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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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하나의 전쟁‘이 담긴 네 개의 녹음테이프(이틀간의 대화)를 가지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충격과 공포, 의혹과 경탄. 호기심과 당혹, 연민, 친구들에게 그녀의 이야기 중 몇 가지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뜻밖에도 하나같이 똑같은 반응들. ‘어휴, 너무끔찍하다. 어떻게 그걸 다 겪었대? 그러고도 제정신으로 살 수 있었대?‘ 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전쟁하고는 많이 다르네. 우리가 아는 전쟁은 경계가 확실하잖아. 적과 우리 편, 선과 악, 그런데 이 전쟁은?‘ 하지만 모두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다들 깊은 생각에 잠겨들었다. 아마 나와 같은 생각들이리라. 이미 수천 번도 넘는 전쟁이 이 땅에서 벌어졌음에도(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봤는데, 지구상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전쟁들을 합치면 3천 번도 넘는다고 한다), 전쟁은 여전히 인간사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비밀 중 하나로 남았다. 언제나그랬던 것처럼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거대한 역사를 인간이 가닿을 수 있는 작은 역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야 뭐라도 이해할수 있을 테니까. 할말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탐색하기 간단해보이는, 그리 넓지 않은 이 작은 영토 ㅡ한 사람의 영혼의 공간—가 역사보다 더 난해하다. 알아내기 더 힘들다. 왜냐하면 내 앞에 있는 그건 살아 있는 눈물이고 살아 있는 감정들이기에. 대화하는 중에도 아픔과 공포의 그늘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기에. 순간 스치는 고통의 표정 앞에서 간혹 나도 모르게 ‘사람은 고통이 있기에 아름다운 건 아닐까‘라는 불순한 생각을 품을 때가 있다. 그러고는 나 자신에게 흠칫 놀란다……
길은 오로지 하나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사랑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
P 267, 268

주소가 참 다양도 하다. 모스크바, 키예프, 크라스노다르 지방의 압셰론스크, 비텝스크, 볼고그라드, 얄루토롭스크, 수즈달, 갈리치, 스몰렌스크…… 이 많은 곳을 언제 다 돌아볼 것인가? 이 넓고도 큰 나라에서. 그런데 갑자기 뜻하지 않은 지원군이 나타났다. 기대하지 않은 도움의손길, 우편함을 열어보니 초대장이 하나와 있다. 바토프 장군 휘하 제65군 참전용사들이 보내온 초대장이다. "5월 16일과 17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모임이 있습니다. 전통의식과 의전행사도 있을 예정입니다. 상황이 허락되는 사람들은 다 오기로 했지요. 무르만스크카라간다.
알마티, 옴스크에서 도착할 겁니다. 전국 곳곳에서 모이는 거지요 우리의 광활한 조국 구석구석에서.……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모스크바‘ 호텔 5월은 전승기념의 달이다. 곳곳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고, 사진을 찍는다. 다들 가슴에 꽃을 달았든 훈장이나 메달을 달았든 아랑곳없다. 나는 사람들의 물결 속으로 들어간다. 몸이 둥실 떠오르고 흘러가고 떠밀리다보니 어느새 낯선 세계에 와 있다. - P233

낯선 섬나라에 아는 사람들,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분명한 사실하나를 깨닫는다. 내가 이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것. 이들은 대개 우리사이에서 잊힌 존재이고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제이 세상을 떠날 나이가 되었고 그 수도 점점 줄어들지만 우리는 점점더 많아지니까. 이들은 1년에 한 번씩 다 함께 만남의 자리를 갖는다. 단 한순간이라도 자신들의 그 시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 시간이란 바로 그들 자신의 기억이다.
7층 52호에 5257병원 사람들이 모였다. 모임을 주도하는 사람은 군의관이자 대위인 알렉산드라 이바노브나 자이체바. 내가 나타나자 무척기뻐하면서 방에 모인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시킨다. 마치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 같다. 사실 이 방문을 두드린 건 순전히 우연이다. 완벽한우연. - P234

방에 모인 이들의 이름을 적는다. 외과의 갈리나 이바노브나 사조노바, 의사 옐리자베타 미하일로브나 아이젠시테인, 외과 간호사발렌티나 바실리예브나 루키나, 수술 담당 수간호사, 안나 이그나티예브나 고렐리크, 그리고 간호병들이었던 나데즈다 표도로브나 포투즈나야, 클라브디야 프로호로바 보로둘리나, 엘레나 파블로브나 야코블레바, 안겔리나 니콜라예브나 티모페예바, 소피야 카말디노브나 모트렌코, 타마라드미트리예브나 모로조바, 소피아 필리모노브나 세묘뉴크, 라리사 티호노브나 데이쿤. - P234

‘죽고 싶지 않아!‘ 아니면 ‘씨발‘ 같은 욕을 하거나…… 느닷없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었지‥… 몰다비아 노래...... 사람들은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아. 믿질 않지. 하지만 머리카락 밑에 샛노란 색이 나타나고 얼굴을 따라 움직이던 그림자가 나중에 옷 밑으로 뚝 떨어지는 걸 보게 돼 ...... 사람은 이미 죽었는데 표정은 마치 산 사람 같지 깜짝 놀란 얼굴로 ‘내가 어떻게 죽을 수있지? 정말 내가 죽은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여.
부상병이 아직 들을 수 있는 동안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니에요. 괜찮아요 당신이 죽는다니 말도 안 돼요‘라고 말해줬어. 입을 맞추고 안아주며 ‘걱정 마요, 괜찮아요‘라고 위로도 했지. 이미 숨을 거둬서 눈이 허공을 보는데도 나는 계속 귀에 대고 뭔가를 속삭였어...… 뭔가 안심시키는 말을…… 그 이름들은 기억에서 지워졌지만 얼굴들은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어...…." - P242

"독일군은 여자병사들은 포로로 잡지 않았어..… 바로 총살해버렸지. 아니면 자기 병사들 앞에 끌고 나와 ‘자, 여기 이것들은 여자가 아니다. 추악한 괴물이다‘라고 하거나.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한 총알을 따로 가지고 다녔어. 불발될 경우를 대비해 두 발씩.
우리 간호병 하나가 독일군에게 붙잡혔어…… 하루가 지나 우리가그 마을을 공격해 들어갔는데 사방에 죽은 말이며 오토바이며 장갑수송차 등이 나뒹굴고 있더라고, 독일군에게 잡혀간 우리 간호병을 찾아냈지. 세상에, 눈알이 도려내지고 가슴이 잘려나가서는…… 놈들이 말뚝에 박아놓았더라고. 몸은 살을 에는 추위에 꽁꽁 얼어 새하얗고 머리는 완전히 백발이 되어 있었어. 그 아이는 겨우 열아홉 살이었어. 우리는 그 아이 배낭에서 가족이 보낸 편지들과 고무로 된 작은 파랑새를 발견했어. 애들이나 가지고 노는 장난감 고무새를……" - P243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어...... 어느 마을에 도착했는데, 그곳 숲 주변에 빨치산 병사들이 줄줄이 죽어 있는 거야. 그때 독일놈들이 한 짓을 생각하면 세상에, 지금도 심장이 벌렁거려서 말이 안 나와 다들 갈기갈기 찢겨서는...... 내장은 내장대로 돼지 내장처럼 다 쏟아져나와 있고...... 그렇게들 누워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말들이 풀을 뜯고있는 게 보였어. 안장까지 그대로 얹혀 있는 걸로 봐서 빨치산 병사들말인 것 같았어. 독일군을 피해 달아났다가 다시 돌아온 건지, 아니면독일군이 미처 못 잡아간 건지 알 수가 없더군. 녀석들은 멀리도 안 가고 근처에 머물렀어. 풀이 많았거든. ‘어떻게 사람이 돼가지고 말들이보는 데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 싶었지. 동물이 있는 데서. 말들이 다 보았을 텐데……." - P248

"들도 숲도 불길에 휩싸였어…… 초원에 연기가 자욱했지. 암소와 개들이 불타 죽어 있고..... 냄새가 특이하더라고. 처음 맡는 냄새였어. 그리고 또…… 토마토절임, 양파절임을 담가놓은 동그란 통들까지 불에 타 뒹굴었어. 새들도 불타고, 말들도 불타고…… 많은 게…… 정말 온갖 것들이 다 불타서 길거리에 나뒹굴었어. 우리는 그 냄새에도 익숙해져야 했지…… 그때 알았지. 불은 모든 걸 태운다는 걸...... 심지어 피까지도 태워없앤다는 걸......" - P248

"그걸 어떻게 얘기하나...... 글쎄, 어떻게…… 왜 있잖아…… 늦가을이면 철새들이 이동하는 거…… 길게 길게 무리 지어서. 우리 대포, 독일군 대포가 한꺼번에 불을 뿜는데 새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날아가는 거야. 새들이 어떻게 비명을 지르겠어? 어떻게 새들에게 ‘이리로 오면 안 돼! 여기 오면 죽어!‘라고 알려줘? 어떻게? 끝내 새들은 계속 땅으로 떨어졌어......" - P249

전쟁전에 우리 마을에 꾀꼬리들이 참 많았거든.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2년 동안 아무도 꾀꼬리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지. 온 마을 땅이 뒤집혀 있었으니까. 사람들이 땅이란 땅은 전부 고릿적 똥거름 주던 시절처럼 싹 갈아엎었거든. 3년 후에야 꾀꼬리가 나타났어. 어디에 있다온 걸까? 아무도 모르지. 아무튼 녀석들은 3년이 지나서 자기들 살던고향땅으로 돌아왔어.
사람들이 다시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자 꾀꼬리도 다시 날아든 거야......"


‘난 들꽃을 보면 전쟁이 떠올라 전쟁 때 우리는 꽃을 꺾지 않았어. 꽃을 꺾는다면 그건 누군가의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서였지…… 작별을고하려고....."


"아이고, 아이고, 얼마나 추악한지.....… 그놈의 전쟁이란 게...… 먼저 간 우리 동무들이나 추모하자고......" - P252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
나직하면서도 자주 당혹스러워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기억난다. 사람은 자기 자신과 대면할 때, 그리고 과거에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 앞에섰을 때 놀라고 당황한다. 과거는 사라졌다. 과거는 뜨거운 소용돌이를일으키며 눈을 멀게 하고는 자취를 감춰버렸지만, 사람은 남았다. 평범한 보통의 삶 한가운데 사람만 남은 것이다. 자신의 기억 외에는 주위의모든 것이 평범하다. 나 역시 목격자가 되어간다. 사람들이 무엇을 기억하는지, 어떻게 기억하는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또 무엇을 기억에서 지워버리거나 기억의 저 깊은 구석으로 밀쳐버리고 싶어하는지.
그리고 장막을 쳐버리고 싶어하는지를 보고 듣는 목격자, 적절한 말을찾지 못해 절망하면서도, 시간을 두고 생각하면 온전한 표현을 찾아내리라는 희망의 끈을 붙잡고 과거를 되살리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본 - P255

다. 그때는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얼마나 보고 싶어하고 이해하고 싶어하는지를. 이들은 자신을 들여다보며 자신과 새롭게 만난다. 이들은 이미 두 사람이다. 저 사람이면서 이 사람이다. 젊은이면서 늙은이다. 전쟁터에 있는 사람이면서 전쟁 후의 사람이다. 오래전에 전쟁이 끝난 사람, 나는 늘 내가 동시에 두 목소리를 듣는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전승기념일에 모스크바에서 우연히 올가 야코블레브나 오멜첸코를만났다. 다른 여자들은 모두 고운 봄옷에 화사한 머릿수건을 하고 있는데 그녀만 군복에 군인베레모를 쓰고 있었다. 키가 크고 다부져 보이는그녀. 그녀는 대화를 나누지도 울지도 않았다. 내내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특별한 침묵이었다. 바로 그 침묵 안에 말로 내뱉은 어떤 이야기보다 더 깊은 사연이 담겨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자기 자신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은필요치 않은 것처럼. - P256

한번은 내가 피투성이가 됐는데...... 늙은 병사 한 명이 다가와 나를 안고는 이렇게 말하는 거야. ‘전쟁이 끝나고 이 소녀병사가 살아남는다해도 더이상 사람 꼴로는 살지 못할 텐데, 어쩌나. 이 아이 인생도 이제 끝이구나.‘ 그래, 나는 그런 지옥 같은 상황의 한복판에서 견뎌야 했지. 그것도 그렇게 어린 나이에 ! 나는 발작을 일으킨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었고, 사람들이 나를 부축해서 막사로 데려갔어.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어...... 전기가 훑고 지나간 것처럼 온몸이 떨리고 ...... 글쎄, 어떻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었지..…
다시 전투가 벌어졌어...... 셉스크 근처에서 독일군이 하루에만 벌써 예닐곱 번이나 우리를 공격했어. 바로 그날 나는 전장으로 뛰어들어 부상병들을 끌고 나왔어. 당연히 무기도 함께 챙겨서 나왔지. 그리고 마지막 부상병에게 기어갔는데, 팔이 거의 떨어져나갔더라고, 갈가리 찢겨서 건들거리는데…… 힘줄만 남고...... 피범벅이었어…… 상처를 싸매려면 당장 팔을 잘라내야 할 판이었어. 다른 방법이 없었지.  - P263

나는 전쟁터에서 모든 걸 잊었어. 지난 삶은 다. 전부 다………… 사랑도잊었지....…
수색중대 지휘관이 나를 좋아하게 됐어. 자기 부하들을 통해 쪽지를 보내왔더라고. 한 번 그를 만났지 만나서 그랬어. ‘난 아니에요. 이미 오래전에 저세상으로 간 사람을 사랑하고 있거든요.‘ 그러자 내 앞으로 바짝 다가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몸을 돌려 가버리더군. 쏟아지는 총탄 속을 그대로 걸어서 고개 숙이지 않고…..… 나중에 우크라이나에서 우리가 큰 마을 하나를 탈환했어. 마을이나 한번 둘러보자 싶어 어귀로 들어섰지. 해가 밝게 비치는 날이었어. 농가들이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났지. 그런데 마을 뒤편 새로 다진 땅에 무덤들이 죽 늘어서 있는 거야....… 이 마을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병사들의 무덤이었어. 나도 모르겠어. 왜 그곳으로 발길이 끌렸는지. 가서 보니 작은 목판에 병사들의 사진과 이름이 붙어 있더군. 무덤 하나하나마다.……  - P265

그러다 갑자기...... 아는 얼굴이 보이는데 ...... 나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수색중대 지휘관, 바로 그 사람 얼굴이었어. 이름도 맞고 ...... 순간 마음이 너무 안 좋더라고. 갑자기 무서워지고...... 꼭 그 사람이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고,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 바로 그 순간 그 사람 부하들이 그러니까 중대원들이 무덤 쪽으로 오는 게 보였어. 모두 나를 알고 있었지. 예전에 나한테 쪽지를 전해주곤 했으니까. 하지만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행동하더군. 내 쪽으론 시선 한번 안주고 그들에게 나는 투명인간이었어. 나중에 그들과 다시 한번 마주쳤는데 마치…… 그들이..… 내가 죽기를 바랐던 것처럼 생각됐지. 나 보기가 힘든 것 같았어∙∙∙∙ 살아 있는 나를 보는 게…… 꼭 그렇게 느껴지더라니까…… 내가 그들 앞에 죄인이 된 것 같았지…… 그 사람한테도…… - P265

전쟁에서 돌아와 심하게 아팠어. 오랫동안 병원신세를 져야 했지. 어떤 노교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분 덕분에 나았어.…약보다는 말로 더 많이 치료해주셨지. 내 병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도 해주시고, 그 교수님 말씀이, 만약 내가 열여덟, 열아홉에 전선에 나갔다면 그런대로 몸이 튼튼해졌을 거래. 그런데 나는 열여섯에 갔잖아. 열여섯은 너무 어린 나이라 몸이 많이 손상을 입었다는 거지. 교수님이 설명해주셨어. 물론, 약을 복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해요. 어느 정도는 치료될수도 있어요. 하지만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고 싶다면, 또 살고 싶다면 내 말대로 해요. 결혼해서 될 수 있는 한 아이를 많이 낳아요. 그 방법만이 당신을 살릴 수 있어요. 아이를 낳을 때마다 당신 몸도 그만큼 회복될거요‘
-그때가 몇 살 때였나요?
- 전쟁이 막 끝났을 때니까, 스무 살이었어. 물론, 그때 나는 결혼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았어. - P266

-왜죠?
ㅡ너무 지쳐서. 내가 동갑내기들보다 훨씬 나이든 것 같았고, 어떨 땐 늙은이가 된 것 같고 그랬지. 친구들은 춤추러 다니고 즐겁게 사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어. 인생을 나이든 사람의 눈으로 바라봤으니까.
다른 세상의 시선으로…… 노파의 시선으로! 젊은 남자들이 구애를 해왔어. 아직 어린애들이었어. 그들은 내 영혼을 보지 못했어.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지. 아까 내가 어떤 하루에 대해서 이야기했잖아..… 셉스크 전투에 대해서…… 기껏해야 하루였는데··· 그날 밤 내 양쪽 귀에서 피가 흘렀어. 아침에 일어났는데 꼭 중병을 앓고 난 사람 같더라고. 베개는 온통 피로 물들고..... - P266

병원에서는 어땠냐고? 병원 수술실에 가리개로 칸막이를 친 곳이 있었어. 그곳에 절단한 팔과 다리를 담은 커다란 통을 놓아두었거든…… 최전선에서 대위 하나가 부상당한 자기 동료를 데리고 병원에 왔어. 어떻게 수술실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는데, 대위가 그 통을 본 거야…… 보고는 그대로 기절해버렸지.
기억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끝도 없이 ..... 그런데 가장 중요한게 뭔지 알아?
나는 전쟁의 소리를 기억해. 사방에서 으르렁, 쾅쾅, 쨍쨍 불을 뿜어대던 그 소리들...... 전쟁터에서는 사람의 영혼마저 늙어버리지, 전쟁이 끝나고 나는 다시는 젊음으로 돌아갈 수 없었어...... 그게 제일 중요한 점이지. 내 생각엔 그래……
-결혼은 하셨나요? - P267

ㅡ했지. 아들 다섯을 낳아 길렀어. 아들만 다섯. 딸은 하늘이 주시지않더라고, 나 스스로도 가장 놀라운 일은 그 끔찍하고 무서운 일을 겪고도 예쁜 아이들을 낳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야. 게다가 좋은 엄마에 좋은할머니까지 되었다는 사실이지.
이제 와서 모든 걸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내가 아니었던 것 같아. 어느 다른 소녀였지……"


‘또하나의 전쟁‘이 담긴 네 개의 녹음테이프(이틀간의 대화)를 가지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충격과 공포, 의혹과 경탄. 호기심과 당혹, 연민, 친구들에게 그녀의 이야기 중 몇 가지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뜻밖에도 하나같이 똑같은 반응들. ‘어휴, 너무끔찍하다. 어떻게 그걸 다 겪었대? 그러고도 제정신으로 살 수 있었 - P267

대?‘ 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전쟁하고는 많이 다르네. 우리가 아는 전쟁은 경계가 확실하잖아. 적과 우리 편, 선과 악, 그런데 이 전쟁은?‘ 하지만 모두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다들 깊은 생각에 잠겨들었다. 아마 나와 같은 생각들이리라. 이미 수천 번도 넘는 전쟁이 이 땅에서 벌어졌음에도(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봤는데, 지구상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전쟁들을 합치면 3천 번도 넘는다고 한다), 전쟁은 여전히 인간사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비밀 중 하나로 남았다. 언제나그랬던 것처럼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거대한 역사를 인간이 가닿을 수 있는 작은 역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 P268

그래야 뭐라도 이해할수 있을 테니까. 할말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탐색하기 간단해보이는, 그리 넓지 않은 이 작은 영토 ㅡ한 사람의 영혼의 공간—가 역사보다 더 난해하다. 알아내기 더 힘들다. 왜냐하면 내 앞에 있는 그건 살아 있는 눈물이고 살아 있는 감정들이기에. 대화하는 중에도 아픔과 공포의 그늘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기에. 순간 스치는 고통의 표정 앞에서 간혹 나도 모르게 ‘사람은 고통이 있기에 아름다운 건 아닐까‘라는 불순한 생각을 품을 때가 있다. 그러고는 나 자신에게 흠칫 놀란다……
길은 오로지 하나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사랑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 - P268

탐색은 계속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민스크에서 내가 살고 있는 거리의 이름은 소련의 전쟁 영웅, 바실리자하로비치 코르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코르시는 내전과 스페인전쟁에 참전했고 대조국전쟁에서는 빨치산여단의 여단장을 맡기도 했다. 벨라루스 사람이면 누구나, 적어도 학교에서라도, 그에 대한 책을 읽었을 것이다. 아니면 영화를 보았거나, 벨라루스의 전설. 그의 이름은수백 번도 넘게 각종 봉투며 우편 용지에 새겨졌고, 나는 단 한 번도 그를 실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전설이 되었으니까. 신화가 그의 분신이니까. 매일 걷던 낯익은 거리를 지금 나는색다른 감흥에 젖어 걷는다. 트롤리버스를 타고 도시 반대쪽 끝까지 삼 - P271

십 분을 가면 신화의 두 딸들ㅡ두 딸 모두 참전했다ㅡ을 만나게 될 터이다. 그의 아내도. 전설이 생명을 입고 살아나 땅에 발을 딛는 장면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크고 위대한 것이 작고 평범해지는 그 순간을. 하늘이나 바다가 아무리 좋아도 내게는 현미경 렌즈 아래 놓인 모래 한 알이, 바닷물 한 방울의 세계가 더 소중하다. 그곳에서 내가 빗장을 열고 보게 될 위대하고도 놀라운 한 사람의 삶이. 만약 작은것이나 큰 것이나 똑같이 무한하다면, 어떻게 작은 것을 작다고 하고 큰것을 크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둘을 구별짓지 않는다. 한 사람만으로도 벅차다. 한 사람 안에 모든 것이 있으므로, 그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맬 만큼. - P272

우리가 마을들을 탈환하고 보면 정말 다 타버리고 재만 한가득이었어요. 사람들에게 남은건 땅밖에 없었죠. 땅이 전부였어요.
언니도 나도 의사의 길을 포기했어요. 전쟁 전에는 의사를 꿈꿨는데 말이에요. 우리는 원하기만 하면 입학시험을 치지 않고 바로 의과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어요. 우리한텐 참전용사로서의 특권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사람들이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모습을 너무도 많이봤기 때문에 더이상은 볼 수가 없었어요. 상상만 해도 싫었어요. 그래서 이미 30년이 흐른 뒤였는데도 딸아이가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의과대학을 단념시켰어요. 수십 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보여요…… 어느 봄날…… 우리는 이제 막 전투가 휩쓸고 지나간 들판을따라 걸으며 부상병들을 찾아요. 온통 짓밟힌 들판. 저만큼 전사한 병사 두 명이 보여요. 젊은 우리 병사와 역시 젊은 독일군 병사가 어린 밀밭에 하늘을 보고 누워 있죠…… 하지만 전혀 죽은 사람들 같지 않아요. 그저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을 뿐…… 나는 지금도 그 눈길이 잊히질않아요..... - P295

- 전쟁이 끝나기 며칠 전 일인데,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 말을 타고 가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바이올린 소리가…… 그리고 바로 그날이 나한테는 전쟁이 끝난 날이었어요…… 갑자기 음악 소리라, 그건 기적이었죠…… 또다른 소리가 들려왔어요……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난 것 같더군요…… 우리는 모두 전쟁만 끝나면, 그 숱한 눈물만 그치면 멋진 삶이 우리를 기다릴 거라고 믿었어요. 아름다운 인생이. 승리만 하면··· 이날들만 견뎌내면...... 모든 사람이 한없이 선해지고 서로 사랑만 할 거라고 믿었죠. 모두 형제자매가 될 거라고, 우리가 얼마나 그날을 기다려왔는지……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어요……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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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서 꽃을 가지고 나와 이웃에게 부탁했던 게 기억나.
ㅡ나 없는 동안 이 꽃에 물 좀 주세요. 금방 돌아올게요.
하지만 내가 돌아온 건 4년 후였지.…
집에 남은 소녀들은 우리를 부러워했고 여인들은 눈물을 흘렸어. 그런데 나랑 같이 전선으로 가는 한 아이만 멀뚱멀뚱 태연한 거야. 남들은다 슬피 우는데 말이야. 하지만 그 아이도 나중에는 안 되겠는지 자기눈에 물을 찍어 바르더군. 손수건으로 그것도 몇 번씩, 다들 우는데 혼자 안 울고 있으려니 어색했던 거지. 그때 우리가 전쟁이 뭔지나 알았겠어?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지금도 악몽을 꾸다 잠을 깨곤 해. 여전히 전쟁터에 있는 끔찍한 꿈‥… 비행기를 몰고 하늘로 날아올라 점점고도를 높인다 싶었는데 ...... 곧장 아래로 곤두박질치지...... 비록 꿈이지만 비행기가 추락하는 게 그대로 느껴져.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잠에서 깨. 아, 잠들어 있는 동안, 꿈을 꾸는 동안 얼마나 무섭고끔찍한지. 늙은이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젊은이는 죽음에 코웃음 치지.
젊은이들은 자기가 영원히 살 줄 아니까! 나도 그땐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걸 믿지 않았으니까……."

안나 세묘노브나 두브로비나-체쿠노바, 근위대 대위, 전투기 조종사 - P125

전쟁 내내 생각했어. 내가 지금 집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 옆에 우리 고운 엄마 옆에 엄마는 정말 아름다웠지. 나는 못했을 거야…… 나 스스로는 절대. 전쟁터에 나서는 일 따위는...… 하지만...... 나는 우리 도시가 독일군 수중에 떨어졌고, 내가 유대인이라는사실을 알게 됐지. 전쟁이 나기 전에는 모두 사이좋게 잘 지냈어. 러시아인, 타타르인, 독일인, 유대인...... 모두 똑같이 나는 한 번도 ‘유대놈‘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어. 아빠, 엄마의 사랑 속에책만 보며 살았으니까. 우리는 나병 환자 취급을 받기 시작했고, 어디를가나 쫓겨났어. 다들 우리를 두려워했지. 심지어 지인들조차 우리를 모른 체했어. 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고, 이웃들은 우리에게 물건은 전부두고 가라. 가져가봐야 무슨 소용이냐‘고 했어. 전쟁 전까지 그렇게 사이좋게 지낸 이웃들인데, 발로냐 아저씨, 아냐 아줌마.……
엄마는 총에 맞아 돌아가셨어...… 우리가 게토‘로 쫓겨나기 며칠 전일이었지. 도시 곳곳에 포고문이 나붙었어. ‘유대인은 인도로 걸어다니는 것, 미용실에서 머리하는 것, 상점에서 물건 사는 것. 등을 전면금한다.‘  - P129

역사는 앞으로도 수백 년은 더 ‘그건 대체 무엇이었을까?‘라며 고민하겠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어디에서 왔을까? 상상을 한번해봐. 임신한 여자가 지뢰를 안고 가는 장면을 ..... 체르노바는 당연히 아이를 기다렸지..... 삶을 사랑했고 또 살고 싶어했어. 당연히 두려워도 했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 길을 갔어..... 스탈린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그녀는 무릎을 꿇어가며 살아야 하는 삶은 거부했어. 적에게 굴종하는 삶 따위는…… 어쩌면 그때 우린 눈이 멀었던 건지도 몰라. 그리고 그때 우리가 많은 것을 놓치고 보지 못했다는 사실도 부인하지 않겠어.
하지만 우리는 눈이 멀었으면서도 동시에 순수했어. 우리는 두 개의 세상, 두 개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 당신은 그걸 꼭 알아야 해......"

베라 세르게예브나 로마놉스카야, 빨치산 간호병 - P133

"1942년이었는데.… 작전 수행중에 전선을 지나 어떤 공동묘지 근처에 머물게 됐어. 독일군이 우리랑 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주둔하고있었지. 물론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어. 캄캄한 밤이 되자 독일군이 계속 조명탄을 터뜨렸어. 낙하산들도 보이고, 조명탄들이 한참을 타면서 아주 멀리까지 그 일대를 환하게 비췄지. 소대장이 나를 묘지 끝으로 데려가더니 로켓탄이 발사되는 곳을 보여주더군. 독일군이 출몰할만한 장소라며 관목덤불이 있는 곳도 보여주고, 나는 망자라고 해서 무서워하거나 그러지 않아. 어릴 때부터 공동묘지도 안 무서웠거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때 나는 겨우 스물두 살이었어. 보초도 처음 서는거였고..…. 딱 두 시간 보초를 섰는데, 그 두 시간 만에 머리가 하얗게 세버렸지......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머리가 백발이 돼 있더라고, 보초를 서면서 그 덤불을 지켜보는데 덤불이 스륵스륵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는 거야. 거기서 꼭 독일군이 걸어오는 것만 같고…… 뒤이어 또 누군가 나타나고...... 무슨 괴물들도 나오고…… 그 두 시간 동안 나는혼자였어.....
세버렸지..
...... - P151

처음 전투에 나갔는데, 장교들이 자꾸 나를 흉벽 쪽으로 떠다미는 거야. 앞이 잘 안 보여서 고개를 내밀었지. 앞에 뭐가 있나 궁금했거든. 어떤 호기심이 발동한 거지, 어린아이 같은..... 그렇게나 철이 없었을까!
지휘관이 소리쳤어. ‘세묘노바 병사! 세묘노바 병사, 정신 나갔나! 염병할...... 뒈지려고 그래?‘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 ‘이제 막 전선에 온 사람을 어떻게 죽인다는 거지?‘ 그때는 몰랐어. 죽음은 사람 가려가며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걸. 죽음은 아무리 애원해도, 설득해도 피할 수 없다는 걸......
낡은 트럭을 타고 의용군이 도착했어. 모두 노인들과 어린 남자애들이었어. 소총도 없이 수류탄 두 개씩만 들려서 그 사람들을 전투에 내보냈지. 소총은 전투중에 각자 알아서 구해야 했어. 전투가 끝났지만 붕대를 감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다 죽었거든......‘

니나 알렉세예브나 세묘노바 사병, 통신병 - P155

우리는 비행을 나갈 때 목표물을 찾아서 명중시키고 돌아온다‘ 딱 이 생각만 하면 됐어. 죽은 사람은 보지않아도 됐지. 그래서 우리는 시신을 볼 때의 공포가 뭔지 몰랐어......"
(A. 본다레바, 근위대 중위, 선임비행사) 빨치산이었던 여인은 지금도 전쟁 하면 모닥불 냄새부터 떠올린다. "뭐든 모닥불에서 했어. 빵도 굽고 음식도 끓이고, 재가 남으면 그 위에 가죽외투며 겨울군화도 올려놓고 말리고, 밤엔 모닥불 옆에서 추위도 피하고……" (E. 비소츠카야)
하지만 한없이 내 생각에만 빠져 있을 수는 없다. 기차 여승무원이 차를 내온다.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소리에 쿠페 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며 생기가 돈다. 간이식탁에 전통술 ‘마스콥스카야가 오르고 집에서 만든 안줏거리까지 등장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가슴으로 나누는 우리의 대화가 시작된다. 가족의 숨은 사연부터 정치, 사랑과증오, 지도자들과 이웃에 이르기까지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없다.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는 길과 대화의 사람들이라는걸...... - P163

나는 예전에, 고통은 사람을 자유롭게한다고, 고통을 견뎌낸 사람이야말로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일 거라고생각했다. 고통의 기억이 자신을 보호한다고 그런데 이제 언제나 그런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앎, 평범한 보통의 삶에는 있기 힘든 이런 특별한 삶은 손댈 수 없도록 따로 보관해놓은 비축물이나겹겹이 층을 이룬 광석 틈의 희미한 금가루처럼 별도의 공간에 존재한다. 한참을 속이 빈 암석을 공들여 벗겨내고, 함께 사소한 기억의 퇴적물을 헤집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반짝반짝 모습을 드러낸다! 선물처럼 찾아온다!
우리는 정말 어떤 사람들일까. 무엇으로,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을까? 고통을 이겨낸 사람은 어떤 단단함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 그걸 알기 위해 나는 이곳에 왔다…… - P170

예를 들어, 만약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 가족이나 지인, 이웃들(특히 남자들) 중 누군가, 제3의 인물이 동석하면 이야기하는 사람은 나와 단둘이 있을 때보다 덜 진실해지고 덜 솔직해진다. 이미 대중을 의식한 대화가 돼버린다. 관객을 위한 대화, 당사자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얻어낼길은 요원해진다. 강력한 자기방어에 부딪친다. 자기통제, 끊임없이 이야기가 다듬어진다. 일종의 패턴까지 생겨난다. 듣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차분하고 깔끔한 이야기가 된다는 것. 신중하게 해야 할 말만 골라 한다는 것. 참혹한 일이 위대한 일로, 인간 내면의 불가해하고어두운 면이 순식간에 이해가 되고 설명 가능한 것으로 둔갑한다. 나는기념비들만 가득한 과거의 사막에 뚝 떨어지곤 했다. 공훈들만 가득한황야에 도도하고, 결코 속을 내보이지 않는 것들만 잔뜩 모여 있는 곳에, 니나 야코블레브나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 P188

그녀는 나를 위한 하나의 전쟁을 들려주었다. "딸이라 생각하고 이야기할게. 어린애나 다름없는우리가 겪어야 했던 그 모진 세월을 당신이 이해하기 쉽도록 말이야."
그리고 청중을 위한 또하나의 전쟁을 그녀는 준비해두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똑같은 전쟁을 신문에서 떠드는 영웅들과 공훈이 주인공인 전쟁. 젊은이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훈육용의 전쟁. 평범하고인간적인 것에 대한 이 불신에, 보통의 삶을 소위 이상이라는 것과 슬쩍바꿔치기하려는 이 욕망에 나는 매번 충격을 받았다. 평범한 온기를 차디찬 광채와 맞바꾸려는 욕망에.
나는 우리가 부엌에서 함께 차를 끓여 마시던 그 기억을 지울 수가없다. 우리가 함께 눈물 흘렸던 그 기억을 - P188

‘용맹한 병사‘ 메달을 받고 포상으로 며칠간 집에 다녀오게 된 거야. 나타시카가 집에서 돌아오자 서로 나타시카 냄새를 맡겠다고 난리가 났지. 정말 돌아가며 줄을 서서 맡았다니까. 다들 나타시카한테서 집냄새가 난다며 좋아했어. 그렇게 다들 집을 그리워했지…… 편지봉투 하나만 봐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고 ...... 편지에 적힌 아빠 글씨만 봐도 좋고..... 잠깐 쉴 틈이 나면 우린 수를 놓았어. 하다못해 머릿수건이라도붙들고 수를 놓았지. 한번은 발싸개를 지급받았는데, 글쎄 그걸 코바늘로 떠서 스카프로 만들었다니까. 뭔가 여자다운 일을 하고 싶었어. 우린늘 여자들만의 일에 목이 말랐지. 정말 사무치도록 여자다운 일이 하고싶었어. 그래서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바늘을 손에 쥐고 뭐든 만들었어. 잠깐이라도 좋으니 본래 여자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바느질을하면 당연히 깔깔대고 웃고 떠들면서 행복해했지. 하지만 전쟁 전과 같을 수는 없었어. 뭐랄까, 그땐 특별한 상황이었다고 할까.... - P196

녹음기는 사람의 말을 녹음하고 어조도 그대로 담아낸다. 짧은 침묵, 울음소리, 망연자실해하는 소리까지도 나는 이야기란 게 원래 시간이지나 글로 옮겨질 때보다 말로 뱉어질 때 훨씬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말할 때 그 사람의 눈빛과 팔의 움직임을 녹음하지 못하는 게 늘 안타깝다. 대화하는 동안 드러나는 그들의 삶, 즉 그들본래의 삶과 그들 각자의 삶을, 그들의 ‘텍스트들‘을 녹음하지 못하는게 안타깝다.
- ‘우리집엔 두 개의 전쟁이 산다… 정확한 말이오……
사울 겐리호비치가 대화에 끼어든다.
- 전쟁을 회상하다보니 집사람에겐 집사람만의 전쟁이, 나에겐 나만의 전쟁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우리 집사람이 당신에게 들려준 고향 - P196

집 이야기나 줄을 서서 집에 갔다 온 동료의 냄새를 맡았다고 한 이야기는 나도 그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소. 하지만 기억은 안 나요……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가버려서…… 그때만 해도 그런 건 사소한 일이라고 여겼으니까. 실없는 소리이기도 했지. 해군모자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집사람이 깜박한 모양이오. 여보, 어떻게 그걸 잊어버린 거야?
-잊은 게 아니에요. 그게, 그 일은 그러니까, 무엇보다…… 그 일은 떠올리기가 언제나 두려워. 떠올릴 때마다…… 동이 터올 무렵 우리는발동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어. 한꺼번에 수십 척이 나갔지..... 좀 있으니까 전투가 시작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기다렸어.……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렸지...… 전투는 몇 시간씩 계속되며 끝날 줄을 몰랐어. 그러다 드디어 전투가 우리 근처까지 왔구나 싶은 순간, 갑자기 쥐죽은듯 조용해지더라고. 그래서 날이 어둑해지자 바닷가로 나가봤지. 모르스코이운하를 따라 해군모자들이 둥둥 떠내려오더군. 열을 지어 줄줄이 크고새빨간 피얼룩들과 모자들이 한데 엉겨 물결 속에서 일렁이는데……나뭇조각 같은 것들도 떠내려오고…… 그건 우리 병사들이 네바 강 어딘가에 버려졌다는 의미였지.. - P197

-내겐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많은 반면, 집사람에겐 전쟁에대한 감정이 더 많아요. 하지만 언제나 감정이 사실보다 더 분명하고 강력한 법이지. 우리 보병 중에도 소녀병사들이 있었어요. 우리 중에 소녀병사가 한 명이라도 끼여 있으면 그만한 가치가 있었소. 당장 사기가 올라갔으니까. 당신은 상상도 못할 거요…… 절대! 실은 이런 이야기도우리 집사람한테서 슬쩍한 거지만. 전장에서 여자 웃음소리를 듣는 게,
여자 목소릴 듣는 게 얼마나 좋은지 당신은 상상도 못할걸.
전쟁터에도 사랑이 있었느냐고요? 당연히 있었소! 전쟁터에서 우리가 만난 여인들은 정말 멋진 신붓감들이었소 성실하고 신실한 전우들이었고, 전쟁터에서 결혼한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고 가장 행복한 부부라오. 집사람하고 나도 전선에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됐지. 포탄과 죽음의 한가운데서 말이오.  - P198

우린 더할 나위 없이 견고한 관계라오 사랑과는 거리가 먼 일들도 있었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겠어요. 전쟁은 길었고, 전쟁터엔 사람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좋은 일들,
순수했던 일들을 더 많이 기억해요.
전쟁터에서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됐소…… 확실히! 내가 전쟁터에서 훨씬 괜찮은 인간이 된 건 분명한 사실이오. 그런 고초를 겪었는데 당연하지 않겠소. 수많은 고통을 봤고, 나 자신도 많은 고통을 겪었소. 그곳에선 살아가는 데 중요하지 않은 건 금방 제거돼버리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거든. 그곳에서 그걸 깨닫게 됐소..… 하지만 전쟁도 우리에게 앙갚음을 했소…… 우린 그 사실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하지만…… 전쟁이 우리를 쫓아와 우리와 나란히 가고 있어요∙∙∙∙ - P198

그건 전쟁터에 나가 싸운 엄마들이 자기들이 살았던 전선의 방식으로 딸들을 키웠기 때문이오, 아빠들도 마찬가지고 전선의 윤리로 말이오. 전쟁터에서 사람은, 당신한테 이미 말했듯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를 지닌 사람인지 단박에 드러났소. 그곳에선 감출 수가 없거든. 우리 딸들은 세상엔 다른 방식의 삶도 있다는 걸 상상도 못했소. 부모들이 딸들에게 이 세상의 감춰진 추악한 이면은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결국 우리 딸들은 사기꾼 같은작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돼 결혼했고, 그 사기꾼들은 우리 딸들을 잘도속여넘겼소 속이기가 식은죽 먹기였을 테니 말이오. 우리 전우들의 아이들이 참 많이도 그런 일을 당했소. 우리 딸도 그랬고.....
ㅡ우린 자식들에게, 왜 그랬는지, 전쟁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아마자식들이 걱정되고 안쓰러워서였겠지. 하지만 과연 우리가 옳았을까? - P199

다 같이 둘러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옛 시절을 회상했지......그러다 우리 소녀병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는…… 나는 거의 울부짖듯 소리쳤어. ‘존경하는 사령관님, 한번 말씀해보세요. 우리 소녀병사들은 지금 거의 혼자 살아요. 결혼들을 못했죠. 다들 콤무날카에 산다고요. 그들을 안타깝게 여긴 사람이 누구라도 있나요? 보호해준 사람은요? 전쟁이 끝나고 당신네 남자들은 다 어디로 숨어버린 거죠? 배신자들!‘ 한마디로 내가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망쳐버렸지 뭐…… 사령관 어른은 당신이 지금 앉은 그 자리에 앉아 있었어. ‘어디 말해보게‘ 사령관 어른이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어. ‘누가 자네를 화나게 한 거야. 그놈 이름을 대기만 해!‘ 그리고 용서를 구했어. ‘발랴, 자네에게 할말이 없네.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야.‘ 우리는 동정이 필요한 게 아나. 우리는 우리가 자랑스러우니까.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역사를 고쳐쓰라고 해. 스탈린을 넣든지 빼든지 알아서 쓰라고. 하지만 이것만은 분 - P224

명히 남겠지. ‘우리가 승리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의 고통도 우리가겪은 그 아픔들도. 그건 잡동사니 쓰레기도 아니고 타다 남은 재도 아니야. 그건 바로 우리네 삶이지."
그리고 더이상 말이 없다……
헤어지기 전에 피로그가 담긴 봉투를 내 손에 쥐여준다. "이건 시베리아 피로그야. 특별하지. 이 피로그는 돈 주고도 못 사…….." 그리고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긴 명단도 건넨다. "당신이 연락하면 다들 기뻐할거야. 기다리고들 있어. 그 일을 떠올리는 건 끔찍하지만 그 일을 기억하지 않는 게 더 끔찍하거든."
이제 알겠다. 그들이 결국은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를……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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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내가 권력과 갈등을 빚는 이유는 뭘까? 나는 위대한 사상에 필요한 건 작은 사람이지, 결코 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념에 큰 사람은 쓸모없고 불편한 존재라는 것을. 큰 사람은 완성되는 데 손이 많이 간다. 나는 바로 그런 사람을 찾는다. 작으면서도 큰 사람, 그는 멸시당하고 짓밟히고 학대당했지만, 스탈린 수용소와 배반의 아픔을 겪었지만, 결국은 승리를 거뒀다. 그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쟁의 역사를 승리의 역사로 몰래 바꿔치기해버렸다.
작으면서 큰 사람, 그가 직접 그 사실을 말해줄 것이다…… P 37

원고는 이미 오래전부터 책상 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벌써 2년째 계속되는 출판사의 거절. 이 일에 대해 잡지들은 입을 닫는다. 답신은 매번 똑같다. 전쟁이 너무 무섭게 묘사되었다는 것. 끔찍한 내용이 너무 많다는 것. 지나치게 사실적이라는 것. 선도적이고 지도적인 공산당의 역할이 없다는 것. 한마디로, 제대로 된 전쟁이 아니라는 얘기다. 도대체 어떤 게 제대로 된 전쟁이란 말인가? 장군들이나 현명한 총사령관이 등장하는 전쟁? 피나 더러운 이가 나오지 않는 전쟁? 영웅들이나 영웅적인 공훈을 이야기하는 전쟁? 어린 시절 할머니를 따라넓은 들판을 걸었던 적이 있다. 그때 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를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 P36

"전쟁이 끝나고 이 들판에선 오랫동안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단다. 독일군들이 퇴각할 때였는데...... 여기서 전투가 벌어졌어. 이틀이나 얼마나 무섭게들 싸웠는지...... 사방에 시신들이 짚단 엮어놓은 것처럼 줄줄이 누워 있더구나. 꼭 기차역의 철도 침목처럼 말이다. 독일 병사들과 우리 병사들이 한데 뒤섞여서. 비가 오면 죽은 병사들 얼굴이 꼭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온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그 병사들을 묻어줬지. 꼬박 한 달이나 걸려서."
어떻게 그 들녘을 잊을 수 있겠는가?
나는 그저 녹취만 하는 게 아니다. 나는 고통이 작고 연약한 한 사람을 크고 강인한 사람으로 빚어내는 곳에서 인간의 영혼을 모으고 그 자취를 좇는다. 인간이 자라고 성장하는 그곳에서. 그러면 그 사람은 이제 더이상 내게 말 못하는 벙어리도, 흔적도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프롤레타리아도 아니다. 그 사람의 영혼조차 달라진다.  - P36

그렇다면 내가 권력과 갈등을 빚는 이유는 뭘까? 나는 위대한 사상에 필요한 건 작은 사람이지, 결코 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념에 큰 사람은 쓸모없고 불편한 존재라는 것을. 큰 사람은 완성되는 데 손이 많이 간다. 나는 바로 그런 사람을 찾는다. 작으면서도 큰 사람, 그는 멸시당하고 짓밟히고 학대당했지만, 스탈린 수용소와 배반의 아픔을 겪었지만, 결국은 승리를 거뒀다. 그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쟁의 역사를 승리의 역사로 몰래 바꿔치기해버렸다.
작으면서 큰 사람, 그가 직접 그 사실을 말해줄 것이다…… - P37

옛 일기장을 펼쳐본다……
일기를 쓸 당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떠올리려고 애를 쓴다. 그때의 나는 이미 없다. 심지어 그때 우리가 살았던 나라도 이젠 없다.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목숨 바쳐 지켜낸 그 나라조차 이젠 존재하지 않는다. 창밖의 세상은 모든 게 달라져 있다. 새로운 천년의 도래, 새로운 전쟁들, 새로운 이념들, 새로운 무기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러시아인(정확히는 러시아-소련인). - P37

그때는 모든 걸 다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도 침묵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어요……." "당신을 다 믿을 수가 없었어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해도 이 일을 입에 담아선 안 됐으니까요. 부끄럽기도 했고요." "의사한테 들었어요. 내가 무서운 병에 걸렸다는 걸…… 모든 걸 털어놓고싶어요……."
얼마 전에는 이런 편지를 받았다.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사는 게 쉽지 않다오…… 푼돈에 지나지 않는 형편없는 연금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오.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하는 건, 우리가 위대한 과거에서 쫓겨나 참을 수 없을 만큼 누추한 현실로 내몰렸다는 사실이오. 이제 어디서도 우리를 부르지 않아요. 학교도 박물관도 이제 우리가 필요 없다는 거지요. 신문을 읽어봐요. 파시스트들은 갈수록 고결해지고, 우리 붉은 군대 병사들은 갈수록 비참해지고 있어요."
시간, 이 또한 우리의 고향이다...… 하지만 나는 예전처럼 변함없이 그네들을 사랑한다. 그들의 시대는 사랑하지 않지만 그들은 사랑한다. - P40

모든 것은 문학이 될 수 있다.
내 기록물들 중에서 단연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출판 검열 당국에서 삭제당한 에피소드를 적어놓은 수첩이었다. 출판 검열 당국과 내가 나눴던 대화에도 새삼 관심이 갔다....… 그리고 수첩에서 내가 직접 삭제한 페이지들도 발견했다. 나의 자가 검열, 나 스스로 단행한 금지령, 그리고 왜 그 내용을 내버렸는지에 대한 나의 설명들…… 출판 검열 당국과 나 스스로 삭제한 내용들 중 많은 부분이 이 책에 복원되었지만, 이 몇 페이지들만큼은 따로 정리해 쓰고 싶다. 이것도 이미 기록이기에. 내가 가야 할 길이기에. - P41

"우리는 포위망을 뚫으려고 했소…… 하지만 사방에 독일군이 깔려있어서 가망이 없었지. 그래서 ‘날이 밝으면 나가서 독일군과 맞서 싸우자. 어차피 죽을 거, 용감하게 싸우다 죽자‘고 결정을 내렸소. 차라리 전장에서 죽자고. 우리 부대에 소녀병사 셋이 있었는데, 이 소녀들이 밤에 일일이 우리를 찾아다니며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다 만나서 작별인사를 건네는 거야. 물론 우리가 다 그 소녀들처럼 한 건 아니었지…… 당신도 이해하겠지만, 그땐 다들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 있었으니까. 다들 죽음을 각오한 상황이었지……
결국 다음날 아침 우리 중 몇 명만 살아남았소…… 겨우 몇 명만.…… 오십 명 중에서 일곱 명 정도만 산 거요. 만약 독일군이 그렇게 총질만 안 했어도.…… 살아남은 병사들 중에 그 어린 아가씨들은 한명도 없었소…… 그후로도 만나지 못했고......" - P44

"우리는 계속 진격해 들어갔고…… 첫번째로 맞닥뜨린 독일인 마을에서였소…… 우리는 젊었소. 건강했지. 4년을 여자 없이 지냈소. 집집마다 지하실에 술이 있더군. 안주도 많고, 독일 여자들을 붙잡아왔소......그리고 한 여자를 열 명이 차례로 덮쳤소…… 여자가 부족하니, 결국 병사들이 소비에트 군대를 몰래 빠져나가 어린아이들을 붙잡아오는 일까지 생겼소, 여자아이들을…… 열두 살에서 열세 살 정도 되는 여자애들을 말이오…… 아이가 울면 때리고 입안에 아무거나 쑤셔넣었소. 아이는 고통스러워하는데, 우리는 그걸 즐겼지. 이제와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되오, 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는지....……지식인 집안 출신인 내가…... 하지만 그게 나였소…...
딱 한 가지 두려운 게 있었다면, 그건 나중에라도 여자병사들이 우리가 한 짓을 알게 되는 것이었소. 우리 간호병들 말이오. 그녀들 보기가 부끄러웠소......" - P49

"적의 포위망에 갇혔소...... 숲속과 늪지대를 헤매고 다녔지. 나뭇잎도 먹고 나무껍질도먹었소. 이름 모를 풀뿌리 같은 것들도 캐 먹고. 우리는 전부 다섯 명이었는데, 그중에 이제 막 군대에 불려온, 앳된 소년이 있었소. 그런데 밤에 내 옆의 병사가 이렇게 속삭이는 거요. ‘저 어린녀석은 얼마 못 버틸 거야. 곧 죽을 거라고…… 무슨 말이냐고 내가 물었소. ‘어떤 사람한테 들었는데…… 그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도망쳐 나올 때 일부러 어린 녀석을 데리고 나왔대...... 사람고기도 먹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결국 다들 목숨을 부지했다는 거야.……‘ - P49

그가 소비에트 병사는 결코 적에게 항복해선 안 된다는 당의 지령을 우리에게 읽어주었지. ‘우리에게 포로란 없다. 반역자만 있을 뿐‘이라는 스탈린 동지의 명령이었어. 그러자 병사들이 권총을 꺼내들었어…… 그런데 루닌이 말리는 거야. ‘그럴 필요 없네. 살아야지. 자네들은 젊으니까.‘ 하지만 정작 자신은 총을 쏴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
그리고 1943년…… 우리 소비에트 군대는 계속 치고 올라가는 중이었어…… 벨라루스를 지날 때였나. 어린 남자애 하나를 만났어. 웬 아이가 느닷없이 어디 땅 밑 같은 데서, 그러니까 지하에서 튀어나오더니 우리에게 달려오면서 소리치는 거야. ‘우리 엄마 좀 죽여주세요…… 죽여주세요! 엄마가 독일군을 좋아했어요……‘ 아이는 잔뜩 겁에 질린 눈이었어. 그리고 바로 아이 뒤를 쫓아 까만 노파 하나가 달려나왔지. 온몸을 검은색으로 휘감은 노파였어. 노파가 성호를 그으며 말했어. ‘그애 말은 듣지 말아요. 그 아이는 제정신이 아니라오....‘ - P52

,"낮에는 독일군과 독일군 앞잡이 때문에, 밤에는 빨치산 때문에 우리는 늘 두려움에 떨었어. 빨치산이 마지막 암소마저 가져가버리는 통에우리집엔 고양이 한마리만 남았지. 빨치산은 늘 배가 고팠고 난폭했어. 우리 소를 끌고 가길래, 막 쫓아갔지…… 10킬로미터쯤 따라갔을까. 제발 소를 돌려달라고 애원했어. 오두막에 아무것도 못 먹은 아이들 셋을 두고 왔다고. 그랬더니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거야. ‘가, 가라니까, 아줌마! 안가면 쏴버릴 거야.‘ - P53

전쟁에 착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 죽이는 일도 있었어. 유형살이 갔던 부농의 자식들이 돌아왔는데, 와보니 부모들이 이미 죽임을 당하고 없는 거야. 그러자 독일군 편에 붙어서는 복수를 하기 시작했지. 또 한 사람은 늙은학교 선생을 농가에서 쏴 죽였어. 바로 우리 옆집에 살던 선생이었어. 선생이 그 사람 아버지를 고발해서 재산을 전부 몰수당했거든. 그 선생은 열렬한 공산주의자였지.
독일군은 처음에 콜호스를 해체하고 사람들에게 땅을 나눠줬어. 그동안 스탈린 때문에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것 같더군. 독일군에게 소작료를 냈지...… 꼬박꼬박 착실하게 값을 지불했는데…… 아, 이놈들이나중에는 우리를 태워 죽이지 않겠어. 사람도 집도 다 불에 태우기 시작하는거야. 가축은 멀리 쫓아버리고, 사람들은 태워 죽이고,
아, 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서워. 말은 정말 무서운 거야…… 나는 마음을 착하게 써서 살아남았어. 누구한테도 해를 끼친적이 없지. 불쌍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니까....." - P54

"나는 기관총 사수였어. 사람을 참 많이도 죽였어……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은 아이 낳기가 무서웠어. 그래서 어렵게 아이를 낳았는데, 낳고 나니까 괜찮아지더라고. 그렇게 되기까지 7년이나 걸렸지만……
하지만 나는 아직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았어. 용서가 안 돼…… 포로로 잡힌 독일군들을 봤을 때 정말 기뻤지. 놈들이 처량한 신세가 된 게너무 좋았어. 발엔 군화도 없이 발싸개만 감고, 머리에도 머릿수건만 두 - P55

르고 있는 꼴이 보기만 해도 좋더라고.....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포로들이 빵을 구걸했어. ‘어머니, 빵 좀 주세요..... 빵...…‘ 그러자 마을농부들이 오두막에서 먹을 걸 가지고 와서 놈들에게 주는 거야. 누구는 빵조각, 누구는 감자를 가져다주는데, 그게 나한테는 큰 충격이었지. 사내애들은 행렬 뒤를 따라가며 돌을 던지고…… 여자들은 눈물을 흘렸어…….
어쩌면 나는 두 개의 인생을 살았는지도 몰라. 하나는 남자의 인생, 다른 하나는 여자의 인생 ····" - P56

"많은 사람들이 믿었어……
전쟁이 끝나면 모든 게 달라질 거라고…… 스탈린은 자신의 민중을 믿을 거라고. 하지만 전쟁은 끝난 게 아니었어. 군용열차들은 이미 마가단으로 향했지. 승전의 주역들을 싣고서...... 당국은 독일군에게 붙잡혀 수용소에서 지낸 사람들과 독일군 밑에서 부역을 한 사람들을 잡아들였어. 유럽에 갔다 온 사람들도 모두 체포됐고, 그들이 유럽에 대해 입을 열 수도 있었으니까. 유럽엔 공산주의자들이 없다고, 유럽의 집과 길들은 얼마나 훌륭한지 모른다고 떠들어대면 큰일이지 않겠어? 유럽 어디에도 콜호스 같은건 없다고 말이야......
승리를 얻고 나서 사람들은 침묵했어. 전쟁 전처럼 굳게 입을 다물었고 두려움에 떨었지....." - P58

"나는 역사 선생이었어..… 내 기억에 의하면 세 번인가? 그래, 세번 바뀌었던 것 같아, 역사책이. 그래서 세 종류의 역사책으로 아이들을 가르쳤지…..
우리가 아직 살아 있는 동안 우리한테 물어봐.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멋대로 역사를 바꾸지 말고. 지금 물어봐……
사람을 죽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당신은 모를 거야. 나는 지하공작원이었어. 반년 후에 임무를 하나 받았는데, 독일군 장교 식당의 여종업원으로 잠입하는 거였지.…… 젊고 아름다웠던 나는..... 잠입하는 데 쉽게 성공했어. 수프 냄비에 독을 풀고, 그날로 바로 빨치산에 합류하는 게 내 임무였어.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이미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지. 아무리 그들이 적군이라도 매일 얼굴을 보고, 나에게 ‘당케 쇤...
당케 쇤……‘ 하는데, 죽이는 게 어디 쉽나…… 살인은 쉬운 일이 아니야...… 어찌 보면 죽이는 게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하지……
나는 평생 역사를 가르쳤어…… 하지만 이 일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언제나 답을 찾지 못했어.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 P59

나에겐 나만의 전쟁이 있었다…… 나는 나의 여주인공들과 긴 여정을 지나왔다. 나도 그네들처럼 오랫동안 우리의 승리가 두 얼굴을 가졌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하나는 아주 멋진 얼굴, 다른 하나는 무시무시한 얼굴. 하지만 둘 다 흉측한 상처투성이라 봐줄 수가 없다. "육탄전에서는 상대방을 죽일 때 상대의 눈을 보게 돼. 그건 폭탄을 떨어뜨리거 - P59

나 참호에 숨어서 총을 쏘는 것과는 다른 일이지." 그네들이 들려준 말이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가 사람을 죽이고 죽어간 이야기를듣는 것은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 P60

민스크 변두리의 낡은 3층 건물 전쟁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그 당시로서는 아주 짧은 기간에 지어졌다고 할 수 있는 아파트 중 하나로, 재스민 나무들에 둘러싸여 오래되고 아늑해 보인다. 장장 7년에 걸쳐 이어진 탐색이 바로 이 집에서 시작되었다. 나 자신을 위해, 우리의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전쟁이라는 세계의 문을 열어젖히면서 시작된, 경이롭고도 고통스러웠던 7년의 시간 고통과 증오 그리고 유혹을 느꼈던 시간들. 정겨움과 당혹스러움도…… 죽음과 살인은 어떻게다른지,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의 경계는 어디인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사람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정신 나간생각과 의기투합할 수 있는가? 심지어 죽일 의무가 있다는 생각까지하다니. 전쟁에는 죽음을 제외하고도 다른 수많은 요소들이 존재하며,
전쟁터에도 평범한 우리네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을 - P63

나는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전쟁, 이 또한 삶이라는 사실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간의 진실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수많은 인간의 비밀들과도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질문들 앞에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될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왜 악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가? 정녕 우리안에 악을 향한 놀라움은 없단 말인가?‘와 같은 질문들 앞에서.
길 그리고 다시 길들..... 온 나라를 헤집고 다닌 수십 번의 여행들, 목소리가 담긴 수백 개의 녹음테이프, 수천 미터에 달하는 녹음테이프필름. 500여 차례의 만남, 그 이상부터는 세는 걸 포기했다. 얼굴들은 모두 기억에서 사라지고 목소리만 남았다. 내 기억 속에서 합창 소리가 울린다. 웅장한 합창. 때론 노래는 없고 울음소리만 가득한 합창, 고백하건대, ‘과연 내가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해낼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며 나 자신을 믿지 못할 때가 있었다. 과연 끝까지 갈 수 있을까. - P64

그만 멈춰 서거나 도망치고 싶은, 의심과 두려움의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뒤돌아서기엔 너무 늦었다. 뭔가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악의 노예가 되었고 그 심연을 들여다봤다. 이제 어느 정도 아는 게 생긴 것도 같다. 하지만 그만큼 의문은 더 많아졌고, 해답은 더 적어졌다.
이 여정을 시작할 때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나를 이 집으로 이끈 건 ‘얼마 전 민스크에 있는 ‘돌격대‘라는 이름의도로장비 생산공장에서 선임회계원 마리야 이바노브나 모로조바의 은퇴식이 있었다‘는 지역 일간지에 난 짤막한 기사였다. 그 기사에는 그녀가 전쟁중에 저격병이었으며 무공훈장을 11개나 받았다고 쓰여 있었다. 그녀의 총에 죽어나간 적병의 수만 75명이라고도 했다. 이 여인이 전쟁 때 맡았던 일과 현재의 평온한 직업을 일치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신문에 실린 그녀의 사진을 봐도 그랬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보통 여인네였다. - P64

‘이제 사람들 만나는 게 두렵지 않아. 이제늙은이가 다 됐는데, 뭐‘라고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했어. 그래…… 한마디로…… 전쟁은 그런 거야……
밤에 움막에 누워 있을 때가 생각나 잠들지 못해 뒤척이고 있으면 어디선가 포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지. 아군의 포탄 소리가…… 정말 죽고싶지 않았어…… 맹세는 했지만, 필요하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군인의맹세는 했지만 정말 죽고 싶지는 않더라고. 하지만 거기서 살아 돌아간다 해도 마음이 병들 것 같았어. 지금은 ‘차라리 다리나 팔이 다쳤더라면, 차라리 몸이 아팠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 않아서인지 마 - P84

음이 ...... 너무 아파. 우리는 너무 이른 나이에 전쟁터로 갔어. 아직 어린애나 다름없었는데, 얼마나 어렸으면 전쟁중에 키가 다 자랐을까.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내 키를 재보았는데…… 그동안 10센티미터나키가 컸더라니까……"

작별인사를 하며, 이 여인은 자신의 따뜻한 손을 어색하게 내밀어 내손을 꼭 감싸쥐었다. "미안해 ......" - P85

목소리… 수십 개의 목소리들…… 목소리들이 낯선 진실을 외치며 나에게 쏟아져들어왔다. 그리고 진실, 그 목소리들이 전하는 진실은어릴 때부터 익히 들어온, ‘우리는 승리했다‘는 간단명료한 정의와는 딴판이었다. 순식간에 화학반응이 일어났다. 파토스는 인간의 운명이라는 살아 있는 조직 안에서 깨끗이 녹아버렸다. 파토스는 그 생이 아주짧은 물질임이 밝혀졌다. 우리 삶 속에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더 존재할 때, 그게 바로 운명이 되는 것이 아닐까.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대체 나는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이러는 걸까? 어떻게 그런 일이 모스크바나 스탈린그라드 바로 옆에서 일어날수 있었는지 따져 묻고 싶어서? 아니면 군사작전에 대한 묘사라든지 - P89

높고 낮은 언덕들의 이름에서 따온, 지금은 잊힌 전투의 명칭들이 듣고싶어서? 나는 정말 전선이니 전선의 활약이니 진격과 퇴각이니 그런이야기, 전복된 열차가 몇 대고, 빨치산의 기습공격은 어땠는지 따위의이야기가 필요한 걸까? 이미 수천 권도 넘는 책들에 등장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아니,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나는 ‘영혼에 대한 이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모은다. 영혼의 삶이 남기고 간 흔적을 따라가며 영혼을 기록한다. 나에겐 영혼이 걸어간 길이 사건 자체보다 중요하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최소한 우선순위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나를 흥분시키고 놀라게 하는 건 다른 것, 즉 ‘대체 거기서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거기서 사람은 무엇을 보고 또 무엇을 깨달은 걸까? 도대체 삶은무엇이며 죽음은 무엇일까?  - P90

그리고 결국 나 자신은 누구인가? 나는 감정의 역사를 쓴다…… 영혼의 역사를 쓴다….… 전쟁이나 한 나라의 역사, 영웅들의 인생역정이 아닌, 그저 평범한 삶을 살다가 거대한 사건의깊은 서사 속으로,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 작은사람의 역사를 쓴다.
1941년의 소녀들…… 무엇보다 나는 그 소녀들은 대체 어디서 왔는지 묻고 싶다. 그것도 그렇게나 많이. 그들은 어떻게 남자들과 똑같이무기를 들고 싸울 생각을 했을까? 총을 쏘고, 지뢰를 매설하고, 폭탄을터뜨리고, 폭격을 하는 등의 사람을 죽이는 일을.
이미 19세기에 푸시킨이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푸시킨은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했던 여성기병 나데즈다 두로바의 일기 중 일부를『동시대인』에 실으며 이렇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이 훌륭한 귀족 집안의 젊은 아가씨는 정든 집을 등지고 자신의 여성성도 포기한 채, - P90

남자들도 꺼리는 힘든 노동과 의무를 선택했단 말인가? 대체 무엇이그녀를 전장으로 내몰았을까! 그것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남모르는 은밀한 마음의 번민? 불타는 상상력?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타고난 기질? 애끓는 사랑?"
정말이지 대체 무얼까? 100년도 훨씬 더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같은질문을 던진다…...


"말하고 싶어·· 말할 거야! 전부 다 말할거야! 드디어 사람들이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으니까. 그 숱한 세월을 우리는 입을 닫고 살았어. 심지어 집에서조차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지.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어. 전쟁에서 돌아온 첫해에 나는 말하고 또 말했어. 아무도 듣질 않았지. 그래서 입을 다물어버린 거야…… 당신이 찾아와서 다행이야. 나는 누군가 와주길 늘 기다렸어. 누군가 올 줄 알았어. 반드시 올 거라고 믿었지. 그때 나는 어렸어. 완전히 어린애였지. 참 안타까워. 왜인지 알아? 내가 너무 어려서 그때 일이 다 기억나지 않거든…… - P91

"전선으로 떠나는 날…… 날이 참 좋았어. 공기는 맑고, 이슬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아, 얼마나 아름답던지! 아침에 집밖으로 나와 잠깐서서 생각했어. ‘정말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우리집 마당도…… 우리 동네도…… 언젠가 다시 보게 되는 날이 올까?‘ 엄마가 흐느끼며 나를 붙잡고 못 가게 했어. 내가 이미 걸음을 떼서 저만큼 가고 있는데도 쫓아와서 나를 꼭 부여안고 놓을 줄 몰랐지...…"
올가 미트로파노브나 루즈니츠카야, 간호병 - P110

죽음이라...... 글쎄, 죽는 건 두렵지 않았어.…… 아마 젊어서 그랬을 거야 아니면 뭐 다른 이유가 있었던지...… 사방에 보이는 게 죽음이고 늘 죽음이 옆에 따라다녔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하지않았던 거 같아. 다른 사람들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죽음이 가까운 곳에서 계속 우리 곁을 맴돈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옆으로비켜갔으니까. 한번은 밤중에 우리 연대 작전지역에서 중대 전체가 대대적인 수색작전을 펼친 적이 있었어. 동틀 무렵 중대는 물러갔는데, 중립지대에서 신음 소리가 들리는 거야. 부상당한 병사가 남아 있었던 거지. ‘가지마, 죽을지도 몰라‘ 동료들은 내가 부상병을 구하러 가게 내버려두지 않았어. ‘봐, 벌써 날이 밝아온다고.‘
하지만 나는 만류를 뿌리치고 그쪽으로 기어갔어. 부상병을 발견하고 그의 팔을 내 허리띠에 묶고는 장장 여덟 시간에 걸쳐 결국 그를 끌고 왔지. 살려서 데려온 거야.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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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СВЕТЛАНА АЛЕКСИЕВИЧ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 1948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설가도, 시인도 아니다. 그러나 자기만의 독특한 문학 장르를 창시했다. 일명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 작가 자신은 ‘소설-코러스‘라고 부르는 장르이다. 다년간 수백 명의사람들을 인터뷰해 모은 이야기를 Q&A가 아니라 일반 논픽션의 형식으로 쓰지만, 마치 소설처럼 읽히는 강렬한 매력이있는 다큐멘터리 산문, 영혼이 느껴지는 산문으로 평가된다.
1983년, 그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집필을끝냈다. 이 책의 원고는 2년 동안 출판사에 있었으나 출간될수 없었다. 그는 영웅적인 소비에트 여성들에게 찬사를 돌리지 않고 그들의 아픔과 고뇌에 주목한다는 사실 때문에 비난받았다.
1985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드디어 벨라루스와 러시아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200만부 이상이 팔렸다. 1992년, 신화화되고 영웅시되던 전쟁에 이의를 제기하는 그의 책들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그러나 민주적인 의식을 가진 시민들의 노력으로 재판은 종결되었다.
지은 책으로 마지막 증인들 아연 소년 체르노빌의 목소리 세컨드 핸드타임」 등이 있다.
그의 책은 미국, 독일, 영국, 스웨덴, 프랑스, 중국, 베트남, 불가리아 등에서 35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전 세계에서 수백 편의 영화와 연극, 방송극을 위한 대본으로 사용되었다.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의 최고정치서적상, 국제 헤르더 상,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평화상, 전미 비평가협회상등 수많은 국제상을 수상했고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 인류 역사에서 여자가 군대에 처음 등장한 건 언제인가?
- 이미 기원전 4세기에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그리스 군대에서 여자들이 싸웠다. 후일 그들은 마케도니아 알렉산더대왕의 원정에도 참가했다.
러시아 역사학자 니콜라이 카람진은 우리 선조들에 대해 이렇게썼다.
슬라브 여성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터로 향하는 아버지와 남편을 따라나서곤 했다. 626년, 콘스탄티노플이 포위당했을 때 그리스인들은 전사한 슬라브인들 사이에서 다수의 여성 시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그저 양육만 한 게 아니라 전사들로 키워낸 것이다."
- 근대에 들어선 어땠는가?
―1560년부터 1650년 사이에 영국에서 최초로 여자병사들이 복무한 병원이 생겼다.
-그렇다면 20세기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20세기 초…… 영국에서는 이미 제1차세계대전 때 왕립 공군

이 여자들을 받기 시작했고 왕립 보조군단과 여성 차량수송대도 조직되었다. 그 수가 10만 명에 이르렀다.
러시아, 독일, 프랑스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군병원과 위생열차에서 복무하기 시작했다.
제2차세계대전중에 전 세계는 여성들의 능력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영국군 22만 5천 명, 미국군 45만~50만명, 독일군 50만명등, 여자들은 이미 세계 여러 나라의 군대에서 병종을 가리지 않고활약하고 있었다.
소비에트 군대에서는 백만 명가량의 여성들이 참전해 싸웠다. 그들은 가장 ‘남성적‘인 군대 보직을 포함해 남자들과 똑같은 임무를수행했다. 그 때문에 언어 문제가 발생할 정도였다. ‘전차병‘ ‘보병‘ ‘자동소총병‘ 같은 보직은 여성을 지칭하는 용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전까지 여자들이 맡아본 적이 없는 임무였기때문이다. 그곳, 전쟁터에서 비로소 여자를 가리키는 군대용어들이 생겨났다……
역사학자와의 대화 중에서

1978~1985년

나는 전쟁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는 누구나 전쟁 이야기를 즐겨 읽었지만, 나는 전쟁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내 동갑내기들 역시 모두 전쟁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건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승리의 아이들이었으니까. 승자의 아이들. 전쟁 하면 맨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기억은 무엇일까? 그건 알아들을 수도 없는 무서운 말들 속에서 보낸, 우울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다. 사람들은 늘 전쟁을 회상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결혼식에서도 세례식에서도, 기념일에도 추도식에서도 언제나전쟁을 얘기했다. 심지어 아이들의 대화에서조차 어느 날 이웃집 남자애가 나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땅 밑에서 뭐하는 걸까? 땅 밑에서 어떻 - P13

게 살지?" 우리는 전쟁의 비밀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그때 나는 ‘죽음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고 어느새 죽음은 나에게 삶의 중요한 비밀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그 두렵고 비밀스러운 세계가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다.
우크라이나 출신인 외할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전사해 헝가리 땅 어딘가에 묻혔고, 친할머니는 빨치산으로 활동하다가 티푸스로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두 아들은 군대에서 복무하다가 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 만에 행방불명이 되었다. 할머니의 세 아들 중 한 명만 살아 돌아왔다. 바로 우리 아버지이다. 먼 일가친척들 중에서 열한 명이나 되는 친척들이 아이들과 함께 산 채로 독일군에게 불태워졌다. 누구는 자기 오두막에서, 또 누구는 시골 교회에서 집집마다 그런 사연 하나쯤은 있었다. 어느집이나. 시골의 사내아이들은 오랫동안 ‘독일인‘이나 ‘러시아인‘ 흉내를내며 놀았다. 아이들은 ‘헨데 흐흐! ‘추뤼크! ‘히틀러 카푸트! 라는독일어를 크게 외치곤 했다.
우리는 전쟁이 없는 세상을 알지 못했다. 전쟁의 세상이 우리가 아는유일한 세상이었고, 전쟁의 사람들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지금도 다른 세상이나 다른 세상의 사람들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다른 세상, 다른 세상 사람들은 정말 존재하기나 했던 걸까? - P14

전쟁이 끝난 뒤 내 어릴 적 시골마을은 여자들의 세상이었다. 여자들의 마을, 남자 목소리를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때의 풍경은, 마을 여자들이 전쟁을 이야기하고 흐느껴 울고, 흐느끼듯 노래하던 모습으로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학교 도서관의 책은 절반이 전쟁에 관한 것이었다. 마을 도서관도, 아버지가 책을 빌리러 자주 들르곤 하셨던 구청 도서관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정말 우연일까? 우리는 끊임없이 전쟁을 하거나 전쟁을 준비했다. 다들 어떻게 전쟁을 치러냈는지 이야기했다. 우리는 한 번도 다른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고, 어쩌면 다르게 사는 법을몰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세상, 다른 방식의 삶을 상상조차 할수 없는 우리는, 언젠가 다르게 사는 법을 오랫동안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 P15

학교는 우리에게 죽음을 사랑하도록 가르쳤다. 우리는 의 이름으로 명예로운 죽음을 맞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에 대해 글을 썼고그것을 꿈꿨다.
하지만 학교 밖의 세상은 다른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 다른 이야기에마음을 더 빼앗겼다.
나는 오랫동안 현실에 눈이 어두운 사람이었다. 현실은 나를 놀라게했고 또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삶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겁도 없었다. 이제와 생각해본다. ‘만약 내가 좀더 현실적인 사람이었다면, 이처럼 밑도 끝도 없는 깊은 나락으로 달려들 수 있었을까?‘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무지 때문에? 아니면 이 길을 갈 것만 같은 예감 때문에?  - P15

사실 그런 예감은 있었다......
오랫동안 찾아 헤맸다…… 어떤 말을 써야 내 귀에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내가 느끼는 세상을, 내 눈이 보고, 내귀가 듣는 이 세상을 표현해낼 수 있는 장르를 나는 애타게 찾았다.
어느 날 우연히 ‘나는 화염에 휩싸인 마을에서 왔다』라는 책을 읽게되었다. 아다모비치, 브릴, 콜레스니크의 소설. 그런 충격은 우연히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으며 충격받았던 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소설의 형식은 놀라웠다. 소설은 삶 그 자체의 목소리를 담고 있었다. 소설은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 지금도 거리와 집과 카페와 전차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바로 이거야! 세상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을 찾은 것이다. 사실 찾을 줄알고 있었다.
알레시 아다모비치는 나의 스승이 되었다…… - P16

2년 동안 나는 생각했던 만큼 자주 사람들을 만나지도 글을 쓰지도못했다. 읽기만 했다. 내 책은 무엇을 이야기하게 될까? 글쎄, 전쟁에 대한 또 한 권의 책이라…… 무엇 때문에? 전쟁은 사실, 크고 작은 전쟁 - P16

들에서부터 널리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전쟁들까지, 이미 수천 번도 더 넘게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쓰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건 모두 남자들이 남자들의목소리를 들려준 것이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알았다. 우리는 모두 ‘남자‘가 이해하는전쟁, ‘남자‘가 느끼는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 ‘남자‘들의 언어로 쓰인 전쟁. 여자들은 침묵한다.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할머니의 이야기를 묻지않았다. 나의 엄마 이야기도 심지어 전쟁터에 나갔던 여자들조차 알려들지 않았다. 우연히 전쟁 이야기가 시작되더라도, 그건 ‘남자‘들의 전쟁 이야기이지, ‘여자들의 전쟁은 아니다. 이들의 행동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매번 똑같다. 집에서나 전쟁을 같이 치른 여자들의 모임에서만 잠깐 눈물을 보인 뒤, 비로소 자신들의 전쟁, 나는 알지 못하는 전쟁에 대해서 입을 연다.  - P17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알지 못하는 여자들의전쟁, 취재여행을 다니면서 나는 여러 차례 생각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들의 목격자가 되고 유일한 청취자가 되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처럼 큰충격을 받았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치가 떨리도록 극악하고 참혹한진실이 숨어 있었다…… 여자들이 이야기할 때, 그들의 이야기에는 우리가 읽거나 들어서 익숙한 내용, 그러니까 어떤 이들이 얼마나 영웅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승리를 거뒀는지, 아니면 어떻게 패배했는지, 어떤 기술들이 사용됐고 어떤 장군이 활약했는지 따위의 내용은 아예 없거나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여자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것이고, 또 여자들은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 ‘여자‘의 전쟁에는 여자만의 색깔과냄새, 여자만의 해석과 여자만이 느끼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여자만의언어가 있다. 그곳엔 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으며, 다만 사람들, - P17

때론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만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땅도 새도 나무도 고통을 당한다.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고통스러워한다. 이들은 말도 없이 더 큰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왜? 나는 여러 번 자신에게 물었다. 절대적인 남자들의 세계에서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놓고 왜 여자들은 자신의 역사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을까? 자신들의 언어와 감정들을 지키지 못했을까?
여자들은 자신을 믿지 못했다. 하나의 또다른 세상이 통째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여자들의 전쟁은 이름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바로 이 전쟁의 역사를 쓰고자 한다. 여자들의 역사를. - P18

고결한 곳으로 향하는 길과 비열한 곳으로 향하는 길, 천사로부터 짐승에 이르는 길 회상이란 지금은사라져버린 옛 현실에 대한 열정적인, 혹은 심드렁한 서술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거슬러올라간, 과거의 새로운 탄생이다. 무엇보다 새로운창작물이다. 사람들은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삶을 새로 만들어내고 또 새로 써내려간다. 있는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를 ‘보태고‘, 있는이야기를 뜯어고친다‘. 바로 이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경계해야 한다.
동시에 고통은 어떠한 거짓도 녹여내고 없애버린다. 고통은 너무나도뜨겁기에! 확신컨대, 간호사나 요리사, 세탁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꾸미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해 이들은 신문이나 책따위에서 이야기를 끌어오지 않는다.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삶에서 뽑아낸 진짜 고통과 아픔을 들려준다. 많이 배운 사람들의 감정과 언어는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시간에 의해 다듬어지기 쉽다.  - P19

이를테면, "우리는 너무 어린 나이에 전쟁터로 갔어. 얼마나 어렸으면 전쟁중에 키가 다자랐을까" 같은 말. 이미 수십 미터에 달하는 녹음테이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말 역시 꼼꼼하게 수첩에 적는다. 녹음테이프만 벌써 네다섯 개다……
무엇이 나를 돕는 걸까? 그건 바로 우리가 함께 사는 데 익숙하다는사실이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행복도 있고눈물도 있다. 우리는 고통스러워할 줄도 고통에 대해 이야기할 줄도 안다. 고통은 남루하고 힘겨운 우리네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아픔, 그건 우리에게 하나의 예술이다. 우리 여자들이 바로 이 아픔과 고통의 길을 향해 용감하고 당당하게 나아갔음을 나는 밝혀야만 한다…… - P20

이제 누구를 속일 이유도 누군가에게 속아줄 이유도 없다. 죽음에 대한 사유 없이 사람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미 분명해졌다. 죽음의 비밀은 그 어떤 것보다 우위에 있다.
전쟁은 지나치게 내밀한 체험이다. 우리네 인생살이만큼이나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한 여인(비행기 조종사였다)은 나와 만나기를 거부했다. 그녀는 전화로 거절 사유를 설명했다. "옛날 일을 떠올릴 수가 없어요. 생각조차 하기 싫어요…… 3년이나 전쟁터에 있었어요. 그 3년 동안 나는 여자가아니었죠. 여자로서 내 몸은 죽어버렸어요. 생리도 끊기고 여성으로서의 욕구도 거의 없었으니까. 나는 꽤 예뻤어요…… 우리 남편이 나에게 청혼했는데…… 베를린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그이가 청혼하면서 그러더군요. 전쟁은 끝났고, 우리는 살아남았다고. 우리는 억세게......
운이 좋았다고 자기랑 결혼하자고. 나는 엉엉 울고 싶었어요.  - P22

사람이 전쟁보다 귀하다…...
사람이 전쟁보다 귀하게 여겨지는 곳. 그곳에선 역사보다 더 강력한무언가가 사람을 다스린다. 내 글의 폭을 넓혀야겠다. 전쟁에 대한 진실만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진실을 담은 책을 써야 한다. 도스토옙스키가 던진 물음. 사람은 자신 안에 또다른 자신을 몇 명이나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그 다른 자신을 어떻게 지켜낼까?‘ 이 물음을 이제 나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악은 분명 매혹적이다. 그리고 선보다 솜씨가 뛰어나다. 마음을 더 잡아끈다. 내가 전쟁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세계에점점 더 깊이 빨려들어가는 사이, 다른 것들은 모두 빛을 잃고 흐릿해지며 시들해졌다. 거대하고 무자비한 세계다. - P23

나는 전쟁이 아니라 전쟁터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전쟁의 역사가아니라 감정의 역사를 쓴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역사가다.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시간 속에 살고 구체적인 사건을 겪는 구체적인 사람을 연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영원한 인간을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영원의 떨림을 사람의 내면에 항상 존재하는 그것을.
사람들은 나에게 회상은 역사도 문학도 아니라고 말한다.  - P25

다시 한번 똑같은 이야기…... 나는 우리를 둘러싼 외부의 현실만이아니라 우리 내면의 현실에도 관심이 있다. 사건 그 자체보다 사건 속감정이 더 흥미롭다. 이렇게 말해두자. 사건의 영혼이라고. 감정이야말로 나에겐 현실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역사는 거리에 있다. 군중 속에 나는 우리 한 사람한 사람이 역사의 조각들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은 반 페이지만큼의 역사를, 또 어떤 사람은 두세 페이지만큼의 역사를 우리는 함께 시간의 책을 써내려간다. 저마다 자신의 진실을 소리 높여 외친다. 하지만 뉘앙스의 함정. 그래서 이 모든 진실의 외침을 명확히 들어야만한다. 이 모든 것 안에 녹아들고 이 모든 것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 P26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잃어버려선 안 된다. 거리의 언어와 문학의 언어를 하나로 잘 버무려내야 한다. 어려운 점 한가지 더. 그건 우리가 지금 현재의 언어로 과거를 이야기한다는 사실이다. 과연 그네들은 지난날의 감정을 제대로 전할 수 있을까? - P27

여자들이 전쟁에 대해 아무리 이러니저러니 떠들어도 기본적으로여자들의 머릿속에는 ‘전쟁은 살인행위‘라는 생각이 또렷이 박혀 있다. 그리고 여자들에게 전쟁은 ‘힘겨운 일‘이자 ‘평범한 보통의 삶‘이기도하다. 그래서 그네들은 전쟁터에서도 노래를 하고, 사랑에 빠지고, 머리를 매만졌다……
여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죽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혐오와 두려움이 감춰져 있다. 하지만 여자들이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원치 않는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여자는 생명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선물하는 존재. 여자는 오랫동안 자신 안에 생명을 품고, 또 생명을낳아 기른다. 나는 여자에게는 죽는 것보다 생명을 죽이는 일이 훨씬 더가혹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 P29

그들의 울음과 비명을 극화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그러지않으면 그들의 울음과 비명이 아닌, 극화 자체가 더 중요해질 테니까. 삶 대신 문학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릴 테니까. 이 일이 워낙 그렇다. 그렇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늘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넘나든다. 사람은 전쟁터에서 가장 잘 보이고 잘 드러난다. 내면의 깊은 곳까지, 저 깊숙한 피하조직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어쩌면 사랑할 때도 그럴지 모르겠다. 죽음의 얼굴 앞에서는 모든 사상과 이념이 그 의미를 잃는다. 누구도 미리 대비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그런 영원의 세계가 열린다 - P31

고통에 귀를 기울인다…… 고통은 지난한 삶의 증거이다. 다른 증거따윈 없다. 다른 증거 같은 건, 나는 믿지 않는다. 사람의 말이 얼마나 우리를 진실에서 멀어지게 했던가.
나는 비밀에 직접 잇닿는, 비밀에 대한 최상의 정보인 고통에 대해 생각한다. 삶의 비밀을 간직한 고통을 모든 러시아문학은 고통에 대해 말한다. 사랑보다 고통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그리고 사람들도 내게 고통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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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반 강간 반 결혼지참금 캠페인을 통해 인도에서 여성운동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는 점은 강조할 만하다. 이 캠페인을 통해 페미니즘은 서구에서 수입된 이데올로기일 뿐 아니라 인도 여성이 가부장적이고 여성차별적인 남녀관계에 맞서는 투쟁을 전개하는 것에도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 캠페인 과정에서 분명해진 또 하나의 어두운 사실은 여성에대한 폭력이 중산층 여성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성에대한 강간과 잔혹행위들은 봉건적 혹은/그리고 자본주의적 계급관계의 일부일 뿐이라는 인도 좌파의 표준적인 설명은 더 이상 견지될 수없게 되었다.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노동자나 가난한 집안의 여성만이 강간 피해자인 것은 아니었다. 존경받고 교육받은 중산층 여성도 마야 티아기Maya Tyagi사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피해자가 되었다. - P330

부유한 농가 출신의 23세 여성인 마야는 남편과 함께 자동차를타고 조카 결혼식장에 가는 길이었다. 마야는 임신 중이었다. 길 위에서 타이어가 펑크가 나자, 그들은 바그파트에 있는 경찰서 부근에 차를 세웠다. 사복차림의 한 경찰이 자동차로 와서 티아기를 성희롱하기시작했고, 그러자 티아기의 남편이 그 경찰을 때렸다. 경찰은 경찰서로가서 경찰 부대를 모두 동원해 데리고 왔고, 이들에게 불을 질렀다. 이들은 경찰들로부터 도망가고 싶었지만, 차 안에 두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총을 맞고 숨졌고, 다른 남성도 곧 총을 맞고 숨졌다. 이후마야는 차 밖으로 끌려나와 구타를 당하고, 장식품을 모두 강탈당했으며, 옷이 벗겨진 채로 시장을 끌려다녔다. 경찰서로 끌려간 마야는 7명의 경찰에게 강간을 당하고 구속되었다. 그들은 그녀에게 자신들의 오줌을 마시게 했다. - P331

경찰은 보고서에서 이는 강간 사건이 아니며, 사망한 남자들은도둑이고, 마야는 두 남자 중 한 명의 ‘정부‘라고 했다(Economic andPolitical Weekly, 26 July 1980; Manushi, August 1980).
다른 어떤 사건보다 이 사건은 많은 대중적 저항과 의회의 항의와여러 여성 조직의 집회, 그리고 엄벌에 대한 요구를 낳았다. 그러나 정부는 경찰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취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이 자신의 정통성을 위협하고 ‘법과 질서‘를 지킨다고 여기는 집단의 세력이약해질 것을 우려했다. 가정주부 장관이 마야를 만났고, 진상조사위원회에게 마야가 수상인 인디라 간디를 만날 수 있도록 해주라고 조언했다. 다음은 진상조사위원회가 서술한 내용이다.

한 여성이 야만적인 대우를 받은 사건에 대해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 - P331

기 위해서라도 그녀(인디라 간디)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는 수상과 일정을 약속하고 그녀와 함께 갔다. 수상은 우리의 말을 듣고 나서 영어로 다음과 같이 간단히 말했다. ‘글쎄요. 거기에는견해 차이가 있는 것 같네요. 수상은 마야에게 직접 말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나중에 그녀가 마야에게 딱 두 개의 질문만 했다는 것을 전해들었다. 첫째는, 당시 그녀가 금붙이를 얼마나 지니고 있었으며, 그날했던 장신구 목록은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누구의 조언 아래 델리까지 오게 되었냐는 것이었다(Economic and Political Weekly,
26 July 1980). - P332

인도 정부의 이런 대응을 길게 인용한 것은, 이런 무시무시한 사건도 여성 수상을 비롯한 정치가에게는 정치적 필요를 위한 것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야당도 이사건을 인디라 간디의 정부가 인도에서 여성을 ‘보호‘하고 ‘존중할 수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에 이용했다.
이런 사건이 알려지면서, 언론에서 여성에 대한 강간과 다른 잔혹행위 기사가 더욱 더 넘쳐나게 되었다. 경찰관에 의한 집단 강간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어쨌든 경찰관만 여성을 강간한 것이 아니라 일반남성 사이에서도 강간범이 나왔다. 그중에는 신부, 승려, 우편배달부,
시집형제, 10대 소년, 여성의 고용자, 노동자, 지주 등이 있었다. 집단강간은 전국적으로 유행중인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강간사건은 힌두, 무슬림, 기독교 등 모든 공동체에서 발생했다. ‘다른‘ 공동체의 여성만이아니라 같은 공동체에 있는 여성도 강간을 했다. 앞서 비의 경우도 무슬림 경찰들에 의해 강간을 당했다.  - P332

여성운동만이 아니라 언론, 정치인, 그리고 몇몇 학자도 ‘여성에 대한 잔혹행위‘가 증가하는 것에 대해 그 이유를 묻기 시작했다. 인도의 인구학자는 인도에서 여성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알지 못한다. 인도가 간디가 꿈꾸었던 평화로운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교육받은 중산층에게는 일종의 쇼크이다. 결혼지참금 살해와 강간을막는 운동을 전개하면서, 여성조직과 언론, 그리고 마침내 몇몇 학자도 인도에서 여성이 왜 점점 더 남성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있는지, 왜여성은 점점 더 원치 않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지를 숙고하게 되었다.
고전적인 좌파적 설명에 따르면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여성은 남성과경제적으로 평등하지 않고, 따라서 남성 폭력에 굴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혹은 법들이 통과되지만 제대로 집행되지는 않고 있으며, 따라서 정부가 법과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주장이다(Gita Mukherjee, 1980).  - P334

여성을 ‘비생산적이고 의존적인 가정주부로 보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지참금 살해, 여아낙태, 강간, 어린 여아에 대한 방치 등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이 결국은 여성이 경제적으로 ‘비생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 여성은 부담이자 짐이기 때문이라는 이론적 전제로 귀결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반여성적 경향은 엥겔스의 유명한 말처럼 여성이 사회적 생산으로 다시 진입하게 되면, 즉 여성이 ‘돈 버는 취업을 하게 되면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논리는 인도만이 아니라 세계 어디나 존재하는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최소한 여성의 40%가 집 밖에서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서구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내 구타와 여성에 대한 폭력은 모든 계급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취업을 해서 돈을 버는 여성뿐아니라 ‘한낱‘ 가정주부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소련에도(Women in Russia, Almanac, 1981 참조), 중국에도(Croll,1983), 짐바브웨(성매매가 금지된 곳이다), 유고슬라비아 등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에도 있다.
- P339

‘적자생존‘ 즉 강한 남성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정복자, 승리자가 항상 옳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강간 법과 강간 신화의 뒤에 자리한 이데올로기이다. 이런 종류의 과학을 수용하는 이들은 파시즘이나 제국주의도 수용할 것이라는 점을 우리가 알지 못하겠는가?
심리분석학파의 창시자이자 잠재의식의 발견자인 프로이트 SigmundFreud조차도 이런 신화와 진화주의자에 의해 정당화된 ‘과학적‘ 주장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문화가 이런 폭력적인 남성의 성적 욕구를 억압하고 승화시킨 것에 기초한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그의 오이디푸스콤플렉스 이론은 기본적으로 어머니라는 하나의 성적 대상을 놓고아버지들과 아들들이 벌이는 남성의 성 경쟁 이론이다. 또한 그는 남성 섹슈얼리티가 능동적이고 공격적이며, 신경증적 형태로, 가끔은 가학적이라는 이론을 수용한다. 그리고 여성 섹슈얼리티는 수동적이고 심디어 피학적이라고 여긴다. - P350

프로이트에 따르면 여성은 자신의 ‘타고난‘ 여성적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서만, 즉 그녀의 ‘미숙한 음핵(클리토리스) 섹슈얼리티를 포기하고 남성의 성욕을 만족시켜주는 데필수적인 질의 섹슈얼리티로 옮겨가는 것을 통해서만 완전히 성숙한섹슈얼리티에 이를 수 있다. 프로이트와 같은 권위 있는 학자가 질의 오르가즘이 여성 섹슈얼리티의 ‘성숙한 형태라는 이론을 강화시켰다고 하는 것은 놀랍다. 프로이트는 질에는 신경말단이 없기 때문에 오르가즘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그런 이론을 주장했다. 그는 음핵이 여성의 적극적인 성기이며, 따라서 여성은질을 통한 삽입 없이도 오르가즘을 생산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남성 섹슈얼리티에 몰두했던 프로이트는 여성을 불완전하거나 거세당한 남성이고, 음핵은 작은 남근이며, 사회에서 종속적인 역할을 바꾸려는 여성의 시도는 남근선망의 결과라고 규정했다. - P351

학자들은 이런 이론들을 자신들의 이론적 틀에 적용하기 전에 아주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 이론들은 남성과 여성 섹슈얼리티가 생물학적으로만 결정된다는 함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이론들은 남성과 여성 몸의 일정한 부분이 왜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기에 주목을 받는지, 다른 부분은 왜 주목을 받지 않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음핵을 독립적인 여성 성기로 재발견하게 된 것은 서구의 페미니스트운동 때문이었다.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에서는9~12세 사이의 소녀가 할례를 통해 음핵을 제거 당한다. 그러나 유럽을 비롯한 다른 세계의 여성도, 그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오르가즘이무엇인지에 대해 알지 못하도록, 심리적으로는 할례를 당해왔다.
여성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남성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 P351

위에서 비판한 강간과 남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자기개념 속에 보완적 내용들을 갖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공격자들은 종속된 이들이 상황을 자연이 부여한 것으로, 혹은같은 의미지만, 신이 부여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지 않으면, 자신이 정복하고 종속시킨 이들에 대한 통제를 영구적으로 유지할 수가없다. 남성에 대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창안자들은 여성에 대해서도 그에 어울리는 이데올로기를 창안해 왔다. 이는 영원한 희생자의이데올로기, 자기희생의 이데올로기 (근대 서구적 버전으로는 여성 피학성의 이데올로기)이다. 힌두교와 민간 신앙은 어머니와 빠띠브라따Pativata  역할을 해내는 자기희생적인 여성을 이상화한다. 여성은 고유의 정체성을 갖지 않으며, 다른 이들에게, 주로 남편과 아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태어났다. 여성은 자신의 생명, 자신의 몸,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자율성을 갖고 있지 않다. 그녀는 수단이며 대상이지, 주체가 아니다. - P352

그러나 여성은 어떤 부르주아적 의미에서도 자유로운 역사적 주체로 규정된 적이 없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의 여성이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여성도 스스로를 소유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 자신, 자신의총체적인 인격, 자신의 노동력, 자신의 감정, 자신의 자녀, 자신의 몸, 자신의 섹슈얼리티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남편의 것이다. 그들은 재산이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공식 논리에 따라 그들은 재산의 소유자가될 수 없었다. 남성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노동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재산소유자의 범주에 들지만, 여성은 재산소유자의 범주에 공식적으로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자유‘ 시민 혹은 역사적주체도 될 수 없다. 이는 부르주아 혁명의 시민적 자유가 여성에게는아무 의미가 없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여성이 그렇게 늦게 투표권을부여받게 된 깊은 이유이며, 결혼 관계 내에서의 강간이 범죄로 여겨지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 P361

여성은 재산 소유자가 아니라 스스로가 재산인 존재이다. 그렇기때문에, 부르주아 논리를 따르면, 여성은 자유로운 주체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여성은 계약관계를 맺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이에 비해,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자신의 노동력을 소유하고 있어 원하는 사람에게는팔 수 있는 ‘자유‘ 프롤레타리아는 계약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노동계약은 두 자유로운 주체가 등가교환의 관계로 들어간다는전제에 기초해 있다. - P361

여성을 남성과 자본축적과정 아래 폭력적으로 종속시키는 일이대대적으로 수행된 것은 유럽의 마녀 사냥이 그 시작이었다. 이 일을기반으로 해서 이른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수립되었다. 말하자면노동력을 소유한 이들과 생산수단을 소유한 이들 사이의 계약 관계가 수립된 것이다. 큰 의미에서 자유롭지 않은, 강제로 종속된 여성이나 식민지 노동력의 이런 기반이 없었다면, 자유 프롤레타리아의 강제적이지 않은 계약 노동관계의 수립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과식민지인은 재산과 자연으로 규정되었다. 이들은 자유로운 주체로 간주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의 세계로 진입하지 못했다. 둘 다 무력과직접적인 폭력을 통해 종속되었다.
민중이 여전히 생산수단을 이용할 권리를 어느 정도 갖고 있을 경우, 경제적 차원에서 이런 폭력은 항상 따르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농민은 자발적으로는 외부 시장을 위한 상품 생산을 시작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선 자신들이 소비하지 않는 물품을 생산하라는 압력을 받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의 밭에서 쫓겨나게 되거나, 부족 차원에서 강제로 영토에서 쫓겨나 전략 마을들에 재정착하게 된다. - P362

인도 헌법에서 시민권이 잘 보장되고 있다고 해서 상당한 정도의 폭력과 강압에 기초한실제의 생산 관계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남성이 사유재산을 소유한 ‘자유로운 주체로 구성된 형제단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계속되는자본의 원시적 축적‘에 내재한 요소인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가장 빠르고 가장 ‘생산적인 방법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살펴보았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강압적인 노동관계를 통해 여성 노동을 갈취하는 것은, 따라서,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부분인 셈이다. 폭력은 자본주의적 축적 과정에 필수적인 것이지, 주변적인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그 축적 모델을 유지하기 위해 가부장적 남녀관계를 이용하고, 강화시키고, 심지어 발명해내야 했다. 세계 모든 여성이 ‘자유로운‘ 임금노동자, ‘자유로운 주체가 된다면, 이윤을 착복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제3세계에서부터 제1세계까지 가정주부, 노동자, 농민, 창녀 등 모든 여성이 공유하는 점이다. - P363

제3세계여성은, 민족해방투쟁 혹은 그런 투쟁 이후의 국가건설과정에 관여한 경우, 서구페미니스트의 이런 도덕적 딜레마를 사치스럽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은 그런 고민할 시간이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일부러 현실에 눈감으려 하지 않는다면, 결국그 문제를 피할 수가 없다. 지난 해 경찰의 반성매매 검거로 잡힌 짐바브웨 여성처럼, 이것이 그녀의 형제들이 죽어가며 만들어낸 국가인가하는 것을 물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Sunday Mail, Harare, 27November 1983) - P369

이 여성이 구속되었을 때 그녀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치비에서 곡물을 키우며 아버지의 가축을 돌보고 있다. 나는 15세이며, 경찰이든 경찰이 아니든, 나에게 명령할 남성이 필요하지 않다. 이것이 나의 어린 두 남동생이 숲속에서 사망하고, 오빠가 엉덩이 아래 오른쪽 다리를 모두 잃어가며 성취한 독립이고 자유인가?
왜 성매매가 있냐고 질문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위원회는 필요없다. 우리 모두 이유를 안다. 교육받지 못한 소녀에게는 일자리가 없다. 그러나 가뭄에 가족을 먹이기 위해서는 식량을 살 돈이 필요하다.
공무원에게 더 지불하는 것은 국가의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것이다. 이 소녀들에게 일자리를 주라. 낯선 이에게 몸을 팔고 싶어 하는 여성은 없다(Patricai A. C. Chamisa,
Sunday Mail, Harare, 27 November 1983). - P369

맑스-레닌주의자는 남녀갈등을 둘러싸고 여성이 독자적으로 조직하고 모이는 것을억압받는 이들의 단결을 해치는 것으로, 통일전선을 와해시키는 것으로, 따라서 태생적으로 반혁명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들의 혁명 개념속에서, ‘여성문제‘는 부차적 모순이며, 제국주의와 계급관계의 주요모순이 해결된 이후 이데올로기적으로 다룰 문제라고 여겼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국의 딩링 Ding Ling이나 소련의 콜론타이Alexander Kollontai처럼 가부장제에 대한 투쟁을 다른 ‘일반적 투쟁 속에복속시키려고 하지 않았던 페미니스트들이 고립되고 ‘망각‘되었다. 그러나 중국에서 반여성적 경향의 경험이나 베트남 여성연합이 토로한결코 사라지지 않는 남성의 봉건적 태도에 대한 불만은 인민의 의식이 문화혁명이나 이데올로기적 투쟁만으로는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을보여주는 증거이다. 이런 문화혁명은 다른 어느 곳보다 강하게 중국에서 시도되었던 바 있다. - P408

이 과정은 강조점이 민족에서 국가로 이동하는 것에도 반영된다.
해방투쟁 동안 전체 민족은 심리적 역사적 동일성으로 표현되던 것에비해, 해방 이후 국가와 그 기관들은 공공선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근대경제를 구축하는 것과 강한국가를 세우는 것이 대개 같은 것이된다. 앞서 언급했던 혁명 포스터에서처럼, 민족에 대한 여성적 이미지가, 이 단계에서는 건국의 아버지 이미지로 대치된다. 몇 명만 꼽아 보면 맑스, 엥겔스, 레닌, 스탈리, 마오, 호치민, 카스트로, 무가베 등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사회주의적 가부장의 갤러리 속에 여성은 없다. 이들은 정말 사회주의 국민이 아니라, 국가의 아버지들이다. 다른 가부장제와 마찬가지로 국가형성의 전체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건국의 아버지들을 이상화하는 과정에서 은폐되었다.  - 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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