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맛없게 저녁을 먹고, 말없이 뜨악하게 앉았다가 자리에 들었다. 외풍이 센 방에선 그저 눕는 게 제일이었다. 이불 밖으로 코를 내놓으면 코끝이 시리게 외풍이 세고 방바닥이라야 겨우 냉기가 가신 방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서로를밀착시켰다. 그리고 한 이불 속에 든 남녀라면 누구나 할 수있는 짓을 하면서도 나는 이게 아닌데, 아아, 이게 아닌데 하고 생각했다. 그건 우리가 둘 다 서로 그 방면에 풋내기라는데서 오는 초조감하곤 달랐다. 나는 그 짓을 통해 따뜻하고 평화스러운 느낌이 되길 바랐지만 정반대의 느낌으로 끝나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나는 울고 싶었다. 그러나 억지로 참았다.
나는 행복했던 적에도 울기 잘하는 계집애였어서 울고 난 후에 모든 것이 씻겨내린 듯한 상쾌감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모든 것을 씻겨낸 후의 내 모습을 보는 것을 원치 않았다. - P320

나는 그를 쫓아보내고 내가 얼마나 떳떳하고 용감하게 내가난을 지켰나를 스스로 뽐내며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 방은 좀전까지의 내 방이 아니었다. 빗발로 얼룩얼룩 얼룩진 채 한쪽이 축 처진 반자, 군데군데 속살이 드러나 더러운벽지, 지퍼가 고장난 비닐 트렁크, 절뚝발이 날림 호마이카상, 제 몸보다 더 큰 배터리와 서로 결박을 짓고 있는 낡은 트랜지스터라디오, 우그러진 양은냄비와 양은식기들―, 이런것들이 어제와 똑같은 자리에 있는데도 어제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다만 무의미하고 추했다. 어제의 그것들은 서로 일사불란 나의 가난을 구성하고 있었지만, 지금 그것들은 분해되어 추한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판잣집이 헐리고 나면 판잣집을 구성했던 나무 판때기, 슬레이트, 진흙 덩이, 시멘트벽돌, 문짝들이 무의미한 쓰레깃더미가 되듯이 내 가난을 구성했던 내 살림살이들이 무의미하고 더러운 잡동사니가 되어거기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다시 수습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내 방에는 이미 가난조차 없었다. 나는 - P329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갔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분해서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러나 내 가난을, 내 가난의 의미를무슨 수로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우리 집안의 몰락의 과정을 통해 부자들이 얼마나 탐욕스러운가를 알고 있는 터였다. 아흔아홉 냥 가진 놈이 한냥을 탐내는 성미를 알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부자들이 가난을탐내리라고는 꿈에도 못 생각해본 일이었다. 그들의 빛나는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를 훔쳐다가 그들의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한다는건 미처 몰랐다.
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나는 쓰레깃더미에 쓰레기를 더하듯이 내 방 속에, 무의미한 황폐의 한가운데 몸을 던지고 뼈가 저린 추위에 온몸을 내맡겼다.
(1975) - P330

허구한 날 골목 어귀 구멍가게에서 오징어로 소주를 마시던 남자가, 휴일 날 창경원에서 아이들과 목마를 타는 나의 바로 뒤 목마를 타고 태연히 출렁이고 있는 걸 어찌 예 사로 보아넘길 수 있겠는가.
엉뚱한 사람의 이름을 대면서 집을 찾는 척 안채를 기웃대던 신사와 며칠 후 불고기판을 사라고 끈덕지게 치근대던 외무사원과 너무도 닮은 걸 어떻게,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겠는가. 내 이런 병적인 수집은 날로 늘어나 이제 불길은 결코 터무니없는 예감만으로 그칠 수 없는, 곧 당면하게 될 실제로 구성돼가고 있었다.
어느 날, 우리 식구는 차례차례로 모 정보기관에 연행돼갔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내 육감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곳에는 나의 과거와 현재 또 삼십팔 년 동안 살아오면서 맺은 온갖 인연, 지연의 말초적인 부분까지가 유리 상자의 표본처럼 질서 있게 정리돼 있었다.
하느님 맙소사, 하느님 맙소사.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았지만 이런 소리밖에 할 소리가 없었다. 나는 그때 비로소 나를중심으로 한 내 주변의 세밀한 조감도를 본 것이다. - P348

채광이 시원치 않은 음침한 방인데도 굳이 선글라스를 쓰고있는, 나를 심문하는 그 기관원의 눈앞에서 나는 자꾸 벌거벗은 듯한 착각을 느끼고 수치감으로 몸을 떨었다.
그는 냉엄하고 자신에 차 있었다. 여북해야 나는 내가 알고있는 나보다 그가 알고 있는 내가 훨씬 더 진짜 나려니 여기고있었다.
그는 내가 망각한 것까지 ㅡ6.25 때 피난 갔던 외가댁 마을이름까지 또 비교적 손이 번성한 외가의 하고 많은 사촌에서 십몇 촌까지의 친척 이름까지 낱낱이 알고 있었다.
그는 너무도 완벽히 알고 있었다. 그 앞의 내 기억력은 여명의 별들처럼 빛을 바래갔다. - P349

내 기억으론 내 외당숙이 조성구였지만 그가 조정구라니 조정구가 틀림없다 싶었다. 그가 설사 내 딸 연이가 현이라고 했다면 아마 내 딸은 현이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나는 그 앞에 그렇게 무력했고 그는 그렇게 전능했다. 그는내가 완전히 허탈 상태에 빠진 것을 확인한 후 비로소 엄숙히선언했다.
6.25 때 의용군으로 나간 오빠가 이북에서 
밀봉교육을 받고곧 남파되리라는 것이었다. 먼저 남파됐다가 체포된 간첩에 의해 확인된 정확한 정보란다.
오빠는 오면 반드시 집에 들를 테고 그러면 어떻게 하겠느 - P349

나고 그는 물었다.
"어떡하긴요. 그야 당연히 시, 신고를 하거나 자수를 시켜야죠.
나는 아주 밉고 서툴게 아양을 떨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아주머니만 믿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협조해줘서 고맙다고 덧붙였다. 나도 고맙다고서너 번 고개를 조아리고 또 한번 아양을 떨었다. 그리고 놓여났다. 남편과 어머니가 같은 꼴을 당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충청도 진천에서 거의 한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는 외가와 그 밖에 오빠가 알 만한 대소가가 다 한 번씩 그런 일을 당한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대문 소리에 가슴이 내려앉는 날이 시작되었다.
"말이 자수지, 그놈이 벌써 마흔인데 그곳에 
계집자식이 없을 리 없을 테니 이 에미 말을 들을까? 계집자식 생각이 앞설테지. 차라리 넘어오다......"
어머니는 말끝을 흐리고 눈물을 닦는다. 그러나 나는 다음말을 알고 있다. 나도 방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어머니보다 훨씬 진작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넘어오다 차라리 사살되었으면 하고.
간첩이 된 혈연과는 상봉이 몰고 올 사건과의 당면이 두려운 나머지 십팔 평 블록 집 속의 안일이 소중한 나머지, 어머 - P350

너와 나는 마녀보다도 더 잔인해졌다.
그러나 오빠가 나타나기 전에 이미 그 전능한 선글라스에의해 십팔 평 블록 집의 안일은 앗긴 거나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점점 거칠어지며 폭음이 잦아졌다. 장가를 잘못 가서 신세를 망쳤다는 것이다. 간첩 처남을 두었으니 무슨 수로 승진을바라겠느냐, 승진은커녕 언제 모가지가 날름 날아갈지 몰라전전긍긍하다가 집구석이라고 찾아들어와야 언제 또 간첩 처남이 돌아와 총을 들이댈지 모르니 술이라도 안 마시고 어쩌겠느냐고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정말 그런가? 남편은 승진은커녕 계장급이면 돌아가면서 한 번씩 자재 구입이다 시찰이다 해서 외국 바람 쐴 기회가 오게 마련인데 그런 데서까지 번번이 제외되었다. 남편은 점점 더 폭음으로 난폭해지고 술이 깼을 때의 그는 나를 대하기를성한 사람이 문둥이 보듯 증오와 연민으로 대했다. 그것은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수모였다. - P351

나는 다시 장판방에 눕는다. 한숨을 휴우 내쉰다. 그런데 이미 좀전의 편안감은 없다.
옴짝달싹할 수 없으면서도 펄펄 뛰지 않고는 또 못 배길 것같은 중압감과 동통이 여전하지 않은가? 이미 입속엔 빼버릴틀니도 없는데.
빼버릴 틀니가 없기에 그 고통은 절망적이다.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여직껏 얼마나 교묘하게 스스로를 이중 삼중으로 기만하고 있었나를.
내 아픔은 결코 틀니에서 기인한 아픔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설희 엄마가 부러워서, 이 나라와 이 나라의 풍토가 주 - P358

는 온갖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녀가 부러워서, 그녀에의선망과 질투로 그렇게도 몹시 아팠던 것이다.
나는 그런 아픔이 부끄러운 나머지 틀니의 아픔으로 삼으려들었고, 나를 내리누르는 온갖 한국적인 제약의 중압감, 마침내 이 나라를 뜨는 설희 엄마와 견주어 한층 못 견디게 느껴지는 중압감조차 틀니의 중압감으로 착각하려 들었던 것이다.
비로소 나는 내 아픔을 정직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나는 결코 내 아픔을 정직하게 신음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교하고 가벼운 틀니는 지금 손바닥에 있건만 아직도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또하나의 틀니의 중압감 밑에 옴짝달싹 못하고 놓여진 채다.
(1972) - P3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