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 4월 10일경, 곡성 봉두산에 있던 도당 연락과 분트가 적의 기습으로전멸당하고 생포자까지 생기는 바람에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기존의모든 연락루트가 차단됐다. 몇 차례 서부와 연락을 시도했으나 루트에 매복해 있던 적의 기습으로 도중에서 모두 희생되고 말았다.
곡성군당 위원장을 지내 그곳 지리를 잘 아는 그에게 동서부를 연결하는 새로운 연락루트를 확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4월 16일, 야산엔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고 노곤노곤한봄볕에 새 생명이 움터오는 아름다운 봄이었지만 빨치산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춘궁기의 시작이었다. 도당에도 식량이 바닥나 하루를 굶은 채그는 연락루트 확보작업을 할 대원 일곱 명을 거느리고 밤길을 나섰다.
비상미 한 톨도 없었다. 야산에는 쑥과 취가 제법 먹을 만하게 자라 있었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쑥과 취를 뜯어 소금만 넣고 항고에 삶아 배가 부르도록 먹었다. 겨울 내내 소금밥만 먹은데다 이틀을 굶었으니 그렇게 맛 - P9

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때 그는 장염으로 오랫동안 앓고 있었는데 이날쑥을 한 항고 먹은 다음부터는 신기하게 설사가 잡히고 통증이 가라앉았다. 예부터 장 나쁜 데는 쑥이 직방이라더니 민간요법도 과학성이 있는모양이었다. 봄나물 덕분에 병도 고치고 허기도 면한 그들은 봉두산으로들어가기 직전 황전면 면소재지 가까운 마을에서 남의 집 담을 타넘어 도둑질을 했다. 제일 좋은 집을 골라 들어간 탓에 일곱 명이 한 달은 견딜수 있을 정도로 성과가 좋았다. 밥이 해결됐으니 발걸음도 가벼워서 봉두산에 날 새기 전에 도착했다. - P10

"고생들이 많제라? 끼니도 때우기 힘들 것인디 얼른 이거나 드시오."
같이 먹자고 몇 번이나 권했지만 박 씨는 국물 한 수저도 입에 대지 않았다. 식구가 열이니 산에 있는 그나 박 씨나 먹고 사는 게 비슷했을 텐데도 투박한 손으로 닭을 찢어주며 기어이 그에게만 고기를 먹이려는 박 씨의 순박한 심성에 가슴이 저려왔다. 작년 여름인가 보급투쟁을 나갔을 때그는 박 씨와 비슷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여름철이라 일을 마치고늦은 저녁을 먹는 중이었는데 올망졸망한 아이들까지 십여 명이 둘러앉아 멀건 보리죽을 먹고 있었다. 기름기 없는 얼굴에 마른버짐이 희끗희끗한 그 가난한 농부는 남은 죽도 더 이상 없었는지 빈 대접 하나를 가져다십시일반으로 자기들이 먹던 죽을 한수저씩 덜어 그에게 보리죽 한 사발을 내밀었다. 뒤져보면 꿔다놓은 보리 한 됫박쯤은 있을지도 몰랐지만 그것마저 털어 가면 당장 내일부터는 입에 거미줄을 쳐야 할 형편 같았다.
그가 아무리 굶었다고 하더라도 종일 힘겨운 일을 마치고 난 농부의 유일한 끼니까지 뺏어먹을 수는 없었다. 그는 덜어준 죽에 입도 대지 않고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기껏 힘겹게 보급투쟁 해놓은 쌀 두어 되를 꺼내 놓았다. 박 씨도 그 농부와 형편이 다를 리 없었다. 그런 박 씨가설날에나 쓰려고 아껴놓았을 닭을 그를 위해 내놓은 것이다. - P12

모든 성원들의 길잡이이자 중요한 이론교육지인 <로동신문>이 발간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의약품의 경우도규제가 심했지만 그래도 약은 광주나 대도시의 약국을 샅샅이 훑고 다니며 소량씩 구입하면 안전했다. 그러나 종이는 달랐다. 농가에서 문종이외에 종이가 필요할 리가 없으니 규제가 심해서 추적당할 가능성이 매우높았다. 돈이 있어도 구입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도당에서는 모두 그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데 난처하기 짝이 없었다. 돈으로 못 사면 방법이라고는 종이공장을 습격하는 수밖에 없는데 종이공장 사장의 성향을 알 수도없을뿐더러 경찰들의 감시도 여간 심한 게 아니었다. 할 수 없이 그는 자신의 조직선을 이용해 주변 종이공장의 실태를 알아보도록 했다. 조직을할 수 없으면 하다못해 도둑질이라도 하려는 생각이었다. 주변에 두 군데의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는 것과 재고가 남아있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모두 곡성에 있는 공장이었는데, 곡성은 원래 이전부터 조직력이 취약해 함부로 조직하려고 나섰다가는 경치기 십상이었다. - P14

"워매?"
공원이 깜짝 놀라며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당신들 통도 크요이, 시방 주인집 사랑방에 순사들이 잠복해 있음서조깨 전에 야식까지 해묵고 금세 잠들었는디."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섰다. 그들이 떠난 후 공원이 신고만 하면 아깝게 얻은 이 종이를 팽개치고 튀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얼른 주머니에서 5천 환을 꺼내 공원의 손에 쥐어주면서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두 사람은 천지분간 못하고 자요. 당신만 모른 척하면 되오. 이거 오천환이니 모른 척하고 자요."
"고마워요. 그러것소."
돈이 든 손을 꼭 움켜쥐고 공원은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순박한청년 같았다. 그는 조용히 문을 열고 나와 뜀박질로 밤새 행군을 계속했다. 모든 간부들이 입이 함박꽃처럼 벌어져서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그날 밤 박영발이 다시 그를 불렀다. - P15

집은 살림살이가 제법 괜찮은지 억새대로 지붕을 이었는데 달빛이 은은하게 떨어지는 억새지붕이 참 아름다웠다. 워낙 마을에 빨치산이 들어온적이 없어서인지 집주인은 매우 친절했다. 백운산 주변 마을에선 요즘 들어 보기 드문 일이었다. 수십 번씩 빨치산에게 살림살이를 털리고 난 주민들이 이제는 빨치산만 보이면 뭐든지 감추느라고 난리였고,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빨치산이 느끼기에도 호의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이마을엔 난생 처음 빨치산부대가 들어왔으니 쌓인 불만이 있을 리도 없고 오히려 약간의 호기심도 발동하여 다들 신기해하며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자청해서 챙겨주었다. 20분만에 보급을 완료하고 1선에 모였는데 다들 허리가 휘도록 배낭 가득 쌀을 짊어지고 있었다.  - P17

봉두산 분트로 돌아온 그는 다음날부터 모든 지하조직원을 대도시로보내 필요한 약품을 구입하게 했다. 일주일 후 페니실린, 머큐로크롬, 붕대, 소독솜, 주사기 등 다량의 약품을 총사령부로 보낼 수 있었다. 물자를확보할 수 있는 정도의 조직도 대단한 도움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현재의 당의 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대도시로 조직기반을 확대해야 했다.
이런저런 궁리 속에 산은 점점 검푸르게 자신을 불태우며 여름을 맞아들이고 있었다. 이것이 산에서, 동지 곁에서 보내는 마지막 여름이라는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한치 앞의 역사를 알 수 없듯이. - P19

친구고 부모고 없던 그 험난한 시절에도 어디에나 아름다운 사연은 많았다.
고생을 한 보람은 충분했다. 고철과 김춘옥이 세상에 다시없는 맛이라며 정말 맛있게, 꽤 많은 수박을 하루 만에 다 먹어치웠던 것이다. 다음날김춘옥의 하산일자가 결정되어 내려왔다. 8월19일, 일주일 후면 김춘옥은 산을 떠난다. 1950년 9.28후퇴와 함께 입산했던 만 2년의 사생활이 끝나는 것이다. 이제 그녀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전쟁이다. 과연그녀가 자신의 임무를 다할 수 있을까. 바깥사회의 고통은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가는 총알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스며들어 어느날인가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안일함이나 긴장의 이완이다. 어쩌면 그것은 눈앞에 보이는 적보다 훨씬 어려운 적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피해갈수 없는 길이었다. 숨막히는 시간은 화살처럼 날아갔다. 백운산의 여름은 점점 뜨겁게 타올랐다. - P33

"좋네."
당과 조직을 해치지 않는 한 무슨 방법을 써도 좋다. 살아남아서 임무를 수행하라. 고철의 말이 비수처럼 가슴을 찔렀다. 비겁하게 자수를 한다, 자수? 그렇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아니, 비겁해지더라도 나에게는 해야 할 임무가 있다. 죽고 사는 것도 자신의 자존심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죽는 것은 깨끗하고 단순하고 고결하지만, 그럼 그에게 맡겨졌던 임무는 어쩔 것인가.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서 임무를 완수하시오, 완수하시오, 완수......
"서장님은 자수 외에는 나를 살릴 방법이 없소? 솔직하게 대답해주어야 내 태도를 결정할 수 있소."
- P41

"그것도 책임지겠네."
함께 싸우던 동지들이 생포되거나 자수한 뒤에 얼마나 많이 이용됐는가, 심지어는 부대를 결성해 동지였던 빨치산을 잡으러 다니기도 하고,
밀고해서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비행기로 자수를 권유하는 방송을 해대고………. 만약 자신도 그런 식으로 이용된다면 그렇게까지 살아남을 생각은 없지만, 자수한 사실이 기사화만 되더라도 그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일 터였다. 충격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그를 따르고 신뢰하던 하부원들 중에서는 심각하게 동요하는 사람이 생겨날지도 몰랐다. 그의 지하조직 임무를 아는 사람은 박영발과 고철, 단 두 사람뿐이었다. - P42

구빨치로 자수한 사람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그만큼투철한 사상으로 단련된 사람들이었다. 자수∙∙∙∙∙∙ 그 말의 찜찜한 여운이좀체 사라지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장님!"
침묵을 깨고 그가 서장을 불렀다.
"당신의 인격을 믿고 당신 말에 순응하겠소. 나는 당분간 공산주의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오. 나만 살겠소. 그 대신 당신은 나의 신변은 물론언론보도 등으로 나를 이용하려는 어떤 것에도 일체의 책임을 져주시오.
살기 위해 자수는 하지만 생사를 같이 했던 동지들을 팔아먹을 수는 없소. 그렇게까지 구차하게 살고 싶지는 않소. 나를 이용해서 어떻게 하지않겠다면 자수할 것이니, 나머지 모든 것은 당신이 책임을 지고 여기 있는 여러분들 앞에서 서약해주시오."
- P43

누구나 살다 보면 가끔씩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만난다. 그리고 때로는그 예기치 않았던 사건이 그 사람의인생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혹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방향으로 몰고가기도 한다. 52년 8월 19일의 사건이 그랬다. 자수는 그가 원하던 방향이 아니었다. 김춘옥만 데려다주고 오는것이 그날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은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가?"
화순으로 달리는 지프차 안에서 경찰서장이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는 김춘옥과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결혼할 사입니다."
어차피 앞으로 계속 만나야 할 사이니 그렇게 대답해둬야 할 것 같았다. 그때까지 한마디도 없이 굳은 얼굴로 앉아 있던 김춘옥이 그의 팔을슬며시 잡아당기더니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어떻게 하죠?" - P44

"글쎄요. 운명을 걸고 부딪쳐봅시다."
운명? 그렇다. 이제 그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나가야 했다. 미처 준비도끝나기 전에 갑작스레 다가와 버린 일이지만 어차피 그의 임무는 지하조직의 건설이었다. 그의 운명도, 전남도당의 운명도, 이 땅 사회주의운동의 운명도 그가 하기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 지프는 어둠을 가르며 보성-화순간 국도를 달려갔다.
화순경찰서 앞, 경찰서의 간부들이 그들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앞에서 간단한 인사만 마치고 그들은 경찰서장을 따라 관사로 갔다. 종일준비했던 듯 푸짐한 저녁상이 들어왔다. 배가 무척 고팠지만 일부러 준비해 놓은 추어탕이며 김치며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너무 매웠다. 짠 소금만으로 몇 년을 보내왔으니 고춧가루 범벅인 김치가 매울 수밖에 없었다. 정신 못 차리게 매운 김치를 씹으면서야 비로소 자신이 산을 떠나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여기는 산이 아니다.  - P45

언제 적이 쳐들어올지 몰라 순간순간 가슴 졸이고, 날이면 날마다 적의 총탄에 사람이 죽어가는 산이아니다. 쓸쓸함, 허전함, 두려움……….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감정들이솟구쳤다. 그는 단 한 번도 동지들의 곁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46년 이래처음으로 조직을 떠나온 것이다. 이제 그 혼자 모든 것에 대항해 싸우고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 혼자서!
다음날 그들은 자수진술서를 썼다.
"저는 여순반란사건 당시 아버지가 좌익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하자 그 충격으로 산에 입산했으며…….… 몸이 약해 더 이상 산에서 활동하기도 힘든데다 공산주의 활동에 염증을 느껴………."
염증을 느껴.....… 정말이지 그런 자술서를 써야 하는 자신이 굴욕스러웠다. - P45

전라남도 총사령부 사령관 김선우, 전남 보성 출생………. 총사와 화순군의 조직체계, 현재의 생존자, 직책, 경력 등이 모두 도표로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정확했다. 누군가의 이름 위에는 붉은 색으로 가위표가 그어지고 그 옆에 사망 날짜와 장소까지 완벽하게 기입돼 있었다.
가슴이 서늘하게 얼어붙었다. 경찰에서는 빨치산의 모든 정보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었다. 경찰서장이 웃으며 의자를 내밀었다. 서장은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서로가 속한 사회적 관계를 떠나면 그들은 아마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서장이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반동권력의 하수인이었고, 그에게는 성심껏 최선을다해 진실로 잘해주겠지만 자신의 일로 돌아가면 빨치산 토벌을 지시해야 하는 적이었다. 이런 것이 바로 세상이었다. - P46

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휴전협정 전문이 실린 신문을몇 번이고 샅샅이 뒤졌지만 어디에도 빨치산 문제는 다뤄져 있지 않았다.
전선이 없어지면 빨치산에게 남은 건 궤멸뿐인데, 혹시나 했던 포로교환에도 빨치산은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휴전에 기뻐하면서도 빨치산의 미래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다. 왜 북한은 빨치산 문제를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일까. 자신의 전선을 지키라는 것인가? 이 휴전상태가 얼마나 갈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제 통일이란 어쩌면 자신들이 살아생전에 보지 못하는 먼 미래의 일일 수도 있었다. 남한의 빨치산은 전선도 없어진 지금 무엇을 위해 싸울 것인가. 남한자체의 힘만으로 사회주의 혁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지난 몇 년간 죽음을 넘나들며 체험한 사실이었다. 남한 정부는 입산자 전원에 대한 세밀한자료를 갖고 있었다. 이제 빨치산들이 경찰의 정보망을 피해 지하로 잠입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만큼 어려운 일이 되었다.  - P63

집행유예를 받은 것만 믿고 고향으로 돌아왔던 권상수는 경찰에게 끈질긴 협박과 회유를 받았다. 권상수는 무엇보다 생명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이었다. 결국 경찰에 협조하기로 하고구례 지하조직을 깨뜨리기 위해 양경한의 조직에 가담한 것이었다. 간첩이승엽의 비서라는 이유로 도당에서 의심했던 양경한이 아니라 권상수가 바로 조직을 팔아넘긴 장본인이었다.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동지를 팔아 얻은 권상수의 생명은 오래가지 않았다. 경찰에게 한 번 꼬리를 물린 권상수는 그 후로도 계속 경찰의 앞잡이가 되어 수십 명의 동지들을 감옥으로 팔아넘기고, 그것도 모자라 구례군당을 완전히 박살내기 위해 군당으로 재입산했다가 권상수의 정체를눈치 챈 군당 성원들에게 총살당하고 말았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일수록 죽음은 집요하게 쫓아다닌다. 권상수뿐만 아니라 수많은 배신자들의최후 또한 마찬가지였다. - P77

"김왕규는 나를 심판할 자격이 없는 친일파이며 민족반역자요. 나는적어도 우리 조선민족을 외세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으나 김왕규는 일제시대에 일본정부의 관료로 출세한 친일파요. 그런 친일파가 해방된 세상에서도 여전히 애국자 행세를 하며 설치고 있소. 나는그런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싸웠던 사람이오. 김왕규는 자기 입으로 자기를 애국자라 하며 나를 비애국민으로 매도하지만 과연 누가 애국자고 누가 비애국민이오? 내가 취조를 받기 위해 검사 방에 갈 때마다 김왕규는양담배를 수북이 쌓아놓고 피워댔소. 전쟁이 끝나고 우리 민족의 경제를부흥, 발전시켜야 할 이 마당에 양담배를 피워대다니! 그가 과연 애국자요?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기 마련이오. 누가 애국자였고 누가 이 민족을위해 살았으며, 누가 사형을 언도받아야 할지는 역사가 반드시 증명할 것이오, 당신들이 나에게 사형이 아니라 능지처참형을 선고한다 할지라도나는 지금까지 내가 했던 모든 애국적 행위를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미제의 앞잡이들이 선고하는 무엇도 인정하지 않소!"
그는 사형을 언도받았다.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 P78

미제의 식민지정책은 더 노골화될 것이고, 권력을 잡기 위해 조국을 미제에 팔아먹은반동권력의 횡포도 점점 더 심해질 것이었다. 그러나 결코 영원한 후퇴란없다. 언제일지는 모른다. 그들이 다 죽고 난 뒤, 어쩌면 한 세기 뒤일 수도 있다. 세게 눌린 용수철일수록 더 거세게 튀어오르듯이 억압당하는인민들은 언젠가 다시 자신들의 피로써 항거할 것이고, 미래의 새로운 세대는 한국현대사의 초기에 피로 씌어진 역사의 바탕 위에서 더욱 거세게타오를 것이다. 그 밑거름만 되어도 좋다. 자기가 반드시 살아서 그날을봐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단지, 조금만 더 주의했더라면 권상수 같은비겁한 배신자 때문에 모든 일을 그르치지 않고 일본으로 가는 밀항 루트를 개척할 수 있었을 테고, 그랬더라면 얼마 남지 않은 빨치산 동지들의안전을 보장할 수도 있었으리라는 자책감만이 그를 괴롭힐 뿐이었다.
3월 말, 제법 따스한 햇살이 사형언도를 받고 다시 유치장으로 돌아가는 그의 여위고 상처 난 몸 위로 쏟아져 내렸다. 종달새 한 마리가 하늘저 높은 곳으로 치솟아 오르며 맑은 울음을 토해냈다. 그는 햇살에 시린눈을 치켜뜨며 사라져가는 종달새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 P79

최근에 왔다는 몇 사람만 한 손에 하얀 쌀밥 한 덩이를, 다른 한 손으론 고무신에 멀건 소금을 받아들었다.
순천에서 매일 소금을 바른 꽁보리밥만 먹다가 쌀밥을 먹으니 꿀맛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밥을 안 먹다니 웬일인가 싶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반찬 없이 하얀 쌀밥을 일주일만 먹으면 당장 밥냄새도 싫어지고 밥꼴도보기 싫어지며 급기야는 이질에 걸려 죽어간다는 것이었다. 12방에만 해도 그런 이질 중환자가 일곱 명이었다. 따발총 환자라고 불린 그들은 이빨이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고 눈이 침침해지며 계속 설사를 해대 하루 종일 변기통에만 앉아 있었다. 교도소에서는 그렇게 남아돌아가는 쌀밥을말려 과잣집에 비싼 값으로 팔아 축재를 했다. 집과 연락이 닿고 집에서뒷바라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사실을 청해 생명을 건질 수 있었지만남한에 아무 연고도 없는 이북 출신이거나 연락이 돼도 식구들마저 굶고있는 기본출신들은 사식 하나 시켜먹지 못하고 그대로 이질에 걸려 죽어갔다. 그가 온 후 한 달 동안만 해도 수십 명의 동지들이 이질에 목숨을잃었다. 사람의 목숨을 쌀 한 말과 맞바꾸는 셈이었다.  - P81

말 뒤엔 당연히 몽둥이찜질이었다. 살아 있다는 자체가 치욕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끈질긴 것인지를 그는 알고 있었다. 죽음처럼 허망한 것도 없지만, 또 인간의 생명처럼 끈질긴 것도 없다.
그는 언젠가 전투 중에 포탄을 머리에 맞고 허연 뇌수가 땅으로 철철 흘러내린 부상자를 본 적이 있었다. 뇌수의 절반이 흘러내렸는데도 그는 죽지 않았고, 마침 곁에 있던 의무지도원이 흙은 털 겨를도 없이 솔잎새만뜯어낸 후 뇌를 다시 집어놓고 머리를 꿰맸었다. 얼마 뒤 그는 멀쩡하게살아났다. 언어장애나 뭐나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렇게 멀쩡하게 나아서 한 일 년을 더 살았던 그는 그 후 다시 가슴에 직격탄을 맞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목숨을 구걸하진 않지만 살아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용기였다. - P82

그러는 사이에도 끊임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가을이 오고, 54년 12월 30일 대법원에서 무기로 형이 확정되었다. 목숨이야 건졌지만 사형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평생을 적의 감옥에서 갇혀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더 끔찍했다. 단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 있으니 미래에 대한 희망, 해방의 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약할 수 없는 기다림이 절망보다도 오히려 수십 배 고통스럽다는것은 그런 기다림을 경험한 자가 아니면 알지 못한다. - P83

보안과장이 쌀 무게라는 것을 몰랐을 리 없고, 그동안 그들이 공공연하게 쌀을 훔쳐 먹은 사실을 모를 리도 없었다. 훔쳐 먹은 것은 보안과장에게도 소장에게도 다 뇌물로 올라갈 것이 뻔했다. 그 앞에서 마지못해 쇼를 하는 것이라 해도 보안과장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들의 말대로 빨갱이 하나쯤 죽는다고 해도 문제될 것 없는 세상인데 그래도 과장은 그를 인간적으로 대해준 것이다.
다음날 다시 보안과장이 그를 찾아왔다. 단식 나흘째, 물 한모금 넘기지 않았지만 산에서 열흘씩도 굶었던 걸 생각하면 별 고통스러울 것도 없었다. - P93

보안과장이 그와 다른 점은 바로 그것이었다. 보안과장이라고 자기 눈앞의 온갖 부정들이 보이지 않을 리 없었다. 보안과장은 이번만이 아니라이전부터 그러한 숱한 모순들 앞에서 몸을 숙이며 살아왔고, 그는 어떻게든 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쳐왔다. 그러나 모든 것에 질서가 있다는 보안과장의 말은 옳았다. 하나의 거대한 모순이나 부정을 무너뜨리려고 할 때는 조직의 힘이 필요했다. 혼자서는 안 된다. - P94

얼마 뒤면 또다시 원상복귀할 거라는 것을 그는알고 있었다. 원천적으로 부정의 질서를 제거하지 않는 한 어떤 식으로도부정과 싸워 이길 수는 없었다. 이번 단식의 효과도 오래갈 리 없었다. 열사람이 도둑 하나 못 막는다는 말도 있거니와 위로부터 부정을 근절하지않는 이상 혼자 힘으로 아무리 떠들어봐야 잘되면 순간적인 처방일 뿐이었다. - P95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아무리 아니라고 부인해도 그 잘못된 제도에 빌붙거나 그 제도를 도우며살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로서는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이 실패로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을 무로 돌릴 수는 없었다. 그는, 그들은 분명히 옳았다. 후회는 아니었지만 승리를 확신하며 싸우던 그때가, 콩 한 조각을나눠먹던 동지들이 그리운 것이야 어쩔 수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죽음이 가까이 있기는 하지만, 그때는 적어도 적과 대등하게 싸웠고 지금은적의 포로로 갇혀 있다. 담장 밖을 구경하지 못한 지도 벌써 3년, 언제쯤이나 담장을 벗어날 수 있을까? 담장 밖의 세상에 언제쯤 풍요한 인민의나라가 세워질까? - P98

김규호는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면 그래야지요. 취업 중에 있는 우리 동지들을올바른 방향으로 지도할 동지도 반드시 필요하오. 동지가 그 일을 하시오. 동무의 말이 옳소."
"선생님은?"
김규호는 대답 없이 조용히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그는 지금도 알수 없다. 전술적으로 전향이 필요하긴 해도 자신은 도저히 그렇게 할 수없다는 뜻이었을까? 끝까지 전향을 거부하던 김규호는 감방에서 공산주의 교육을 시켰다 하여 5년 형을 추가 받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복역하다 위암에 걸리자 스스로 이불을 찢어 목을 맸다. 적들 앞에 자신의 죽어가는 비참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전향을 하는 것도 괜찮다는 김규호의 말을 듣고도 그는 한동안 망설였다. 김춘옥을 데려다 주러 갔다가 자기까지 자수를 해야 했던 그날의 복잡한 심정과 똑같았다. 전향서 한 장에 지금껏 가져왔던 사상이 하루아침에 그야말로 전향되는 것은 아닐 테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 서글픔, 분노......, 온갖 생각이 들끓었다. 7월 4일 그는 드디어 전향서를 썼다.  - P99

국가에서 금지하는 사상을 머릿속에 지니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며 좌절을 느낄 때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던 김규호의 미소를 떠올렸다. 김규호는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사상을 한 치도 양보하지않고 살다 죽었다.
나는 무엇인가? 살아남아서, 세상으로 나와서 무엇을 했는가? 스스로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것은 철저하지 못한 사상성 때문인가, 아니면 반동의 시대 때문인가?
그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묻고 또 물었다. 아무튼 그는 전향을 했다. 그가 가장 존경하던 김규호는 그대로 특사에 남았다. 그가 사랑했던 많은동지들은 남녘의 산과 들에서 죽었다. 남한에서의 치열했던 사회주의 운동은 교도소 특사에 갇힌 채 막을 내렸다. 그의 앞날에는 이제까지와는전혀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눈물과 치욕의 삶이.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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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저집에서 닭죽 끓이는 구수한 냄새가 퍼져나왔다.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대접이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묵어가면 귀찮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게다가 후퇴하는 사람들이니 내색은 안 해도 떨떠름하게 대하던 주민들이 명절날이나 잡는 귀한 닭을 자진해서 잡는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인민군들은 별말도 없이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인민들을 확실히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맛있는 닭죽을 얻어먹으면서 그는 새로운 사실에 무릎을 치고 있었다. - P266

낯익은 백운산 정챙이골에 다시 서자 감회가 새로웠다. 굶어죽기 직전 그들은 백운산을 떠났었다. 그때는 어떻게든 목숨이라도 부지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 다시 오고 싶지 않던 곳이었는데, 그러나 아프고 지긋지긋한 추억일지라도 오히려 그 아픔만큼 그리움도 깊어지는 것일까. 꼭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10월 초, 백운산에도 서서히 단풍이 오르고 있었다. 이런 행군이 처음인 대부분의 대원들이 너무 지쳐 있어서 그는 대원들을 정챙이골에 남겨둔 채 몇 사람만 데리고 광양군당과 선을 대기 위해 광양 옥룡골로 떠났다. 여수와 광양에서 후퇴한 기관원들이 우글거리는 옥룡에서 백운산 지구당책으로 내정된 정귀석과 유격대 사령관으로내정된 유몽윤을 만난 그는 도당의 지구당 결성 결정을 통보하고 즉시 각군당과 연결하여 지구당 결성을 서둘렀다. 지구당 결성과 더불어 훈련방법, 월동대책, 투쟁방향 등이 제시됐다.
같이 왔던 인민군들은 기어이 후퇴를 하겠다며 지리산으로 떠나갔다. - P267

후퇴하는 마당이라고 관공서는 물론 학교까지 불태우는 초토화작전을 펴고, 사전 선전작업도 없이 과다한 현물세 징수를 해 인민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고, 그래서 만약 이 조국해방 전쟁이 수포로 돌아간다면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설사 이런 문제가 조국해방 전쟁 실패의 결정적인 이유는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투쟁이 정당할 수 있는 것은우리가 고통 받는 대다수 인민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인데 그런 인민의 삶을 파괴하면서 어떻게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한 번의 실수가,
한두 사업 오류의 결과가 이토록 엄중하고 냉혹한 것인가. 그는 두려움을느꼈다. 군당 위원장으로서 내려야 할 무수한 결정들 앞에서 얼마나 신중하고 정확해야 할 것인가. 오류를 저지르고 나면 냉혹한 자기비판으로도책임질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실패가 남는 법이었다. 그 실패가 곧 역사와 인민의 퇴보요 슬픔이요 패배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 P283

그는 천천히 담배를 끄고 호롱불도 끄고 드러누웠다. 이제라도 늦지않았다. 몇 가지 사업의 오류로 인민들의 지탄은 받고 있지만 결정적인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인민들은 우리 편이다. 이제부터 나의할일은 바로 인민의 마음을 잡는 것이다. 첫날 우리를 진심으로 환영하던 그날의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렇다. 인민의 마음만 잡으면 된다. 수십 번후퇴를 하더라도 인민들이 이 뜨뜻한 방구들처럼 우리를 녹여준다면 최후의 승리는 우리 것이다. 지난 오류에 매달려 절망할 필요는 없다. 혁명가에게 과거란 없듯이, 과거가 쌓아올린 현재의 자리와 당장 싸워야 할오늘의 임무와 빛나는 내일이 있을 뿐이다.
등허리가 시큰거리게 뛰어다녀야 할 내일을 위해, 새로 인선해야 할 간부들의 이름이며 자꾸 떠오르는 수많은 일거리를 다 지워버리고 그는 애써 잠을 청했다. - P283

바로 눈앞에 두고 볼 수 없다는 것도 못지않은 고통이었다. 서로가자신의 일로 바쁘기도 했고, 간부쯤 되는 사람이 시간이 된다고 해서 함부로 그녀를 찾기도 어려웠다. 사랑을 하면서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원칙을 이탈하기 시작했던 사람들이 작은 원칙의 파기로 얼마나 엄청난 대가를 치렀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6.25 직후 해방 소식을 듣고도 동지들의 손에 처형당해야 했던 전인수만 해도 그랬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신경이 쓰이고 더 잘해주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인간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게 분명한 임무를 맡을 때, - P299

더욱이 자신은 그 임무를 부여하는 사람일 때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사람을 제외시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테지만, 그 임무는 해도 좋고 안 해도좋은 일이 아니라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고통을 외면하고 마음 편한 대로 사랑하는 이를 특별대우해서 임무를 해제시킬 때 순간이야 즐겁겠지만 기다리는 것은 더 큰고통이다. 사랑하는 이 대신 그 어려운 임무를 맡아야 하는 것은 바로 그들과 똑같은 동지인 것이다. 사적인 감정에 얽매인 간부를 어느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소문이야 어차피 막을 수 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남녀문제만큼 민감하고 미묘한 게 또 어디 있는가. 문제는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하는가였다. 동지들 앞에 떳떳하고 모범이 될 만한 사랑을 하기위해 두 사람은 최선을 다했다.
특별한 전투 없이 평온한 봄이 찾아왔다. 봄비가 몇 차례 내리고 나더니 불쑥 봄이 무르익은 3월 20일경이었다.  - P299

물이 오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연둣빛 새싹이 돋기 시작하고 그 새싹은나뭇잎으로 금세 무성하게 자랐다. 녹음이 짙을수록 빨치산의 생활은 안정을 찾아갔다. 군경도 전면적인 토벌작전을 중지하고 야산 수색과 보급로 차단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백아산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도당과각 군당도 서서히 자기 지역으로 거점을 옮겨갔다. 곡성군당도 5월 20일,
드디어 곡성 한복판에 있는 통명산 말골 골짜기(곡성군 오곡면 말골마을이있는 골짜기)로 전 군기관이 거점을 옮겼다. 후방교란 작전으로 매복습투쟁, 도로파괴, 통신망 교란투쟁 등과 보급투쟁은 쉬지 않고 진행되었지만 이렇다 할 큰 전투는 없었다. 비교적 조용한 여름이 깊어갔다.
여름과 함께 소련이 유엔에서 한국전의 휴전을 제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또 한번 해방이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여순사건, 작년 여름의 광주 입성, 그 짧았던 해방의 순간들이 스쳐갔다. 의지만으로움직여지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은가. - P313

미제의 완전한 한반도 점령은 중국 인민지원군의 참전으로 저지되었다. 세계의 복잡다양한 얽힘 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파괴되고 부숴졌다. 그렇게 세상은 흘러가고 있었다. 얽히고설킨 거대한 역사의 덩어리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역사의 발전과 진보를 확신하면서도 웬일인지 정체 모를 허전함은 마음 깊숙이 똬리를 틀고 사라지지 않았다. 생성하고 성장하고 소멸하는 것은 모든 사물의 아름답고 분명한 법칙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의 본질에는 슬픔도 있는 것일까. 한인간, 그 개체는 죽도 인류는 발전한다는 위대한 진리 앞에서도 그는 가끔씩 섬뜩한 두려움과 슬픔을 느꼈다. - P314

따뜻하지만 어쩐지 쓸쓸해 뵈는 웃음을 지으며 김선우는 그를 내보냈다. 그제야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수년 동안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가. 김선우에게라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겠는가. 그와 김춘옥이 남몰래 눈을 부딪치며 얼굴을 빛낼 때 그것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얼마나 아팠을 것인가. 한편으로는 위원장의 사랑을 축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두고 온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나 외로움으로 밤잠을 설쳤을지도 몰랐다. - P315

마지막 말은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간신히 말을 마친 박영발은 옆으로 비스듬히 쓰러졌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였다. 그는 깜짝놀라서 기요과장을 불러댔다. 깜빡 정신을 잃었던 것인지 박영발은 말도못하고, 기요과장을 부르지 말라는 듯 힘없이 손을 저었다. 그러나 곧 기요과장이 뛰어 들어왔다. 한 마디도 더 말할 수 없을 지경까지 박영발은꼿꼿이 앉아 그와 얘기를 했던 것이었다. 놀라운 자기 절제력이었다. 이상하게 그는 박영발을 볼 때마다 잔뜩 독기를 품고 꼿꼿하게 목을 추켜세운 한 마리 독사가 생각났다. 어린 시절 풀숲에서 그런 뱀을 만날 때면 두려움에 떨면서도 징그럽다기보다는 묘하게 화려하고 고독한 아름다움에넋을 잃고 지켜보곤 했었다. 박영발에게는 바로 그런 독기 서린 무서움이있었다. - P330

지금보다 몇 배는 끔찍했던 빨치산 경험을 한 그로서도 충격적이었는데,
경험이 없는 사람이야 충격을 넘어 엄청난 고통이요 절망이었을 것이었다. 휴전회담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이렇게 죽어가면서 언제까지버틸 수 있을 것인가. 세균전, 네이팜탄, 미국……….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스쳤다. 새벽길을 밟아 군당으로 돌아가는 길, 이슬에 젖은 숲은 아침 미명을 받아 싱싱하게 살아나고 있었다. - P331

2년여의 세월 동안 우리 모두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기차표 파느라고 정신이 없던 그가, 강제로 다가오는결혼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기를 짓누르는 그물에서 도망치고싶어 술이나 마시던 그가 어떻게 변해 있는가? 여수로 생선 떼러 갔다오는 생선장수 어머니를 기다리며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자기 인생에 분노하던 조용식이 얼마나 즐겁게 자기 인생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며 살다 죽어갔는가? 낭자한 머리가 온통 헝클어진 채로 자기 일의 의미도 모르고 밥이나 짓던 양봉순이 얼마나 당당한 인민의 전사로 성장했는가? 그는 그제야 오랫동안 짓눌러오던 조용식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웅성거리는 말골 골짜기에도 점점 뜨거운 태양이 내리찍기 시작했다. - P347

"비홉디다, 비호. 내 생전 그렇게 전투에 도가 튼 사람은 첨 봤소. 여자가 아니드라고요."
그 대원은 침을 튀겨가며 양봉순 칭찬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여하튼곡성군당은 양봉순 덕분에 위기를 넘기고 무기까지 확보한 셈이었다. 얼마 후 양봉순은 남부군으로 떠나갔다. 양봉순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전투에 단련된 탄탄하고 거친 손길이었다.
"위원장 동무! 꼭 살아계시씨요이. 구빨치 때부텀 얼매나 고생했는디꼭 살아서 좋은 세상 봐야지라."
눈물을 글썽이며 살아서 좋은 세상 보자던 양봉순은 그 뒤로 다시 볼수 없었다. 그것이 서로의 마지막 모습인 줄도 모르고 그들은 오랜 동지를 아쉽게 떠나보냈다. 그렇게 살아있자고 다짐했던 양봉순이 먼저 세상을 뜨게 될 줄은 그도 양봉순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 P362

묻혀진 역사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세계 어디에도 한국의 현대사와 같은 뼈아픈 비극은 없었고, 또 그렇게 철저하게 묻혀진 비극의 역사도 없다. 아직까지도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치열했던 그 시기의 이야기는 금기로 묻혀져 있다. 최근 들어 간혹 한두 사람의 묻혀진 이야기들이 비밀스럽게 들춰지기도 하지만, 당시의 역사적 흐름이 사실대로 밝혀지지 않는 한 한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거대한 물줄기의 한 지류일 뿐이고, 그 작은 흐름이 정당한 평가를 받는 것은 도도한 윈 물줄기가 제자리를 잡을 때뿐일 것이다.
후세의 평가가 어찌 됐든 전남도당의 역사상 가장 처참한 시기가 다가왔다. 얼마 전부터 정찰활동을 시작했던 수도사단의 대공세였다. 51년11월 말부터 다음해 2월까지 계속된 수도사단의 공세가 끝나자, 지리산으로 2천여 명을 파송하고 난 뒤에도 천여 명이 넘었던 전남도당은 불과3백 명으로 줄어 있었다.  - P363

그렇게 소박하고 순박한 이였다. 다를 것 없는 그들이 서로 총을 겨누어야 했던 세상, 누가 그런 세상을 만든 것일까. 순박한 그 형사의 말대로그가 그 형사를 살린 거라면 한호현은 바로 그를 살린 장본인이었다. 한호현의 집안은 곡성에서도 괜찮은 편에 속하는 집으로 중학까지 마친 삼형제가 모두 함께 입산을 했다. 한호현은 그중 막내였는데 큰형도 사람이무던하고 좋았으며, 곡성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던 한호현은 그가 특별히아끼는 사람이었다. 인텔리이긴 했지만 당성도 좋았고 능력도 있었으며진지했다. 대중성이 없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사사건건 원칙을 들먹이고 나서는 바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김윤옥을알아보고 존경한 것도 바로 그와 한호현이었다.  - P375

2월 29일 도당과 선이 닿았다. 석 달 만이었다. 곡성의 상황보고를 올렸더니 잠시 후 그에게 소환장이 날아왔다. 전남도당 조직부부장으로 임명했으니 당장 백운산 도당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시간이 촉박하여 곡성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새도 없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몇하고만 급하게인사를 나누고 그날 밤으로 곡성을 떠났다. 만 1년 3개월간의 곡성 생활,
곡성 사람들은 그를 눈물로 떠나보냈다. 이별이 아쉬웠다. 다시 만날 때까지 모두 무사할지, 지금까지처럼 철저하게 지형을 이용하면서 살아남아야 할 텐데………. 이 중에는 다시 못 볼 사람도 있을 터였다. 한 사람이라도 더 쳐다보려고 자꾸 뒤돌아보는 동안 어느새 사람들은 하나의 아득한 점으로 사라지고 사연 많았던 통명산도 멀어져갔다. - P376

박갑출도 전적으로 그의 견해에 동의했다. 이제 남한에서의 사회주의혁명은 보랏빛 먼 날의 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간부들 중의 어느 누구도 이전과 같은 혁명의 결정적 시기가 당장 다시 오리라고 믿지 않았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최후까지 싸우다 죽는 것과, 언제일지 모르지만언젠가는 다시 오고야 말 혁명의 결정적 시기에 대비해 도시로 들어가 지하조직을 구축하는 길뿐이었다. 그날이 언제쯤일까? 10년 뒤일 수도 있고 어쩌면 50년 뒤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뿌린 싹이 해방의 그날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좋았고, 살아서 볼 수 없는 날을 위해 준비하는 것도 좋았다. 단지 이결정적 시기를 해방으로 성공시키지 못한 쓰라림이 남는 것뿐이었다. 이제 밀알이 되는 것, 땅에 뿌려져 더 많은 밀로 태어날 그날을 위해 자신을죽이는 것, 그것이 남은 그들의 자리였다. - P384

정지아, 지아. 이 이름에는 저주와 눈부신 은총이 함께 새겨져 있다. 저주받은 꿈을
‘품고 붉게 타오르는 지리산으로 들어갔던 어미와 눈 덮인 백아산을누빈 아비는 어쩌자고 하나뿐인 딸의 이름을 지아(智我)라고 붙였을까. 꿈꾸는 일은 쉽고도 아름답다. 그러나 꿈처럼 산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정지아는아직 쓰라리게 사랑하고 기억해야할 무엇이 우리에게 남아있다는 사실을 살이 에이는 문장으로 진술하고 있다.
-방현석 소설가 • 중앙대 교수

나는 실천문학사 대표였던 1990년 계간 <실천문학>에 4회에 걸쳐 연재됐던 빨치산의 딸을 세 권의 책으로 출간했다가 공안당국에 의해 구속되는 일을 겪었고, 작가 정지아도 수배되어 수년간 갖은 풍상을 겪었다. 세월이 흘러 이 책이 재출간되니 감회가 새롭다. 나는 정지아가 응어리진 가족사의 멍에에서 벗어나 지난 세월과화해하기를 바란다. 그를 아끼고 좋아하는 많은 이들이 그의 활발한 작품활동을 기대하고 있다.

이석표 문화유통북스 대표

남로당 중심의 진보세력들이 벌인 정치활동에서는 합법과 비합법 또는 무장투쟁이라는 복합적인 전술이 구사되었으므로 이 부분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공개된 사실자료와 함께 이 운동에 직접 참여한 핵심인물들의 체험과 증언에 의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요구를 훌륭히 충족시키고 있다. 이들의 역경과수난의 가족사는 우리 현대사의 한 전형이라고 볼 수 있으며 통일된 자주국가의 수립만이 그를 보상할 수 있을 것이다.

김남식  현대사연구가

다 잊혀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 떠내려간 세월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대지의그림자가 사라지는가? 남북 어디에 있든, 또 무슨 일을 하든, 우리는 반드시 물어야한다. 전쟁은, 분단은, 역사는 무엇이었는가? 오늘날 ‘존재의 망각‘ 상태에 빠진 이들에게 《빨치산의 딸》은 말한다. 이 통렬한 과거사가 우리의 오늘을 만들고 있다!
너무 실감 나서 숨이 막힌다.

김형수 시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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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공으로 사는 일이, 아이 넷 낳고 사는 일이 적잖이 노곤했으리라. 어린 동생 들쳐업고 똥기저귀 빨던 어린 시절처럼 동동거리며 살아왔을 영자의 지난 시간이 눈앞에서 본 듯 환하게 밝아왔다. 그 시간 속에는 우리 아버지 손잡고 가슴 졸이며 수술을 기다리던 순간도 존재할 터였다. 그러니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되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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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굶어죽을 판인데 조직확대고 교란투쟁이고 가능할 리가 없었다.
전남도당에서는 쌀 한 줌이 한 사람 목숨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았다. 하루 두 끼가 한 끼로, 이삼 일에 한 끼로, 그나마 죽으로 점점 줄어들었다. 죽이라고 해야 반 되도 안 되는 쌀을 털어 넣고 가마솥 가득히 물을부어 끓여 칠팔십 명이 먹어야 했으니 죽이 아니라 죽물인 셈이었다. 산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정보는 점점 어두워지고 토벌대의 공격은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몇 년간 식민지 조국의 해방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바쳤던 아까운 동지들의 목숨을 쌀 한 줌과 맞바꾸는 날들이 계속됐다.
이불홑청 하나만으로도 어떻게든 겨울은 갔고 참담한 굶주림 속에서도 기어이 봄은 왔다. 봄이 되면 나물이라도 뜯어먹을 수 있어 겨울보다는 사정이 훨씬 좋았다. 백운산 아래서부터 겨우내 굶주린 나무들이 제법푸근한 봄빛으로 물이 오르고, 아직 나물을 캐기에는 이른 4월 초순이었다. - P191

도당 전원이 계속되는 보급투쟁의 실패로 사흘간 죽 한 모금 넘기지 못한 채 물로 연명할 지경이 되었다. 지금까지 잘 먹었더라면 그깟 사흘 굶은 것쯤 문제도 아니겠지만, 두어 달을 어쩌다 죽 한 모금씩 먹고 버티다사흘 내내 멀건 죽 한 모금 못 먹었으니 다들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목숨을 걸고 대대적인 보급투쟁을 시도하든지 앉아서 굶어 죽든지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야만 할 고비였다. 드디어 도당에서는 마지막 운명을 걸고 마지막 전투를 결정했다.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도당을 유지할수 있는 핵심간부일고여덟 명만 남기고 전원이 전투에 참가하기로 했다.
전원이라고 해봤자 무장한 유격대원 마흔여섯 명에 비무장 기관원 서른명이 전부였다. - P191

주는 사람도 받아먹는 사람도 그걸 모를 리 없었다. 미래가 확실히 보장되어 있을 때는 누구나 원칙에 충실할 수 있다. 그러나 내일 당장 자신의 생명조차 보장할 수 없을 때, 낙관보다는 좌절이 압도적인 상황에서까지 원칙을 지키고 동지애를 지킨다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 역사와 개인을 일치시키는 철저한 신념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세계역사상 유일무이할 만큼 처참하고 탁월한 빨치산의 투쟁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고, 훗날 그 수많은 좌익수들이 언제 감옥에서 나간다는 기약도 없이, 또 이 나라의 역사가 자신들이 살아있는 동안 변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이 수십 년간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아침에 일어나는 문제에서부터 모든 생활을 철저하게 조직하고 투쟁할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역사발전에 대한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제기암골에서는 그렇게 콩 한 말로 최후의 만찬이 벌어지고있었다. - P193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뭔가가 입 안으로 흘러내렸다. 무슨 액체가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흘러드는 것이 느껴진 순간 도저히 떠질 것 같지않게 무겁던 눈꺼풀이 번쩍 치켜졌다. 낯익은 동지가 귀한 날계란을 깨뜨려 그에게 먹이고 있었다. 잠시 후에는 식은 밥 덩어리가 씹을 새도 없이꾸역꾸역 밀려들었다. 하기는 씹을 힘도 없었다. 밥을 그냥 삼켰는지 씹어 먹었는지 기억도 없는데 잠시 후에는 신기하게도 발가락이 움직이고손도 들어올려지고 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희한한 일이었다.
사람의 몸이란 게 태엽을 감아주면 그만큼만 움직이는 시계 같기도 하고저울 같기도 했다. 먹은 밥이 소화가 됐을 무렵에는 혼자 힘으로 걸을 수도 있었다. - P194

이게 끝인가? 이게 몇 년간 몸 바쳐 싸워왔던 혁명사업의 끝이란 말인가? 동지들은, 소중한 우리 동지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슬픔보다도 고독이 뼛속까지 사무쳐왔다. 이제 혼자라는 고독감에 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갑자기 못 견디게 목이 말랐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산 전체는 저녁 그림자에 싸여 어둡고, 그 어둠의 저편에서 박정숙이 땅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었다. 박정숙의 숨죽인 울음소리가터질 듯이 그의 가슴으로 밀려들었다. 어디선가 소쩍새가 울었다. 박정술을 위로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그는 그저 갈증을 달랠 생각뿐이었다. - P202

우물에 엎드려 정신없이 물을 들이마셨다. 미친 듯이 실컷 물을 먹고 고개를 드는데 우물 속에 뭔가 하얀 것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허리를숙여 건졌더니 물에 불은 콩이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콩을 입으로 가져갔다. 비록 날콩이었지만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소하고 맛있었다. 박정숙도 달려와 울음을 그치고 열심히 콩을 건져 먹었다.
목 잘린 동지의 시체가 달빛에 시커멓게 드러난 모습을 보면서도 그들은콩 먹는 일을 그치지 않았다. 콩을 먹다 공포와 고통을 잊은 건지, 아니그 엄청난 두려움을 이기 위해 콩이라도 먹어야 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산등성이에서 휘영청 달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열심히 콩을 씹어 먹고 있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도당도, 전남 유격대도 전멸되었다.
자, 어디로 갈 것인가!
건너편 산 능선에서는 국군이 순찰을 하며 보초를 불러내고 있었다. - P202

누가 먹으려고 했던 콩이었을까? 결국 그것조차 먹지 못한 채 남겨두고간 동지 대신 배를 채운 유혁운과 박정숙은 남은 콩을 죄다 건져 유엔잠바의 호주머니 양쪽이 불룩하도록 담아 넣은 채 곡성군당을 향해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한때 자신이 속해 있던 곡성군당 외에 달리 선을 댈 방법이 없었다. 적에게 투항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가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할 수 있는 한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살아남은 자로서, 그리고 이 땅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자로서 마땅한 도리였다. - P203

이 날만을 위해 살았던 것처럼 사람들은 미친 듯이 노래 부르고 춤을추며 해방의 첫 밤을 보냈다. 희미한 어둠 속에 드러난 동지들의 흥겨운모습을 보면서 핑 눈물이 돌았다. 이 밤의 감동을 즐기는 백여 명 중에 구대원은 서른 명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전쟁 이후 한 달 사이에 새로 규합한 동지들이었다. 그 어려운 날들을 버티며 이날을 위해 싸워온 수천명의 진짜 투사들은 곳곳의 산기슭에서 썩어가고 있거나 이미 한 줌의 흙으로 변했을 것이었다. - P220

작년 초봄, 백운산 특각에서의 첫 오락회가 떠올랐다. 그때 우리를 그렇게 웃겨주던 만담가 박동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혁명의 열정에 떨며 그 밤을 함께 즐겼던 동지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쇠고기 굽는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감미로운데………. 목울대를 타고 올라오는 울음덩이를 꿀꺽 삼키며 그는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오늘을위해 싸우다 오늘이 오기 전에 가버린 동지들, 동지들은 가고 나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미 우리에게 ‘나 혼자‘ 란 없다. 박정하가 죽고 김지희가 죽고 박정숙이 죽고 유혁운이 살아남은 게 아니다. 우리 중의 많은 사람이 죽고 우리 중의 일부가 살아남았을 뿐이다. 동지들! 그대들이 흘린피로 오늘은 왔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들의 피로 오늘의 해방을 이어갈것이다. 그는 동지들의 피로 찾은 해방의 감격을 가슴속에 꼭꼭 눌러 담으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 P220

날이 새기 바쁘게 광주를 향하여 백여 명의 대열이 백아산을 떠났다.
조금씩 멀어지는 백아산을 유혁운은 자꾸 뒤돌아보았다. 그 고생을 하고백아산으로 오다 죽어버린 박정숙, 백아산에서 백운산에서 온 산을 피로물들이며 쓰러진 동지들! 목이 잘린 채 굴러다니는 동지의 시체를 보면서날콩을 주워 먹던 그 밤엔 달도 참 밝았었다. 백운산에서 도당과 유격대가 박살나던 날, 그는 눈물도 없이 동지들의 시체를 그러모아 돌무덤을만들면서 눈물보다 더 뼈아픈 맹세를 했었다. 살아남은 우리가 당신들의못 다한 꿈을 이루겠노라고, 당신들의 원수를 갚겠노라고, 그리고 이제 해방은 왔다. - P221

동지들이여 들리는가! 백주대낮에 대로를 걷는 우리의 힘찬 발소리가,
가슴 터지는 감동의 함성이 들리는가. 우리의 피로 찾은 이 해방을 영원히 인민의 것으로 하기 위해 먼저 간 당신들이 죽으면서도 꿈꾸던 세상,
그 무산계급의 평등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우리도 기꺼이 당신들의 뒤를따르겠노라.
그의 눈가에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을 꿈벅이며 그는 오래도록백아산을 보았다. 문득 한여름의 땡볕에 푸르다 못해 검게 타오르는 나무들이 하나씩 동지들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백아산 능선마다 봉우리마다힘차게 버티고 선 동지들은 열심히 손을 흔들어댔다. 그제야 그는 미련없이 되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간다. 발전하는 역사와 더불어 지나간 슬픈 역사를 묻고 우리는 전진한다.
태양은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고, 해방 광주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 P221

해방의 감격에 들떠 해방조국을 건설하겠다는 기쁨 하나로 자기를 따라나섰던 그 150여 명의 탄광노동자들 가운데 다시 가족의 품에 안긴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유혁운은 알지 못한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지난 후 탄광촌 부근을 지나면서 유혁운은 문득 그날 입은 옷 그대로 그를 따라나섰던 노동자와 가족들이 두고두고 흘렸을 눈물을 떠올렸고, 자신을 심판한 사람들의 말대로 수많은 죽음과 한이 과연 자신의 책임이어야 하는지 씁쓸한 생각에 잠긴 적이 있었다. 그들 중에는 물론 자기 앞에엄청난 고통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한 채 그저 해방의 감격에들떠 따라나선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나중에 자신의 죽음에 직면해서 누군가를 원망하며 죽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원망한 건 분명 그를 그런 일로 몰아넣은 일개인이 아니라 이 땅의 서러운반동의 역사였을 것이다. - P226

해방 이후 빨치산 출신들을 중앙당학교나 모스크바에 유학시키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었다. 실무에 어둡고 이론이 약한 빨치산 출신들을 사상적으로 무장, 단련시키기 위한 정책이었다. 전남도당에서는 1차로 도 여맹조직부장 유일남 등 세 명이 8월 15일자로 중앙당학교로 떠났고, 모스크바 유학은 그들 셋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꿈에 부풀었던 모스크바 유학도 결국 헛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몇 번 공부할 기회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철도학교 대신 농림학교나 일반 중학에 갔더라면, 조용식과 서울에 갔을때 어떻게든 서울에 남아 고학을 했더라면, 모스크바 유학 결정이 조금만더 빨랐더라면 그의 삶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개인의 삶이건역사건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추측은 환상일 뿐이다. 누구에게나 가지않은 길이 있지만 선택한 길만이 유일한 현실이기에. - P239

두 사람 모두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엉거주춤 고개를 숙였다. 같이 일하는 동지를 여자로 느껴보긴 처음이었다. 그동안 김병억에게 얘기를 많이 들었던 탓일까, 아니면 김춘옥의 다부진 모습에 마음이 끌린 것일까. 사랑하는 여자와 마주선 것처럼 그의 가슴은 흥분으로 방망이질치고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 어디서나 배짱좋고 농담 잘하던 그가 웬일인지 말 한마디 꺼낼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인채 서로의 발끝만 바라보다 그들은 곧 헤어졌다. 그리고 전쟁의 와중에난생 처음 사랑이 꽃피기 시작했다.
8.15가 지나면서 적기의 공습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23일에는 수십 대의 대편대가 나타나 광주를 온통 불바다로 만들었다. 비행기 공습은 날이갈수록 심해졌다. 전선은 한 달째 낙동강에서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어쩐지 불안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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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때로 운명이란 묘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일본인 교장을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양심적인 교육자라고는 하지만 뼛속까지 일본인인 교장이 전세의 불리함까지 솔직하게 얘기하면서 중학 진학을 말리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다고 그가운명론자인 것은 아니지만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완전히 뒤바뀌게 하는것을 그는 수없이 보았고 경험했다. 그만 해도 징용을 피해 간 철도에서또 다른 운명을 만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었다 해도 징용에 끌려가 죽지 않은 한 철도에서 그가 택한 길은 당시의유일한 선택이었고 어디에서 만나는가가 달라졌을 뿐일 터였다.
190어쨌든 그는 자신의 앞길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는지도 알지 못한 채1945년 4월 3일 구례구 철도역에 부임했다. - P79

새 관청에는 일제시대부터 그 자리를 지켜왔던 사람들이 해방조국의 관리로 다시 임명되었다. 45년 10월 미군정의 아놀드 군정장관의 선언대로 "남한에서 유일 합법적인 정부는 오직 미군정일 뿐이며, 미군정은 행정부의 모든 영역에서포괄적인 통제력과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 민중의 요구는미군정에게 고려해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는 것이었다. 남한 전역에서 혁명적 민중의 자발적 참여와 공산주의자를 중심으로 민족주의자와 일부우익까지 참여하여 건설되었던 인민위원회는 미군정의 군홧발에 산산이짓밟혔다. 인민위원회가 주장했던 토지개혁과 일제의 적산 처리 문제도당연히 미군정의 손으로 넘어갔다. 남한 자산의 80퍼센트, 주식회사 총자본의 90퍼센트, 토지의 70퍼센트, 경지의 30퍼센트가 미군정에 넘어간 것이다. 조선 인민의 뼈와 땀으로 축적된 적산은 미군정에 의해 친일 민족반역자와 매판자본가, 반봉건 지주에게 불하되어 한국화약이나 동양맥주, 해태제과, 동양시멘트, 선경 등등 내로라는 독점재벌로 성장하거나 몰락해갔다.  - P85

줄만 잘 잡으면 귀속업체를 몇 개씩 차지하기도 했던 대부분의 귀속재산 관리자들은 "생산의 유지 · 부흥보다 원료자재, 반제품, 기계 및 부속품, 심지어는 공장 건설시설의 부속품까지 암매하여 생산시설의 파괴와 생산력 쇠퇴의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현상은 미국내의 과잉생산물을 남한에 떠안기고자 했던 미군정의 공업생산 정체조장정책과 무관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미군정은 남한을 미국의 잉여농산물 시장으로 편성하기 위한농업정책을 실시해, 인민들이 그렇게도 부르짖던 "토지를 인민위원회로넘기라"는 요구를 묵살하고 직접 일본인의 토지를 접수하여 남한 최고의지주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4퍼센트의 지주가 전체 경지면적의 6퍼센트를 소유하고, 67퍼센트의 농가가 1 정보 미만의 영세빈농이었던 반봉건 - P85

적 소작관계를 지속시켰으며, 이같이 영락하는 빈농에게 생산량의 50퍼센트를 소작료로 징수하는가 하면 생산량의 40~60퍼센트를 시가의 25센트로 강제 출케 하고 팔십여 종의 각종 세금을 부과했다. 친일 민족반역자들은 해방으로 친일의 딱지를 벗어던지고 공개적인 도둑질을 할수 있게 된 것이고, 대다수의 인민들은 해방으로 눈 버젓이 뜬 채 강도질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도둑들에게 친일의 표지를 벗겨주고 합법이라는전가의 보도를 쥐어준 것은 바로 미군정이었다.
그러나 일개 노동자였던 그는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신문 볼 새도 없이 꼬박 스물네 시간을 일하고 나면 죽음 같은 피로가몰려왔다. 기차표를 타기 위해 주먹밥을 싸가지고 와서 밤을 새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런저런 말들이 그가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세상소식이었다. - P86

당 가입과 동시에 그는 새 이름을 부여받았다. 경찰의 눈을 피해 비밀활동을 하자면 당연히 새 이름이 필요했다. 유혁이라는 이름이었다.
조국도 없는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의 흐름대로 흘러가기만 했던 정운창은 이 땅에 인민의 국가, 한쪽에서는 쌀이 썩어나고 한쪽에서는 굶어죽게만드는 외세의 간섭 없는 인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하여 유일한 인민의 당에 가입하면서 새롭게 태어난 것이었다. 당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각오를 했지만, 그는 자신의 새 이름으로 겪어야 할 고난과 고통을 가히짐작하지도 못했고, 이 민족의 역사와 운명을 알 수도 없었다. 그러나 단하나만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의 선택은 유일하고 정당한 것이었고선택한다는 것은 그에 따르는 고통까지도 선택하는 것임을. - P96

남조선 단독정부 수립설이 외전으로 전해졌을 때 물의가 분분하더니 이번에는 지방 순회 중인 이 박사가 남조선 정부설을 강연했다 하여 파문이 컸다.
남조선 단독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조선의 영구불행인 것쯤은 아동주졸도 다 아는 일이어든 이것을 가지고 떠든다는것은 조선의 수치요, 독립을 지연시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온건 중립지인 <조선일보>의 1946년 6월 14일 사설 - P97

죽은 사람들은 전남도당 선전부장 박석우(담양 출신으로 일본 명치대 졸업) 일행이 분명했다. 얼마 전 그들이 지리산으로 이현상을 만나러 갈 때선전부장 수행원의 옷차림이 너무 초라하기에 유혁운은 자기 속옷과 철도국 정복을 입혀 보냈다. 그의 옷에 그만한 체격이라면 그 선전부장 일행이 틀림없었다. 비밀활동으로 단련된 간부가 어떻게 족적을 남기고 다닐 만큼 소홀했는지, 당사자들이야 그 부주의의 대가로 목숨을 버렸지만남은 사람들은 흐린 겨울 하늘만큼 답답했다.
어머니는 그가 집을 나올 때까지 따라나오며 그의 몸을 만져보고 몇 번씩 똑같은 말을 물어보았다.
"아이, 니가 참말 사람이지야?" - P128

아직은 텅 빈 아지트를 지키며 혁운은 지리산과 달리 벌써 싱싱하게 피어오는 백운산의 봄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용지동 계곡을 연둣빛물들이며 하루가 다르게 푸른 잎사귀를 살랑거리는 도토리나무며 떡갈나무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그는 문득 무릎을 쳤다.
아! 저게 바로 혁명이구나. 헐벗은 인민대중의 가슴을 녹음으로 뒤덮어오는 것. 어린 등짝이 휘어지게 나뭇짐을 지고 산을 내려올 때나,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친구들을 눈물로 바라볼 때나, 느닷없이 합환주를 마셔야 했을 때나, 언제나 그의 가슴에서 불어대던 스산한 바람이 어느 사이엔가 멈춰 있었다. 대신 그 가슴엔 촉촉하게 물오른 사월의 신록이 넘실대고 있었다. - P142

9.16결투 승리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빨치산 최대의 적인 겨울이 닥쳐왔다. 산에서의 겨울은 유난히도 일찍 찾아왔고 서둘러 온 만큼이나 미적거리다가 봄을 뒤쫓아온 여름에 채여서야 때 아닌 눈보라까지 쏟아 부으며 간신히 뒤돌아서는 것이었다. 애절한 그리움도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지고 아무리 미운 사람도 자주 보면 정이 붙는 법이니 벌써 세 번째 맞는 겨울이면 면역이 생길 법도 하련만, 두려울 것 하나 없는 빨치산에게도 이 겨울만은 여전히 두렵고 무서운 존재였다. 게다가 9.16 결투 이래대대적인 토벌작전이 개시되어 어디 한군데 진득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산에서 겨울을 나는 동안은 추위와 토벌대의 추적에 전멸이나 당하지않으면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었다. - P171

소성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푹 쉴수 있었다. 조 영감 집안일이나 도와주려고 해도 한겨울이라 쇠죽 쑤는일 외에 별다른 일거리도 없었다. 뜨듯한 아랫목에서 비록 보리밥이나마끼니마다 밥 한 그릇을 비우면 등 따시고 배부르고 세상 부러울게 없었다. 몸이 편해지니 가족들 생각이 났다. 아버지도 없는 구차한 살림을 어머니 혼자 어떻게 꾸려가고 있을까. 혼례식만 올린 채 버려두고 떠나온그 여자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 여자에 대한 사랑이 생겼다거나 세월이 그만치 흘렀으니 웬만하면 포기하고 내 여자로 받아들이겠다거나하는 감정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대한 그리움 탓일까, 기억조차 희미한 여자의 얼굴이 아슴푸레 떠올랐다. 남녘으로 향한 툇마루에 나와 앉아 서서히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태양빛을 쬐고 앉아 있으면 엊그제산에서 있었던 일들이 모두 꿈만 같았다. 해방된 지 벌써 사 년이 지났다. - P178

비합으로 쫓겨 입산한 지도 만 이 년이 지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남로당에 입당한 이래로 그는 계속 앞만 쳐다보며 달려왔다. 어떻게 여기까지달려왔는지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삼 년을 한걸음에 휙 지나쳐온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이전의 전 생애를 다 합친 것보다도더 중요한 사건들이 너무나 많아 그 삼 년이 까마득한 옛날 같기도 했다.
혁명이란 어쩌면 삶의 농축액이나 엑기스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1950년의 새해가 밝았다. 이제 그도 스물세 살이었다. 비록 갓 스물을넘긴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기억도 할 수 없을 만큼 짧고 길었던 지난 삼년간 역사라는 거대한 물결의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격렬하고 풍부한 삶의 체험을 했으며 그 체험을 통해 나이와는 관계없이 성숙한 인간으로 변해 있었다. - P178

그는 긴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때 그렇게 짓궂게 자신을 놀려대던 동지들의 장난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자신이 보통의 상식으로는이상하리만치 순수했음도, 한창 나이에 젊은 여자와 며칠 밤을 보내면서도 여자 때문에 가슴 졸이기보다는 맡은 임무에 가슴 졸이던 그 시절은얼마나 인간적이고 아름다웠는지…...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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