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일 콜드웰Gail Caldwell

미국의 문학평론가, 1951년 텍사스 팬핸들에서 나고 자랐고 텍사스대학에 입학해 미국학을 전공했다. 1981년 작가가 되기 위해 동부로 떠났고, 지역 문예평론지 편집자와 글쓰기 강사로 일하다 1985년부터 2009년까지 <보스턴 글로브> 북섹션 평론가로 활동했다. 〈빌리지 보이스>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글을 실었고, 2001년 동시대의 삶과 문학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인정받아 퓰리처상(비평 부문)을 수상했다.
2010년 발표한 「먼길로 돌아갈까?」는 2002년 42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뜬 친구 캐럴라인 냅을 추억하며 두 사람이 나눈 7년의 우정을 그린 에세이다. "따로 있을 때는 겁에 질린 술꾼이자 야심찬 작가이며 애견인이던 두 사람은 각자가 키우는 개를 매개로 작은 공동체를 이루었고, 서서히 서로의 삶에 스며들어 "자연스러운 관계가 주는 따스함과 홀로 남겨지는 자유로움"을 마음껏 누렸다. "먼길로 돌아갈까?"는 두 사람의 일과였던 산책 도중에 헤어지는 시간을 좀더 늦추고 싶어 캐럴라인이 습관처럼 하던 말이다.
그 밖에 에세이 『강한 서풍A Strong West Wind』(2006), 새로운 인생, 법칙없음 New Life, No Instructions』 (2014),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 Bright PreciousThing』 (2020)을 썼다. 현재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살고 있다.

어느 겨울날 오후, 혼자 서재에 앉아 있던 나는 머리가 굳어버린 것처럼 아무 글도 쓰지 못하고 종이 귀퉁이에 나무 그림만 끼적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무심코 이렇게 갈겨썼다. "나에게 한 친구가 있었고,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했다. 그러다 친구가 죽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도 함께했다."
종이에 적힌 그 말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채로 두고 기다렸다. 내가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줄 준비가 될 때까지. 온화하고 아름다운 이 사람, 너무나도 많은 의미에서 나의 분신이자 나의 자매였던 이 여성과 나의 특별한시간의 우정을 글로 쓸 준비가 될 때까지.

시간의 유한함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에는 평생이 걸리기도 한다. 이야기라는 세계의 영원한 현재 안에 우정의 시간들을 되살릴 수 있었던 것이 나로서는 이 책을 쓰면서 얻은 한가지 선물이었다. 나는 날마다 벅찬 기쁨을 느끼며 계단을 올라 서재에 들어섰고, 그 안에서 기억에 몸을 묻으면 기억의언어가 스스로 글이 되어 나를 휘감았다. 캐럴라인이 내 머리와 가슴속에 목소리로 존재했고, 나는 바라건대 우리 두 사람보다 더 오래오래 살아남을 무언가에 숨을 불어넣고 있었다.

이제 이 이야기는 다양한 언어로 살아 있다. 어느 정도는내가 말하려던 슬픔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운이 좋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우리는 모두 애도한다.
상처는 우리를 이어주고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끝으로 이 책의 옮긴이에게, 그리고 언어를 옮기는 모든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의 이야기를 세계 곳곳으로 옮겨주는 언어의 기술자들은 언제나 나의 영웅이다.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언어와 언어 사이를 오가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선물을 집으로 실어나르는 이들이다. 그 기예와 헌신에 감사드린다.


2021년 가을
게일 콜드웰
끝이고, 끝이며, 끝인, 끝

삶이라는 유수의 황금빛 순간은우리를 급히 스쳐가고 보이는 것은 모래뿐이니,
천사들이 우리에게 찾아오지만우리가 그들을 알아보는 것은 그들이 떠나간 뒤일 뿐.
- 조지 엘리엇, ‘목사생활의 정경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이야기다. 나에게 한 친구가 있었고,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했다. 그러다 친구가 죽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도 함께했다.
캐럴라인이 떠난 이듬해, 애도 초기의 미칠 듯한 슬픔은 모두 지나왔다고 생각할 무렵, 나는 캐럴라인과 수년간 개들을 산책시킨 케임브리지저수지의 오솔길에 서 있었다. 겨울 오후였고, 인적이 드물었다 - 앞으로도 뒤로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 굽이진 길에서, 나는 너무나 커다란 적막감에 잠시 무릎을 움직일 수 없었다. "여기서 내가 뭘 해야 하지?" 나는 소리내서 그녀에게 물었다. 고인이 된 가장 친한 친구와 대화를 하는 일은 이미 익숙했다. "그냥 계속 걸어야 하나?" 캐럴라 - P15

인의 삶과 나란히 놓였을 때는 내 삶이 너무나 분명히 이해되었다. 여러 해 동안 우리는 친밀한 사이에서 그러듯 가벼운일상의 캐치볼을 즐겼다. 공 하나, 글러브 둘, 던지고 받는 균등한 즐거움, 이제 그녀가 없는 필드에 나혼자다. 글러브 하나로는 게임을 할 수 없다. 누군가를 잃고 홀로 남은 당신이누구인지, 슬픔은 가르쳐준다. - P16

강가에 선 캐럴라인이 눈에 아직도 선하다. 목에는 수건을 두르고, 손에는 운동 후 담배 한 개비를 든 모습-기젯‘과 ‘스플렌디드 스플린터‘를 반씩 섞어놓은 것처럼" 어디에서 찾아입었는지 모를 끔찍한 분홍 수영복에 도전하듯 로잉"하는사람 특유의 팔근육이 대비되던 모습. 때는 1997년 여름, 캐럴라인과 나는 서로 운동종목을 바꿔보기로 했다. 나는 그녀에게 수영을, 그녀는 나에게 노 젓는 법을 가르쳐주기로 이합의로 가장 가까운 친구의 로잉보트, 그것도 최대 폭이 고 - P19

작 30센티미터인 바늘처럼 가느다란 배 안에 웅크려 앉은 내꼴은 노를 젓는 사람이라기보다 술 취한 거미에 가까웠다. 우리는 뉴햄프셔주 화이트마운틴 근처에 있는 1.5킬로미터 길이의 청정한 초코루아호에 있었고, 캐럴라인 외에 나의 대담한 묘기를 지켜볼 사람은 그곳으로 함께 휴가를 떠난 친구톰뿐이었다.
"아주 좋아!" 캐럴라인은 내가 엉성하나마 조금이라도 기술적인 동작을 해 보일 때마다 나를 향해 소리쳤다. 나는 주먹이 핏기 없이 새하얗게 변하도록 노를 움켜잡고 있었다.  - P20

서튼일곱 살이던 캐럴라인은 로잉을 한 지 십 년이 넘었고, 나는 그녀보다 아홉 살가량 많고 평생 수영을 해온 사람이기에 물위에서 스컬의 기초를 터득할 정도의 신체적 역량은 아직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메트로놈처럼 정확한 캐럴라인의 스트로크를 흉내내고 싶은 마음만 앞섰지, 보트에 그냥 앉아만 있는 것도 물위에 떠 있는 나뭇잎 위에서 중심을 잡듯 위태로울 줄은 미처 몰랐다. 어쩌다가 그녀의 말에 넘어가 이걸 하겠다고 했을까?
보통 초보들은 캐럴라인의 밴두센호에 비해 무게와 폭이 두 배나 큰 보트로 스컬에 입문한다. 후에 털어놓길, 캐럴 - P20

라인은 내가 언제 뒤집히나 짓궂게 기다렸단다. 하지만 물가에 버티고 서서 큰 소리로 지시를 내릴 때의 그녀는 그저 활기찬 기운과 단호한 열의만을 뿜어냈다. 어쩌면 스톱워치로찰나나마 내가 성공한 시간을 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기댈데라고는 노밖에 없던 나는 노를 움켜쥔 채 수면을 향해 점점 몸이 기울다가 아슬아슬하게 60도 각도에서 얼어붙어버렸다. 무슨 균형감각이 발동해서라기보다 몸이 마비되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선착장에서 톰이 배꼽을 잡으며 웃고 있었다. 내가 심하게 기울수록 그는 더 심하게 웃어댔다.
"빠질 것 같아!" 내가 소리쳤다. - P21

"아니, 안 빠져." 캐럴라인은 시즌 성적이 저조한 팀의 코치처럼 진지한 얼굴로 대꾸했다. "빠지지 않아 양손을 모아.
그대로 가만히 있어-물을 보지 말고 손을 봐. 자, 이제 나를봐." 그녀의 목소리가 한참을 달래고 이끌어준 덕분에 나는겨우 몸을 펴 다시 자세를 잡고 잔잔한 물에서 대여섯 차례스트로크에 성공했고, 그런 다음 중심을 잃고 보트 밖으로 튕겨나가 호수에 빠졌다. 몇초 뒤 1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니 캐럴라인이 깔깔 웃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언뜻 그녀의 희열을 엿보았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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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

차이가 의미를 만든다. 시를 포함하여 모든 글쓰기는 차이의 기록이다. 하지만 차이란 말 그대로 차이일 뿐 정본이 아니다. 탁자 위의 물방울이 마른 흔적을 통해, 여기 물방울이 있었다고 기록할 수는 있겠지만, 물방울을 돌이키지는 못한다. 글쓰기는 말하자면 돌이킬 수 없는 물방울 같은, 좌절된 열망의 흔적이다. 나는 그 흔적의 글쓰기를 통해, 지금은 없는, 그대를 기록한다. 아니 그대의 흔적을 기록한다. 그 차이가 의미를 만든다.

더디고 더딘 발걸음으로 새 시집을 묶는다. 오랜만이다. 지나온 날이 그러했듯 어쩔 수 없어서 내가 내 앞을자꾸 가로막았기 때문일 것이다. 별다른 뜻 없이 크게네 부분으로 나누었지만, 세상에 아무 의미 없는 일이과연 있겠는가.

그대만 견디고 있는 게 아니므로 세월은 또 느릿느릿흘러갈 것이다.

2001년 여름
강연호

적멸


지친 몸빛이 저녁을 끌고 온다.
찬물에 말아 넘긴 끼니처럼
채 읽지 못한 생각들은 허기지다
그대 이 다음에는 가볍게 만나야지
한때는 수천 번이었을 다짐이 문득 헐거워질 때
홀로 켜지는 불빛, 어떤 그리움도
시선이 닿는 곳까지만 눈부시게 그리운 법이다
그러므로 제 몫의 세월을 건너가는
느려터진 발걸음을 재촉하지 말자
저 불빛에 붐비는 하루살이들의 생애가
새삼스럽게 하루뿐이라 하더라도
이 밤을 건너가면 다시
그대 눈 밑의 그늘이 바로 벼랑이라 하더라도간절함을 포기하면 세상은 조용해진다
달리 말하자면 이제는 노래나 시 같은 것
그 동안 베껴썼던 모든 문자들에게
나는 용서를 구해야 한다혹은 그대의 텅 빈 부재를 채우던
비애마저 사치스러워 더불어 버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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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서


죄 없는 자들일수록 더 많이 참회하고
적게 먹는 자들이 더 많이 감사하고
타락하지 않은 자들이 더 많이 뉘우치고
힘들여 사는 자들일수록 고행의 순례길을 떠나고
적게 살생한 자들이 더 많이 속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그러한 감사와 참회가 낡아빠진 문화라는 사실 때문에
그리하여 내가사는 곳에 감사와 참회 따위가입에 오르는 일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래전에 낡은 체제를 혁명하고
또 혁명에 혁명을 거듭했기 때문에
더 혁명할 것이 없을 즈음에
마침내 어떤 진리에 이르렀기 때문에

많이 먹고 많이 가질수록 죄가 줄어든다는,

축의 시간


굵은 비 쏟아지는 산길
키 낮은 병꽃나무에 튼 둥지에서
새 한마리
알을 품고 있다 억수같이 퍼부어대는 비를 다 맞고

날개 지붕을 펴 둥지를 덮고
떨고 있다 쏟아지는 것은 쏟아지라고

알은 해석으로 풀려나올 수 없다
어떤 문법으로도 풀려나올 수 없다
어떤 언어로도 깨어나게 할 수 없다
품을 수밖에 없다

시작과 끝이 맞물린 알
시제가 없는 알

지금은 축의 시간
주둥이가 막힌 병
거센 물살 가운데 정지한 나무

꼭지가 막 떨어진 사과의 시간

지금은 오직 전체를 기울여야 할 때
시간은 수컷처럼 둥지 밖에서
초조하게 서성일 뿐

인간 형성


매번 다른 사람이 오는데 그 사람이 그 사람 같다
몸가짐이 거침없고 말이 시원시원하다
똥 푸러 오는 사람들 속이 훤히 다 보일 것 같다

종일 남의 집 똥구덩이에 고개를 박고
얼굴에 입술에 똥물 바르고 그 돈 벌어 밥 먹고
애들 학교 보내고 마누라 화장품도 사주고 조상 제사도 모시고
아무나 하는 일 아니다 속이 컴컴한 자들
근기 모자라는 자들은 근처에도 못 가는 일이다

꽃을 노래하고 별을 우러르고
영롱한 이슬을 글에 담는 사람들더러
영혼이 맑은 사람인 것 같아요 누군가 감동하자
그 영혼들이 우쭐대지만 속사정은 개뿔이다

속에 구정물이 가득해서 이슬을 찾고
당장 숨이 차고 혼미해서 꽃을 찾고
인간성이 시궁창이라서 향기를 찾고

영혼이 누더기라서 별로 기워야 했을 것
아니면 오염되기 쉬운 선천적 기형이라서
별과 이슬을 복용해야 하거나

인간이 제 손으로 똥 푸는 일이 없어지고
자기가 싸놓고 제 것이 아닌 양
혐오하고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고상한 습성을
동물과 유일하게 구별되는 습성을
우리는 인간성이라고 부른다

교차 신호등

삼십년지기 먼 길 배웅하고 돌아오던 밤길 지방도

마을도 교차로도 없는데 문득 켜지는 신호등 하나

너는 저만큼 가버리고 나는 어둠에 지워져 있고

길은 차갑게 식어 있고 따라오는 신호등 하나

낯선 길인 양 낯익은 길 오래되었으나 처음 들어선 길

나도 모르게 들어선 길 위에 둥근 달 신호등 하나

무무소유

굶주리는 사람이 건강 단식을 어떻게 이해하나
없는 사람이 무소유를 어떻게 이해하나

잃을 것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잃을 것은 사슬뿐인 사람들은
자유를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날 거라지만
그들도 잃을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지
가진 것 아무것도 없는 거지는 동냥 구역을 잃을 게 있지
없을수록 집착할 수밖에

거액의 자산가가 방송에 나와 무소유의 자유로움에 대해
진지한 표정으로 말할 때 그건 분명 진심이었을 거다
무소유의 청빈함을 제대로 글로 쓰는 작가는 좀 살 만한자다
어디 가나 밥과 집이 넉넉한 스님이라야
무소유를 제대로 설법할 수 있다.

무소유는 가진 뒤의 자유다
무소유는 소유라는 단어가 있은 뒤 조합된 낱말이다

다 내려놓은 사람의 무소유는 이미 그 낱말이 아니다.

가진 것이 넉넉해야 무소유를 맘껏 가질 수 있다

모과


맹렬하게 뿜어내는 저 향기는 나무를 떠난 뒤 급격히 기우는 시간의 기울기를 만회하려는 몸짓인가

당신이 떠난 뒤 지상의 것이 아닌 이 슬픔의 실상은 당신과의 분리로 인한 급격한 시간의 기울기가 만들어낸 죽음의 냄새인가

꽃은 이미 분리를 시작한 불안한 시간의 빛과 향기 모든 향기에는 죽음의 냄새가 묻어 있어 그렇지 않다면 그 어떤향기가 우리를 매혹시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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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그림들은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어떤 사물의 그림이 아니다. 과정의 순간이 캔버스에 포착된 것이다. 그것은 순수 회화다.
존은 순수에 열광한다. 그러나 그 열광은 오직 미술에만 한정된 것이다. 그것은 모든 어머니들, 특히 그의 어머니에 대한 과장된 항의 선언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살림살이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어쩌다 하는 설거지도 그는 빵 부스러기와 통조림 옥수수 낟알이 배수구에 걸려 있는 욕조에서 한다. 거실 바닥은 주말이 지나간 해변같다. 침대보는 그 자체가 ‘과정의 순간‘을 보여 주고 있는데, 그 순간이라는 것이 상당 기간 지속된다. 나는 그나마 덜 더러워 보이는슬리핑 백에서 자는 것을 선호한다. 욕실은 북쪽의 외딴 휴게소 화장실처럼 보인다. 변기 안쪽에는 갈색 테가 보이고 담배꽁초가 떠다니며, 타월이 혹시라도 있을 때면 손자국이 마구 찍혀 있고, 정체 모를 종이 조각들이 바닥 이곳저곳에 뒹군다. - P189

그러나 이 모임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이유는 알 수없다. 나는 어색하고 막연한 느낌에 사로잡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말이 틀린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충분히 고통받지도 않았고 권리를 쟁취하지도 않았으므로 말을 꺼낼 권리가 없는 것이다. 문 안쪽에서 판결과 비난 어린 선고가 내려지는 동안 닫힌 문 밖에 서 있는 기분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호감을 사고 싶기도하다.
나는 스스로에게 중얼거린다. ‘자매애란 내게 어려운 개념이야,
나는 자매가 없었으니까. 형제애는 어렵지 않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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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가 재빨리 내 손에 그의 손을 얹는다. ‘이 그림들세요" 그는 말한다.
요? 잘된 그림이 아니잖아요." 나는 묻는다.
토르비크 씨가 말한다. "나중에 그 그림들을 보고 당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볼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은 사물을 아주 잘 그려요. 그러아직 실물은 그리지 못하죠. 신은 처음에 흙으로 머엄을 만들고영혼을 불어넣었어요. 그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해요. 흙과 영혼." 그는 짧은 미소를 지으며 내 팔을 지그시 누른다. "열정이 있어야 하는거라고요."
나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본다. 그의 말은 도를 넘어선 것이다. 사람들은 병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면 몸에 대해이야기하지 않고, 교회가 아닌 곳에서는 영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며, 섹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열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흐르비크 씨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알지 못할수도 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덧붙인다. "당신은 미완성의 녀자예요. 그러나 이곳에서 완전히 끝나게 될 거예요." 그는 끝난다는 말이 못쓰게되고 끝장이 난다는 의미라는 것을 모른다. 그는 나를 격려하려고한 것이다. - P123

고대 그리스를 마치고 로마와 중세, 르네상스 시기로 들어서는다음달에는 사정이 좀 나아지기를 기대한다. 고전적인 것이란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탈색되고 부서진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대부분의그리스와 로마 유적들은 신체 일부가 없어졌다. 이렇게 큰 규모로활과 다리와 코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내 신경에 거슬린다. 부러진 남자 성기는 두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온통 회색과 흰색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모든 대리석 상들이 예전에는 선명한 색깔로 칠해져 있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노란 머리와푸른 눈과 피부색, 그리고 때로는 인형처럼 진짜 옷을 걸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수업은 개관 수업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시대별 예술에익숙해지도록 하고 나중에 배울 심화 수업에 대비하도록 하기 위한것으로, 토론토 대학의 예술과 고고학 과정의 일부다. 이 과정은 내가 미술에 근접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공인된 경로다.
요한 길이기도 하다.  - P125

그들은 캐시미어 트윈 세트와 낙타털 코트와 질 좋은 트위드 치자를 입고 납작한 진주 귀걸이를 하고 다닌다. 단정한 중간 높이 굽이 달린 펌프스를 신고 맞춤 블라우스나 점퍼 스커트, 아니면 같은뇌의 치마와 단추가 달린 작은 조끼를 입는다. 나역시 이런 옷을있고 그들 속에 섞이려고 노력한다. 쉬는 시간에는 다양한 대학 휴게실과 식료품실과 커피숍에서 그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도넛을먹는다. 그들은 손가락에 묻은 도넛 설탕을 핥으며 옷에 대해 토론하거나 사귀고 있는 남학생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두 명은 이미 확실한 애정 고백을 받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들의 눈은 물기가 많아지고, 희미해지고, 물러지며,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아기 고양이 눈처럼 상처받기 쉽게 보인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눈은 간교하고 생각에 잠겨 있으며 탐욕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 - P127

나는 그들과 있는 것이 마치 거짓 흉내를 내고 있는 것처럼 불편하다. 흐르비크 씨와 몸의 촉각성은 예술과 고고학과와 들어맞지 않는다. 나신의 여자를 그리려는 나의 어설픈 시도는 시간 낭비로 여겨질 것이다. 예술은 다른 곳에서 이미 완성되었다. 남은 일은 암기하는 일뿐이다. 실물화 강좌 전체는 거만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노력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생명선, 내 진정한 삶이다. 점점 더 나는 그것과 맞지 않는 것을 제거하고 나 자신을 다듬기 시작한다. 첫 수업 시간에는 체크무늬 점퍼 스커트와 피터 팬 깃이 달린 하얀 블라우스를 - P127

입고 가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적응하는 법을 빠르게 배운다. 나는남학생들과 다른 여학생처럼 차림새를 바꾼다. 검은 터틀넥 스웨터와 청바지, 이 옷차림은 여타 다른 옷차림처럼 가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충실함의 표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용기를 내어 대낮의 예술과 고고학 수업에도 이런 옷을 입고 간다. 단 어느 누구도 입지 않는 청바지는 제외하고, 그 대신 나는 검은 치마를 입는다. 진지한 분위기를 풍기도록 고등학교 시절처럼 앞머리를 길러 뒤로 넘겨머리핀으로 고정시킨다. 캐시미어와 진주를 걸친 여학생들은 예술가 행세를 하는 비트족들에 대한 농담을 주고받고, 내게는 점점 더 말을 건네지 않는다. - P128

이것은 내 삶의 한 측면, 낮 동안의 나의 삶이다. 다른 측면의 삶, 진짜 삶은 밤에 펼쳐진다.
나는 수지를 자세히 관찰하며 그녀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여 왔다. 수지는 사실 나와 같은 나이가 아니라 두 살 이상 많다. 거의 스물한 살이다. 그녀는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고 애비뉴 로드와 세인트 클레어 애비뉴가 교차하는 곳 북쪽에 위치한 고층 건물의 1인용아파트에 산다. 부모님이 집세를 내 주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그 아파트를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이런 빌딩에는 엘리베이터와 화분이 놓인 넓은 홀이 있고, ‘몬테 카를로‘ 같은 이름이 붙어 있다. 이런 곳에 산다는 것은 대담하고도 세련된 일이다. 비록 그런 곳에는간호사 삼인조가 산다고 화가들이 비웃을 일이기는 하지만, 화가들은 블루어 스트리트나 퀸 스트리트의 철물점이나 여행용 가방 도매점 위층, 아니면 이민자들이 사는 골목에 산다. - P140

나는 캘리포니아의 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는 오빠의 모습을 그려본다. 그는 자신이 편지를 쓰는 대상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나는오빠가 알아보지 못할 만큼 변해 버렸다. 그리고 나 역시 편지를 쓰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나는 그가 항상 똑같은 모습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물론 그럴 리가 없다. 그는 내가그렇듯이 이전에 모르던 일들을 이제는 알고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면, 샌드위치를 먹으며 동시에 편지를 쓰고 있다면 오빠는 어떻게 나무 위에 앉아 있는 것일까? 그는 저격병 자리같은 그 나무 위에 앉아 있는 것에 만족해하는 것 같다. 그러나 좀더 신중해야 한다. 내가 항상 용감함이라고 여겨 왔던 그의 자질은어쩌면 결과에 대한 무지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가 말하는 것과 일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열린 공간에,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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