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약속
로맹 가리 지음, 심민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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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았다.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

  오래전에 읽은 책을 다시 꺼내서 읽는다. 처음 읽었을 때 '로맹 가리'를 향한 찬탄으로 보이지 않았던 어머니의 조바심과 아들을 향한 기대치가 너무 뚜렷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여러 의미로 ‘엄마‘를 생각한다. - 근래 들어 아니 에르노의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로 오래 앓던 어머니를 보낸 작가를 읽었고, 시몬느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으로 평생을 불화한 엄마를 떠나보내는 작가의 심경을 고스란히 느꼈다.

  여러 버전의 ‘프랑스‘ 또한 생각한다. - 요즘 계속 읽은 책들을 통해 물론 소설들이긴 하지만 '에릭 제거'의 [라스트 듀얼]로 중세 프랑스를, '에밀 졸라'의 [패주]로 프로이센과 전쟁을 치르며 패배하는 1870년대의 프랑스를, [집구석들]로 그 이전 시절의 부르주아의 몰락을, '프랑스와즈 사강'의 [패배의 신호]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려는 자유 영혼들을 만나고 '아니 에르노'의 여러 권의 책을 통해 거기 사는 사람들을 관찰하게 되고 '프랑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보부아르, 여성의 탄생]으로 근 현대 프랑스의 철학이나 사회성을 엿본 것이 시작이겠지만.

  ˝끝났다. ˝로 시작하는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은 ˝나는 살아냈다. ˝로 마무리된다. 장소는 빅서 해안이고, 그 특별한 장소는 곧 어머니다. 자신이 완성한 그 모든 것이(자신까지도 포함해서), 곧 어머니였고 어머니 때문에 가능했다고 로맹 가리는 역설한다.

  영화를 보는 중에도 그렇고 책을 읽으면서도 덩달아 바쁘고 고단했다. 도무지 쉼이 없는 일상의 연속이다. 아무리 프랑스인이라고 가슴 가득 바람을 집어넣고 자세 반듯하게 기립해도 망명자의 고단함이 꾹꾹 눌러찍은 스탬프 도장 같아 짠했다. 진짜들은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진짜처럼 보여야 하는 아류들은 확인받을 무언가가 자꾸 필요한 법이다. 무엇이 그토록 프랑스인으로 되려는 이유가 궁금하기는 했다. 그러나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몽땅 내던지는 억척스럽고 강인한 우리 주변의 어머니들을 돌아보아도 그 해답은 별로 필요하지 않다. 아들을 향한 과도한 허세와 집념은 아들을 닦아세웠고 어머니가 원하는 아들이 되려고 고군분투하는 시간들로 로맹은 그의 인생을 채웠다. 어머니의 장래희망이 그의 것이 되고, 어머니의 염원이 그의 것이 되어가는 동안 그는 행복했을까? 단지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서만 살았을까? 그런 의문들도 비행 중에도, 잠을 포기하고 매일 밤 글을 쓰는 로맹의 모습은 그것이 무엇이었든 과정은 치열하고 그 치열함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무엇보다도 나 때문에 걱정은 말아라. 나는 늙은 말이야. 이제까지도 견뎠는데, 조금 더 견딜 수 있다. 모자를 벗어보렴. ˝ 나는 모자를 벗었다. 어머니는 내 이마 위에 손으로 십자 성호를 그었다.

  ˝Blagoslavliayou tiebia——너를 축복한다. ˝

  어머니는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기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것이 문제이다. 어떤 언어로 말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문으로 갔다. 우리는 다시 한번 미소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완전히 마음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

  어머니의 용기 안에 있는 어떤 것이 내게로 옮겨와, 내 안에 영원히 남았다. 지금도 어머니의 용기가 내 안에 깃들어 살며, 절망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내 인생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p282.283

  로맹은 몰랐지만 어머니는 이 작별 의식이 마지막임을 알고 있었다. 저 축복의 기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자식한테 보내는 간절한 기원임은 알겠다. 남평에서 젤로 용감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내 어머니의 용기가 내게로 옮겨오면 좋겠다. 하긴 우유부단한 노름꾼 한량을 남편으로 둔 엄마의 용기가 없었다면 일곱 명의 자식들은 굶어죽었겠지.

  단 한 번도 어머니의 자부심이 되지는 못했어도 오늘의 내 삶은 그분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나는 그분께 빚졌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부탁한 말씀은 완전히는 아니어도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지켜냈다고 오늘은 말할 수 있겠다. '약속'은 중요한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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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4-28 16: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산 님 진심 어린 솔직담백한 페이퍼 감동입니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에게 빚꾸러기이지요. 새삼 표지의 표제 서체를 다시 보게 됩니다. 불안정한,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한 자락 같은…이방인으로서 안착하기 위해 작가로서 성공한 삶이 주어지길 염원한 어머니에게 약속을 지킨 작가의 품성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도 책도 보았는데 갱스부르의 연기도 그렇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많이 읽으셨네요. 특히 아니 에르노의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관심이 갑니다. 읽어봐야겠어요. 에릭 제거의 “라스트 듀얼”도요.

2022-04-28 18:28   좋아요 0 | URL
지금 읽고 있는 호프 자런의 책에 ˝프레이야˝가 등장했는데... 여기서 뵈니 감동입니다^^ 책도 매번 새롭게 읽힌다는 걸, 깨닫고는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