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북극권에 봄의 징조가 나타나는 6월이 되면 카리부를 촬영하기 위해 해마다 꼭 들어가는 브룩스 산맥의 계곡이 있다. 그 계곡에서 제고 리버라는 강이 북극 평원으로 흘러든다. 최근 13년 동안 그곳에서 사람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장 가까운 에스키모 마을은 브룩스 산맥을 넘어 2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카리부 떼는 매년 반드시 그 계곡을 지나간다. 이 이름 없는 계곡이 아마 알래스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일 것이다. 그곳에 있으면 정신이 아득해질 듯한 풍경이 나를 작아지게 만들지만 그와 반대로 만물이 내게 속한듯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이끼 낀 바위, 툰드라에 솟아오르는 작은 언덕, 계곡을 지나가는 극복의 바람……
낚시꾼에게 자신만 알고 싶은 소중한 강이 있듯이 나에게 그계곡은 나만 알고 싶은 소중한 장소였다.

카리부는 극복의 방랑자다. 어느 날 갑자기 툰드라 너머에서나타나 바람처럼 툰드라 저편으로 떠나간다. 아무도 그들이 간곳을 쫓아 뒤따를 수 없다. - P84

알래스카에 이주하고 두 번째 맞는 봄, 나는 이 계곡에서 처음으로 카리부의 계절이동을 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하얀 눈밭인 그 위를, 긴 선을 그리며 행진하는 카리부 떼. 그때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진정한 야생동물의 모습을 엿본 것만 같았다. 이는 카리부의 장관에 압도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북쪽으로 향해 가려는 카리부의 의지와 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이 이 세상에 나밖에 없다는 신기한 마음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이 광활한 땅을 실감했다. 인간과 관계가 없는 세계가 지닌 생생하고 드넓은 공간에 감동받았다. 그경험은 내가 알래스카라는 땅에 뿌리내리기로 결심하는 첫 번째 계기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늑대도 이 계곡에서 처음 봤다.

베이스캠프에서 북극 평원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봄소식에 세상이 급속도로 바뀌는 모습은 언제나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설원 곳곳에 까만 흙이 보이기 시작하고, 어느 날 갑자기반년 동안 얼어붙어 있던 강이 성난 파도처럼 움직인다. 순식간에 남쪽에서 찾아온 뇌조, 검은가슴물떼새, 수많은 도요새, 물 - P85

떼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고요하기 그지없던 툰드라가 마치 되살아난 듯 화려해진다.
강둑을 산책하다 보니 해마다 야생 크로커스가 꽃피는 장소가 있었다. 나는 봄에 가장 먼저 피는 연보라색의 그 꽃을 좋아한다. 거기 그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면 왠지 안심이 됐다. 한달이나 혼자서 캠프 생활을 할 때는 그런 사소한 일에 마음이누그러졌다.
나는 그 꽃을 보며 카리부의 이동을 봤을 때처럼 한없는 신기함을 느꼈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그 꽃은 매년 봄이 되면 땅끝과도 같은 그 계곡에서 봉오리를 맺는다. 자연이란원래 그런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도 그것은 여전히 흥미롭고 변함없이 신기했다.

5년 전 알래스카에서 죽은 카메라맨 친구의 재를 동료와 함께 가문비나무 아래에 묻은 적이 있다. 매킨리 산에 가까운 이글바레이라는 계곡이었다. 재를 묻은 작은 언덕에서 가문비나무숲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다. - P86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존재는 언젠가 흙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한다. 유기물과 무기물, 삶과 죽음의 경계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언젠가 내 육체가 사라지면 나도 내가 좋아했던 장소에 묻혀 흙으로 돌아가고 싶다. 툰드라의 식물에게 약간의 양분을 주어 극복의 작은 꽃을 피우게 하고, 매년 봄이 되면 아득히 먼 저편에서 카리부의 발소리가 들려오고...... 그런 것을 나는 종종 생각할 때가 있다. - P87

몇 년 전 나와 똑같은 말을 한 친구가 있었다. 도쿄에서 바쁜편집자 생활을 보내던 그는 간신히 일을 마무리하고 나의 알래스카 여행에 동참했다. 남동알래스카의 바다에서 고래를 쫓는여행이었다. 일주일간의 짧은 휴가였지만 운 좋게도 그는 고래를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해 질 무렵, 보트 가까이에 나타난 거대한 혹등고래 한 마리가 갑자기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고래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지만 할 말을 잃게 만드는압도적인 순간이었다.
그때 그가 말했다. "일이 바빴지만 알래스카에 오길 정말 잘했어. 왜냐고? 내가 도쿄에서 정신없이 흘러가는 나날을 보낼때에도 알래스카의 바다에서는 고래가 솟구쳐 오르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정말 좋아."
나는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일상에 쫓길 때에도 다른 곳에서는 또 하나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것을 유구한 자연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 수 있다면, 아니 마음 한구석에서라도 상상할 수 있다면 어쩐지 살아가는 힘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P91

인간에게는 분명히 두 개의 소중한 자연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일상생활 속에서 관계를 맺는 친근한 자연. 그것은 길가의 풀꽃이거나 근처에 흐르는 강물일 수도 있다. 또 하나는 일상생활과 관계가 없는 아득히 먼 자연. 그곳에 갈 필요는 없다. 그냥 그곳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우리에게 상상력이라고 하는 풍요로움을 건네주기 때문일 것이다.
고래를 본 내 친구는 지금 어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까? - P92

길고 혹독한 겨울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겨울이 없으면 봄소식이나 해가 지지 않는 여름, 또 아름다운 극북의 가을에 대해 이토록 고마운 마음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일 년 내내 꽃이 핀다면 사람들이 꽃에 대해 이 정도로 강렬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눈이 녹으며 일제히 꽃이 피기 시작하는 것은 식물들이 긴 겨우내 쌓인 눈 밑에서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도 어둠 속에 잠긴 겨울 동안 꽃에 대한사랑을 키우는 것 같다.

돌고 도는 계절, 끝없는 저편으로 흘러가기만 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문득 멈춰 설 수 있다. 그 계절의 색이 우리에게 한번뿐인 인생을 살고 있음을 알게 한다.
겨울을 보낸 후 느끼게 되는 자연의 풍부한 혜택에 대한 강렬한 마음..... 아메리카 붉은 다람쥐도 우리와 똑같이 긴 겨울을넘겼다. - P115

첫눈이 내린 날,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쌓이는 눈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마음이 들 것이다. 잠깐 지나가는 극북의 여름 동안 사람들은 너무 분주하게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조금 지친 것이다. 그리고 겨울 소식은 무슨 이유인지 사람의마음에 기분 좋은 단념을 심어준다. 그것은 어딘지 비가 오는날 집에 있을 때 느끼는 마음과 닮았다. 이제부터 길고 어두운계절이 시작될 텐데 첫눈을 보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은 그런까닭이 아닐까?

그리고 눈은 참으로 따뜻한 존재다. 생물들은 생존을 위해서눈에 적응했고 또 생존하려면 눈이 필요했다. 담요처럼 땅을 덮어주는 눈이 없으면 그 밑에서 겨울을 넘기는 대부분의 동물들은 혹한의 겨울을 살아낼 수 없다.

겨울의 따뜻한 온기는 우리 마음에도 전해진다. 무기질의 하얀 세계는 사람의 마음에 불을 밝혀 희미한 상상력까지 내어준다. 눈이 없는 겨울의 경치만큼 추워 보이는 것은 없지 않을까?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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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미치오 

알래스카 설원에 생을 바친 사진작가. 진실되고 단정한 문장과 경이로운 사진들로 알래스카의 숭고한 풍경을 기록하는 일에 일생을 보냈다.

1952년 출생. 게이오기주쿠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한 후 탐험부에 가입했다. 헌책방 거리의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든 알래스카 사진집 한 권이 운명의 시작이었다. 시슈머레프라는 작은 마을의 항공사진에 마음을 빼앗긴 호시노 미치오는 1972년 그의 나이 스무 살 때 시슈머레프 촌장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이듬해 4월, 마치 기적처럼 답장을받는다. 그해 여름, 그는 시슈머레프 마을을 찾아가 에스키모 가족과 생활하게 된다.

알래스카에서 석 달을 지낸 호시노 미치오는 자신의 인생을 그곳에서 보내기로 결심한다. 일본으로 돌아와 대학을 졸업한 그는 2년 동안 사진을 배운 뒤, 1978년 알래스카대학 야생동물관리학부에 입학한다. 이후 알래스카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그곳의 자연과 야생동물, 사람들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해나간다.

해마다 그는 북극권의 툰드라지대를 향해 갔다. 자신을 데리러 오는 경비행기 소리가 들릴 때까지 긴 고독의 시간을 담담히 견디며 카리부 떼를 기다렸다. 불행이 찾아온 것은 1996년 8월 8일, 캄차카반도에서 TBS 텔레비전 프로그램 취재에 동행하던 중, 쿠릴 호반에서 불곰에게 습격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알래스카의 강인함과 연약함을 동시에 사랑했던 그는 툰드라의 식물에게 약간의 양분을 내어주며 흙으로 돌아갔다. 그의 나이 43세였다.

1986년 「그리즐리로 아니마 상을, 1990년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로 기무라 이해 사진상을, 1999년 일본사진협회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 「여행하는 나무』 『영원의 시간을 여행하다』등이 있다. - P-1

아직 한 살도 안 된 아들이 은행잎이 떨어지기 시작한 베란다에 앉아 9월의 가을바람을 맞고 있다. 쇠박새가 나무들 사이를 쓱 날아다니고, 아메리카 붉은 다람쥐가 등자나무 가지 위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을 내고, 바람이 자작나무 잎을 사각사각흔들 때마다 아들은 세상으로 시선을 휙 돌린다. 그 순간 아이의 눈동자에서 벌써부터 부모의 존재와 상관없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힘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럴 때문득 칼릴 지브란의 시가 생각난다.

당신의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니다. 그들은 인생 자체의 아들이며 딸이다. 그들은 당신을 통해서 오지만 당신으로부터 온것이 아니다. 그들은 당신과 함께 있지만 당신에게 속한 것은 아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사랑을 줘도 되지만 당신의 생각을 주어선 안 된다. 그들의 마음은 당신이 방문할 수 없는, 꿈속에서도방문할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 P11

언젠가 침대에서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커다란 혹이 생겨 울부짖는 아이를 앞에 두고 문득 생각한 것이 있다. 아프다고 우는 아이가 가여워서 가능하면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지만 아무리 해도 이 아이의 아픔을 느낄 수 없다. 내가 부딪친 것이 아니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모는 내 아이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낀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 몸의 통증과 마음의 아픔은 다르다는 그런 뜻일까?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우는 아들을 바라보며 "이 아이는 혼자서 살아가겠구나‘ 하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부모라고 해도 아이 마음의 아픔까지 진심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않을까?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내내 지켜봐주는 것뿐이다. 그한계를 느낄 때 어쩐지 참을 수 없이 아이가 사랑스러워진다. - P13

급류는 고무보트를 점점 나무 밑으로 밀어넣었고 흰머리수리도 가만히 나를 내려다봤다. 날아갈까? 아니면 지나가게 해줄까? 나는 그저 멍하니 녀석을 바라봤다. 긴장감에 숨이 막히는 시간이 흘렀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흰머리수리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정말 이 순간 한순간을 살고 있다. 나 또한 먼 옛날의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만을 바라보고 있다. 한쌍의 수리와 내가 서로를 이해하는 기적 같은 시간. 지나가는지금이 가진 영원성.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의 심원함에 매료되었다. 강의 흐름은 나를 나무 바로 아래를 지나 빠져나가게 했고 흰머리수리는 날아가지 않았다.

매일매일의 생활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이란 무엇일까? 문득생각해보니 내 경우에는 그것이 ‘자연‘이라는 말에 도달한다.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아니다. ‘내면의 자연‘과의 만남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기보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되찾는 것이다. - P16

앞으로 열흘이 지나면 동지다. 이 땅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그날은 마음의 분기점이다. 앞으로 극복의 혹독한 겨울이 시작되겠지만 태양이 그리는 포물선은 조금씩 넓어진다. 그리고사람들은 마음 어딘가에서 봄의 소재를 확실히 파악하고 있다.

오늘도 태양은 지평선에서 겨우 얼굴을 드러냈을 뿐이다. 지는 저녁 해가 얼어붙은 겨울 하늘을 잠시 동안 붉게 물들인다. 이윽고 어둠이 밀려오고 긴 밤이 시작된다. 해가 지지 않는 여름의 백야보다 암흑으로 뒤덮이는 겨울에 더욱더 끌리는 이유는 태양을 사랑한다는 먼 기억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두운 겨울은 잊고 있었던 우리의 연약함을 슬며시 알려주는 것이다. - P17

그래서 지금도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인디언 동포들을 찾아가 그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교도소에 있는 인디언 청년들을 찾아가 정쟁의 길도 함께 걷는다. 그것은 전쟁 후 엉망이 된 그가 걸어간 길이기도 했다. 그리고 윌리가 훌륭한 것은 이러한 행위가자연스럽게, 저절로 우러나온 행위라는 점이었다.

이른 봄 어느 날 나는 윌리와 함께 남동알래스카의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갔다. 넙치 철이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옛날 클링귓족이 큰 나무 속을 파서 만든 카누를 타고 이 극의 바다에서 살았듯이 윌리도 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라온 어부였다.
그날 우리는 엄청난 넙치 떼를 만난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풍어를 맞았다. 저녁 무렵에는 마을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자정이 넘어도 생선 손질이 끝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날씨가 좋아서 하늘을 뒤덮듯이 수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너무 아름다워......"
윌리가 손질을 잠시 멈추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문득 중얼 - P44

거렸다. 똑같은 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는 마치 내가모르는 세계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날, 고기잡이에 나서기 전, 윌리는 작은 어선 위에서 으깬 약초를 바다 위에 살며시 뿌리며 이 바다에서 살았던 선조들의 영혼에게 기도를 올렸다.
"모든 것은 어딘가에 이어져 있어......"
언제나 농담만 하는 윌리의 눈빛이 깊어졌다. 사람이 기도하는 모습에 그런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남동알래스카의 태고의 숲, 유구한 시간을 아로새기는 빙하의 흐름, 여름이 되면 이 바다로 돌아오는 고래들...... 알래스카의 아름다운 자연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기에 더욱 깊은 빛을 감추고 있다.
어머니 에스터도, 아들 윌리도 시대를 넘어 똑같은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사람은, 언제나 각자의 빛을 찾아다니는 긴 여행의 도중일 것이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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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규

1972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010년 『문학동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시집으로 『그늘진 말들에 꽃이 핀다』가있다. - P-1

봄밤, 우주의 저편


야근을 멈출 수 없었다

위성도시로 가는 심야버스에 올랐다

졸다가 땀을 훔치며 내렸다

어린 시절 폐쇄된 간이역

백목련이 터진다 - P10

너는 봄이다


네가 와서 꽃은 피고
네가 와서 꽃들이 피는지 몰랐다
너는 꽃이다
네가 당겨버린 순간 핏줄에 박히는 탄피들,
개나리 터진다 라일락 뿌려진다
몸속 거리마다 총알꽃들
관통한 뒤늦게 벌어지는 통증,
아프기 전부터 이미 너는 피어났다

불현듯 꽃은 지겠다 했다
죽을 만큼 아팠다는 것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
찔레 향에 찔린 바람이 첨예하다
봄은 아주 가겠다 했다
죽도록,이라는 다짐은 끝끝내
미수에 그치겠다는 자백
거친 가시를 뽑아내듯 돌이키면
네가 아름다워서 더없이 내가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
때늦은 동백 울려퍼진 자리 - P12

때 이른 오동꽃 깨진다, 처형처럼
모가지째 내버려진 그늘
젖어드는 조종(弔鐘) 소리

네가 와서 봄은 오고
네가 와서 봄이 온 줄 모르고
네가 가서 이 봄이 왔다
이 봄에 와서야 꽃들이 지는 것 본다,
저리 저리로 물끄러미
너는 봄이다 - P13

김사인과 싸우다


다음 생이라는 게 있다면
나의 일상은 응당 이러할 것이다
그와 한마을 동갑내기로 태어나 이틀 걸러 하루는 드잡이하는 것
세번 싸워 두번은 지는데 결정적일 때는 꼭 이기는 것
멀리싸기 시합을 하다가 그의 언발에 오줌을 누는 것
‘말천천히하기‘ 대회에서 우승한 뒤 날로 경신
하는
우주에서 가장 느려터진 말투로
그의 복장을 터뜨리는 것
점빵집 딸내미를 먼저 찜했다고 밤새 싸운 뒤
서둘러 고백하고 껴안았다가 뺨 맞은 소문만쫙 퍼지는 것
그래도 그 맵짠 기억을 품고 청춘을 견디겠노
라며
고백도 못한 그에게 초를 치는 것
동네는 두메산골은 아니고 읍내도 아니고 면소재지 정도면 좋지
하나밖에 없는 구판장 막걸리는 항시 쌀되로 덜어줘야하지
안 서운할 만큼 사카린을 치고
넘치게 담아 주모 엄지 맛도 봐야 더 좋지 - P22

취할수록 서운해져서 고래고래 노래 부르면
뉘 집 자식인지 이장집에서 무당집까지 죄 알게 되는
저지른 짓보다 곱절로 낯뜨겁다가
금방 다시 낯두꺼워질 수 있는 마을이면 적당
하지
아비 몰래 논 서마지기 팔아먹은 돈으로
나이 많은 과부와 밤도망치는 일은 있어야 하네
전주나 청주쯤에 살림 차렸다가 버림받고 돌아와
암시랑토 않은 척 처자빠져 있다가
쬐금씩 부끄럽고 쬐금 더 억울해지는 얼굴로 앉아 있다가
괜찮다, 괜찮어, 다 괜찮어.. 떼꾼하게 더듬거리는 그를붙잡고
청춘은 다 갔네 어쨌네 같잖지는 않게 재재
거리다
풀썩 낮술에 젖어드는 것
마실수록 자기가 담근 술이 더 맛있다고 우기
다가
두 항아리 다 비우는 것
벌게진 얼굴로 나란히 노을 붉은 수렁에 빠져
멍하니 끔벅거리다가 찔끔하다가 낄낄대다가
비로소 어깨에 기대 꺽꺽 울어제끼는 일은
반드시 있어야 하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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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맛없게 저녁을 먹고, 말없이 뜨악하게 앉았다가 자리에 들었다. 외풍이 센 방에선 그저 눕는 게 제일이었다. 이불 밖으로 코를 내놓으면 코끝이 시리게 외풍이 세고 방바닥이라야 겨우 냉기가 가신 방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서로를밀착시켰다. 그리고 한 이불 속에 든 남녀라면 누구나 할 수있는 짓을 하면서도 나는 이게 아닌데, 아아, 이게 아닌데 하고 생각했다. 그건 우리가 둘 다 서로 그 방면에 풋내기라는데서 오는 초조감하곤 달랐다. 나는 그 짓을 통해 따뜻하고 평화스러운 느낌이 되길 바랐지만 정반대의 느낌으로 끝나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나는 울고 싶었다. 그러나 억지로 참았다.
나는 행복했던 적에도 울기 잘하는 계집애였어서 울고 난 후에 모든 것이 씻겨내린 듯한 상쾌감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모든 것을 씻겨낸 후의 내 모습을 보는 것을 원치 않았다. - P320

나는 그를 쫓아보내고 내가 얼마나 떳떳하고 용감하게 내가난을 지켰나를 스스로 뽐내며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 방은 좀전까지의 내 방이 아니었다. 빗발로 얼룩얼룩 얼룩진 채 한쪽이 축 처진 반자, 군데군데 속살이 드러나 더러운벽지, 지퍼가 고장난 비닐 트렁크, 절뚝발이 날림 호마이카상, 제 몸보다 더 큰 배터리와 서로 결박을 짓고 있는 낡은 트랜지스터라디오, 우그러진 양은냄비와 양은식기들―, 이런것들이 어제와 똑같은 자리에 있는데도 어제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다만 무의미하고 추했다. 어제의 그것들은 서로 일사불란 나의 가난을 구성하고 있었지만, 지금 그것들은 분해되어 추한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판잣집이 헐리고 나면 판잣집을 구성했던 나무 판때기, 슬레이트, 진흙 덩이, 시멘트벽돌, 문짝들이 무의미한 쓰레깃더미가 되듯이 내 가난을 구성했던 내 살림살이들이 무의미하고 더러운 잡동사니가 되어거기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다시 수습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내 방에는 이미 가난조차 없었다. 나는 - P329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갔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분해서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러나 내 가난을, 내 가난의 의미를무슨 수로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우리 집안의 몰락의 과정을 통해 부자들이 얼마나 탐욕스러운가를 알고 있는 터였다. 아흔아홉 냥 가진 놈이 한냥을 탐내는 성미를 알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부자들이 가난을탐내리라고는 꿈에도 못 생각해본 일이었다. 그들의 빛나는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를 훔쳐다가 그들의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한다는건 미처 몰랐다.
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나는 쓰레깃더미에 쓰레기를 더하듯이 내 방 속에, 무의미한 황폐의 한가운데 몸을 던지고 뼈가 저린 추위에 온몸을 내맡겼다.
(1975) - P330

허구한 날 골목 어귀 구멍가게에서 오징어로 소주를 마시던 남자가, 휴일 날 창경원에서 아이들과 목마를 타는 나의 바로 뒤 목마를 타고 태연히 출렁이고 있는 걸 어찌 예 사로 보아넘길 수 있겠는가.
엉뚱한 사람의 이름을 대면서 집을 찾는 척 안채를 기웃대던 신사와 며칠 후 불고기판을 사라고 끈덕지게 치근대던 외무사원과 너무도 닮은 걸 어떻게,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겠는가. 내 이런 병적인 수집은 날로 늘어나 이제 불길은 결코 터무니없는 예감만으로 그칠 수 없는, 곧 당면하게 될 실제로 구성돼가고 있었다.
어느 날, 우리 식구는 차례차례로 모 정보기관에 연행돼갔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내 육감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곳에는 나의 과거와 현재 또 삼십팔 년 동안 살아오면서 맺은 온갖 인연, 지연의 말초적인 부분까지가 유리 상자의 표본처럼 질서 있게 정리돼 있었다.
하느님 맙소사, 하느님 맙소사.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았지만 이런 소리밖에 할 소리가 없었다. 나는 그때 비로소 나를중심으로 한 내 주변의 세밀한 조감도를 본 것이다. - P348

채광이 시원치 않은 음침한 방인데도 굳이 선글라스를 쓰고있는, 나를 심문하는 그 기관원의 눈앞에서 나는 자꾸 벌거벗은 듯한 착각을 느끼고 수치감으로 몸을 떨었다.
그는 냉엄하고 자신에 차 있었다. 여북해야 나는 내가 알고있는 나보다 그가 알고 있는 내가 훨씬 더 진짜 나려니 여기고있었다.
그는 내가 망각한 것까지 ㅡ6.25 때 피난 갔던 외가댁 마을이름까지 또 비교적 손이 번성한 외가의 하고 많은 사촌에서 십몇 촌까지의 친척 이름까지 낱낱이 알고 있었다.
그는 너무도 완벽히 알고 있었다. 그 앞의 내 기억력은 여명의 별들처럼 빛을 바래갔다. - P349

내 기억으론 내 외당숙이 조성구였지만 그가 조정구라니 조정구가 틀림없다 싶었다. 그가 설사 내 딸 연이가 현이라고 했다면 아마 내 딸은 현이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나는 그 앞에 그렇게 무력했고 그는 그렇게 전능했다. 그는내가 완전히 허탈 상태에 빠진 것을 확인한 후 비로소 엄숙히선언했다.
6.25 때 의용군으로 나간 오빠가 이북에서 
밀봉교육을 받고곧 남파되리라는 것이었다. 먼저 남파됐다가 체포된 간첩에 의해 확인된 정확한 정보란다.
오빠는 오면 반드시 집에 들를 테고 그러면 어떻게 하겠느 - P349

나고 그는 물었다.
"어떡하긴요. 그야 당연히 시, 신고를 하거나 자수를 시켜야죠.
나는 아주 밉고 서툴게 아양을 떨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아주머니만 믿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협조해줘서 고맙다고 덧붙였다. 나도 고맙다고서너 번 고개를 조아리고 또 한번 아양을 떨었다. 그리고 놓여났다. 남편과 어머니가 같은 꼴을 당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충청도 진천에서 거의 한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는 외가와 그 밖에 오빠가 알 만한 대소가가 다 한 번씩 그런 일을 당한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대문 소리에 가슴이 내려앉는 날이 시작되었다.
"말이 자수지, 그놈이 벌써 마흔인데 그곳에 
계집자식이 없을 리 없을 테니 이 에미 말을 들을까? 계집자식 생각이 앞설테지. 차라리 넘어오다......"
어머니는 말끝을 흐리고 눈물을 닦는다. 그러나 나는 다음말을 알고 있다. 나도 방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어머니보다 훨씬 진작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넘어오다 차라리 사살되었으면 하고.
간첩이 된 혈연과는 상봉이 몰고 올 사건과의 당면이 두려운 나머지 십팔 평 블록 집 속의 안일이 소중한 나머지, 어머 - P350

너와 나는 마녀보다도 더 잔인해졌다.
그러나 오빠가 나타나기 전에 이미 그 전능한 선글라스에의해 십팔 평 블록 집의 안일은 앗긴 거나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점점 거칠어지며 폭음이 잦아졌다. 장가를 잘못 가서 신세를 망쳤다는 것이다. 간첩 처남을 두었으니 무슨 수로 승진을바라겠느냐, 승진은커녕 언제 모가지가 날름 날아갈지 몰라전전긍긍하다가 집구석이라고 찾아들어와야 언제 또 간첩 처남이 돌아와 총을 들이댈지 모르니 술이라도 안 마시고 어쩌겠느냐고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정말 그런가? 남편은 승진은커녕 계장급이면 돌아가면서 한 번씩 자재 구입이다 시찰이다 해서 외국 바람 쐴 기회가 오게 마련인데 그런 데서까지 번번이 제외되었다. 남편은 점점 더 폭음으로 난폭해지고 술이 깼을 때의 그는 나를 대하기를성한 사람이 문둥이 보듯 증오와 연민으로 대했다. 그것은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수모였다. - P351

나는 다시 장판방에 눕는다. 한숨을 휴우 내쉰다. 그런데 이미 좀전의 편안감은 없다.
옴짝달싹할 수 없으면서도 펄펄 뛰지 않고는 또 못 배길 것같은 중압감과 동통이 여전하지 않은가? 이미 입속엔 빼버릴틀니도 없는데.
빼버릴 틀니가 없기에 그 고통은 절망적이다.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여직껏 얼마나 교묘하게 스스로를 이중 삼중으로 기만하고 있었나를.
내 아픔은 결코 틀니에서 기인한 아픔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설희 엄마가 부러워서, 이 나라와 이 나라의 풍토가 주 - P358

는 온갖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녀가 부러워서, 그녀에의선망과 질투로 그렇게도 몹시 아팠던 것이다.
나는 그런 아픔이 부끄러운 나머지 틀니의 아픔으로 삼으려들었고, 나를 내리누르는 온갖 한국적인 제약의 중압감, 마침내 이 나라를 뜨는 설희 엄마와 견주어 한층 못 견디게 느껴지는 중압감조차 틀니의 중압감으로 착각하려 들었던 것이다.
비로소 나는 내 아픔을 정직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나는 결코 내 아픔을 정직하게 신음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교하고 가벼운 틀니는 지금 손바닥에 있건만 아직도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또하나의 틀니의 중압감 밑에 옴짝달싹 못하고 놓여진 채다.
(1972)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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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어머니가 어디서 소식을 듣고 오셔갖고 울고불고 애걸을 하시더군. 어쩌면 어머니가 그러시는데도 살고 싶은 마음이 요만큼도 안 우러나는지 사람이 죽기 전에 먼저 목석이 되더군. 그런데 어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부엌으로 나가셔서 밥을 지으시잖아. 이윽고 문구멍으로 뜸들이는냄새가 솔솔솔 들어오는데, 세상에 이런 일도 있어? 정신은여전히 가물가물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는데 별안간 뱃속에서 뭔가가 불끈 들고 일어나는 거야. 그래가지고 꼭 성난 짐승같이 요동을 치는데 당최 걷잡을 수가 있어야지. 나종 생각하니 그놈의 짐승이 아마 목숨이었나봐. 나는 그때까지도 사람마음하고 사람 목숨하곤 같은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니까. 마음 따로, 목숨 따로야. 그래서 어머니가 해들여온 밥을 미친년처럼 퍼먹었는데 세상에, 세상에 안 먹고 죽기는커녕 열이 먹다 아홉이 죽어도 모르게 맛있더라니까. 정작 죽을뻔한 건 그때 너무 먹어 관격을 해서였으니......"
그녀는 오랜만에 이렇게 나를 웃겼다. - P96

못 알아들으면 대순가. 우리말로라도 그말을 했을 것이다. 삼천만이 양키 덕을 입는 입장이거늘 그녀혼자 그것을 거슬러 홀로 양키에게 덕을 베풀려 들다니, 그것은 얼마나 고독하고 얼토당토않은 짓인가. 그렇지만 그녀라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오래전 그녀가 얼토당토않게도 굶주린 동포의 설움을 분풀이해야 할 책임을 홀로 걸머지기라도 한 것처럼 스낵바 싸진의 팔을 물어뜯었을 때의 그 완벽하게 고독했던 얼굴을떠올리며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거기 대해 외제 장수한테 설명하진 
않았다.
그날, 나는 외제 그릇을 비싸다는 핑계가 아니라 가지고 가기가 겁난다는 핑계로 안 샀기 때문에, 그후로는 외제 장수가 우리집을 드나들게 됐다. 외제 그릇은 살 듯 살 듯 하기만 하고 안 사고 기껏 후춧가루나 핸드로션 따위나 하나씩 샀기 때문에 외제 장수의 발걸음은 차츰 뜸해졌다. 그러나 그녀를 통해 무대소 아줌마의 소식은 가끔 들을 수 있었다. 너무 싸움이 잦아 내쫓았다고 했고, 그 근처로 이사해서 그럭저럭 산다고했고 워낙 술이 과하던 늙은 양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어서 무대소 아줌마가 다시 과부가 됐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외제장수는 발길을 끊었다.
그러고 이렇게 만난 것이다. - P101

"어디 가세요?"
나는 시장 가다 만난 이웃집 아줌마한테 말하듯이 가볍게물었다.
"미국. 이 상놈의 새끼들을 어떡허든 사람 만들어야겠기에."
"아줌마, 쌍노메 베치는 어떡허구 자꾸 상놈의 새끼래."
나는 그 마당에 엉뚱하게도 그녀의 말을 고쳐주려고 했다.
"아냐. 내가 미국만 가봐. 그까짓 혀 꼬부라진 미국 욕 안한다구. 내 나라 말로 실컷 내 나라 욕하면서 살지."
그녀는 미국 가는 목적이 실컷 욕이나 하는 데 있는 것처럼 희망찬 소리로 말했다. 나는 잠자코 고개만 끄덕였다.
발등을 밟히고도 오히려 "엑스 큐스 미" 한다는 간사한 문명인들 사이에서의 홀로의 무서움증을 욕이라도 하지 않고는어찌 감당할까.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무에게도 전수되지 않을 고독한 욕을 유일한 밑천 삼아 타국에서 고달프게 부대낄 아줌마를위해서 나는 우리의 욕이 풍부하고 다양하다는 걸 축복스럽게 생각했다.
드디어 그녀도 세 아이를 데리고 출구를 나갔다. 그녀가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도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 P102

"이상해요. 암만해도 이상해요."
아내가 다림질을 하면서 말했다. 단칸방이 다리미의 열기로 끓어오르고, 아내의 목덜미에서도 그의 등허리에서도 끈끈한땀이 끓어오르고, 아내의 목소리도 지글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의 단칸방을 덮은 슬레이트 지붕 위에선 팔월의 햇볕이 비정한 단근질을 하고 있었다. 관상대에선 삼십몇 년 만의 더위라고 말했지만 육십 노인도 팔십 노인도 내 생전에 처음 겪는 더위라고 장담하는 불볕더위가 보름을 넘어 계속되고 있었다.
아내의 정성스러운 다림질에도 불구하고 백 퍼센트 폴리에스테르인 그의 남방셔츠는 후줄근한 꼴을 별로 면한 것 같지않았다. - P135

모레는 상공부와 외무부 두 군데를 뛰어야 하고, 글피는 동창들과 회식이있는 날이고, 그글피는 또 어쩌고저쩌고 그그글피는 또 이러쿵저러쿵...... 아아, 언제까지 전화 목소리는 바쁘다는 핑계를 엮어내릴 것인가. 그의 참을성이 그가 다스릴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려 할 즈음 한결 더 떨어진 목소리가 일방적으로 받은 날이 일주일 후 토요일 오후였다. 그는 전화 목소리가 둘러대는 구실에 질려서 감히 자기에게 편한 시간은 언제인가를생각할 엄두도 못 냈다.
작은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사람의 분주하고 화려한 시간에비하면 그의 시간은 얼마나 누추하고 보잘것없는 것일까. 목소리가 그의 시간 사정을 한 번도 묻지 않은 건 조금도 이상할게 없었다. 그런 누추하고 보잘것없는 시간이란 보다 값진 시간을 위해 언제나 대기 태세로 있어야 한다는 새로운 질서의식이 그를 매우 다소곳하게 했다. 그는 전화 목소리가 문득 잊어버리고 있던 또다른 스케줄을 생각해내면서 황급히 다음주 토요일 오후의 약속을 취소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때문에 인사말도 하는 둥 마는 둥 전화부터 끊으려고 했다.
"사람이 경망스럽긴...... 난 아직 장소도 말하지않았네. 그리고 전화는 어른이 먼저 끊고 나서 끊는 게 아랫사람이 지켜야 할 예절인 것도 모르나?" - P143

고모가 훈계조로 말했다. 그도 아이들이 좀 버릇이 없다는걸 알고 있었고 그렇게 하면 버릇을 고칠 수 있겠거니 싶어 벼르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셋방살이에선 아이를 울리는 것조차 자유스럽지가 못했다. 주인 영감은 더군다나 신경질이 심해 아이들이 칭얼대는 소리만 내도 당장 방을 내놓으라고 호통을 치기 일쑤였다. 이런 눈치 저런 눈치 보느라 아이들이 끽소리만 내면 오냐오냐 하자는 대로 하거나, 돈 몇 푼 줘서 밖으로 내보내다보니 아이들 버릇이 그 모양이 됐다는 걸 집 지니고 사는 사람이 알 턱이 없었다. 그는 종길이가 칭얼대는 소리보다도 그 집 식구들의 훈계가 듣기 싫고 아니꼬워 슬그머니 아이의 손목을 잡고 삼촌네를 나왔다. 아내가 안 들어오는게 걱정스럽기도 했고 그동안에 벌써 보고 싶기도 했다.
그가 두리번대며 아파트 현관을 나서려는데 자가용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두 대가 서더니 앞차에선 중년 부부가 두 쌍 내리고, 뒤차에선 아이를 안은 젊은 부부와 청년이 내렸다. 그들은 일행인 듯 서로 어울려서 이산가족이 어쩌고, 우리 몽씨네가 어쩌고 떠드는 걸로 봐서 그를 상면하러 오는 삼촌 사촌들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모르는 척 그들과엇갈렸다. 아파트 광장을 지나 놀이터가 있는 쪽 벤치에 아내 - P184

와 아들이 꼭 붙어앉아 있었다. 그도 그 옆에 앉았다.
"놀이터에 가서 놀렴."
그는 턱으로 놀이터를 가리키며 말했지만 아이들은 시무룩하니 엄마 아빠의 옷자락을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종길이가먼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를 벤치에 길게 눕히고 무릎을 베어주었다. 아이는 두 손으로 그의 노타이 셔츠 자락을 움켜쥐고 잠이 들었다.
어느 틈에 해가 뉘엿뉘엿했다. 아내가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했다. 마주 보이는 아파트의 무수한 창 중 하나가 주황빛 화염을 내뿜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석양빛을 받아 헛되이 불타는 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해가 지자 주황빛은 우울한 잿빛으로 사위었건만도 그는 맹렬히 번지는 불꽃을 보고 있었다. 그가 보고 있는 건 이미 석양의 반사가 아니라 그의 가슴속에 가득한 분노였다.
(1984)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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