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한 영국 남자가 장미를 심었다. 그것은 정원 만들기의 일부였고, 정원은 문화가 자연을 다루는 한 방식이었다. 다시 말해 정원은 특정 문화를 통해 여과된 자연의 이상적 형태이다. 일본의 바위와 모래 정원이나 이슬람의 중앙에 분수가있는 파라다이스 정원처럼 일정한 양식을 갖춘 것이든, 아니면수많은 보통의 개인 정원처럼 제한된 공간, 시간, 예산, 계획에서생겨나 제각각인 것이든 말이다. 정원은 당신이 원하는(그리고 소유하고 관리할 수 있는) 무엇이고,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가는 곧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주며,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은 항상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질문이다. - P203
스코틀랜드 화가이자 정원 디자이너인 이언 해밀턴 핀레o lan Hamilton Finlay가 이렇게 쓴 바 있다. "어떤 정원들은 후퇴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공격이다." 오웰의 정원에는 생각들과이상들이 씨 뿌려졌고, 계급과 인종과 국적과 그에 내포된 전제들로 울타리가 둘러졌으며, 허다한 공격들이 여전히 뒷마당을 서성이고 있다. 물론 정원들은 탈정치적인 공간으로 옹호되기도 했다. 유명한 예로 볼테르의 철학적 풍자소설 「캉디드』는 주인공이세상을 주유하다 돌아와 "자기 정원이나 가꾸기"로 하는 데서 끝난다. 이런 결말은 흔히 세상과 정치로부터의 물러남으로 해석되어왔다. 캉디드의 경우 그것은 최종적인 결심으로 보이는 것이, 그는 그저 싸움터로 돌아가기 위한 재충전을 하려는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 P204
볼테르의 젊은 시절에 유럽 귀족의 정원은 기하학적으로배열된 자연과 원추형을 위시해 일정한 형태로 다듬어진 나무들로 가득했다. 말하자면 데카르트적 질서에 복종하는 자연이었다. 베르사유가 그 최고의 이상을 구현했으니, 그 정원은 제왕적인 권력의 중심으로부터 웅대한 대운하가 뻗어나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궁전에서 보면 대운하는 거의 지평선까지 뻗어 있는듯이 보였고, 길고 곧은 대로들은 고전적인 석상들과 나무들로장식되었다. 정복된 자연이 거기 있었다. 본래 단정치 못한, 일관 - P204
성을 결여한 영역인 자연이 왕의 절대적 권위에 길들여져 엄격한질서를 부여받은 것이었다. 그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바로 그 점을 내세우는 자연이었다. 18세기 후반 영국 귀족계급의 정원은 자연스러움의 미학을 추구했다. 세심한 설계와 조경 작업을 통해, 자연의 미학을 구가하면서도 감히 그것을 가다듬고 개선하려는 생각으로 공들여만들어낸 자연스러움이었다. 영국식 정원을 만드는 데는 베르사유 정원을 만드는 데 못지않은 토목공사와 옥외 배관 작업이 필요했겠지만, 그 목표는 구불구불한 개울과 구릉진 지형으로 그런것들을 만들어낸 인위적인 손길을 감추려는 것이었다. 자연이 최고이되, 영국식 취향과 돈이 그 주인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새로운 정원 양식은 미학적 혁명이었다. 정원들이 점점 더 손질하지 않은 자연처럼 보인다면, 자연 자체가 점점 더 심미적 즐거움을 주는 장소로 감상될 수 있을 것이었다. 조경된 정원은 엘리트계급을 위한 것이었지만, 자연은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개방된것이었다. - P205
인클로저를 옹호하는 논리는 효율성과 생산성이었을 터이다. 1804년 하트퍼드셔의 농업에 관한 아서 영Arthur Young의 보고서에는 웰링턴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사는 한 지주에 대한이런 기록이 남아 있다. "로이스턴에 사는 포스터 씨는 농사일을아주 잘 아는 신사인데, 공동경작지의 불편을 개탄하면서 전반적 인클로저의 필요를 강경히 주장했다. 그는 교구의 양 떼 관리인으로부터 허락받지 않고는 무 씨앗을 뿌릴 수 없으며, 작물을먹지 않는 대가로 양치기에게 에이커당 1실링 6펜스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공동체가 결정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인클로저는 그런 공동체의 힘을 약화함으로써 농촌 노동자들을가난하게 만들었고 지주들을 부유하게 만들었다. - P207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오웰의 시대에는 자연 세계가 흔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것의 바깥에 있는 듯이 상상되었다. 독일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1939년의 시 한 편에서이렇게 쓴 것은 유명하다.
아, 이 무슨 시대란 말인가 나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거의 범죄로구나 그토록 많은 불의에 대한 침묵을 담고 있으니
프랑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Henri Cartier-Bresson도 1930년대에 그 비슷한 말을 했다. "세계가 결딴나고 있는데, 애덤스Ansel Adams나 웨스턴 같은 사람들은 바위 사진이나찍고 있다!"" 그는 분명 나무나 바위 같은 것들이 정치적 영역 바깥에 있다고, 인간의 영향력에 상처 입을 수 없다고 상상했던 것이 분명하다. - P209
나는 라틴계 벽화가 후아나 알리시아 Juana Alicia로부터 그점을 배웠다. "그녀는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어리어에서 전설적인인물로, 내가 일찍이 맡았던 최초의 강의를 수강했다. 당시 나는20대였고, 강의는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열렸던 풍경 및 재현에 관한 대학원 세미나였다. 후아나는 마침 나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고 가끔 집에 오는 길에 자기 차에 태워주곤 했는데, 강의가 중반에 접어들었을 무렵, 자신이 어린아이였을 때또 젊은 여성이었을 때 캘리포니아에서 농장 노동자였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임신 중에 상추 따는 일을 할 때는 농약을 온몸에살포당했으며, 내가 보여주는 모든 농촌 풍경이 그때 일을 생각나게 한다고 말이다. 그것은 가장 친절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비판이었다. - P212
낮아지기를 원하기 위해서는 안전하게 높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하며, 시골을 원하려면 도회적이어야 하고, 거칠기를 원하려면 부드러워야 하고, 이런 식의 진정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인위성에 대해 불안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전원을 휴식의 장소로 본다면, 당신은 아마도 농장 노동자가아닐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에 이르면, 자연의 완상은 대개 세련과 미덕의 표지였다. 물론 스탈린도자기 별장들에 만들어놓은 정원과온실을 사랑했고, 나치는 인종적 순수성과 자연보호, 특히 숲의보호라는 관념을 융합시켰다. 그리고 미국의 초기 환경보호 단체들 중에도 우생학적 관점을 지지한 곳이 적지 않았다. 자연을 사랑하는 덕스러운 방식들이 있겠지만, 자연에 대한 사랑이 미덕을보장해주지는 않는다. - P213
심지어 오웰의 시대에도, 브레히트의 시나 카르티에-브레송의 코멘트가 시사하듯, 풍경은 정치 바깥의 공간처럼, 정치로부터의 도피처처럼 간주되었다. 하지만 지난 몇십 년 사이에 마치담장에 균열이라도 생긴 듯이 정치가 밀려들어왔다. 아니, 그보다는 학자들이 그림과 소설과 정원과 공원과 영지 바깥에 있었던것들에 대해, 그 바깥에 있던 것들이 안에 있던 것들에 항시 어떻게 의미를 부여해왔던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로런스웨슐러의 보스니아의 페르메이르」와는 거의 정반대되는 논지이다. 웨슐러의 글에서는 페르메이르 그림의 평온함이 전범재판소의 판사에게 가해자들과 희생자들의 잔혹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오랜 나날을 견뎌낼 힘을 주었다고 한다. 그 경우에 그림이라는 피난처는 잔인함과 불의와 고통이라는 현실과 싸우러 나갈 힘을 얻게 해준다. 반면 이 경우에는 정원과 컨트리하우스가 불편한 현실을, 그리고 자신들도 그에 공모하고 있음을 직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도피처가 된다. 정원은 후퇴[피난처]인 동시에 공격이다. - P222
오웰은 남의 땅과 노동을 착취하여 살아가는 제국의 하수인 및 식민자들의 후손이었다. 그의 모친 아이더 메이블 리무쟁블레어는 버마에서 자랐는데, 그녀의 프랑스인 아버지는 티크 상인이자 조선업자였다. 해안 인근의 티크 숲, 섬의 사탕수수밭, 대륙 중앙의 양귀비밭, 그런 것이 전 세계로 펼쳐져나간 노동과 착취의 풍경이었지만, 멀리 떨어져서 그 혜택을 보는 이들에게는 그런 풍경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상의 죄가 후대로 세습된다고는 믿지 않지만, 유산은 분명히 세습된다. 오웰은 제국주의 사업과 국내의 계급 사회에서 혜택을 누렸던, 그리고 때로 실제 권력을 지녔던 사람들의 후손이었다. 아마도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의 선조들을 여러 대까지 추적하기가 얼마나 쉬웠던가 하는 것이다. 추적하기 쉽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기록에 남아 있다는 뜻이고, 그들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는 뜻이다. 그들은 그림 속에 있다. - P229
장미는 완벽하다. 뿌리도 없고 계절도 없고 시간도 없이, 연보라색이나 연록색이나 황갈색의 들판을 떠다니며 영원히 피어난다. 꽃잎들은 딱 그렇게 한 꽃잎의 그림자가 그 아래 꽃잎 위에 선명하고, 가시도 흙도 민달팽이도 진딧물도 없는, 죽음도 부패도 없는 영역에 고고하게 떠받쳐져 있다. 중력에도 매이지 않으며, 천상의 현상처럼 무리 지어 피어나 장미 성운, 장미 은하, 장미 초신성을 이루며, 때로는 리본을 두른 다발로, 때로는 더 잗다란 꽃가지들 사이로 솟아난다. - P231
장미는 장미 이상의 것을 약속했다. 살아 있는 장미보다더 탐낼 만했던 것이, 그 장미들은 시들지 않을 터였다. 꽃의 아름다움은 그 덧없음에도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내 욕망을 불러일으킨 꽃의 이미지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에 나는 중국산 골동품 피아노 덮개가 갖고 싶었는데, 거기에는 모란꽃이꽃잎 하나하나 완벽한 비단 자수로 수놓아져 있었다. 또 우타가와 히로시게 유명한 매화꽃, 미국의 오래된 씨앗 봉지에그려진 그림들, 시골풍 옷이나 퀼트로 재활용된 한때 밀가루 포대였던 소박한 꽃무늬 무명천에도 나는 매혹되었다. 하지만1984년에 나타난 장미들은 분명한 연상들로 퍼져나갔다. - P232
영국ㅡ오늘날의 현실적인 갈등이 아니라 지난날 제국의잔광에 잠겨 있는 신화적인 장소―은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너무나 많은 교육을 받은 장소이자 무수한 다른 곳의 조각들로 이어 붙여진 장소인 것만 같았다. 영국은마치 주목해야 할, 모두가 아는 어떤 사람, 무엇이 중요하고 일이어떻게 되어가야 하는지 결정하는 사람과도 같았다. 내가 더 나이가 들고 계급이니 제국주의니 내 외조부모가 떠나온 영국 식민지 시절의 아일랜드 등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나는 그 영국 취향을 완전히 벗어버리지는 못했다. 다만 그것을 상쇄할 일말의 반영 감정을 갖게 되었을 뿐이다. - P240
꽃을사랑한다고 할 때 사람들은 무엇을 사랑하는 것일까? 꽃은 물론 에로틱하고 로맨틱하고 예식적이고 영적인 것을 의미하기 위해 쓰인다. 제단의 꽃다발이라든가, 승리한 경주마의 목에 둘러주는 화환 등도 그 좋은 예이다. 하지만 꽃은 다른 무엇인가를 위해, 인간적인 상황들을 기리기 위해 사용되기 이전에그 자체로서도 눈길을 끈다. 우리는 꽃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만,우리가 꽃의 아름다움이라는 말로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외관이상의 것이다. 생화가 조화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것도 그 때문이다(아마도 꽃 그림들은 실제 꽃을 환기하며, 그래서 조화가 갖지 못하는그 모든 감동을 지니는 것 같다). 그 아름다움은 부분적으로는 그것이 나타내고 연상시키는 것, 즉 생명과 성장의 구현이 뒤따를결실의 예고에 있다. 꽃이란 상호 연결과 재생이라는 식물적 시스템의 연결망 위의 한 교점이다. - P255
윈스턴 스미스는 한 고물상에서 발견한 문진을 아름다운것이라 부르며, 그것은 이야기 속에서 의미심장한 물건이 된다. 우리는 이런 말을 듣게 된다. "당원이 자기 소유로 갖기에는 기묘한,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는 물건이었다. 무엇이든 오래된 것, 말하자면 아름다운 것은 항상 어딘가 수상쩍은 것이었다."" 수상쩍다는 것은 그것이 당에서 근절하고자 하는 의식과 향락의 표지이기 때문이다. 오웰이 사자와 일각수」에서 취미를 전체주의가 굶겨 죽이려 하는 사적인 활동으로 정의하면서 칭송했던 경험처럼 말이다. 이 에세이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지금, 고도로 문명화된 인간들이 나를 죽이려고 내 머리 위를 날아다니고 있다." 마치 탐조등과도 같이, 이런 맥락은 그의 관심사들에 극적인 빛을 비추며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맥락은 그의 작품 속에 항상 존재한다. 문진은 사상경찰이라는 맥락 속에 존재하며, 취미와 아름다움에 관한 문제들은독일군 공습이라는 맥락 속에 존재한다. - P257
아름다움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품이 넉넉한 말 중 하나로, 가장자리가 닳아지고, 너무 친숙한 나머지 무시되며, 순전히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뜻하는 데 사용될 때가 많다. 하지만 스퍼드 영어 사전』이 열거하는 아름다움의 종류에는 시각적이지않은 것도 많다. 가령 "사람이나 사물이 아주 마음에 들거나 만족스러운 성질, 도덕적이거나 지적인 탁월성", 감탄할 만한 사람, 어떤 사물의 인상적인 또는 예외적으로 훌륭한 본보기 같은 것들이다. - P258
"보거나 들은 것을 바꾸고자 하는 아무 바람 없이 그저 보거나 듣는 것." 아마도 오웰의 가사 일기는 그런 기록일 것이다. 노동과 재배와 사소한 사건들의 짤막한 기술에는 사물이 있는 그대로와 다르게 어떠했으면 하는 바람이 별로 들어 있지 않다. 서사-허구, 신화, 동화, 저널리즘ㅡ는 무엇인가가 잘못되어갈 때일어나는 일에 대한 것이기 쉽다. 가령 정치가가 부패하고, 강이오염되고, 노동자가 착취당하며, 사랑하는 이는 사라졌다는 식으로 말이다. 가장 안정적인 아동용 책들도 나름대로의 상실 위기를 담고 있으며, 없는 연결을 찾고자 한다. "바꾸고자 하는 아무 바람 없이 존재하는 것이란 정태적이다. 그것은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은혜로부터 실추되기 전, 또는 재결합, 시정, 그 밖에다른 형태의 복구가 이루어진 다음이다. 그러나 잘못된 것에 대한 모든 이야기에는 만일 사태가 제대로 굴러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적어도 암암리에는, 가치이자 목표로서 들어 있다. 서사는 종종 옳은 것, 아름다운 것, 선한 것을 옹호하고 복구하려는 욕망에 내몰린다. - P259
그러므로 아름다움이란 바꾸기를 원치 않는 무엇인 동시에 가고자 하는 곳, 나침반 또는 북극성일 수있다. 레너드는 그 상호 교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알다시피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다들 너무 바빴어요. 아름다움을알아보기에는 너무 성이 나 있었지요. 아름다움을 즐기기에는 너무 상심해 있었어요. 나는 이 구름 사진들을 보면서 스스로 머저리처럼 느껴졌어요. 하지만 데이비드가 옳았어요. 이 모든 싸움을 거쳐야 하는 건 싸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모두 함께 어딘가에도달하고 싶기 때문이지요. 둘러앉아서 구름에 대해 생각할 수있는, 그런 세상을 창조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은 거예요. 그건 우리가 인간으로서 갖는 권리가 되어야 해요. 만일 우리가 둘러앉아 구름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 채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그렇게 하는 법도 그래야 하는 이유도 잊어버릴지 모른다. 길에서 너무나 헤매느라 더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것이다. - P260
오웰이 장미 이야기나 한다고 비난하는 글을 쓴 여성은바뀔 필요가 없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게으름이 낭비요 허튼수작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불의를 비롯해 생각하면할수록 바꾸고 싶어지는 일들에 초점을 맞추는 이들은 우리가굳이 바꾸고 싶지 않은 것을 바라보는 일을 의무 태만이라든가바꾸고 싶은 것에 대한 인식을 기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것이 파괴에 맞서는 에너지의 재충전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왔지만, 스캐리는 그것이 바람직한 것과 선한 것의기본 틀에 대한 연구로서도 중요하리라고 시사한다. 사회적 변화나 정치적 참여의 목표는 무엇인가? 어떤 선이 이미 존재하며 존재해왔는가를 연구하는 것도 그 작업의 일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이 오염되거나 부패해 있으므로 언제까지나 상처에서 출발한다는 음울하고 널리 퍼져 있는 입장과, 선이란 일종의씨앗처럼 존재하며 그것을 좀 더 힘써 돌보고 널리 퍼뜨려야 한다는 입장 사이에는 물론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 P261
형식의 우아함은 언제든 그것이 전달하는 의미에 의해 변질될 수있다. "우리가 담장에 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서 있으라는 것이다"라고 오웰은 화가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í에 대한 비평문에 썼다. 2"만일 제대로 서 있다면 좋은 담장이고, 그것이 어떤 목적을 수행하느냐 하는 문제는 별도의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서가장 좋은 담장이라 해도 집단수용소를 둘러싸고 있다면 허물어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형식은 기능과 분리되지 않는다. 아름다움 또는 추악함이란 그저 외관보다는 그 의미, 영향, 함의 등에 있는 것이다. - P277
1989년 6월 5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길게 줄지은 탱크들이 봉기한 학생들을 짓밟지 못하도록 단신으로 막아선 사람은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손에 시장 봉지를 축 처지게 들고 있는 홀쭉하고 이름 없는 누군가였다. 탱크들을 향해 그는 한쪽 팔을 뻣뻣하고 어색하게 휘두르며맨앞탱크의 전방에 남으려고 종종걸음 쳤다. 하지만 훨씬 더 우월한 권력과의 이 위태로운 대결은 이른바 아름다운 몸짓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그는 분명 어떤 이상을, 이상주의자들의 그룹을 위해 모든 것을 걸 용의가 있어 보였다. 전일성integrity이란 도덕적 일관성과 헌신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온전하고 부서지지 않은, 다치지 않은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것은 많은 아름다운 것들에서 발견되는특질이다. 내가 싫어했던 그 책은 신의를 저버리고 동지애를 깨뜨리는 것이었다. - P277
장미의 경우에는 모순들이 특히 두드러진다. 장미는 사랑과 로맨스의 표징이요 애정이나 찬사를 전달하는 선물로 간주되며, 흔히 가벼움을, 즐거움과 기쁨을, 꽃밭이 전달하는 것 같은 여유와 풍요로움을 전달한다. "꽃으로 말해요"라는 것은 꽃가게에서 널리 사용하는 문구이며, 꽃은 다정한 것들을 말하리라 여겨진다.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에서 댈러웨이 씨는 아내에게 "사랑하오"라는 입 밖에 내기 어려운 말을 하는 수단으로붉은 장미와 흰 장미로 된 커다란 꽃다발을 산다. - P283
우리는 서로에게 꽃을 선물할 때 그저 열두 송이 장미를건네는 것이 아니라 꽃과 함께 연상되는 것들을 함께 건넨다. 꽃의 역사적 의미와 현재의 실태가 공공연한 갈등 관계에 있다면, 우리는 서로 무엇을 건네는 것일까? 장미 공장의 한 노동자가 네이트에게 말한 적이 있다. "오늘날은 꽃이 다정함이 아니라 눈물로 키워져요. 우리 생산품은 전 세계에서 아름다운 느낌을 표현하는 데 쓰이지만, 우리는 아주 형편없는 대접을 받지요." 나는슈퍼마켓과 꽃가게에서 파는 장미 절화를 생산하는 여건들이 불편한 진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여건들이 이 장미를 만들었으니, 장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노동 및 산업의 생산품으로서 의미하는 것 사이의 긴장이 유독강한 아이템이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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