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쓰기에 내 삶을 바쳤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내게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묻는다. 나는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그들이무언가를 비밀스럽게, 어렵게 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글쓰기를 가르쳐줄 수는 없다. 그 과정과 구상이 내안에서 무르익어 표출될 때까지 무의식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쓰는 방법도 정확히는 모른다. 글쓰기는 문장 안에서 호흡할줄 아는 것이다. 독자가 필수적인 일종의 대위법 안에서, 나의리듬뿐만 아니라 독자 자신의 리듬에도 적응하면서 나와 함께서두르지 않고 호흡할 수 있도록 문장만큼이나 행간 사이에도약간의 침묵을 둘 필요가 있다. 나는 일곱 살 때부터 문장이 숨 쉬는 수준에 이르기 위해 연습해왔다. 미리 계획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나, 열다섯 살에는 돈을 받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 P958
준비 과정이 길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상 과정이 빠르게 이뤄지기도 하니까. 내 준비 과정은 호흡하는 것을 배우고, 몇몇 사람이 문체라 부르고 나는 "자연적인 문체"라 부르는 내 글쓰기 방식을 스스로 배신하지 않는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내 교열자가 내 글의 단어를, 구두 - P958
점을 바꾸지 않는 것에 감사한다. 내 교열자는 악센트 부호를 넣는 것이 전부인데, 그건 내가 계속 빠트리기 때문이다. 브라질리아에서 온 한 청년이 리우에서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나를 찾아오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전화상으로 이해한 바에 의하면, 그는나를 만나서 내가 그에게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는지 말해주길원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나랑 만나기로 약속한 일요일, 나는 점심을 먹고 유감스럽게도 잠이 들었고, 그 청년은 떠나버렸다. 미안해요. 언젠가 나를 다시 찾아주세요. 그러나 지금 당장 그에게말할 수 있는 건 브라질에서 책을 써서 받는 수입으로 생활하는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방법은 기자가 되는 것과 다른 소소한 일을 하는 것이다. 소소한 일을 더하면 경제적으로 합당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수입에 간신히 도달할 수 있다. 거기에 이런 일들을 다 하면서 문학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내야 한다. - P959
주디스 역시 연극을 좋아했다. 그녀는 사람들을 만나 자기를소개하면서 극장에서 예술가로 일하고 싶고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대부분은 조롱했다. 모두가 경험이 없는 순진한 이젊은 여자 앞에서 자연히 다른 것을 상상했다.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직업도 없는 그녀에게 남은 것은 거리를 떠도는 일뿐이었다. 결국 누군가- 어떤 남자였다 그녀를 불쌍하게 여겨 데려갔다. 이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가엾게 여기길. 주디스는 곧 아기를 낳을 예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밤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존재하지 않았던 이 이야기는 끝난다. 버지니아 울프는 묻는다. "누가 여성의 몸에 갇힌 시인의 뜨겁고 맹렬한 심장을 평가할 수 있는가?" - P968
베른
눈앞에서 이 완벽한 아름다움을 목격한 이방인은 어쩌면 신비를 밝힐 수 없을지도 모른다. 스위스의 풍경은 아름다움의 증거를 너무 많이 제시하니까. 첫인상은 가벼워 보이지만, 그다음에는 불가해한 느낌이 뒤따른다. 엽서 같다. 그러나 조금씩 그 부동의 상태가, 그 균형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멀리 있는 산을 바라본다. 무감각하고 조용한 공간이다. 그러나 금방 쓰러질 것 같은 벽들이 집들과 교회들을 한데그러모으는 이 마을에는 일종의 단호한, 내부 지향적인 집중이있다. 탑들과 골목길들과 뾰족뾰족한 아치들과 침묵이 있는 이도시에서 악마는 알프스산맥 너머로 추방되었을 것이다. 악마없는 도시에는 혼란스러운 평화, 개혁의 기치 아래서 가혹하게형성된 삶의 흔적, 느린 정복의 표시들, 완고하고 고통스러우며지속적인 광택질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 P1012
악마를 멀리 붙들어두려는 결의인가? 청결에 대한 너무도 스위스다운 욕망에서 배어나는 이 완고함, 땅 위에 공기의 투명함을 복제하려는 욕망, 준엄한 윤곽의 산이 지시하는 명확한 법칙에 대한 순종, 치명적으로 불순하고 무질서한 인간적인 것을 제물로 바치려는 의지, 질서는 더 이상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도덕적 필연이다. 질서는 스위스 사람이 스위스에서 호흡할 수 있는 유일한 환경이다. 스위스 밖에서 스위스 사람은 그가 추방한악마로 인해 놀라고 방향을 잃는다. 거리에는 표정을 아끼는 고행자의 얼굴들이 있다. 그 평온하고 무거운 표정에는 맹신의 힘을 연상시키는 조용한 힘이 있다. 누군가 스위스는 군인이 아니라 전사라고 말했다. 스위스가 전사라면, 스위스 여자는 여전사다. 강인하고 굳건하고 강한, 어떤희생에 바쳐지는 존재. 그녀는 대성당에서 열린 콘서트에 있다. - P1013
화장기 없고, 냉정한 그녀는 목을 축이면서 오르간 소리와 합창단의 날카로운 목소리, 이 민족의 근엄한 기쁨에 맞는 순수한 음악을 들으며 기쁨을 살짝 드러낸다. 그녀는 의자에 완전히 기대지 않고 있다. 그녀는 약간은 근엄하고 이해하기 힘든 모습으로남아 있을 것이다. 꽉 막힌 매력 없이, 때와 장소를 아는 일종의청교도적인 우아함을 지닌 채, 하지만 허영심을 부끄러워하는옷차림에 반기를 들면서, 이 부끄러움은 봄에 극복되어 조금은 대담해진다. 환한 블라우스와 어두운색 원피스에 작은 주름 깃 장식들이 나타나며, 빛을 받아 섬세한 여성성이 돋보인다. 노인들은 정원의 자리를 차 - P1013
지한다. 그곳은 존경할 만한 노인들의 땅이다. 그들은 벤치에 앉아서 반짝이는 호수와 눈 덮인 알프스, 상냥하고 쾌활해 보이는각각의 나뭇가지를 응시한다. 그러다 여름이 온다. 미지근한 향기 속에서 선들은 더욱 선명해지고, 꽃들은 더 서둘러 난폭해지며, 바람은 결국 조금의 먼지를 일으킨다. 놀이, 놀이, 놀이-그것은 악마 없는 개화다. 가을이 오면 물 색깔이 짙어진다. 사냥하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지만 사람들은 사냥 고기를 산다. 산, 표면, 작은 형태, 모든 것은 더 차가워진 바람 아래 태양 없이빛난다. 집이 아늑해진다. 그러고 겨울이 온다. 놀이, 놀이, 놀이. 그러나 지금은 다시 봄이다. 우리는 지체할 시간이 별로 없다. 베른의 다리 아래에 얼어붙은 강이 가볍게 달린다. 빛과 고요와신비, 그것이 내가 베른의 창문으로 본 것이다. - P1014
옮긴이의 말
‘리스펙토르‘라는 세계
"카프카가 여성이었다면, 릴케가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자 브라질인이었다면, 랭보가 어머니였다면……." 작가, 엘렌 식수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를 수식했던 말이다. 카프카, 릴케, 랭보, 이 커다란 이름들 옆에 리스펙토르를 나란히 두어도 부족함이 없겠지만, 나는 그들을 모두 지우고 남은 말들로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 여성,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자 브라질인, 그리고 어머니,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그가1946년부터 1977년까지 30년 동안 브라질 언론에 칼럼니스트로서 썼던 글들을 여기 모았다. 1967년에서 1973년까지 매주 토요일, 일간지 <조르나우 두 브라질>에 연재했던 칼럼들과 미출간된 글 120편 이상을 함께 실은 이 작품집은 사실상 리스펙토르 문학의 원재료라고 말할 수 있겠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삶, 글쓰기에 대한 사유, 독자와의 소통,번역가로서의 면모, 또 그가 만난 인물들까지 리스펙토르라는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풍경들이 이곳에 담겨 있다. - P1021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여성의 텍스트‘의 개념을 조금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엘렌 식수가 설명하는 ‘여성적 글쓰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엘렌 식수는 「출구」에서 "오늘날 글쓰기의 여성적 실천을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실천은 결코 이론화되거나 제한되거나 코드화되거나 할 수 없을 것이기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자면 규정할 수 없는 것이 여성적텍스트의 규정이라는 것이다. 분석하고, 명료화하는 것이 규정이라면 여성의 텍스트는 그 반대편에 있다. 분석될 수 없고, 명료화할 수 없으며, 기존의 체계로 분류할 수 없는, 남성 중심적언어와 사고체계를 전복[]하는 글. 여성의 텍스트는 존재 자체가 전복이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문학은 그 전복된 세계에 위치한다. 식수가 말하는 "자신만의 경험으로 언어를 소유하고, 변형시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여성적 글쓰기"를 리스펙토르는 직관과 본능의 글쓰기를 통해 오랫동안 우리를 길들인 언어가 존 - P1022
재하기 이전 혹은 그 언어 너머의 세계를 향하는 방식으로 실현한다. 언어가 탄생하기 전에 우리는 세계를 어떻게 감각했을까.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우리는 세계를 무엇으로 명명할까. 그의글은 이 두 질문에 답을 찾으려는 시도처럼 언어를 해체하며 새로운 앎의 세계로 나아간다. 그가 가닿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의 소설 속 인물들처럼 남성적 세계를 깊은 당혹감에 빠뜨리고,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수정하도록 이끌며, 우리의 원시적 감각을 깨운다. 목소리는 지금까지 배제되고 제한된, 우리가마주한 적 없는 존재들이 있는 장소들을 가리킨다. 익숙한 이곳이 아니라 낯선 저곳, 법칙 안이 아닌 바깥, 우리를통제하는 장치들(규칙, 해설, 설명 등)이 일소되는 곳. 바로 그곳이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세계이다. - P1023
그 꿈은 일종의 슬픈 강박이었다. 꿈은 중간부터 시작됐다. 살아 있는 젤리가 있었다. 그것이 젤리의 감정이었다. 고요했다. 살아 있는 고요한 젤리는 힘겹게 테이블 위를굴러다녔다. 내려가고, 올라가고, 천천히, 넓게 퍼지지않고, 누가 그 젤리를 잡을까? 아무도 그럴 용기가 없었다. 내가 젤리를 봤을 때, 나는 내 얼굴이 반사되어 젤리의삶속으로 천천히 들어가는 것을 봤다. 나의 변형은중요했다. 나는 녹지 않고 형태만 변했다. 나도 기껏해야숨만 쉬고 있었을 뿐이었다. 공포 속에 욱여넣어진 나는 내사본으로부터 원초적 젤리로부터 달아나려고 했고, 테라스로 나가 마지막 층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 - P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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