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삶을 마감한 것이다.
만우절은 아니었다. 만우절이라 한들 그런 장난이나 유머가 오가는 집안도 아니었다. 유머라니. 유머는 우리 집안에서 일종의 금기였다. 그렇다고 유머가 없었던 것은아니다. 누가 봐도 유머일 수밖에 없고 유머여야 하는 순간에도 내 부모는 혁명을 목전에 둔 혁명가처럼 진지했고, 그게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니 우리 집안에유머가 있었다기보다 혁명을 목전에 둔 듯 진지한 그들의어떤 행위나 삶의 방식이 유머일 수밖에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 P7

아버지의 눈빛은, 누군가 사진으로 그 찰나를 포착했다면, 처형 직전의 독립운동가나 학살당한 동지의 시신을 목도한 혁명가라 해도 믿을 만큼 진지하다못해 비장했다. 내가 풋, 웃음을 터뜨리려는 찰나, 어머니가 꽁무니를 내리고 조용히 방을 나갔다. 열일곱의 나는, 방물장수하룻밤 재우는 일에 민중을 끌어들이는 아버지나 그 말에냉큼 꼬리를 내리는, 꼬리를 내리다 못해 죄의식에 얼굴을 붉히는 어머니나, 그때 읽고 있던 까뮈의 『이방인』보다 더 낯설었다. - P13

그날 어머니는, 허리가 아파 평소 된장찌개와 김치밖에내놓지 않던 어머니는, 찬장에 고이 모셔둔 새 접시까지총동원하여 당신으로서는 최대한의 극진한 식사와 잠자리를 대접했다. 민중에게.
아버지의 민중이 그날 밤 내게 남긴 것은 벼룩이었다.
대신 가져간 것은 서까래에 매달아놓은 마늘 반점이었다.
나는 한달 가까이 북북 몸을 긁으며 민중을 욕하다가, 혁명가를 탓하다가, 그러다가 불현듯, 낄낄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사라진 마늘 반점이 내 부모의 진지에 대한 통렬한 배신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러나 배신당한 당사자들은 나와 달리 배신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 P13

바짓가랑이에 붙은 먼지한톨조차 인간의 시원이라 중히 여겨 함부로 털어내지 않았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마침내 그 시원으로 돌아갔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참으로 아버지답게 마지막까지 유머러스하게. 물론 본인은전봇대에 머리를 박는 그 순간에도 전봇대가 앞을 가로막고 서 있다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민중의 한걸음 한걸음이 쌓여 인류의 역사를 바꾼다는 진지한 마음으로 아버지는 진지하게 한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다만 거기, 전봇대가 서 있었을 뿐이다. 무심하게, 하필이면 거기. 이런 젠장. - P16

"아이고, 우리 아리도 저런 데 나가보먼 쓰겄다."
개 이름 같은 아리는 내 이름이다. 아버지가 활동했던백아산의 아, 어머니가 활동했던 지리산의리를 딴 이름덕분에 나는 숱한 홍역을 치렀다(사실 아버지가 주로 활동한 곳은 백아산보다는 백운산이었다. 그런데도 백아산의 아를 따온 것은 백운산의 백이나 운이 여자아이 이름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그러니까 제 아무리 남녀평등을 주장했다 한들 반봉건시대에 태어나 가부장제의 그늘을 아주 벗어나지는 못한 반봉건적 사유의 발로였던 것이다), 학교에서나 관공서에서나 고아리, 내 이름을 말하면 아유, 이름이 참 예쁘네, 얼굴도 참......하면서 나를 쳐다보았고 이내 말줄임표가 뒤따랐다.  - P29

지리산은 짙은 운무에 잠겨 있었다. 태양이 높아지면운무 속에 치솟은 노고단이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새벽 네시가 되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 새벽이 되기 직전, 어둠이 가장 깊은 시각, 아버지는 늘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웠다. 환한 낮이라면 지리산 능선과 노고단이 한눈에 바라보일 테지만 아버지 눈앞에 펼쳐진 것은깊은 어둠뿐이었다. 불도 켜지 않은 베란다에서 하얀 담배 연기를 어둠 속으로 피워 올리던 아버지의 여윈 등이불쑥 떠올랐다. 내게는 아버지의 삶처럼 비장한 풍경으로각인되었지만 기실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덤덤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 P43

을 마치고 아지트로 돌아왔더니 동지들의 시신이 목 잘린채 사방에 나뒹굴고 있었다고, 아버지는 예의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덤덤하게 말했었다. 밀란 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지만 내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
저를 지켜보던, 저 안에서 청춘을 보냈던 한 사내가 가고 없는 노동절 아침, 새벽녘의 지리산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요히 장엄했다. - P44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가 된다. 아버지는 잘못 참는 사람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가 득세하는것도 참지 못했고,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하라는봉건잔재도 참지 못했으며, 가진 자들의 횡포도 참지 못했다. 물론 두시간의 노동도 참지 못했다. 그런데 얼어 죽을 것 같은 고통은, 굶어 죽을 뻔한 고통은, 생사의 고비를함께 넘은 동료들이 바로 곁에서 죽어가는 고통은 어떻게 견뎠을까? 신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내려와봤자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뿐이라는 지극히 절망적인 현실 인식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 P68

아버지가 평생 당하고만 살지는 않았다. 당하지 않으려고 사회주의에 발을 디뎠고, 선택한 싸움에서 쓸쓸하게패배했을 뿐이다. 아버지는 십대 후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여든둘 된 노동절 새벽,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짊어졌다. 사회가 개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이렇게까지가혹하게 묻는 게 옳은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수 있다.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빨갱이 새끼들은 다 때려죽여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치렀고, 아직도 휴전중인 데다남북의 이데올로기가 다르니 의견의 합치를 보기는 진작에글러먹은 일, 게다가 나는 옳고 그름을 따질 만한 주제도아니다. - P76

안개가 점령했던 도로에는 오월 첫날답지 않게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찍고 있었다. 그 빛 속으로나보다 더 억울하게 당하고 살아온 큰집 길수오빠가 허적허적 걸어오고 있었다. 위암 말기인 오빠는 동식씨 말마따나 낼모레 아버지 뒤를 따른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병색이 완연했다. 지난해 말 위암 말기 판정을 받기직전 오빠는 부군수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내놓을 것 하나 없는 우리 집안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람이었다.
오빠는 빨갱이 작은아버지를 둔 덕분에 육사에 합격하고도 신원조회에 걸려 입학하지 못했다. 우리 아버지가오빠 앞길을 막은 게 큰어머니는 세상 떠날 때까지 천추의 한이었다. 오빠는 마음은 어땠을지 모르나 겉으로는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P77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함박눈 내리던 겨울날이떠올랐다. 오빠의 마음속에도 그날이 사무치게 남아 있을터였다. 그날을 마음에 품은 채로 오빠와 나는 멀어지면서 살아온 것이다. 빨갱이의 딸인 나는 오빠를 생각할 때마다 죄를 지은 느낌이었다. 빨갱이의 딸인 나보다 빨갱이의 조카인 오빠가 견뎌야 했을 인생이 더 억울할 것 같아서였다. 자기 인생을 막아선 게 아버지의 죄도 아니고작은아버지의 죄라니! - P81

곧 죽을 몸으로 죽은 자를 조문하는마음이 어떨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를 일으켜 상주 자리에 앉혔다. 나라면 이런 자리에서 누군가의 위로를 받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나보다 더 야무지고자존심 강한 오빠도 같은 심정일 터였다.
오빠는 무덤덤한 얼굴로 아버지 영정을 향해 두번 절을 올렸다. 그리고 나와 맞절을 했다. 어머니는 절조차 버거워 보이는 오빠를 보며 울기만 했다. - P83

마지막 가는 길,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음식을 맛있게먹는 아버지의 모습이 환영처럼 떠올랐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내가 아는 한 단 한순간도 유물론자가 아닌 적이 없었다. 먼지에서 시작된 생명은 땅을 살찌우는 한줌의 거름으로 돌아가는 법, 이것이 유물론자아버지의 올곧은 철학이었다. 쓸쓸한 철학이었다. 그 쓸쓸함을 견디기 어려워 사람들은 영혼의 존재를, 사후의세계를 창조했는지도 모른다.
조금 전 통곡하던 사촌들은 어느새 자기들끼리 시끌벅적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활기찬 담소와 통곡 사이 어디쯤에서 서성이며, 나는 깨죽이 담긴 쟁반을 든 채 우두커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꿈결처럼 모든 것이 낯설었다. - P98

여공으로 사는 일이, 아이 넷 낳고 사는 일이 적잖이 노곤했으리라. 어린 동생들쳐업고 똥기저귀 빨던 어린 시절처럼 동동거리며 살아왔을 영자의 지난 시간이 눈앞에서 본 듯 환하게 밝아왔다. 그 시간 속에는 우리 아버지손잡고 가슴 졸이며 수술을 기다리던 순간도 존재할 터였다. 그러니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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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엔 아주 뛰어난 감각기관이 존재한다. 바람에스민 아카시아 꽃 냄새를 귀신같이 눈치챌 만큼 예민한감각 말이다. 뜨거운 냄비를 만졌을 때 손이 바로 귀로가는 것처럼, 큰 목소리로 열렬히 호응하거나 느긋하고조용한 웃음을 짓는 저마다의 행복 루트 역시 뼈와 근육 사이사이에 자리할 것이다. 왜 좋냐고 따져 물을 수없다. 그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나이기 때문에 소유할수 있는 감각이니까. - P169

어쨌든 내가 몸을 떨었던 이유가 뭘지 궁금했다. 잠깐의 환기? 영혼의 스트레칭? 다시 현실로 복귀한 나는그대로인데? 달라진게 없는데? 깜빡 졸며 꿈을 꾼 사람처럼 다시 주어진 일에 골몰해야 한다. 저 새들과 함께인 줄 알았는데, 엉덩이가 묵직하게 의자와 달라붙어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렇다 할 설명을 하기에도애매한 찰나의 여행. 아주 먼 데를 다녀온 사람처럼 마음은 천천히 돌아온다.
‘찰나‘는 시간의 최소 단위를 일컫는 불교적 용어다. - P173

‘찰나‘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수천 수억 번의 찰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무상함이 피부를 스치지만, 나는 그 서늘한 손길을 거절하지 않는다. 찰나의 것이든 계속되는것이든 여행은 다 좋다.
아주 작은 일에 매혹당해 그쪽으로 온몸이 끌려가는경험은 흔하지 않다. 강렬하게 붙들리지 않으면 제대로느낄 새도 없이 감각이 무뎌지기 때문이다. 얼음물이든 유리잔 표면에 흐르는 물방울, 수명이 다 된 조명의깜박임, 흰나비의 등장과 퇴장, 가로수 아래 환한 빛이드는 곳에서만 보이는 날벌레 떼. 이것을 슬로모션처럼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마음의 악력이 꽤나 강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눈이 감기는 사이에 홀연히 사라지는 장면을 붙들 수 있다는 거니까. 그렇게 붙든 장면은아름다운 헬륨 풍선이 되어 우리의 손목에 묶인다. 그리고 오랫동안 머리 위에서 동동 머문다. - P174

‘하루 단 한 번이라도, 내가 사무실에서 경험한 일분의 기적 같은 강렬한 찰나를 세상 사람들이 경험하길바란다. 오늘따라 당신의 검지를 스치는 서류의 질감이놀라울 만큼 부드러울 수도 있다. 오늘따라 당신 그림자의 걸음걸이가 유독 씩씩해 보일 수도 있다. 오늘따라 지하철 좌석에 앉은 사람들의 신발 색깔이 재미있게느껴질 수도 있다. 오늘따라 아주머니들이 쓰고 다니는양산의 무늬가 다채롭게 보일 수도 있다.
몇몇 사람만 아는 작은 디저트 가게의 케이크를 한입 맛본 순간처럼, 그 일 분은 세상 무엇으로도 교환 불가한 풍요로운 찰나로 남을 것이다. 순식간에 케이크는사라지고 접시는 외로워지겠지만, 우리 입안에 남은 달달함은 신이 와도 빼앗아갈 수 없을 테니. - P175

그리고 이젠 알 것 같다. 어린 나는 착했다. 착한 아이처럼 보이려 행세한 게 아니라. 착한 것은 나약한 것이 아니다. 착한 것은 그저 착한 것이고, 착한 것을 이용하는 자가 비겁한 것이다. 요즘은 거울을 보며 이런생각을 한다. 어떻게 살면 착하면서도 강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착하고도 제멋대로일 수 있을까. 착하고도흔들림 없는 자의 얼굴을 그려본다. 선명하게 그려지지않지만 그 고민은 괴롭지 않다. - P187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다. 외모뿐만 아니라 스타일, 인성, 지성, 감성 모든 면에서 특출난 게 없다고 스스로 강하게 의식화한다. 오랜 습관이다. 그렇다고 나자신을 내치진 않는다. 굉장히 성가시지만 늘 지니고다녀야 하는 신분증 정도로 여긴다. 그래, 이게 나지. 이게 내 한계지. 본성이 나왔군. 얼마든지 실망해주겠다는 태도로 삐딱하게 짝다리를 짚고 관찰한다.
나는 내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도 모른 채 얼렁뚱땅 성인이 되었고, 이십대 초반 내내 혼란스러웠다. 홀로 선 내 모습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엄마를 닮지 않은 외모가 싫었고, 엄마보다 약한 몸뚱이가 싫었고, 엄 - P188

마만큼 감정 기복이 심할 때는 형편없게 느껴졌다. 이제는 타인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게 아니라 알아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면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도 너무나 가혹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스스로 만족할 줄을 모르니 늘 실패한 기분만들었다.
그러나 차차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나의방식대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아도 삶을 저버리는게 아니라는 믿음. 그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세상에서가장 어색한 사람과 동거하는 기분으로 살더라도, 방점은 ‘같이 산다‘에 있는 것이지 ‘어색한‘에 찍히는 게 아니라는 것. - P189

내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혼자 남겨진 시간 속에서모두가 무탈하게 걸어 나와 훨씬 덜 부서지며 살아갈수 있기를. 진짜 끝날 때까지 그렇게 살기를. 사람이 강해지려면 얼마나 장수해야 할까 하는 바보 같은 의문이뒤따르긴 하지만, 우리는 어쨌거나 미래로, 예정된 슬픔이 잉태된 미래로 간다. - P194

그러니 사람은 운명 앞에서 ‘나 자신‘을 최대한으로동원할 수밖에 없다. 그 ‘수‘는 믿음직스럽진 않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나일 수 있다는 희망만큼은 조금도 슬프지 않다.

혼자 남겨져도, 혼자는 혼자를 배신하지 않는다. - P195

나는 알고 있다. 우리가 훗날 그리워하게 될 장면들은 바로 그런 것이란 걸. 아침이 고요하고 온화하다는이유만으로 울음 짓는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란 걸.
나라는 사람은 그런 날을 위해 애인과 친구들 곁에 남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무언가를 상실하더라도 영영 사라지지 않는 것도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기꺼이 내 기억을 그들과 공유할 것이다. 슬픔 속에서 그저 슬픈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슬펐으면좋겠다. 꼿꼿하게 슬펐으면 좋겠다. 간혹, 슬며시 웃으며 슬퍼할 수도 있을 만큼. 그러기 위해선 지탱할 기억이 많아야 한다. - P205

핸드폰 사진첩 속 수천 개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생각한다. 시간은 저 멀리로 사라져버리는 듯하지만,
우리 안 어딘가에 퇴적된다. 그 퇴적지는 살아낸 만큼비옥해지는 땅이다. 어떤 사라짐은 너무 절대적이어서그것이 존재할 때보다 더 센 힘을 갖는다. 계속 있는 것 - P205

처럼. 나와 당신들 사이에 층층이 쌓인 이야기가 두터워질수록 삶이 튼튼히 다져지고 있다고, 믿게 된다. 마법 같은 기억력이 있는 한 나는 시간에 떠내려가지 않고, 시간을 잘 흘려보내는 사람이 될 것이다. 흘러가는풍경을 두고두고 기억하는 사람. 기억하는 만큼 삶은내 것이 된다는 말이, 정말일지도 모르겠다.
내 사랑들도 그러기를 바란다. 나보다 기억력이 좋은사람들이니 잘할 수 있을 것이다. - P206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권태와 삶에 대한 환멸감을지켜볼 때마다, 내가 너무 일찍 늙어버렸기 때문이라고믿는 수밖에 없었다. 철이 든다는 건 뭔지 모르겠지만,
분명 그때 늙어버렸다. 어느 날 뜬금없이 눈물이 터져도 놀라지 않는 이유다. 어떤 사람은 일찍 충분히 늙어버린 채 영원처럼 지속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도있다.
엄마와 나는 우리 사이에 놓인 상처를 적나라하게터놓고 나눠본 적 없다. 서로의 손등을 포크로 아프지않게 툭 찔러보는 단계는 거쳤지만, 그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친하니까 할 수 있는 장난이지만 진실의무게가 아프게 실린 몸짓. - P213

서로에게 불러주는 자장가를 생각하며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상상의 막을 내린다. 눈물을 견딜 수 없다. 광주의 한 낡은 아파트, 곤히 잠든 엄마를 떠올리며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우리는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란 걸. ‘사랑한다‘ 말하면 울어버리는 사람들이란 걸.
우린 이미 친구고, 우린 이미 연인이고, 우린 이미 자매고, 우린 이미 서로를 태어나게 한 사람들이다. 늘 그랬듯, 최선을 다해 각자의 하루를 버티고 그저 그런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그 순간을 애틋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나는 너무나도 안심이 됐다. 우리 사이에 놓인것들을 설명할 필요도, 이해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에엄마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고 내가 엄마를 위해무언가를 희생했던 그 시간들까지도. 마음 놓고 받아들이면 된다. 여기까지 왔으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바다로달려가는 소녀들처럼. - P215

망한 심정으로 비척비척 거리를 걸었지만, 따뜻한 활기를 띤 골목을 보고 나니 내 마음 어딘가에도 그 골목의 불빛이 스며드는 듯했다. 그래, 이 불빛을 등불 삼아또 잘 적으면 되는 거지. 아까처럼 똑같이 쓰지는 못하겠지만 새롭게 쓰면 되는 거지. 쓰는 마음은 어디 가지않으니까. 늘 같은 자리에 있는 저 조그마한 가게들처럼. 알아서 피고 지는 꽃처럼. - P219

당신이 없으면서도 있는 여름이에요. 남겨진 자들의풍경이 많이 바뀐 것 같으면서 그대로인 것도 같아요.
하루하루 헤어지고 있는데 삶도 죽음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네요. 그와중에 열심히 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열심히 사는 게 무엇일지 고민하는 건 포기하지 않으려 해요.
날 지켜봐도 되고 안 봐도 돼요. 그냥 내가 당신을 기억할게요. "할아버지!" 하고 불러보고픈 날이었어요. 내말, 무슨 뜻인지 알죠? - P224

창작하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즐겨야 한다는 것.
성장이 불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한계를 받아들이고 한계까지 표현해야 하는 것.
그림을 그리고 시나리오에 몰두하는 한 남자의 움직임, 그 떨림을 지켜본다. 나 역시 ‘나‘라는 유한함 안에서 손끝 발끝까지 다 써서 춤을 춰보고 싶어진다. 삶이라는 시공간 안에서도 내 하늘, 내 바닥, 내 계절을 구 - P229

석구석 만져보고 싶다. 관중이 사라진 경기장 안에서 자유롭게 뒹구는 토끼가 되어, 승패와 무관하게 이어지는 이 삶을 실컷 내달려보리.

우리, 이 이야기를 끝까지 써보자. 다 쓰고 서로에게들려주자.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가보는 거야. 밤이새도록. 새벽이 다 가도록. 우리가 사라지고 이야기만남더라도, 그 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마음껏 길을 열어보자. 안으로 밖으로 쭉 달리자,
끝까지. 끝의 끝까지. 닿을 수 있는 그 어느 곳까지! - P230

눈발 사이로 묵묵하게 따라가는 마음. 가마미라는 낯선 이름을 가진 바다의 짠 냄새. 마침내 환하게 일렁이며 몸을 펼치는 연인의 슬픔. 그 시절, 아빠는 신부(神父)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주저하지 않고 엄마와 결혼한다.
오랫동안 엄마의 슬픔이 외롭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수십 년이 흐르고 또 겨울이 와도 여전히 두 사람은 가마미의 해변에서 손을 잡고 느릿느릿 걸어간다.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저들의 슬픔과 믿음을 기록해야지. 저 붙잡은 손을 기억해야지.
손깍지를 타고 이어지는 곁에서 내가 울며 태어났으니나는 두 사람의 슬픔과 믿음이 건넌 바다인 것이다.
썰물이 되자 점토질의 벌이 축축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엄마 아빠가 딛는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물이 빠지며 단단해진 땅이다. 모래가 모래를 안는 시간, 바다가바다를 따라 떠난 시간. 그 시간, 모두가 연인들이다. - P244

엄마를 용서했다. 그녀를 더 사랑하기 위해 용서를 먼저 했다. 오십대 엄마는 딸내미의 용서 따위에 관심도없을 만큼 이미 자유롭고 노곤한 몸이 되었지만, 어쨌든 내 혼잣말 같은 용서가 이루어졌다는 건 중요하다.
"엄마는 뭐가 되고 싶었어?"라고 어린 내가 물었다.
늘 과거형으로만 물었다. 초등학생밖에 안 된 나이였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엄마라는 사람을 엄마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지 못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내가 그녀를 그저 엄마로만 생각했다는 것. 그녀에게진 내 첫 번째 빚이다. - P245

내가 불면을 앓듯 너는 우울을 앓는다는 걸 알아.
먹고사는 일이 안겨주는 공포와 열정에 짓눌려 슬픈 밤을 보낸다는 걸. 너는 너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지. 그러나 기억하렴. 깎이고 깎여 그저 너이기만한 너도 나는 사랑한단다. 너의 무상함도 사랑해. 깔깔거리는 웃음, 씰룩이는 엉덩이춤, 고양이 앞에서 해제되는 무장, 사방으로 뻗는 호감과 눈물. 아무것도 아닌모든 너를.
불면의 밤, 어두운 토양 위에 널 위한 나무 한 그루를 심을게. 너를 잊지 않을 나무를. 네가 좋아하는 능소화나 향기 좋은 라일락이어도 좋겠다. 우울에 잠식되는밤일지라도, 그 깊은 어둠 속에 널 위한 꽃그림자가 섞여 있다고 생각해주렴.
봄은 도처에 있어. 없으면서도, 언제나 있어. - P254

우리의 느린 말소리는 두런두런 사라질 듯 사라지지않고 녹음(綠陰)처럼 이어진다. 먼 우주에 우리의 말소리가 닿는다면 잠꼬대 같을까.
지구가 태양의 곁을 묵묵히 회전하는 것만이 중요한일 같은 계절. 폭염은 괴롭다. 내 몸보다 더 뜨거운 것을 견딘다는 건 원래 괴로운 법이다. 가슴속에 조금이라도 더운 감정이 있다면 한 번쯤은 툭 쏟아낼 수도 있는 거다. 이게 다 너무 더워서 그래, 하며.
여름의 열기와 함께 훨훨 증발해버릴말. 그래도 사실 너와 내 삶을 사랑한다고, 여름의 잔인함에 혀를 차며 재잘재잘 수다를 시작하는 것이다.
- P258

좋은 것을 다 갖고 있는 듯 보이는 언어에 현혹되지말자. 좋은 것을 다 이해하고 있다는 듯 으쓱하는 사진에도 휘둘리지 말자. 그것들이 독점한 가치는 사실 우리 안에도 있다. 고유한 빛을 머금은 채.

자기 삶의 서사를 단단하게 쌓아가기 위해 자신을둘러싼 사랑의 고유함을 공부하는 사람. 그리하여 그사랑 한가운데 기어코 들어가 젖어보는 사람. 그런 사 - P269

람만이 타자를 ‘이해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 작가, 그런 에디터로 성장할 수 있을까.
혼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결국 내가 의지해야 하는존재도 우리다. 서로 다른, 긁힌 자국투성이의, 미우면서도 사랑스러운 우리.
우리가 지킬 삶은 우리를 외롭게 하지 않을 것이다. - P270

도시를 끼고 흐르면서도 인간사와 무관하게 제 갈길을 가는 거대한 강을 본다. 내가 눈치채기 힘든 우주적인 흐름 안에 들어온 것만 같다. 다 흘러가는 중이다.
우리는 멈춘 적 없고, 언제나 어딘가로 가고 있다. 더멀리 흘러가기 위해. 도달하기 전까진 우리 사랑의 결과를 결코 알 수 없다. 어둠이 깊게 내려앉아도 길을 잃지 않는 물. 이 흐름에 의지해 기뻐지거나 깊어지거나.
왜가리가 난다. 날벌레가 우글거린다. 청초한 들꽃행렬이 강가를 따라 서 있고, 이따금 물고기가 튀어오른다. 강변에 설치된 벤치형 나무 그네에 나란히 앉아우리는 발을 구른다. 삐걱삐걱 우리의 무게만큼 묵직하게 흔들리는 그네. - P274

사람을 두려워하며 네가 울고 웃으며 해준 이야기들. 지금에 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거기에 허풍과 엄살이 다소 깊게 있었을진 몰라도 진실했다고 봐. 그러니용감하게 걸어 나와도 돼. 너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도 빛이 난단다. 두렵다는 이유로 네가 믿는 진실을 마주할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바라. 내 시를 걸고 너의 신,
하나님에게 말해둘게. 넌겁쟁이지만, 용감한 겁쟁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고 말이야.
무모하게 사랑만 많아서, 질투도 많고 좌절도 많고순수함을 꿈꾸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아름답고 이상적인 세계를 이야기로 만들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겁쟁이인 주제에, 괘씸하게도 마음이 뜨겁지. - P304

유월, 시 쓰기 참 좋은 계절이야. 쓰고 있어도 시가그리워져. 때론 밉기도 해. 벽을 미워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그래. 네가 날 자주 미워했던 것과비슷한 마음이겠지. 나도 네가 날 미워해서 네가 미웠어. 이젠 그저 모두가 건강했으면 좋겠구나. 장마가 오기 전까지, 장마가 끝나기 전까지, 겨울이 되기 전까지,
다음 해로 넘어가기 전까지. 그다음 해, 다다음 해, 언제까지든.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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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것.

비키지 않는 것.

나는 내 자리를 알아요.






손이 자주 주춤거린다고 해서 글을 못 쓰지 않는다.
일하는 도중에 ‘ㄴ‘이 빠지기라도 하면 다시 임시로 끼워 넣느라고 진땀을 빼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제때 못한 적도 없다. 나는 언제나 내가 감내할 수 있을만큼 불편해보려는 사람이다. 끼어드는 사고에 기꺼이들이 받는다.
아끼던 부츠 밑창이 반으로 갈라졌는데도 접착제로이어 붙여 꿋꿋하게 신고 다니고, 신을 믿지 않으면서동생을 위해 매일 기도한다. 식물 키우는 일에 흥미가없지만 선물로 받은 아이들을 여태 살리고 있고, 극도의 내향인이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는 일로 돈을 번다.
줄을 서다 누군가 내 순서를 가로채 새치기해도 잠자코차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게 내 손해일까? 그날들을 후회한 적 없는데? - P7

쓰는 동안, 과거의 나에게 편지를 띄우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글의 마침표를 찍을 땐, 답장을 기다리기만하면 되는 어느 평온한 저녁을 맞이한 것 같았다. 내 숨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더 빨리 더 많이 행동하라고 독촉하는 듯한 세상 때문에 왕성하게 슬펐으나, 이제 고요 속에서 서서히 기쁘다. 머지않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 페이지 역시 내가기대하지 않은 모습일 수도 있고, 고작 키패드를 수리하는 정도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바라온 모습일 수도있겠지만, 지금을 서둘러 떠나지 않을 것이다.  - P8

우리 인생에는 약간의 좋은 일과 많은 나쁜 일이 생긴다. 좋은 일은 그냥 그 자체로 놔둬라. 그리고 나쁜 일은바꿔라. 더 나은 것으로, 이를테면 시 같은 것으로.

보르헤스의 말이라고 한다. 이 문장을 맞닥뜨리는 순간, 나는 순식간에 열 살로 돌아간다. 가슴에 맺힌 이슬이 손끝으로 흘러 떨어지는 감각에 들뜨던 어느 날, 시를 몰라도 시처럼 살 수 있던 유년으로 - P17

아빠가 타지로 직장을 옮겨 우리 가족이 잠시 떨어지게 된 어느 날, 아빠를 보내고 울면서 바닥을 걸레질하던 엄마의 모습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코딱지만한 바닥이라 금방 끝낼 일을 엄마는 한참을 멈추지 않았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계속해서 닦고 닦았다. 나는 그런 엄마와 함께 울어버리는 대신 방문 밖에 가만히 서서 생각했다. 엄마가 아름다운 성을 닦고있는 모습으로 쉽게 무너질 것 같지만, 닦으면 닦을수록 투명해지고 얼음보다 선명해지는 유리성, 유리 바닥에 고인 눈물을 나는 가장 아래층에서 올려다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그림으로 그날을 종이 위에 모셔올수 있다. 내가 시 쓰는 사람으로 자라게 된 건 당연한수순이었을지 모른다.
보르헤스의 말대로, 어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더 나은 것이란, 시 같은 사람들과 시 같은 풍경들을 사랑하는 것밖에 없었으므로, - P22

이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자꾸 새롭게 태어나는 시간. 그 생경한 감각을 말로 빚어 꺼내보는 시간.
내 안의 어딘가가 회복되고 새롭게 자라날 때마다 좋은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는 시간. 합평이 끝나고 모든달고 쓴 소리를 들은 이후에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지모른다. 더 열심히 쓰고 싶고, 다른 사람들의 다음 글도어서 읽어보고 싶어서 침이 고일 지경이다.
이 모든 게 시의 힘이라는 것도 기쁘다. 다른 무엇 때문도 아닌 뭔가를 쓰고 싶어서 침이 고이고 열심히 살고 싶고 자신에게 정직해지려는 게. 그리고 이 기쁨의중량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아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사실이 소중하다. 모두 특별한 여자들이다.  - P27

그랬는지도 모르죠. 마음 전체를 불살랐는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품은 모든 사랑. 사랑해서밉고 사랑해서 저주스럽고 사랑해서 비참하고 사랑해서 외롭고 사랑해서 무섭고 사랑해서 궁핍한, 그 원흉을 모조리 태워버리기 위해 썼을지도 모릅니다. 그때쓴 시는 ‘말하기 위한 시‘가 아니라 ‘지우기 위한 시‘였을까요. 리셋을 위한 시. 영영 돌아오지 않을.
화마가 지나간 땅이 복구되려면 백 년의 시간도 부족하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내가 다시 온전해질 일이 없다는 뜻이죠. 참 위로가 됩니다. 마음 쏟을 건, 검은 흙을 비집고 돋아난 지독한 싹들이 무엇으로 자랄 수 있는지 상상하는 것뿐입니다.
이제 나는 완벽한 사랑을 위해 아프지 않아도 됩니다.
완벽한 시도 내가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갈 수 있는데까지만 갈래요. - P33

나는 여태 시인이 되지 못했고 목화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지만, 우리는 살아간다. 변변찮은 벌이로변변찮은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리는 일은 변변찮은 게아니니까, 잘 살고 있다고 봐야겠지.
이 무료한 대화도 사실 애써 가꾼 일상 위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무료하다 하여 일상이 무력하진 않다. 불안이 우릴 잠식할 힘은 사실상 없다. 불안은 뿌리가 없으므로, 내 단단한 토양에 박힌 풀과 꽃 사이를 흘러 다닐 뿐이다. 이따금 부는 바람처럼. - P38

나는 독백처럼 말했다. 전화 너머로 목화는 내게 다행이라고 말해주었다. 그에게도 그런 바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바닥이 정말 단단하기를 바란다. 언제든 드러누울 수 있는,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든 활짝 열려 있는 따뜻한 밑.
자기만의 바닥이. - P39

냉동실에서 버섯을 꺼낸다. 버섯을 넣은 된장국에 한창빠져 지내는 중이다. 된장은 광주에서 넘어온 것. 텁텁하면서도 맛깔난 전라도식 된장이라, 한 숟가락 두 숟가락사라지는 게 아깝다. 국을 끓이는 시간은 그리움의 시간이다. 그리고 자식이 되는 시간이다. 고춧가루와 청양고추를 아낌없이 뿌려 칼칼한 뒷맛을 내는 엄마의 스타일을 따라 해본다. 버섯이나 방앗잎 같은 채소를 듬뿍 넣는 아빠의 노하우도 흉내 낸다. 고슬밥과 함께 식탁 위에 차려진 버섯 된장국. 그 앞에서 나는 생각이 많아진다. 마음도 많아진다. 밥을 먹다 말고 핸드폰을 집어 든다. 표고버섯 일 킬로그램을 주문해 광주로 보내기 위해.
식사를 마치고 엄마 아빠에게 박스 잘 받으라고 전화해야지. 얼굴 근육이 벙글거린다. 다시 이어지는 달그락거리는 수저, 소리가 씩씩하다. - P44

그냥 줄을 길게 늘여보는 거다. 마음 어딘가에 꼬여있는 실타래의 끝을 잡아 당기다 보면 훌훌 풀어진다.
시든 산문이든, 난데없이 첫 문장 띄워 올리는 걸 잘하는사람. ‘쓰는 감각‘에 충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매일 그 시작을 응원한다는 명목으로 나에게 말을 건다. 훌훌 문장안에서 내려앉고 날기를 반복하는 나비가 된다.
목소리로 술렁대는 펜촉. 이제 쓰자. - P45

시는 어느 날 왔다. 일기에 떨어진 눈물자국보다 오래 피부에 눌러앉기로 작정한 병처럼. 내가 반할 만한옷을 걸치고 왔다. 거부하기 힘들게.
너덜거리는 마음이 적힌 일기장은 내게도 있었다. 그일기장이 내가 가진 가장 그럴싸한 것이었던 시절, 시가 잘 차려입은 내 모습을 하고 나타난 거다. 대접해주고 싶지 않겠는가? 나지만 ‘내가 아닌 나. 아는 귀신을만나면 이런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홀연한 만남 이후로마주치기만을 기다리게 되는. - P51

시는 그 슬픔을 파고드는 구원의 빛이었다. 부모님은책상에 앉아 얌전히 공부하는 줄로만 알았겠지. 한밤중 스탠드 불빛이 나를 이끈 곳은 문제집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못하는 일기장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매일의 기록이 아니라 시를 의식하며 쓰고 있었다. 어떤 말투로 쓸까, 어떻게 끝맺음을 할까, 어떻게 말문을 틀까.
아무도 보지 않기 때문에, 어른들과 친구들의 눈빛과말소리가 전혀 끼어들 수 없기 때문에, 한 줄 한 줄은반드시 독보적인 것이 되어야 했다. 훼손되지 않고 오롯하게 아름다운 것! - P53

당시에 쓴 것들을 읽는 시간은 정말 곤혹스럽다. 얄팍한 수를 쓴 흔적들이 보이면 내 머리통을 한 대(아니,
할 수 있는 한 여러 대 쥐어박고 싶다. 그러나 다 패고나서는, 그 매력 없는 것을 꼭 한번 안아주고 싶다. 그때의 시는 그때의 나와 닮았다. 타인에게 속마음을 말하려면 한평생 써야 할 것 같아 매일 밤 끊어 울던 나랑.
양심 없는 시라는 뜻이겠지. 자기 자신을 가눌 힘이 없어 그럴듯해 보이는 것에 의지해놓고선 자신의 고통이돋보이는 줄 아는 시. - P55

벗어나고 싶은 것도 손에 쥐고 싶은 것도 없이, 아무것도 원하지 않은 채 인생을 가벼이 여겼다. 모든 것을잃고도 깨달은 게 없으므로 삶은 가벼운 것이어야 했다. 밥벌이를 위해 궁색한 빈말을 아끼지 않았고, ‘척‘하는 말들을 육성으로 문자로 뱉으면서도 내 꼴이 그다지우습지 않았다. 상황을 나쁘게 만들지 않기 위한 것이라면 거짓말도 꽤 할 만한 짓이었다. 나는 드디어 내가어른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 P57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면서도 세상에 지지 않을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시를 흠모하여 시로다져진 내 감각이 무엇으로든 세상에 쓰일 수 있음을,
그것으로도 이 한 몸을 지탱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들어가는 녀석에게.
에세이, 인터뷰를 비롯한 잡지 기사, 주얼리나 향기제품 설명글, 책 큐레이션 등. 시로 터득한 나만의 화법과 관점으로 일을 해나갔고, 차츰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렇게 살고도 여태 굶어 죽지 않은이유다. 사부작사부작 다양한 작업을 했고, 대단히 벌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게는 버티는 힘이 존재한다. 그사실만으로 자긍심을 되찾고 감사한 마음으로 일할 수있다. 일은 일이고 시는 시니까. 시인은 어떤 상태일 뿐직업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 나는 내시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하는 몸으로 전환되었다. - P65

상상하는 것. 어쩌면 상상력이 밥 먹여준다는 말은틀렸을지도 모른다. 상상력은 밥 대신 미래를 짓는다.
오늘이라는 토양 위에 내일의 태양빛을 불러오도록 한다. 그 빛의 아름다움을 보도록 한다. 그리하여 살게끔한다.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 자기자신에게 연루된 다음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것들이 예상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이어지는 삶은 우리가 이어갈삶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야기는 그렇게 쓰여진다는 것을 망각할 리 없다. - P66

언젠가 애인에게 이런 말을 하고 스스로 놀랐다. "게으른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이야. 그때도 열심히 글을 쓰고 싶진 않아. 그땐 안 써도 흡족한 날이 많았으면 좋겠어, 아주 사소한 걸로도 하루를 충만하게 보내서 글 따위에 시간을 쓰는 게 아깝게 느껴질 만큼. 다른 흥미로운 일 하느라 마감일 같은 건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아이고, 고양이랑 나란히 앉아어항을 바라보는 게 너무 즐거워서 그만 저녁을 다 보내버렸지 뭐예요?‘ 그런 말을 뱉고 입술을 오므리며 비밀스럽게 웃는 할머니."
소망을 뱉고 후련했다. 그런 사람이 되어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장난스러운 쪽지를 남기고, 짧은 일기에 만족하고, 어쩌다 쓴 시가 끝장나게 좋고, 장 볼 때 구매리스트를 잘 쓰는 할머니. 그런 것 말고는 사리에 어두워질문이 많은 할머니. - P71

‘겨울‘은 실제 겨울조차 낯선 풍경으로 보여준다. 딴소리, 헛소리, 덧없는 소리, 알다가도 모를 소리의 리스트는 끝없이 길어질 수 있다. 이런 단어들이 모인 내 메모장, 은유 사전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얼마간은 저낯선 소리들을 진실로 믿는다. 사전이 두꺼워질수록,
내가 가늠할 수 없었던 세상의 거대한 슬픔이나 행운을가늠해보는 용기도 얻을 것이다. - P75

아직은 자그마한 기척, 착각일지도 모르는 미동에 얼어붙을 만큼 나는 작다. 좁은 겨울 속에 머문다. 그러나겨울은 불어나고 사그라들기를 반복하며 거미줄처럼확장되고 있다.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겨울을 다 겪고 싶다. 후우. 종이 위에 깊은 숨을 불어보고 싶어진다. 곱씹고 곱씹은말을 가장 뜨거운 숨 위에, 쓰고 또 쓰고 싶다. - P76

새로운 몸은 과거를 통과해갈 것이다. 오랜 시간 방치된 시들을 최선을 다해 살릴 거다. 복원사의 자세로과거를 존중하리. 실패한 춤을 매듭짓고 그다음 춤을추러 떠나기 위해.
과거에 고여 있는 시에게 새롭게 다가간다. 함께 잠드는 보호자, 되돌아오는 애인, 입안에 들어간 머리카락을 빼주는 자식의 얼굴을 하고서. 은밀한 그 폴더는내가 자주 찾는 환한 샛길이 될 것이다. 그 길을 잊는일은 이제 없다. - P85

다정함과 섬세함에 대한 나름의 고찰은 다음과 같다.
다정한 사람들은 리액션이 좋다. 경험상 이들은 무드나환경에 약하고 상대방의 감정과 표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따뜻한 사람이다. 그만큼 감정 기복도 심하고표정 변화도 크게 드러난다. 누군가 울 때 같이 우는 사람이 딱 ‘다정‘ 유형.
반면, 섬세한 사람은 순간순간의 리액션이 크지 않더라도 기억력이 좋은 경우가 많다. 그 사람과 어떤 식당에서 어떤 농담을 나눴는지, 그 사람은 머리가 아플 때어떤 약을 먹고 어떻게 쉬는지, 그 사람은 평소에 귀걸이를 빼서 어디에 두는지 등등, 대상에 대한 정보를 입 - P106

력하고 잊지 않는 것이다. 잊지 않았다는 것이 어떻게든 행동에서 티가 난다. - P107

주변에 다정하고 섬세한 사람들이 많다. 허술하긴 해도 내가 분류한 이 유형을 참고해 그들을 관찰하는 것은 오랫동안 흥미로울 것 같다. 다정한 사람들의 입매와 눈빛, 눈썹과 고개의 방향, 허리를 숙이는 방식. 그리고 섬세한 사람들의 행동과 그 곁의장면들.나비같고나무 같은 사람들이다. 사랑스럽고 성실한 내 사람들. - P110

섬세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풍경 위에서 다정한 사람들이여, 내내 행복하기를! - P111

엄마가 어린 남매의 손을 잡고 놀이터로 이끌지 않았더라면, 아빠가 밀어주는 그네의 기억이 없었더라면,
아마 나는 즐거움의 필요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으로 자랐을 것이다. 분수나 주제 너머의 희망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는 무언가를 소원하는 마음 자체가 한 시절을 통과하도록 한다는것을 믿지 못했을 거다.
엄마가 이제 지금의 나를 보기를 바란다. 밝은 놀이터 풍경을 좋아하는 나를 아이들과 젊은 부모, 인근에사는 노인들 사이 벤치를 차지하고 앉아 여유롭게 그들을 지켜보는 나를 보기를 그리고 내곁에 앉기를 바란다. - P120

이토록 고양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과시하는 아빠지만 녀석들과 지나친 접촉은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유는, 사랑하게 될까 봐.
아빠에게 ‘사랑‘은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다. 끝까지가보는 것, 이해를 위해 계속 나아가는 것. 사랑이 끝날때까지 혹은 끝내야 할 때까지 가능한 오래 마음에 품는 것이 아빠에게는 최상의 사랑인 것처럼 보였고, 사랑한 이상 도통 끝을 내지 않았다. 그게 함부로 사랑을결심하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나는 당신 스스로 부정하고 있을 뿐, 이미 고양이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단정 짓고 있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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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슬픔이라는 개념으로 세월호 사건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세월호와 함께 사라져갔던 단원고의 어린 학생들이우리에게 전한 이 슬픔은 우리를 스펙터클의 관객석에 ‘가만히 앉
‘아 있을 수 없게 하는 특별한 슬픔의 형식이었다. 존재를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그리하여 광장으로 나서게 만드는 슬픔이었다."(61쪽)슬픔은 이렇게 혁명이 된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내가 1980년대 ‘광주‘를 통해 그랬듯이 ‘세월호‘로 존재의 지진과 정치적 각성을경험했다. 슬픔의 주체로서 광장을 메웠다. 저자가 라캉의 말을 빌려 강조하는 것은 슬픔 자체보다 슬픔을 끌고 가는 힘이다. 권력의부패와 무능이 야기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을 끝까지 이해하지 않기. 죽음과 상처를 쉽게 봉합하지 말기. - P205

못했다. 마음의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에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사무치는 나날이다. 일터 괴롭힘이든 아동학대든 학교 왕따든 성폭력이든 다수의침묵과 방조 없인 불가능하단 얘기다. 살면서 가해자가 되지 않기위해 정신 차리고 피해자가 됐을 때 대응하자며 공부하지만 시급한건 목격자로서 행동 매뉴얼, 남의 일에 간섭하고 목소리를 내는 훈련 같다.
영화 <패터슨>의 남자 주인공 직업은 버스 운전기사다. 그는 운전석이라는 공적 공간에 비눗방울 같은 막을 만들어 고요를 누린다.
사람과 주변을 관찰하고 시상을 떠올리며 짬짬이 시를 쓴다. 그의내적 세계를 함부로 터뜨리거나 침해하는 사람은 없다. 자기 생각과감정을 가진 노동하는 존재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장면은 천국 같았다. 우리 일상이 시를 낳는 공간이 되려면 똥물 같은 언사를 휘두르는 현실로부터 눈 돌리지 않고 같이 뒹굴고 치워야 할 것이다. 이제는 나도 ‘반격하는 몸‘이 되고 싶다. 시 쓰는 운전기사를 위해. - P209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강력한 첫인상은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에서 나는 무시무시한 소음에서 비롯된다. 갱도 안에서는 멀리까지 볼 수가 없다. 램프 불빛은 뿌연 탄진에 막혀 얼마 뻗지 못한다."(53) 조지 오웰이 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한 장면이다. 1936년 영국 북부지역 탄광노동자의 실상을 기록한 오웰은 그곳은 "내가 마음속으로 그려보던 지옥 같았다" (32쪽)고 말한다.
오웰이 묘사한 지옥을 나도 보았다. 석탄 먼지 어둑한 공간을밝히는 희미한 손전등, 굉음을 내며 굴러가는 컨베이어벨트, 그 아래 수십 개 구멍에 몸을 반으로 접어 머리를 넣어 살피고 바닥에 떨어진 석탄을 삽으로 치우는 사람, 2킬로미터 넘는 동선을 오가며 일 - P210

명 ‘낙탄 작업‘을 나 홀로 처리하던 스물넷 청년은 기계에 빨려들어가 몸이 분리된 채 숨을 거둔다. 태안화력 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사고 당일 CCTV 장면이다.

오웰은 같은 책에서, 해마다 광부 900명당 하나꼴로 사람이 죽어갔다며 오랫동안 광부생활을 한 이라면 누구나 자기 동료가 목숨을 잃는 광경을 보게 된다고 보고한다. 김용균 씨가 일하던 작업장도 다르지 않다. 태안화력이 속한 한국서부발전에서 지난 7년간 산
‘업재해로 아홉 명이 목숨을 잃었다. 모두 하청업체 노동자다.
이 통계가 섬뜩한 것은 죽음의 누적이 아닌 죽음의 허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평소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떨어진 석탄을손으로 줍지 않도록 개선해달라, 어두워서 위험하니 조명을 밝게해달라 요구했으나 번번이 묵살됐다고 한다. 이 의도적 외면은 죽어도 되는 사람과 죽지 않는 사람이 갈리는 원인이자 결과가 됐다. - P211

어머니 김미숙 씨를 보면서 오웰이 말한 ‘눈뜬 자‘의 힘을 느낀다. ‘김용균법‘으로 일컫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어머니는 누워 있지 않고 광장이나 현장에 있다. 지난 주말
‘고 김용균 3차 범국민 추모제‘에서도 다른 죽음을 막아내자고 목소리를 냈다. 안타깝게도 이 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최다 추천을 받았다. "나라 구하다 죽은 위인도 이렇게 길게 추모하지 않는다. 이제그만하라."
이제 그만하라고 해야 할 것은 무고한 죽음을 양산하는 이 잔인한 체제다. 성실하게 일하다가 죽는 청년이 더는 없도록 하는게 나라 구하는 일이다. 하나뿐인 자식을 잃은 어머니 김미숙 씨는 한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모에게 자식은 햇빛이다. 그 빛을 이렇게 허무하게 잃고 나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다. 단지 이 느낌을다른 부모가 겪지 않게 해주고 싶은 게 지금의 바람이다." - P212

저자는 십수 년간 책을 만든 편집자 출신으로 시골로 거처를 옮겨 안빈낙도의 삶을 산다. 풀·새·나무 • 자연밥상 이야기가 멋들어지게 펼쳐지는데, 독서 내공이 빚은 수려한 문장력과 영혼을 정화하는 고고한 인용문에 매혹되어 책장이 막 넘어간다. 어쩔 수 없이알아버린, 살충제 달걀의 예고편이 되어버린 산란계 이야기는 "닭뿐 아니라 소와 돼지, 젖소 등의 동물에게서 사람들이 어떻게 달걀과고기와 젖을 뽑아내는지 그 실상 (13)을 차분히 들려준다.
그리고 무능한 도시주의자이자 애매한 육식주의자이며 마음만생태주의자인 내 마음을 아는 듯 실행 매뉴얼을 내놓는다. "고통의고기‘를 대량 소비하는 육식의 습관을 조금씩이라도 바꿔나가는 일,
동물에게 극심한 고통을 가하는 공장식 사육 방식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 일, 달걀 하나를 사더라도 좀 더 건강한 환경에서 생산된 달걀을 선택함으로써 닭들의 사육 환경을 개선시키는 일" (133쪽)이 사소해 보이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이고 ‘꼭 필요한 연민‘이라는것이다. - P219

3년 전 친족 성폭력 피해 경험을 담은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의 저자 은수연 씨를 인터뷰했을 때다. 그는 가해자로부터단절된 이후 일상의 변화를 말했다. 요즘 눈에 독기가 빠졌다는 얘기를 듣고, 시끄러운 카페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세월호 사건에 남들처럼 눈물을 흘리는 자신을 보면서 ‘나는 평범해지고 있다‘고 느낀다고. 힘든 과거가 불쑥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더 이상 일상이 엉망이 되지는 않는 상태를 그는 ‘평범함‘으로 규정했다.
평범한 삶을 누구는 집 안에서 찾고 누구는 집 밖에서 찾는다.
무엇이 평범함이냐, 그 뜻과 의미와 기준은 각자 다르다. 평범함이행복이고 평범하지 않음이 불행이 아니라, 평범의 기준이 나에게있으면 행복하고 남에게 있으면 불행한 거 같다. 평범함의 의미를자기 삶의 맥락에서 똑부러지게 규정하는 은수연 씨에게서 불행의그림자를 찾아보긴 어려웠다. - P254

남성, 이성애자, 대졸자, 비장애인, 기혼 출산자 등 ‘디폴트맨‘에게 세상은 수월하다. 여성보다 남성에게, 장애인보다 비장애인에제 화장실도 충분하다. "남성의 권력이 언어 자체에 깃들어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므로 ‘말의 민감성‘을 기르지않아도 되는 권리가 주어진다. 그래서 남자에게 남성성을 설명하려면, 비남성이 겪는 존재의 제약을 설명하려면, "물고기들을 상대로물에 관해 이야기 (63) 하는 것처럼 애를 먹게 된다.
생존의 문제다. 글쓰기부터 타로점까지 배움의 자리에 여자가몰린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언어가 절실하다는 증거다. 그 배움의종착역은 ‘디폴트맨 자리‘의 탈환보다는 제거가 됐으면 좋겠다. 남자들도 "언제나 옳아야 하고 책임지는 일을 해야 하는 데서 오는 심장병을 유발하는 스트레스를 떨쳐내고 "자기를 잘 드러내고 감정을 잘 인식하여 좋은 인간관계를 누리"는 복락을 누려야 하니까. 동시에 "여성과 소수 집단들이 자신들의 다양한 인생 경험을 정책 결정에 반영" (5) 하려면 우선 ‘여탕의 언어‘가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와야 할 것이다. - P263

"게으름뱅이로서 나는 맹세한다. 터무니없이 오랜 시간을, 특히 몇몇 기업 양아치들을 위해서 일하지 않으려 투쟁하기로 가능한 한 스트레스가 나를 침범하지 못하게 막아내기로 천천히 먹기로 리얼 에일을자주 마시기로 더 많이 노래하기로. 더 많이 웃기로, 토하기 전에 정시근무라는 회전목마에서 내려오기로 혼자 있을 때나 남들 앞에서나 스스로 즐기기로 일이란 단지 고지서에 찍힌 비용을 지불하기 위한 것임을 인식하기로 친구들이 힘의 원천임을 항상 기억하기로 단순한 것을즐기기로, 자연 속에서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로 대기업과 회사에 소모하는 시간을 줄이기로. 그 대신 좋은 것을 많이 만들기로, 순리를 벗어나기로. 아무리 사소한 수준이라도, 세계와 주위 사람을 변화시키기로" (영국 게으름뱅이 연합 맹세‘ 목록 중에서) - P271

《잘 표현된 불행》은 그즈음 눈에 들어왔다. "시는 행복 없이 사는 훈련"이라는 명제를 발견하곤 행복 없이 사는 훈련에 임하면서조석으로 시를 읽던 중 만난 823쪽짜리 황현산의 시 평론집이다.
"아름다운 말로 노래하지 못할 나무나 집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 못할 불행도 없다. 불행도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선율 높은 박자와 민첩하고 명민한 문장의 시를 얻을 권리가 있다."(605쪽)이 책을 인식의 베개 삼아, 나는 깊이 있는 독해의 향연을 누리고 덤으로 글쓰기의 목적과 방향도 잡았다. 왜 행복하지 못할까 비탄하는 반성문이나 이런저런 조건이 충족되면 언젠가 행복해지리라는 판타지 장르가 아니라 불행의 편에 서서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하는 기록물을 썼다. 그런다고 불행의 내용이 바뀌진 않지만 ‘잘표현된 불행‘은 묘한 쾌감을 주었다. 불행에서 오는 인식과 감정의진수성찬을 발견하자 조금 행복해지는 것도 같았다. 내가 해보니좋아서,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불행 전도사가 되었다. - P273

이것은 잘 표현된 불행! ‘개인의 증언이 어떻게 사회의 변화에기여할 수 있나‘라는 문제의식을 담아낸 결과물에 감격하는 내게그가 말했다. "불행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불행하다 여겼거든요. 불행하다고 인정하는 순간 무너질 것 같아서 자꾸 행복한 이유를 찾는 강박이 있었고 행복을 전시하곤 했어요. 그게 꿋꿋함, 씩씩함, 밝음으로 포장되어 사람들에게 좋은 피드백을 받으니까 문제의식을 스스로 잘 의식하지 못했지만 마음 한 켠은 불편하고 헛헛했어요. 그런데 불행해도 되는 거구나 생각하니 자유로움을느꼈고, 그래도 되는구나 싶으니 운신의 폭도 넓어지고요. 그러니까불행을 이야기할 용기가 생겼어요." - P274

주부는 집 안에 머무는 일면적이고 기능적인다. 그러니 실제 삶에서 ‘락페에 온 아줌마‘처럼 지정 구역을 벗어난사람을 ‘처음 보면‘ 혼란을 느낀다. 그게 심하면 혐오가 될 테고.
나 역시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는 삶의 기술을 배우지 못했다.
인터뷰와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매번 낯선 존재와 마주하는데, 무지로 인한 긴장과 혼돈의 시간을 치르며 공부하는 중이다. 얼마 전엔 비혼모를 처음 봤다. 만남이 거듭되자 그는 "책 낸 사람 처음 봐요" 내게 말했고 "이렇게 글 잘 쓰는 비혼모 처음 봐요" 나도 고백하고 같이 깔깔댔다. 처음 보면 한 사람이 비혼모로 보이지만 자꾸 보면 비혼모는 결혼제도 외부에 위치한 상태의 설명일 뿐임이 드러나고 자기 한계와 고민을 안고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입체적인존재로 다가온다. 처음 보고 계속 보는 게 관건이다. 영화처럼 서로삶이 스밀 때까지. - P278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어르신도 청년 시절엔 섬이 갑갑했다.
제주의 명문 고등학교를 나왔고 ‘서울 유학‘을 몹시도 꿈꾸었지만가난 때문에 포기했고 돈 벌러 일본을 드나들다가 결국 간첩 누명까지 썼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그의 무죄를 증명한 건 어린시절부터 그를 보아온 동창과 이웃인 제주 사람들이었다. 팔순의 길목에서 생의 한 주기를 돌아보는 그는 서울 간 친구들이 부럽지 않다며 벗이 있는 고향에서 죽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고 했다. 그 말씀에서 배웠다. 잘산다는 건 내 일상을 오래 묵묵히 지켜본 사람을 갖는거구나.
청춘의 몸은 질문을 낳는다. 1960년에 제주 청년이 그랬듯이2017년에 부여 청년이 뒤척인다. 삶이 던지는 질문에 답이 있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나마 막막한 질문만이 숨길을 열어주고 살길로 인도한다. 근래 육지 것이자 서울 것이라는 정체성을 받아 안은 나 역시 질문의 말풍선 하나 띄운다. 육지-서울이라는 다수, 주류, 중심을 벗어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 P281

"고립은 피해자에 대한 통제와 지배를 확보하는 과정으로서 가정(31쪽)폭력의 주요한 형태의 하나" (31) 라고 한다. 어디 가정폭력뿐일까. 성폭력이나 학교폭력의 경우도 ‘말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식으로 피해자를 고립시킨다. 그래서 ‘세상과의 연결‘, 즉 내 존재를 남이 알게하는 것이 피해자에게는 상황을 돌파하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
아울러 ‘피해자‘란 어떤 일시적 상태의 명명이지 한 사람의 정체성이 아니다. 폭력과 존엄 사이가 그들이 무자비한 국가폭력에맞서 어떻게 존엄을 지키고 살아갔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이주여성들의 생존담도 꼭 그러하다. "피해자의 취약성보다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는데도 문제 해결을 위해 참여하는 이들의 행위성을 강조한다."(187쪽)사실 그날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살면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니 여러분도 폭력을 당하면 꼭 도움을 주는 기관이나 단체를 찾아가라고. 이런 말을 해야 하는 현실이 착잡했지만, 《아무도몰랐던 이야기>를 읽고 나니 잘한 것 같다. "폭력이 발생하기 전에폭력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건 중요하니까. - P284

내가 아는 배움의 최고 동력은 절실함이고 필수 조건은 덩어리시간이다. 당장 생존에 필요하지도 않고 놀 시간도 없는 아이들에게 글을 쓰라니 얼마나 고역일까. 자투리 시간으로 학습지 하듯 해치우는데 생각이 여물까 싶다. 6학년 학부모에게 제안했다. 어떤 점이 힘든지 아이에게 물어보고 독서록을 당분간 쉬어보라. 자기 의견과 생각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경험하게 하라. 그래야 아이에게도 의견과 생각이 형성되고 글도 잘 쓴다고 말이다.
사실 그 마음 모르지 않는다. 나도 엄마로서 아이 손에 스마트폰 대신 책이 놓여 있길 바란다. 집에 책이 널려 있으면 우연히라도손에 닿아 펼쳐 볼 텐데 무슨 몹쓸 것인 양 만지지도 않는 아이들과나는 산다. 글은 오죽하랴. 처음엔 섭섭하다가 속으로 비난했는데지금은 내버려둔다. 나는 책 읽는 엄마니까 아이 뜻을 존중해줘야지 최면을 걸다가 아이가 아직 본능이 살아 있어서 ‘거부‘도 하는구나 건강하다는 징표로구나, 해석술을 발휘하는 단계까지 왔다. - P288


"나를 방목한다/ 빈둥빈둥/ 내가 사랑하는 어슬렁어슬렁이다//속도와 움직임 다 버린다! 그냥 햇살/ 그냥 해찰이다." 저녁 아홉 시가 넘자 정장 차림의 직장인 무리가 들어온다. 그들의 신청곡일까.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가 흐르고 흥성흥성 말이 피어난다. 삼겹살집 지글거림이나 노래방의 왁자함이 아닌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 듣고 노래에 얽힌 사연을 곁들이는 장면은 회식이라기보다 누구도 배제되는 사람 없는 민주적인 ‘봄 회의‘
같았다. "봄과 슬픔을 투시하고/ 구체적으로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 누구보다 먼저 온몸으로 발언하리." 우리는 레드 제플린을 시작으로 올드 록을 듣다가 너바나의<컴 애즈 유아Come as You Are>까지 도달했다. "센티멘털만이 서럽게 기타 줄을 튕기는 봄밤, 음악은 봄비처럼 본래 감성을 두드려 깨운다. 나를 나로 환원시키는 시간, "나도 모르는 나의 깊이"를 잰다. - P310

자유기고가로 일할 때부터 최저 원고료를 보장하지 않는 곳과는 가급적 일하지 않았다. "대중소설가가 그 출판사와 절교를 한다는 건 식량 수송로를 끊어버리는 것과 같다"(234쪽)는데, 비슷한 강도의 결단으로 버텼다. 남들 보기에 유명의 날개를 단 나는 아직도 ‘돈몇 푼‘ 갖고 싸운다. 수십 번 망설이다 그래도 말한다. 안정된 직업,
고정된 급여 없이 오직 글에서 밥을 구하는 노동자를 위해.
글은 정자세로 앉아 시간을 바치지 않으면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목뒤부터 어깨를 타고 손끝까지 흐르는 저림을 겪으며 문장의길을 터나가야 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을 수 없는 직업이지만 그미련스러움 때문에 내 일이 좋다. 새해를 맞아 순정하게 다짐해본다. "두부 장수가 두부를 만들듯이 성실하게 규칙적으로 아름다운것을 써나가고 싶습니다." - P320

이 자리에서 일일이 나열할 수 없지만, 수 많은 잘못을 저지른 삼성을 정부가 한 번 제대로 처벌해본 적이 있냐고 묻고 싶어요.
또 하나의 가족은 없다. 지금까지 삼성그룹에서만 320명의 직업병 피해 제보가 있었고, 118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3년엔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에어컨 수리기사로 일하던 서른두 살 최종범 씨가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유가족인 형은 말한다. "삼성 조끼를 입은 동생의 자부심도 컸습니다. (.…) 동생은 개처럼 일했습니다. 스스로를 ‘여왕개미‘(삼성)를 먹여 살리느라 죽어나는 일개미라고 동료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25) 그로부터 7개월 뒤, 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센터 분회장도 노조를 인정하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P333

나는 노조 사무실에 한 시간 일찍 출근해 기타 코드 어설프게 잡아가며 시간을 보냈다. 자격증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에 왜 그토록 열심을 다했는지 설명할 순 없지만, 사랑과 신념이 가슴에 출렁대던 시절임은 분명하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 원칙과 사랑의 원칙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본주의의 급류에서 부서진 삶을 복구하는 사람들. 그러는 사이 그들은 사랑의 원리를 깨우쳤다. "삶은 상호의존적이라는 점은 무시되고, 개개인은 고립된 채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것에 최상의 가치를 두"(111쪽)도록세상이 우리를 길들이고 있기에, 무가치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일에 - P342

무모하게 시간을 보낸 것들만 곁에 남아 있다. 무던한 사람, 철 지난노래, 변치 않는 신념, 짠 눈물 같은 것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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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22-11-02 11: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산님께서 적어 주신 오늘의 한문장 덕분에 오늘 제 하루는 충분히 ‘선물‘이 되었습니다.
어쩜 이렇게 주옥같은 문장들을 캐내셨는지요.
십 년 전, <올드걸의 시집>으로 처음 은유 작가를 만났던 그때의 기쁨이 되살아나네요.
그래도 그때는 지금보단 좋은 시절이었다 생각이 듭니다. 요즘 세상은 아수라장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22-11-02 14: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물‘이 되었다니... 고맙습니다.
고단하고 시끄러운 시절에
은유 작가의 문장들에 매혹당하는 요즘입니다.
세상이 ‘아수라장‘ 맞아서
서글픕니다.
 

우리 엄마도 아픈 자식 얘기를 어디서든 후련하게 할 수 있었으면 울화가 풀렸을까. 조금 더 오래 살았을까. 동준 군 어머니 말씀에서 엄마가 감내한 외로움의 크기를 짐작한다. 피붙이인 나도 감정노동을 거부했다. 나 역시 인생 최대의 난국을 보내는 중이어서 같이 무너질까 봐 엄마를 더 피했다. 만약 어느 자리에서든 엄마가 위축되지 않고 괜찮은 척도 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슬픔을 떠들었다면, 듣는 사람들이 동정이나 입막음이 아닌 토닥이는 눈길로 들어주었다면 적어도 ˝자신의 존재가 통째로 세상에서 삭제되는 ‘시선의 차별˝을 겪진 않았을 것 같다.
동준 군 어머니는 자식이 그리울 땐 가끔 기사를 검색해 읽는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를 기억하는 게 슬프지만 그게 세상과 자식 이야기를 나누는 방법인 것이다. 아이가 허술한 시스템에 의해서 죽었고, 그렇게 자식을 보낸 사람들은 아이를 배려하지 못한 세상과사람에 대한 분노가 있다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도 받아들이는 것도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우리 엄마의 친척이, 동준 군 어머니의 친지가 그랬듯이 ˝악의없는 농담과 별생각 없는 자랑˝에 차별의 싹이 숨어 있다. ˝사회적으로 낙오자도 사회적 부적격자도 아닌 ‘선량한 시민‘인 그들이 차별 감정을 생산하고 있다.˝ 이처럼 ‘악독한 권력자‘가 아닌 ‘선량한 시민‘에 의해 생산되는 차별 감정이기에 이것을 해결하기가 어렵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방법은 이것이 유일하다. 자기 안에 숨은나태함, 눈속임, 냉혹함과 끊임없이 싸우기. ˝나는 차별하지 않는다는 확신에 빠져 있는 한, 나는 ‘옳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한, 사람은차별 감정과 진지하게 마주할 수 없다.˝
어김없이 돌아온 슬픔의 달 4월, 타인의 아픔을 알아채지 못하는 나의 나태와 둔감을 경계하며 세월호에서, 세월호만큼 위태로운일터에서 침몰당한 이들과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생각한다. 그들은어떤 표정을 지으며 숱한 자식 이야기가 오가는 그 쓸쓸한 자리를견뎠을까. p196,197



또 다시 이런 일이......
먹먹하다.
가을볕도 슬프다.




 "행복이란 거의 없다. 나이 든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는 더욱 그렇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노년에 자신의생을 되돌아본 많은 위인들은 자신들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합쳐보아야 채 하루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 <길 위의 철학자》의 저자 에릭 호퍼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 삶은 그저 살아가는 것이지 불행해지기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듯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 충족은 또 얼마나 금세 냉소로 식어버리는가. 읽고 쓰고듣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 나는 삶의 ‘행복 불가능성‘을, 즉 그냥살아감 자체를 받아들였다. - P141

에릭 호퍼는 이런 통찰도 내놓는다. "우리는 일이란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이 세상에는 모든 이들이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건 있을 수 없어요." (190) 일이 의미 있기를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몰염치‘라고 했다는 조지 산타야나의 말까지 덧붙이면서, 삶의 유일한 의미는 배움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에릭 호퍼는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떠돌이 노동자 출신의 사상가다. 도스토옙스키나 몽테뉴의 저서를 거의외울 정도로 읽었고, 글을 쓰면서는 "제대로 된 형용사를 찾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51)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무모함, 빠져나가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부어댈 때 잠깐의 흘러넘침, 그것이 사유의 결과물로 손 - P141

에 쥐여진다. 이 아름다운 낭비에 헌신할 때 우리는 읽고 쓰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부디 그 이공계 학생이 한번의 강좌, 몇 번의 시도로글쓰기에 좌절하고 물러나지 않았으면 한다. - P142

나는 작가라는 말이 여전히 어렵다. 뜻과 범주가 모호하다. 행위인지, 직업인지, 자격인지, 욕망인지, 존재 그 자체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글 쓰는 사람‘으로 내 꿈을 구체화하고 실천했다. 주변에서는 작가로 활동하려면 문창과나 국문과를 늦게라도 가라고 권했지만,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자격 요건을 갖추기보다 일단 쓸 수 있는 걸 쓸 수 있는 데에 썼다. 블로그에 에세이를 쓰고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로 등록해 활동했다. 본 것, 들은 것, 한 것을쓰다보니 그게 사실과 경험에 기반한 논픽션이었다. 논픽션 분야는등단 제도나 절차가 없으니 내가 작가가 됐는지 안 됐는지 가늠할척도가 없었다. 그게 속 편했다. 작가라는 긍지 없이, 작가가 아니라는 결핍도 없이 쓸 수 있었다. - P144

작가를 꿈꾸는 학생에게 말했다. "쓰고 싶으면 빨리 쓰세요. 작가는 쓰는 사람이지 쓰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문창과간다고 작가의 길이 보증되고 경영학과 간다고 그 길이 봉쇄되진않는다. 가장 큰 장벽은 부모의 반대가 아니라 자기생각의 빈곤이다. 자꾸 몸에 들러붙는 생각, 솟아나는 얘기, 복받치는 불행이 아니라면 무엇을 쓸까.
"나는 우리나라의 하고많은 불행을 보아왔다. 내가 보는 가난ㅡ나는 그걸 외면할 수가 없다." (129쪽)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게창작 동력은 ‘하고많은 불행‘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현장을 지키면서 고통의 목소리를 기록했다. 나는 그들 책에서 큰 자극을 받는다. 하고많은 불행의 언저리를 서성이다 보아버린 것을 쓰고자 노력한다. - P145

작가가 되려면 얼마나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도 곧잘 나온다. 나는 네루다의 이 시를 읽어주고 싶다. "내가 책을 덮을 때 나는삶을 연다! 책들은 서가로 보내자, 나는 거리로 나가련다/나는 삶자체에서 삶을 배웠고, 단 한 번의 키스에서 사랑을 배웠으며/ 사 - P145

람들과 함께 싸우고/ 그들의 말을 내 노래 속에서 말하며 그들과더불어 산 거 말고는 누구한테 어떤 것도 가르칠 수 없었다. " <책에 부치는 노래 1> 중에서, 96쪽) - P146

하시 ㅊ읽고 쓰고 말하고 고치기의 반복. 이 고된 노역을 우리는 왜 자처하는가. 글쓰기의 목적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렇게 정리해본다.
삶이 고차함수인데 글이 쉽게 써지면 반칙이다. 정확한 단어와 표현을 고심하다 보면 자신을 스스로 속일 가능성이 줄어들고, 몸을숙여 한 사람의 내면의 갱도에 들어가는 훈련으로 남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모든 사물과 현상을 씨 - 동기 -로부터 본다" (김수영) 는 것,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 타인의 처지가 되어보는 일, 사람살이에 꼭 필요한이것을 교육받을 기회가 드물었던 우리는 글쓰기를 핑계 삼아 공부하고 있다. 꼰대 발언, 혐오 발언이 승한 시대에 말을 지키는 것은나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니까. - P149

부모와 산다고 다 행복하지 않듯이 부모가 없다고 꼭 불행하지않다. 복지시설에서 사는 열다섯 살 아이의 비밀이 아픈 것이지, 그아이의 삶 자체가 슬픈 것은 아니다. 아침에 학교에 가고 아이돌 좋아하고 친구들이랑 싸우고 떠들고 치마 기장 줄이기에 연연하며 핸드폰 카톡에 정신이 팔려 있는 모습은 또래 아이와 다르지 않다. 부모의 부재를 무조건 동정하거나 차별하는 시선만 아니라면 아이가기죽을 일도, 거짓으로 둘러댈 일도 없다.
한 아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타인의 돌봄이다. 그 타인이꼭 부모일 필요는 없다. 부모이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인간은 나 - P162

약하고 흔들리는 존재다. 자식을 낳는다고 남을 돌볼 수 있는 육체적·정신적·경제적 상태가 자동으로 세팅되지는 않으며 세팅되었다고 한들 영원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아이는 무조건 친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식으로 혈연을 강조하고 모성에 대한 환상을 부풀리는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128쪽).
한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든 신체적 온전함과 존엄성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후원금을 척척 내는 어른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부모님 뭐하시느냐‘다짜고짜 묻지 않는 어른이 많아져야 하고 이력서에 가족관계를 쓰지 않도록 하는 제도가 생겨야 한다. 이 세상에 ‘불쌍한 아이‘는 없다. 부모 없이 자란 자식이라는 굴레를 씌우고불쌍한 아이를 만들어내는 집요한 어른들이 있고, 정상가족이라는틀로 자율적 존재를 가두거나 배제하는 닫힌 사회가 있을 뿐이다. - P163

그날 우린 깔깔대다가 같이 울었다. 듣고도 믿기지 않는 실화.
구토가 치미는 정도의 기억. 가부장제 생존자의 증언은 왜 언제나새롭고도 새삼스러운가. 한 사람이 물꼬 터주면 "삭히거나 잊어야 하는 줄만 알았던 자신의 이야기 (278쪽)를 너도나도 꺼내놓는다.
그리고 거기에는 "참고 또 참는 사람, 남자가 하는 일에 토를 달지않는 사람, 남자와 아이들에게 궁극의 편안함을 제공하는 사람. 자기 욕구를 헐어 남의 욕구를 채워주는 사람, 자기주장이 없거나 약하므로 갈등을 일으킬 일도 없는 사람" (51쪽)으로 길러졌으나 이제 그런 자기를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변신한 한 존재가 있다. 그저 말하고 있음. 단지 말하고 싶음. 나는 말해야겠으므로 쓰인 소설 한 권,
여성들의 삶을 정가운데로 놓은 이야기가 있어 참 다행이다. - P174

사건의 핵심 명제, 성폭력은 강자가 가까이 있는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이라는 것. 토르디스를 성폭행한 것이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었듯이, 내가 본 성폭력 피해자 가운데 90퍼센트는 아는 사람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아버지, 삼촌, 이모부, 오빠, 선배, 친구, 담임선생님, 교수, 직장 동료, 남편 등등. 그들은 힘으로든 돈으로든지위로든 피해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이렇게 ‘믿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이들‘로부터의 폭력이기에 여파가 크다. 피해자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바로 알아차리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토르디스는 말한다. "나는 네가 나한테 한 행동이 강간이라는 걸 몰랐어. 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상처가 컸는데도 말이야." (192쪽) 가까스로 인지한 다음에는 가해자가 아니라 자기를 혐오한다. "첫 이성 관계에서 참혹하게 실패한 후로 나는 스스로의 판단을 믿을 수가 없었다." (23) 이는 피해자들이 공통으로 겪는 아픔이다. - P176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말하면, 왜 수년이 지났는데 지금 말하느냐는 반응부터 나온다. 시간은 만인에게 공평하게 흐르지 않는다. 이제 와서 말하는 게 아니라 이제 겨우 말하는 것이다. 친척에게 17세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열일곱 스물일곱, 서른일곱 등 10년 단위로 악몽에 시달렸다. 그해마다 몸이 아팠고 일상이 무너졌다고했다. 고등학생 때 오빠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그 오빠의 딸이 결혼할 정도로 세월이 흘렀음에도 복수를 꿈꾼다. 조카의 결혼식장에 찾아가서 ‘사실을 폭로하는‘ 상상을 한다. - P177

《용서의 나라》를 읽는 내내 분노하고 의심하다 안도했다. 성폭력 사건이 믿기지 않는 것만큼 용서의 귀결도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저게 가능한가 싶었는데, 가능하게 되어가는 장대한 여정을 따라가면서 나는 성폭력 사건의 복잡성과 다층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용서는 신이 지급하는 쿠폰이 아니고 인간의 용기를 거름 삼아 자라는 나무라는 것. 가해자와 피해자, 공동체 구성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용기 내어 정성스럽게 가꾸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살아 있음 자체가 용기다. "삶은 계속된다. 한껏 이용하라. 네가 가진 게 별로 없다 해도 삶만은 네 것이다."(451쪽)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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