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렌트 
1933년 2월 27일에 일어난 독일의사당 화재당시 열세던 나치가 이사건을 계기로 독일공산당을 매도해 정권을 장악했다를, 그리고 뒤이어 밤중에 자행된 불법체포들을 이른바 보호감호protective custoly 들을 꼽겠어요. 당신이 알듯, 사람들이 게슈타포의 지하실이나집단 수용소로 끌려갔어요. 당시 자행된 일들은 도무지 말도안 되는 일이지만, 지금은 그 뒤에 일어난 사건들에 가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죠. 그 사건에서 직접적인 충격을 받은 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책임감을 느꼈어요. 다시말해 나는 이런 판국에 단순히 방관자로서 세상을 살아갈 수있다는 생각을 더 이상은 하지 않게 됐어요. 나는 많은 방식으로 사람들을 도우려고 애썼어요. 그런데 내가 실제로 독일을 떠나게끔 만든 사건은… 그 사건을 말해야 옳은지 모르겠네요.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라 그 얘기는 해본 적이 없거든요. - P29

시오니스트 조직에서 나한테 기회를 줬어요. 나는 그 조직의주도적인 인사 몇 명과, 누구보다도 당시 회장이던 쿠르트 블루멘펠트Kurt Blumenfeld, 1884~1963하고 친한 사이였어요. 하지만 나는 시오니스트는 아니었어요. 시오니스트들도 나를 개종시키려고 하지 않았고요. 그렇기는 해도 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어요. 특히 비판에 의해, 시오니스트들이 유대인들 사이에 퍼뜨린 자기비판에 의해서요. 나는 거기서 강한 인상도 받고 영향도 받았어요. 하지만 나는정치적으로는 시오니즘하고 아무런 관련이 없었어요. 아무튼 1933년에 블루멘펠트하고, 당신은 모르는 누군가 나한테다가와서 말했어요. "우리는 일상적인 상황에서 언급되는 모든 반유대주의적 표현을 한데 수집하고 싶소." 예를 들어 클럽들에서, 모든 종류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가입한 클럽들에서 언급되는 표현들, 모든 전문직 종사자 저널에 등장하는 표현들-요약하자면 외국에는 알려져 있지 않은 종류의 표현들을 말하는 거였죠.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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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아렌트, 우리가 언급한 서신에서 당신은, 당신이 유대인들과 유대감을 느껴야 한다는 점을 늘 유념해야 옳다는 숄렘의 불필요한 경고를 분명하게 거부합니다. 당신이 쓴 글을 다시 인용하겠습니다. "제가 유대인이라는 것은 제인생에서의심할 나위 없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 사실과 관련해서는 무엇도 절대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렸을 때도 그랬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두어 가지 물었으면 합니다. 당신은 1906년에 하노버에서 엔지니어의 딸로 태어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자랐습니다. 전전戰前 독일에서 유대인 가정 출신이라는것이 어린아이에게 어떤 느낌이었는지 기억하나요? - P32

그 문제는 어머니 입장에서는 아무 역할도 못했어요. 물론 어머니는 유대인이었죠. 어머니는 결코 내가 세례받게 내버려두지 않았을거예요! 내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부인했다는 걸 알았다면어머니는 내 따귀를 거세게 날린 다음 곧바로 그 자리를 떴을거예요. 그럴 정도로, 그런 일은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논의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는 질문이죠! 그런데 내가 어렸던 1920년대에 그 질문은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보다 당연히 훨씬 더 중요했어요. 내가 철이 들었을 때는 어머니 입장에서도 당신의 앞선 시절보다 훨씬 더 중요했고요. 하지만 그건 순전히 외적인 상황 때문에 그런 거였어요.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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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를 읽었거든요. 왜 칸트를 읽었느냐고 물을지도 모르는데, 내 입장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왠지 이런 것 같아요.
내게 그건 철학을 공부하거나 물에 몸을 던지거나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였다고요. 그렇다고 내가 목숨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에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앞서말했듯 나한테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그 욕구가무척 어린 나이에도 있었어요. 우리 집 서재에는 온갖 책이 다 있었죠. 읽고 싶은 책을 책장에서 꺼내기만 하면 됐어요. - P37

맞아요. 그 책들은 그런 식으로 너무도 잘 맞아들었고, 그래서 내 입장에서 두 사람은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었어요.
나는 유대인인 사람은 신학과 관련된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서만 몇 가지 의혹을 품고 있었어요……. 어떻게 논의를 진전시켜야 할지에 대해서요.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내가 가진 난해한 문제들은 이후에 스스로 해결됐어요.
그리스어는 사정이 달랐어요. 나는 그리스 시를 늘 사랑했어요. 시는 내 인생에서 커다란 역할을 수행해왔어요. 그래서추가로 그리스어를 선택했죠. 그리스 문학을 읽었기 때문에그건 대단히 쉬운 일이었어요! - P38

맞아요. 긍정적인 측면은 다음과 같아요. 당시 나는 내가 되풀이해서 표현했던 이런 문장을 깨달았어요. "어떤 사람이 유대인이라서 공격을 받았다면 그 사람은 유대인으로서 자신을 옹호해야 한다. 독일인으로서가 아니라, 세계시민으로서가 아니라, 인권의 지지자로서가 아니라, 그 외의 그 무엇으로서가 아니라." 그런데 내가 유대인으로서 구체적으로 할 수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하나 더, 이제는 조직과 함께 일하겠다는 의향이 명확해졌어요. 난생처음으로요. 시오니스트들과함께 일하겠다는 의향을 가진 거죠. 그들은 준비가 돼 있는유일한 사람들이었어요. 나치에 동화한 사람들에게 합류하는것은 무의미한 일이었어요. 게다가 나는 그들하고는 정말로 - P46

아무 관계도 없었어요. 심지어 나는 그 시점이 되기 직전까지도 유대인 문제를 얘기하기가 조심스러웠어요. 라헬 파른하겐Rahel Varnhagen, 1771~1833.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유명한 살롱을 주재했던 독일 여성 작가에 관한 책은 내가 독일을 떠날 때 완성된 상태였어요.그러나 책 뒤쪽의 두 챕터는 1933년과 1936년 사이에 프랑스에서 집필됐다. ‘라헬 파른하겐Rahel Varnhagen: The Life of a Jewish Woman」 개정판, 하코트 브레이스 조바노비치, 1974 xiii-원주, 그 책에서 유대인 문제는 나름의역할을 수행해요. 나는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 책을썼어요. 나는 유대인으로서 내 개인적인 문제들을 논하고 있었던 게 아니에요. 하지만 유대교에 속한 것은 내 나름의 문제였고, 내 자신의 문제는 정치적 문제였어요. 순수하게 정치적인 문제요! 현실적인 연구에, 전적으로 유대인과 관련된 연구에 종사하고 싶었어요. 이런 생각을 품은 채로 프랑스에서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어요. - P47

영어로 써요. 그런데 영어에 대한 거리감이 결코 없어지지를않네요. 모어와 다른 언어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어요. 그 문제를 정말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어요. 독일어의경우 나는 상당히 많은 독일 시를 암송할 수 있어요. 시들은내 마음속 뒷자리에 늘 자리 잡고 있어요. 나는 그런 식의 암기를 다시는 할 수 없어요. 나는 영어로 하면 스스로 용납되지 않을 일들을 독일어로 해요. 다시 말해, 내가 대담해진 까닭에 때때로 영어로도 그런 일들을 하지만, 대체로 나는 영어하고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왔어요. 독일어는 나한테 남아 있는 본질적인 요소고, 내가 항상 의식적으로 지켜온 언어예요. - P49

항상 그랬죠.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내가 할 일이 뭘까? 미치광이가 돼버린 것은 독일이지 독일어가 아니었죠. 둘째, 모어를 대신할 언어는 없어요. 사람이 자신의 모어를 망각할 수는있어요. 그건 사실이에요. 그러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봤어요. 새로 습득한 언어를 나보다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있어요. 나는 여전히 독일어 억양이 심한 영어를 구사하고,
관용적인 어법에 어긋나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잦은데요. 그런사람들은 내 그른 점들을 모두 올바르게 해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클리셰라 할 표현들이 꼬리를 물고 등장해요. 모어를 망각하면 모어를 써서 달성하던 언어적 생산성을 더 이상은 달성하지 못하니까요. - P49

우리는 어느 시점이 되면 정치적으로 만사에 대한 보상책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다른 만사에대한 보상책도 그럭저럭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는 아니었어요. 이건 절대로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에요. 단순히 희생자의 규모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에요. 그런 짓을 자행한 방법, 시신 훼손 등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그와 관련해서 자세히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이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에요. 거기서 우리가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어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걸용납할 수 없었어요. 당시 일어난 그 밖의 다른 모든 일에 대해서라면, 그 시절이 때때로 꽤나 힘들었다고 말해야겠네요.
우리는 대단히 가난했고, 추적의 대상이었고, 도망다녀야 했고, 어떻게든 상황을 헤쳐 나가야 했어요. 그 시절은 그랬어요. 그래도 우리는 젊었어요. 심지어 나는 그런 상황에서 약간은 재미를 느끼기도 했어요―그 점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네요. 하지만 이 사건은 달랐어요. 이 사건은 차원이 완전히달랐어요. 개인적으로 나는 그것 말고 다른 것들은 모두 감내할 수 있었어요. - P51

트물론이죠. 그런데 누군가 진정한 나치로 변해 그에 관한 글을썼을 때, 그 사람이 나한테 개인적으로 충실할 필요는 없었어요. 나는 어쨌건 그 사람과는 다시는 말을 섞지 않았어요. 그는 더 이상 나를 접촉해야 할 까닭이 없었고요. 내 생각에 그는 이미 존재하기를 멈춘 사람이었으니까요. 그건 상당히 명확한 일이었어요. 그렇다고 그들이 하나같이 살인자는 아니었어요. 내가 요즘 얘기하고는 하는 것처럼, 그들은 자기가파놓은 함정에 빠진 사람들이었죠. 그들이 나중의 보상을 바랐던 것도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우슈비츠라는 심연에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기반이 마련돼야 마땅하다고 봐요. 그건 많은 개인적인 인간관계에도 마찬가지죠. 나는 사람들하고 논쟁을 벌였어요. 나는 딱히 기분 좋은 논쟁상대도아니고 무척 공손한 사람도 아니에요. 나는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말하는 편이에요. 어쨌건 내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 P52

제대로 전달됐어요. 앞서 말했듯이 이 사람들 모두는 두어 달동안, 심한 경우 2년 동안 나치즘에 헌신했던 사람들일 뿐이에요. 그들은 살인자도 아니고 밀고자도 아니었어요. 말했다시피 히틀러에 대한 신념을 ‘날조‘ 했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독일에 돌아오면 하는 가장 일반적이면서 강렬한 경험이그리스비극에서 항상 행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대중의 인정recognition을 받는 경험을 제외하면-감정을 격해지게 만들었어요. 길거리에서 독일어를 듣는 경험이 그랬죠. 내게 그건뭐라 형언할 길 없는 기쁨이었어요. - P53

아렌트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 기분을 상하게 만들 생각은 추호도없지만, 당신 자신이 이 캠페인의 희생자가 돼버렸다는 말을해야겠네요. 나는 내 책 어느 곳에서도 유대인들이 조금도저항하지 않았다고 책망하지 않았어요. 아이히만 재판 때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하기는 했죠. 이스라엘 검찰청의 미스터 하우스너 Gideon Hausner, 1915~1990가요. 나는 예루살렘의 증인들을 겨냥한 그런 질문들은 어리석은 데다 잔인한 언사라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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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었기 때문에 나도 그걸 잘 압니다. 그런데 당신에게제기된 일부 비판은 책의 많은 페이지에 걸친 어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 P55

나는 큰 소리로 폭소를 터뜨렸어요!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기분 나쁘게 받아들였어요. 나는 그에 대해서는 도무지 어쩔도리가 없어요.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아요. 나는 숨이 끊어지기 3분 전에도 여전히 낄낄거릴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내어조가 그런 식이라고 말해요. 그 어조가 대부분 비아냥거리는 투라는 건 전적으로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이때 내 어조는 정말로 개인적인 특징이에요. 유대인을 비난했다면서 사람들이 나를 책망한다면 그건 악의에 찬 거짓말이자 프로파간다지 다른 게 아니에요. 아무래도 어조에 대한 비난은 나를사적으로 반대하는 거예요. 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일도할 수가 없어요. - P56

두렵지 않아요. 나는 정치적으로 무익한 것은 그런 태도가아니라 다른 태도라고 말할 거예요. 우선, 사람이 어떤 집단에 속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황이에요.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여러 종류의 집단에 속하게 돼요. 늘 그렇죠. 그런데 당신이 말한 방식으로 집단에 속하는 것은, 내가 말한 소속하고는다른 방식으로 조직된 집단에 가입하거나 그런 집단을 결성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에요. 이런 종류의 조직은 세계와관계를 맺게 돼 있어요. 조직화된 사람들은 대개가 이해관계라고 부르는 것을 공통으로 가져요. 사랑이라고 부를 만한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인간관계는 물론 최우선으로는 진짜 사랑에 존재하고, 어떤 의미의 우정에도 존재해요. 그런 관계에서사람은 그가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하고는 무관하게 직접적으로 호명돼요. 따라서 매우 다양한 개인으로 구성된 조직에개인들이 속하면 여전히 개인적으로 친구가 될 수 있어요.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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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세계world‘라는 단어를 정치를 위한 공간이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아렌트
맞아요. 세계는 정치를 위한 공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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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유대 민족은 비정치적인 민족이었나요?


아렌트
정확하게 그런 식으로 얘기해서는 안 돼요. 공동체는 당연히어느 정도는 정치적이니까요. 유대교는 민족종교 national religion예요. 그런데 정치적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많은 유보 조건을붙일 때에만 타당해요. 유대인들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고통을 받았던 이 무세계성 worldlessness은, 그리고ㅡ사회에서 버림받은 모든 이들과 함께 집단에 소속된 이들 사이에서 특별한 온기를 창출해낸 이 무세계성은 이스라엘state of Israel이 건국됐을 때 바뀌었어요. - P59

맞아요. 사람은 자유에 대한 대가를 비싸게 치러요. 그들고유의 무세계성에 의해 드러난 유대인의 인간성은 대단히 아름다웠어요. 당신은 너무 젊어서 그걸 경험하지 못했겠지만요. 그건 대단히 아름다웠어요. 내가 완벽하게 열린 마음과편견 없는 태도로 맞았고 특히 모든 유대인 공동체에서 벗어나 자유를 행사하던 어머니와 함께 누렸던, 사회적인 모든 관계의 외부에 서 있던 경험은 말이에요. 물론 그 모든 일이 지나가면서 많은 것이 상실됐어요. 사람은 해방에 대한 대가를치러요. 나는 언젠가 레싱상Lessing Prize 수상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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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에 함부르크에서죠…… 함부르크 자유도시가 수여하는 레싱상을수상하면서 아렌트가 한 연설은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Men in Dark Times (하코트 브레이스 앤 월드, 1968)에 어두운 시대의 인간성: 레싱에 대한 생각들On Humanity inDark Times: Thoughts about Lessing」로 실렸다―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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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거기서 나는 "이 인간성은…… 해방의 시간을, 자유의 시간을 결코 단 1분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하고 말했어요. 당신도 보듯, 그런 일은 우리에게도 일어났어요. - P60

그건 굉장히 어려운 문제예요. 그 밑바탕에는 아이히만 책을둘러싼 전체 논란에서 내 흥미를 끌었던 한 가지 의문이 있어요. 이 의문은 내가 거론하지 않았다면 절대 제기되지 않았을 의문이에요.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진지한 의문이고,
그 밖의 모든 건 순전히 프로파간다에서 제기된 거예요. 무엇인가 하면 fiat veritas, et pereat mundus (세계가 멸망한다 해도진리가 말해지도록 하라) 예요. 아렌트는 오래된 라틴어 격언 Fiat justitia, etpereat mundus(세계가 멸망한다 해도 정의가 시행되도록 하라)로 말장난을 하고 있다. 과거와 미래 사이Between Past and Future』 (바이킹 프레스, 1968) 228쪽을 참조하YAP라-원주. 그런데 아이히만 책은 사실상 그런 문제들을 다루지 - P62

못했어요. 그 책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정당한legitinate 이해관계를 위태롭게 만들지 않아요.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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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엇이 정당한가?‘라는 의문을 논의의 대상으로 남겼습니다.


아렌트
맞는 말이에요. 당신이 옳아요. 무엇이 정당한가 하는 의문은여전히 논의의 대상으로 열려 있어요. 내가 ‘정당함‘이라는말로 뜻하려던 바는 유대인 단체들이 뜻하는 바하고는 다른것 같아요. 하지만 실제의 이해관계가, 내가 인정하는 이해관계가 위태로웠다고 가정해봐요. - P62

맞아요. 역사과학은 실패했어요. 국가에 의해 통제되고 있죠.
어떤 사학자가 제1차 세계대전의 기원을 다룬 책에 관해 한논평을 들은 적이 있어요. "나는 이 책이 그토록 희망 넘쳤던시대에 관한 기억을 훼손하게끔 놔두지 않겠다." 그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건 흥미롭지않아요. 사실상 그는 역사적 진리의, 사실적 진리의 수호자예요. 그리고 우리는, 예를 들어 역사책이 5년에 한 번씩 다시집필되고 예컨대 트로츠키는 존재했었는가와 관련된 사실들이 미지의 상태로 남아 있는 볼셰비키의 역사책을 통해 이런수호자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요. 바로 이게 우리가 원하는 걸까요? 바로 그게 정부들이 관심을 갖는 걸까요? - P63

개인적 경험 없이 가능한 사유 과정이 존재한다고는 믿지 않아요. 모든 사유는 뒤늦은 사유afterthought 예요. 즉, 어떤 문제나 사건을 사후에 숙고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나는 현대 세계에 살고, 내 경험은 분명히 현대 세계 내부에서 현대세계를 겪어서 얻은 거예요. 결국 이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없어요. 그리고 단순노동과 소비의 문제는 정말로 중요해요.
그 영역에서도 일종의 무세계성이 스스로를 규정한다는 이유에서요. 더 이상은 어느 누구도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관심을 갖지 않아요. - P66

아렌트
생물학적으로 의지하고,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죠. 그리고 그영역에서 우리는 고독과 관련을 맺게 돼요. 노동하는 과정 중에 독특한 고독이 생겨나요. 지금 당장은 그에 관해 상세히설명하지 못하겠네요. 그러다가는 논의가 지나치게 멀리 나가게 될테니까요. 아무튼 이 고독의 특징은 자기 자신에게의지하는 상태가 된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진정으로 상호 관련된 여러 활동을 소비 행위가 대신하는 그런 상황이죠.


가우스
그런 맥락에서 두 번째 질문을 하겠습니다. 당신은 『인간의조건』에서 "진정으로 세계 지향적인 경험들truly world-orientedexperiences"당신이 뜻하는 바는 가장 드높은 정치적 의의에대한 통찰과 경험이죠―은 "평균적인 인간 삶이라는 경험의지평에서 더욱더 뒤쪽으로 침잠한다"라는 결론에 도달합니 - P67

다. 당신은 오늘날 행위하는 능력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국한돼 있다"라고 말합니다. 현실정치의 관점에서 이 말이 뜻하는 바는 무언가요, 미스 아렌트? 모든 시민의 협조적 책임에기반을 둔 정부 형태는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 이론적으로,
어느 정도나 허구가 되는 건가요?


아렌트
그에 대해 약간 단서를 달고 싶어요. 자, 현실적인 목표를 지향하지 못하는 이 무능력은 대중뿐 아니라 다른 모든 사회계층에 적용돼요. 정치인조차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어요. 정치인은 전문가 집단에 포위돼 있어요. 따라서 이제 행위와 관련한 문제는 정치인과 전문가 사이에 놓여 있어요. 정치인은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해요. 정치인 혼자서 세상만사를 알 수는없는 노릇이니 그런 결정을 현실적으로 내리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어야만 하죠. 원칙적으로 보면 항상 서로 의견이 모순되게 마련인 전문가들의 조언을요. - P68

으음, 야스퍼스가 나서서 의견을 내놓으면 그 주제와 관련한분야 전체가 너무도 환하게 밝아져요. 그는 믿음직스럽고 이
‘런저런 토가 달리지 않는 의견을 주저 없이 개진하는데,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내가 무척 어렸을 때도 그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게다가 그는 내가 하이델베르크에 왔을 때는 전혀 몰랐던, 이성에 관한 자유의 개념을 갖고 있어요. 나는 칸트를 읽었으면서도 이성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말하자면 나는 작동하는 이성을 본 거예요.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는데, 바로 그 이성이 아버지 없이 자란 나를 교육했어요. 내가 이렇게 된 것을 그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은 생각은 정말로 없지만, 나한테어떤 감각을 주입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예요.
그리고 이 대화는, 당연한 말이지만, 오늘날에는 의미가 사뭇달라요. 그게 정말로 내가 전후에 한 가장 강렬한 체험이었어요. - P70

내게 공공 영역으로 향하는 모험은 명확한 것 같아요. 한 사람이 일개인으로서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거죠. 사람이자의식에 사로잡혀 공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고 행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사람은 그가 보여주는 모든 행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아요. 말하기도 행위의 한 형태예요. 그게 하나의 모험이죠. 다른 모험으로는, 우리가 무슨 일인가를 시작하는 게 있어요. 우리는 인간관계의 네트워크에 우리 자신이라는 가닥을 엮어 넣어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우린 결코 몰라요. 우리 모두는 이런 말을 하라고 배웠어요.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스스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이건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에 들어맞는 말이에요. 무척이나 간단하고 명확한 말이죠.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요. 모험이 뜻하는 바가 그거예요. 요즘에 나는 이 모험은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말하곤 해요. 모든 사람이 가진 인간적인 것에 대한 신뢰만들어내기는 힘들지만꼭 필요한 신뢰말이에요. 그게 없다면 그런 모험은 행해질수 없을 거예요. - P71

그 질문은 사실은 두 가지 질문이군요.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을 먼저 해야겠네요. 내가 보기에 아이히만 재판은 실제로 독일에서 열린 재판들의 촉매 역할을 했어요. 이 재판들 중 일부는 그보다 먼저 열렸고 일부 체포도 그보다 일찍 이뤄졌지만요. 하지만 통계적 관점에서 이 상황을 보고 아이히만 재판이 열린 날짜가 아니라 아이히만을 납치한 날짜를 명심하면,
당연한 말이지만 상황은 당신을 압도할 거예요. 순전히 통계적 관점에서요.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는 이 자리에서 말하고싶지 않아요. 그건 명백한 팩트니까요.
지금 당신이 한 말은, 그러니까 유대인과 독일인이 정복되지않은 과거에 관한 문제를 공통으로 갖고 있다고 한 말은 맞는말이에요. 거기에 약간의 단서를 달고 싶어요.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이 공통으로 보유한, 실제로 존재하는 정복되지 않은과거에 대한 얘기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피해자의 사례와가해자의 사례에서 대단히 달라요.  - P74

심지어 유덴라트Judenräte.
나치가 점령지의 대규모 유대인 공동체를 통제하려고 유대인들에게 결성하라고 강요한 단체들도, 당연한 말이지만 피해자예요. 그들이 100퍼센트무죄라는 뜻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들은 가해자의 반대편에서 있었던 게 분명해요. 그건 대단히 명백해요.
이제 정복되지 않은 과거는, 적어도 유럽과 미국에서 보기에,
유대인과 독일인이 지구 상의 거의 모든 나라나 민족과 공유하는 것이기도 해요. 나는 미국의 사례를 통해 이걸 알게 됐어요. 나치의 행각이 유발한 바로 그 공포는 유대인과 독일인에 그치지 않고 모든 인류에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유대인과 - P74

독일인의 공통점은 그 사건에 직접 연루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에요.
그리고 당신은 "이 반응은 독일과 이스라엘에서 동일한가요?" 하고 물었죠? 자, 이스라엘 인구의 4분의 1이, 즉 25퍼센트가 그 사건에 직접 관련된 사람들이에요. 전체 인구에서 엄청난 비율을 차지하죠. 피해자인 그들이, 그 사건에 관해서그저 아무것도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하는, 세대를 불문한 평균적인 독일인들과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은 명백해요. 그런데 피해자들 역시도 그 사건에 관해 듣는 것을 원치 않아요. 이유는 완전히 딴판이지만요. - P75

요즘 내가 알게 된 게 하나 있는데, 바로 이스라엘 젊은 세대의 태도 그리고 그 나라에서 태어난 세대의 태도예요. 이스라엘에서도 그 사건에 관심이 없는데, 이런 현상은 독일에서 관심이 없어진 것과 몇 가지 점에서 비슷해요. 이스라엘의 젊은세대들도 느껴요. ‘그건 우리 부모님들 문제야……. 지금이야 물론 다르죠. ‘우리 부모님이 이런 일 저런 일이 일어나기를 원한다면…… 그래, 좋아! 그러시라고 해! 하지만 제발 우리는 그 문제에서 벗어나게 해줘.…… 우리는 그 문제에 그다지 관심이 없거든.‘ 이게 정말로 일반적인 정서더군요. 결국이건 독일에서처럼 세대 간의 문제예요.

"함께 행동하는 데서 유발되는 이런 권력의 느낌은그 자체로는 절대로 그릇된 게 아니에요.
그건 인간이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이에요" - P75

그게 정말로 새로운 유형의 범죄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단서를 달고 싶어요. 우리는 어떤 범죄자를 떠올릴 때 범행 동기가 있는 사람을 상상해요. 그런데 아이히만을 살펴보면 실제로는 아무 범행 동기가 없었어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범행동기라고 이해할 만한 게 없었다는 거죠. 그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동조하기를 원했어요. 그는 ‘우리we‘라고 말하고 싶어했는데, ‘나머지 사람들에게 동조하기‘와 ‘우리라고 말하고싶어 하기‘만으로도 역사상 가장 극악한 범죄가 자행되게 만들기에 충분했죠. 사실 히틀러 지지자들은 결국 이런 종류의상황에 전형적인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 사람들은 타인의지가 없다면 무력해질 거예요. - P76

그렇다면 여기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나는 아이히만에게만 집중하고 싶어요. 그를 잘 아니까요. 내가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남들에게 동조하는 것ㅡ많은 사람이 함께 행동하는 데 끼고 싶어 하는 것이 권력power을 낳는다는 거예요. 혼자 있을 때는 당신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여부와는 상관없이 늘 무력해요. 함께 행동하는 데서 유발되는 이런 권력의 느낌은 그 자체로는 절대로 그릇된 게 아니에요. 그건 인간이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이에요. 그렇다고 선한 - P76

감정도 아니에요. 그냥 중립적인 감정이에요. 그건 단순히 하나의 현상이라고 기술할 필요가 있는 보편적인 인간적 현상이에요.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극도의 쾌감이 느껴지죠. 여기서 이런저런 근거를 한없이 인용하지는 않겠어요. 미국독립혁명American Revolution 사례를 인용하는 것만으로도 몇 시간을보낼 수 있어요. 기능하기 functioning는 정말로 변태적인 행위양식이고, 이런 기능하기에는 항상 쾌감이 따른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그렇지만 행위에서 중요한 것은 남들과 함께 행동하기, 즉 함께 상황을 논의하기, 어떤 의사 결정에 도달하기, - P77

책임을 받아들이기,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사유하기 등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이 기능하기에서는 제거돼요. 당신이 거기서얻는 것은 그저 관성대로 굴러가는 것freewheeling일 뿐이죠. 이런 단순한 기능에서 얻는 쾌감이, 이런 쾌감이 아이히만에게서 꽤나 눈에 잘 띄었어요. 그가 권력에서 특별한 쾌감을 얻었느냐고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는 전형적인공무원이에요. 그런데 공무원은 공무원 이상도 이하도 아닌존재일 때 정말이지 대단히 위험한 신사 gentleman예요. 여기에서 이데올로기는 그다지 큰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고 봐요. 내 눈에는 이게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여요. - P77

내가 보기에 히틀러를 악마화하는 것은 연합국들 내에서보다는 독일인 망명자를 포함한 독일인들 사이에서 훨씬 더 보편적인 일이에요. 사실 연합국들은 진실이 세상에 드러났을때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이루 헤아리지못할 정도로경악했어요. 이게 독일에서는 참담할 정도로 과소평가되고있어요. 그런 상황을 알게 됐을 때, 평범한 군인이 베르겐벨젠Bergen-Belsen 수용소를 봤을 때,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사건에서, 그들은 존재의 핵심이 흔들릴 정도로 크나큰 충격을 받 - P78

았어요…………. 나는 무수히 많은 대화를 통해 그 모습을 봐왔어요. 나는 해외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 말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으음, 악마화 자체는 당신이 올바르게 말했듯이 알리바이를제공해줄 수 있어요. "당신들은 악마의 화신에게 무릎을 꿇었기에 죄가 없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봐요. 우리의 총체적인 신화는, 또는 우리의 총체적인 전통은 악마를 타락 천사로 봐요. 타락 천사는 당연히 늘 천사로 남아 있는 천사보다 훨씬 더 흥미로워요. 후자는 우리에게 좋은 이야깃거리를제공하지 않으니까요. 달리 말해 악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특히, 그 자체만으로도 진정한 깊이가 있는 존재라는것을 보장하는 역할을 수행했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 P79

철학에서도 동일한 상황을 보게 돼요. ‘부정the negative 이야말로 역사를 추동하는 유일한 존재다‘와 같은 상황을요. 우리는이 아이디어를 대단히 멀리까지 논의해나갈 수 있어요. 결과적으로, 우리가 누군가를 악마로 묘사한다면 우린 스스로를흥미로운 존재로 보이게끔 만들 뿐 아니라, 남들은 갖지 못한깊이를 우리 자신에게 몰래 부여할 수 있어요. 그러지 못하는이들은 지나치게 얄팍한 사람들이라서 가스실에서 누군가의목숨을 빼앗지 못해요. 지금 나는 일부러 이런 예를 말하고있는 것이지만, 결국에는 그게 현실이 되었죠. 어쨌든 악마적인 아우라aura를 자기 자신에게 조금도 부여하지 않은 사람이존재했다면, 그건 바로 헤어herr 아이히만이었어요. - P79

맞아요. 사실이에요. 그리고 불행히도 그건 대단히 흔한 일이죠. 우리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길 즐기느냐 그렇지 않으냐여부로 선하고 악한 것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악은항상 유혹의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 반면 선은 우리가 자발적으로는 절대 하려고 들지 않는 일이라고들 생각하죠. 무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이건 터무니없는 헛소리라고 생각해요. 브레히트는 선한 일을 하려는 유혹은 우리가 늘 이겨내야 하는 무엇이라는 점을 항상 보여주고 있어요. 정치이론 분야로 돌아가 보면, 마키아벨리에게서 똑같은 것을 읽을 수 있고 심지어는 칸트에게서도 비슷한 맥락을 읽어낼 수 있어요.
따라서 아이히만과 다른 많은 이들은 우리가 선행이라고 부르는 일을 하려는 유혹을 대단히 자주 받았어요. 그런데 그들은 그런 유혹을 제대로 이겨냈어요. 그건 유혹이었으니까요.

"그 사람들 행동에 심오한 의미는 하나도 없어요.
악마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고요!" - P81

페스트
맞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문화적 관점, 종교적이고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악을 상상하고 표현해온 방식에는 아이히만 같은 유형을 위한 자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당신은 이미 지적했습니다. 당신의 저작에 담긴 주된 아이디어중 하나가 부제에 이미 드러난"악의 평범성 the banality ofevil"인데, 이 표현은 많은 오해로 이어졌어요.


아렌트
맞아요. 실제로 이런 오해들이 전체 논쟁에 가득한데, 그건참다운 논쟁의 하찮은 일부에 속할 뿐이에요. 달리 말해 이런오해들은 상황이 어쨌건 생겨났을 거라는 게 내 입장이에요.
그 표현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는데, 나는 그 이유를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어요. 나 자신도 거기에서 큰 충격을받았으니까요. 내 입장에서도 그건 감당할 준비가 전혀 안 된개념이었어요. - P82

자, 오해 중 하나는 이거예요. 사람들은 평범한 것은 아주 흔하다고도 생각해요.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은………… 내가 말하려던 바는 그게 아니었어요. 나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아이히만이 있고, 우리 각자는 아이히만과 같은 측면을 갖고 있다는말을 하려던 게 절대 아니에요. 내가 하려던 말은 오히려 그반대예요! 나는 내가 누군가를 꾸짖으면 그들이 내가 들어본적도 없는, 그래서 전혀 흔하지 않은 말을 하는 모습을 완벽하게 상상할 수 있어요. 그러면 나는 "너무 평범해banal. ‘진부하다‘라는 뜻도 있다" 하고 말해요. 아니면 "별로 안 좋아" 하고 말하거나요. 그게 내가 말하려던 뜻이에요. - P82

평범성 banality은 정말로 간과할 수 없는 현상이었어요. 그 현상은 우리가 듣고 또 들었던, 솔직하게 말해서 믿기 힘든 클리셰와 표현 방식들에서 저절로 모습을 드러냈어요. 평범성으로 뜻하려던 바를 설명해줄 이야기를 해드리죠. 예루살렘에서 나는 에른스트 윙거 Ernst Jünger, 1895~1998가 언젠가 들려주었지만 한동안 잊고 있던 이야기를 떠올렸어요.
전쟁 중에 에른스트 윙거는 포메라니아독일과 폴란드 북부에 위치한 지역 아니면 메클렌부르크독일 북동부에 있는, 발트 해에 면한 지역에서—아니, 포메라니아였다고 생각해요―소작농 몇 명을 우연히 만났어요.(이 이야기는 방사放射Strahlungen』에 나와요. 방사』는 에른스트 윙거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쓴 일기를 모은 책으로 1949년에 처음 출판됐다 원주.)  - P84

그런데 그 소작농 중 한 명은 러시아인 전쟁 포로들을 포로수용소로부터 넘겨받아 자기 집에 거둔 사람이었어요. 당연히 그 포로들은 쫄쫄 굶고 있었죠. 러시아인 전쟁 포로들이 이 나라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는 당신도 알 거예요. 소작농은 윙거에게 말했어요. "글쎄, 그놈들은 인간 이하입니다. 소하고 다를 바가 없단 말이오! 그건 쉽게 알 수 있어요. 그놈들은 돼지 먹이를 먹어치우니까요." 윙거는 이 이야기에 이런 코멘트를 했어요. "독일인들은 때때로 악마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표현은 뭔가 ‘악마적‘인것을 뜻한 게 아니었어요. 봐요, 이 이야기에는 뭔가 터무니없이 멍청한 게 있어요. 멍청한 이야기라는 말이에요. 그 소작농은 굶주린 사람은 누구나 그런 짓을 하리라는 걸 알지 못해요. 그 입장에서는 누구라도 그런 식으로 행동할 텐데요. - P84

이 멍청함에는 정말로 터무니없는 게 있어요. ...... 아이히만은 완벽하게 지적이었지만 이 측면에서는 멍청했어요. 너무도 터무니없이 멍청한 사람이었어요. 내가 평범성이라는 말로 뜻하려던 게 바로 그거예요. 그 사람들 행동에 심오한 의미는 하나도 없어요. 악마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고요! 남들이무슨 일을 겪는지 상상하길 꺼리는 단순한 심리만 있을 뿐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인간 각자는 입법자예요. 칸트철학에서는어느 누구도 순종할 권리를 갖지 않아요" - P85

또한 아이히만은 ‘노예 같은 순종‘에 대해 말했어요. 예루살렘에서 그는 끔찍하리만치 혼란스러운 심리태를 보이면서 갑자기 그 모든 게 노예처럼 복종하는 문제였을 뿐이라고, 거기에 선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등의 말을했어요. 맞죠? 그래서 사람들 마음속에서는 그런 생각이 영원토록 꼬리를 물고 맴돌고 있어요. ‘맹세‘에 대한 언급, 사람들에게서 책임을 앗아 갔다는 생각 등등…. 이것들은 아이히만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나는 뉘른베르크 재판 기록에서도 그걸 발견했어요. 거기에도 뭔가 터무니없이멍청한 게 있어요. 봐요, 아이히만은ㅡ남들이 그랬던 것처럼분노에서 비롯한 이런 공격적인 행위들을 저질렀어요. 그러면서 말했죠. "그들은 우리가 책임질 일은 없을 거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온갖 책임을 다 뒤집어쓴 채남겨졌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거물들은 어떻게 지냅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은ㅡ늘 그렇듯ㅡ책임을 모면했습니다"라고요.  - P88

잘 알려졌듯 아이히만은 "뉘우침과 한탄은 꼬맹이들을 위한것"이라고 말했어요. 뉘우침과 한탄을 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반면에 우리는, 어느 누구도 뉘우치고 한탄하지 않았을 때 자신의 행위를 옹호하면서 "그래요, 사실 우리는 그 짓을 이런저런 이유에서 했고 내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우리는 전쟁에서 졌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승패 여부는 그런 일을 한 원인 자체에는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이 최소한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봐야 해요. 그런데 실제 현실에서 그런 사례는 젖은 행주처럼 무너져버렸어요. 어느 누구도 자신이 한 짓을 옹호하지 않았죠. 자신을 방어할 논리를 아무도 내세우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 점은 당신이 방금 간단히 언급한 현상-순종에 꽤나 중요한 듯이 보여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달리 말하면 그들은 그냥 남들에게 동조하고 싶었던 거예요.  - P90

그러니까 사람들을 재판에 회부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그 일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법적인 측면에서 보면 우리한테는 그럴 권리가 있어요……. 우리한테는 권리가 있어요. 그들이 명령에 따르는 대신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순교는 아니었으니까요. 대안은 양쪽 모두에게 있었어요. 그들은굳이 동조할 것 없이 스스로 결심할 수 있었어요. "고맙습니다만.…… 당신들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목숨을거는 짓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고애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애쓰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나는 어느 누구하고도 뜻을 같이하지 않습니다. 내가 억지로 동의해야만 하는 처지가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겁니다." 이럴 수도 있었다고요. ‘우리we‘가 아니라 ‘나‘라고 말하는 것-스스로 판단하는 것ㅡ을 뜻하는 거예요. 스스로 판단하는 것은 대중의 모든 층위에 속한 사람들이, 세상 모든 곳에서 했던 일이에요.  - P93

그것이 대단히 많은 사람을 몰아붙인 충동이에요. 방조자가 되는 것과 관련해서 야스퍼스가 중요한 말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는 "우리가 살아 숨 쉬는 것은 죄"라고 말했어요.카를 야스퍼스, 독일 국민의 죄의 문제Questions of German Guilt』 2판, 포드햄대학교 출판부, 2000, 66쪽ㅡ원주. 맞죠? "우리는 입을 굳게 다물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알듯, 목숨을 부지할 줄 아는 것과 그 실행 사이에는 거대한 심연이 있어요. 알고서도 외면하고 떠난 사람과 실행에 옮긴 사람 사이에는요. ... 따라서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사람이, 구경만 하고 자리를 뜬 사람이 "우리는 모두 유죄" 하고 말한다면 그건 실제로 철저히 실행한 사람들을 감싸는 게 돼요. 바로 이게 독일에서 일어났던 일이에요. 따라서 우리는 이런 죄책감을 일반화해서는 안 돼요. 그건 진짜 죄인들을 감싸는 짓일 뿐이니까요. 어쨌든, 괜찮다면 이 문제에 대해 약간 더 말하고 싶어요.


"상황이 전체주의적이라는 것이 우리가반드시 범죄자가 돼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아요" - P96

다음 명제가 우리에게 그 이유를 제공하죠. "자기 자신과 불일치disunity 하는 것보다는 세계 전체와 불일치하는 편이낫다. 나는 통일체unity 니까." 내가 나자신과 통일돼 있지 않다면 감당할 수 없는 갈등이 일어나요. 이를테면 그건 도덕영역에 모순이 있다는 생각인데, 칸트의 정언명령에서 보아도 여전히 타당한 얘기예요. 이 생각의 전제라면 실제 현실에서 내가 자존심을 유지하는 것인데, 이를테면 나 자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며 "나는 이러저러한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에요. 그런 짓을 저지른 누군가와 같이 살길원치 않으니까요. 내가 이러저러한 짓을 저질렀다면 나한테남은 유일한 길은 자살이 될 거예요. 아니면 시간이 흘러 기독교적 방식으로 생각하면서 내 행동 양식들을 바꾸고 회개를 해야겠죠. - P98

자존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물론 자신에게 말을 건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자신에게 말을 건다는 건 기본적으로 사유를 하는 거예요. 전문적인 사유가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사유를 말하는 거예요. 따라서 이런 생각의 뒤편에 있는 추정은 ‘나는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내가 세계와 굉장히 심하게 분열해서 나 자신과-어쩌면 친구와, 그리고 다른 자아와 대화하는 데 의지하는 것 말고는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들이 있을 수 있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근사하게 말한 "자기 안의 타인autos allos"처럼 말이에요. 내가 보기에이것은 무력한 상황이 실제로 어떠할지 보여줘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그냥 뚜벅뚜벅 갈 길을 간 사람들은 자신이 무력하지만 이 명제를 고수한다는 것을, 무력한 누군가도 여전히 사유는 할 수 있다는 명제를 고수한다는 것을 인정한 사람들이죠.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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