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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관집 이층 ㅣ 창비시선 370
신경림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평점 :
이쯤에서
신경림
이쯤에서 돌아갈까보다
차를 타고 달려온 길을
터벅터벅 걸어서
보지 못한 꽃도 구경하고
듣지 못한 새소리도 들으면서
찻집도 기웃대고 술집도 들러야지
낯익은 얼굴들 나를 보고는
다들 외면하겠지
나는 노여워하지 않을 테다
너무 오래 혼자 달려왔으니까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테다
내 손에 들린 가방이 텅 비었더라도
그동안 내가 모으고 쌓은 것이
한줌의 모래밖에 안된다고
새삼 알게 되더라도
시집 [사진관집 이층(창비 2014 )]중에서]
이쯤에서, 이쯤에서, 이쯤에서를 되뇌면
행간과 자간 사이의 여백이 강렬해집니다.
감히 노시인의 곡진한 삶과 생의 관조가 엿보여서
코끝이 찡하기도 합니다.
시집[사진관집 이층]은 겨우내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 서서
한편, 한편 읽던 기억이 오롯합니다.
‘보지 못한 꽃도 구경하고 듣지 못한 새소리도 들으면서’
오래 오지 않는 버스에 손발이 시리고
늦을까봐 마음 조리다가 슬그머니 각진 모서리들이 무뎌지던 경험을 하게했지요.
시는, 시인은
그리하여 우리를 세상 안에 살게 합니다.
오늘도 생활에 지친 그대께 시 한 편의 뜨거운 위로를
**농원에서 보내드립니다. 홧팅~!!!
**농원 식구들 일동
화장실에 거는 유월의 시 중 한 편은 신경림시인의 [이쯤에서]다.
유월도 다 지났는데 이제야 옮기게 된 것은 다른 시편들이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ㅠ,ㅠ
서러운 행복과 애잔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시집이다. 지난한 삶과
인생 굴곡에 함부로 간섭하지 않는 시인은 그저, 어제와 오늘의 시
간을 사진기에 담아 굳이 흑백으로 인화해 보여준다. 마음 깊은 곳
을 꺼내놓을 때도 마찬가지다. 흑백에는 얼마나 많은 빛깔이 숨어
있는 걸까. 시인이 펼쳐주는 사진첩에는 꽃 같은 생애와는 무관할
것 같은 민중의 일상이 작약과 들국화와 쑥부쟁이와 찔레꽃과 매화
꽃과 복사꽃과 개나리꽃과 양귀비와 해바라기와 민들레로 피어 있
다. 비록 주목받은 적 없는 비일비재한 생애일지언정 느티나무나 살
구나무나 자작나무나 굴참나무나 상수리나무와 같이 저마다의 자
리에서 군소리 없이 살아가며 나이테를 늘려가고 있다. 한데, 희한
하다. 아무 색깔도 드러나지 않을 것 같은 헐거운 삶이나, 저마다 품
은 생의 빛깔이 지긋지긋하게 눈부시다. 먼 바다 건너 사람의 모습
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모두가 빈손이나 아무도 빈손이 아니다. 덤이
라는 듯 시인은 “별들이 쌔근쌔근 코 고는 소리(초원)”를 들려줄
뿐이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시집이다. 박성우시인
새로운 시집을 만나면 뒷면을 먼저 읽는다. 표4라 불리는 짧은 글에 시집 전체의 느낌이 담겨있더란 생각이 들어서다. 늘 예감은 피해가질 않아 박성우시인의 글은 이 시집에 대한 기대치를 배가시키기에 충분했다.
어떻게 그렇게 짧은 글 속에 시집을 만난 느낌을 푹 담을 수 있는지 놀랍다.
그리고 만난 첫 번째 시.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이것이
어머니가 서른해 동안 서울 살면서 오간 길이다.
약방에 들러 소화제를 사고
떡집을 지나다가 잠깐 다리쉼을 하고
동향인 언덕바지 방앗간 주인과 고향 소식을 주고받다가,
마지막엔 동태만을 파는 좌판 할머니한테 들른다.
그이 아들은 어머니의 손자와 친구여서
둘은 서로 아들 자랑 손자 자랑도 하고 험담도 하고
그러다보면 한나절이 가고,
동태 두어마리 사들고 갔던 길을 되짚어 돌아오면
어머니의 하루는 저물었다.
강남에 사는 딸과 아들한테 한번 가는 일이 없었다.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오가면서도
만나는 사람이 너무 많고
듣고 보는 일이 이렇게 많은데
더 멀리 갈 일이 무엇이냐는 것일 텐데.
그 길보다 백배 천배는 더 먼,
어머니는 돌아가셔서, 그 고향 뒷산에 가서 묻혔다.
집에서 언덕밭까지 다니던 길이 내려다보이는 곳,
마을길을 지나 신작로를 질러 개울을 건너 언덕밭까지
꽃도 구경하고 새소리도 듣고 물고기도 들여다보면서
고향살이 서른해 동안 어머니는 오직 이 길만을 오갔다.
등 너머 사는 동생한테서
놀로 오라는 간곡한 기별이 와도 가지 않았다.
이 길만 오가면서도 어머니는 아름다운 것,
신기한 것 지천으로 보았을 게다
어려서부터 집에 붙어 있지 못하고
미군 부대를 따라 떠돌기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먼 지방을 헤매기도 하면서,
어머니가 본 것 수천배 수만배를 보면서,
나는 나 혼자만 너무 많은 것을 보는 것을 죄스러워했다.
하지만 일흔이 훨씬 넘어
어머니가 다니던 그 길을 걸으면서,
약방도 떡집도 방앗간도 동태 좌판도 없어진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걸으면서,
마을길도 신작로도 개울도 없어진
고향집에서 언덕밭까지의 길을 내려다보면서,
메데진에서 디트로이트에서 이스탄불에서 끼예프에서
내가 볼 수 없는 많은 것을
어쩌면 어머니가 보고 갔다는 걸 비로소 안다.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서른해 동안 어머니가 오간 길은 이곳뿐이지만.
어머니의 뒤를 따라, 그 어머니를 따라가는 노시인의 뒤를 따라 사브작사브작 걸으면서 육성으로 시를 듣는 느낌이 물씬하다.
팔십년 대 후반이었을까? 어느 노트를 뒤지면 나올 텐데. (89년 9월 2일이었다) 시인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노트 석장을 빼곡하게 채운 내용은 ‘문학의 역할과 방법’에 관해서였다. 문학하는 사람들이 민족정신을 계속 유지 발전시켰으면 잃어버린 우리의 말이 줄어들었을 것이라면서 이문구, 박태원을 찾아서 읽고 민요. 판소리를 많이 들어라, 이고 실천과 문학이 일치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서로서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순전히 포스터만으로 찾아간 나로서는 작은 강의실이 아득하고 먹먹했지만 뿌듯하기도 한 두 시간이었다는 기억이 난다. 사인을 받자고 긴 줄 끝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의 설렘이 빛바랜 시집 ‘가난한 사랑 노래’ 만큼의 세월로 훌쩍 물러나있다.
황홀한 유폐 (幽閉)
네 눈을 통해 나는 네 내부 깊숙한 곳으로 잠입한다.
거기 푸른 숲도 있고 하얀 길도 있고 붉은 꽃밭도 있어
우리는 함께 걷기도 하고 누워 별을 보기도 하고 진종일 뒹
굴기도 한다.
그러다가 나는 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 것을 안다.
나는 놀라 문을 두드리고 발버둥치지만 너는 눈을 굳게 감
은 채 완강히 나를 일상 속으로 되돌려보내기를 거부한다.
나는 황홀하다.
유폐, 이런 幽閉(그윽할 유, 닫을 폐)라면 황홀하겠다고 중얼거리면서 출근길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는 했다. 바람이를 타지 않는 겨울동안 ‘사진관집 이층’과 ‘나무는 간다’를 들고 다녔다. 짬짬이 읽기로는 시보다 좋은 게 있을까? 시 때문에 하루는 충만했고 어떤 아침은 위로를 받았고, 어느 아침은 시린 마음이 훈훈해지기도 했다. 바람이를 타는 지금은 십분 일찍 서둘러 운동하는 사람이 가득한 수변 데크에 서서 커피 한 잔과 시 한 편을 먹는다. 가끔 안개도 덤으로 만나는데 가뭄이 길어서 저수지의 모래톱이 날마다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안개는 많은 것을 감추고 조금만 보여주어 빈 쪽배가 보이고 산 넘어가는 오솔길이 보인다 .......중략....... 이윽고 쪽배도 오솔길도 덮으면서 안개는 안개만을 보여준다 ( 강마을이 안개에 덮여)'
별
나이 들어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
하늘에 별이 보이니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고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니
사람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탁한 하늘에 별이 보인다
눈 밝아 보이지 않던 별이 보인다
저녁 산책길에는 별을 보려고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아직 보이지는 않는다. 대신 달들은 자주 따라 나선다. ‘별’과 ‘이쯤에서’사이를 고민했다. 처음엔 당연히 ‘별’이었는데 덧붙이는 글을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편에 감히 뭐라고 사족을 달 수 있겠는가. 조금 지나면 잊히겠지만 자주 읽다보니 저절로 외워진 ‘별’
안양시 비산동 489의 43
이 지번에서 아버지는 마지막 일곱해를 사셨다.
아들도 몰라보고 어데서 온 누구냐고 시도 때도 없이 물어쌓는
망령 난 구십 노모를 미워하면서,
가난한 아들한테서 나오는 몇푼 용돈을 미워하면서,
절뚝절뚝 산동네 아래 구멍가게까지 걸어내려가
주머니에 사 넣는 한갑 담배를 미워하면서,
술 취한 아들이 밤늦게 사들고 들어와
심통과 함께 들이미는 군밤을 미워하면서,
너무 반가워, 그것도 너무 반가워
말보다 먼저 나가는 야윈 손을 미워하면서,
돌아가셔도 눈물 한방울 안 보일,
남편의 미운 짓이 미워 눈물 한방울 안 보일
아내를 미워하면서,
시신을 덮은 홑이불 밖으로 나온
그의 앙상한 발을 만지며 울 막내를 미워하면서,
고향 선산까지 그를 실어갈 낡은 장의차를 미워하면서,
죽어서도 떠나지 못할 산동네를 미워하면서,
산동네를 환하게 비출 달빛을 미워하면서,
안양시 비산동 489의 43,
이 지번에서 아버지는 지금도 살고 계신다.
‘불빛’, ‘나의 마흔, 봄’, ‘안양시 비산동 489의 43’, ‘가난한 아내와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나는’ 으로 이어지는 시편들을 읽노라면 시인의 삶이 고스란히 집혀온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앙 다물고 눈에는 힘이 들어가 있다. 서산리 양수장집에서 몇 해 째 앓고 있던 아버지의 마르고 검게 바짝 탄 입술을 보고 있는 듯하다. 벌써 사십 년 전 인데 발이 쥐가 나도록 주물러도, 주물러도 ‘그만해라’ 하지 않던 아버지가 야속해서 노려보던 앙상하게 마른 등과 손 끝에 남아있는 뼈들의 기억이 삐죽빼죽 되살아난다. 아버지는 그 집에서 오년을 채우지 못했는데 일 년만 빼고는 내내 아프셨구나.
시인의 말
늙은 지금도 나는 젊은 때나 마찬가지로 많은 꿈을 꾼다.
얼마 남지 않은 내일에 대한 꿈도 꾸고 내가 사라지고 없을
세상에 대한 꿈도 꾼다. 때로는 그 꿈이 허황하게도 내 지
난 날에 대한 재구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꿈은 내게 큰 축
복이다.
시도 내게 이와 같은 것일까.
2014년 1월
시인의 꿈은 우리에게도 큰 축복이다.
시인의 다음 시집을 벌써 기다린다.
원로가 귀한 이 땅에서 우리 곁에 오래 머물러주기를 간절하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