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 맑은 공기가 그리워 우수(雨水)지난 공원으로 나섰다.
마른 나뭇잎이 봄꽃 같이 아름다운 나무위로 하늘이 무한하다.
파고드는 바람은 날카롭지만 봄은 머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 보는데 덮어두고나온 진은영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속 시가 가뜩이나 무거운 발목을 잡는다.
봄에 죽은 아이
막을 수 없는 일들과 막을 수 있는 일들
두 손에 나누어 쥔 유리구슬
어느 쪽이 조금 더 많은지
슬픔의 시험문제는 하느님만 맞히실까?
부드러운 작은 몸이 그렇게 굳어버렸다
어느 오후 미리 짜놓아 굳어버린
팔레트 위의 물감, 종이 울린 미술 시간
그릴 것은 정하지도 못했는데
초봄 작은 나뭇잎에 쌓이는
네 눈빛이 너무 무거울까 봐 눈을 감았다
좋아하던 소녀의
부드러운 윗입술이 아랫입술과 만나듯
너는 죽음과 만났다
다행이지, 어른에게 하루는 배고픈 개들
온종일의 나쁜 기억을 입에 물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그러니 개장수 하느님께 네가 좀 졸라다오
오늘 이 봄날
슬픔의 커다란 뼈를 던져 줄 개들을
빨리 아빠에게 보내달라고
세월이 어서 가고 너의 아빠도
말랑한 보랏빛 가지를 씹어 그걸 쉽게 삼키듯
죽음을 삼킬 테지만
그 전에, 봄의 잠시 벌어진 입속으로
프리지어 향기, 설탕에 파묻힌 이빨들은
사랑과 삶을 발음하고
오늘은 나도 그런 노래를 부르련다
비좁은 장소에 너무 오래 서 있던 한 사람을 위해
코끼리의 커다란 귀같이 제법 넓은 노래를
봄날에 죽은 착한 아이, 너를 위해
광교수원지의 물도 성급한 봄빛이다.
열흘째 앓고 있는 몸살은 봄을 맞는 통과의례처럼 이쯤에 다녀가는 단골이시다.
또 한번의 봄이 오고있다.
살아가겠지.
물론 그래야하고.
언제나
삶은 부사副詞와 같다고
언제나 낫에 묻은 봄풀의 부드러운 향기
언제나 어느 나라 왕자의 온화한 나무조각상에 남는 칼자국
언제나 피, 땀, 죽음
그 뒤에, 언제나 노래가
태양이 몽롱해질 정도로
언제나
너의 빛
시인의 말
˝불행이 건드리고 간 사람들 늘 혼자지.˝
헤르베르트의 시구를 자주 떠올렸다.
한 사람을 조금 덜 외롭게 해보려고 애쓰던 시간들이 흘러갔다.
2022년 8월
진은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