는 네안데르탈인의 염기서열 일부를 공유한다고 합니다. 만약우리와 네안데르탈인이 교접해서 둘의 유전자를 모두 지닌 번식력 있는 후손을 낳았다면, 우리와 네안데르탈인은 사실 같은 종의 하위집단들이었던 거죠. 그렇다면 우리와 네안데르탈인이 분기하기 전의 공통조상 때부터 언어 사용과 상징적 사고가 있었을 겁니다. 또는 적어도그것을 가능케 할 패턴들을 보유했을 겁니다.
이처럼 언어와 상징적 사고는 까마득히 오래됐습니다. 개체발생은계통발생을 반복한다. 이것이 생물학이 주문처럼 외는 말입니다.  - P225

이야기의 효과는 막강했습니다. 이야기에 보호기제가 내장되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초자연적 존재가 이야기에 등장하게 됩니다. 마땅한 대우와 존경을 해주면 성공적인 사냥으로 우리에게 보상하거나 적어도 우리를 잡아먹지 않을 존재요, 사실
‘초자연적‘이란 말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그것이 자연과 동떨어진 존재는 아니었으니까요. 오히려 처음에는 자연에 있거나 자연을 이루는것들이었습니다. 환경에 있는 모든 것, 심지어 돌과 나무도 정령이 깃든 존재였고, 이 정령들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할 경우 우리에게 등을돌리고 치명적인 불운을 안길 수 있었습니다.  - P228

하지만 이야기 기록 기술들도 자연에서 나왔어요. 쓰기 위해서는 먼서 문자, 즉 상징체계가 필요했습니다. 때로 문자는 소리를 적는 기호였습니다. 이때는 소리 기호들을 연결해 단어를 만들었죠. 또 때로는문자 자체가 단어나 사물을 상징했습니다. 고대 이집트 문자와 중국문자를 비롯한 많은 문자들이 이렇게 사물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모든 문자가, 심지어 영어의 ABC도, 자연에 있는 형상들에 기초했다고 합니다. - P229

위기일발로 치닫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우리 작가들은 어떤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요? 어떤 종류의 이야기가 우리가 속한 인류 공동체에 도움이 될까요?
말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모르니까요. 다만 이건 압니다. 우리가 희망을 놓지 않는 한우리는 아직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할 것이고, 우리에게 시간과 재료가 있는 한 우리는 그것을 계속적어나갈 겁니다. 이야기를 하고, 듣고, 전달하고, 거기서 의미를 끌어내려는 바람은 우리 인간에게 내장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환경‘, 그리고 앞서 언급한 환경에 닥친 온갖 위기들. 우리 작가들이 나서서 이것들을 다루게 될까요? 다룬다면 어떻게요? 설교 투의 경고를 통해서?
인류에게 주어진 최선의 선택을 착실히 실천하는 서사를 통해서?  - P232

우리가 쓸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이 변화들을 반영하게 됩니다. 그러다 때로는 우리가 현대판 샤먼 무아경과 영적 여행을 통해 이계(異界)에서 뭔가를 건져내게 될지도 모르죠. 그 뭔가가 설명서는 아닐 겁니다. 설명서 같은 건 없어요. 그보다는 부적에 가까울 겁니다. 우리를 보호하는 부적이요. 효험이 있을지는 모르지만요. 아니면 위험 목록일 겁니다. 아니면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기 위한 주문일 겁니다.
아니면 우리가 다시 동물과 대화하고 식물의 지시를 받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은유들이 어떤 형태를 띠게 될지 누가 알겠어요? - P233

주인공은 과거를 낱낱이 기억한다. 그때의 폭력과 학대와 반목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와 동시에 한때 자기피부처럼 친밀했던 풍경이 세월에 의해 거리감을 입고 중립적으로 변해버린 것을 본다. 하지만 그 변화는 반전될 수 있다. 세월이 낡은 벽지처럼 벗겨져 그밑의 생생하고 놀랍도록 선명한 패턴이 드러날 수도 있다.
앨리스 먼로는 체호프와 자주 비교되지만, 어쩌면 세잔과 더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사과를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린다. 이 지독히익숙한 사물이 낯설어지고 어둠 속에 빛나며 신비로워질 때까지. 하지만그것은 여전히 사과로 남는다. 결국 먼로는 모종의 신비주의자가 아닐까?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가 말했다. "그대는 작은 것들에도 위대하게 임하시며, 어떤 것에도 작게 임하심이 없다." 앨리스 먼로에게도해당되는 말이다.
("아유 제발 앨리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적당히 좀 해요! 허버트는 하느님에 대해 말한 거잖아요! 저 동상이면 하루치로 충분하지 않아요?! 그나저나저거 청동인 건 확실해요?") - P236

선물은 손에서 손으로 전해진다. 선물은 전달을 통해 존속한다. 주는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새로운 영적 삶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 선물 자체도 재활하고 재생한다.
선물 주기와 예술의 관계를 탐구한 루이스 하이드(Lewis Hyde)의 명저 『선물(The Gift)』도 마찬가지다. 선물』은 절판된 적이 없다. 입소문과 선물을 통해 가지각색의 예술가들 사이로 지하 기류처럼 움직인다.
이 책은 내가 작가와 화가와 음악가 지망생들에게 어김없이 추천하는책이다. 이 책은 입문서가 아니다. 입문서는 넘쳐난다. 이 책은 예술가가 하는 일의 본질에 대한 책이자 예술 활동과 우리의 지극히 상업적인 사회의 관계를 다룬 책이다. 작문, 그림, 노래, 작곡, 연기, 영화제작에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선물』을 읽기 바란다. 여러분이 제정신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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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택은 너무나 방대해서 바람도 그 안에갇힌 듯 겨울이든 여름이든 이리저리 불어 댔다. 사냥꾼들이그려진 초록색 벽걸이도 끊임없이 흔들렸다. 그의 조상들은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귀족이었다. 그들은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안개 낀 북부에서 나타났다. 거대한 문장(章)이그려진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햇빛이 방안에 검은 막대 무늬와 노란 웅덩이를 만들어 바닥을 얼룩지게하지 않는가? 지금 올랜도는 햇빛에 투과된 문장 속 사자의노란 몸뚱이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가 창틀에 손을 얹고 창문을 밀어낸 순간 그의 손은 나비의 날개처럼 빨강, 파랑, 노랑으로 물들었다. 그러므로 상징을 좋아하고 상징을 해독하려는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올랜도의 맵시 있는 다리와 멋진 몸, 건장한 어깨 전체가 문장의 다양한 색조로 물들었지만, 창문을 활짝 열었을 때 그의 얼굴은 오로지 햇빛을 받아환히 빛났다고 말할 것이다. 그보다 더 정직하고 침울한 얼굴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터였다.  - P14

그는 어떤 공적을 쌓고 또 다른 공적으로, 어떤 명예를 얻고또 다른 명예로, 어떤 관직을 수행하고 또 다른 관직으로 나아갈 것이고 전기 작가는 그의 뒤를 따를 테니, 결국 그 어떤자리이든 그들 욕망의 최고 정점에 이를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올랜도는 바로 그런 인생을 살아가기에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발그레한 뺨은 복숭아처럼 솜털에 덮여 있었는데,
입술 위에 난 솜털의 색깔이 뺨의 솜털보다 아주 조금 더 짙었다. 짧은 입술은 아몬드처럼 하얗고 정교한 이빨 위로 살짝 올라가 있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화살 같은 코는 조금도흐트러짐 없이 곧게 뻗었다. 머리칼은 검고, 작은 귀는 머리에 바싹 붙어 있었다. 그러나 아아, 이 소년의 아름다움을 다열거하려면 무엇보다도 이마와 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 P15

아아, 이마와 눈 없이 태어난 사람은 거의 없다. 창문 옆에서있는 올랜도를 흘끗 쳐다보면, 그의 눈은 물에 흠뻑 젖은 제비꽃 같고, 눈이 아주 커서 넘치도록 고인 물로 부풀어 오른듯 보이는 것을, 또 그의 이마는 장식 없는 메달 같은 양쪽 관자놀이에 눌려 봉긋 부풀어 오른 대리석 돔처럼 보이는 것을당장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눈과 이마를 보면 그 즉시우리는 그렇게 열광적으로 찬미한다. 그의 눈과 이마를 보면그 즉시 우리는 훌륭한 전기 작가들이 무시하려 드는 수천가지의 불쾌한 것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P15

얼마 지나지 않아 올랜도는 시를 열 페이지 이상 써내려갔다. 그의 글은 확실히 유창하지만 관념적이었다. 그의 비극 속 등장인물은 <악〉, <범죄>, <고통>이었다. 또 괴상망측한나라의 왕들과 여왕들도 있었는데, 무시무시한 음모에 빠져혼란을 겪었고 고귀한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그가 실제로입에 올렸을 법한 단어는 단 하나도 없이 전체적으로 유창하고 감미로운 시였다. 아직 열일곱 살도 되지 않은 그의 나이와 16세기가 끝나려면 몇 년 더 지나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때, 그 시는 대단히 놀라운 것이었다. 이윽고 그는 쓰기를 중단했다. - P16

사물 그 자체를 관찰하였다. 우연히도 창문 밑에서 자라던 월계수 관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글을쓸 수 없었다. 자연의 초록색과 문학의 초록색은 전혀 별개이기 때문이다. 자연과 문학은 본래 서로 적대적인 듯하다.
이 둘을 붙여 놓으면 서로를 산산이 찢어발긴다. 지금 올랜도의 눈에 들어온 초록색은 그의 운을 망쳐놓고 운율을 쪼개 놓았다. 더욱이 자연은 그 나름의 술수를 부린다. 일단 창밖의 꽃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꿀벌이나 하품하는 개, 지는태양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내가 석양을 얼마나 많이 볼 수있을까> 등등의 생각을 하게 되면(이런 생각은 너무 잘 알려져 있어서 자세히 쓸 만한 가치도 없다) 펜을 내려놓고 망토를 걸친 뒤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가게 되고, 그러다가 페인트를 칠한 궤에 발을 부딪힌다. 올랜도는 약간 재바르지못했으니까. - P17

그는 깊은 숨을 내쉰 뒤 참나무 발치의 땅에 몸을 내던졌다(그의 동작에는 열정이라 불릴 만한 면이 있었다). 그는 덧없이 흘러가는 이 여름날 하늘 아래에서 땅의 등뼈를 느끼며누워 있기를 좋아했다. 참나무의 단단한 뿌리가 대지의 등뼈로 여겨졌던 것이다. 혹은 이미지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그 뿌리는 그가 타고 있는 큰 말의 잔등이 되고 혹은 요동치는 배의 갑판이 되었다 단단한 것이면 뭐든 상관없었다. 그는 떠도는 자기 마음을 끌어다 맬 무언가가 필요했기때문이다. 그의 옆구리를 잡아당긴 그 마음을 저녁나절 이시간쯤에 산책을 나올 때마다 자극적인 사랑의 질풍으로 채워지는 듯한 그 마음을. 그는 그 마음을 참나무에 묶었다. 거기 누워 있다 보면 그의 내면과 주위의 소란한 움직임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 P19

올랜도는 더 이상 보고 있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 언덕을내달렸다. 쪽문으로 들어섰다. 나선형 계단을 부리나케 올라갔다.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양말을 방 한구석에 내던지고 조끼를 다른 쪽에 내던졌다. 머리를 물에 적시고 손을문질러 닦았다. 손톱을 깎았다. 6인치짜리 거울과 낡은 양초두 개만 앞에 둔 채, 그는 마구간 시계로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진홍색 반바지를 입고 레이스 깃을 달고 호박단 조끼를입고 겹꽃 달리아만큼 커다란 장미 모양의 리본이 달린 신발을 발에 끼워 넣었다. 이제 준비가 다 끝났다. 얼굴은 발갛게달아올랐고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미 너무 늦었다.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지름길을 통해 수많은 방들과 계단들을 지나 연회장으로 향했다. 저택의 반대편으로 5에이커나떨어진 곳이었다. - P21

그는 너무 수줍어서 장미 향수에 담근 여왕의 반지 낀 손밖에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인상적인손이었다. 여윈 손의 긴 손가락들은 마치 보주(寶珠)나 홀()을 감싸고 있듯이 구부러져 있었다. 초조하고 성마르고병약한 손이었다. 그러나 명령을 내리는 손이기도 했다. 높이 쳐들기만 해도 모가지를 떨어뜨릴 수 있는 손이었다. 그손은 좀약을 넣어 모피를 보관하는 장롱 냄새를 물씬 풍기는늙은 몸에 붙어 있으리라고 그는 짐작했다. 하지만 그 몸은온갖 비단과 화려한 보석에 둘려 있었고, 좌골 신경통으로고통에 시달릴지라도 아주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으며, 수천가지 공포에 엮여 있어도 절대 움찔하지 않았다.  - P22

낮은 덧없이 지나가고, 그 짧은 시간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올랜도가 날씨가 이끄는 대로, 시인들과 그 시대가 이끄는 대로, 땅에는 눈이 덮여 있고 여왕이복도에서 경계의 눈길을 늦추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창턱의의자에 앉아 그의 꽃을 땄다고 해서 우리가 그를 나무랄 수는 없다. 그는 아직 어렸고 소년 같았다. 그는 자연이 명령한대로 행동했다. 그 아가씨의 이름이 무엇인지 우리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마찬가지로 알지 못한다. 도리스나 클로리스,
델리아, 다이애나였을 것이다. 그는 그들 모두에게 차례로시를 써 보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아가씨는 궁녀였을수도, 하녀였을 수도 있다. 올랜도는 다양한 취향을 갖고 있었으니까. 정원에서 자라는 꽃만 좋아하지 않았고, 야생화나잡초에도 언제나 매혹을 느꼈다. - P28

그 혹한은 영국에서 유례없이 극심한 것이었다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새들이 공중에서 날아가다 얼어붙어 돌멩이처럼 땅에 뚝뚝 떨어졌다. 노리치에서는 젊은 시골 여자가 평소처럼 튼튼하고 건강한 몸으로 길을 건넜는데, 길모퉁이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돌풍이 불어닥치자 그 순간 가루가 되어부서져서는 한 줌의 먼지가 되어 지붕 위로 날아가는 것을본 사람들이 있었다. 양들과 소들이 어마어마하게 죽어 나갔다. 자다가 얼어붙은 시신들은 이불에서 떼어 낼 수가 없었다. 길 위에서 얼어붙어 꼼짝 못 하는 돼지 떼는 드물지 않게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들판에 가득한 양치기나 쟁기질하던사람, 말, 새를 쫓던 어린 소년들 모두 그 순간의 동작 그대로, 누군가는 코에 손을 댄 채, 누군가는 술병을 입술에 댄채, 누군가는 1미터쯤 떨어진 산울타리에 박제처럼 앉아 있는 큰 까마귀들을 향해 던지려고 돌을 든 자세로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 P34

그러나 이런 소소한 것들은 그 인물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특이한 유혹적 매력에 가려졌다. 올랜도의 마음속에서 더없이 극단적이고 터무니없는 이미지와 비유들이 솟아올라 뒤엉키고 휘감겼다. 그 3초 사이에 그는 그녀를 멜론이라고, 파인애플이라고, 올리브라고, 에메랄드라고, 눈 속의여우라고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지, 그녀를 맛본 적이 있는지, 그녀를 본 적이 있는지, 아니면 이 세가지를 다 경험한 적이 있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이야기를끌어가는 동안 한순간도 중간에 끊어서는 안 되지만, 여기서서둘러 말해 두는 편이 좋겠다. 이 순간 그가 떠올린 이미지는 죄다 그의 감각에 어울리게 지극히 단순했고, 대부분 그가 소년 시절에 맛보기 좋아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지만 그의 감각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동시에 매우 강렬했다. - P38

어떤 소년도 저렇게 바다 밑바닥에서 건져 올린듯한 눈을 갖고 있지 않았다. 마침내 스케이트를 타던 그 인물이, 시중드는 어느 귀족의 팔에 기대어 느릿느릿 발을 옮기던 국왕에게 최대한 우아하게 절하기 위해 미끄러지듯 다가와 멈추었다. 그에게서 한 뼘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여자였다. 올랜도는 뚫어져라 응시했다. 온몸이 떨렸고 뜨겁게열이 올랐다가 차가워졌다. 여름날 허공에 온몸을 내던지고싶었다. 발로 도토리를 짓밟아 으깨고 싶었고, 두 팔을 번쩍들어 너도밤나무와 참나무를 흔들어 대고 싶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저 그의 작고 흰 이빨들 위로 입술을 오므렸고, 그러다 뭔가 물어뜯으려는 듯 1센티미터쯤 벌렸다가 깨물듯이다물었다. 레이디 유프로시니가 그의 팔에 기대고 있었다. - P39

 그러면 그는 엎어져서 얼굴을 빙판에 대고 얼어붙은 물속을 바라보며 죽음을 생각했다. 행복과 우울함을 갈라놓는 것은 칼날보다도 두껍지 않다는 철학자의 말이 옳았던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 철학자는 행복과 슬픔이 쌍둥이라는 의견을 밝히고, 모든 극단적 감정은 광기와 결합된다는 결론을이끌어 내면서, 우리에게 참된 교회 (그의 견해로는 재세례파교회)에서 위안을 구할 것을 당부한다. 참된 교회야말로 이바다에서 세파에 흔들리는 모든 이들에게 유일한 항구이자피난처이고 정박지라고 그는 말했다.
「모든 것은 죽음으로 끝나지.」 올랜도는 똑바로 앉아서 우울하고 어두운 얼굴로 말하곤 했다. - P47

그녀를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지 그 숱한 이미지들을 불러일으켰던 여자들처럼 진부해진 수천 가지 이미지들 속에 뛰어들어 철벅거리며뭔가를 건져 내서 말해 주었다. 당신을 눈이나 크림, 대리석, 체리, 설화 석고, 황금 현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여우나 올리브 같아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에 밀려오는 파도 같고, 에메랄드 같고, 아직구름에 가린 푸른 산에 비치는 태양 같고..... 영국에서 내가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했던 그 무엇 같아요. 그는 언어를 아무리 샅샅이 뒤져 보아도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풍경과 다른 언어가 필요했다. 사샤를 묘사하기에는 영어가 너무나 거침없고 너무나 노골적이며 너무나 입에 발린 언어였다. 그녀가 하는 말은 대단히 솔직하고 도발적으로 보였지만, 거기에는 무언가 숨겨져 있었다. 그녀의 행동은 아무리 대담하게 보였어도 어딘가 감추어진 부분이 있었다.  - P48

그래서 그는 어둠 속에서 기다렸다. 갑자기 무언가가 그의얼굴을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하게 내리쳤다. 그는 기대감에부풀어 잔뜩 긴장하고 있었기에 깜짝 놀라 칼을 움켜잡았다.
그는 이마와 뺨을 열두 번이나 세차게 얻어맞았다. 메마른한파가 아주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에 1분이 지나서야 그것이 빗방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빗방울이 얼굴을내리친 것이다. 처음에는 빗방울이 천천히, 유유히, 하나씩떨어졌다. 그러나 여섯 개의 빗방울이 이내 60개가 되었고그러고는 6백 개가 되었고 그러다가 끊임없이 분출하듯 쏟아져 내렸다. 마치 단단하게 굳은 하늘이 풍부하게 넘치는샘물을 쏟아붓는 듯했다. 5분이 지나자 올랜도는 온몸이 흠뻑 젖었다. - P62

올랜도의 생애를 서술하면서 지금까지는개인적인 문서와 역사적 자료들 덕분에 전기 작가는 첫 번째의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 의무란 지워질 수 없는 진실의족적을 따라 좌고우면하지 않고 터벅터벅 걷는 것이고, 길가의 꽃에 유혹되지 않고 그늘을 탐하지 않으며 우리가 무덤에털썩 떨어져서 머리 위의 비석에 <끝>이라고 쓸 때까지 끊임없이 체계적으로 그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마주칠 사건은 바로 우리의 길을 가로막고 있기에 무시할 수없다. 하지만 그 사건은 비밀스럽고 불가사의하며 문서화되어 있지 않아서 설명할 길이 없다. 그것을 해석하려면 여러권의 책을 쓸 수도 있고, 그것의 진정한 의미에 입각하여 종교적 체계를 세울 수도 있겠다. 우리의 소박한 의무는 오로지 알려진 대로 사실을 기술하고, 독자가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 P69

가장 추악하고 비열한 사건까지도, 윤기와 작열하는 빛으로 아름답게 꾸며 주는 최면이자 치유책이었을까? 인생의 격동이 우리를 산산조각 내지 않도록 죽음의 손가락이 이따금 그 격동 위에얹혀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매일매일 죽음을 소량씩 섭취해야 하는 존재이고, 그러지 않으면 살아가는 일을 지속할 수없도록 만들어진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의 가장 은밀한 곳까지 파고들어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간직한 것들을 바라지 않는데도 변화시키는 그것은 어떤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을까? 극심한 고통으로 지쳐 버린 올랜도가 일주일간 죽었다가다시 살아난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죽음의 본질은 무엇이고,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려고30분 넘게 기다렸지만 아무 답도 나오지 않으니 이야기를 계속해 가자. - P72

일단 독서의 질병이 잠식해 들어가면 몸이 너무나 쇠약해져서, 잉크병에 숨어 있고 깃털 펜에서 아가는 치명적 병균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어 버린다. 가여운 인간이 글을 쓰는데 빠져드는 것이다. 이것은 가진 것이라고는 비가 새는 지붕 아래 놓인 의자와 탁자뿐이라서 결국 잃을 것이 많지 않은 가난한 사람에게도 나쁜일이지만, 여러 채의 저택과 가축, 하녀, 당나귀와 리넨을 소유하고있으면서도 글을 쓰려는 부자의 고충은 가련하기 그지없다. 그 모든 재산을 향유하는 즐거움이 달아나버린다. 그는 뜨거운 쇳덩이에 난타당하고 해충에 뜯긴다. 작은 책 한권을 쓰고 유명해질 수 있다면, 가지고 있는 마지막 동전 한 푼까지도(그 세균의 악성은이 정도로 지독하다)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페루의 금을 모두 내놓아도 보석처럼 우아한 시 한 줄도 얻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폐결핵에 걸려 앓아눕거나 자기 머리통을 권총으로 쏴버리고 혹은 돌아누워 벽만 바라본다. 그가 어떤 자세로 목격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 P79

이 중단은 그의 인생사에서 대단히 중요하며, 사람들을 무릎 꿇리거나 강물이 핏물이 되어 흐르게 하는 수많은 행위보다 훨씬 더 중요하므로, 우리는 마땅히 그가 왜 멈추었는지를 묻고 충분히 숙고한 후에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대답해야 한다. 자연은 인간에게 수없이 기묘한 장난을 쳐왔는데, 진흙과 다이아몬드, 무지개와 화강암을 조합하여 각양각색으로 인간을 만들고 이것을 종종 걸맞지 않은 상자에 채워넣는다. 그래서 시인은 도살업자의 얼굴을 갖고, 도살업자는시인의 얼굴을 갖고 있다.  - P81

그 잡동사니 전부를 어떻게든 실 한 가닥으로 살짝 엮어 놓았다. 기억이란 재봉사이고, 더군다나 변덕스러운 재봉사이다. 기억은 안팎으로, 위아래로, 여기저기로 바늘을 놀린다.
우리는 다음에 무엇이 올지, 이후에 무엇이 이어질지 알지못한다. 그러므로 탁자에 앉거나 잉크병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과 같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동작도 서로 무관한 수천 개의 단편적인 조각들을 뒤흔들어 놓아, 때로는 밝은 조각이, 때로는 어두운 조각이 빨랫줄에 걸린 열네 명 가족의속옷이 돌풍에 나부끼듯 매달려 까닥이고 펄럭이다가 떨어진다. 더없이 일상적인 우리의 행위는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의기양양하게 장담했던 한 가지 일이 아니라, 펄럭이며 퍼덕이는 날갯짓과 명멸하는 빛으로 시작한다.  - P82

셰익스피어와 크리스토퍼 말로, 벤 존슨, 토머스 브라운,존 던이 지금도 글을 쓰고 있거나 바로 얼마 전까지도 써왔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올랜도는 자기가 좋아하는 영웅들의 이름을 줄줄열거하며 말했다.
그린은 냉소적으로 웃었다. 셰익스피어가 꽤 괜찮은 장면들을 쓴 것은 사실이라고 그는 인정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그 장면들을 주로 말로에게서 가져왔다. 말로는 유망한시인이었지만, 서른 살도 되기 전에 죽은 청년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브라운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산문으로 시를 쓰려 했는데 그런 기발한 착상에 사람들은 오래지않아 싫증을 느꼈다. 존 던은 의미의 결핍을 어려운 단어로포장한 사기꾼이었다. 얼간이들은 속아 넘어갔다. 하지만 그런 문체는 앞으로 열두 달만 지나면 한물가고 말 것이다. 벤존슨을 보자면, 존슨은 자기 친구이고, 그는 자기 친구에 대해 나쁘게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 P92

요즘의 젊은 작가들은 출판업자들에게 고용되어 돈벌이가 될만한 쓰레기를 쏟아낸다. 셰익스피어가 이런 일의 주범이었고, 벌써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지금 시대의 특징은 젠체하는 기발한 발상과 무모한 실험인데, 그리스인들은 그런 것을한순간도 용인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는 말했다. 이런 말을하려면 몹시 가슴 아프지만 자기 생명을 사랑하듯이 문학을 사랑하므로 - 이 시대에는 좋은 점을 하나도 찾아볼 수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말하고나서 그는 직접 포도주를 또 한 잔 따랐다. - P93

같은 순간에 닉 그린은 정반대의 결론에 이르렀다. 어느날 아침 한없이 부드러운 이불 속에서 더없이 푹신한 베개를베고 누워 수백 년간 민들레나 소루쟁이 같은 잡초 하나 나지 않았던 드넓은 잔디밭을 퇴창 너머로 바라보며, 그는 어떻게든 여기서 달아나지 않으면 산 채로 질식할 거라고 생각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비둘기 소리를 들으면서 옷을 갈아입고 분수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플리트 스트리트의 자갈길에서 짐마차 말이 헐떡거리는 소리를 듣지못한다면 글을 한 줄도 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옆방에서 하인이 꺼져 가는 불을 되살리고 식탁에 은접시를 차려놓는 소리를 들으며, 이런 식으로 더 오래간다면 잠에 빠져들 테고(여기서 그는 입을 딱 벌리고 하품했다) 자다가 죽음에 빠질 거라고 생각했다. - P97

그 후로 그는 날마다, 주마다, 달마다, 해마다 변함없이 그언덕에 올랐다. 너도밤나무가 황금색으로 물들어 가고, 돌돌말린 어린 고사리 잎사귀가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달이 초승달 모양에서 둥글게 차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는 또 보았다ㅡ하지만 독자들은 이어지는 변화를 묘사한 문단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초목이 녹색에서 황금색으로 물들어 가는 것을, 달이 떠오르고 해가 지는 것을, 겨울이 지나 봄이 오 - P101

고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는 것을, 낮이 저물어 밤이 되고 밤이 지나 낮이 되는 것을, 폭풍우가 몰려왔다가 맑은 날이 이어지고, 한 노파가 30분이면 쓸어 버릴 수 있는 먼지 조금과거미줄 몇 개를 제외하면 자연이 2백~3백 년간 대체로 변함없이 지속되어 온 것을. 그런데 이 문단은 그저 시간이 흘렀다>(이 부분에서 얼마만한 시간인지 정확하게 괄호 안에 표기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간단한 진술만으로 훨씬 더 빨리 결론에 이를 수 있었으리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 P102

하지만 시간은 동물과 식물이 놀랍도록 때맞춰 번성하고서서히 사라지게 하면서도, 불행히도 인간의 마음에는 그처럼 단순하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더욱이 인간의 마음은마찬가지로 기묘하게 시간에 작용한다. 한 시간이 언짢은 상태의 인간 마음에 머물 때는 시계 시간의 50배나 100배 길이로 늘어날 수 있다. 반면에 한 시간이 마음의 시계에서 정확히 1초를 나타낼 수도 있다. 시계의 시간과 마음의 시간이 희한하게도 일치하지 않는 사실에 대해서는 보다 많이 알려져야 하고 더욱 깊이 연구할 만하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관심사가 매우 제한된 전기 작가는 한 가지 단순한 진술에 국한해야 한다. 지금 올랜도처럼 서른 살에 이른 인간에게는생각하고 있을 때의 시간은 지나치게 길어지는 반면에 행동하고 있을 때의 시간은 지나치게 짧아진다는 것이다. - P102

올랜도가 지시를 내리고 방대한 자기 장원(莊園)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데 걸린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였다. 하지만 그가 홀로 언덕에 올라 참나무 밑에 주저앉으면 그 즉시1초 1초가 둥글어지며 채워지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 1초 1초는 더없이 기이하고 다양한 것으로 채워졌다. 그는 가장 현명한 사람들도 곤혹스럽게 여겼던 사랑이란 무엇인가, 우정이란 무엇인가, 진실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물음들에 직면하여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생각에 잠기면 매우 길고 복잡다단하게 보였던 자신의 과거가 그 즉시, 사라져 가는 1초에밀려 들어가, 그것을 원래 크기의 열두 배로 부풀리고 수천가지 색채로 물들이며 세상의 온갖 자질구레한 것들을 채워넣었다. - P103

이러한 사색 (아니면 그것을 어떤 단어로 부르든간에)에잠겨서 그는 자기 인생의 여러 달을, 여러 해를 보냈다. 그가아침 식사 후에 서른 살의 젊은이로 나갔다가 저녁 식사 시간에 적어도 쉰다섯의 장년으로 돌아오곤 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몇 주가 지나면 그의 나이에 백 년이 더해지기도 했고, 또 몇 주가 지나면 최대 3초만 더해지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보아, 인간 생애(동물의 생애에 대해서는 주제넘게 언급하지 않겠다)의 길이를 측정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을넘어서는 일이다. 인생이 아주 길다고 말하자마자 장미꽃잎이 땅에 떨어지는 시간보다도 짧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 P103

느닷없이 맹렬한 격정에 압도되어 방을 뛰쳐나갔다면, 분명무언가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종류의 걱정이었느냐고 당연히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사랑 그 자체만큼이나 양면적이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하지만 사랑을 잠시 논외로 하자면, 실제로 일어난 일은 이렇다.
황녀 해리엇 그리젤다가 잠금장치를 끼우려고 몸을 숙였을 때, 올랜도는 갑자기 이해할 수 없이 멀리서 퍼덕이는 사랑의 날갯짓 소리를 들었다. 멀리서 흔들리는 부드러운 깃털이 급히 밀려드는 물결, 눈 속의 사랑스러운 자태, 홍수 속의부정(不貞), 이런 수천 가지 기억을 그의 내면에 일깨웠다. 날갯짓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그는 얼굴을 붉히며 몸을 떨었다. 다시는 이렇게 동요되는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는 동요했다.  - P121

그는 양손을 들고 그 아름다운 새가 자기 어깨에 내려앉게 하려 했다. 그때ㅡ끔찍하게도!
끔찍하게도! - 까마귀가 나무에서 굴러떨어지며 찢어지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대기는 거친 검은 날개에 덮여 어두워졌다. 깍깍 소리가 들렸고, 지푸라기와 잔가지, 깃털이 떨어졌다. 그러고는 모든 새들 가운데 가장 육중하고 더러운 콘도르가 그의 어깨에 거꾸로 처박혔다. 그래서 그는 방을 뛰쳐나갔고, 하인을 보내 황녀 해리엇을 마차까지 전송하게 했던 것이다.
이제 다시 돌아가서 말하자면, 사랑은 두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희고, 다른 하나는 검다. 두 개의 몸이있어 하나는 매끄럽고, 다른 하나는 털북숭이다. 그것은 두 - P121

개의 손, 두 개의 발, 두 개의 발톱이 있고, 실로 모든 부위가두 개이고 정확히 상반된다. 하지만 그 두 가지는 아주 단단하게 결합된 까닭에 분리될 수 없다. 이번에 올랜도의 사랑은 하얀 얼굴을 그에게로 향하고 매끄럽고 사랑스러운 몸은바깥쪽으로 향한 채 그에게로 날아왔다. 그녀는 순수한 기쁨의 공기를 퍼뜨리며 점점 다가왔다. 갑자기 (어쩌면 황녀를보았을 때) 그녀는 빙 돌아 몸을 돌리더니 검은 털투성이의야만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어깨에 떨어진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은 낙원의 새, 사랑이아니라 콘도르, 욕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달아났고, 그래서 시종을 불렀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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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혼자다 싶을 때
그 많은 잎들 다 어디 가고
혼자 떨고 있나 싶을 때
나무는 본다 비로소
공중으로 뻗어간 뼈를
하늘의 엽맥을


광대무변한
이 잎은 아무도
떼어갈 수 없다


2022년 10월
손택수


귀의 가난


소리 쪽으로 기우는 일이 잦다
감각이 흐릿해지니 마음이 골똘해져서

나이가 들면서 왜 목청이 높아지는가 했더니어머니 음식맛이 왜 짜지는가 했더니
뭔가 흐려지고 있는 거구나

애초엔 소리였겠으나 내게로 오는 사이
소리가 되지 못한 것들

되묻지 않으려고
상대방의 표정과 눈빛에 집중을 한다
너무 일찍 온 귀의 가난으로
내가 조금은 자상해졌다 - P12

저녁 숲의 눈동자


하늘보다 먼저 숲이 저문다
숲이 먼저 저물어
어두워오는 하늘을 더 오래 밝게 한다
숲속에 있으면 저녁은
시장한 잎벌레처럼 천창에 숭숭
구멍을 뚫어놓는다
밀생한 잎과 잎 사이에서
모눈종이처럼 빛나는 틈들,
하늘과 숲이 만나 뜨는
저 수만의 눈을 마주하기 위하여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간다
저무는 하늘보다 더 깊이 저물어서
공작의 눈처럼 펼쳐지는 밤하늘
내가 어디서 이런 주목을 받았던가
저 숲에 누군가 있다
내 일거수일투족에 반응하는 청설모나 물사슴, 
아니 그 누구도 아니라면 어떠리
허공으로 사라진 산딸나무
꽃빛 같은 것이면 어떠리
저물고 저물어 모든 눈들을 마주하는
저녁 숲의 눈동자 - P14

한 모금 물방울을 붙들고


아프리카 어느 부족 여인들은 지하수가 흐르는 땅의 나무 그늘엔 실례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 지하수를 감지한 나무 그늘은 지하수가 없는 땅의 그늘과는 그 빛깔부터가 달라서, 아무리 급해도 물이 오염되면 쓰나, 멀찌감치 떨어져일을 본다지


그것 참, 내 눈엔 똑같아 보이는 그늘도 그 농도부터가 다르다니, 땅의 체질에 따라 저마다 다른 뉘앙스를 갖고 있다니, 나뭇잎 그늘 한 장에서 수십 미터 지하의 물기를 감지할 줄 아는 눈을 갖기 위해 초원은 얼마나 바짝 목이 탔을것인가


나는 생각한다, 한 모금 물방울을 붙들고 푸르게 타올랐던 시절, 내 안색만 보고도, 눈빛만 보고도, 그 깊은 곳 물소리를 들을 줄 알았던 한 사람을  - P15

바다 무덤


뱃속에 있던 아기의 심장이 멎었다 휴일이라 병원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동안 식은 몸으로 이틀을 더 머물다 떠나는아기를 위해 여자는 혼자서 자장가를 불렀다


태명이 풀별이었지 작명가는 되지 말았어야 했는데, 무덤으로 바뀐 배를 안고 신호가 끊어진 우주선 하나가 유영하는 우주 공간을 허우적거린 이틀


그후 여자는 어란을 먹지 않았다 생선의 눈을 마주하는 것도 버거워서 어물전 근처는 얼씬도 않던 여자, 세월호 뉴스앞에 며칠째 넋을 놓고 있던 여자


한동안 가지 않던 바다에 간다 상처라는 게 흔적이 남아야 치료도 되지 둘 사이의 금기였던 아이들 이야기를 나눈다


버리지 못한 초음파 사진 속 웅크린 태아처럼, 부푼 배를끌어안고 자장자장 들려줄 수 없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바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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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정쩡함! 그건 오래 걸친 외투처럼 내겐 너무도 친근한 말이 아닌가. 한번은 아들녀석이 물었다. 엄마를 무슨 작가라고 소개해야 돼? 엄마가 글을 쓴다고 하면 사람들이 묻는단다. 소설가냐,
시인이냐, 드라마 작가냐. 난 아이에게 엄마는 인터뷰 하고 칼럼 쓰고 산문도 쓴다고 설명했지만, 말하면서도 뭔가 잡다하고 애매했다.
오랜 질문이다. 나는 무슨 글을 쓰는 사람인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반듯한 명함도 없고 내세울 만한 대표작이 있는 것도 아니나 어쨌든 매일 글을 써서 먹고살았다. 그런데도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할말은 늘 궁했다. 종일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지만, 그건 한 편의 글로 완성되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게 되기도 한다. 그럼 난 그날 일을 한건가 논건가, 헷갈렸다. - P18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라는 니체의 말대로, 불확실한 삶의 긴장 상태는 글쓰기 좋은 조건이라고 우리는 또 대부분 그렇게 산다. 주변을 봐도 고시 합격생보다는 준비생이 많다. 고액 연봉에 승승장구하는 직장인보다는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노동자가 다수다. 연인 관계도 팽팽한 사랑 감정을 느낄 때보다 지리멸렬하고 느슨해서 친구인지 가족인지 헷갈리는 시기가 길다. 그러니 어정쩡한 상태를 삶의 실패나 무능으로 여기지 말자고 했다. - P19

나도 20~30대엔 애매함을 배척하고 확실함을 동경했다. 표류보다 안착을 원했다. 돈 걱정 없이 원하는 글을 쓰는 안정된 집필 환경을 꿈꿨고, 내 이름으로 된 책이라도 있다면 존재 증명이 수월하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책상과 고요가 확보된다고 글이 싹 바뀌지않았고, 책이 나온다고 삶이 확 달라지진 않았다. 아이가 기저귀만떼면 엄마 노릇 수월할 줄 알았는데 걸으면 넘어질까 걱정, 취학하면 학교적응 못할까봐 걱정, 성장할수록 근심의 층위도 깊어갔다.
어영부영 이만큼 떠밀려오고 나서야 짐작한다. 인간이 명료함을 갈구하는 존재라는 건 삶의 본질이 어정쩡함에 있다는 뜻이겠구나.
이제 나는 확신에 찬 사람이 되지 않는 게 목표다. 확실함으로자기 안에 갇히고 타인을 억압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싶다. 40대 후반이면 그걸 두려워해야 할 나이다. ‘글쓰기는 이런 거야‘ ‘사는 건원래 그래‘라고 의심하기보다 주장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서글프다. - P19

나이 들면서 체지방이 늘 듯 안 쓰는 핸드폰 번호가 쌓인다. 번호는 정리해도 인연은 삭제되지 않고 내가 피해도 삶이 만나게 한다. 사는 동안 운명을 뒤바꿔놓을 결정적인 만남은 거의 일어나지않겠지만 신상 정보 업데이트가 안 된 지인들과의 애매한 만남, 아니 마주침은 종종 일어날 것 같다.
"우리의 인생은 (..…) 어릴 적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고, 협소하고, 단편적이다."(116) 이 단편적 만남, 하찮은 우연에 잘 임하고싶다. 안색을 살피고 고요를 챙길 것. 앞으로 수차례의 결혼식과 장례식 그리고 무수한 대중교통 탑승 기회가 남았다. - P30

많은 글과 논리가 있고 지식이 있다. 그것에 묻힌 너무 작은 목소리가 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살리는 일을 내심 과업으로 삼았다.
저자의 일침대로라면 육성만 담지 말고 울림과 떨림까지 담아야 하고 그것은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의 저항"으로 가능하다.
이 무위의 글쓰기라는 경지는 아득하지만 일단 쓰기에 대한 열망으로 조급해진 마음은 누그러뜨려준다. 무언가를 즉각적으로 수행하려는 욕심을 무너뜨리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힘을 다스리라는 글쓰기의 이정표 앞에서 나는 또 가던 길 멈추고 숨을 고른다.
글이 불이 되는 글쓰기를 해낼 재주는 없지만 쓰면서 알아가고싶다. 전업 작가가 되고 싶으면, 혹은 되었다면 하루에 이삼십 장씩쓰라는 말보다 이쪽이 더 윤리적이며 매혹적이고 현실적이다. 이미글이 범람하는 시대에 제면기에서 면발 나오듯 줄줄 써대는 게 능사는 아니며, 그렇게 능력을 행위로 소모하다간 4대 보험 적용도 안되는 무명 작가로 과로사하기 딱 좋다는 자각이 아주 세게 드는 조언이다. 고마워요, 아감벤 씨. - P34

싸구려 모텔에서 단기투숙자로 미혼모 엄마와 사는 아이는 가난과 결핍의 공간을 생성과 자극의 놀이터로 만든다. 이 낙담하지 않는 악동은 자신의 신묘한 능력을 고백한다. "난 어른들이 울려고 하면 바로 알아." 엄마의 기후 변화를 귀신같이 감지하는 것도 아이고, 어떤 절망에 빠졌어도라면 수프 같은 복원력으로 생기를 되찾는 것도 아이다.
"고통이 아픔을 준다는 것이 고통에 반대하는 논거가 될 순 없다"는 니체의 말을 생각한다. 인간은 최악의 상태에서 진정한 통찰과 만난다는 뜻이다. 한부모가정 아이는 불행하다기보다 예민하다.
그 예민함의 촉수로 무니가 타인의 슬픔을 포착하듯, 또 다른 무니들이 삶의 무수한 장면을 읽어내고 속 깊은 글을 써내는 걸 나는 본다. 그래서 묻게 된다. 이혼은, 한부모 가정은, 누구의 무엇을 언제를 기준으로 결핍이고 약점인 것이냐고. 나와 내 친구가 오매불망걱정했던 그 작았던 아이들은 자기 고통을 응시하고 기록하는 사람으로 옆에 있다. - P42

소설을 읽다보면 바틀비가 답답하고 불안하다. 제 발로 사무실에 들어갔으면 일은 해야 하지 않나, 안 할 거면 왜 안 하는지 적어도 이유는 말해야 하지 않나,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나 싶은데 그 모든걸 안 하고 ‘끝‘까지 버틴다. 그런 행동에 대한 속 시원한 해명 없이 소설은 장탄식으로 끝난다.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 
그 허탈함, 황망함, 난감함, 쓸쓸함 속에서 사유가 일어난다(좋은 소설인 것이다). 나는 내 생각을 생각했다. 처음엔 바틀비가 이유도없이 일하지 않는 게 이상했는데, 아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을 그토록 열심히 하는 게 이상하다. 바틀비는 왜 자기 생각과 입장을 설명하지 않을까 궁금했다가,
그럼 나는 구구절절 말함으로써 타인을 이해시키고 타인으로부터이해받은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 회의가 들었다. 말하는 대로 이해받는다는 믿음이야말로 헛것 아닌가…… - P45

바틀비가 변호사에게 했던 말이 나를 향한다. "알려주지 않으면 그 이유를 모르시겠어요?"
그간은 글쓰기를 열렬히 원하는 이들만 만났다. 만사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러다 비자발적 집단과의 수업에서 난관에 봉착했고 그 와중에 나는 얼굴이 자주 화끈거렸는데, 평소 목소리 없는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떠들고 다닌 게 생각나서다. 실상은 목소리 없는 자를 좀처럼 못 견디고, 논리적 전개가 아니면 상황 이해에 서툴고, 원활한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되면 구성원을 제쳐두기도 하는 사람이 나였다. 우선은 불안과 조급 없이 목소리 없는 이들과 ‘그냥 있는‘ 연습부터 해야 했던 것이다.
합리성으로 포획되지 않는 삶, 실패로서만 확인되는 앎이 있다.그것은 나를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아내의 병을 고치겠다는 의지가확고한 남편이 정작 아내의 말을 듣지 못하듯이, 어떤 목표에 사로잡히면 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성실함의 중단, 합리성의 거부를 실천한 바틀비처럼 나도 성실함과 합리성의 스위치를 몸에서 꺼두어야 할까보다. 그래야 사람이 보일 것 같다. - P47

결국 딸은 원하는 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네 상식과 내 상식의다름, 자기 불안의 겨룸, 상호 애환에 대한 무지, 욕망의 투사, 필요의 거래가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 엄마와 딸. 그러나 패자가 정해진 싸움이다. "부모가 원하는 자리로 되돌아오는 자식은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아이는 내 자식이고 나는 그 애의 부모이고, 그사실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작은 인간‘의 태를 벗고 세상의중심으로 나아가는 딸아이에 비추어 ‘왜소해진 나‘를 본다. 더는 작지 않은 아이가 더는 쪼그라들고 싶지 않은 엄마를 흔들어 깨운다. - P72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글을 쓰는동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발견합니다. 글을 써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무엇을 알고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미리 어떤 것을 써야지 생각하고 머릿속에 준비해둔 원고를 ‘프린트아웃‘한다고 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용기, 그리고 방법은 내 안에 있다. "자기 자신을 단서 삼아 이야기를 밀고 나가" 야 글쓰기에 힘이 붙고 논의가 섬세해지면서 자기의 고유한 목소리가 나온다. 엄마에 관한글쓴이의 고백처럼 우리는 ‘생각보다‘ 자신에 무지하고 자기와 서먹하기에, 글을 쓰면서 나를 알아가는 쾌감도 크다. 그렇게 마음을 다쏟는 태도로 삶을 기록할 때라야 "신체에 닿는 언어"를 낳고 "그런언어만이 타자에게 전해" 진다. - P75

자신이 용감해지는 자리를 알기.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이것이다. 글을 쓸 때 나는 그나마 용감하다. 글 바깥에선 비겁하고 부산스럽지만 글 안에서만은 일관되고 침착하려 애쓴다. 글과 삶의(불)일치는 내 삶의 영원한 화두다. 잘 존재하는 방법은 어렵고, 글쓰는 내가 가장 나으니까, 삶에서 그 비중을 늘리는 전략을 일찍이짰다.
글쓰기 수업도 그 일환으로 재밌게 하고 있다. 학인들은 매번말한다. "우리 수업에 ‘좋은 사람들‘이 정말 많이 와요." 그러면 내가정정한다. 좋은 사람들이 오는 게 아니라 여기서는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는 거라고.
서로가 경쟁자 아닌 경청자가 될 때, 삶의결을 섬세하게 살피는 관찰자가 될 때 우린 누구나 괜찮은 사람이 된다. 대인배라도 된듯한 그 착각이 좋은 글을 쓰게 하는 동력임은 물론이다. "작가란 최상의 순간에 자기 인격의 최상의 측면을 갖고 주로 글을 쓰고 실제로도 그래야 한다." 저마다 삶에 몰입하고 자기 인격의 최상을만나는 횟수가 잦아지면 우상의 존재도 자연 소멸하지 않을까. - P83

아무려나, 제 몸 써서 일한 사람들이 갖는 삶에 대한 통찰력, 남의 몫 가로채지 않고 자기 손 놀려 ‘저금통‘ 같은 갯벌 일구어 살아온 이들의 가뿐함, 그 와중에도 기역자로 굽은 허리를 펴 "누부리곱과(노을이 고와)" 라며 감탄할 줄 아는 우아함을 배운다. 이 책의최고령 97세 소무의도 윤희분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농땡이가최고야. 젊어서 일 많이 하지 마시오. 늙어서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그렇게 안 했어. 젊었을 때는 뼈가 나긋나긋하니까 물불 안 가렸지. 농땡이가 최고야." 짐승처럼 일하다가 벌레처럼 작아진 몸피에서 나온 사리 같은 말, 인간다움을 추구하기에 너무도 혁명적인 그 입말을 곱씹는다. - P104

끼니마다 콕쏘는 김치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면서도 목 안이 따끔하다. 한 여성이 소위 ‘바깥일‘을 하려면 다른 여성의 돌봄노동이 필요하듯이, 내가 김치 담그기에서 해방되자면 누군가의 고단한 노역의 산물인 김치를 먹게 된다. 얼마나 손끝이 얼얼하도록 마늘을 까고 생강을 다지고 배추를 씻고 절이고 버무렸을까.
‘엄마표 김치‘라는 말이 그리운 말에서 징그러운 말이 되어간다. 엄마의 자기희생이 강요된 말, 넙죽 받아먹기만 하는 자들이 계속 받아먹기를 염원하는 말이다. 어느 소설가의 문학관에는 대하소설을 쓰는 동안 사용한 볼펜과 원고지가 탑처럼 쌓여 있다고 하는데, 엄마들이 평생 담근 김치와 사용한 고무장갑을 한눈에 쌓아놓으면 어떤 붉은 스펙터클이 나올지 상상해본다. 어머니가 해주신밥과 김치 먹고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 가시화되지 않는이상한 노동. 피와 살로 스며서 똥으로 나가버리는 엄마의 땀, 부불노동 Impaid work 으로서 가사노동의 불꽃인 김장. - P107

가난은 상대적이나, 한 존재에게서 중요한 것들을 뺏어간다. 밥부터 포기시키고 밥이 매개하는 관계와 건강을 무너뜨린다. 가난은말을 가로챈다. 감추고 싶은 것은 강제로 노출시키고, 말하고 싶은것은 들어주지 않는다. 먹고살기 바빠 일일이 사정을 말할 기회가없다. 설명도 간단치 않다. 저자처럼 수년을 공부하고 책 한권 분량의 구조적 분석을 마쳐야 제대로 이해시킬까 말까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 아마 그건 고생 끝에 낙이 온 사 - P124

람에게만 발언권이 주어졌기 때문일 거다. 그들은 자서전으로, 인터뷰로 자기 말을 퍼뜨리지만 "성실한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실했다가 개죽음을 당한"이들은 말이 없다. 특정 지역이 사교육 시키기 좋다는 말. 사교육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기득권층이된 이들의 언어일 것이다. 사교육에 실패했거나 애초에 사교육을받을 수 없는 이들의 말은 배제됐다. 재개발이 지역 발전에 좋다는말도 마찬가지. 매매차익으로 부를 축적한 중산층과 그것을 조장한토건재벌의 말이다. 쫓겨난 원주민의 말은 무음 처리다. 사회적 편견은 그렇게 생산 및 유통된다.
나는 목동 아파트를 떠나 집을 구하며 주택담보대출이란 것을받았다. 용쓰고 살았으나 살다보니 중년에 빚쟁이다. 20년 상환의굴레에 갇혀 죽지도 못할 처지가 된 게 황망하고 서글펐는데 이 책에서 부채에 관한 다른 해석을 얻었다. "개인이 가난해서 빚을 지는것이 아니라, 빚을 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사회에 적응해나가기 위해 빚을 지는 것이다." 학생-채무자의 글에 노동자-채무자인 나는 위안을 받는다. - P125

한 사람의 공감 능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계속 질문하는 중이다. 여자라서, 아이를 키워봐서, 딸이 있어서처럼 저절로 주어지는 것들은 계기가 될 순 있어도 공감의 지속 조건은 될 순 없다. 배움이 필요하다. 글쓰기 수업에 오는 어른들도 ‘느끼는 능력을 갈구한다. 남 일에 무관심하면 더 빨리 더 높게 사회적 성취를 일굴 수있을지 모르겠으나, 자신과의 서먹함이나 관계맺기의 무능함으로인해 삶의 다른 한쪽이 허물어지는 탓이다.
내가 아는 공감 방법은 듣는 것이다. 남의 처지와 고통의 서사를 듣는 일은 간단치 않다. 자기 판단과 가치를 내려놓으면서, 가령
‘왜 이제 말하느냐‘ 심판하는 게 아니라 왜 이제 말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해하려 애쓰면서, 동시에 자기 경험과 아픔을 불러내는 고강도의 정서 작업이다. 온몸이 귀가 되어야 하는 일. 얼마 전 본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당신이 할 말을 생각하는 동안 나는 들을 준비를 할 거예요." - P128

삶은 늘 우리의 경험과 인식을 초과한다. 문학으로 타인의 삶을상상할 수는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왜 결혼생활 10년이 넘도록 잘참다가 하필 그날부터 호텔로 갔는지, 기껏 가놓고 왜 그 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 결혼 전 광고회사에서 일했던 ‘스마트한 여성‘인데 어째서 이혼하지 않고 지리멸렬한 결혼을 이어갔는지, 매사합리적인 언어를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설명 불가능하다. 문학의 언어는 보여준다. 스스로 전개되는 삶을 통해 합리와 이성으로 기획된 세계의 빈틈과 모순을 드러낸다. 그래서 《19호실로 가다》의 첫문장은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수 있다."  - P131

안희정 성폭행 혐의 사건에는 법리적 판단이 내려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건이 끝나도 여성의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그건성폭행이 계속된다는 말이고, 남성의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고 편집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말하기는 자주 실패하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견고한 지배 질서의 틈을 뚫고 터져나오는 목소리는 그만큼 질긴 생명력을 갖는다. 삶을 대동하고 나온 목소리는 말하기에 실패할 때마다 정교해진다. 나는 거기서 희망을 본다. - P131

여성혐오로 인한 죽음, 그리고 성폭력 피해는 주식 시세나 날씨처럼 매일 생산되는 뉴스다. 한샘 기업 내 성폭력 사건이 폭로된 게불과 몇 달 전이고,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진 게 2년전이다.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서 서사가 되지 못한 채 눈송이처럼흩어져버린 힘없는 여성 피해자들 이야기는 반도의 땅 곳곳에 설산을 이루고도 남는다.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페미니스트가가리키는 여성이 처한 현실의 참담함이다. 여자는 밥하려고 태어나지 않았고 꽃처럼 꺾어도 되는 존재가 아닌데 밥 안 한다고 죽이고꽃 꺾듯 존엄을 꺾어버리는 무수한 사건들에도, 우리는 계속 놀라고 말리고 떠들고 분노해야 한다. - P134

읽고 쓰고 말하고 고치기의 반복. 이 고된 노역을 우리는 왜 자처하는가. 글쓰기의 목적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렇게 정리해본다.
삶이 고차함수인데 글이 쉽게 써지면 반칙이다. 정확한 단어와 표현을 고심하다 보면 자신을 스스로 속일 가능성이 줄어들고, 몸을숙여 한 사람의 내면의 갱도에 들어가는 훈련으로 남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모든 사물과 현상을 씨 -동기-로부터 본다"(김수영)는 것,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 타인의 처지가 되어보는 일, 사람살이에 꼭 필요한이것을 교육받을 기회가 드물었던 우리는 글쓰기를 핑계 삼아 공부하고 있다. 꼰대 발언, 혐오 발언이 승한 시대에 말을 지키는 것은나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니까. - P149

부모와 산다고 다 행복하지 않듯이 부모가 없다고 꼭 불행하지않다. 복지시설에서 사는 열다섯 살 아이의 비밀이 아픈 것이지, 그아이의 삶 자체가 슬픈 것은 아니다. 아침에 학교에 가고 아이돌 좋아하고 친구들이랑 싸우고 떠들고 치마 기장 줄이기에 연연하며 핸드폰 카톡에 정신이 팔려 있는 모습은 또래 아이와 다르지 않다. 부모의 부재를 무조건 동정하거나 차별하는 시선만 아니라면 아이가기죽을 일도, 거짓으로 둘러댈 일도 없다.
한 아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타인의 돌봄이다. 그 타인이꼭 부모일 필요는 없다. 부모이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인간은 나 - P162

약하고 흔들리는 존재다. 자식을 낳는다고 남을 돌볼 수 있는 육체적·정신적·경제적 상태가 자동으로 세팅되지는 않으며 세팅되었다고 한들 영원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아이는 무조건 친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식으로 혈연을 강조하고 모성에 대한 환상을 부풀리는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1284).
한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든 신체적 온전함과 존엄성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후원금을 척척 내는 어른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부모님 뭐하시느냐‘ 다짜고짜 묻지 않는 어른이 많아져야 하고 이력서에 가족관계를 쓰지 않도록 하는 제도가 생겨야 한다. 이 세상에 ‘불쌍한 아이‘는 없다. 부모 없이 자란 자식이라는 굴레를 씌우고불쌍한 아이를 만들어내는 집요한 어른들이 있고, 정상가족이라는틀로 자율적 존재를 가두거나 배제하는 닫힌 사회가 있을 뿐이다. - P163

며칠 후 찬바람 뚫고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 전시회 토크콘서트에 갔다. 전시를 주최한 10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는피해자에 대해 양육자와 눈 맞추고 말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 그래서 처음엔 뭘 물어봐도 "싫어" "재수 없어" 두 마디로만 답하는 아이들이었다고 표현했다. 어려서부터 가정폭력이나 학대를 당하던 아이들이 ‘살려고 집을 나와 먹여주고 재워주는 사람을 따르다가 피해를 입는 구조라는 것.
그런데도 아이들은 보호받기는커녕 ‘쉽게 돈 번다‘며 비난받고낙인찍힌다. 조 대표는 말했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어렵지 않으냐고 물어보는데 현장을 모르는 행정부 어른들과 싸우는 게 더 어려워요." 심지어 단속에 적발된 성 구매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러 센터에 직접 찾아오는 일까지 있다며 "어째서 구매한 놈이 당당한가"
분통을 터뜨렸다. - P165

이날 내가 배운 것도 세 가지다. 첫째, 소위 ‘원조교제‘나 ‘조건만남‘으로 불리는 10대 성매매는 동등한 입장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착각을 주지만 한쪽이 취약한 처지이므로 성착취라는 말이 합당하다. 둘째, 전 세계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범죄에 - P165

대해 엄격하게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는 보호하는 추세로 발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범죄라는 인식조차 미약해서 가해자들이 외려 당당하게 군다. 셋째, 성착취라는 말이 일반화되면 "당당한 놈들도 바퀴벌레처럼 숨을 것"이며 성착취도 사라질 것이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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