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소매 끝으로 나비를 날리며 걸어갔지
바위 살림에 귀화(化)를 청해보다 돌아왔지. 답은 더디고
아래위 옷깃마다 묻은 초록은 무거워 쉬엄쉬엄 왔지
푸른 바위에 허기져 돌아왔지
답은 더디고 - P10

불멸


나는 긴 비문(碑文)을 쓰려 해, 읽으면
갈잎 소리 나는 말로 쓰려 해
사나운 눈보라가 읽느라 지쳐 비스듬하도록,
굶어 쓰러져 잠들도록,
긴 행장(行狀)을 남기려 해
사철 바람이 오가며 외울 거야
마침내는 전문을 모두 제 살에 옮겨 새기고 춤출 거야

꽃으로 낮을 씻고 나와 나는 매해 봄내 비문을 읽을 거야
미나리를 먹고 나와 읽을 거야

나는 가장 단단한 돌을 골라 나를 새기려 해. 꽃 흔한 철을 골라 꽃을 문질러 새기려 해
이웃의 남는 웃음이나 빌려다가 펼쳐 새기려 해
나는 나를 그렇게 기릴 거야
그렇게라도 기릴 거야 - P11

입춘부근


끓인 밥을
창가 식탁에 퍼다놓고
커튼을 내리고
달그락거리니
침침해진 벽
문득 다가서며
밥 먹는가,
앉아 쉬던 기러기들 쫓는다

오는 봄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발이 땅에 닿아야만 하니까 - P12

동행


절(寺) 벽에 그림자가 둘
물병 나눠 마시고
동쪽 서쪽 가리키는 듯
하나 일어나 물소리 쪽으로 가니
끈으로 매인 듯
마저 일어나 따르는데

어느 단풍 아래
돌 쓸고 앉아
붉은 술을 나누리라
단풍에 덮이리라

물소리 수척하여
돌과 귀신들 귀를 열리라 - P42

쑥대를 뽑고 나서


늦여름은, 스무여해 만에 뵌 고모나
고모집 돌담에 기댄 무화과나무나 그런
이름으로 불러도 될성싶다
빈 절 마당을 그렇게 불러도 되듯이

가장자리, 마당 가장자리
제 족속 집성촌을 빠져나온 쑥대를 뽑아내니
흙도 한무더기 무겁게 딸려나온다
슬펐다

손 씻기 전 손바닥의 쑥내를
오래 맡는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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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후, 모래 언덕 너머로 어둠이 깔리자 젊은 주교는이 멕시코인 마을에 가장 먼저 와서 이곳에 자리를 잡은 사람의 집에서 저녁상을 받고 앉아 있었다. 거기서 그는 이 마을이 <숨은 물>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와 함께 식탁에는 집 주인인 베니토라고 불리는 노인과 그의 맏아들과 두 명의 손자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노인은 홀아비여서그의 딸인 요세파가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요세파는시냇가에서 주교를 만나려고 달려왔던 바로 그 소녀였다. 그들의 저녁식사는 고기를 넣고 요리한 으깬 콩, 빵과 염소젖, 신선한 치즈와 잘 익은 사과였다.
두텁게 회칠을 한 어도비 흙벽으로 된 이 방으로 들어오는순간부터 라투르 신부는 일종의 평화로운 기분을 느꼈다. 가구가 거의 하나도 없이 단순 소박한 이곳은, 그들 앞에 음식을 내놓고 이제는 벽에 기댄 채 그늘 속에 서 있는 진지한 소녀와 그의 얼굴을 응시하는 열성적인 그녀의 눈에서 풍기는분위기와 똑같은 것이었다. 왠지 수수하면서도 편안히이 들었다.  - P32

주교는 그 샘 옆에 오래 앉아 있었다. 해가 낮게 저물어 가며 장밋빛 집과 눈부신 정원 너머로 아름다운 빛을 쏟아 내고 있었다. 연로한 할아버지가 물의 원천지 근처 흙 속에서발견했다는 화살촉과 부식한 메달들과 칼집 등을 그에게 보여 줬었는데, 거기에는 분명히 스페인어로 쓰여 있었다. 이지점은 이 멕시코 사람들이 오기 이전에 오랫동안 인간들의거주지였던 것 같았다. 그 자신의 나라 우물의 원천지들도아마 그랬으리라. 로마 정착민들이 거주하면서 강의 여신상을 세워 놓고 후에 기독교 사제들이 십자가를 세워 놓았듯이, 이는 역사보다도 더 오래된 것이었으리라. 이 마을은 주교가 관할하는 커다란 교구의 축소판인 셈이었다. 목마른 사막이 수백 평방 마일이나 펼쳐져 있었고, 그런 다음 샘이 있었고, 마을이 있었고, 손자들에게 그들의 교리 문답서를 암기시키려는 노인네들이 있었다. 스페인 신부들이 심어 놓고그들의 피로 물을 뿌렸던 신앙은 죽지 않았던 것이다.  - P39

이 성당 주거지는 낡은 어도비 흙벽돌집으로, 너무 오랫동안 수리를 하지 않아서 안락하지는 않았다. 라투르 신부는별관 한쪽 끝에 있는 방을 서재로 택했는데, 지금 거기 앉아서 저녁으로 사그라져 가고 있는 크리스마스 오후를 보내고있었다. 서재는 괜찮은 모양의 기다란 방이었다. 두터운 흙벽이 인디언 여자들의 솜씨 좋은 손으로 인해 안쪽에서 제대로 마무리되어 있었는데, 울퉁불퉁하고 친밀한 느낌이 드는흙칠의 질감은 전적으로 인간의 손에 의해 생긴 것이었다.
벽과 그 주변에 있는 뭉툭한 문턱과 창문턱과 구석의 벽난로주변에 뭉툭하게 발라져 널따랗게 도드라진 부분은 왠지 안도감을 주는 견고함과 깊이감을 갖고 있었다. 주교가 없는동안에 내부는 새로 회칠을 했는데 명멸하는 불빛이 물결치는 듯한 벽 표면은 장밋빛으로 반짝여 결코 똑 고르지 않게,
결코 죽은 회칠 벽이 되지 않도록 바로 아래 붉은 진흙 빛에 따스한 색조를 가미해 라임색 회칠로 보이게 했다.  - P42

주교는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신학교 다닐 때는 평생 명상의 삶을 영위하겠다고 결심했었잖아요.」
요셉 신부의 수수한 얼굴에 한 줄기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직도 그 희망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당신이나를 놔주는 날에는 프랑스에 있는 종교단체로 돌아가 성모마리아를 위해 헌신하며 남은 삶을 마칠겁니다. 당분간 행동을 하며 성모 마리아를 섬기는 게 내 운명이라서 이러고있을 뿐이지요. 하지만 이곳은 너무나 먼 곳입니다, 주교님.」주교가 다시 고개를 내젓더니 중얼거렸다. 이곳이 얼마나먼 곳인지를 누가 압니까?」계속 이어지는 산악 지대, 길도 없는 사막, 하품하듯 떡 벌어져 있는 계곡들, 갑자기 불어나는 강물들, 아직 알려져 있지도 않고 이름도 없는 지역으로 십자가를 메고 갔고, 노새들과 말들과 정찰병들과 마차 몰이꾼들을 데리고 돌아다니는 삶을 산 이 강인한 작은 사제가 오늘 밤에는 그의 상관에게 염려하는 듯이 되풀이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 P50

그는 눈을 감고서 한순간 갑자기 다가온 이 퍼지는 듯한 동방의 분위기를 소중히 여기며즐겼다. 그는 언젠가 전에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와 어딘가로멀리 갔던 것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뉴올리언스의어느 거리에서였다. 그는 모퉁이를 돌다가 노란 꽃바구니를든 할머니를 만났다. 꿀처럼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흐드러지게 핀 노란 꽃이었다. 미모사 꽃이었던가. 하지만 그 이름을생각하기도 전에 그는 어떤 장소의 느낌에 압도당하며, 성직복과 그 모든 것과 함께 그가 어린 시절 병치료차 어느 겨울을 보냈던 프랑스 남부의 꽃밭으로 떨어져 들어가는 느낌이들었다. 그리고 이제 이 은방울 같은 종소리가 음속보다도더 빨리, 더 멀리 그를 데리고 갔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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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라 캐더Willa Cather


미국의 대표적인 지방주의 작가로 1873년 버지니아 주에서 태어났다.
1895년 네브래스카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피츠버그에서 몇 년 동안신문, 문예잡지사 일과 교직 생활을 하다가 1912년부터 창작에 전념하였다. 네브래스카에서 혹독한 기후와 싸우며 개척 생활을 하는 북유럽 이주민들과 함께 보낸 10년간은 그녀의 작품에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캐더는 웅대한 자연을 묘사하는데 알맞은 위엄 있고 단아한 필치로 모든 개개인의 생활에 새겨진 인간 역사를 그렸다고 평가받고 있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며 네브래스카 최초의 여성 유명 인사였던 캐더는 1947년 미혼인 채로 세상을 떠났다.
1927년에 발표한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는 윌라 캐더가 미국남서부인 뉴멕시코 지방을 여러 차례 여행하면서 구상한 작품이다. 종교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불모지였던 뉴멕시코에서 두 프랑스인 선교사가 불굴의 정신으로 이룩한 포교의 생애를 흥미진진하게 묘사하는 것은 물론, 소설의 무대가 되는 뉴멕시코 일대의 웅대한 자연환경을 그리고 있다.
대표작으로 네브래스카의 대초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거대한 서사시인 「오, 개척자여! O Pioneers!」와 「나의 안토니아 MyAntonia가 있으며, 사라져 가는 개척자 정신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우리 중의 하나One of Ours』로 1922년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 서부 개척자들 중 한 여인의 허물어져 가는 사랑의 생애에 초점을 맞춘 「방황하는 부인 A Lost Lady」,
지금은 사라진 뉴멕시코 주 혈거인종의 끊임없는 휴식에의 동경을 그린 「교수의 집 The Professor‘s House1, 
18세기 전반 캐나다에서 프랑스 이주민들의 용기와 긍지와 정열로써 살아가는 모습을그린 「바위 위의 그림자 Shadows on the Rock』 등이 있다.

1848년 어느 여름날 저녁, 세 명의 추기경과 선교사 자격으로 미국에서 온 주교가 함께 모여 로마 시내가 내다보이는사비네 언덕 어느 저택의 정원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저택은 뜰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무척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했다. 네 사람이 앉아 있는 식탁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정원에 놓여 있었는데, 정원은 뜰의 남쪽 끝으로 20피트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선반 모양의 평평한 바위 정원 밑으로는 포도밭을 이루고 있는 가파른 경사지가 쭉 뻗어 있었다. 그곳은 또한 층층으로 된 돌계단을 통해 위쪽의 산책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저녁 식탁은 그 평평한 바위 너머 또 다른 바위틈에서 가지를 활짝 펴고 웃자란 털가시나무 참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는 정사각형의 모래밭 위에 차려져 있었다. 식탁의 양쪽으로는 오렌지 나무와 서양협죽도 화분들이자리하고 있었다. 정원의 돌계단 난간은 곧장 허공에 닿았고, 그 낭떠러지 아래로는 부드럽게 물결치는 광경이 쭉 펼쳐지다가 로마 시내의 전경에 이르게 되는데, 그 지점에 이르기까지 눈을 사로잡을 만한 별다른 특별한 광경은 없었다. - P7

주인인 스페인 추기경과 그의 손님들이 저녁식사를 하기위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식사를 하기에는 다소 이른시간이었다. 아직도 해가 최고의 광채를 한 시간쯤은 더 보여 줄 수 있는 이 시간에, 아스라이 빛나는 시골 풍경들 너머낮게 로마 시내가 하늘가로 간신히 그 옆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로마 시내의 모습은 성 베드로성당의 둥근 지붕을 제외하고는 모두 희미했다. 그것은 커다란 풍선 기구의 납작해진 꼭대기 부분처럼 파르스름한 잿빛으로, 그 지붕을 덮은구리가 부드러운 금속 표면 위에서 번득이며 빛을 내고 있었다. 그 집의 주인인 추기경은 이처럼 해가 열렬하게 움직이고 있는 늦은 오후 시간에 저녁식사를 시작하는 괴상한 취향을 갖고 있었다. 태양 빛은 바삐 움직이다가 최고의 광채가끝나 버리는 특별한 절정의 순간을 맞고 있었는데, 그 빛은굉장히 많은 촛불들이 불빛 속에서 아주 매력적으로 붉은기운을 낼 때와 같은 기운을 내뿜고 있어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웠다.  - P8

햇살은 털가시나무 참나무들 속으로 스며들어 적갈색나무줄기와 짙푸른 잎들을 연하게 비춰 주고 있었고, 오렌지나무들의 연초록빛을 따스하게 했으며, 서양협죽도의 장미가 금빛 꽃을 피우게 했다. 또한 다마스크 천으로 된 식탁보와 접시와 크리스털 유리잔 위에서 나선형의 문양들이 빙글빙글 돌며 떨게 만들었다. 성직자들은 햇빛을 가리기 위해직사각형으로 된 신부복 모자를 쓰고 있었다. 세 명의추기경들은 진홍빛으로 가장자리를 공글리고 진홍빛 단추를 단검은색 성직자복을 입고 있었으며, 주교는 보라색 조끼기다란 검은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만나서 상의하기로 되어 있던 업무에 대해 이야기 - P8

하고 있었다. 사실 그들은 최근 미국에 합병된 북아메리카의일부인 뉴멕시코에 가톨릭 교구를 새로 설립해 달라는, 볼티모어 지방 심의회에서 올라온 진정서에 대해 토의를 하기 위해 만난 것이었다. 이 새로운 영토는 그들 모두에게, 심지어선교사 주교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이탈리아인추기경과 프랑스인 추기경은 그곳을 멕시코라고 했고, 주인인 스페인 추기경은 그곳을 <뉴스페인>이라고 언급했다. 이새 교구에 대해 추진해야 할 일에 그들은 거의 관심과 열의가 없었기에, 선교사인 페랑 신부는 계속해서 이에 대해 언급하며 그들의 관심을 일깨우고 있었다. 조상이 프랑스 사람인 페랑 신부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는데, 신세계를 두루 돌아다니며 놀랄 만한 업적을 이룬 그는 가톨릭교회의 오디세우스라고 할 만한 인물이었다. 그들은 프랑스어로 말하고 있었다. 이때는 추기경들이 라틴어로 안건들을 마음대로 토의하던 시대가 이미 가버린 시점이었다. - P9

「그렇습니다. 그들은 최고의 선교사들이지요. 우리 스페인신부들은 순교자로서는 훌륭하지만, 프랑스인 예수 신부들이 선교에 있어서는 보다 많은 일을 성취해내지요. 그들은 훌륭하게 일을 추진하고 성취해 내는 사람들이지요.」
「독일인들보다도 더 잘하나요?」 오스트리아인들을 동정하는 베네치아 출신의 추기경이 물었다.
「아, 독일인들은 분류를 잘하지요. 하지만 프랑스인들은무엇인가를 조직해서 추진하는 일을 잘하지요! 프랑스인 선교사들은 분배를 잘하고 이성적으로 조정을 잘하는 데 감각이 탁월하거든요. 그들은 늘 어떤 일들의 논리적인 관련성을 찾으려고 노력하거든요. 그것은 그들의 열정이지요.」 이렇게 말하고 주인 추기경은 다시 늙은 주교에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주교님, 이 버건디산 포도주를 그냥 내버려 두시렵니까? 제가 특별히 주교님의 캐나다 겨울 스무 배쯤의 추위를 따뜻하게 녹여 주려고 이 포도주를 저장실에서 꺼내 왔는데요. 틀림없이 휴런 호 근방에서는 이런 포도주가 나오지못할걸요?」 - P14

1851년 가을 오후, 혼자서 말을 타고 가는 사람이 짐을 실은 노새 한 마리 앞에 서서 뉴멕시코 중심부 어딘가의 건조한 불모 지역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그는 길을 잃었기 때문에, 나침반과 길에 대한 자신의 방향 감각만으로 오솔길로돌아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이 지역은 구분이되는 아무런 특징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니오히려 너무 많은 특징들이 넘쳐난다고 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그 특징들이 모두 똑같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사방으로멀리 내다보아도 경치는 단조롭게 솟아 있는 붉은 모래 둔덕에 이를 뿐이었다. 건초 더미보다 훨씬 더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와 같은 모양의 모래 둔덕만이 아주 많을 뿐이었다.
어느 누가 수십 마일을 쭉 둘러보더라도 똑같은 형태의 붉은언덕들만 무수하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그 언덕들 사이를 말을 타고 지나왔는데도, 그 지역의 모습은 마치 자신이 꼼짝 않고 서 있었던 것처럼변하지 않은 채 똑같았다.  - P23

그는 수사슴 가죽으로 만든 말 탈 때 입는 코트 밑에 검은색 조끼를 입고 있었고, 성직자의 칼라를 달고 있었으며, 성직자가 목에 두르는 것을 하고 있었다. 젊은 사제는 아주 열성적으로 기도를 했다. 얼핏보기에도 그는 천 명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하는 헌신적인 사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그린 그의 머리는 평범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그앉은 자세는 아주 지성적인 모습이었다. 이마는 훤하고 너그럽고 빛이났으며, 이목구비는 잘생겼으면서도 왠지 엄격해 보였다. 수사슴 가죽으로 만든 재킷의 주름 잡힌 소매 단 아래 보이는손은 유독 우아했다. 모든 것이 그가 온화한 태생으로 용감하고 예민하고 예의바른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의 태도는, 심지어 그가 사막에 홀로 있을 때조차도 눈에 띄었다. 그는 그 자신을 향해서도, 그의 말들과 노새들을향해서도, 자신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노간주나무를향해서도, 그리고 그가 기도하고 있는 하느님을 향해서도 아주 예의 바른 그런 사람이었다. - P25

이 여행자는 장 마리 라투르였다. 그는 일 년 전 신시내티에 있는 아가토니카의 주교로 일하던 자리에서 뉴멕시코의로마 가톨릭 관할 교구로 임명되어, 그 이래로 자신의 교구에 도착하기 위해 애써 오고 있었다. 신시내티에 있는 어느누구도 뉴멕시코로 가는 방법을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 누구도 거기에 가본 사람이 없었다. 젊은 라투르 신부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뉴욕에서 신시내티까지는 철도가건설되어 있었지만 철도는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뉴멕시코는 어두운 대륙의 한복판에 있었다. 오하이오 상인들은 단지두 개의 길만 알고 있었다. 하나는 세인트루이스에서 산타페로 가는 길이었지만, 그 당시에 이 길은 가다가 콤만체 인디언 부족의 습격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아주 위험했다. 친구들이 라투르 신부에게 뉴올리언스까지 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거기서 배로 갤버스턴까지 가서 텍사스를 횡단하여 샌안토니오까지 가고, 거기서 다시 리오그란데 계곡을 굽이굽이 따라 올라가 뉴멕시코로 가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이 길을 따라 여행을 했는데, 도중에 만난 재난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 P27

갑자기 라투르 신부는 그가 탄 암말의 몸에 변화가 있는것을 느꼈다. 말은 오랜만에 처음으로 머리를 들어 올리더니다리가 가벼워지는 듯싶었다. 짐을 실은 노새도 비슷한 태도를 보였는데, 두 짐승은 걸음을 빨리하고 있었다. 그들이 물냄새를 맡았나?
거의 한 시간이 지날 무렵이었다. 백 개가 모두 똑같아 보이는 두 개의 둔덕 사이로 구비 돌아 지났을 때, 두 짐승이 동시에 히힝 소리를 냈다. 그들 밑으로, 물결치는 모래의 대양한가운데로 한 줄기 푸른 초목이 나열되면서 흐르는 시냇물 - P30

이 있었다. 사막의 리본 같은 이것은 인간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돌을 던질 수 있을 정도의 크기보다 더 넓어 보이지는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라투르 신부가 이전에 본 어떤 것보다도, 구세계 유럽의 가장 푸른 어느 구석지에서 본 것보다도 더 푸르렀다. 암말의 목과 어깨의 피부가 떨리는 모습을보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것이 환영일지 모른다고, 갈증 때문에 생기는 망상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흐르는 물, 클로버 들판, 미루나무, 아카시아, 눈부신 정원이 있는 조그만 어도비 흙벽돌집들, 하얀 염소 떼를 물가로몰고 가는 소년, 이것이 바로 젊은 주교가 본 것이었다.
잠시 후, 짐승들이 탈이 날까 봐 물을 너무 많이 마시지 못하게 하느라 그가 짐승들과 씨름을 할 때, 머리에 검은 숄을두른 어린 소녀가 그 쪽으로 달려왔다. 그는 자신이 그녀의얼굴보다 더 친절한 모습을 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인사는 예수님의 인사 같았다. - P31

「순결하신 아베 마리아, 선생님, 어디에 오신 건가요?」얘야, 축복이 있기를.」 그가 스페인어로 대답했다. 「나는길을 잃은 사제란다. 나는 목이 말라 죽을 뻔했단다.」「사제라고요?」 그녀가 외쳤다 그럴리가요! 하지만 모습을 보니 맞는군요. 전에는 결코 신부님이 이곳에 오는 일이있은 적은 없지만. 저희 아버지의 기도가 응답을 받았나 봐요. 페드로, 얼른 달려가서 아버지와 살바토르에게 신부님이오셨다고 말씀 드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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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6-22 1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2023-06-22 18:41   좋아요 2 | URL
레삭매냐님 리뷰읽고 읽고싶어진...책입니다. 기대하고 있어요^^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유홍준 답사기의 전매특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을자연스럽게 눈에 보이게 만드는 답사기! 
안도현 시인


우리 문화재를 독자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된 것은 우리 것이 우리 마음에 직접적으로 와닿는 것을 방해하던 온갖 잡스러움을 걷어내준 그의 덕분이다.
故 박완서 소설가


교수님과 경주 남산을 다녀오고, 산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병이 생겼다. 갈길 급한 사람을 자꾸 뒤돌아보게 하는 그의 감언이설에매번 속아 넘어가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니 큰일이다. 
나영석 프로듀서



답사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현장에 있는 것 같다. 마치 시간여행을 하듯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곳을 거닐면, 어느새 책 속의 활자들이 살아나 교수님 목소리로 들리고 나의 두 눈은 카메라 렌즈처럼 사진 속 문화유산을바라본다. 때론 그곳의 냄새와 공기도 느끼며! 
임수정 배우


나는 보았어도 제대로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는 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서문의 글이 그토록 실감 날 수 없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답사 붐을 일으켰고, 문화유산의 대중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무려 30년 세월 동안 하나의 인문학적 주제로 20권까지 저술이 이어진 것은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대단한 업적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국토의 최남단, 전라남도 강진과 해남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1장 제1절로 삼은 것은 결코 무작위의 선택이 아니다. 답사라면 사람들은 으레 경주·부여·공주 같은 옛 왕도의 화려한 유물을 구경 가는 일로생각할 것이며, 나 또한 답사의 초심자 시절에는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지난 세월 내가 답사의 광(狂)이 되어 제철이면 나를 부르는곳을 따라가고 또 가고, 그리하여 나에게 다가온 저 문화유산의 느낌을확인하고 확대하기를 되풀이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수없이 여러번 다녀온 곳이 바로 이 강진·해남땅이다.
강진과 해남은 우리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무대의 전면에 부상하여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일 없었으니 그 옛날의 영화를 말해주는 - P13

대단한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을 리 만무한 곳이며, 지금도 반도의 오지로 어쩌다 나 같은 답사객의 발길이나 닿는 이 조용한 시골은 그 옛날은둔자의 낙향지이거나 유배객의 귀양지였을 따름이다.
그러나 월출산, 도갑사, 월남사터, 무위사, 다산초당, 백련사, 칠량면의 옹기마을, 사당리의 고려청자 가마터, 해남 대흥사와 일지암, 고산윤선도 고택인 녹우당, 그리고 달마산 미황사와 땅끝(土)에 이르는이 답삿길을 나는 언제부터인가 ‘남도답사일번지‘라고 명명하였다. 사실 그 표현에서 지역적 편애라는 혐의를 피할 수만 있다면 나는 ‘남도답사 일번지‘가 아니라 ‘남한답사일번지‘라고 불렀을 답사의 진수처다.
거기에는 뜻있게 살다간 사람들의 살을 베어내는 듯한 아픔과 그 아픔 속에서 키워낸 진주 같은 무형의 문화유산이 있고, 저항과 항쟁과 유배의 땅에 서린 역사의 체취가 살아있으며, 이름 없는 도공, 이름 없는농투성이들이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는 꿋꿋함과 애잔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향토의 흙내음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조국강산의 아름다움을 가장극명하게 보여주는 산과 바다와 들판이 있기에 나는 주저 없이 ‘일번지‘
라는 제목을 내걸었던 것이다. - P14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만큼만 느끼는 법이다. 그 경험의 폭은 반드시지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시각적 경험, 삶의 체험 모두를 말한다. 지금 말한 그 졸업생은 이제 들판의 이미지에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얻게 된 것이다. 남도의 들판을 시각적으로 경험해본 사람과 그렇지않은 사람은 산과 들 그 자체뿐 아니라 풍경화나 산수화를 보는 시각에서도 정서 반응의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답사와 여행이 중요하고 매력적인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달리는 차창 밖 풍경이 산비탈의 과수밭으로 펼쳐졌을 때 우리 일행은 남도의 황토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누런 황토가 아닌 시뻘건 남도의 황토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 자체로 시각적 충격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P15

무위사 극락보전 뒤 언덕에는 해묵은 동백나무의 동백꽃이 윤기 나는 진초록 잎 사이로 점점이 선홍빛을 내뿜고, 목이 부러지듯 잔인하게벌어진 꽃송이들은 풀밭에 누워 피를 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진읍 묵은 동네 토담 위로는 키 큰 살구나무에서 하얀 꽃잎이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남도의 봄빛이었다. 한껏 끌어안고 싶은 남도의 봄빛은 조선의 원색을 보여준다. 산그늘마다 연분홍 진달래가 햇살을 받으며 밝은 광채를 발하고, 길가엔 개나리가 아직도 노란 꽃을 머금은 채연둣빛 새순을 피우고 있었다. 피고 지는 저 꽃잎의 화사한 빛깔이 어쩌 - P29

다 때가 되면 한번쯤 입어보는 남도의 연회복이라면, 남도땅의 평상복은 시뻘건 황토에 일렁이는 보리밭의 초록 물결 그리고 간간이 악센트를 가하듯 심겨 있는 노오란 유채꽃, 장다리꽃이다.
한반도에서 일조량이 가장 풍부하다는 강진의 하늘빛은 언제나 맑다.
강진만 구강포의 푸르름보다도 더 진한 하늘빛이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청색의 원색이다. 색상표에서 제시하는바 사이언(C) 100퍼센트이다. 솔밭과 동백나무숲이 어우러지며 보리밭 물결이 자아내는 그 빛깔은 노란색과 청색 100퍼센트가 합쳐진 초록의 원색이다. 유채꽃, 장다리꽃, 개나리꽃은 100퍼센트 노랑(Y)의 원색이며, 선홍색 동백꽃잎은100퍼센트 마젠타(M)이다. 그 파랑, 그 초록, 그 노랑, 그 빨강의 원색을구사하며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남도의 봄 이외에 아무도 없다. 그 원색을 변주하여 흑갈색 황토와 연분홍 진달래, 누우런 바다갈대밭을 그려낸 화가도 남도의 봄 이외엔 아무도 없다. - P30

서양 사람들이 그들의 자연 빛에 맞추어 만든 먼셀 색상표에 눈이 익어버렸고, 그 수치에 맞추어 제조된 물감과 잉크로 그림 그리는 일, 인쇄하는 일, 그렇게 제작된 제품에 익숙한 우리의 눈에 저 남도의 봄날이그려보인 원색의 향연은 차라리 이국적이고, 저 먼 옛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그림에서나 본 조선왕조의 원색으로 느껴진다. 하물며 연지빛, 등황빛, 치자빛, 쪽빛의 청순한 색감을 여기서 더 논해 무엇할까. 남도의 봄, 그것은 우리가 영원히 간직해야 할 자연의 원색이고 우리의 원색인 것이다. 나는 그날 그 원색의 물결 속을 거닐고 있었다. - P30

그러나 하회의 답사적 가치는 어떤 면에서는 하회마을보다도 풍산들판의 꽃뫼라고도 불리는 화산(山) 뒤편 병산서원(屛山書院)이 더 크다고할 수 있다. 병산서원은 1572년 서애 류성룡이 풍산 읍내에 있던 풍산류씨 교육기관인 풍악서당(書堂)을 이곳병산으로 옮겨 지은 것이다. 이후 1614년에는 정경세를 비롯한 서애의 제자들이 류성룡을 모신존덕사(德祠)를 지었고, 1629년에는 서애의 셋째 아들인 수암 류진을 배향했으며 1863년엔 병산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그리고 1868년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도 건재했던 조선시대 5대 서원의 하나이다.
병산서원은 그런 인문적·역사적 의의 말고 미술사적으로 말한다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 건축이자 한국건축사의 백미이다.
병산서원은 건축 그 자체로도 최고이고, 자연환경과 어울림에서도 최고이며, 생생하게 보존되고 있는 유물의 건강 상태도 최고이고, 거기에 다다르는 진입로의 아름다움도 최고이다. - P39

병산서원은 하회 입구에서 마을로 가는 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낙동강을 따라 십 리(약 4킬로미터) 남짓 걸어가면 나온다. 옛날에는 시골 버스, 경운기나 다니는 비포장 흙길이어서 그것이 병산서원 보존의 큰 비결이었는데, 슬프게도 이 비책 아닌 비책은 곧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것이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 병산서원 답사길에 나는 항시 이 십릿길을 걸어다녔다. 다리가 아프고 피곤하면 고갯마루까지만 차를 타고 가서는 거기부터 오랫길이라도걸었다. 병산서원은 반드시 걸어가야만 병산서원에 간 뜻과 건축적 원림(園林的) 사고가 맞아떨어진다. 그곳에 이르는 길은 절집 입구의 진입로와 같아서 만약 선암사, 송광사, 해인사, 내소사를 자동차를 타고 곧장 들어갔을 때 그 마음이 어떠할까를 생각해본다면 왜 걸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저절로 구해질 것이다. - P39

광주광역시의 동북 방향, 무등산 북쪽 기슭과 맞대고 있는 담양군 고서면과 봉산면 일대에는 참으로 많은 누각과 정자 그리고 원림 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면앙정(仰亭), 송강(松江亭), 명옥헌(鳴玉軒),
소쇄원(瀟灑園), 환벽당(環碧堂), 취가정(醉歌亭), 식영정(息影亭), 거기에송강 정철의 별서까지 들러보는 답사 코스는 조선시대 조원(園, 정원이나 공원)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는 황금 코스이며, 이른바 조선시대 호남가단(歌壇)이라 불리는 가사(辭)문학의 본고장이니 국문학도들에게는 필수의 답사 코스가 된다. - P51

인간은 사물을 통하여 언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반대로 언어를 통하여 사물을 인식한다. 그리하여 어휘력은 인간정신의 고양과 정서의함양에 크게 기여한다. 이뿐만 아니라 풍부한 어휘력은 사물에 대한 관찰과 인식이 남다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이누이트들은 눈(雪)의 종류를 70여 가지로 분류한다고 하니 열대인이 알고 있는눈과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는 셈이다.
b정원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 단어만 들어도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와 사례와 서정을 일으킬 수 있다. 마찬가지로 원림이라는 낱말 뜻을 알게 된 현명한 독자들은 그 정취가 얼마나 풍성할까를 능히 상상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원림을 본 일이 없을지언정원림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시대의 각박한 일상속에서 상큼한 청량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원림이라는 단어는 이미 죽어버린 지 오래된 낱말이며 어느 국어사전도 이 낱말 풀이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이런 현상을 나는 항상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 P53

배롱나무의 진짜 아름다움은 한여름 꽃이 만개할 때이다. 배롱나무꽃은 작은 꽃송이가 한데 어울려 포도송이를 올려세운 모양으로 피어나는데 7월이 되면 나무 아래쪽부터 피어오르기 시작하여 9월까지 100일간붉은빛을 발한다. 그래서 백일홍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저 꽃이 다 지면벼가 익는다고 해서 쌀밥나무라는 별명도 얻었다. 탐스런 꽃송이가 윤기 나는 가지 위로 무리지어 피어날 때면 그 화사함에 취하지 않을 인간이 없다. 본래 화려함에는 으레 번잡스러움이 뒤따르게 마련이지만 배롱나무의 청순한 맑은 빛에서는 오히려 정숙한 분위기마저 느끼게 되니아무리 격조 높은 화가인들 이처럼 맑은 밝고 화사한 색감을 구사할 수있을 것인가. - P67

소쇄원이깊숙한 계곡의 한쪽을 차지했다면 명옥헌은 산언덕 너머 전망이 툭 터진곳에 자리 잡았다. 똑같은 원림인지라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인공을 가한 것이지만 소쇄원은 아늑함을, 명옥헌은 활달함을 취했다. 그것이 이 두 원림의 설계자, 사용자의 기본 아이디어였을 것이니 우리는 이를 비교하기 위해서라도 송강정, 면앙정보다도 명옥헌을 택해야 한다.
한국문학사적 의의로 말하자면 면앙정과 송강정이 훨씬 위에 놓이겠지만 옛 원림을 보는 시각적 즐거움으로 셈하자면 명옥헌이 단연 앞선다.
명옥헌은 소쇄원에서 일곱 굽이인가 아홉 굽이인가를 산길로 넘어야나온다. 그리하여 고서면 산덕리에 이르면 길 오른쪽에 ‘인조대왕 계마비(繫馬碑)‘가 서 있는데 여기서 산허리를 지르는 길을 따라 올라야 한다. 언덕배기 중턱에 이르면 마을이 나오는데 여기가 후산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엄청나게 큰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어 동네의 연륜을 말해준다. - P75

명옥헌의 배롱나무숲은 거대한 고목으로 자라났다. 일조량이 많은 곳이라 남도의 여느 배롱나무와는 달리 키가 크고 가지도 무성하고 꽃송이가 많이 달린다. 한여름 배롱나무꽃이 만개할 때 여기에 들른 사람들은 좀처럼 발길을 떼지 못한다.
본래 배롱나무는 자미탄처럼 개울가에 자연스럽게 자란 모습으로 있을 때보다 정원수로 자랄 때가 멋있다. 남도의 고찰 해남 대흥사, 강진무위사, 고창 선운사 경내의 배롱나무는 극락세계의 안내자인 양 해맑은 미소를 띠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고 최순우 관장 이래로 배롱나무를 정원수로 채택하고 있다. 중국의 당나라 시절 3성 6부의 하나인 중서성(中書省)에는 배롱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해서 양귀비 애인인 현종이 중서성을 자미성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그런 배롱나무를 350년 전에 원림의 나무로 키운 것이 명옥헌이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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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딘 브룩스의 
피플오브더북 People of the Book
2008년



미합중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오래지 않아, 우리 지역 신문에서 내가 잊을 수 없는 사진을 한 장 내보냈다. 바그다드 도서관을 서둘러 나서는 어떤 이라크 남자의 사진이었는데, 연기 가득한혼란스러운 길거리에 선 그 남자의 품에는 책이 가득, 아니 흘러넘치도록 무겁게 담겨 있었다. 몇 권은 화집이나 오래된 기록물처럼크고 무거워 보였으니 희귀한 보물들이었을지도 모르고, 그저 불타는 건물의 혼란 속에서 건질 수 있는 책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남자는 사서였을 수도 있고, 그저 독자였을 수도 있다. 약탈자가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 얼굴에는 고통과 두려움만이 아니라 열렬한 비탄도 보였다. - P364

제럴딘 브룩스의 『피플 오브 더 북』이 도서관 파괴로부터책을 구하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읽고 싶어졌다. 그 시의적절함에 지금이다 싶고 그 역설에 가슴이 저미니, 저항할 수 없는유혹이었다. 이 소설은 어느 무슬림 사서가 화재에서 오래된 유대교 경전을 구한 실화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르비아인들이 사라예보를 폭격하면서 도서관과 박물관들을 겨냥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보스니아의 자랑이자 영광인 소장품 ‘사라예보 하다‘를 도서관에서 빼내어 은행 금고에 숨겨두었다. 하지만 그 원고가 구출받은 건 처음이 아니었다. 반세기전에는 그 경전을 나치의 코앞에서 빼돌려서 내내 어느 마을 모스크에 숨겨 두기도 했다. 1941년에 경전을 구한 사람은 이슬람교 학자인 데르비스 코르쿠트였다. 1992년에는 무슬림 사서인 엔베르 이마모비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잊지 못하는 그 사진 속 이라크인과 마찬가지로) 불타는 도서관에서 책을 들고 나오려던 이마모비치의 동료 하나가 스나이퍼에게 저격당했다. 그 여성의 이름은 아이다 부투로비치였다. - P365

‘사라예보 하다‘는 유대교 경전으로서는 아주 이례적으로, 기독교 성무일도서처럼 엄청나게 섬세하고 아름다운 삽화를넣은 책이다. 14세기 중반에 스페인에서 쓰고 삽화를 넣었는데, 초기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어떤 사제가 "레비스토 페르미(revisto per mi)", 즉 내가 살펴보고 승인했다고 적고 서명을 해둔 덕분에 1609년 베네치아에서 있었던 종교재판에서 불타지 않 - P365

을 수 있었다. 어쩌다가 그 원고가 베네치아에서 보스니아로 가게되었고, 그래서 20세기에 두 번이나 아슬아슬하게 구출되었는지사연은 우리가 거의 알지 못한다.
여기에 이야기가 있는 건 확실하다. 그리고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유럽과 아프리카와 중동의 전쟁과 곤란을 다루던 배경이있고, 넓은 역사 캔버스를 좋아하며 퓰리처 상을 타기도 한 제럴딘브룩스라면 그 이야기를 맡기에 딱 맞는 소설가 같다. 브룩스의 성과는 많은 독자를 만족시킬 것이다. 이야기엔 복잡한 우여곡절이가득하고, 심지어 끝에 가서는 살짝 미스터리 플롯까지 가세한다.
섹스, 다소 보잘것없는 사랑 이야기, 그리고 의무적인 폭력 행위 묘사도 있다. 소설은 실제 사건과 상상 속의 우여곡절을 통해 이 고문서의 기원을 따라가느라 몇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고, 번갈아 나오는 챕터로 역사적인 인물들을 대거 등장시킨다. 그러나 중심 이야기는 시간순으로 나아가며, 해나 히스라는 이름의 동시대 오스트레일리아 희귀본 전문가이자 똑똑한 교양인을 다룬다.  - P366

이탈로 칼비노의
[완전판 우주만화The Complete Cosmicomics』
2009년


여름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독서는 드러누워서 푹 빠져들길고 두툼한 멋진 장편 소설 한 권, 아니면 여름 과일 바구니처럼한 번에 한두 개씩 빼먹으며 온전히 음미하기 좋은 훌륭한 단편 잔뜩이다. 여기, 이탈로 칼비노가 보낸 큼지막한 이야기 바구니가 있다. 복숭아, 살구, 천도복숭아, 무화과, 다 있다.
그것이 우주만화Lecosmicomiche』 (1968년에 영어로 출간)의 개요다. 세상의 기억과 다른 우주만화 La Memoria del mondo』 (1968)에서 새로 번역한 일곱 편, 「시간과 사냥꾼IIconzero』(1969) 수록작 전체, 『어 - P369

둠 속의 숫자들 Prima che tu dica "Pronto" (1995) 수록작 네 편, 그리고 묶여 나오지 않았던 단편 몇 개까지. 우주만화 전체를 한 권으로 보게 되다니 기쁜 일이거니와, 멋진 책이고 잘 만든 책이다. 수록작의3분의 1 이상이 나에게는 새로운 글이었고, 영어로 읽는 독자들 대부분에게 그러할 것이다. 그중 몇 편은 그야말로 보석이다. 윌리엄위버와 팀 파크스, 마틴 맥러플린의 번역은 다 만족스럽고, 맥러플린 씨의 서문은 이 눈부시게 색다른 이야기들에 더 좋을 수 없는안내서다. - P370

안내서다.
이탈로 칼비노는 무엇이었을까? 선(先)-포스트-모더니스트? 아무래도 모더니즘에서 온갖 접두사들을 없앨 때가 됐나 보다. 나치의 이탈리아 점령 기간 동안 공산주의자들을 위해 싸우던젊은 레지스탕스 전사였던 칼비노는 독창적인 지적 판타지 작가가되었고 쭉 독창적인 작가로 남았다. 그리고 그가 작가 생활 중반쯤 만들어 낸 이 형식은, 우주만화는 무엇일까? 분명히 SF의 한 아종일 이 형식은 보통(대개 진짜지만, 때로는 현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과학 가설에 대한 진술로 서술 무대를 설정하며, 서술자는 대개Qfwfq"라고 한다. 이와 같이 "모든 게 언젠가는 "이 시작된다. - P370

칼비노의 싸우는 이원성, 그대립쌍들은 거의 전적으로 섹슈얼하다. 부부싸움은 결코 통합으로 끝나지 않으며 음양의 그림처럼 영원한 과정을 잘 나타낸다. Qfwfq는 일시적으로 떨어지는원자나 우주 여행자, 아니면 (아름다운 단편 「나선La Spirale」에서처럼)작은 연체동물에 이르기까지 어떤 형태를 취하든 간에, 남성이다.
규칙에 따라 QfwfQ와 다를 뿐 아니라 다투고 반대하며 벗어나는게 본질인 여성적 존재도 있다. 소유할 수 없고, 애정을 베풀지 않는 애인이다. 우리는 그쪽 관점을 전혀 보지 못하기에, 칼비노의 우주는 남성 원칙에 기울어 있다. 나에게는 칼비노가 계속 쓰는 언제까지나 확장하는 이탈리아 가족 메타포가 더 친밀하고 더 유용하다. 하지만 그는 「암석 하늘!! cielodipietra」과 그 단편의 다시쓰기인「또 다른 에우리디케altra Euridice」 같은 글들에서 강렬한 감정을아 성별 이원성을 풍성하게 발전시킨다. 진짜 욕망이 있는 곳에서남성은 경쟁을 본다. 그래서 이원성은 영원한 삼각형으로 확대된다. 여기서는 정말로 영원하다. - P374

칼비노는 너무나 많은 면에서 시대를 앞서 나갔던 탓에, 사후 25년이 지난 지금에야 겨우 그의 작품이 판타지라는 이유로 하찮은 취급을 받지 않고 획기적인 소설이자 거장의 작품으로 널리여겨지게 되었다. 칼비노가 글을 쓰던 시기에 SF는 문학으로 거론되지 않았고, 만화는 심지어 그보다 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이 되기 전까지는 만화를 진지하게 논한다는 상상조차 하는 문학 평론가가 거의 없었다. 그 평론가들은 칼비노가 이이야기들에 부여한 이름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둘 때조차도 그게한 가지 암시이고 우주 코미디를 강조하려는 제목이라 여겼다. 하지만 칼비노는 분명 우리가 급작스러운 접근을 비약과 방대한 단순화를, 테두리 안에 그려진 그림 서사를, 카툰을, 만화를 생각하기를 의도했다. - P375

그리고 단편 「새의 기원Lorigine degli Uccelli」은 정확히그런 심상을 가지고 놀면서 독자에게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지시한다. "여러분이 효과적으로 그려 넣은 배경에 온갖 자그마한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카툰 시리즈를 상상해 보면 좋겠지만, 그와 동시에 여러분은 어떤 인물도, 배경도 상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합니다."
그래서 자, 우리는 완벽하게 상반되는 지시를 받았다. 우리가 이 두 지시를 따를 수 있다면 존 키츠가 가장 결실 있다고 믿었던 "마음을 비우는 능력" 상태 가까이에 도달할 수도 있으리라. 나는 이탈로 칼비노가 그 상태로 대부분 시간을 살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 P375

서술은 이 중심인물과 그 주위를 돌면서 보조적인 이야기와 인물과 세대들로 복합적이고 풍성한 결을 자아낸다. 하루프는어른 여자와 여자아이들을 이상화 없이 애정을 담아, 개별 인간으로 쓴다. 청소년기의 고통에 대해서는 어떤 단정도 없이 공감하고,
조악함과 위선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바라본다. 성애와 무관한 애정 관계를 보여 주는 기술,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양쪽 관점에서 묘사하는 그의 기술은 드문 만큼 반갑다.
하루프는 아주 많은 면에서 놀랍도록 독창적인 작가다. 그독창성은 특성상 많은 전통적 비평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는 가식을 부리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차분하게, 친밀하게, 그러면서도 어려워하면서, 한 어른으로서 다른 어른에게 말을 건다. 그는 이야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 조심한다. 그리고 제대로 해냈다. 딱좋다. 진실되게 와 닿는다. - P399

PAN일상에 대해 쓴다는 건 힘든 일이다. 비범한 것, 전율스러운것, 초월적인 것은 자동으로 매력을 발하지만 심지어 특별히 불행하지조차 않을 만큼 흔한 삶을 묘사하려면 용감한 저자여야 한다.
게다가 행복이라니, 성적인 만족도 아니고 야심에 대한 보상도, 황홀경도, 지복도 아니고 그저 일상의 행복이라니 이건 사실상 소설에서 사라진 무언가다. 우리가 그것을 믿지 않고 감상주의로 보거나, 진짜와 가짜를 혼동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쓰기 쉽지가 않다. 진실성 있게 울리려면 가장 초라한 종류의 성취와 만족에 대한 묘사조차도 인간의 부족함과 잔인함, 언제나 질병과 몰락과 죽음이 닥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쓰여야만 한다. - P400

한 마디만 잘못 써도 모든 게 믿기지 않아진다.
켄트 하루프의 『밤에 우리 영혼은』에는 잘못 쓴 한 마디가없다. 구어체의 편안함과 투명함을 갖춘 산문체와 단순해 보이는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그럴싸한 말이나 뻔한 말 하나가 없다.
보통 어떤 소설을 어떤 상황에서 썼느냐는 독자인 나에게별로 흥미를 일으키지 않지만, 이 경우에는 저자가 죽어 가면서 쓴책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감동받고 경외감마저 느낀다. 이 책은삶의 먼 가장자리에서, 어둠의 가장자리에서, 책임감을 품고 써낸보고서다. 하루프는 증언하고 있다. 우리보다 멀리 가서, 그곳에서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말하고 싶어 한다. 하루프가 자신의 상황을알고 있었고, 내가 그 사실을 알면서 책을 읽었기에, 나는 오직 해야만 하는 말 외에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어진 사람과 함께한다는 귀한 특권을 고맙게 여겼다.
그 목소리는 조용하다. 그곳에는 모든 어둠이 다 있으나, 우리는 빛을 보고 있다. 콜로라도의 어느 소도시, 어느 침실에 켜진등불 빛을. -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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