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자체도 교훈적이다. 사과 바구니는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지 않다. 바구니는 유리처럼 투명하고, 사과들은 공중부양 하듯 바구니 안에 떠 있다. 사과는 빨간색도 아니고 금색인데, 뚫어져라 보면 사과들이 납작한 그림에서 삼차원 형체로 변하면서 녹은 금박 같은 것이 사과 속에서 빛을 발한다. 따라서 이 그림은 선물(바구니 전체 안의 선물(사과들 안의 또 다른 선물(빛나는 에너지)을 보여준다. 각각의 사과는필시 각각의 셰이커교도를 대변할 것이다. 각자 내면의 선물로 따뜻하고 은은하게 빛나지만, 사과들의 크기가 모두 같기 때문에 누구도 공동체에서 두드러지지 않는다. 사과들을 한데 담고 있는 용기, 즉 투명한 바구니는 짐작건대 최초의 감상자들에게 신의 은총을 의미했을 것이다. 하이드는 책 표지를 대충 선택하지 않았다. - P240
만약 내가 인터넷에서 돈을 지불하지 않고 음악이나 영화를 훔쳤다면, 다시 말해 인터넷에서 뭔가를 얻어낸 다음 그것을 정신적 가치는있지만 금전적 가치는 없는 선물로 치부했다면, 나는 그 선물이 내 손에 도달하는 데 매개체가 되어준 창작자에게 무엇을 얼마나 빚진 걸까? 감사의 말 한마디? 진지한 관심? 시주 그릇에 넣는 라테 한 잔 값의 팁? 분명한 답은 그것이 결코 ‘공짜‘는 아니라는 것이다. 저작권 분쟁이확산되면서 이런 이슈들에 대해 엄청난 디지털 잉크가 쏟아졌다. 분명히 말하지만 해결책의 일부는 신세대 e청중에게 선물의 이치를 교육하는 것이다. 선물은 주는 사람이 선택권을 행사할 때 선물이다. - P243
내가 만난 선물』의 독자들은 모두 이 책에서 통찰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본인의 예술 활동에 대한 통찰뿐 아니라, 일상을 너무 넓게차지하고 있어서 오히려 자세히 볼 틈이 없었던 문제들에 대한 통찰을얻었다고 했다. 누군가 나를 위해 문을 잡아주면 나는 그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빚진 걸까? 내 정체성을 다지려면 크리스마스를 가족과함께 보내야 할까? 만약 동생이 신장을 기증해달라고 부탁하면 즉각그러겠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동생에게 수천 달러를 청구해야 할까? 범법 행위를 요구받는 입장이 되기 싫으면 마피아의 선물은 사양하는게 좋지 않을까? 내가 정치인인데 로비스트에게 포도주 상자를 받아도 될까? 다이아몬드는 정말 여자의 ‘베스트 프렌드인가? 아니면 현금화가 불가능한 격정적인 손등 키스에 더 가치를 두어야 할까? 한 가지는 보증할 수 있다. 선물』을 읽기 전의 당신과 읽은 후의 당신은 같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이 책이 선물로서 가지는 위상이기도 하다. 선물은 단순한 상품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영혼을 변화시키니까. - P244
헨리 왕의 궁정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도사리고 있고,그들 모두 나름의 잇속을 챙기거나 참수의 도끼를 피해 다닌다. 독자가 이들의 뒤를 빠짐없이 따라가게 하는 것은 보통 재능이 아니다. 역사소설 쓰기에는 난관이 많다. 다수의 등장인물과 그럴듯한 속옷은 그중 단 두 가지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어떤 말씨를 써야 할까? 16세기 어휘는 못 알아들을 것이고, 현대 속어는 못 들어줄 것이다. - P248
우리가 역사소설을 읽는 이유는 『햄릿』을 계속 보는 이유와 같다. 중요한 건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다. 우리는 플롯을 알지만 등장인물들은 플롯을 모른다. 맨틀은 크롬웰이 안전을 확보한 듯한 시점에 남겨두고 책을 끝낸다. 앤 왕비뿐 아니라 그를 저주하던 네 명이 방금 참수됐고, 더 많은 이들이 무력화됐다. 비록 ‘여우가 집에 간 사이 닭장이 ‘누리는 평화‘에 불과하지만 잉글랜드는 평화를 목전에 두었다. 하지만사실 크롬웰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고, 그의 적들은 무대 뒤에 모여 불평을 토하고 있다. 책은 처음처럼 피에 젖은 닭털들의 이미지로 끝난다. 하지만 책의 끝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결말이란 없다." 맨틀이 말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결말의 실체에 대해 기만당한 것이다. 결말은 모두 시작이고, 이것도 그중 하나다. - P250
올해 레이철 카슨의 기념비적 저서 『침묵의 봄이 출간 50주년을 맞았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20세기 환경 서적 중 가장 중요한 책으로 꼽는다. 이 책은 20세기에 인간이 병충해 방제의 목적으로 만들어 대대적으로 사용한 무수한 화학약품이 생물권을 파괴하는 독이 된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레이철 카슨은 이때 이미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생태주의 작가였고, 해당 분야의 선구자였다. 카슨은 일반 독자들도쉽게 이해할 수 있게 과학을 설명하는 방법을 알았다. 또한 뭔가를 구하려면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카슨이 저술한 모든 것에서 자연 세계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빛을 발한다. 그녀는 ‘침묵의 봄』이 풍차를 향한 자신의 마지막 돌격이 되리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자신이 가진 수사학적 무기들을 골고루 연마했고, 연구들을 광범위하게 종합했다. 그런 다음 단순하면서도 극적인 프레젠테이션과 방대한통계자료를 결합했고, 환경보호를 위한 구체적 실천이 시급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이 책의 영향은 엄청났다. 많은 단체들, 입안들, 정부 기관들이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그 핵심 통찰들은 오늘날까지 주효하게 남아 있다. - P253
카슨에 대한 인신공격의 대부분은 20세기 중반의 여성관-약한 정신 능력, 지나친 감상주의, ‘히스테리‘ 경향에 기초한 젠더 차별적 비방이었다. 일례로 전 미국 농무부 장관 에즈라 태프트 벤슨(Ezra TaftBenson)이 황당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사적인 편지에서 카슨이 매력적인데도 미혼인 걸 보면 "필시 공산주의자일 것이라고 썼다. (대체 무슨뜻일까? 공산주의자는 자유연애에 탐닉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섹스를 배격한다는 뜻일까?)레이철 카슨은 이 모든 것을 꿋꿋이 견뎌냈다. 비방에 굴하지 않고 품위와 존엄과 용기로 맞섰다.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는지는 얼마 안가 분명해졌다. 그녀는 암으로 투병하다 1964년 초에 세상을 떴다. 이로써 『침묵의 봄』은 그녀의 임종 유언이 됐고, 더한 영향력을 얻었다. - P254
『침묵의 봄』은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도적잖은 파문을 몰고 왔다. 내 아버지는 숲을, 특히 캐나다 북부 대부분을 뒤덮은 침엽수림을 파괴하는 해충 침습을 연구하는 곤충학자였다. 아버지는 1930년대 내내 삼림 곤충학자로 일하며 살충제 혁명의 도래를 보았다. 처음에는 기적과 같았을 것이다. 살충제에 내성 있는 곤충은 아직 없었고, 1차전의 결과는 싹쓸이 압승으로 보였다. 약품 제조업 - P254
체들은 해충 문제에 대한 화학적 해법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그 대상은 삼림 해충에 그치지 않았다. 사과·면화·옥수수를 비롯한 각종 작물의 해충, 질병 매개 곤충, 짜증 나는 모기, 노변 야생화로 확대됐고, 결국은 모든 벌레와 원치 않는 곳에 자라는 모든 것으로 번졌다. 약품 살포는 싸고, 효과적이고, 인간에게 안전합니다. 쓰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일반 대중은 약품 회사들의 홍보를 믿었다. 마시지만 않으면 사람에게 안전해요. 1940년대 우리 어린 시절의 즐거움 중 하나는 플리트건을 휘두르는 것이었다. 플리트건은 DDT 살충제를 담은 분무기인데, 그걸 뿌리면 실제로 어느 벌레나 죽었다. 우리는 플리트건을 들고 집파리를 추적 암살하거나 장난삼아 서로를 쏘면서 뿌연 DDT 입자들을흡입했다. - P255
그런데 이런 때에 레이철 카슨이 비밀을 폭로했다. 우리가 그동안속아왔다고? 단지 살충제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진보와 발전과 발견에대해서도 전부 다 거짓이었다고? 그러니까 이것이 『침묵의 봄』의 핵심 교훈 중 하나였다. 진보라는 명찰이 붙은 것들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다른 교훈도 있었다. 사람과 자연을 가르는 경계는 우리의 인식에만 있을 뿐 실재하지 않는다. 즉우리 몸의 내부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연결돼 있고, 우리의 몸에도 생태계가 있어서, 그리로 들어가는 것-우리가 먹거나 흡입하거나 마시거나 피부로 흡수하는 것은 우리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금은 이것이 당연한 상식이 됐기 때문에 일반의 생각이 이와 달랐던 시대를 상상하기 쉽지 않다. 세상은 레이철 카슨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카슨 이전의 자연은 그저 ‘그것(it)‘이었다. - P257
레이철 카슨이 살아 있다면 지금의 우리에게 무슨 말들을 했을지 궁금하다. 베트남전쟁 때 미군은 베트남 정글들을 말려 죽일 독성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를 태평양 너머로 무지막지하게 실어 날랐다. 카슨이 이를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인류가 파멸의 낭떠러지로 향한다고 경고하지 않았을까? 이때 파괴된 정글들은 여태 회복되지 않았고, 당시 고엽제에 노출됐던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아직도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카슨의 경고는 거기서 끝나지않았을 것이다. 에이전트 오렌지의 해양 유출에 따른 결과를 상상해보라. 바다 남조류의 죽음은 곧 지구적 재앙이다. 지구 대기권 산소량의50~80퍼센트를 해조류가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 P261
카슨이 살아 있다면 자신이 뿌린 희망의 신호들도 봤을 것이다. 카슨 덕분에 사람들이 문제의 일부에라도 경각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개인이 모든 문제를 놓치지 않고 파악하기란 어렵다. 우리의 첨단 기술 문명은 구멍투성이고 그 누출물들이 우리에게 떨어지고 있다. 우리가 혁신을 할수록 우리가 호흡하고, 먹고, 피부로 흡수하는 화합물의목록이 길어진다. 폴리염화비페닐, 염화불화탄소 냉매, 다이옥신 등은유해성이 밝혀져 얼마간 통제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유해 화학물질들이 환경에 만연하고, 해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화학물질들이 여기에 가세한다. - P262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본인이 직접 피해자가 되지 않는 한, 보이지 않는 독성을 걱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지 않는다. 인간은 단기적종이다. 인류사의 대부분을 그렇게 살았다. 대개의 사냥꾼과 약탈자처럼 우리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포식했다. 하지만 우리의 보금자리인 지구를 망치는 일을 멈추지 않으면 우리는 정말로 단기적 종으로 끝난다. 내 아버지의 암울한 예언처럼 바퀴벌레가 지구를 접수하게 된다. 환경운동가들을 악마로 만드는 일 - 레이철 카슨에게 일어났고 지금도 계속 일어나는 일은 이 운명을바꾸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인식이 높아졌다. 환경 단체들로 가는 기부금 비중은 여전히 초라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인류 최대의 질문에 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들이 많아졌다. 그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인가? - P262
환경 단체들이 피라미드를 이루고 그 위에 그린피스, 세계자연기금,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Birdlife International) 같은 국제단체들이 있다. 이들 덕분에 지금의 우리는 카스의 시대에 비해 지구 생명의 자초지종에 대해 훨씬 많이 안다. 해류가 어디로 흐르는지, 숲이 어떻게 영양분을 보충하는지, 바닷새 무리들이 어떻게 해양 생물을 풍요롭게 하는지를 안다. 우리는 1940년대 이후 어류 자원의 90퍼센트를 파괴했다. 하지만 해양 공원 지정으로 회생을 도모 중이다. 우리는 새들이 어디에 둥지를 트는지, 그들이 계절이동을 하며 어떤 위험을 헤쳐나가는지 안다. 우리는 서식지 보존의 중요성을 알고, 체계적으로 보호지역을 지정해나가고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중요조류서식지(IBA) 지정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방대해진 지식에 비해 공동의 정치적 의지는 강하지 않다. 변화를 향한 에너지와 보존 활동은 앞으로 풀뿌리 네트워크에 기댈 수밖에 없고, 지금도 대부분 거기서 나온다. - P263
제가 1960년대에 처음 청중과 질의응답 세션을 갖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묻곤 했습니다. "언제 자살할 생각이세요?" 저는 여성시인이었고,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의 망령이 아직 떠돌던 시대였고 자살이 필수로 여겨졌습니다. 여권운동 초기에는 이런 질문이 왔습니다. "남자들을 증오하세요?" 1980년대가 되자 사람들이 글쓰기 과정에 대해 묻기 시작했습니다. 1985년 이후에는 시녀 이야기』에 대해말하고 싶어 했고, 그건 지금도 그렇습니다. 국가가 여성의 신체를 관리하는 정책에 대해 제가 정곡을 좀 세게 찌른 모양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질문이 들어옵니다. "희망이 있나요?" 제 대답은 "언제나 희망은 있죠"입니다. 희망은 내장형입니다. 그리고 잘 옮습니다. 희망이 있는 곳에 희망이 더 많아집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들은노력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노력뿐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좀비의 진정한 의미일지 모릅니다. 그들은 우리입니다. 다만 희망을 뺀 우리를 보여줍니다. 여러분에게 희망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 P285
하지만 책을 쓰는 데는 다른 이유들도 있다. 플롯보다는 내용과 관련된 이유들. 우리는 기이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한편에서는 온갖 생물학, 로봇공학, 디지털 기술이 매순간 발명과 발전을 거듭하며 한때 불가능이나 마법의 영역에 있었던 위업들을 실현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우리의 생물학적 터전을 숨 막히는 속도로 파괴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수세기 동안 서구에서 찬양과 홍보의 대상이었던 민주주의가 첨단 감시 기술과 기업 자본의 힘에 의해 안에서부터 붕괴하고 있다. 현재 인간사회는 세계 인구의 단 1퍼센트가 전체부의 80퍼센트를 장악한 극단적 가분수 피라미드를 이룬다. 이는 본질적으로 위태로운 구조다. - P291
어린 내 눈에 사진 속 인물은 동화에 나오는 마법의 생명체 같았다. 적어도 천 살은 된 듯한, 믿을 수 없이 나이 든 여자. 화려한 착장에 당대의 화장법에 충실했음에도, 그 효과는 카니발 분위기였다. 변장한멕시코 해골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총기와 냉소가 빛났다. 그녀는 자신이 뿜어내는 엽기적 인상까지는 아니어도 다분히 기묘한분위기를 즐기는 듯했다. - P294
이것이 이자크 디네센 단편집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1934)에서 의도했던 분위기였을까? 그중 「엘시노어의 저녁 식사(The Supper atElsinore)」에서 데 코닝크 집안의 세 남매는 살아 있는 메멘토 모리(죽음의 상징)로 묘사된다. "오빠의 용모 못지않게 두 자매의 모습에서도, 독특한 분위기의 미모로 유명했던 집안 내력을 한눈에 실감할 수 있었다. 심지어 벽에 걸려 있는 세 남매의 어린 시절 초상화마저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만 세 사람의 머리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전반적으로해골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었다." - P294
이자크 디네센은 『라이프 지의 사진을 찍을 당시 이미 투병 중이었다. 하지만 9년 후 뉴욕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도 당당함은 여전했다. 그녀는 최고의 명사 대접을 받았고, E. E. 커밍스와 아서 밀러를 포함한 유명 작가들이 그녀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녀가 참석하는 자리에는 인파가 몰렸고, 더 많은 사진들을 낳았다. 그 후 3년만에 그녀는당연히 미리 알고 있었을 죽음을 맞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녀의 현란한 자기표현은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죽음을 앞 - P294
둔 투병 시기에는 한때 빼어났던 미모가 망가진 모습을 카메라로부터숨기고 은둔을 택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디네센은 세간의 스포트라이트에 자신을 온전히 노출시켰다. 혹시 그녀는 자신의 문학을 지배한모티프 중 하나-거의 확실한 죽음에 맞선 용감하지만 부질없는 제스처-를 직접 체현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솔깃한 추측이다. 뉴욕은 디네센의 마지막 무대로 어울리는 곳이었다. 1934년에 그녀가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로 미국을 사로잡으며 인기를 얻은 곳이 바로 뉴욕이었다. 당시 이 책은 단편집은 판매가 저조하고, 작가가 무명이며, 이야기 자체도 괴이하고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고루한 이유로 출판사들에게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 결국 해리슨 스미스 & 로버트 하스라는 미국의 작은 출판사가 출간을 결정했다. 단, 조건이 있었다. 유명 소설가 도로시 캔필드(Dorothy Canfield)의 서문을 달아야 하고, 작가에게 선인세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 P295
카렌 블릭센은 도박을 했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도박에서 이겼다. 『일곱 개의고딕 이야기』는 모두의 예상을 깼다. 무엇보다 ‘이달의 북클럽(Book ofthe Monch Club)‘의 선택을 받았다. 대대적인 관심과 대량 판매를 보장받는 일이었다. 이제는 카렌 블릭센이 조건을 내걸 차례였다. 그녀는 이자크 디네센이라는 필명을 쓰기로 했다. 디네센은 결혼 전 성이고, 이자크는 ‘웃음‘을 뜻하는 이름 아이작(Isaac)의 덴마크어 버전이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노령에 예상치 못한 늦둥이를 낳고 기뻐서 붙인이름이었다. 블릭센의 미국 출판사는 필명을 쓰지 말 것을 권했지만소용없었다. 그녀는 다중성을 띠기로 작정했다. (그녀는 이를 통해 남성 - P295
또는 적어도 중성이 되고자 했다.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여류‘ 작가의 새장에 갇히고 싶지 않았던 걸까.)작명은 적절했다. 카렌 블릭센의 작가 데뷔는 사실상 늦고 예상치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1931년 파산 상태로 아프리카에서 덴마크로 귀국했다. 결혼은 파경을 맞았고, 그녀의 아프리카 커피 농장은 빛에 넘어갔고, 연인이었던 영국 귀족 출신 맹수 사냥꾼 데니스 핀치 해턴은경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엄밀히 말해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가 그녀의 첫 책은 아니었다. 갓 스무 살 때 처음 단편집을 낸 후 그녀는 글쓰기 대신 결혼과 아프리카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 삶은 이제 끝났다. 마흔여섯 살의 그녀는 적막함과 절박함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 느낀 건 아니었다. 그녀는 창의적 에너지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 P296
디네센에게는 사라진 나라가 보인다. 그녀는 그곳을 세심함과 애정을가지고 묘사한다. 거기에는 편협함, 속물주의, 억눌린 삶 같은 불쾌한 측면들도 포함돼 있다. 그곳으로 돌아갈 방법은 스토리텔링밖에는 없다. 그 나라는 영원히 사라졌고, 다만 회자될 뿐이다. 그녀의 작품은 금욕적이고 명민한 노스탤지어의 맥이 관통하고, 그녀가 종종 배치하는 냉소적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애가 느낌을 잃지 않는다. 그럼에도 디네센이 창작 과정에서 느꼈을 즐거움과 그녀가 이날까지 독자에게 제공해온 즐거움은 결코 적지 않다.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는 주목할 만한 커리어의 서막이었고, 이자크 디네센을 20세기의주요 작가 반열에 올렸다. 제임스 조이스가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끝에서 미노스의 미로 설계자 다이달로스를 불러냈듯"옛날의 아버지 - P300
여, 옛날의 장인(匠人)이여"-앞으로 많은 독자와 작가들이 이자크 디네센을 부르게 될 것이다. "옛날의 어머니여, 옛날의 이야기꾼이여, 지금 그리고 영원히 저를 도우소서.‘ 「라이프」지의 사진 속에서 그녀가 우리의 시선을 당당하게 마주한다. 생생한 눈빛과 화려한 치장의 불가사의한 해골의 모습으로. - P301
1963년에 우리가 몰래 읽던 또 다른 여성은 시몬 드 보부아르였다. 하지만 우리 같은 식민지 출신 소녀들의 어린 시절은 빳빳이 풀 먹인페티코트와는 거리가 멀었고, 대단히 프랑스적이지도 않았다. 우리는차라리 제국의 변방에 살던 졸부의 딸과 더 공통점이 많았다. 레싱은1919년 이란에서 태어나 영국 식민지였던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의대농장에서 자랐고, 두 번의 결혼 실패 후 장래도 전망도 없이 도망치듯 영국으로 갔다. 우리 식민지 소녀들이 장래도 전망도 없이 유럽으로 내뺐던 것처럼. ‘레싱의 에너지 중 일부는 변방 출신이라는 배경에서 왔을 것이다. 바퀴가 회전할 때 불꽃이 튀는 곳은 가장자리다. 또한 그녀의 성장 배경은 타자들의 입장과 역경에 대한 통찰을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영원히 주변인에 머무를 것이며, 언제까지나 ‘진짜 영국인‘은 되지 못할것임을 알았다. 그것을 안다면 잃을 것도 적다. 그래서인지 도리스는무엇을 하든 혼신을 다해서 했다. - P309
나는 시몬 드 보부아르는 실제로 만난 적이 없다. 어릴 때는 상상만해도 오금이 저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도리스 레싱은 실제로 만난 적이 있다. 그것도 여러 번. 그 만남들은 모두 문학적 맥락에서 일어났고, 매번 그녀는 젊은 여성 작가가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선배였다. 친절했고, 도움과 관심을 아끼지 않았고, 영국 내 비영국인 작가들의 위치에대해 남다른 이해를 갖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로 희화된다. 여성 작가들은젊은 여성 작가들에게 악녀 크루엘라 드빌 아니면 착한마녀 글린다이다. 지금까지 나도 내 몫의 크루엘라들을 만났다. 하지만 레싱은 글린다들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여성 작가들의 귀감이었을 뿐 아니라, 머나먼 오지 출신 작가들의 좋은 본보기였다. 그녀는 너무나 뚜렷이 보여주었다. 아무 배경이나 기반이 없는 사람도 재능과 용기가 있다면, 역경과 맞서 싸울 뚝심이 있다면, 그리고 약간의 행운이 따라준다면작가가 오를 수 있는 최고봉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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