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유홍준 답사기의 전매특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을자연스럽게 눈에 보이게 만드는 답사기! 
안도현 시인


우리 문화재를 독자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된 것은 우리 것이 우리 마음에 직접적으로 와닿는 것을 방해하던 온갖 잡스러움을 걷어내준 그의 덕분이다.
故 박완서 소설가


교수님과 경주 남산을 다녀오고, 산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병이 생겼다. 갈길 급한 사람을 자꾸 뒤돌아보게 하는 그의 감언이설에매번 속아 넘어가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니 큰일이다. 
나영석 프로듀서



답사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현장에 있는 것 같다. 마치 시간여행을 하듯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곳을 거닐면, 어느새 책 속의 활자들이 살아나 교수님 목소리로 들리고 나의 두 눈은 카메라 렌즈처럼 사진 속 문화유산을바라본다. 때론 그곳의 냄새와 공기도 느끼며! 
임수정 배우


나는 보았어도 제대로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는 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서문의 글이 그토록 실감 날 수 없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답사 붐을 일으켰고, 문화유산의 대중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무려 30년 세월 동안 하나의 인문학적 주제로 20권까지 저술이 이어진 것은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대단한 업적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국토의 최남단, 전라남도 강진과 해남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1장 제1절로 삼은 것은 결코 무작위의 선택이 아니다. 답사라면 사람들은 으레 경주·부여·공주 같은 옛 왕도의 화려한 유물을 구경 가는 일로생각할 것이며, 나 또한 답사의 초심자 시절에는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지난 세월 내가 답사의 광(狂)이 되어 제철이면 나를 부르는곳을 따라가고 또 가고, 그리하여 나에게 다가온 저 문화유산의 느낌을확인하고 확대하기를 되풀이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수없이 여러번 다녀온 곳이 바로 이 강진·해남땅이다.
강진과 해남은 우리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무대의 전면에 부상하여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일 없었으니 그 옛날의 영화를 말해주는 - P13

대단한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을 리 만무한 곳이며, 지금도 반도의 오지로 어쩌다 나 같은 답사객의 발길이나 닿는 이 조용한 시골은 그 옛날은둔자의 낙향지이거나 유배객의 귀양지였을 따름이다.
그러나 월출산, 도갑사, 월남사터, 무위사, 다산초당, 백련사, 칠량면의 옹기마을, 사당리의 고려청자 가마터, 해남 대흥사와 일지암, 고산윤선도 고택인 녹우당, 그리고 달마산 미황사와 땅끝(土)에 이르는이 답삿길을 나는 언제부터인가 ‘남도답사일번지‘라고 명명하였다. 사실 그 표현에서 지역적 편애라는 혐의를 피할 수만 있다면 나는 ‘남도답사 일번지‘가 아니라 ‘남한답사일번지‘라고 불렀을 답사의 진수처다.
거기에는 뜻있게 살다간 사람들의 살을 베어내는 듯한 아픔과 그 아픔 속에서 키워낸 진주 같은 무형의 문화유산이 있고, 저항과 항쟁과 유배의 땅에 서린 역사의 체취가 살아있으며, 이름 없는 도공, 이름 없는농투성이들이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는 꿋꿋함과 애잔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향토의 흙내음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조국강산의 아름다움을 가장극명하게 보여주는 산과 바다와 들판이 있기에 나는 주저 없이 ‘일번지‘
라는 제목을 내걸었던 것이다. - P14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만큼만 느끼는 법이다. 그 경험의 폭은 반드시지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시각적 경험, 삶의 체험 모두를 말한다. 지금 말한 그 졸업생은 이제 들판의 이미지에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얻게 된 것이다. 남도의 들판을 시각적으로 경험해본 사람과 그렇지않은 사람은 산과 들 그 자체뿐 아니라 풍경화나 산수화를 보는 시각에서도 정서 반응의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답사와 여행이 중요하고 매력적인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달리는 차창 밖 풍경이 산비탈의 과수밭으로 펼쳐졌을 때 우리 일행은 남도의 황토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누런 황토가 아닌 시뻘건 남도의 황토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 자체로 시각적 충격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P15

무위사 극락보전 뒤 언덕에는 해묵은 동백나무의 동백꽃이 윤기 나는 진초록 잎 사이로 점점이 선홍빛을 내뿜고, 목이 부러지듯 잔인하게벌어진 꽃송이들은 풀밭에 누워 피를 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진읍 묵은 동네 토담 위로는 키 큰 살구나무에서 하얀 꽃잎이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남도의 봄빛이었다. 한껏 끌어안고 싶은 남도의 봄빛은 조선의 원색을 보여준다. 산그늘마다 연분홍 진달래가 햇살을 받으며 밝은 광채를 발하고, 길가엔 개나리가 아직도 노란 꽃을 머금은 채연둣빛 새순을 피우고 있었다. 피고 지는 저 꽃잎의 화사한 빛깔이 어쩌 - P29

다 때가 되면 한번쯤 입어보는 남도의 연회복이라면, 남도땅의 평상복은 시뻘건 황토에 일렁이는 보리밭의 초록 물결 그리고 간간이 악센트를 가하듯 심겨 있는 노오란 유채꽃, 장다리꽃이다.
한반도에서 일조량이 가장 풍부하다는 강진의 하늘빛은 언제나 맑다.
강진만 구강포의 푸르름보다도 더 진한 하늘빛이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청색의 원색이다. 색상표에서 제시하는바 사이언(C) 100퍼센트이다. 솔밭과 동백나무숲이 어우러지며 보리밭 물결이 자아내는 그 빛깔은 노란색과 청색 100퍼센트가 합쳐진 초록의 원색이다. 유채꽃, 장다리꽃, 개나리꽃은 100퍼센트 노랑(Y)의 원색이며, 선홍색 동백꽃잎은100퍼센트 마젠타(M)이다. 그 파랑, 그 초록, 그 노랑, 그 빨강의 원색을구사하며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남도의 봄 이외에 아무도 없다. 그 원색을 변주하여 흑갈색 황토와 연분홍 진달래, 누우런 바다갈대밭을 그려낸 화가도 남도의 봄 이외엔 아무도 없다. - P30

서양 사람들이 그들의 자연 빛에 맞추어 만든 먼셀 색상표에 눈이 익어버렸고, 그 수치에 맞추어 제조된 물감과 잉크로 그림 그리는 일, 인쇄하는 일, 그렇게 제작된 제품에 익숙한 우리의 눈에 저 남도의 봄날이그려보인 원색의 향연은 차라리 이국적이고, 저 먼 옛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그림에서나 본 조선왕조의 원색으로 느껴진다. 하물며 연지빛, 등황빛, 치자빛, 쪽빛의 청순한 색감을 여기서 더 논해 무엇할까. 남도의 봄, 그것은 우리가 영원히 간직해야 할 자연의 원색이고 우리의 원색인 것이다. 나는 그날 그 원색의 물결 속을 거닐고 있었다. - P30

그러나 하회의 답사적 가치는 어떤 면에서는 하회마을보다도 풍산들판의 꽃뫼라고도 불리는 화산(山) 뒤편 병산서원(屛山書院)이 더 크다고할 수 있다. 병산서원은 1572년 서애 류성룡이 풍산 읍내에 있던 풍산류씨 교육기관인 풍악서당(書堂)을 이곳병산으로 옮겨 지은 것이다. 이후 1614년에는 정경세를 비롯한 서애의 제자들이 류성룡을 모신존덕사(德祠)를 지었고, 1629년에는 서애의 셋째 아들인 수암 류진을 배향했으며 1863년엔 병산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그리고 1868년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도 건재했던 조선시대 5대 서원의 하나이다.
병산서원은 그런 인문적·역사적 의의 말고 미술사적으로 말한다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 건축이자 한국건축사의 백미이다.
병산서원은 건축 그 자체로도 최고이고, 자연환경과 어울림에서도 최고이며, 생생하게 보존되고 있는 유물의 건강 상태도 최고이고, 거기에 다다르는 진입로의 아름다움도 최고이다. - P39

병산서원은 하회 입구에서 마을로 가는 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낙동강을 따라 십 리(약 4킬로미터) 남짓 걸어가면 나온다. 옛날에는 시골 버스, 경운기나 다니는 비포장 흙길이어서 그것이 병산서원 보존의 큰 비결이었는데, 슬프게도 이 비책 아닌 비책은 곧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것이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 병산서원 답사길에 나는 항시 이 십릿길을 걸어다녔다. 다리가 아프고 피곤하면 고갯마루까지만 차를 타고 가서는 거기부터 오랫길이라도걸었다. 병산서원은 반드시 걸어가야만 병산서원에 간 뜻과 건축적 원림(園林的) 사고가 맞아떨어진다. 그곳에 이르는 길은 절집 입구의 진입로와 같아서 만약 선암사, 송광사, 해인사, 내소사를 자동차를 타고 곧장 들어갔을 때 그 마음이 어떠할까를 생각해본다면 왜 걸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저절로 구해질 것이다. - P39

광주광역시의 동북 방향, 무등산 북쪽 기슭과 맞대고 있는 담양군 고서면과 봉산면 일대에는 참으로 많은 누각과 정자 그리고 원림 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면앙정(仰亭), 송강(松江亭), 명옥헌(鳴玉軒),
소쇄원(瀟灑園), 환벽당(環碧堂), 취가정(醉歌亭), 식영정(息影亭), 거기에송강 정철의 별서까지 들러보는 답사 코스는 조선시대 조원(園, 정원이나 공원)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는 황금 코스이며, 이른바 조선시대 호남가단(歌壇)이라 불리는 가사(辭)문학의 본고장이니 국문학도들에게는 필수의 답사 코스가 된다. - P51

인간은 사물을 통하여 언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반대로 언어를 통하여 사물을 인식한다. 그리하여 어휘력은 인간정신의 고양과 정서의함양에 크게 기여한다. 이뿐만 아니라 풍부한 어휘력은 사물에 대한 관찰과 인식이 남다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이누이트들은 눈(雪)의 종류를 70여 가지로 분류한다고 하니 열대인이 알고 있는눈과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는 셈이다.
b정원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 단어만 들어도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와 사례와 서정을 일으킬 수 있다. 마찬가지로 원림이라는 낱말 뜻을 알게 된 현명한 독자들은 그 정취가 얼마나 풍성할까를 능히 상상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원림을 본 일이 없을지언정원림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시대의 각박한 일상속에서 상큼한 청량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원림이라는 단어는 이미 죽어버린 지 오래된 낱말이며 어느 국어사전도 이 낱말 풀이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이런 현상을 나는 항상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 P53

배롱나무의 진짜 아름다움은 한여름 꽃이 만개할 때이다. 배롱나무꽃은 작은 꽃송이가 한데 어울려 포도송이를 올려세운 모양으로 피어나는데 7월이 되면 나무 아래쪽부터 피어오르기 시작하여 9월까지 100일간붉은빛을 발한다. 그래서 백일홍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저 꽃이 다 지면벼가 익는다고 해서 쌀밥나무라는 별명도 얻었다. 탐스런 꽃송이가 윤기 나는 가지 위로 무리지어 피어날 때면 그 화사함에 취하지 않을 인간이 없다. 본래 화려함에는 으레 번잡스러움이 뒤따르게 마련이지만 배롱나무의 청순한 맑은 빛에서는 오히려 정숙한 분위기마저 느끼게 되니아무리 격조 높은 화가인들 이처럼 맑은 밝고 화사한 색감을 구사할 수있을 것인가. - P67

소쇄원이깊숙한 계곡의 한쪽을 차지했다면 명옥헌은 산언덕 너머 전망이 툭 터진곳에 자리 잡았다. 똑같은 원림인지라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인공을 가한 것이지만 소쇄원은 아늑함을, 명옥헌은 활달함을 취했다. 그것이 이 두 원림의 설계자, 사용자의 기본 아이디어였을 것이니 우리는 이를 비교하기 위해서라도 송강정, 면앙정보다도 명옥헌을 택해야 한다.
한국문학사적 의의로 말하자면 면앙정과 송강정이 훨씬 위에 놓이겠지만 옛 원림을 보는 시각적 즐거움으로 셈하자면 명옥헌이 단연 앞선다.
명옥헌은 소쇄원에서 일곱 굽이인가 아홉 굽이인가를 산길로 넘어야나온다. 그리하여 고서면 산덕리에 이르면 길 오른쪽에 ‘인조대왕 계마비(繫馬碑)‘가 서 있는데 여기서 산허리를 지르는 길을 따라 올라야 한다. 언덕배기 중턱에 이르면 마을이 나오는데 여기가 후산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엄청나게 큰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어 동네의 연륜을 말해준다. - P75

명옥헌의 배롱나무숲은 거대한 고목으로 자라났다. 일조량이 많은 곳이라 남도의 여느 배롱나무와는 달리 키가 크고 가지도 무성하고 꽃송이가 많이 달린다. 한여름 배롱나무꽃이 만개할 때 여기에 들른 사람들은 좀처럼 발길을 떼지 못한다.
본래 배롱나무는 자미탄처럼 개울가에 자연스럽게 자란 모습으로 있을 때보다 정원수로 자랄 때가 멋있다. 남도의 고찰 해남 대흥사, 강진무위사, 고창 선운사 경내의 배롱나무는 극락세계의 안내자인 양 해맑은 미소를 띠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고 최순우 관장 이래로 배롱나무를 정원수로 채택하고 있다. 중국의 당나라 시절 3성 6부의 하나인 중서성(中書省)에는 배롱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해서 양귀비 애인인 현종이 중서성을 자미성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그런 배롱나무를 350년 전에 원림의 나무로 키운 것이 명옥헌이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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