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1931-2011

1931년 경기도 개풍 출생.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 재학중 육이오전쟁을 겪고 학업을 중단했다. 1970년 불혹의 나이에『나목』으로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어 문단에나온 이래 2011년 영면에 들기까지 사십여 년간 수많은 걸작들을 선보였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배반의 여름』 『엄마의 말뚝』 『그해겨울은 따뜻했네』「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정말 거기 있었을까』 『친절한 복희씨』 『기나긴 하루」 「미망』 등다수의 작품이 있고, 
한국문학작가상(1980) 이상문학상(1981)대한민국문학상(1990) 이산문학상(1991) 중앙문화대상(1993)현대문학상(1993) 동인문학상(1994) 한무숙문학상(1995) 대산문학상(1997) 만해문학상(1999) 인촌상(2000) 황순원문학상(2001) 등을 수상했다. 2006년 호암상, 서울대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타계 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받았다. - P-1

쥬디 할머니의 일과는 국판 크기로 확대해서 패널한 쥬디사진하고 뽀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할머니에게 쥬디가하나밖에 없는 손자이거나 맏손자도 아닌데 할머니는 유난히쥬디만을 애지중지했다.
해외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할머니의 장성한 오 남매 중 막내만 빼고는 다 결혼해서 아이를 두셋씩 두고 있으니까 쥬디도그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할머니가 혼자 사는 아파트 거실장식장엔 제각기 단란하게 사는 사 남매의 가족사진과 막내의독사진 그리고 연전에 돌아가신 영감님의 독사진까지 도합 여섯 개나 되는 번쩍거리는 자개 액자가 진열돼 있어서 사뭇 근검했다. 가까이서 모시고 있건 멀리 떨어져 있건 자식처럼 튼튼하고도 화려한 울타리는 없다는 생각을 보는 사람마다 저절로 하게 했다. - P9

사진 속의 손자녀의 수는 도합 열 명이었고 쥬디는 그중 말아들의 막내딸이었다. 열 명의 손자녀 중에서 쥬디가 몇번째인지는 할머니도 자주 헷갈렸다. 할머니에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일 년에 한 번씩은 자손들을 두루 만나러 해외 나들이를 하는데 그때마다 쥬디가 할머니를 가장 반기고 따르고 입에 혀처럼 시중들고, 헤어질 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러워하기 때문에 할머니도 그렇게 쥬디라면 푹 빠져헤어나질 못했다. 그래서 쥬디 사진만은 딴 사진들처럼 한자리에 울타리가 되어 버티고 있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옮겨다녔다. 밤엔 물론 할머니의 침대머리에 놓였고, 낮에는 장식장에 놓였다가 전화대에 놓였다가 탁자에 놓였다가 부엌 식탁위에 놓였다가 했다.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재떨이를 끼고 다니듯 잠시라도 가까이에 있지 않으면 허전해하는 할머니를 보다못해 몇 장 더 뽑아서 여기저기 조석으로 할머니 발길 닿는 데마다 놓아두라고 일러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할머니는모르는 소리 좀 작작 하슈. 끼고 다니는 것도 낙이라우, 하는것이었다. 또 늙은이라고 아이들은 괴는 대로 괴게 마련이라우, 하기도 했다. - P10

할머니도 상완이 엄마 친구가 누군지를 알아보았다. 할머니가 허둥지둥 돌아온 방은 변함이 없었다. 쥬디의 사진은 나갈때 놓아둔 대로 식탁 위에서 천사의 미소를 띠고 있었고 장식장에 즐비한 가족사진은 변함없이 근검했다.
할머니는 그 한가운데서 그 모든 것을 둘러보았다. 그러나할머니의 눈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공허했다. 할머니는 식탁 의자에 앉으면서 식탁 위로 몸을 던졌다. 식탁이기우뚱하면서 쥬디 사진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할머니는 듣지 못했다. 할머니 귀 속에선 여자들의 수많은 입이 쑥덕거리고 깔깔거리는 소리가 한 덩어리의 날카로운 아우성이 되어 점점 기승스러워지고 있을 뿐이었다.
곧 죽을 것 같아, 혼자서 할머니는 혼자서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힘이 되어 겨우 몸을 일으켰다. 할머니 둘레의 모든 것은 그대로 있었지만, 할머니에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어차피 무에서 빌려온 것이었으므로 마지막 권리가 무에 있음을 고분고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할머니는 거의 촉감만으 - P29

로 전화기를 찾아 다이얼을 돌릴 수가 있었다.
"이사장이야? 난데 우리 아파트 좀 급히 처분해줘야겠어. 물론 대신 하나 사줘야지. 혼자 살아도 큰 게 낫겠어. 이웃을 봐야 하니까. 상종 안 해도 이웃은 이웃 아냐. 이웃에 정떨어지니까 한시가 급해. 처분될 때까지 농장에 내려가 있을까봐.
밑져도 할 수 없지. 부탁해."
말이란 건 좋은 거였다. 말을 하니까 한결 기운이 났다.
그래, 난 다시 울타리를 칠 수 있을 거야. 새로운 울타리를.
할머니는 서둘러 간단한 여장을 꾸렸다. 짐을 챙기느라 흩어진 잡동사니를 발로 대강 그러모았다. 그중엔 쥬디 사진도있었다. 할머니는 개의치 않았다. 그건 그냥 잡동사니일 뿐이었다.
나는 다시 울타리를 칠 수 있을 거야. 할머니는 오로지 그생각만 했다.
(1981) - P30

지겹던 늦더위 끝에 반갑잖은 가을장마가 지더니 오랜만에청명한 날씨였다. 아까부터 마당에 내려가서 맨손으로 클럽휘두르는 폼을 재고 있던 맹범씨가 주춤주춤 마루로 올라왔다. 잠깐 마나님 눈치를 보다가 이 방 저방 다니며 장롱을뒤지기 시작했다. 뭘 찾는 데는 워낙 재간이 없는 맹범씨였다.
지금도 자기 힘으로 찾으려는 게 아니라 마나님이 알아서 찾아주든지 귀띔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눈치가 역력했다. 그러나마나님은 못 본 척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다. 저명인사와의 대담 프로였다. 마나님은 그 집 마당의 장미가 참 곱다고 생각했다. 맹범씨네 정원도 예년 같으면 늦장미가 제철 장미보다 더화사할 땐데 장마 끝이라 퇴락해 보였다. 마나님은 별것도 아닌 것에 묘한 질투가 나서 매스컴 타기 좋아하는 사람은 어딘가 달라도 다르니까, 하고 명사를 깔보았다. - P33

백 평이 넘는 제법 넓은 마당에 은행나무는 아직 청청하고, 자귀나무는 분홍색 깃털을 가진 어여쁜 새들이 무수히 내려앉아 고개만 푸른 잎 사이에 감추고 있는 것처럼 화려하게 하늘대고, 담 모퉁이의 빨랫줄 아래 자생한 맨드라미꽃은 장닭의벼슬처럼 도도하게 검붉고, 장마통에 여기저기 웃자란 잡초만 제거해준다면 잔디의 푸르름도 반드르르 한결 더 윤기가 흐를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은 이제 전성기에있지 않았다. 그런 것들 사이에 소리도 그림자도 없이 고루 스민 가을 기운의 사정없는 잠식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마나님은 춥지도 않은데 공연히 어깨를 웅숭그리며 나직하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 P35

전철로 이백원 거리가 몇 리쯤 되는지 어림짐작도 가지 않았다. 사람들마다 그를 흘끔흘끔 쳐다보고 지나갔다. 어떤 사람의 표정엔 불쾌감이 어떤 사람의 표정엔 무관심이 어리는 걸 맹범씨는 색깔을 구별하듯이 명료하게 알아보았다. 자는 아이는 깨어 있는 아이보다 훨씬 더 무겁고 자꾸만 옆으로 뭉그러져내렸다. 그는 아이를 힘겹게 추스르며 역내를 마냥 헛되이 서성됐다. 문득 그의 모습이 역내의 대형 거울에 비쳤다. 저늙은이가 누굴까. 저 늙고 초라하고 더럽고 비굴한 늙은이는 누구란 말인가. 그 늙은이가 그가 매일 아침 거울에서 봐온 품위 있고 건강하고 자신 있게 늙어가는 자신이란 말인가. 구내의 전자시계는 세시 사십오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맹범씨는 네 시간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 얼토당토않다는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방금 경험한 네 시간은 그가 여직껏 살아온 고르고 유연하게 흐르던 시간과는 전혀 단위가 다른 시간이었으므로. 그건 돈의 단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지금 필요한 이백원의 가치를 그가 여직껏 쓰거나 모아온 재산과 같은 단위로 헤아리는 건 불가능했다. 그는 거울속의 자신을 오랫동안 직시하고 나서 창구 앞에 줄 선 사람들한테로 갔다. 그리고 떨리는 두 손을 모아 구슬픈 소리로 구걸을 하기 시작했다. 이 늙은이를 불쌍히 여기시어 차비를 좀 보 - P69

태주십시오. 집은 먼데 차비가 떨어졌습니다. 이 늙은이와 등에 업힌 이 어린것을 불쌍히 여기시어 한푼만 보태주십시오.
맹범씨는 버스나 전철을 타본 일이 거의 없었으므로 정말로 돈이 없거나, 노망기로 정거장에서 구걸하는 노인을 구경한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구걸은 그에게 썩 잘 어울렸다.
(1985) - P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셜리폴스의 뒷길에는 데이지와 분홍색 클로버가 자랐다. 야생스위트피도 루핀이나 티머시와 엉켜 자랐고, 돌담을 기어오르는큰 잎 스타펠리아는 물론이고 라즈베리와 블랙베리도, 들판에는야생당근도 자랐다. 하지만 올여름에는 하나같이 시들하니 빛이바래서, 흙길 옆에서 먼지를 겹겹이 뒤집어쓰며 자라는 잡초나야생화처럼 보였다. 지독한 열기와 푹푹 찌는 날씨 때문이었는데, 그걸로도 모자라 저 높이 펼쳐진 가차없이 허연 하늘은 세상의 어떤 평범한 색깔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해 보였다.
6월이었다. 6월에는 세상이 초록으로 여물고 활기가 넘치게마련이지만, 이번에는 하느님이 깜박 잊고 뉴잉글랜드의 커다란 창밖 화분 상자에 비료를 주지 않은 것처럼 뭔가 빠져 있는 듯했 - P259

다(낙농장 주인의 아내 에드너 톰슨이 어느 날 바깥에 빨래를 널다가 문득 한 생각이었다). 데이지는 키만 껑충했지 앙상하기 짝이 없었고, 꽃은 뽐낼 것도 거의 없었다. 아이들이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하고 조잘대며 꽃잎을 따면 금세 떼어졌다. 높게자란 티머시의 연녹색 잎사귀는 고단한 듯 허리가 꺾여 있었고, 끝부분은 갈색이었다. 목초지에 가득 퍼져 무리를 이루며 자라는 야생당근은 파리한 하늘 색깔과 섞여 회색 거미줄처럼 보이거나 아예 눈에 띄지 않았다.
오랫동안 이 땅을 일구었고 대자연이 어떤 계절을 데려오든금욕의 힘으로 버텨온 농부들은 이제 들판에 서서, 줄기에 매달린 쪼그라든 덩굴제비콩을 만지작거리거나 예년보다 족히 30센티미터는 덜 자란 옥수수밭을 불편하게 바라보았다. 소의 꼴로쓰는 풀이 자라던 들판은 성장 능력을 거의 잃은 것 같았는데, 농부들은 이 사실이 가장 심란했다. 노력 없이도 쑥쑥 자라던 것이 어쩌다 성장을 멈춰버렸는지. 궁지에 빠졌다. 땅이 궁지에 빠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두려움 뒤에는 역경을 이기며 생존한 세대들이 버티고 있었다. 1600년대로 거슬러올라가는 강가의 오래된 묘비들이이를 입증했다. 엄마들은 아기를 잃고 또 잃었고, 어떤 아기들은이름도 얻기 전에 묻혔지만, 많은 아기들은 살아남아 릴라이언스, 익스피리언스, 페이션스"라는 이름으로 삶을 헤쳐나갔다. 셜 - P260

리폴스에는 인디언들에게 머리 가죽이 벗겨진 조상을 둔 집안도있었다. 에드너 톰슨 부인만 봐도, 현조할머니 몰리가 1756년 인디언들에게 납치되어 캐나다까지 끌려갔고, 거기서 어느 프랑스인에게 팔렸다가 그녀를 찾으러 온 오빠에게 구출되었다.) 정착 초기에는 집과 농작물도 자꾸 불에 탔다. 그러한 인내가 어떤 비석에 쓰인 이름은 인두런스 티베츠였다ㅡ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청교도적 특징과 연푸른색 눈동자를 물려받은 남자들과 여자들을 낳았다. 그들은 쓸데없이 소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해 여름 사람들은 걱정에 휩싸였고, 주북부에서 UFO가 목격되었다는 소문이 나돌자 심지어 정부가공식 조사단을 파견했다는 소문도 있었다ㅡ타운에는 이 화제를 아예 회피하고 묵묵히 자기 일을 계속하면서 인상만 더 찌푸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교회에 가는 사람들이 늘었고, 딱히 구체적인 내용도 없이 신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기도했다. 강을 힐끗쳐다보기만 해도 불쾌한 마음이 치솟았다. 강은 가장자리에서싯누런 거품을 부글거리며, 마치 죽은 짐승처럼, 길바닥에 뭉개진 뱀 한 마리가 짓무른 내장을 흘리고 무색의 태양 아래 고약한 - P261

냄새를 풍기면서 썩어가는 것처럼 타운 한복판에 드러누워 있었다. 참나리만 태연한 것 같았다. 참나리는 늘 그래온 것처럼 강가에 줄지어 피어 있었다. 참나리꽃은 집과 헛간 옆에서, 또 돌담을 따라 자라면서 황갈색이 도는 오렌지색 꽃잎을 입처럼 밸리고 무리 지어 색깔을 뽐냈는데 견줄 데 없이 열정적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기다렸다. 불안에 시달렸지만 농부들은 인내가 무엇인지 ㅡ조상의 이름이 페이션스인 농부들도 있었다ㅡ 알았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인생의 견디기 어려운 시기를 견디는법을 일찌감치 배웠다. 불평이 가장 많이 쏟아지는 곳은 칼리지였다. 교수들의 상당수는, 사실상 대부분은 셜리폴스 출신이 아니었다. 심지어 뉴잉글랜드 지역 출신도 아니었다. 폭신한 겨울의 눈이나, 봄의 즙을 덮어쓰고 있을 때는 이곳도 고풍스러운 지방색을 띤 장소처럼 보였지만, 이 특별한 여름의 꼼짝 않는 더위 속에서는 빛바랜 벽돌 건물과 악취를 풍기는 강이 있는 뉴잉글랜드의 가난한 공장 타운처럼 보일 따름이었다. 그래서 이 오이스터 포인트 구역에서는 인내가 말라버린 것 같았다. 다른 구역ㅡ베이슨뿐 아니라 셜리폴스의 변두리 지역ㅡ에는 불안과 무기력이 배어 있었다. - P2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늘 배수아가 어렵다.
단편 ‘눈먼 탐정‘이 대하소설만큼 오래 걸린다.

배수아의 낯선 소설들이 내내 환기시킨 것도 바로 이런 우리세계의 사정 아니었을까. 내러티브를 성립시키는 최소 조건, 예컨대 한 방향으로 linear 흐르는 시간이나 주체 대상 같은 구도에서 자유로운 그의 이야기들은 단지 요약되기를 원치 않는 소설의 완강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복수의 시공간이 동시적으로 한 프레임 안에 뒤섞이고, 엄밀하게 식별되지 않는 인물들이그려가는 장면은, 구획하고 정체화하는 온갖 지표가 부재하거나그것을 재배치하는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구두점을 찍거나단락을 구분하는 일에 기대지 않는 이 소설들은 비현실이나 초현실이 아니라, 일정하게 접힌 이 세계의 주름들을 하나하나 펼쳐낸 이미지에 비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배수아의 세계에 들어선 독자가 번번이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은 필연이다. 재귀적 자기로 귀결되는 공감 같은 말은 여기서 부질없어진다. 배수아의 소설세계는 오히려 우리를 헤매게 한다. 소설 속 세계가 그러하듯 스스로가 완강하게 고집하는 것들을 내어놓지 않고는 이 세계를 여행할 수 없다. 거기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철저한 이방인 혹은 타인으로 경험한다. 익숙한 인식이나 감정의 회로를 이탈하며 헤매는일은 미지에의 모험에 근사하다. 그러하니 배수아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이야기를 손에 넣는 일(소유)이라기보다 자기(라고 여겨지는 것)를 내어놓고, 약간의 불안과 설렘을 감각하며낯선 세계의 윤곽을 더듬어보는 사건에 가깝다. - P227

하지만 그 모든 반복과 변주 속에서도 모든 만남과 작별은 처음과 같지 않은가. 우리는 늘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듯 만나고, 한 번도 헤어진 적 없는 듯 헤어진다. 소설 속 ‘나‘가 뒤늦게 "최초의 작별"을 인지하며 울음을 멈출 수 없는 것도 바로 그 순간들과 관련된 진실의 한 장면 아닐까. 소설 속 ‘편지‘란 어쩌면 이 영속적인 만남과 헤어짐 사이를 부유하는 심장박동이다. 그것은 나그네의 말처럼 당장 정확한 수신지에 닿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 대신 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어쨌든 오늘의 산책을 가능케 하고, 다시 계속 먼길을 갈 수 있게 한다. 편지에 쓰인 내용에 아랑곳없이, 걷다보면 무언가가 홀연 반짝이며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론 전모를 아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감각하는 일인지 모른다. - P2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꾸 시시, 하다보니 "매우 짙고 선명하게"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시‘의 사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사방이 시퍼렇고 시뻘겋고 시커멓고 시허옜다. 팔방이었다면 시퍼렇고 시뻘겋고 시커멓고 시허옇고 시꺼멓고 싯누렇고 싯멀겋고 시뿌옜을 것이다. 온갖 시들이 모여 시뿌예진 곳, 다름 아닌 시의 한복판이었다. 한바탕 놀았는데 다시 미궁에 빠진 느낌이었다. 들어오기도 어렵지만 나가기는 더 힘든 거리가 바로 여기였다. 그제야 떠올랐다. 스무 개가 넘는 시의 뜻 중 첫번째는 "마음에 차지 않거나 못마땅할 때 내는 소리"라는 사실을 감탄사 시와 함께 다시 걷기 시작했다. "시, 시의 사거리에서는 헤매지 않을 도리가 없군."


오.발.단: 일기죽일기죽

오늘 발견한 단어는 ‘일기죽일기죽‘이다. 기억의 수면아래 잠자고 있다가 일기 때문에 급작스레 깨어난 단어이기도 하다. "입이나 허리 따위를 이리저리 자꾸 느 - P54

리게 움직이는 모양"을 가리키는 말인데, 말과 걸음이 빠른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동작이기도 하다. 연상은 나를 또다시 ‘이기죽이기죽‘으로 이끈다. "계속 밉살스럽게 지껄이며 짓궂게 빈정거리는 모양"을 뜻하는 말이다. 뜻을 읽는 동안 묘하게 기분 나빠지는 단어다. 일기에서 일기죽일기죽으로, 일기죽일기죽에서다시 이기죽이기죽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일이삼 같아서 정겹다. "일이는 알겠고 삼은 어디 있는데?" 누가 묻는다면 ‘실기죽샐기죽‘이라는 단어를 말해주어야겠다.
"물체가 자꾸 한쪽으로 천천히 조금 기울어지거나 쏠리는 모양"을 일컫는 단어다. 이번에는 내가 물을 차례다. "일기, 일기죽일기죽, 이기죽이기죽, 그리고 실기죽샐기죽의 공통점은?" 끊이지 않고 반복된다는 거. 날마다, 자꾸, 계속, 조금이라도! - P55

극중 남자 선배 D는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비중 있는 역할은 아닌 셈이다. 그가 던진 농담은 번번이 실패했지만, 비중을 낮춰주는 데 농담의 진짜 역할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비중의 비장함을 외면하는 농담이야말로 최고의 농담일 것이다. 중요성과 중요도에 사로잡힌 현대인에게 틈을 내주는 농담 말이다. 농담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귀중하고 요긴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잠시나마 벗어날수 있다. 스스로 무너지는 농담은 상대에게 다가가겠다는적극적인 신호다. 그가 펼쳐 보이는 빈틈을 흔흔히 온기로채워주고 싶어진다. 뼈 있는 농담은 상대의 빈틈에 정확히명중한다. 농담을 듣는 사람은 웃으면서도 뜨끔해졌음을부인할 수 없다. 뼈 있는 농담을 듣고 "나는 치킨도 순살로만 먹는데!"라고 너스레를 떨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그 둘은 격의 없는 ‘농담 관계‘가 된다. 이처럼 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농담도 있다.


농담으로 인해 삶의 농담도 변한다. 지루한 일상에 던져진 날카로운 농담은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바쁜 삶에던져진 농담은 숨을 고르게 한다. 농담을 딛고 기지개를 켜 - P61

거나 농담에 기대 설핏 옷을 수도 있다. 농담을 징검돌 삼아여기에서 저기로 건너갈 수도 있다. 농담이었을 뿐인데, 돌아보니 농담이 농담으로 그치지 않았던 모양이다. 실 있는농담으로 내 안에 자리잡은 것이다. 그럴 때 농담은 꼭 진담같다. 확실히 나는 농담을 사랑한다.


오. 발. 단: 거시기

오늘 발견한 단어는 ‘거시기‘다. 거시기는 살아 계실 적 아빠가 즐겨 쓰던 단어이기도 하다.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라는 뜻에 걸맞게, 아빠는 해마다 더 자주 거시기를 찾았다. 눈치 게임을 하듯, 스무고개를 넘듯, 이심전심을 확인하듯, 간혹 어떤 거시기는 바로 알아맞힐 수 있었지만, 대다수 거시기는 내게 너무 멀었다. 아빠가 아는 사람을 내가 다 알지는 못했고 아빠가 가리키는 사물은 눈앞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독심술을 발휘하듯 미간을 찌푸린 채 ‘거시기‘를 찾는 데 골몰하고 있으면 아빠가 말했다. "이 상황이 참 거시기하 - P62

네?" 어쩌면 작년 이맘때 출간된 내 여섯번째 시집 없음의 대명사는 별별 거시기들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P63

인터뷰


수경 누나의 첫 메일을 받은 것은 2011년 11월 26일 금요일이었다. 새벽 네시오십오분에 온 메일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은아, 불면증이 나의 징글징글한 벗이라 이 시간에도 나는 깨어 있네." 메일을 다 읽고 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독일 뮌스터의 새벽을 떠올렸다. 거기도 춥겠지, 스산하겠지, 중얼거리며 메일은 이렇게 끝났다. "말의 명증과 말의 허위를 우리, 보듬자."
이듬해인 2012년 5월 12일은 토요일이었다. 그날 저녁 일곱시 사십분에 독일에서 메일이 도착했다. 메일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은아, 엘 그레코의 그림이 전시되는 뒤셀도르프에서 우리 은이가 이 무참한 색의 축제를 보면 무슨말을 할까 생각했다." 한 달쯤 전 내 첫 산문집인 『너랑 나랑 노랑이 나왔는데, 고맙게도 책의 추천사를 써준 누나였다. 메일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오래 사유하자." - P89

허수경‘이라고 쓴다. 조금 있다가 "허수경"이라고 발음해본다. 쓸 때는 그저 먹먹하던 것이 발음하니 목울대까지 가득차오른다. 액체에 가까운 마음들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한다. 각각의 마음들이 돌고 돌아 미안함으로 모인다. 누나 생전에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이 많았다.
이제는 하고 싶었던 말, 꼭 해야 했을 말이 되었다.


지난 10월 3일, 허수경 시인이 운명했다. 소식을 접한 많은 이가 슬퍼했다. 공중으로 손을 뻗기도 했다. 뭐라도 잡을 것이 없을까 싶어서였다. 나는 밤새 허수경의 시집을 읽었다. 웃고 있는 시들도 슬펐다. 울고 있는 시들은 통곡으로 다가왔다. 혼자서 얼마나 아팠을까. 홀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무엇보다 누나는 거기에 잘 있을까. - P90

2011년, 허수경은 한국을 두 번 찾았다. 연초에 다섯번째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을 들고 고국을 찾았던 그는 연말에 장편소설 「박하」 출간 시기에 발맞춰 다시 한국땅을 밟았다. 모르긴 몰라도 십 년 동안 어지간히 그리웠을것이다. 돌아와서 여전한 것과 사뭇 달라진 것, 완전히 변한것을 바라보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생전의 마지막 방문이 될 거라는 사실을 감히 예감할 수 있었을까.


그리움이란 것은 한없이 어렴풋하고 아슴아슴하다가도, 북받쳐오르면 쉽게 진정시키기 어렵다. 잊고 있던 어떤 기억이 퍼뜩 떠올라 심신을 단단히 옥죄는 것처럼, 그리움은 한번 고개를 들면 걷잡을 수 없이 우리를 삼키려든다. 도망쳐도 소용없다. 그리움은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것이니까. 그것을 물리적으로 뗄 수도 없다. 그리움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나는 지금 그리움을 계속하는 중이다.

처음 허수경을 만나던 날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때부터 그의 두 눈에는 그리움이 그렁그렁 들어차 있었다. 그가 - P91

활짝 웃을 때 속으로는 꺼이꺼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보는 사람이 뭉글할 정도로 두 눈이 투명했으므로, 그에게 다가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는 숭늉처럼 푸근하고 따뜻했다. 그저 약간의 너스레면 충분했다. 마음에 담은 이들을 정성스레 보듬고 도닥이는 게 바로 허수경이었다. 그 앞에선 절로 "폐병쟁이 내 사내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나 "낯익은 당신"(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이 되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불가항력적으로 애틋해졌다. 불가능하게 애처로워졌다. 그때마다맵싸한 바람이 불어왔다. 2018년 가을, 그 바람이 다시 불어왔다. 코끝이 시큰하다. 아리다.

허수경이 머물던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여섯 번이나 그를만나는 호사를 누렸다. 첫 만남 때 ‘선생님‘이었던 허수경은다음에는 자연스레 ‘선배님‘이 되었고, 세번째 마주할 때 나는 그를 자연스럽게 ‘누나‘라고 부르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그렇게 불러왔던 것처럼, 그 호칭은 불쑥 튀어나왔다. - P92

낯설어지면서 갱신되는 어떤 것을 생각하니 근사하다.

"모국어뿐만 아니라 모국적인 모든 상황에서 낯설어지게 될 때, 어떻게든 새로운 형식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지.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 새로운 예술형식은 한인간의 형식이 변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거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형식이 낡아졌다고 느끼면, 의식적으로 그것을 갱신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때가 닥쳤을 때, 나는 가장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거고."

결국 누나만의 시를 발견하기 위해, 누나만의 시를 쓰기위해 떠난 셈이네.

"한 사람의 재능은, 슬프게도 그것을 가진 사람이 다 알수 있는 건 아니야. 그걸 잘 모르니 우리는 참, 우릴 쉽게쓰는 것 같아. 나는 시라는 문명의 한 장르에 목숨을 건대목이 있어. 그래서 떠났지. 정처 없어졌지. 그래서인지 인생의 어떤 순간을 시에 거는 사람을 보면 좋으면서도 쓸쓸하다." - P97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에 실려 있는 작가의 말 일부를 읽으며 약력 보고를 갈음하고자 합니다.


개나리 노란 한숨,
저 바람이 스치며 간다.

노란 한숨이 아직은 작게 내려오는
봄빛 아래에서

바람이 스친, 아린 자리를 쓰다듬으며
허공에 머물러 있다.

사랑한다, 라고 말할 시간이 온 것이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은 시간은 없었다고
말할 시간이 온 것이다. - P114

오. 발. 단: 새봄

오늘 발견한 단어는 ‘새봄‘이다. 수경 누나는 봄이라고말한 뒤, 꼭 새봄임을 덧붙이곤 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새봄은 있지만 새여름, 새가을, 새겨울은 없다는 사실을. 새봄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번째는 "겨울을 보내고 맞이하는 첫봄", 두번째는 "새로운 힘이 생기거나 희망이 가득 찬 시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가 처음 봄이라고 말할 때는 새봄의 첫번째 뜻으로, 다음에 힘주어 말할 때는 새봄의 두번째 뜻으로 얘기했던것 같다. 겨울을 보내고 첫봄을 맞이할 때, 새로운 힘과 희망을 양손에 하나씩 사이좋게 쥐고 시작하라고, 오늘은 국제 간호사의 날, 보살피고 돌보는 일이야말로 새로운 힘과 희망을 심어주는 일일 것이다. - P115

오. 발. 단: 비거스렁이

오늘 발견한 단어는 ‘비거스렁이‘다. "비가 갠 뒤에 바람이 불고 기온이 낮아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비가 오기 전의 날씨와 비가 온 후의 날씨 사이에 "거스르다"가 있는 셈이다. ‘비거스렁이하다‘라는 동사로활용되기도 한다. 문제는 일상에서 "한바탕 쏟아붓더니 비거스렁이하네"처럼 이 단어를 구사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상대는 십중팔구 "비거 뭐?"라고 되물을것이다. 몰라서 쓰는 시처럼, 알아도 쓰지 못하는 단어가 있다. - P122

봄과 어울리는 동사를 떠올린다. 열다, 싹트다, 자라다, 시작하다. 피어나다..... 앞 문장에서 사용한 ‘떠올리다‘ 또한 봄과 어울리는 동사다. 봄의 생장력 앞에서 청춘을 떠올리지 않기란 쉽지 않으니까. 결심이 비로소 움직임으로 ㅇ어지는 시기가 어쩌면 봄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봄꽃을 선물한다는 것은 시작을 응원하겠다는 각별한 마음을 건네는것이기도 하다. 봄이 오면 으레 새기는 문장이 있다. 꽃이든 사람이든, 지기 전에 먼저 피어야 한다는 것. 봄에 선물하기 좋은 꽃을 살피는 일은 피자고, 함께 피어나자고 미리속삭이는 일이기도 하다. - P130

오. 발. 단: 발밤발밤

오늘 발견한 단어는 ‘발밤발밤‘이다. 상자를 든 아이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떠오른 단어다. 발밤발밤은 "한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걷는 모양"을 가리키는 부사다.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 ‘발맘발맘‘도 있다. 발밤발밤 움직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유가 필요하다. 바람을 일으키는 동작보다는 바람 쐬는 자세와 더 어울리고, 도착을 목적으로 하는 행동이라기보다는 움직임 그 자체에 집중하는 몸가짐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밤‘이 두 번들어가 있어서일까. 가로등을 벗 삼아 발밤발밤 산책을 나설 때 해묵은 감정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만큼 밤이 더 어두워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 P254

그런데 감각적‘이라는 말이 늘 긍정적으로만 사용될까? 그것은 세련되고 말끔한 무언가를 가리킬 때만 사용되는것일까. 저 단어가 자극성이나 도발성을, 나아가 ‘생각 없음‘ 이나 사려 깊지 않음‘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게 수용되는 어떤 단어가,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혼란과 공포를 야기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맞닥뜨리는 온갖 감각들을 떠올려보라. 그때의 감각은 의도치 않게 열리는 것이다. 개중에는 기분 좋은 감각도 있지만 나를 당황시키거나 불쾌하게 만드는 것도 있다. 감각은 종종 우리의 소관이 아니다.

감각적인 감각, 감각을 자극하는 감각. 별수 없이 나는 감각으로 되돌아간다.

감각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오감과 맞닿아 있다.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만지는 데서 찾아오는 느낌. 찾아오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모종의 느낌이 감각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감각의 세계 - P258

에 ‘그냥‘은 없다. 감각은 주저하는 법이 없다. 받아들이는데서 그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말이든, 글이든, 생각이든 그것을 나만의 어휘로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언어화되지 않은 감각은 아직반쯤은 눈을 감고 있는 셈이다.

알아차리기 위해 준비하는 것, 기민하게 알아차리는 것, 알아차린 것을 내 말로 붙잡아두는 것. 이것이 감각 작용이다. 감각은 흩뿌려져 있다가 어느 순간 발각된다. 발각된것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의지가 필요하다. 이것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 이 순간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
‘잊다‘와 ‘잃다‘가 흔히 ‘버리다‘와 결합해 ‘잊어버리다‘와 ‘잃어버리다‘로 쓰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잊지 않고잃지 않는 마음은, 실은 ‘버리지 않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버리지 않는 사람만이 모은다. 모은 것을 가지고 유용하거나 무용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 P259

봄이 ‘해맑아지는‘ 계절이라면 여름은 ‘흐드러지는 계절이다. 가을이 ‘흐무러지는 계절이라면 겨울은 ‘허물어지는계절이다. ‘넘쳐흐르는‘ 게 기백이라면 ‘흘러넘치는 것은 기운이다. 넘칠락 말락, 흐를락 말락 하는 것, ‘희망‘이다.

‘하염없음‘과 ‘하릴없음‘은 없을 때만 발화하는 단어다. 없음을 ‘후회‘하는 것은 ‘한탄‘이다. 없음을 다시 있게 하는 것, ‘함께‘다. - P284

오. 발.단: 햇덧

오늘 발견한 단어는 ‘햇덧‘이다. 햇덧은 "해가 지는 짧은동안" 혹은 "일하는 데에 해가 주는 혜택"을 뜻하는 단어다. 햇덧에 마음이 조급해질 때가 있었다. 해가 지고나면 하루도 저문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밤과 친해지면서 더이상 햇덧에 매달리지 않게 되었으나 글쓰는 사람으로서 여전히 햇덧을 보고 있다. 글이 안 풀리면 밖에 나가 햇덧에 의지해 걷곤 하는 것이다. 그럴 때 햇덧은 꼭 덧신 같다. 햇덧 아래서 걷다보면 어느덧 다시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햇덧은 덧나지 않는다. 해가 가도 해는 뜨니까. - P285

오.발.단: 잠비

오늘 발견한 단어는 ‘잠비‘다. 잠비란 "여름에 일을 쉬고 낮잠을 잘 수 있게 하는 비라는 뜻으로, 여름비를 이르는 말이다. 여름일을 하던 도중 소낙비가 내려 잠을 청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단잠이고 꿀잠일 것이다. 그때내리는 비가 단비고 잠비일 것이다. 봄비가 가고 잠비가 온다. 5월이 가고 6월이 온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온다. 시절이 가고 시절이 온다. 시의적절하다. - P29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은

2002년 봄 「현대시』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유에서 유」 「왼손은 마음이 아파」 「나는 이름이있었다」 「없음의 대명사, 청소년 시집 「마음의 일.
산문집 ‘너랑 나랑 노랑」 「다독임」을 썼다. 박인환문학상, 구상시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대산문학상을수상했다. 작란 동인이다. - P-1

5월의 첫날, 오늘은 노동절이다. ‘근로자의 날‘보다는 ‘노동절‘이라는 말이 좋다. 근로는 "부지런히 일함"이란 뜻이다. 그냥 일하는 것이 아니다. 부지런히 일해야 하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라는말을 들었을 때, 벌레는 늦게 일어나야겠네!‘라고 생각했던나다. 근로에 담겨 있는 부지런함이 사용자의 강요 같아서 어느 순간 거리감이 생겨버린 것이다. 부지런함의 미덕을 저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매 순간 부지런해야 한다는 노동자의 강박은 필연적으로 삶의 여유를 앗아갈 수밖에 없다.


글쓰기 노동자로 산 지 오래됐지만, 어떤 이는 아직도 ‘쓰는 노동‘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듯하다. 몸을 써야 노동 - P12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사전상의 노동은 "몸을 옮직여 일을 함"이란 뜻이다. 가만히 앉아서 글을 쓰는 모습은 얼핏 노동과 거리가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몸이 움직이지 않아도 머리는 얼마나 바삐 움직이고 있는지 모른다. 뾰족하게 말하면 머리도 몸의 한 부분이고, 머릿속이라고 일컬어지는 뇌는 우리 몸의 사령탑이다. 한바탕 글을 쓰고 난뒤 어김없이 허기지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쓰는일은, 머리를 쓰는 일이다.

내처 한자리에 앉아 시를 쓴 적이 있다. 장장 세 시간 반동안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 크게 움직이지 않았으니 이를노동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100킬로바이트가 채 되지않는 문서의 크기가 노동의 양과 질을 낮잡는 기준이 될 수있을까? 누군가가 보기에 이 결과물은 성과처럼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맑은 눈으로 다시 볼 때 형편없는 시일 수도있고, 어쩌면 몇 차례 대대적인 수정을 거쳐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아직 책으로 묶여 나오지도 않은 상태다. 파일 형태로 USB에 담겨 있는 것이니까. 아직은 나만 알고있는 것이니까. 그때마다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해 생각한 - P13

다. 노동 전후의 변화가 분명한 일도 있으나 일의 성과를자기 자신만 알아차릴 수 있는 때도 있다. 글쓰기 작업이지난배하고 지난 조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을 질질 끌며 미루는 일이 많으니 지극히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제 일어나서 정말 몸을 움직여야겠다. 동네를 산책하는 일은 글쓰기 앞뒤에 있는 루틴이기도 하다. 산책도 내게는 노동에 준하는 일이다. 걷고 발견하고 사색해야 하므로. 이따금 길을 잃기라도 하면 평소 보이지 않던 것이 눈앞에 나타나므로, 그것이 또다른 쓰기로 연결될 것이다. 내친김에 일 년 가까이 연락하지 못한 친구에게 전화도 해야겠다. 잘 살아 있느냐고 묻는 대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어야지. ‘지금‘을 찌르는 대신, ‘지금까지‘를 어루만져야지.
이는 마음을 쓰는 일일 것이다.

모든 쓰기는 결국 마음 쓰기다. - P14

오발단: 봄물

오늘 발견한 단어는 ‘봄물‘이다. 봄물의 첫번째 뜻은 "봄이 되어 얼음이나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이다. 봄물에 발을 담그면 얼어붙은 정신이 퍼뜩 깨어날 것이다. 봄물의 두번째 뜻은 "봄철에 지는 장마다. 봄물이 져야 마침내 봄가물(봄철에 드는 가뭄이 해소될 것이다. 봄물의 세번째 뜻은 "봄의 싱싱한 기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봄물이 오른 나무를 볼 때면 진작 닫혀버린 성장판이 다시금 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자리에서 폴짝 뛰어오르고 싶어진다. 어떤 뜻으로 사용하든 봄물이 새 길을 열어준다는 점만은 틀림없다. 5월은 봄물이 봇물 터지는 달이다. - P15

오. 발. 단: 군것지다

오늘 발견한 단어는 ‘군것지다‘다. 시 속에서 지는 일을 너무 많이 했더니 후유증이 길어서였나. 접미사 ‘지다‘로 끝나는 단어들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값지다, 멋지다, 건방지다, 기름지다, 덩굴지다, 그늘지다, 눈물지다, 주름지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지다‘ 안에 다 들어 있는 느낌이다. 그러다가 문득 ‘군것지다‘와 마주쳤다. ‘군것질의 군것일까‘라는 짐작이 맞긴 맞았다. 보통우리는 군것을 "끼니 외에 먹는 간단한 음식"으로 알고있지만, 이는 군것의 두번째 뜻이다. 군것의 첫번째 뜻 - P20

은 "없어도 좋을 쓸데없는 것"이다. 여기서 파생된 ‘군멋지다"는 "없어도 좋을 게 쓸데없이 있어서 거추장스럽다"라는 뜻이다. 군것진 것에는 뭐가 있을까. 곧바로 미련이나 뒤끝, 혐오나 과욕 같은 게 떠오른다. 그러나군것질 없는 삶은 상상하기도 싫다. 없어도 좋을 쓸데없는 것 덕분에 가없는 시간은 채워지기도 한다. 바스락바스락, 와그작와그작, 쪽쪽, 냠냠 등의 부사 친구들과 함께. - P21

삶을 이끄는 것은 동사임이 틀림없지만, 삶의 곳곳에서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은 부사 같다. "나는 네가 좋아"보다 "나는 네가 정말 좋아"라는 말이 더욱 강력한 것처럼 말이다. 단어는 뜻이 정해져 있고, 정해진 바대로 묵묵히 자신의 소용을 다한다. "난데없이‘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데려오고 ‘어칠비칠‘은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가지런히‘는 쓰는순간 나란해지고 ‘반드시‘는 발음하면서 결심이 더욱 단단해진다.

일상에서의 쓰임 때문에 운명이 달라진 경우도 있다. 너무 라는 부사가 그렇다. 이 단어는 본디 "정한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라는 뜻이었다. 언뜻 느끼기에도 부정적 의미가 가득 담긴 풀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 좋다" "너무 맛있다"처럼 긍정의 상황에서도 ‘너무‘를 사용한다. 2015년 이사분기에 ‘너무‘는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로"로 뜻의 외연이 넓어졌다. "너무 예쁘다"와 "너무 싫다" 를 모두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너무 추운데 너무 행복해"처럼 한 문장에 ‘너무‘를 두 번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 P27

생의 마지막에 만날 부사가 결국‘이 아닌 ‘마침내‘이기를바란다. ‘결국‘은 닥치는 것이지만, 마침내는 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 발. 단: 어찌씨

오늘 발견한 단어는 ‘어찌씨‘다. 어찌씨는 부사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발음할 때 이미 의미가 한가득 느껴져쓸 때마다 왠지 흐뭇하다. 명사는 ‘이름씨라고 하고 대명사는 ‘대이름씨‘, 수사는 ‘셈씨‘라고 부른다. 동작이나 작용을 일컫는 동사는 ‘움직씨‘라 일컫고 성질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는 ‘그림씨‘라 불린다. 관형사가 ‘매김씨‘로 자리매김할 때 감탄사는 ‘느낌씨‘로 흐느낀다. 퇴고할 때 마지막까지 고심하게 하는 조사는 ‘토씨‘라고 부른다.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의 바로 그 토씨가 맞다. 아홉 개의 씨를 모았으니 이제 심을일만 남았다. 씨를 심는다고 해서 모두가 다 싹트는 것은 아니다. 알아서 자라 열매를 맺는 씨도 없다. 아, 어렵고도 정직한 글 농사여. - P28

오. 발. 단: 간곳없다

오늘 발견한 단어는 ‘간곳없다‘다. 짐작할 수 있듯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 온데간데없다"라는 뜻을 갖는다. 일상의 크고 작은 유레카 속에서 당장 다음날까지, 넉넉잡아 이듬해까지 기억나는 유레카는 거의 없다. 정보 위에 정보가 덮인다. 고해상도 영상은 초고해상도 영상 뒤로 사라진다. 역치도 덩달아 높아지기만 한다. 땅속에서 피어나지 못한 싹처럼, 아이디어는 머릿속 어딘가로 숨어버린다. 금세 간곳없어진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간곳없기에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자취를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의 행방이 늘 묘연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오늘은 대체 휴일, 휴일이야말로 눈 깜짝할 새 간곳없어지는 게 아닐까. - P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