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작심하고 전집 가운데 『브레히트 시집』을샀던 나는 그중에서도 브레히트가 망명생활 중에 쓴 시 「후손들에게」를 반복해서 읽었다.


너희들, 우리가 잠겨버린 밀물로부터
언젠가 떠오르게 될 너희들은
생각해다오.

우리의 허약함을 이야기할 때
이 시대의 암울함도,
너희들이 겪지 않았던 이 암울함까지도.
사실 우리는 신발보다 더 자주 나라를 바꿔가면서
절망적으로, 계급 간의 투쟁을 거쳐 왔던 게다.
불의만이 판을 치고, 반항은 사라졌을 바로 그때에.

그렇지만 우리는 물론 알게 되었단다.
증오는, 비천함에 대한 증오조차
표정을 일그러뜨린다는 것을
분노는, 불의에 대한 분노조차
목소리를 쉬게끔 한다는 것을. 아, 우리는
우애의 터전을 준비하려고 했던 우리 자신조차
우애로만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했단다.
그렇지만 너희들은,
언젠가 때가 오면,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손을 뻗는 그런 때가 오거든
생각해다오, 우리들을,
모쪼록 넓은 마음으로.


나는사춘기 때부터 늘 건강에 무신경한 면이 있었다. 차림새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생활이나 몸가짐쪽에는 단정치 못하고 F는 규율과 훈련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글쟁이고, F는 음악가인 것이다.(이런 식으로 잘라 말해도 괜찮을까?) 조금은 불량한태도일지 모르겠지만, 무난하게 장수하는 삶에 지고한 가치를 두는 사고방식에는 공감이 되지 않는다.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한적도 없다. 그런 까닭에 매일 아침 규칙적으로 건강식을 챙겨먹는것과 같은 일을 나는잘해낼 수 없다. - P117

오페라의 배경이 되는 마하고니는 지명수배 중인 불량배 세사람이 황야에 건설한 도시로서 향락산업으로 크게 번영한다.
하지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배금주의에 농락당하고 도시는 황폐해진다.
로열 오페라의 연출가이자 총감독인 카스퍼 홀텐 KasperHolten (1973~ )은 공연 프로그램 팸플릿에서 설명하기를, 이 이야기가 배경이 되었던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과 지금의 상황을견주어보면 더하면 더했지 뒤지지 않을뿐더러 오늘날의 런던을보여주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고 했다. 확실히 극장 밖을 나오니거리의 표정은 도쿄나 서울처럼 번잡하다. 마하고니를 덮친 허리케인처럼,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이 도시에도 불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 P129

어떤 일이든 내 능력 밖의 것까지 해내려고 애썼던 나는 바로그 두꺼운 책과 씨름했지만, 거의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다만 내가 이해했던 것은 L형이 나를 아이 취급하며 깔보지 않고 오히려대등한 어른처럼 대해주었다는 점, 그리고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고 또 ‘재현‘하기 위해서는 이런 난해한 책과 씨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덧붙여 ‘브레히트‘라는 인물은 어쨌건 그러한 분야에서 세상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있다는사실이었다. - P137

생각해보면 그 무렵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지 거의 20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시절이다. 20년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눈깜짝할사이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저 먼 나라의 시인이 부르는 소리를 다름아닌 ‘후대 사람‘의 위치에 서서 읽었던 것이다.
‘암울한 시대‘가 아직 지속되고 있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내 뒤편에 놓여 있는 듯 생각했다. 그 시절로부터 거의 반세기가 지나버렸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암울한 시대‘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나의 앞쪽으로 끝도 없이 지금 나는 런던에서 브레히트의 목소리에 덧붙여 후대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심경으로, 이 시를 떠올리고 있는 셈이다. (2014년 5월에 일본 오사카에서 강연을 할 때, 청중 가운데 젊은 재일조선인과 일본인을 염두에 두고 이 시를 인용하며 낭독한적이 있다.) - P143

어느덧 대학 교수로서 살아가게 된 나는2005년 학생들을 인솔해서 베를리너 앙상블의 도쿄 공연을 보러 갔다. 상연작은 브레히트 원작, 하이너 뮐러 Heiner Müller (1929~1995) 연출의 아르투로 우이의 출세였다. 베를리너 앙상블은 브레히트가 중심이 되어 전후 동베를린에서 창설한 극단이며, 이 작품은 브레히트가 1941년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헬싱키에서 쓴 희곡이다. 히틀러가 자행한권력 탈취 과정을 시카고의 한 불량배가 갱단의 보스 자리에 오르는 상황으로 바꿔 풍자적으로 그렸다. 나치가 유럽을 모조리 정복할 듯한 기세를 과시하던 그 무렵, 브레히트는 이 연극 작품을통해 제3제국의 총통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던 것이다. - P145

브레히트는 제1차세계대전 당시 위생병으로 종군했고 전쟁이 끝나자 바이에른 혁명에 직접 참가했다. 히틀러 역시 하사신분으로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제대 후에도 패전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반유대주의와 배외주의를 부르짖으며 극우 군소정당의 일원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두사람은 동시대를 살아간불구대천의 원수였다고 할수 있다. 브레히트가 각본을 맡고바일이 작곡한 「마하고니 시의 흥망성쇠는 1930년에 초연을 올렸는 - P145

데, 3년 후인 1933년에 히틀러가 수상자리를 거머쥐고 나치 정당이 정권을 탈취했다. 망명생활에 들어간 브레히트는 이후 15년 동안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소련, 프랑스, 영국, 그리고 미국을 전전했다. 놀라운 점은 브레히트가 이런 망명생활 중에도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며 쉬지 않고 투쟁을 이어갔다는 사실이다. - P147

독일』,
과연 절묘한 표현이다. 그런사람이 아니었다면 15년이나 되는 힘든 망명생활속에서 끝까지 싸워내지 못했으리라. 또한 그랬기에 아르투로 우이의 출세」와 「마하고니 시의 흥망성쇠 같은전대미문의 명작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브레히트가 머물던 미국에서는 매카시즘의 광풍이 영화계와 연극계에 휘몰아쳤다.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했던 브레히트는 1947년 스위스로 탈출하여 1948년말에 동베를린으로 귀국했고, 1956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르투로 우이의 출세」는 브레히트가 죽은 후 1958년에 처음 무대에 올랐다. 연극의 에필로그에는 "이 괴물을 낳은 자궁은 여전히 건재하다."라는 유명한 경구가 등장한다. 아우슈비츠의 생환자인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도 자신의 저서 『이것이 인간인가의 1972년 개정판 서문 「젊은이들에게」에서 이 말을 인용한바 있다. - P149

서로 친밀해 보이는 사람들은 세련된 카페나 펍으로 몰려갔다. 경쾌하고 절묘한 기지, 신랄한 풍자, 압도적인 무대미술, 일류 예술가들이 펼쳐낸 노래와 춤…. 나 역시 물론 만족스러웠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이곳에서 나는 ‘브레히트‘라는 키워드를 통해 열두 살 이후 반세기에 걸쳐 지나온 나의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펼쳐진 나치즘의 흥망, 제2차세계대전에서 시작하여 사회주의권의 붕괴를거친 지금까지의 인류사를 돌이켜보게 되었다. 과연 나는 제대로살아가고 있다고 말할수 있을까. 인류사회는 나아지고 있다고 말할수 있을까. 무엇보다 "이 괴물을 낳은 자궁"은 이제 사라졌다고말할수있을까. - P151

스위스에서는 강연 일정 외에도 몇몇 미술관을 다시 가보고유서 깊은 한 호텔도 찾아갔다. 예전에 파울첼란 Paul Celan (1920~1970)과 넬리 작스 Nelly Sachs (1891~1970)가 만났다는 호텔이다. 지인인 독문학자 기타 아키라씨가 그곳에 대한 정보를 귀띔해주었다.
취리히 호수에서 흘러들어온 물길이 좁아지는 곳인 그로스뮌스터 대성당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주변은 휴양을 하러 온 사람들과 관광객으로 북적거렸다.
첼란은 1920년 동유럽 부코비나 지방의 체르노비츠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은 18세기 후반까지는 터키 제국의 영토였고, 그이후로는 합스부르크 제국령이었으며, 제2차세계대전 후에는 루 - P153

마니아의 차지였다. 우크라이나인, 루마니아인, 유대인, 독일인,
폴란드인, 헝가리인 등이 대립하면서 공존하는 다민족, 다문화,
다언어 지역이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가 이곳을 양분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 시기에 이곳에는 소련군과, 이에 대항하는루마니아와 나치독일 연합과의 전선이 형성되었다. 충돌 과정에서 유대인 주민은 소련군에 의해 시베리아로 강제 이송되거나 독일군에게 조직적으로 학살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첼란의 부모는독일군의 강제수용소에서 살해당했고 첼란도 강제 노동을 당했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아 종전을 맞을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첼란은 빈을 거쳐 파리에서 거주하면서 적의 언어인 독일어로시를 써내려갔다. - P155

넬리 작스는 1891년 베를린의 유복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시를 발표했는데 나치 정권이 수립되어 압박을 받자 1940년에 늙은 어머니와 함께 스웨덴으로 망명했다. 그러나 그의 약혼자는 나치에게 생명을 잃고 말았다. 이후 작스는 생계를꾸려가기 위해 스웨덴 시를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자신의 시를 썼고 1966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의 현대음악가 윤이상 역시 한국 군사정권에 의한 탄압 - P155

의 희생자였다. 그리고 결국 망명지 베를린에서 삶을 마감했다. 그는 1980년 5월, 계엄군이 많은 시민을 살육했던 광주의 소식을 접하고 넬리 작스의 시를 이용하여 실내악 작품 「밤이여 나뉘어라」(1980)를 작곡했다.


밤이여 나뉘어라
너의 빛나는 두 날개는 전율하고
나는 이제 떠나려 한다
피투성이의 밤을
되돌려 주려기에. - P157

첼란은 파리에서, 작스는 스톡홀름에서 정신이상으로 괴로워하면서 망명생활을 했다. 두 시인의 편지 왕래는 1954년 무렵부터 시작되어 16년에 걸쳐 이어졌다. 그동안 두 사람은 실제로 두번 만났는데, 그중 첫번째 만남이 1960년 5월 취리히의 스토르혜 Storchen (황새)‘ 호텔에서였다.(‘파울첼란과 넬리 작스의 왕복 서한1996)고립과 외로움의 극치를 표상했던 두 명의 유대인 시인, 첼란은 1970년 파리에서 센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고, 같은 해 작스 역 - P157

시 스톡홀름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두사람 모두 ‘피해망상증‘이라 불리는 정신질환으로 삶을 마칠 때까지 괴로움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나는 두 사람을 병자로 분류하고 증상에 따라 병명을 붙이는 일에 저항감을 느낀다. 두 사람은 나치즘이라는 인류의 질환 때문에 고통스러워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도 언제든 그것이 다시 찾아오리라는 예감에 끊임없이 위협을 느꼈다. 둔감한 사람들 대신 민감한 안테나로 위기의조짐을 지속적으로 감지했다. 진정 병든 자는 누구인가? 지금 일본은 물론이거니와 세계 각지에서 차별과 배제를 부르짖는 거친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 P159

취리히의 평온한 오후, 나는 두 시인이 만났던 호텔을 찾아갔다. 그 장소에 갔다고 해서 특별한 뭔가가 있을 리는 없다. 다만 여행을 할 때마다 항상 그래 왔듯, 나는 죽은자들이 내는 기척에 귀를 기울여보고 싶을 뿐이다. 관광객이 오가는 밝은 야외로부터단절되어, 이제는 꽤 쇠락한 분위기가 감도는 차분한 카페에서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첼란이 앉았던 곳은 어느 의자일까?‘라고 잠시 부질없는 생각에 몸을 맡겨볼 따름이다.
취리히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끝이 없지만 이제 다시런던으로 돌아가야만한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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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소련이 세상에 존재하고 독일이 동서로 분단되어 있던 시절, 홍콩이 영국령이었던 시절부터 나는 이따금씩 영국을 찾아가곤했다. 그랬던 예전의 대영제국은 지금 유럽연합 탈퇴 문제를 둘러싸고 대혼란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다. 길었던 몰락과정의 최종국면일지도 모른다. 이 과정은 앞으로도 많은 비극과 함께, 숱한 ‘인문학적 물음‘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런 질문 자체가 나를 매혹해 마지않는것이다.

2019년 8월
서경식


2019년 8월,
얼마나 아득한가?
고작 삼 년전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는 시간의 간극이 있다. 인수공통전염병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는.
내게 처음으로 ‘디아스포라‘를 알게한 서경식선생의 ‘나의 영국 인문 기행‘을 읽는다. 특유의 냉소적이지만 인간성이 가득 밴 그의 문장을 좋아한다. 여전히 ‘소년의 눈물‘에서 나는 빠져 나오지 못했다.
영국은 여러 이미지로 떠오르는 나라이기도하고 얼마 전 타계하신 ‘엘리자베스 여왕‘도 생각나지만 이제 ‘버지니아 울프‘가 맨 먼저이다. ‘울프의 나라‘ 영국을 선생의 눈으로 만나러 간다.





첫 영국 여행에서는 초겨울의 고요한 호수 지방을 찾아가기도했다. 또 다른 해에는 글래스고에서 스카이 섬까지 북상해 하이랜드를 드라이브하며 그곳의 풍광에 마음을 빼앗겼다. ‘저세상‘이 바로 곁인 듯 느껴져 ‘죽는다면 이런 곳이 좋겠다.‘라고 몇 번이나 생각했던일이 잊히지 않는다. 다만 하이랜드는 잉글랜드가 아니라 스코틀랜드에 속한다. ‘영국‘이라고 일괄해서 말할수는 없다. - P5

영국을 찾아갈 때마다 이 땅은 나에게 동경과 반감, 경의와 경멸이 한데 뒤섞인 복잡한 상념을 불러일으켰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오스카 와일드, 조지 오웰 등 나에게는 우상이라고도 할 법한 수많은문학가들을 낳은 곳. 언젠가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연극 ‘베니스의 상인을 본 적이 있다. 악역임에 마땅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의 깊은 비애를 부각한 연출에 감탄했다. 물론 연출의 힘이 뒷받침했겠지만, 그러한 연출을 가능케 한 원작의 깊이와 다면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이 점을 포함해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이번책에서는 미처 펜이 닿지 못했음을 밝혀둔다.) 문학계의 수많은 ‘우상‘들이 이 땅에서 탄생했던 것에 비해 음악계와 미술계에서는 빛나는 인물을 그리 많이 볼수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주제다. - P5

어쨌든 나는 젊은 시절부터 영국의 문화와 예술에 매혹되어 왔다. 이와 동시에 이 나라가 대제국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발휘해왔던,
두려울 정도로 냉혹하고 교활했던 측면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19세기 이후의 근대소설에는 해외 식민지에서 들어오는 이자와 배당금으로 아무런 부족함 없이 생활하는 부유층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 이면에 현지인이나 노예에 대한 지배와 착취가 자행됐다는점은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책에서 잉카쇼니바레의 미술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이렇게 모순으로 가득 찬 양면성이 이 나라 사람들의 문화에도암울한 아이러니를 움트게 하여 그들의 작품은 복잡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생산된 대중적 미스터리 작품을 다른나라의 것과 비교해보는 것만으로도 쉽게 깨달을수 있을 것이다. - P6

런던에서 케임브리지로 가던 도중 F가 놀라워하며 말했다.
"어? 냄새가 안나!" 그녀는 2001년 12월 이후로는 영국에 온 적이없었다. 2001년에 배기가스로 인한 악취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꽤 강렬했던 듯하다. 오랜만에 방문한 런던은 획기적이라고 할 만큼 매연이 줄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번 런던 여행에서가장 먼저 느낀 감각이었다.
2001년은 뉴욕 세계무역센터 등이 동시에 표적이 된 자살폭탄 공격, 이른바 ‘9·11테러‘가 일어난 해였다. 당시 우리는 계엄 태세였던 미국대사관 바로 옆에 위치한 호텔에서 묵고 있었다. 꽤 - P11

낡은 호텔의 11층 객실 창가에 멍하니 서서 ‘나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죽을까………‘ 같은 생각을 했다. 그때로부터 거의 14년이흘렀다. 나는 아직 살아 있으며 예전과 똑같은 생각을 반복한다.
9.11 테러 이후 2년이 지난 2003년에는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전쟁을 일으켜 한사회가 완전히 파괴됐다. 시리아에서는 내전이 격화되어 수많은 난민이 생겨났다. 런던의 배기가스는 개선되었지만, 세계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 P13

어렸을 때 나의 애독서였던 『플랜더스의 개』는 영국 작가 위다Ouida, Maria Louise Ramé (1839~1908)가 19세기에 쓴 아동문학이다.
주인공인 가난한 소년 넬로는 늙은 개 파트라슈와 함께 우유를배달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넬로는 온갖불행에 시달린 끝에, 한 번만이라도 보기를 고대했던 안트베르펜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제단화 앞에서 파트라슈를 끌어안고서 숨을 거둔다. 이 제단화가 바로 루벤스가 그린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다. 나는 옛날 이 제단화를 보기 위해 안트베르펜을찾은 적이 있다. - P21

다음 날에는 아침부터 케임브리지 대학의 식물원을 산책했다. 나는 여행지에서 미술관 못지않게 동물원이나 식물원을 즐겨 찾는다. 그러니 영국에 와서도 평소 습관대로 여행한 셈이다. 식물원에 다녀와서는 피츠윌리엄 박물관을 찾았다. 케임브리지 대학의부설 박물관으로 1816 년에 창립한 곳이다. 당당한 외관의 건물안에는 티치아노, 베로네제, 루벤스, 반다이크부터 드가, 르누아르, 세잔, 피카소에 이르는 명작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실로 호화로운 컬렉션이다. 하나하나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특히 기억에 강하게 남은 그림은 프란스 할스 Frans Hals (1582경~1666)의 이름 모를남자의 초상」이었다. - P23

문학계에서는 훨씬 이전인 16세기부터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더욱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17세기 영국이 혁명과 동란의 시대였음을 고려한다고해도, 같은 시기에 플랑드르 역시 기나긴 전란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여전히 잘 설명되지 않는다. 거꾸로 생각하면이 시대에 어째서 유독 플랑드르(네덜란드)에서 미술이 집중적으로 융성할 수 있었을까? 동인도회사의 설립과 경영으로 인한 부의 축적, 그리고 부유한 시민계급의 형성이라는 이유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왠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 P27

 시인이자 영문학자인 오타 미와씨가 꼭한번 찾아가보라고 권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피츠윌리엄 박물관과는 달리 매우 평범한 민가와 같은 외양을 하고 있었다. 런던에서 테이트 갤러리 학예사로 오래 일했던 짐 에드와 그의 부인 헬렌이 1956년 케임브리지로 와서 낡고 오래된 작은 집을 개축하여 미술관을 열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방문객이 자유롭고 편한 마음으로 예술작품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목표로 삼아 이 미술관을만들었다. 콘스탄틴 브랑쿠시 Constantin Brancusi(1876~1957), 바버라헵워스 Barbara Hepworth (1903~1975), 헨리 무어lenry Moore (1898~1986),
베니콜슨Ben Nicholson (1894~1982), 호안 미로Joan Miro (1893~1983) 등의 작품을 편안하게 배치해두었는데 정말 훌륭한 취향을 보여주는 미술관이었다. 에드 부부는 케임브리지를 떠날 때 이곳을 대학에 기증했고, 이후 케임브리지 대학이 관리를 맡고 있다. - P29

나는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이다. 나의 어린 시절, 낮은신분에서 입신하여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도요토미히데요시는 두말할 것 없이 서민층 아이들 사이에서 영웅이었다.
문학이나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집요할 만큼 영웅담이반복되었다. 그런 한편 교토의 도요쿠니신사豊國神社앞에는 ‘귀무덤‘이 있다. ‘코 무덤‘이라고도 부른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도요토미 히데요시 군대가 공적을 세운 증거로 조선과 명나라 병사의 귀와 코를 베어와묻어놓은 무덤이다. 2만명에 달하는 사람의 귀와 코가 묻혀 있다고 한다. - P37

많은 일본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히데요시를 영웅이라고생각하면서 자랐던 나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런 내 자신에게위화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히데요시가 나의 영웅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으며 묵살되어온 소수자나 패배자의 존재에 눈을떴던 셈이다. 나 자신이 그런 패자들쪽에 속해 있다는사실 역시.
그러한 ‘불편함이야말로 내 인생의 귀중한 자산이다. 만약 그자각이 없었더라면 내 정신세계는 언제까지나 일면적이고 천박했으리라. 아일랜드 사람이라면 크롬웰을 어떻게 생각할지를 상상해보는 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 P39

버지니아 울프는 1928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 안의 여자 대학에서 펼쳤던 강연을 기초로 하여 이듬해 자기만의 방』을 출간했다. 당시 46세였던 울프가 후배 여성들에게 보낸 격려의 메시지를 담은 ‘자기만의 방』은 지금까지도 페미니즘 고전이라고 할 법한 책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집요할 정도로 성별을 의식하게끔만들었던 시대"에 여성은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 울프는 강연장에서 "와인을 마시며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고 확실히 말했다."라고 일기에 남겼다. ‘자기만의 방‘이라고 하는 상징적인 비유를 통해 남편이나 가정에서의 자립, 가부장제로부터 독립할 각오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 P49

 그리고 먼저 실제로 ‘자기만의 방‘을 확보하고,마침내 한국 여성 미술을 대표하는 아티스트가 됐다. 그 무렵 윤석남은 평소 반복해서 읽었던 버지니아울프의 『자기만의 방』을염두에 두었다고 말했다.(『나의 조선미술순례』, 반비, 2014년) 1920년대 영국의 여성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가 시공을 넘어 1970년대한국 여성의 등을 힘껏 밀어주었던 것이다. 울프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P51

여기저기서 물밀 듯 요동치는 ‘생각‘에 마음을 빼앗겼기때문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던 나는 빠르게 잔디를 가로질러 걷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어떤 남자가 튀어나와 갑작스레 나를 가로막았습니다. 와이셔츠에 모닝코트를 걸친 기묘해 보이는 그 물체의 몸짓이 나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엔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의 얼굴은 경악과 분노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를 도운 건 이성보다는 본능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의례를 담당하는 교구 관리원이었고 나는 여자였습니다. 이곳은 잔디밭이고 인도는 저쪽에 있었습니다.
잔디밭은 대학의 특별연구원(펠로)이나 학자 (스칼라) 만들어갈 수 있게끔 허용되었고 저쪽 자갈길이 내가 걸어야 할 장소였습니다. - P51

이 소동 덕에 울프가 사색의 강아래에서 건져 올리려 했던 ‘물고기‘, 즉 귀중한 ‘아이디어‘는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학교를 다니던 때의 ‘전통‘이 아직 여전히 살아 있는것이다. 여기서 잔디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며, 정원을 꾸미기 위한 장식도 아니다. 엄연한 ‘권위‘와 ‘위계‘의 표식인 셈이다. ‘잔디밭에 들어갈 수 있는 권리‘와 더불어 교원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특권은 무료로 제공되는 식사다. 펠로의 손님 역시 이 특권의 떡고물처럼 공짜로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애덤이 같이 밥을 먹자고 권했기에 호기심이 가득했던 우리는 기꺼이 초대를 받아들였다. - P53

실존 인물인 에릭 리델은 스코틀랜드 선교사의 아들로 1902년에 중국 톈진에서 태어났다. 1902년이라고 하면 의화단사건 직후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구 열강과 일본은 중국에 군대를 주둔하고 다양한 요구를 내세우며 침략을 시작했다. 제국주의 열강이제3세계 지역을 잠식하고 침략하는 과정에서, 개개인의 의도가어떠했건 간에 기독교선교사들이 첨병 역할을 했다는 점은 역사적 사실이다. 에릭 리델의 생애에도 그러한 역사의 각인이 찍혀 있다고 할수 있다. - P57

이 영화는 원작자, 제작자, 감독의 의도가 어떠했건 (아마도그 의도를 뛰어넘어 많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영국 제국주의의 한자화상을 보여준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 그림자를 유대인과 스코틀랜드인이라는 주변적 존재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이 영화의 제작자는 이후 다이애나비의 연인으로서 1997년파리에서 자동차사고로 함께 세상을 떠난 도디 알파예드 Dodi Al-fayed (1955~1997)다. 이집트 억만장자의 아들로 태어나 스위스에서교육을 받았던 그가 불의 전차」를 제작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롭다. 영국 주류사회에 속하기 위해 영국 국가대표로 필사적으로 달렸고 결국 우승까지 했지만 공허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던 유대인 헤럴드에게, 도디 알파예드는 자기 자신을 투영했던 것이 아닐까. 엄청난 부호였지만 아랍 출신이었기에 항상주변적 존재로 머물렀던 그는 황태자비를 자신의 연인으로 삼아중심으로 진입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 P59

동전 던지기 운운은 영국인다운 농담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리 농담이라고 해도.…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온화하고도 독실한, 그리고 겸허하고 유머를 갖춘 노학자야말로 좋건 나쁘건 영국 인문학의 전통을 체현하는 인물상이지 않을까. 이 나라에는 M 선생처럼 일본 중국 그 밖의 아시아 여러 나라, 중동,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을 전공으로 하는 전문가와 석학이 매우두텁게 존재하고 있다. 옛 대영제국의 판도와도 같이 폭넓게, 유사한 지적 자원의 층이 쌓여온 것이다. 제국이 층층이 쌓아올린 지책의 퇴적이다. 그 저변에 에릭 리델과 같은 존재도 있었다. - P63

아, 얼마나 섬세하고 얼마나 애절했는지, 또 얼마나 고독한소리였는지, ‘매료된다는건 이런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1977년9월 27일에 리흐테르가 올드버러에서 열었던 작은 리사이틀 현장의 모습이었다. 영상에는 다음과 같은 자막이 붙어 있었다.


리흐테르는 원래 카메라를 너무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내는 영상 기록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카메라를 감추고 녹화하는 방법에 동의했다. 리흐테르는 연주가 끝나고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영상 기록에 대한 아내의 열의를 받아들였다. 이 프로그램은 1997년에 세상을 떠난 위대한 피아니스트리흐테르와 같은 해에 탄생 200주년을 맞은 슈베르트를 헌정하기 위해 재편집했다. - P69

브리튼과 친밀한 사이였던 리흐테르는 종종 올드버러를 방문했다. 앞서 말했던 콘서트도 올드버러 근처의 스네이프 몰팅스 콘서트홀에서 열린 것이다. 너무나 바빴던 거장 피아니스트는 매년 아득히 먼 이곳을 찾았고, 창고 같은 자그마한 홀에서 얼마 되지 않는 청중을 상대로 이런 명연을 펼쳤다. 올드버러는 어떤 곳일까? - P69

브리튼과 파트너인 피터 피어스는 오페라의 원작이 된 조지크래브George Grabbe (1754~1832)의 시 「마을」을 읽고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인 어부 그라임스의 캐릭터는 매우 복잡하게 변했다. 원작에서는 명백한 악한인 그라임스를 무자비한운명 앞에 놓인 사회적 희생자로 바꾸었던 것이다. 
브리튼은 이작품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사회가 잔인해지면 사람들은 더잔인해진다." - P81

1938년 9월 30일 뮌헨회담의 결과로 영국과 프랑스 양국은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 지방이 독일로 편입되는 것을 용인했다. 약 22만 명의 난민이 병합 지역에서 체코로 피난을 가야만 했고 공산당원이나 사회민주당원은 독일로 송환되어 탄압을 받았다. 1939년 3월에 체코슬로바키아는 해체됐다. 같은 해 8월 독일은 독소불가침 조약을 맺은 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했다.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브리튼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1939년4월 피어스와 함께 영국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병역을 거부한다는 뜻도 담겨 있었다. - P81

반전평화주의자 벤저민 브리튼이 천황제 군국주의의 중요한 의전이었던 황기 2600년 기념제를 위해 작곡했다는 에피소드는 꽤 복잡하고 흥미롭다. 당시 브리튼은 아직 젊었고(28세), 미국에서의 타향살이로 경제적으로도 곤궁했다는 사실이 하나의 설명이 될 수 있다. 젊고 가난하며 야심이 넘쳤던 작곡가에게는 이의뢰가 큰 기회로 여겨졌으리라는 점은 이상하지 않다. 또한 아무리 반전주의자라고 하더라도 유럽에서 자랐던 젊은이에게 머나먼 극동에 위치한 일본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절박한 위기감으로 다가오는 대상은 아니었으리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게다가 이미 오랜 경력과 명성의 소유자였던 독일의 대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도 이 위촉에 응해 작곡을 맡기도 했다. - P83

자신의 곡이 채용되지 않았던 일을 두고 브리튼은《뉴욕 선》지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반전적인 곡으로 만들었습니다. ……) 부모님과의 추억에이 교향곡을 헌정했지요. 일종의 진혼곡이기 때문에, 진혼 미사곡에서 분노의 날」을 인용했습니다."(고바야시 게이코, 벤저민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 《일본대학대학원 종합사회정보연구과기요》No.13,
2012를 참고, 인용부분의 원문은 영문)의도가 어떠했든 결과적으로 브리튼은 일본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악곡을 보냈던 셈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브리튼의 곡이 일본 정부에 의해 채택되지 않은 것이 그에게 행운이었다. ‘위촉에 응했다는 불명예‘ 속에서도 ‘군국주의와는 사상을 같이하지 않아 명예를 지켰다‘고 요약해볼 수 있으리라. 오늘날 이 곡은이후 탄생할 <전쟁 레퀴엠>을 예고하는 명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 P85

내가 미국에 갔을 때, 루돌프 제르킨이 아파트를 구해주겠다고 말을 꺼냈다. "돌아가지 말고 남아 있어줘"라고누구나 내게 부탁했다. (……) 그 이후 모두가 같은 질문을 했다. 왜 미국에 남지 않았지? 도대체 왜? 로스트로포비치도,
아슈케나지도…………. 다음 두 가지 이유가 없었다면 나도 고려해봤을지도 모른다. 하나는 내가 제1호가 아니었다는 점. 이건 큰 문제다. 아무리 도망치려고 해도 끔찍한 모욕이 기다리고 있다. 만약 그쪽에 남았다면 사람들이 나에게 한 말은 달라졌을 것이다. 또 하나는 ‘저항의 혼이다. 브리튼이 옳다. 내속에도 그가 있다. 악보를 펼치지 않는 한 - P91

리흐테르는 1960년 5월에야 겨우 서방에서 연주할 수 있는허가를 받고 헬싱키 콘서트에 ‘반주자‘로 파견됐다. 당시 소련의명연주자들은 서방세계로 많이 망명했다. 그중 한명이던 피아니스트 루돌프 제르킨도 그에게 미국 이주를 권유했다. 리흐테르는이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유는 이데올로기와 관련되었다기보다 브리튼이 말했던 ‘저항하는혼‘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혼‘
이 무엇이었는지 간단히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그것이 리흐테르의 (또한 브리튼의) 예술적 혼과 통해 있음은 확실하다. 리흐테르는 동서 냉전 중에도 때때로 서방세계로 순회공연을 떠났다.
그리고 브리튼과 나눴던 우정과 올드버러 음악제를 소중히 여겼다. 그는 소련의 붕괴를 내부에서 지켜보다가 1997년 8월 1일 모스크바에서 82년의 생애를 마쳤다. - P93

「전쟁 레퀴엠」은 브리튼의 대표작이다. 브리튼은 이 곡의 홍보 첫머리에 시인 윌프레드오언이 남긴 한구절을 써두었다.

나의 주제는 전쟁이며, 전쟁의 슬픔이다. 시는 그 비애 속에 있다. 오늘날 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경고를 전하는 일이전부다. - P99

브리튼은 제1차세계대전에서 전사했던 시인 윌프레드 오언의 시에 큰 감명을 받아 이 곡의 구성을 전통적인 라틴어 예배문과 오언의 시를 대비, 대위하는 방법을 택했다. 종교적 치유, 동시대 시인이 지녔던 분노와 고뇌의 언어가 교차하며 등장해 서로 격렬한 갈등을 벌인다. 브리튼은 이 곡에서 영국을 승리자로서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은 모든사람들에게 비참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이 작품은 전체 6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악장 ‘레퀴엠에테르남‘은 라틴어 예배문과 전쟁의 잔혹함과 병사의 비애를 노래한 오언의 시 부분으로 나뉜다. 테너가 "가축과 같이 죽은사람들을 애도하는 종소리인가, 누구를 위한 종인가……"라고 분노를 담아 항의한다. 오언의 시 전사할 숙명에 있는 젊은이들을 향한성가다. - P103

정말 앞으로 얼마나 지나야 할까? 제1차세계대전의 참화를경험한 후 인류는 게르니카, 난징, 코번트리, 드레스덴, 아우슈비츠, 히로시마, 나가사키… 그 밖에도 과거의 일들을 훨씬 능가하는 잔학과 무자비를 스스로 연출했다. 그 후로도 계속 이어진한국, 베트남, 구 유고슬라비아, 팔레스타인, 이라크, 우크라이나,
시리아 … 아, 여전히 세계는 피투성이다. 대체 언제까지? 제1차세계대전 때 죽은 젊은 시인의 말에 인류가 귀를 기울이기까지는앞으로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할까?
브리튼의 음악에는 이 어리석은 행진을 멈추게 할 힘은 없다.
하지만 그의 음악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렇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지나야 할까? - P109

"피어스는 브리튼에게 참 커다란 존재였네." F가 입을 열었다. "응, 그런 생각은 별로 하지 못했어."라고 나는 대답한다. 나는아무래도 피어스가브리튼의 그림자 뒤에 조용히 숨어 있는 구로코黒子(가부키 무대에서 검은 옷을 입고 배우 뒤에서 연기를 돕는 사람)같은 존재라는 잘못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는 뛰어난 가수였을 뿐만 아니라 당당한 지식인이자 때로는 브리튼을 이끌어주던 사람이었다. 브리튼 피어스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그가 노래를 부를 것을 상정하고 수많은 명곡을 썼고, 피어스도 거기에 견실히 응했다. 고흐와 동생 테오가 그랬듯 브리튼과 피어스도 한몸인 예술가였다고 말할수 있을지도 모른다. 피어스에 대해서 더 알아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임브리지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졌다. 왔을 때와 같은 루트로 거꾸로 거슬러 돌아가게 된다. 버스에 올라 마을을 떠날 때브리튼 피어스가 나란히 잠든 작은교회 옆을 다시 지나갔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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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 옥동 
(밉게 주인을 보는)

혜자 
부모가 화간 거랑, 애 아픈 거랑 무신 상관이 인?

주인
(혜자 보며) 저 언니란 애 좀 모자란 거 같지예?

별이
(주인, 입 모양 보고, 화난 듯, 말하는) 모자란 거 아니고, (또박또박) 다,운, 증, 후, 군

주인
(별이 보며, 이상하단 듯) 뭐 하는 거라

옥동
(버럭, 속상한) 뭐랜 하긴, 다운.. (잘 모르겠는, 춘희 보면)

춘희
(혜자 보는)

혜자(마저 받아서 해주는 화난 듯) 다운증후군! 귀가 처먹어신가

주인
(조금 민망한) 아니, 나는 별이 말은 잘못 알아들어부난...

혜자
(버럭, 주인 맘에 안 드는) 모자르긴 느가 모자르다! 멀쩡한 귀 가정, 못 알아듣고! 별이는, 다운, 증후군! 또박또박 말해신디, 저추룩(저렇게), 딴 말을... 가라, 남 일하는디, 귀찮게

주인
(속상해, 가며) 괜히 나한티.. (하고, 가는)

춘희
(속상히 주인 가는 것 보며, 손은 일하며) 그저 남 일에 나서서 안 좋은소리만 허고.. (하고, 은희 보면)

은희
(눈치 보며, 당황한) 전... 그냥 좀 놀라서.. 영옥이헌티, 아픈 언니 있댄한말을 못 들어서예... 나쁜 뜻은 어서마씸(없어요).

옥동
(담담히, 일만 하며) 다시 영옥이 영희 보민, 모른 척허라.

혜자
(일하며, 은희 보며) 그게 예의라이. (별이에게, 속상한) 우리 손녀는 자폐,
너만 모르는 거 같아 말하는 거라.

별이
(혜자의 손 잡고, 따뜻하게 웃고, 일하는) - P188

정준
(제 맘을 모르는 게 속상한 진지한, 억울하고 속상한 맘에 조금 큰 소리로 말하는) 그래요, 내가 영희누나 보고 놀랐어! 근데, 나는 그럴 수 있죠!
다운증후군을 첨 보는데! 그럴 수 있죠, 놀랄 수 있죠. 그게 잘못된 거면,
미안해요. 그런 장애 있는 사람을 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 집 어디에서도 배운 적이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 게 맞는지, 몰랐다구요! 그래서 그랬어요! (눈가 붉은, 그러나 참고, 다부진) 다신 그런일 없어요. 그러니까, 헤어지잔 말만 마. 서로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

영옥
(맘 아픈, 눈가 붉어, 가만 보다 외면하며, 눈가 손바닥으로 닦고, 맘 다잡고, 짐짓 담담히, 차분히) 영희 보고도.. 나랑 계속 만나잔소리가 나와?

정준
(애써 차분히, 또박또박 말하는) 나와요. 언니 보고 놀랐지만, 시간 지나서 적응되고, 친해지면 되고 그게 우리가 헤어질 이윤 못 돼요.

영옥
(애써 더 모질게) 나한테 정떨어질 일이 더 있는데.. 이 말은 어때? 부모님은 나랑 영희 열두 살 때 돌아가셨어. 다시 말해, 죽을 때까지 영희 부양은내가 해야 돼. - P192

* 점프컷 
폐가 현관 앞》
동석, 라면과 김밥을 허겁지겁 먹고,
정준, 동석의 핸드폰 톡으로 선아가 조깅하며 웃는 모습을 셀카로 찍은동영상을 보고 있는, 그리고 그 아래, 다른 동영상을 열면, 선아가 열이와웃으며 산책하는 모습을 찍은 장면이 나오는, 그렇게 여러 장의 선아의 일상 동영상들이 죽 있는,

동석
(라면과 김밥 먹으며, 무심한 듯) 거의 맬 아무런 문자도 없이 그렇게 지사는 모습을 계속 나한테 보내. 무슨 뜻이야? 그게?

정준
(동석 어이없이 보며, 조금은 웃긴) 알면서 뭘 물어요?

동석
(보며, 이해가 안 된단 뜻) 내가 뭘 알아? 머리가 나쁜데..

정준
(담담히) 형님이 자길 걱정하는 맘을 아는 거죠.. 형님이 좋은 거고, 나는잘 있다. 형님은 잘 있냐? 그러다 핸드폰 보며) 어, 근데 형은 아무것도 안보냈네.

동석
(라면 먹으며) 난 안 보내.

정준
(이상한) 왜요? 밀당?

동석
지랄하네. (먹는) - P198

정준
(너무 무겁지 않게, 상의하는) 영옥누나, 언니가 좀 아파요. 다운증후군이라는 병인데.. 좀 애기 같아요.

동석
(먹으며, 무심히, 정준 보는 별로 어두워지지도 않는 덤덤한, 만두 먹으며,
정준 얘기 듣는) 알아, 다운증후군, 영화에서 본 적 있어.

정준
(맘은 무거운 감이 있지만, 그래서 담백하게 말하는) 부모님은 안 계시고..
나는 그딴 게 다 감당이 되는데, 우리 부모님이랑 기준이한텐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조언 좀 해줘요 형님.

동석
(라면 먹으며) 내 처지에 널 뭘 조언해? 부모님이 기준이가 헤어지라고 하면, 헤어질 거야?

정준
(진지한 의지가 있는) 아니죠.

동석
답은 정해져 있네, 그럼, 너 꼴리는 대로 해, 그냥 나처럼, 막 가. 나는 자식아, 여자 아버지가 자살하고, 엄마는 재혼하고, 지는 이혼하고, 애까지 있어도... 그리고 뭐 자주 안 만나도 그냥 좋아하잖아. 남이 뭐래든 말든, 쌍. 내 인생인데, 뭐? 너도 너네 부모한테 뭐 받은 거 없잖아? 대학도 안 가서학비 안 쓰고, 배도 너가 일해서 사고... 이럴 땐 우리처럼 부모한테 암것도안 받은 것들이 편해. 어쩔 거야, 부모가, 뭐, 해준 것도 없이, 낳아준 거밖엔 없으면서 뭐라 할 거? - P199

정준
(진지한, 그러나 짐짓 가볍게 하려 하며) 부모님한테 받은 건 없지만 낳아주셨잖아요. 부모님 없었음, 내가 영옥누날 어떻게 만나요.

동석
(멋쩍어 빤히 보는) ...너가 그렇게 말함 나는 뭐가 되냐? 새끼.. 둘이 잤다며? 둘이 잤는데, 넌 좋은데, 그 여자는 너 믿는데? 쌩까? 이미 튼튼한 백미터 제방 쌓았는데? 너네 부모님한테 그래, 아방 어멍, 일이 영됐수다게끝 아방이 줘패면, 몇대 맞고, 끝. 기준이 자식 그건 뭐 너 알아 하고.

정준
(있는 그대로 말하기로, 작심한, 진지한, 무겁다기보단 다부진) 맞네, 형님말씀이 나도 부모님도 둘 다 편한 그런 방법은 없네. 부모님 뭐라시면, 욕처먹고 맞아야겠다. 고마워요, 형님. 머리가 시원해졌어.

동석
가, 회식어.

정준
(웃고, 운전해 가는)

동석
(라면을 먹다가 핸드폰 들고, 집 내부를 찍어서, 선아에게 보내고, 다시 먹는데, 전화가 오는 선하다, 받는)

선아
(E, 따뜻하고, 밝은) 멋지다, 집, - P199

해녀1
(영옥에게 웃으며) 얼굴이 이뻐지고 싶나 보다. 근디, 너추룩 수술하하면 돈이 하영 이서야켜(있어야겠다).

영옥
(웃으며, 서글픈 농담) 그러게요. 돈을 모아도모아도 끝없이 모자라네요.

해녀2
근디, 기냥 살지, 무신 수술이라? 기냥 살아도 될 거 같은디.. 힘들게.

혜자
(버럭, 속상한) 영옥이가 힘들지, 너가 무사 힘드느니(힘드니)?

해녀2
(왜 화를 내나 어이없게 보는)

혜자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나, 자이(손가락으로 멀리 영희 가리키며)도 정하는거지게 사람들이 자이를 볼 때마다 아꼽다, 곱다 하민이, 누가 지 얼굴에칼을 대고 싶어 하크냐! 자이도 수술하면 아픈 줄 알건디!

해녀3
(답답한) 혜자 말이 맞다. 그만들 허라

춘희
(가만 태왁에서 사탕 하나, 영옥에게 꺼내 주고, 자기도 입에 넣는)

영옥
(춘희의 맘을 알아서 받아주고 싶은, 사탕을 와작 깨물어 먹는

춘희
이 좋다.. (하고, 웃으며, 사탕 빨아 먹는 계속 손 흔드는 영희를 이쁘게 보는) - P209

정준
누나, 천천히, 어제처럼 많이 마시면 안 돼요. 천천히, 그리고 딱 그것만

영희
(맥주 시원하게 마시고) 캬! (잔 놓고, 손뜨개질하고, 정준 보며, 안 웃고,진지하게) 마, 말해봐, 너 영옥이가 이뻐서 좋지?

정준
(웃으며, 편하게) 아이, 그런 거 아니고요. 뭐랄까? 누나가, 착하죠.

영희
우우우, 웃기고 있네. 영옥이가 세, 세, 섹시하고, 이쁘니까, 좋으면서, 인물보고, 외, 외모 보고, 사람 좋아하는 놈.. 나쁜 놈.

정준
(편하게 웃으며) 누나, 난 그런 사람 아니에요. 인물보단 사람 마음 영옥이누나 맘이 이쁘니까.

영희
그그, 그럼... 나도 좋냐?

정준
(웃으며, 친구처럼) 누나 좋죠. 얼마나 귀여운데.

영희
그, 그럼, 나도 맘이 맘이 이쁜데, 나, 나, 난 왜 남자가 없냐?

정준
누나도 나같이, 좋은 남자 나타날 거에요. 진짜로.

영희
나, 나, 난 안 나타나왜,왜, 왜냐면, 남자들은 이쁜 여잘 조, 좋아하니까.

정준
(웃으면서도, 짠해지는, 애써 편하고, 담담하게) 누나도 연애하고 싶어요?

영희
(뜨개질하며, 담담히) 그, 그럼 하고 싶지. 나도, 화장도 이쁘게 하고 매력적이고 싶지 키쓰도 다 달콤하게 하고 싶지 그 근데 남자가 없지.

정준
(영희, 따뜻하게 보며, 친구처럼) 남자 놈들이 바보다 누나 이쁜데.

영희
너, 너도.

정준
맞아, 나도 인물 보고 사람 좋아하고, 나쁜 놈, 에이, 술이나 더 마셔야겠다. 누나 꺼 내꺼! 하고, 영희의 술 마시는)

영희
(뜨개질하며).. 영옥이는.. 이쁘지. - P211

정준
(편하게) 여행 갈까요? 우리 셋이?

영옥
(설거지를 하다. 내팽개치고, 정준 보며 속상하지만 강하게) 왜 한 일주일봐보니까 이젠 아주 영원히 영휠 봐줄 수 있을 거 같애? 착각하지 마! 내가 이렇게 될까 봐, 잘해주지 말랬지?!

정준
(조금 맘 아프게 보면)

영옥
내가 오죽하면, 너 같은 괜찮은 남자랑도 헤어지자 그러겠어! 오늘 일도약과야 선장 니가 본 건 다 아주아주 작은 일이라고 하고, 다시 설거지하며, 울컥하는 맘 참고, 화나고, 속상한) 이보다 더한 일이 얼마나 많았는데, 식당에서 길거리에서 머리 뜯고 싸우고, 테이블 뒤엎고, 쫓겨나고 나도이해해, 사람들은 영희 같은 애를 잘 못 봤으니까, 이상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자꾸 눈이 가겠지, 근데, 왜 하고, 다시 뒤돌아, 싱크대에 기대 정준보며, 맘 아픈, 그러나 모질게) 사람들이 영희 같은 앨 길거리에서 흔하게못 보는 줄 알아? 나처럼 다른 장애인 가족들도... 영희 같은 애들을 대부분, 시설에 보냈으니까.

정준
(맘 아프게 보는 피하지 않는 영옥의 마음에만 집중하는)

영옥(맘 아픈 그러나 너무 격앙되지 않게) 한땐 나도 같이 살고 싶었어. 근데같이 살 집을 얻으려고 해도 안 되고, 일도 할 수 없고! 영희 어쩌면 일반학교에서 계속 공부했다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었어. 근데, 일반학교 - P222

에선 잴 거부하고, 특수학교는 멀고, 시내 가까운 덴 특수학교 못 짓게 하고, 어쩌라고! 시설에 보내면, 보낸 날 모질다고 욕하고, 안 보내면, 오늘 같은 일을 밥 먹듯이 당해야 돼?! 못 참고, 격앙되는 대체 날더러 어쩌라고!

정준
(맘 아프게 보는 피하지 않는)

영옥
(눈물 나고, 화난, 맘 아픈) 영희도 다 알아! 개도 고양이도 감정이 있는데...
영희도 사람들이 자길 이상하게 보는 거 다 알아! 내가 이십 년도 훨씬 전에 자길 지하철에 버리려고 했던 것도 다 안다고! 다 기억한다고! 지금 내맘이 어떤지도 영흰 다 알아! 내가 자길 얼마나 버거워하는지, 안다고! 그래서, 추운데도 밖에 있는 거라고! 지가 내 눈앞에서 없어지면, 내가 화를덜낼 줄 아니까! - P223

영희
(맥주 마시며, 웃으며) 자, 잘 그렸어?

정준
(그림 보고, 영희 보며, 맘이 짠한, 짐짓 가볍게) 어, 엄청요. 근데.. 언제 이많은 그림을 그렸어요?

영희
(맥주 한 모금 마시고) 외, 외, 외로우면 그렸지. 여, 영, 영옥, 보고 싶을 때마다.

정준(눈물이 살짝 차오르는, 얼마나 영희가 영옥을 보고 싶어 했으면, 외로울때가 많았으면, 이렇게 그림 실력이 늘었을까 싶은, 그림 보고, 맥주를 마시는 눈물이 나면, 몰래 닦고, 다시 영희 보고, 그림을 보며) 사, 삼촌들아니 할머니들 좋아하시겠다. 이런 그림 구경도 못 했을걸요?

영희
여, 영옥이가 좋아해야지. 이쁜 내, 내동생.

정준
(따뜻하게 보며, 편하게) 동생이 화냈는데도 좋아요?

영희
걔, 걘 원래.. 그러지. (웃는) 히히. 그, 근데... 착하지, 날 버릴라고 했다가,
도, 아, 안 버리고.. 여, 여기 제주도도 오라고 하고...

정준
(따뜻하게 보며) 영옥누나도 그림 엄청 좋아할 거에요, 분명히, 엄청. 근데,
그림에 제목이 없다.

영희
(가방에서, 펜 꺼내며) 써야지. 여, 여기서 영옥이, 모르게.. 나, 나중에, 놀라게.

정준
(그림 한 장을 내밀어, 영희에게 주며) 이건, 춘희삼춘.

영희
(그림에 글자를 쓰는 춘희삼춘, 그리고, 자기 이름을 쓰는)

정준
글씨 잘 쓴다.. (뭔가 생각난 듯 잠시만요. (하고는, 영희의 필통에서 지우정준영희정준영희정준영화정준개 꺼내 칼로 조각하는)

영희
?

정준
(조각하며) 작가면 그림에 낙관이 있어야지. (하고, 지우개에 새를 조각하는)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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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 (조금은 믿기는, 맘 아픈, 옆에 물을 마시고, 애써 담담히, 그러나 눈빛은강하게, 대뜸) 너 육지에 남자 이시냐? 아니면 애가 이시냐?

영옥
남자도 애도 없어요.

춘희
(진지하고, 담담하게 보는 느가 혼자면, 바당에서 무사 그리 욕심을 냄서? 그리고, 매일 전화 오는 가이는 누구라?

영옥
...

춘희
(가만 보다) 말 안 할 거민, 낼부턴 나오지 말라. (하고, 일어나려 하면)..

영옥
(맘 아픈 걔는... 걔는...

춘희
(다시, 앉아, 보면)

영옥
저한테 하나뿐인.. (말하지만, 묵음 처리되는 참담하고, 맘 아픈, 춘희 보며, 어렵지만, 사실대로 말하는) 제 장애인...쌍둥이 동생이요.. 다운증후군이라고.. 말도 잘 못하고.. 지능이 일곱 살이에요.

춘희
(가만 듣는 안쓰런 맘 아픈, 그러나 처지지 않게 영옥의 눈을 가만 보며,
얘길 듣는)

영옥
(묵음 처리되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담담히 말하는) 개는 장애인 보호시설에 있는데, 걔한테 돈이 많이 들어가요.. 늘 아파서... 늘 돈이.. 하지만, 다신물질 혼자서 그렇게 함부로 하지 않을게요. 다시 그러면 제가 제 발로나갈게요. 받아주세요, 전 바다가 좋아요. 바다가 정말 좋아요..

영옥은 얘기하고, 춘희는 맘 아프게 안쓰럽고 사정이 답답한 영옥의 말을듣고 있는, F. I. - P95

혜자
(꼬나보듯 영옥을 보고 무뚝뚝) 내리라.

영옥
(시계 보며) 물질 시간 다 됐는데.

혜자
(맘에 안 들게 보고, 옆에 돌을 턱으로 가리키는)

영옥(불편한 맘으로, 내려, 돌에 앉으며) 춘희삼춘이랑 다른 삼춘들은

혜자(딴 데 보며, 투박하게) 달이가 먼저 모시고 간.

영옥
(어색한) 아.. 네. 저 십 분 일찍 왔는데.. 다들 더 일찍 나오셨네요.

혜자
(답답한, 얼굴 굳어, 안 보고) 엊그제 춘희삼춘이.. 다른 해녀삼춘들은 몰라도 나는 알아야 한댄이 너가 한 말 나한티 다 말해.

영옥
(차분한, 참담하기도 한) ..네....

혜자
(가방에서, 음료 꺼내, 영옥 주고, 투박하게) 마시라.

영옥
(답답한, 음료를 한병 다 마셔버리는)

혜자
(어색해, 멀리 길 보며, 영옥, 안 보고, 투박하게) 나가, 춘희삼춘하곤, 의리가 이서(있어), 조폭 의리 저리 가라다이, (괜히, 바닥에 침 뱉고) 춘희삼춘당부도 있고, 다른 해녀한티도 선장한티도..너가 말 안 함, 말 안 할 거.

영옥
(뭔가 맘이 짠해지는 고맙기도 하지만, 어색해 괜히 병만 만지는...

혜자
(불편한, 투박한) 다른 해녀들은 나랑 춘희삼춘 말이면 다들 군소리 어시(없이) 따라올 거여... (영옥을 이해하는 말투) 사정이 그럼 돈 벌고 싶지.
죽는 줄 모르고.. 내 손주도 (영옥 보며, 맘 아픈, 애써 담백하게) 좀 ... 그래이

영옥 
(혜자 보는데, 맘이 짠해지는)...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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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동과 동석

남들은 아무리 미운 엄마라 해도 엄마가 암에 걸려 결국 병원 의사로부터 사형선고(의사는 엄마가 지금 당장 돌아가셔도 이상할 게 없다 했다)를 받게 되면,그간 쌓아뒀던 원한을 풀고 화해를 한다는데, 그건 남 얘기. 동석은 엄마와 그럴 맘이 추호도 없다. 엄마의 사형선고를 듣고 동석은 오직 한 생각만했다. 마지막으로 대차게 한번 붙어보리라. 그간 살면서 나한테 미안은 했는지, 날 사랑은 했는지, 나에게 상처 준 걸 알기는 하는지, 내 인생이 이렇게 망쳐진 게 엄마 당신 때문인 걸 인정은 하는지, 꼬치꼬치 물어서, 답을 들으리라. 그래서, 기필코 미안했다 잘못했다 사과 받으리라. 그런데, 내 엄마강옥동씨, 낼모레 죽는다는데, 나한테 할 말 없냐니까, 없단다. 미안은 하냐니까, 염병 지랄을 한단다. 그러며 죽기 전 소원이니, 나보고 이복형제 (내겐 웬수 같은) 집에 자신을 데리고 가달란다. 와, 썅! 이건 선전포고다. 좋다.
썅, 살아 있는 모든 날 어디 한번 악랄하게 피 터지게 붙어보자, 그래! 동석은 죽음을 앞둔 엄마와 이길 수도 없는 싸움에 기꺼이 뛰어드는데..
- P42

강옥동 (여, 일흔 중반, 작은 밭에 이런저런 고추, 감자, 깨농사 등등을 지어서, 오일장에 내다 판다, 동석의 엄마)

남들이 벙어리라 할 만큼 말수 적고(혼자선 자주 구시렁대지만), 투박하고, 감정없는 사람처럼 무뚝뚝하며, 그저 일만 한다. 남들 눈엔 순해 보여도, 동석에겐 살갑지도 그닥 순하지도 않다. 취미라곤 종일 바다를 보거나, 하늘의 구름, 밭의 꽃이나 보며 앉아 있기가 전부 무학에 일자무식, 목포 태생.
뱃일하는 엄마 아버지를 열 살 때 집에 화재가 나 잃고, 동생과 단둘이 남의집 일이나 식당 일을 하며 살다(동생은 목포서 살다, 몇 달 전 암으로 죽었다. 죽기 전그렇게 언니 옥동을 찾았다는데, 글 모르고 길 모르는 옥동은 갈 엄두가 안 났다. 그리고부고를 들었다), 동네 사람이 막일하는 동석아버질 소개시켜줘 제주로 시집와 지 - P42

금껏 산다. 동석아버진, 제주에 와 남의 배를 탔다. 그는 남들한텐 호인이었지만,
여잘 너무도 좋아했다. 살림 차린 여자만 해도 족히 열둘, 옥동은, 첨엔 울고불고여자들과 싸우고, 동석아버지 팔을 물고 뜯었지만, 나중엔 포기했다. 치매 걸린시어머니와 애들 건사를 해야 했다. 근데 태풍에 남편이 죽었다. 미운 남편도 죽으니 아쉬웠다.
이후, 물이 무섭다는 딸년을(자신도 무서워, 그동안은 일만 했는데) 끌고 바다로 들어가 함께 해녀가 됐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근데, 이게 또 무슨 일, 딸년도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 물질 시작할 때 바다에선 욕심 내면 안 된다고 그렇게 무던히 상군 할망들이 가르쳤는데, 딸년은 전복에 욕심내다 그만 물속에서숨을 거뒀다. 고작 열아홉에 죽어가면서도 뭐 하러 지랄한다고 전복은 쥐고 있었는지.. 남편 죽인 바다는 안 무섭더니, 딸년 죽인 바다는 정이 떨어졌다. 어떻게 살지? 거친 동석이 저 새낀 어찌 키우지. 그때였다.  - P43

더는 삶에 자신이 없어진건. 그래서, 남편의 친구 박선주가 같이 살자는 말에 덥석 그러자 했다. 그와 산단 건 첩이 된단 거고, 그의 병든 아내 수발(거의 식물인간)을 해야 한단 거고, 남의 자식을 내 자식처럼 키워야 한단 거고, 동네에서 남편친구와 붙어먹는 걸레같은 년 소릴 들어야 한단 거였지만, 마다하지 않았다. 동석일 키울 수 있고, 다시 바다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됐다. 그까짓 개 · 쌍 * 창녀 소리듣지 뭐. 옥동은 야멸차게 시어머니, 근처 사는 시동생에게 보내버리고, 그길로거적때기 같은 짐을 리어카에 싣고 박선주의 집으로 향했다.
근데 인생의 환난은 이후로도 끝나지 않았다. 이복형제의 원망(나중에 사업한다고 박선주의 집이며 논을 다 팔아, 육지로 나감), 본처의 병수발, 이후 선주의 죽음, 밑도 끝도 없는 동석의 포한 그래서일까, 병원 의사가 슬픈 눈으로 ‘할머니,
병원에서 더는 해드릴 게 없네요. 맛난거나 많이 드세요‘ 할 때, 슬프기보단, 아프던 속도 편했다. 아, 이제 끝나는구나, 이 지겨운 인생. 근데, 아들 동석이 새끼가 시비를 걸어온다. 제 인생이 엿 같고 지랄 같은 건 다 엄마 때문이라나. 그러든 말든, 옥동은 개의치 않았다. 사실이 아니니까. 미안하다고 말하란다. 미안할게 없는데.. 짧게 남은 인생 한두 달도 시끄럽게 생겼다. 조용히 가고 싶었는데,
그것도 못 하게 된 이 별난 인생.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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