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대담은 아렌트 사상 전반에 대한 질문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때는 그녀를 유명한 혹은 논란이 많은 학자의 대열로 올려놓았던 『전체주의의 기원』 (1951) 이 이미 출간되고 수정판까지 나왔던 때고, 또한그녀의 가장 중요한 저술로 꼽을 수 있는 『인간의 조건』(1958)도 이미출간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혁명론』(1963)이 이미 출간되었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갓 나왔던 시점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책으로 출간되기 전인 1963년 2월부터 <뉴요커>라는 잡지에 다섯 차례로나누어 게재되었고, 이에 대해 게르숍 숄렘과의 공개 서신 교환이 이루어져 있었다. 이 서신 교환에서 숄렘은 "네가 과연 유대인의 딸이냐?"라는 투의 공격을 했고, 아렌트는 "사랑이란 개인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지국가에 대한 사랑, 민족에 대한 사랑 따위는 무의미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하고 말하면서 양자 간의 긴장의 수위가 아주 높았던 터라서 여기에 대한 질문과 아렌트의 대답이 대담 속에 담겨 있다. - P9
아렌트 정치사상의 정돈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조건』에서다. 그녀의 최초의 주저인 『전체주의의 기원』에서도 일관된 정치관이 드러나지만,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표명되는 것은 『인간의 조건인 것이다. 이 시기 그녀 사상의 성숙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것은 『정치의 약속』(2005)에 담긴 글들이다. 이 책은 아렌트 사후에 나온 일련의 유고집 가운데 하나로 1950년대의 숙고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정치의 약속』에 나오는 첫 번째 논문은 정치가 철학과 연결될 때 어떤 위험에 빠지는지를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비교하면서 잘 보여준다. 아렌트에게 정치철학이란 말은 마치 ‘둥근 사각형‘과 같은 형용모순으로 간주된다. 절대진리를 추구하는 철학과, 다양성(아렌트는 이를 인간의 복수성이라 표현한다)을 존중하고 차이를 그 자체로서 다루어야 하는 정치는 서로 어울릴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아렌트는 자신을 정치철학자라고 부르기를 거부하고 정치이론가를 자임한다. - P10
이때 banality는 ‘평범‘ ‘낡아빠짐‘ ‘익숙해짐‘ ‘진부성‘ 등을 뜻한다. 일본에서는 ‘진부성‘이라고번역을 했으나 사실 ‘진부성‘이나 ‘평범성‘ 두 단어 모두 아렌트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 표현 자체도 그렇지만 아렌트의 글은 다소의 풍자 혹은 냉소를 담고 있어서 ‘악의평범성‘ 개념도그러한 냉소를 어느 정도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 두 번째 대담에서 아렌트는 이 개념의 의미를 아주 명확하게설명한다. 즉,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그사람이 내게 처음 듣는 이야기를 전해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내게 아주 평범한 성격을 가질 수 있다. 이 경우 우리는 "너무 평범해!" "별로 안 좋아" 하고 말할 수있다. 이때 평범하다는 것은 특별할 것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흔해빠진 것이나 아주 익숙해 있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렌트는 이처럼 ‘평범하다‘라는 말이 ‘흔하다‘라는 의미와는 완전히다르다고 강조한다.(이런 강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평범성‘이라는 표현이 ‘진부성‘보다 더 나은 번역어라고 말하고 싶다.) - P11
이와 같은 지적과 더불어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우리 모두의 내면에 아이히만이 있고, 우리 각자는 아이히만과 같은 측면을 갖고 있다"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악의 평범성 개념의 핵심은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데 있다고 아렌트는 강조한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못하는 것이 아이히만에게서 보이는 악의 참모습이라는 것이다. 이 대화를 통해 또 한 가지 분명하게 해명되는 것은 ‘악의 평범성‘이모든 악을 설명하는 유일한 장치 혹은 전가의 보도와 같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컨대 히틀러에 대해 아렌트는 ‘살인 본능을 가진 살인자‘ - P11
라고 말하고 있고, 또 사디스트인 악인도 있다고 말한다. 아렌트가 거부하는 것은 악인을 ‘악마의 화신‘으로 여기면서 각 사람이 져야 할 마땅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논리를 세우는 것과 악에 무엇인가 큰 매력이있고 힘이 있으며 실체가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는 태도인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를 따라 아렌트는 악에는 아무런 깊이도 없다는 생각을 피력하며, 다만 생각이 없는 가운데 엄청난 일을 저지르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비판하고자 한다. 세 번째 대담은 두 번째 대담과 다소 시간적 거리를 두고 있다. 이 대담이 이루어진 시기 앞뒤로 공화국의 위기』 (1972)에 실린 논문들이 출간되었다. 따라서 이 대담에는 『공화국의 위기』의 논문들이 다룬 사건들이 많이 나오는데, 1960년대에 미국과 유럽을 풍비한 학생운동과 흑인인권운동과 연관하여 시민불복종의 문제, 그리고 나아가 운동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폭력과 권력의 본질 및 관계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혁명론』의 주요 테제 또한 거론되는데, 특히 ‘공적행복‘의 문제와 ‘평의회 체제‘ 문제가 흥미 있게 다루어진다. - P12
자 모두에게이 대담의 편집 기술 덕분으로 포괄적인 성격을 가지게있을 것이다. 『공화국의 위기』의 주제인 정치에서의 거짓말 문제가 다시 흥미롭게다루어지고 있는 것이 마지막 대담의 한 가지 특징이다. 이 내용은 미국의 베트남 참전의 문제를 폭로한 소위 ‘펜타곤 문서‘와 연관된 것으로정치에서 이루어지는 진실의 은폐와 거짓의 문제에 대한 것인데, 이를 ‘국가이성‘ 개념과 직결시켜 논의를 풀어간 것이 흥미롭다. 이 마지막 대담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아렌트가 자신을 두고 ‘자유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명확하게 주장하는 점이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고, 미국의 전통을 사랑했던 아렌트가 스스로를 자유주의 혹은 자유주의자의 입장과 거리를 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렌트는 "몽테스키외가 자유주의자인가요?" 하고 반문하고 있는데, 아렌트가 자유주의가 아닌 다른 무엇에서 미국 혁명의 추동력, 그리고 현대 정치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찾으려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렌트에게 ‘그 무엇‘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것이 더 이상 비밀일 수는 없다. 그것은 공화주의, 곧 아렌트적 공화주의인 것이다. - P13
당시 저명한 저널리스트였고 훗날 빌리 브란트 정부의 고위 관료였던귄터 가우스가 한나 아렌트와 가진 이 대화는 1964년 10월 28일에 서독 TV로 방송됐다. 귄터 가우스는 아돌프 그림메상 Adolf Grimme Prize, 독일 TV 프로그램에 수여하는 명예 높은 상을 수상한 이 인터뷰를 이듬해인 1965년에 뮌헨에서 출판한 책 『추어 페르손Zur Person』에 "Was bleibt? Es bleibtdie Muttersprache(무엇이 남았느냐고요? 모어가 남았어요)"라는 제목으로 실었다. 조앤 스탬보Joan Stambaugh. 헌터칼리지 명예교수가 영어로 옮긴 이 번역본은 제롬 콘Jerome Kohn이 편집한 『이해에 관한 에세이 Essays onUnderstanding』 (하코트 브레이스 조바노비치, 1994)에 처음 실렸다. 아렌트가 그가 진행하는 인터뷰 시리즈에 참여한 첫 여성이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한 가우스는 곧바로 그녀가 "대단히 남성적인 직업"을 가졌다는, 즉 철학자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 대화를 잇는다. 그리고 이 언 - P19
급은 그의 첫 질문으로 이어진다―세상의 인정을 받고 많은 존경을 받는 아렌트도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자신이 철학계에서 수행하는 역할" 을 독특한 것으로 인식하는가? 아렌트는 대답한다.
미안하지만 그 말에는 동의 못하겠어요. 나는 철학계에 속하지 않아요. 내 전공은, 전공이라고 굳이 말해야 한다면, 정치이론political theory 이에요. 당신이 친절하게 지적한 것과는 달리나는 철학자처럼 느끼지도 않고, 철학계가 나를 그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고 믿지도 않아요. 그리고 당신이 인터뷰를시작하면서 던진 다른 질문에 대해 할 말이 있어요. 그러니까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철학을 남성적인 직업으로 생각한다는얘기 말이에요. 철학이 남성적인 직업으로 남을 필요는 없어요! 언젠가는 여성이 철학자가 되는 일도 전적으로 가능해질거예요…… 이곳과 책 여러 곳에 등장하는 말줄임표는 원문에 있는 것으로, 원문을 생략했다는 표시가 아니다―원주. - P20
아렌트
‘정치철학‘이라는 표현은 전통 때문에 극도로 심한 피해를 받고 있어요. 나는 그 표현을 피하는 편이에요. 나는 그와 관련된 사안들을 학문적으로건 비학문적으로건 얘기할 때마다 철학과 정치 사이에는 필수적인 긴장 상태가 존재한다고 늘 언급하고는 해요. 무슨 말이냐면, 사유하는 존재로서의 인간과 행위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사이에는 예컨대 자연철학 naturalphilosophy에는 존재하지 않는 긴장이 있어요. 철학자 역시 다른 모든 사람처럼 자연에 관해서는 객관적일 수 있어요. 자연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할 때는 전 인류의 이름을내걸고 의견을 피력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제아무리 철학자라도 정치에 관해서는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일 수 없어요. 플라톤 이후로 누구도 그러지 못했어요! - P21
물론이죠. 그런 문젯거리는 늘 존재해요. 사실 나는 상당히고루한 사람이에요. 세상에는, 이런 표현을 써도 된다면, 여성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여성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들이 있다고 나는 늘 생각해왔어요. 여자가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는 모습은 그냥 보기가 좋지 않아요. 여성스러운 존재로 남아 있고 싶은 여자는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고 애써야 마땅해요. 이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여부는 나도 몰라요. 나 자신은 거의 무의식적으로-아니, 거의 의식적으로라고 말하는 편이 낫겠네요―늘 이런 사고방식에 부합하게 살아왔어요. 개인적으로 이 문제는 그 자체로는 내 인생에서 아무런 역할도 수행하지 못했어요. 단순하게 말해, 나는 늘 내 마음에 드는 일들을 해왔어요. - P23
그러면 연구를 끝낸 거죠. 나한테 중요한 것은 내가 다루는주제를 이해하는 거예요. 내게 저술은 이런 이해를 추구하는문제이자, 이해하는 과정의 일부예요…………. 책을 집필하다 보면 저절로 표현되는 것들이 분명 있어요. 내 기억력이 내 생각을 모두 기억할 정도로 좋다면 나는 글 쓰는 작업을 하지않을 것 같아요. 나 자신이 무척 게으른 인간이라는 걸 잘 아니까요. 나한테 중요한 것은 사유 과정 자체예요. 나는 무엇 - P24
인가 철저히 사유하는 데 성공할 때 개인적으로 상당한 만족감을 느껴요. 내 사유 과정을 글로 적절하게 표현하는 데 성공할 경우에도 만족감을 느끼고요. 내 저작이 남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물어봤죠? 비아냥조로 말하자면, 그건 마초적인 질문이에요. 남자들은 늘 엄청난영향력을 가진 존재가 되고 싶어해요. 나는 남자들의 그런성향을 이를테면 허울만 그럴싸하지 실속은 없는 문제로 봐요. 나 자신을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상상하느냐고요? 아요. 나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이 내가 이해한 것과 같은 의미로-세상을 이해한다면 나는 그 사실에서편안함과 만족감을 얻을 거예요.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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