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필

1967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이성애자 사내아이로 태어나 서울대 사회학과를 거쳐 1992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다만 서자여서 어른들의 ‘호적 타령‘을 들으며 자랐다. 2006년말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가구 일을 배우며 수도권 변두리 함바집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잠깐 한솥밥을 먹은 적도 있다. 솜씨도 벌이도 변변찮아 2009년 직장에 복귀한 사실을 [가만한 당신] 약력에 누락했다. 국적·지역·성·젠더 · 학력 차별의양지에서 살아온 내게 ‘소수자성‘이란 게 있다면 미미하나마저 경험 덕일지 모른다.
지은 책으로 [가만한 당신』 『함께 가만한 당신』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겹겹의 공간들]이 있다.


나는 윤리야말로 궁극의 ‘능력‘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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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던 선숙은 사람들의 시선이 연달아 자신에게 꽂히고 나서야 마스크를 안 쓴 걸 깨달았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현관문 옆 고리에 걸린 마스크를 집어 들었다. 까먹지 말라고 문 옆에걸어두고서도 그냥 집을 나서기를 수차례...... 이놈의 마스크는 써도 써도 적응이 안 됐다.
코로나 시대 역시 도무지 적응할 수 없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던데, 이번에는 이 종족도 어쩔 수 없는지 백신도 영 신통치 않아 보였고 치료제도 지지부진이었다. 변이 바이러스인지 뭔지는 해괴한 이름을 달고 계속 튀어나왔고, 돌파 감염이니 뭐니 해서 맞은 백신을 또 맞으라고 했다. 그것도 이번에는 다른 상표의 백신을 맞아야 할지 모른다는데, 부작용도 있다고 하고 노인들에게 - P7

위험하다고도 하는 둥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바이러스가 요동치는 세상에서 선숙 같은 소시민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채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집에서 편의점까지 500미터 남짓 거리를 걷는데도 숨 가빴다.
한여름 열기에 마스크로 호흡까지 힘들어지니 살집이 있는 선숙으로선 밖에 나오는 일 자체가 불편했다. 선숙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산책할 수 있는 예삐와 까미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밤까지 일해야 해서 녀석들 산책이나 시킬 수 있을는지 걱정이 들었다. - P8

아들은 이제 OTT 시대라면서 넷플릭스라는 돈 내고 보는 채널이 있다고 했다. 자기 회사는 그곳에 작품을 걸 거라고 했다. 선숙은 용어부터 이해가 잘 안 됐지만 아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설명해주는 모습이 그저 흡족했다. 자랑하고 싶은 자기 일을 하게 된아들이 대견했고, 그걸 엄마에게 표현해준다는 게 고마웠다. 불과1년 반 동안 일어난 두 사람 사이의 변화였다.
선숙은 이제 아들을 닦달하지 않는다. 안정적인 고시 같은 걸 보라고도 안 한다. 결혼하라는 말도 안 하기로 했다. 아들 세대 앞에놓인 세상 형편이 자신이 젊을 때의 기준과 다르다는 걸, 아들의 설명을 듣고 인정한 뒤에 일어난 변화였다. 자신과 분리되려는 아들의 모습을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서로의 차이를 알게 되었고, 거리를 지키게 되었다. - P17

평소 같았으면 선숙은 거침없이 생각을 털어놓았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신중해야 했다.
막무가내. 어찌 보면 자신의 지난 삶에서 선숙이 일을 해결하는방식이었다. 남편과 아들을 대할 때도 그런 면이 없지 않았다. 신중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있고, 그때는 ‘나‘가 아니라 관찰자의시점으로 자신의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고 배웠다. 누구에게? 영숙언니에게 아들과 대화의 물꼬를 튼 시점에서 얼마 안 지나 다시 성질이 끓어오르던 찰나, 그녀의 주의 깊은 조언으로 아들에게 막무가내 따지는 버릇을 잠재울 수 있었다.
이후 선숙은 영숙 언니에게 고맙다고 밥을 샀고, 당시 유행하던마라탕이란 걸 먹으며 한바탕 수다를 떨었다. 조언 덕에 아들과 관계가 한결 나아졌다는 말에 영숙 언니는 그런데 그게 도대체 자기문제에는 안 먹히는 게 수수께끼라며 풀이 죽었다.  - P27

취준생 3년 차에 접어드는 소진은 그동안 수많은 면접에서 떨어졌다. 서른 번이 넘고 나서는 더 이상 낙방 횟수를 세는 걸 포기했다. 학점도 스펙도 나쁘지 않았다. 영어 성적은 최상급이었고 프리토킹도 가능했다. 하지만 구직 전선에서는 점점 후퇴해 밀려나고있었다.
1년 차 때는 면접에서 많이 떨어졌다. 2년 차에는 서류 전형에서도 많이 떨어졌다. 3년 차인 지금은 어디서부터 얼마나 떨어질지가늠도 안 됐다. 딱지가 앉은 거 같아도 늘 쓰라렸다. 그렇게 떨어지고 떨어지다 보면 서울에서도 떨어져 나가겠지. 멀리 더 멀리 떨어져 나가 목포의 고향 동네로 돌아가겠지.
어쩌면 소진은 그날이 올 때를 기다리며 무모한 도전을 이어가는 듯했다. 그렇게 완전연소 하고 나면 귀향해도 후회가 없을 거란명분, 그 명분이 소진을 서울에서 버티게 하는 이상한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었다. - P48

근배 씨가 다시 자갈치를 아작 씹었다. 소진은 연갈색 음료를 마저 비웠다. 그런 다음 꾸벅 인사하고 몸을 돌려 출입문으로 향했다.
"가물치 씨!"
근배 씨의 하이 톤 외침에 소진은 문을 잡고서야 했다.
"이제 소진 씨 내가 가물치라고 부를 겁니다. 힘센 가물치 씨. 그러니까 호구로 살지 말고 포식자로 살라고요. 알았죠?"
소진은 대답 대신 유리문을 있는 힘껏 열어젖혔다. 사우나 같은열대야의 밤으로 걸어 나갔다. 열기와 객기를 연료로 삼고 싶었다.
그러자 누구 하나 함부로 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오기가 끓어올랐다. 진짜 가물치가 된 듯했고 자정의 어둑한 골목길도, 남영역 굴다리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아빠가 일하다 돌아가신 낯선 이 도시도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 P78

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가게를 마친 뒤 편의점 야외테이블에 앉아 봄바람에 묻은 벚꽃 내음을 맡으며 늦게까지 소맥을 기울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날이 더워지면서 확진자가 늘어나더니, 가게도 편의점도 밤 열시면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놈의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조치로 인해 가뜩이나 외로운 최 사장은 더욱 고립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진짜 죽을 맛이다.
지난해 봄, 코로나가 터졌을 때만 해도 연말쯤 되면 어떻게든 잡히겠지 했다. 미국이고 영국이고 선진국들이 백신도 개발하고 치료제도 개발할 텐데, 그리고 그걸로 돈을 벌려 할 테니 머지않아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2020년이 끝날 때까지 역병은 잦아들기는커녕 더욱 심해졌고, 영업 제한과 거리두기는 단계를 바꿔가며 점점 정교해졌다. - P83

손님들은 어떤가? 10년 전 단골 어르신들은 이제 나이가 들어좀처럼 못 오시고, 주 고객이던 인근 대학 교수와 교직원들은 새로생긴 맛집들로 발걸음을 옮긴 지 오래다. 무엇보다 이 상권의 메인소비자인 대학생들에게 소고기는 비싼 음식인지라 외면 받고 있었다.
아무튼 가게라는 건 돈만 버는 게 아니라 삶의 터전이자 직원과 손님들 모두 행복한 곳이 되어야 하는데, 이제 그런 것들이 다 사라진 이곳은 망해가는 가게의 특징들만 독버섯처럼 올라오고 있었다.
고기 장사로 30년간 IMF, 사스, 구제역, 광우병 소고기 파동, 메르스 등 수많은 고비를 넘긴 최 사장이었지만, 이 전 지구적 재난앞에서는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 P88

세상은 불공평하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아빠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빠는 비 오는 날만 아니면 늘 현장에 나가지만 버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하청 받는 오야지 밑에서 일하는 잡부여서 그렇다고하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늘 그 사람들 욕을 한다. 치사하고 더럽다고. 그리고 뒤이어 꼭 이 말이 이어진다.
민규, 너 인마 공부 열심히 해. 공부 못하면 나처럼 여름에 더운 데서 일하고 겨울에 추운 데서 일하는 거야.
세상은 진짜 불공평하다. 환경미화원 엄마를 봐도 역시 알 수 있다. 엄마는 용역회사 소속으로 파견 가서 일하는데, 정작 일하는 엄마와 동료 미화원보다 용역 사장이랑 직원들이 돈을 훨씬 더 많이번다고 한다.  - P125

"맙소사. 어떻게 돈이 안 중요해요!"
"진짜 안 중요해. 그러니까 너한테 오늘 독서토론 잘했다고 간식도막사줄 수 있다고. 자, 뭐 먹을래?"
돈가스 샌드위치는 역시 맛있었다.
민규가 돈가스 샌드위치를 먹는 동안 아저씨는 손님을 받고, 토론을 하느라 밀린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음료를 새로 채우고 진열대에 과자와 컵라면도 채웠다. 그러고 나서 안 팔린닭튀김은 먹어서 처리해야 한다며 전자레인지에 데우기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군침이 났다. 아저씨가 닭튀김도 먹고 가라고 했지만,
눈치가 있는 민규는 냉큼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조용했다. 열 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었고 아빠는 잠든 듯했다. 민규는 내일도 비가 안 오길 바랐다. 그래야 아빠가 새벽에 일을 나가고 엄마랑 싸울 일 없이 조용할 테니. - P145

인수인계 첫날부터 근배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카운터 안은 마치 비행기 조종실처럼 복잡해 보였다. 정면의 포스기 화면은계기반 같았고, 우측에는 점포 운영 내역이 잔뜩 뜬 모니터가 있었고 그 아래엔 점포 경영 시스템 태블릿과 검수기, CCTV 본체, 인터넷 모뎀, 와이파이 기기, 오디오 기기, 프린터가 촘촘히 자리하고있었다.
왼쪽으로는 커피머신과 튀김기가 언제든지 커피를 뽑고 닭을 튀길 기세였고, 카운터 아래엔 수많은 잡동사니들이 빼곡히 박혀 있었다. 그리고 카운터 주위를 모자이크 처리하듯 수많은 공지사항이 다닥다닥 붙어 포위하고 있었다. - P171

유통기한 체크
튀김 상미시간 등록
커피 찌꺼기 비우기
이번 주 점격 통합지표 확인
돌발상황 대처 매뉴얼 숙지
FF 배송매니저 연락처
CK 택배기사 연락처
용모/복장 점검
접객 10계명 연습
주류/담배 판매 시 신분증 꼭 확인
마스크 착용
밤 열시 이후 매장 내외 취식 금지 - P171

결제 전 통신사 할인/적립 확인
온장고/냉장고 보충 점검
상품진열/보충시 페이스 업
카드 분실 주의
봉지 유상판매
아니 편해야 할 편의점이 왜 이리 복잡하고 불편한 거지? 점원입장이니 그럴 만도 하지만 생각보다 생소한 단어도 많고 조작법을 습득해야 하는 기계도 많았다. 시재 점검과 입고된 물류 검수는틀리기 일쑤였고포스기 사용법은 유튜브를 틀어놓고 수차례 연습해야 했다. - P172

"만화점이라…… 재밌는데요. 만화책도 있을 것 같고. 하하."
곽 선생은 이미 근배를 파악했는지 반응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백화점이 영어로 디파트먼트 스토입니다. 백화점은 물건이 많지만 파트가 나뉘어 있어 해당 점원이 자기 파트만 담당하면 되죠. 하지만 편의점은 혼자서 수많은 물건을 팔아야 합니다. 그러니 일이 쉽지 않겠죠? 나도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세상에는 사소한 일 같아도 필요하지 않은 일이 없구나 느끼며 많이 배웠습니다."
근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이 어르신 내가 말 많이 하니까 지지 않으려고 자기도 말씀을 많이 하시네.‘ 그럼에도 새겨들을만한 말이었다. 근배는 편의점 일을 만만히 여겼던 자신의 태도를 반성했다. - P173

엄마를 보낸 후 갖은 일을 전전하며 살게 되자 사는 건 그저 사는것일 뿐 특별한 의미 따위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걱정은 독이고비교는 암이었으며, 과거는 끝났고 미래는 없고 오직 현재만 있을뿐이었다. 지금 죽는다 해도 후회는 없었으며 남은 인생은 언제든반납할 용의가 있었다.
그즈음 코로나가 터졌다. 갑갑한 걸 못 참는 엄마가 이 답답한 재앙 전에 하늘나라로 간 게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엄마, 살아 계셨으면 매일 마스크를 쓰고 손 소독제를 로션처럼 바르고 어딜 가나 검문 받듯 방문 기록을 남겨야 하는 꼴을 겪어야 했어요. 하늘나라는안 그렇죠? 꽤 지낼 만하시죠? - P194

2021 년 새해가 밝았다. 왠지 태양도 마스크를 쓰고 일출할 것 같았다. 소의 해이고 백신이 소에서 기원한 단어라며 방송에서는 희망찬 전망을 떠들고 있었으나 근배는 별다른 희망을 품지 않았다.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던 즈음 알바를 시작해 수많은 일을 전전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들은 마스크가 숨통을 막은 것처럼 힘들어했다. 일자리는 희박하거나 불안했고, 더럽거나 위험했다. 부유한 누군가는 마스크도 좋은 걸 쓰고 거리두기로 인해 자기만의 시공간에서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었겠지만, 근배와 같은 도시 빈민에게 코로나 시대는 전시체제와 다름없었다. 생존에대해 고민해야 했고 감염되고 나면 부상병처럼 후송되어 재기가불가능한 꼴이 되었다. - P203

물음표갈고리들이 엉킨 낚싯바늘이 되어 민식의 뇌를 팽팽하게당기고 있었다. 덕분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는데, 풀어줄 그 누구도없었다. 누나도 매형도 이마를 손으로 받친 채 물만 들이켜는 그를바라보기만 했다. 그들은 민식에게 고민해봐야 투항하는 수밖에없다고 침묵의 시위를 하는 것 같았다.
어찌어찌 일어나 식당을 나왔다. 누나가 생각해본 뒤 연락하라고 했다. 매형이 보양식이라도 사 먹고 기운 내라며 봉투를 건넸다.
둘이 주차장으로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민식은다가온 택시를 향해 겨우 손을 들어 보였다.
집에 와 봉투를 열어보니 2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보양식만 사먹기엔 큰 액수다. 돈은 늘 무언가를 말한다. 의도가 없는 지출은없다. 남의 돈 빼먹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사업을 한 민식은 잘 알고있었다. 200만 원 먹고 자기들 편에 서라는 건데, 그건 민식의 몸값을 후려치고 뺨도 후려치는 꼴이었다.  - P224

여름이 끝났다. 난류와 한류가 섞이듯 가을밤의 따스하면서 선선한 기운이 밤의 출근길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었다. 자기 가게에알바하러 가는 기분은 늘 묘했다. 오너 알바라는 금보 형이 만든 요상한 직책이 민식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듯했다.
딸랑.
밤 열시다. 근무 조끼를 입고, 시재 점검을 하고, 저녁 알바 학생에게 인수인계를 받은 뒤 검수를 끝낸 센터 물류들을 정리한다. 열한 시가 되면 신선식품이 들어오고, 자신이 요청해 들인 신상품을확인하면 일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느껴져 뿌듯하다. 그리고 그 상품이 잘 팔리면 성취감이 들고 일의 재미를 만끽한다.
새벽이 되고 편의점에 고요가 찾아오면 오히려 머리가 맑아졌다.  - P245

진열대에 물건을 정돈하듯 그는엉망이 된 기억 속 오와 열을 맞췄다. 그러던 중 엄마가 빌라를 떠나 양산 이모네로 간 게 코로나 때문이 아니란 걸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엄마는 기저질환이 있었다. 엄마는 코로나를 두려워했다. 엄마는 그래서 이모네로 떠났다.
그건 엄마의 핑계였고민식의 자기합리화였다.
엄마는 민식과 함께 지내는 게 힘들어 떠난 것이었다. 그는 이제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두 해 전 겨울에 다짜고짜 엄마의빌라로 왔고, 맥주 사업을 한다고 설치고 다니고, 편의점을 팔자고 엄마를 들볶은 것을. 엄마 집에서 삼시 세끼 꼬박 받아먹으며 사업자금 지원 안 한다고 투덜댄 것을 기억해냈다. - P246

고통스러웠다. 죄스러웠다. 어떻게든 되돌려야 했다.
근무를 마친 어느 날 아침, 민식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에게 ‘오너 알바‘로 한 달째 야간근무 중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이미 소문 다 났다며, 네가 잘하고 있어 기쁘다고 했다. 민식은 백신2차까지 맞으셨냐고 물었다. 엄마는 2차는 좀 아팠는데 그래도 이제 괜찮다며, 그런 것도 물어보고 기특하다고 또 칭찬을 했다.
민식은 떨리는 목소리를 다잡으며 말했다.
"엄마. 이제 돌아와."
엄마는 말이 없었다.
"내가 데리러 갈게. 내일이라도 당장. 내가 이제 낮에 자고 밤에 - P246

일하러 가니, 엄마랑 집에서 마주칠 일 별로 없어. 엄마, 나 이제 편의점 도시락도 잘 먹어. 밥 차려줄 것도 없고 가게 팔겠다고 설치지도 않을게. 그러니까 이제 돌아와 내가 데리러 갈게. 응?"
여전히 전화기 너머에는 침묵이 그득했다. 민식은 울먹임이 저너머로 들리지 않게 이를 악물었다. 그때 엄마의 차분한 목소리가들려왔다.
"데리러 갈게 아니고, 모시러 갈게라고 해야지."
"으응. 모시러 갈게. 엄마 모시러 갈게요!"
이번에도 짧은 침묵이 흘렀다. 잠시 뒤 다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렴." - P247

아들과의 전화를 끊고 나서 잠깐 휘청했다. 다행히 벽을 짚은 뒤천천히 걸음을 옮겨 베란다로 향했다. 베란다에 놓인 갈색 캠핑 의자에 앉으니 녹음으로 가득한 정원이 한눈에 담겨왔다. 지난해 여름에도 여기서 이 아름다운 정원을 바라보던 기억이 났다. 아들의전화를 기다리며. 하지만 아들은 정원 끝 감나무가 가을의 결실을뽐낼 때도, 낙엽이 쌓인 정원에 하얀 눈이 내려앉을 때도 연락이 없었다. 안 풀리는 삶에 지쳐 자포자기한 걸까? 코로나 후유증으로여전히 몸이 불편한 걸까? 마음 나눌 사람이 곁에 없어 답답한 걸까? 아니면 잔소리 많은 엄마가 옆에 없어서 편한 걸까?
수많은 질문과 그 질문에 담을 마음의 소리가 있었지만 나는 침묵했다. 그것이 아들을 위해서인지 나 자신을 위해서인지 모르겠 - P248

다. 다만 우리 둘 모두 고난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1년 하고도 4분의 1의 시간 동안 나는 이곳에서 혼자 아닌 혼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비대면의 시절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즉에필요한 날들이었으나 챙기지 못해 결핍된, 어떤 성분이 담긴 시간에 온몸을 담가야 했다.
네 해 전 남편의 장례를 치른 뒤 나는 하루하루를 평소와 같이 살기 위해 온 힘을 써야 했다. 평범한 삶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랄까,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안간힘이랄까? 편의점을 차린 것도 어떻게보면 분주히 보내야 하는 날들이 필요해서였다. 24시간 내내 불켜진 그곳이 방범 초소인 양 내 삶을 호위하길 원했다. ALWAYS편의점이 남편의 빈자리를 그 이름처럼 ‘언제나‘ 채워주길 희망했다. - P249

팬데믹이 세상을 멈추게 하고 나서야 나는 맹목적으로 지속했던그 시간들에 제동을 걸 수 있었다. 그즈음 편의점의 밤을 지키며 자신을 찾은 한 남자에게도 영향을 받았다. 나는 독고라는 사내의 용기에 감화되었다. 그는 내게 도움을 받았다며 감사해했지만 나 역시 그를 통해 정체된 삶에서 벗어날 기운을 얻었다. 어쨌거나 삶은계속되고 있었고, 살아야 한다면 진짜 삶을 살아야 했다. 무의식적으로 내쉬는 호흡이 아니라 힘 있게 내뿜는 숨소리를 들으며 살고싶었다.
패잔병의 몰골로 아들이 내 스무 평 공간을 찾아온 건 두 해 전이었다. 그럴 때 필요한 게 엄마이기에 따뜻하게 아들을 받아주었다. - P249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하숙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새삼스러웠다.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인 은둔 생활 삶의 큰 쉼표. 이곳이 있기에 가능했고, 이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언니와 개와 함께 산책을 다니던 오솔길 조카와 함께 올랐던 살구나무 많던 뒷동산, 여름에 수박을 담가놓았다 꺼내 먹던 건넛마을 계곡. 모두 잊지 못할 것 같다. 자연과 자연을 닮은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얼마나 마음과몸에 치유를 가져오는지를, 도시에서만 살던 나는 간과했다. 철이면 철마다 산과 바다로 등산과 낚시를 다니던 남편의 행동이 얄미워서였을까, 좀처럼 나는 도시를 벗어나기 싫어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연에 스며들 수 있게 되었고, 슬며시 기댈 수 있게 되었다. - P261

그날 밤 나는 묘한 만족감에 젖어 잠을 청했다. 행복했냐고? 모르겠다. 행복은 바라지도 않는다. 삶의 순간순간에 만족하는 찰나가 잦길 바랄 뿐이다. 같이 있는 동안 언니는 내가 예전보다 느슨해져서 좋다고 했다. 사실 언니와도 같이 지낸 게 수십 년 만이라 걱정이었는데, 그동안 둘 모두 늙고 닳아 여유가 생겼는지 서로를 용인할 수 있었다. 너처럼 의지가 강한 사람은 늙어서도 고집쟁이가된다는데, 생각보다 유들유들해져 다행이라고 한 말은 좀 거슬렸지만 고집은 자기도 못잖았으면서!
나는 상경해 받을 과제에 대해 생각했다. 언니와 조카의 삶에서배운 대로 아들과 효율적인 공생관계를 맺을 것.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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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귄


<뉴욕 타임스>에 프란스 드 발이 쓴 어떤 글에 보노보 원숭이를 간지럽히면 완전히 인간과 같은 반응, 낄낄거리고 몸을 뒤로 빼지만 간지러움을 더 원하기도 하는 등등의 반응이 나온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놀랍고도 절묘한 글이죠. 많은 과학자들이 다른 동물들과 우리의 관계를 객관화하고 싶어 하기에,
우리는 그 어린 유인원이 딱 어린 인간처럼 행동한다는 말을할 수가 없어요. 아니다. 그 유인원은 유인원의 방식으로 반응할 뿐이다, 우린 그에 대해 결코 인간의 표현을 쓰면 안되고, 함부로 의인화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드 발이지적하다시피, 유대감에 대한 공포도 있어요. 우린 유인원이나 생쥐에게 동질감을 가질 수도 없고 가져서도 안 된다는 거죠. 하지만 동질감이 없다면 시가 어디 있겠어요?










때늦게』의 서문 중에서


시는 나무나 강이 무엇인지를 말하려고 시도할 수있는 인간 언어다. 즉, 인간의 능력으로 그 대상에
‘대해서‘ 말하는 동시에 그 대상을 위해서 말한다는뜻이다. 시는 개별 인간의 관계를 어떤 대상(돌멩이든 강이든 나무든)과 관련지음으로써 그렇게 할 수도있고, 아니면 그저 대상을 최대한 진실하게 묘사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과학은 외부에서 정확하게 묘사하고, 시는 내부에서 정확하게 묘사한다. 과학은 밖으로 풀어내어 해설하고, 시는 안으로 풀어내어 함축한다. 둘 다 묘사 대상을 기린다. 우리의 무지나 무책임을 알려주지 못하는 ‘정보‘만 끝없이 쌓지 않으려면 우리에게는 과학의 언어와 시의 언어 둘 다 필요하다.

네이먼


작가님이 인용하신 메리 자코버스의 말 같네요. 자코버스는 "시의 절제된 언어는 아마도 우리가 그런 것들, 움직이지 않는 물체의 고요한 목소리나, 나무의 지각 없는 서 있음 같은것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일 것"이며 어쩌면이 절제된 언어가, 우리가 유대감이나 사색으로 나아가도록돕는 기술의 한 형태일지도 모른다고 말하죠. - P65

르귄


우리가 언어를 ‘기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기술은 사실 도구와 연관되어 있죠. 언어는 우리가 발산하는 무엇이고, 특정시기에 배우지 않으면 안 돼요. 언어는 기이해요. - P65

르 귄


<뉴욕 타임스>에 프란스 드 발이 쓴 어떤 글에 보노보 원숭이를 간지럽히면 완전히 인간과 같은 반응, 낄낄거리고 몸을 뒤로 빼지만 간지러움을 더 원하기도 하는 등등의 반응이 나온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놀랍고도 절묘한 글이죠. 많은 과학자들이 다른 동물들과 우리의 관계를 객관화하고 싶어 하기에,
우리는 그 어린 유인원이 딱 어린 인간처럼 행동한다는 말을할 수가 없어요. 아니다. 그 유인원은 유인원의 방식으로 반응할 뿐이다, 우린 그에 대해 결코 인간의 표현을 쓰면 안되고, 함부로 의인화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드 발이지적하다시피, 유대감에 대한 공포도 있어요. 우린 유인원이나 생쥐에게 동질감을 가질 수도 없고 가져서도 안 된다는 거죠. 하지만 동질감이 없다면 시가 어디 있겠어요? - P67

네이먼


「맥코이 크리크에서의 사색Contemplation at McCoy Creek」이라는시에서는 이런 우주의 주관적 해석과 바깥으로 손 뻗기라는문제를 아주 잘 다루셨어요.


르 귄


이건 철학 시 같은 것이니, 그 시에 대해 한마디 할게요. 전도서관이 없는 하니 카운티 스틴스산에 가서 사색contemplation이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 단어에는 신전temple이 들어가 있고, 맨 앞에 붙은 con은 ‘함께‘라는뜻이죠. 그래서 거기서부터 시작을 했고ㅡ이게 그 시의 중반을 설명해줄 텐데 그때 묵던 집에 책이 한 권 있었거든요.
일종의 백과사전이었는데, 사색이라는 말에 아주 훌륭한 에 - P67

세이가 붙어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 시는 배움의 경험을 담은셈이죠.



네어먼


시 앞부분에 "단어 안의 의미를 찾다가"라는 구절을 보니 미국 시협회와의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던데요. 협회에서 운영하는 잡지에 첫사랑First Loves」이라는 칼럼이 있었는데, 시인들에게 시를 처음 만난 경험에 대해 말해달라고 하는 코너였죠. 작가님은 토머스 배빙턴 매콜리의 이야기시 모음집 고대 로마의 노래 Lays of Ancient Rome」에 대해, 또 스윈번의 시들에 대해 이야기하셨어요. 이런 시들을 통해서 이야기를 시로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지만, 또한 이야기는 때로 단어 자체의 의미를 넘어서며, 개별 단어의 의미가 아니라단어들이 빚어내는 박자와 음악에 더 깊은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하셨죠. 여기에 대해 조금 더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 P71

르 귄


더 깊은 의미란 시가 음악에 가까워지는 지점이에요. 그 의미를 분석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들 수는 없어요. 의미는 거기에분명히 있고, 읽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요. 그건 리듬과 박자이고 그걸 전달하는 소리가 빚는 음악이죠. 이건 너무나 신비로운 일이고 그래야 마땅해요. - P71

맥코이 크리크에서의 사색



단어 안의 의미를 찾다가, 나는 추측했다
그곳 그 성스러운 장소 안에
신전이 있음을 온전히 목격하고,
따라서 목격된 바의 제단이 된 신전.

개울 옆 그늘 속에서 나는 사색한다
이번 초여름 높은 곳에서 흘러온 큰물이
어떻게 물길을 바꿨는지에 대해.
개울 속 커다란 바위 네개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버드나무들은 무성하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범람한 물속에 뿌리를 내리기도 하고 뿌리 뽑히기도 했다.
계곡 위 환한 빛 속에서는
까마귀 한 마리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한다
그림자 날개가 까마귀처럼 고요히
벼랑 끝 바위를 가로지른다. 사색은
나에게 불연속이라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책 안을 보았을 때 나는 발견했다

시간이란 관측되고 구별된 신전-시간 자체와 공간이라는 것을一
네 개로 나뉜 하늘, 벽에 둘러싸인 땅에
성스러운 장소를 만들기 위한 신전.

연속성에 합류하기 위해, 마음은
물을 따라가고, 새들을 좇고,
움직이지 않은 바위를, 절묘한 비행을 관찰한다.
느리게, 침묵 속에서, 말없이,
장소와 시간의 제단이 올라간다.
자아는 사라져, 찬미를 위한 제물이 되고,
찬미 자체도 적막 속에 빠져든다.

네이먼


지난번에 대화를 나눌 때 작가님은 버지니아 울프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는데, 제가 알기로 울프는 시를 별로쓰지 않았어요. 작가님이 어렸을 때 시에 대해서나 소리의 의미에 대해서 배운 바가, 산문을 쓸 때 버지니아 울프가 소리와 맺은 관계가 얼마나 의미심장한지 설명하셨던 바와 비슷한 현상이라고 생각하세요?



르 귄


산문의 리듬 속 소리에 대해 말할 때는 시와 많이 달라요. 어떤 면에서는 훨씬 거칠거든요. 산문 작품의 리듬은 아주 긴박자죠. 물론 문장에도 문장의 리듬이 있어요. 울프는 그 점을 강렬하게 의식한 작가였어요. 어떻게 리듬이 자신에게 책을 선사하는지에 대해 울프가 쓴 글도 있는데, 휴, 설명하기가 어렵군요. 사실상 표현할 어휘가 없는 경험적인 뭔가예요. - P72

적절한 단어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것도 음악을 말하는 것과 비슷해요. 음악에 대해 아무리 떠들어봐야 그냥 연주를 해봐야 하는 거죠. 어떤 사람은 듣고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지못할 수도 있고요.


네이먼


성인이 되어서 사랑하게 된 시인으로는 누가 있나요? 소중하게 여기는 시인은요? - P73

르 귄


릴케를 아주 윗자리에 둬야겠네요. 도움이 필요했던 어느 여름에 매킨타이어가 번역한 『두이노의 비가』번역본을 읽었어요. 그때 제 상태가 아주 나빴는데, 그 시집에 실린 비가 몇편이 저를 어둠에서 끌어낸 것 같다고 느껴요. 적어도 버텨내게 해준 건 확실하죠. 전 독일어를 몰라요. 그러니까 릴케와괴테는 번역으로 마주한 다음에 왔다 갔다 하면서 짚어봐야하죠. 보통은 저만의 형편없는 번역을 해보려고 하는데, 그러면 사전을 들고 독일어 단어를 파고들 수 있어요. 시를 읽는다는 건 아주 힘든 일이지만, 단어를 하나씩 짚어가며 읽는다면, 독일어 명사를 하나도 몰라서 모조리 찾아봐야 하고 동사는 수수께끼 같은 데다 제자리에 놓여 있지도 않으면, (웃음)겨우 다 읽었을 때는 그 시를 제대로 알게 돼요. 자기만의 번역이 만들어지는 거죠. 그래서 제가 아는 언어는 물론이고 잘모르는 언어도 번역하기를 좋아하는 거예요. 노자의 책이 그런 경우였죠. - P73

Muro


Muro fácil y extraordinario,
muro sin peso y sin color:
un poco de aire en el aire,

Pasan los pájaros de un sesgo,
pasa el columpio de la luz,
pasa el filo de los inviernos
como el resuello del verano;
pasan las hojas en las ráfagas
y las sombras incorporadas.

¡ Pero no pasan los alientos,
pero el brazo no va a los brazos
y el pecho al pecho nunca alcanza!




간단하고, 비범한 벽,
무게도 없고, 색채도 없는,
허공에 뜬 공기 같은 벽.

새들은 그 벽을 비스듬히 통과한다;
빛의 흔들거림도,
겨울의 칼날도,
지나가는 여름의 한숨도.
폭풍에 불려 온 나뭇잎들은 벽을 건너
그림자를 그릴 수 있다.

하지만 숨결은 통과하지 못하고,
팔은 뻗어오는 팔에 닿지 못하고,
숨결과 숨결은 영영 만나지 못한다.

르 귄


독재자들은 언제나 시인들을 두려워하잖아요. 시인은 정치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여기는 많은 미국인에게는 이상해 보이겠지만, 남아메리카나 다른 독재 치하의 나라에서는 사실 조금도 이상하지 않아요. - P83

논픽션에 대하여


지난 10년간 그는 중요해진 유명 인사이자 사상가인 ‘이 세상의‘ 어슐러였다. 같은 기간 동안 어슐러는 구글이 저작권을 무시하고 책을 디지털화할 수 있게 합의한 작가조합에 항의하며 조합에서 공개적으로 탈퇴했다. 또한 많은 이가 전미도서재단 역사상 가장 맹렬한 연설로 꼽을발언도 했는데, 미국 문학에 대한 두드러진 공헌을 인정하는 상을 받으면서 그 기회에 아마존 같은 곳이 책과 저자들을 점점 더 상업화하고상품화하는 현실을 맹공격했다. 어슐러는 소위 포스트 팩추얼 시대무엇이 사실인지 중요하지 않게 된 시대에 사실이란 무슨 의미인가에서부터,  - P85

정부로부터 ‘해방‘하겠다는 이유로 민병대가 오리건주 남동부의 야생동물보호구역을 점령하는 시절에 과연 ‘공유지‘란 무슨 의미인가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많은 문제를 두고 벌어지는 전국적 담론에서 중요한 구성원이 되었다. 또한 같은 시기에 어슐러는 작가로서 초기에 겪은 어려움을 나누고, 어느 웹사이트 포럼에서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했으며,
블로그에 고양이 파드의 ‘회고록‘을 연재하면서 그의 삶을 다른 식으로도 보게 해줬다.
그러니 우리의 세 번째 대화로 논픽션 쓰기를 이야기하고자 라디오 방 - P85

송국이 아니라 어슐러의 집에서 만난 것도 어울리는 일이었다. 우연히도 어슐러의 삶과 작가 경력에 대한 다큐멘터리 촬영을 돕고 있었던KBOO의 오후 뉴스 코디네이터 에린이 우리 대화를 녹음해주겠다고 자원했다. 나는 예린과 함께 그 집으로 갔고, 우리는 야외 녹음으로서는최상의 품질이 나오는 안락하고 책이 가득한 2층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도 세상이 계속 끼어들기는 했다. 우리는 트럭이 가까이 지나갈 때도 멈추고, 옆 침실 안의 제일 좋아하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이게다 무슨 소란인가 확인하러 나온 파드에게 인사하느라고도 멈췄다.
내가 그랬듯 독자들도 어슐러가 소설과 시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고,
선언과 주장의 세계에서는 좀 더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어둠의 왼손」에서 어슐러는 "어떤 질문이 대답할 수 없는 것인지 배우고, 그런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  - P86

이것이야말로 압박과 어둠의 시절에 꼭 필요한 기술이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세이, 문학비평, 강연에서-과학과 환경에 대해서든, 구글과 아마존에 대해서든, 페미니즘과 문학의 정전에 대해서든 자신의 관점을 전달하는 이영역에서 어슐러는 목소리가 없는 이들을 변호하고, 모든 예술가, 아니모든 사람의 내면에 있는 답 없는 존재를 대변해 말하는 것 같다.
논픽션에 대한 이 대화를 끝내면서 나는 소설, 시, 논픽션이라는 세 장르 모두에 이렇게 깊은 역사를 지닌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드문 일인지 말했다. 지금까지의 여정이 얼마나 특별했는지도. 사실은 달리 누구와 이런 일을 또 할 수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대화를 책으로 만들어야겠는데요!" 어슐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하여 이 책이 나왔다. 어슐러 K. 르 귄의 사색이 우리의 현실이 되고, 세상에 나온 오브제가 되어 우리 손안에 펼쳐졌다. - P86

르 귄


우선 제가 읽을 수 있는 글이요. 나이가 많아서이기도 할 거예요. 제게는 서사가 필요한데, 사실 언제나 서사가 필요했어요. 추상적인 생각은 잘 읽지 못해요. 그러니까 자서전과 전기, 지질학 같은 과학을 읽는 경향이 있죠. 역사 속의 이야기를 전하거나, 역사 자체를 말하는 논픽션요. 추상적이거나 이론적인 글은 잘 읽지 못해요. 특히 철학에는 애를 먹어요. 대학 신입생 때 철학 수업을 들었는데요. 그때는 필수로 들어야했거든요. 저도 철학이 좋기는 한데 도무지 머리에 남지가 않더라고요. 도저히 머리에 담아둘 수가 없어요. 반드시 이야기가 있어야 해요. 우화라면 저도 기억하거든요. - P90

네이먼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서문에서도 지금 하신 말씀을 넌지시 언급하셨죠. 소설 쓰기와 시 쓰기는 자연스럽고, 쓰고 싶기도 하며, 쓰면서 충족감을 느끼고 또 그 글의정직성과 품질을 판단할 수 있다고 느끼지만 논픽션은 그럴수가 없다고요. 논픽션 쓰기는 업무처럼 느껴지는 데다, 소설과 달리 글이 다루는 주제에 대해 훨씬 잘 아는 사람들이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거라고요. 그런 심한 불안을 느낀다면 어떻게 든든한 토대를 찾고, 또 에세이 한 편이 제대로 완성되었는지 그 여부를 아시나요? - P90

르귄


시작하기가 힘들어요. 끝도 없이 첫 페이지를 구겨서 버리다가 겨우 시동을 걸 수 있게 되죠. 언제 끝났는지 아느냐는 문제는 가끔 정말 어려운데요. 몇 년 전에 여자 어부의 딸TheFisherwoman‘s Daughter」이라는 글을 썼는데, 그 글을 들고 강연에 나갈 때마다 청중들이 피드백을 어찌나 많이 주는지, 매번 글을 다시 써야 했어요. 결국 전 그냥 "그만! 이젠 다시 쓰기를 그만해야 해!"라고 말하고 그대로 출간했어요. 하지만그건 어떤 글을 그 자체로 완성한 게 아니라, 그저 어느 선에서 멈춰야 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전 의견을 담아내는 글이라면 어느 경우에나 글 끝에 꼭 문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느껴요. - P91

네이먼


그 책에서는 특히 예술 작품 속에서 산다는 것」이라는 에세이를 가장 좋아하는 글로 꼽으시는데요. 드물게 누구의 의뢰없이 쓰신 글이기도 하죠. 순전히 작가님이 쓰고 싶어서 쓰신글이에요. 이 글을 쓰는 과정에 대해서 무척 흥미로운 말씀을하셨는데요. "나는 소설을 쓸 때처럼 생각의 직접적인 수단이나 형식으로서 글을 이용할 수 있을 때라야, 산문을 제대로이용하고 있다고 느낀다. 내가 알거나 믿는 바를 전하는 수단으로서도 아니고, 메시지 전달의 수단으로서가 아니고, 쓰기 전까지는 몰랐던 뭔가를 초래하는 탐구이자 발견의 여행이 될 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에세이를 구성하실 때의탐구 과정에 대해 조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독자로서 그글의 즐거움 하나는 작가님과 같이 탐구하는 느낌, 작가님과같이 발견하는 느낌이었다는 걸 알기에 하는 말입니다. - P91

르 귄


아마 그 글은 저에게 자서전에 가장 가까운 글일 거예요. 제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제가 열일곱 살에 떠나기는했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다시 찾던 집으로 돌아가죠. 그러니 전 한참을 돌이켜 생각했어요. 그 글은 늙은 여자가 어린시절을 탐구하는 글이기도 해요. 내가 살았던 곳, 단순하게는집이면서도 어린 나에게는 우주였던 그곳이 어땠더라? 전 그곳이 어땠는지, 그곳의 의미와 내게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그곳이 어떻게 저를 빚어냈는지 탐구해보려고 했어요. 그 집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는 걸 아니까요. 그리고 또 제가 너무나 아끼고 사랑했던 집에 대해 쓰는 것 자체가 즐겁기도 했어요. 그 집에 다시 가서 그 집을 생각하는 즐거움이요. - P92

[예술 작품 속에서 산다는 것] 중에서


우리의 메이벡 주택을 어떤 소설에 비유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소설에는 어둠과 광휘가 담겨있을 것이다. 그 아름다움은 정직하고 대담하고 독창적인 구조에서, 영혼과 정신의 상냥함과 관대함에서 솟아날 것이며 또한 환상적이고 기이한 요소들도 갖추고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소설이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나의 생각 중 많은 부분이 결국 그 집에 살았던 경험으로 배운 게 아닌가 싶어진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평생 단어로 그 집을 다시 지으려 애써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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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와 19세기 소설을 읽으면서 자란 사람은 누구나 ‘전지적‘이라고 불리는 시점이 편안하기 그지없어요. 저는 이 방식을 ‘작가‘ 시점이라고 부르는데요, ‘전지적‘이라는 용어는 작가가 모든 것을 안다는 생각을 반영하다보니, 마치 그게 나쁜 것처럼 비판적으로 쓰일 때가 많아서예요. 하지만 작가는결국 이 모든 인물을 만든 저자이고, 창조자죠. 사실 솔직하게 파고든다면 모든 인물이 곧 작가예요. 그러니 작가는 모든인물의 생각을 알아 마땅하죠. 작가가 독자에게 인물들의 생각을 말해주지 않는다면…… 왜일까요? 이건 생각해볼 만한질문이에요. 많은 경우 이유는 그저 작가가 아는 내용을 독자에게 말하지 않음으로써 서스펜스를 자아내기 위해서일 뿐이에요. 뭐, 그것도 정당한 이유긴 하죠. 이건 예술이니까요. 하지만 지금 전 사람들이 선택의 폭에 대해 생각하게 하려는 거예요. 쓰이지 않는 아름다운 선택지가 정말 많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1인칭시점과 제한적 3인칭시점은 제일 쉬운 시점이고, 그만큼 제일 흥미롭지 않은 선택이에요. - P38

한 사람의 마음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옮겨갈 때 그런 일이 일어나죠. 톨스토이와 울프는 황홀하게 해내지만, 어색하게 하거나 스스로도 모르는 채 할 수도있어요.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알고 쓰느냐예요. 시점을 바꾸려면 강렬한 의식과어느 정도의 연습 및 이동 기술이 필요해요. 성공적으로 시점을 이동하면 쌍안경으로 보는 효과, 아니면 그보다 더 여러 개의 눈으로 보는 효과가 생기죠. 어떤 사건에 대해 한 가지 관점을 보여주는 대신, 영화 <라쇼몬>처럼 여러 관점을 제공하는 거예요. 그것도 <라쇼몬>처럼, 이야기 자체를 여러 번반복하지는 않으면서요. 작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게 할수 있고, 복수의 관점은 지금 일어나는 일을 더 어리둥절하게만들거나 더 명료하게 만들죠. 작가가 둘 중 어느 쪽을 원하느냐에 따라서요. 저는 그런 이동을 허용하기 때문에 작가 시점이 모든 시점 중에서 가장 유연하고, 가장 유용하다고 생각해요. 가장 자유롭고요. - P40

이야기는 곧 갈등이라고 가르치고, 언제나 "네 이야기에서 갈등은 어디 있지?" 묻는 것, 이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있다는 뜻이에요. 이야기는 갈등을 다룬다고, 플롯은 갈등에바탕을 둬야만 한다고 말하면 세상을 보는 관점을 심각하게제한하는 거예요.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인 선언이기도 하죠. 삶은 갈등이고, 그러니 이야기에서 정말 중요한 건갈등뿐이라고 말이에요. 이건 그냥, 사실이 아니에요. 삶을전투로 보는 건 시야가 좁은 사회진화론의 관점인 데다, 굉장히 남성적인 시각이기도 해요. 물론 갈등은 삶의 일부죠. 소설을 쓸 때 갈등을 끌어내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단지 갈등이 이야기의 유일한 생명줄은 아니라는 거예요. 이야기는 다른 많은 것을 다루니까요. - P41

전 무엇을 위한 ‘싸움‘, 무엇에 맞서는 ‘전쟁‘ 같은 표현을 피하려고 노력해요. 모든 것을 갈등 및 당면한 폭력의 해결책같은 용어에 밀어 넣는 데 반대해요. 전 노자가 갈등에 관해하는 말을 기억하려고 해요. 노자는 분쟁을 원래 있어야 할곳인 전장에만 제한해요. 모든 인간 행동을 갈등으로 제한하는 것이야말로 드넓고 풍성한 인간의 경험을 빼먹는 짓이에요. - P42

전 그저 문학에서 제일 오래된 형태가 환상성을 갖고 있었다고 짚었을 뿐이에요. 문학은 신화와 전설, 그리고 ‘오디세이‘
처럼 신화화된 영웅담에서 시작하죠. 장르소설이 문학이 아니라고 여기던 시절은 이제 과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제 경우는 장르소설도 『분노의 포도』와 다를 바 없는 문학이라는 주장을 하도 오래 했더니, 다른 방식으로 말하기가 어렵네요.
물론 대부분의 장르소설은 『분노의 포도』만큼 훌륭하지 않아요. 하지만 대부분의 리얼리즘 소설도 『분노의 포도』만큼 훌륭하지 않죠. 장르로 작품을 판단하는 건 그냥 틀렸어요. 어리석은 데다, 낭비죠. 이제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 사실을 알아요. - P43

바로 그거예요. 최근에 ‘북뷰 카페‘에서 했던 서사 소설에 대한 온라인 워크숍에서 저는 몇 번이고 사람들에게 패트릭 오브라이언의 해양 모험소설 ‘마스터 앤드 커맨더』를 비롯한 ‘오브리-머투린‘ 시리즈을 읽어보라고 권했어요. 그 긴 문장, 묘사를요. 해상전투를 어떻게 쓰는지 보고 싶으면 오브라이언을 찾아보라고요. 오브라이언은 놀랍도록 뛰어난 액션 작가예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쓰는 걸까요? 그 부분을 연구할 가치가 있어요.
이렇게 경이로운 글쓰기 사례들을 장르소설에서 찾을 수가있어요. - P45

네이먼


지금 인용할 말에 제가 과도한 뜻을 부여해서 읽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자아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 하신이 말씀에서는 불교철학이 떠오르더군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죠. "어떤사람은 예술을 통제의 문제로 본다. 나는 예술을 주로 자기통제의 문제로 본다. 이런 식이다. 내 안에는 말해지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이 나의 목표다. 나는 그것의 수단이다. 내가 나 자신, 나라는 자아, 나의 소망과 의견, 나의 정신적인 쓰레기를 치우고 그 이야기에 집중해 따라갈 방법을 찾을 수만 있다면, 이야기가 스스로 말할 것이다." 이건 작심하고 뭔가를 종이에 쓰려는 사람과는 아주 다른 접근법 같아요. - P48

르귄


그래요, 상당히 도가적이죠. 무위無, 또는 하지 않음으로써 하는 것. 아주 수동적인 태도처럼 보여요. 물론 노자는 갈등을 지향하는 서구의 사고방식이야말로 수동적이라고 보죠.
"뭔가를 하지 말고, 그냥 앉아 있어라." 그게 노자가 정말 어려우면서도 정말 유용한 대목이에요. 그냥 앉아 있기에도 수많은 다른 방법이 있거든요. - P48

르귄


[글쓰기의 항해술] 에 썼듯이 ‘금욕‘은 제가 열네 살 때, 소설을 써보려는 시도가 딱히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단어가 너무 많고, 형용사와 부사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고안해낸 방법이에요. 그래서 전 일부러 어떤 형용사도 부사도 쓰지 않은 서술을 한 페이지 꽉 채워서 써보려고 했죠. ‘오직‘이나 ‘거의‘같이 꼭 필요한 단어도부사에 속하니 아주 힘들어요. 그러니 다 잘라낼 수는 없을 때도 있죠. 그래도 ‘~적-ly‘
같은 단어는 다 잘라낼 수 있고, 다채롭고 매력적인 형용사를다 없앨 수도 있어요. 그러고 나면 금욕적이고 소박한 산문이 남죠. 대신 모든 에너지를 동사와 명사에 쏟아야 하기 때문에글이 더 힘 있고 진해져요. ‘금욕‘은 제가 가르치는 거의 모든 워크숍에서 하는 연습방법이에요. 그리고 다들 그걸 싫어하죠! 그래도 마지막 연습인 이른바 ‘끔찍한 일‘ 만큼 싫어하진 않아요. 자기 글을 가져다가 절반으로 줄이면서, 그 절반의 양으로 똑같은 내용을 말하는 연습이거든요. - P49

이 워크숍을 하다 보니, 작가 생활 말년인 지금에 와서 사람들에게 제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말하는 게 제게도 도움이 되는 듯합니다. 너무 자기중심적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지망생들도 거의 모든 작가가 좌절과 끔찍한 자기 의심을 경험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을 테고 그 점을 알아두면 가치가 있을지도 몰라요. 작가들은 혼자 작업할 때가 워낙 많아서 그런지, 대부분의 예술가보다 더 스스로를 의심하는 경향이있어요. 그리고 출간은 만만찮은 장벽이죠. 시작할 때 저는 어쩌다 한 번씩 시를 발표할 수 있었어요. 독자가 여덟 명, 아홉 명쯤 되는 아주 작은 시 잡지였지만, 그래도 인쇄가 되긴했죠. 하지만 소설은 하나도 팔지 못했어요. 6년인가, 7년 동안 꾸준히 단편과 장편을 써서 세상에 내놓으려고 했지만 아무 데도 싣지 못했죠. 친절한 거절 쪽지는 잔뜩 받았고요 - P50

사실 저는 작가가 되는 데에, 제 글에 전념하고 있었고 자신감인지 오만함인지가 있었기에 계속할 수 있었어요. ‘난 해낼 거야, 그것도 내 방식으로 해낼 거야.‘ 그런 생각에 매달렸죠. 그리고 펑, 마침내 뚫었어요. 일주일 사이에 단편 두 개를 팔았죠. 하나는 상업 잡지였고, 하나는 작은 문학잡지였어요. 일단 살짝이라도 열리고 나면 문이 계속 열려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작품을 어디에 투고할지 알기가 쉬워지는 거죠.
제 단편은 전통적인 리얼리즘이 아니라 비현실적인 요소가 - P50

있을 때가 많았고, 전 판타지와 SF 잡지들은 제 글을 읽고 "이게 대체 뭐야?"라고 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전통 문학시장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열린 마음이 그곳에 있었죠. 이렇게 한번 전진하고 나니 그 후에는 느리지만 꾸준하게 글이 채택됐죠.
물론 그러고 나서도 에이전트를 얻기 전까지는 계속 제 글을투고했는데, 그건 힘든 일이에요.
그리고 이건 제가 지금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는 영역이기도 해요. 인터넷과 전자출판, 자가 출판과는 너무 달라서요. 예를 들어 자가 출판에 대해서는 양가적인 감정이라는 말조차 할 수가 없어요. 자가 출판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작가를 실제로 어디로 데려가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볼 뿐이에요. 홍보망도 없고, 작품을 알릴 방법도 없이 자가 출판을 하고, 광고주들에게 팔지도 않겠다고 선택한다면. ..? 전 그냥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자기 작품이 인쇄된걸 보면 정말 좋기는 하지만, 주위 사람들과 친척들 말고는 아무도 읽지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죠? 저는 모르겠어요. 이 시점에서는 아무도 누군가에게 확고한 조언을 해주지 못해요. 우린 혁명기를 살고 있어요. 이 혁명 이후에 출판이 어떻게 정착할지짐작해볼 수밖에 없죠. 정착하기는 할 테니까요. - P51

시에 대하여


어슐러와 첫 인터뷰를 하기 전, 아내와 나는 워싱턴주와 캐나다 국경선근처에 있는 노스 캐스케이드 국립공원에 하이킹을 하러 갈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러나 태평양 북서부에서 여름의 새로운 기준이 되어버린산불이 공원을 닫아버렸고,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 대안을 찾아 헤매야했다. 나는 어슐러가 오리건주 남동부제일 구석의, 외딴 고지대 사막에 있는 스틴스산을 오랫동안 사랑했음을 알았다. 어슐러의 소설 『아투안의 무덤의 세상에도 영향을 미쳤고, 시와 사진이 함께 수록된 협업작품집이었던 『이곳에 나와Out Here 에도 영향을 미친 풍경이다. 아직만나보지도 못했지만 나는 어슐러에게 전화를 걸어서 혹시 우리의 휴가를 구해줄 만한 제안이 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 P53

"어두운 하늘‘ 알아요?" 어슐러는 신이 나서 정보를 공유했다. "미합중국에 남은, 진정한 어둠을 경험할 수 있고 어떤 광공해도 없는 하늘 아래에서처럼 별들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거든요?" 어슐러는 바로 그 하늘 아래에서 보낸 무수한 밤의 경이로움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곧 아내와 나는 ‘그곳에 나가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눈부신 검은 하 - P53

늘 아래 아직도 야생마들이 돌아다니는 지역, 스무 명도 안 되는 작은마을 안, 다섯 세대째 오리건 사람이 운영하는 호텔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어슐러와 찰스가 보냈다고 해요." 어슐러는 그렇게 말했고, 그곳에 사는 보기 드문 사람들은 우리를 보살펴줬다.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지역에 처음 찾아온 백인 정착민들까지 쭉 이어지는 농부와 목장사람들이었다. 나와 아내는 그 ‘타오르는 정적‘과 ‘끝없는 빛의 심연‘ 아래 나란히 앉아서, 세상과 우주 속의 우리 자리를 생각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이 어두운 하늘과 그 하늘이 밝혀주는 사람들을 통해 어슐러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어슐러와 내가 직접 얼굴을 마주하기 한참 전에 말이다. - P54

이제 나는 어슐러의 시를 생각할 때 이 순수한 하늘과 몇 세대나 그 하늘 아래 살아온 사람들을 제일 많이 떠올린다. 어슐러의 소설을 생각할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이 상상이라면, 어슐러의 시에서 제일 많이떠오르는 말은 사색이다. 어슐러는 SF 시나, 상상 속의 다른 세상에서일어나는 시를 쓰지 않고 이 세상 속 우리의 자리를 사색한다. 하늘에서 인간의 빛을 제거해 다시금 ‘영원함을 볼 수 있는 하늘이 되게 한다면, 영양과 코요테와 펠리컨과 맹금류가 인간의 수를 훌쩍 넘는 땅에서시간을 보낸다면, 어쩔 수 없이 어떤 의미에 대한 질문들이 솟아오른다. 비인간 타자, 즉 짐승, 새, 식물, 땅 자체와의 진정한 유대감이란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어떤 도구와 기술 이야기와 언어들이 세대에서세대로 전해질 가치가 있을까? 우리가 수수께끼와 경이, 우리가 알지못하는 것. 알 수 없는 것들과 맺어야 하는 적절한 관계는 무엇일까?
어슐러의 세상은 어둠과 빛이 서로의 대척점에 있는 마니교의 세상이아니다. ‘음양‘은 ‘어둠과 빛으로 번역될 수 있고, 도가의 개념과 비슷 - P54

하게 어슐러에게도 이런 반대 항은 사실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이며 서로 얽혀 있고 서로에게 의존한다. 어스시의 사람들은 도가 사상 같은시노래들을 쓰고 전했는데, 이러한 그들의 문화는 그 시를, ‘어둠과빛과 그 안에서 사람들이 차지한 자리를 사색하기 위해 세대를 넘어전하기로 했다. 그리고 어슐러는 그중에서 발췌한 시 한 편을 어스시라는 세상을 우리에게 소개하는 책의 제언으로 삼았다. 여전히 타자와의조화와 균형을 위해 노력하는 세상을 말이다.

오직 침묵 속에 말이,
오직 어둠 속에 빛이.
오직 죽어감 속에 삶이 있네.
텅 빈 하늘을 나는
매의 비행은 찬란하여라. - P55

우리가 스턴스에서 여름을 보낸 후, 여름이 올 때마다 산불은 더 심해지고 더 멀리 퍼졌다. 자연에 대한 사색은 이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 하늘, 타자성을 비추고 우리가 경외심에 멈춰서서 사색하도록 하는 하늘이 아니라, 우리가 밝힌 빛과 우리 자신만을 반사해 비추는 하늘을 계속 올려다보는 한, 자연과 유대감을 자아낼 기회는 줄어들기만 할 것 같다. 그 기회를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시, 그중에서도 특히 어슐러의 시가 발휘하는 관심 기울이기다. - P55

해안가의 별빛
(코스트 스타라이트 노선)을 타고서


가는 길, 넓은 계곡 속
아침 강물에서 떠오르는
하얀 펠리컨들을 보았지.
오는 길, 깊은 산맥 속,
구름에서 조용히 떠오르는
눈 덮힌 하얀 나무들을 보았지.
무겁고, 고상하고, 엄숙한
날개의, 나뭇가지의, 하얗게 써내는 파괴의 몸짓을.

애플게이트 하우스 앞, 작은 인디언 막자


조밀하고 무겁고 결 고운 검은 현무암
강물처럼 매끈하게 닳아
양쪽 끝이 둥글고 무딘 원통 모양의, 도구:절묘한 중심부나 그 전체적인 곡선
손에 들어맞는 그 모양을 만져보면
몇 년이고 몇 년이고, 손이, 여기를 쥔 여자들의 손이
그 모양을 빚어냈다는 걸 안다
그 무게가 딱 얕고 우묵한 그릇에 떨어지게 쥐고
씨앗을 짓이기고 들어 올렸다 다시 떨구면서부드럽고 무지근한 노래의 리듬에 맞추어
마침내는 돌 속을 파고들었으니,
내가 집어 들었을 때는
어떻게 잡고 들어 올릴지를 직접 말해주듯내 손을 빠듯 채우는 이 고운 형태로 부드럽게 마모시킨
그 손가락들의 자리에 내 손가락을 놓지.
아래로 떨어지고, 또 떨어지며 노래하고 싶어 하는 이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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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자들」 중에서


벽이 있었다. 별로 중요해 보이는 벽은 아니었다. 다듬지 않은 돌에 대충 모르타르만 발라서 쌓아, 어른은 넘겨다볼 수 있는 높이였고 어린아이라도 기어오를 수 있었다. 도로와 교차하는 곳에 난 문은사실 문이라기보다 그냥 기하학적인 배열이자 하나의 선이었다. 경계선이라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개념은 실재했고 중요했다. 일곱 세대 동안 그 세계에서 그 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모든 벽이 다 그렇듯 그 벽도 양면이 있었다. 무엇이 안이고 무엇이 밖인가는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달려 있었다.

어둠의 왼손』 중에서


그때 나는 새삼스럽게 알았다. 내가 언제나 두려워했고 그래서 에스트라벤을 보면서도 못 본 척해왔던 사실을, 그가 남자일 뿐 아니라 여자라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했다. 두려움이 사라지자 그 두려움의 원천을 설명할 필요도 없어졌다. 마침내 나는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때까지 나는 에스트라벤의 실체를 거부하고 부정했다. 자신은 게센에서 나를 믿는 유일한 사람이면서, 또한 내가 불신하는 유일한 게센인이라던 에스트라벤의 말이 옳았다. 그는 나를 완전한 인간으로 받아들여준 유일한게센인이었다. 나를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또 개인적으로 의리를 다해준 사람이었다. 그러니 나에게도 똑같은 인정을 바라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그동안 나는 도무지 그러려고 하지 않았다. 인정하기가두려웠다. 여자이면서 남자이고, 남자이면서 여자인 사람에게 나의 믿음과 우정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거기에 더해 큰 이야기 진짜 깊이가 있는 이야기를 하는 데특히 관련이 있죠. 하지만 복잡한 문제예요. 현재시제에도 멋지게 들어맞는 용법이 있다는 건 분명하죠. 하지만 최근에는현재시제가 맹목적으로, 이야기를 푸는 유일한 방식처럼 쓰였어요. 다른 글을 많이 읽어보지 않은 젊은 작가들이 많이썼고요. 글쎄, 그건 어떤 이야기를 하기에는 좋은 방법이지만, 또 어떤 이야기를 하기에는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한계를 내재하고 있죠. 전 그걸 ‘손전등 초점‘이라고 불러요. 바로앞은 보이는데 주위는 다 어두운 거죠. 높은 긴장감, 긴박한상황, 본론만 전달하는 글쓰기에는 아주 좋아요. 하지만 엘레나 페란테의 책들이나, 1920년부터 2020년까지의 시간을 다루는 제인 스마일리의 ‘지난 백 년The Last Hundred Years‘ 3부작같은 크고 긴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ㅡ현재시제를 썼다면 그런 책은 제 기능을 못 했을 거예요. 현재시제가 말 그대로 ‘지금‘이고 과거시제는 말 그대로 먼 과거라는 추정은 너무나 순진해요. - P33

헨리 제임스가 제한적 3인칭시점을 아주 잘 구사하면서 우리에게 그 방법을 알려줬죠. 제임스는 소에게서 우유를 잘 짜냈고, 그건 훌륭한 소예요. 아직도 우유를 많이 내놓고요. 하지만 정작 동시대 작품만 읽고, 언제나 제한적 3인칭시점만 읽는 독자는 이야기 속에서 시점이 아주 중요한 데다가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라요. 그래서 제가 사람들에게 울프의 『등대로』 같은 책을 읽고 울프가 어떻게 사람들의마음속을 움직이는지 보라고 하는 거예요. 아니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도 좋죠. 와, 톨스토이가 독자는 바뀐 줄도모르게 이 시점에서 저 시점으로 옮겨가는 솜씨란-정말 우아하거든요. 독자는 어디에 있는지, 누구 눈을 통해서 보는지알면서도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졌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는거예요. 그야말로 달인의 솜씨죠.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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