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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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에서야 좀 덜하지만, 예전 뉴스에서는 해외토픽을 무척이나 많이 방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웃긴 비디오라든지, 생소한 애완동물이라던지 해외의 피부 하얀 분들이 하신 진기한 영상을 뉴스라는 이름으로 소비했던 시절이 있었다(물론 지금도 미국에서 벌어진 사건은 해외뉴스에 소개되지만, 검은대륙이라고 불리우는 아프리카에서의 사건은 그냥 사건으로 머물고만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동양이 가진 서양의 환상도 그 하나의 이유일 것이고, 노란 피부의 하얀 영혼을 가졌다고 스스로 생각한 집단의식이 그러한 선택의 기준으로 작용하기도 할터이니....오늘의 주제는 이와는 상관이 없기에 이정도에서 줄일련다). 그러한 영상들보다 조금더 뉴스 가치가 있는 것들은 속보 또는 9시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하곤 했다. 대부분 좋지 않는 사건 사고들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러한 속보성 사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이었다.

 

이 책은 그 사건의 가해자였던 딜런의 어머니가 직접 쓴 소중한 자료이다. 엄마는 그 사건 이후로 매일 스스로에게 되물었고,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엄마는 매일매일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그 답을 찾아야지만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가 있었다고 한다. 질문들은 정말이지 무시무시하기만 하다. '내가 그 아이를 잘 안다고 했는데....왜 그러한 사건이 발생했을까? 남들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양육방법이 잘못 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딜런 아이 그 자체가 살인자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 것인가? 아니면 자라면서 그러한 성향을 갖춘 것인가? 아니면 도대체 왜....왜....왜? 그리고 내가 조금만 더 잘 대해줬더라면 그러한 끔직한 사건을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질문 등등....어느 것 하나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들 뿐이다. 이러한 질문이 나를 누르고 있다면 미처버리거나 아니면 스스로의 삶에 대한 비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이 바랐을(?) 자살로 생을 정리하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스스로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거기서 어둠을 발견해 내고, 그 어둠과 끊임없이 침잠하면서 대화를 나눠야만 하는 엄마의 심정을 도저히 상상하기도 어려웠고, 공감하기도 어려웠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졌던 두개의 질문이 있기는 하다.

 

"과연 나는 내 아이를 잘 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키웠길레 범죄자로 자라게끔 했을까"라는 손쉬운(?) 비난을 퍼부어오지는 않았나라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었다.

 

뇌건강이라는 다른 단어를 사용해 가면서 딜런이라는 사랑스러운 아이와 혹은 14명을 살인하고 4명의 생명을 살려주고, 스스로의 생명을 자살로 마감한 살인-자살 케이스의 독특한 케이스가 되어버린 괴물 그 사이에 존재하는 아들을 사랑하는 엄마의 절절한 이야기가 가슴을 울렸다.

 

한길에 불과한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마도 우주를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어렵지만 소중한 일이기에 감히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총총

p162. 그 뒤 몇 달 사이에 희생가 가족에게서 편지 두 통을 받았다.

한통은 죽은 여자아이의 여동생이 쓴 것이었다. 우리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동생의 편지를 읽으며 나는 슬픔과 기쁨이 뒤범벅된 상태로 울었다.

그 후 열한 달 뒤 내 생일에, 학교 도서실에서 죽은 남자아이의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아버지는 동정을 표하며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편지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물 같았다. 우리는 변호사에게 허락을 구하고 답장을 보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제기된 소송이 많아서 직접 만날 수 있기까지는 몇 년이 더 걸렸다.

p181. (보내온 편지 가운데 하나에서) 나는 괴롭힘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엄청난 수치심을 느꼈어요. 제가 직접 경험해보아 아는데 아이들은 자기가 겪는 고통을 자기 탓으로 돌려요. 나도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건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엄마 아빠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길 바랐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면 부모님도 내가 보는 내 모습으로 나를 보시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문제가 있고 못생긴 아이로요.

나는 아직 어린 데다가 혼란스러운 상태라 나한테 가해진 일이 범죄라는 걸 인식할 수 없었어요.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괴롭힘이 더 심해지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말없이 세달 동안 고통을 겪었죠. 그러는 동안 우울증은 점점 더 심해졌고요. 자살을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타나서 정말 말 그대로 절 구해줬어요.


p262.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정리해주면 도움이 될 것 같군요.

1. 부모님이 어떻게 해서, 혹은 하지 않아서 딜런이 그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2. 딜런이 어떤 상태인지 부모님이 ‘보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딜런은 원래 비밀이 많은 아이고 자기 내면을 부모님뿐만 아니라 자기 주의 모든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감추었습니다.

3. 삶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딜런의 심리작용은 심하게 악화되어 제대로 생각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4. 이렇게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딜런은 이전 자아가 아직 남아 있어서 총격 도중에 최소 네명을 살려주었습니다.

- 피터 랭먼 박사의 이메일(2015년 2월 9일) 중에서

p440. 콜럼바인이나 버지니아테크, 샌디훅 같은 참사가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은 ‘왜?‘이다. 이 질문은 잘못된 질문일 수 있다. 나는 ‘어떻게?‘라고 묻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일이 왜 일어났는지 설명하다 보면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해결책이 없이 단순한 해답에 안주하고 만다. 이미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자살에 대한 취약성이 있는 사람만이 죽음을 삶의 고통을 끈낼 논리적 해결책으로 떠올린다. 자살은 병의 결과물인데, 마치 좌절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바라보게끔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콜럼바인에서 일어난 일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딜런은 여러 면에서 취약했다. 정서적으로 미숙하고, 우울했고, 더 심각한 기분장애나 인격장애에 시달리고 있었을 수도 있다. 톰과 나는 이런 취약점을 알아보고 폭력적 오락, 에릭과 어울리는 것 등 문제를 악화시키는 나쁜 영향을 차단하는 데 실패했다.

.....밑으로 이어서.....

.....위에서 이어서.....

‘왜‘ 대신에 ‘어떻게‘라고 물으면 자기 파괴적인 행동에 빠져드는 과정을 그 자체로 규명할 수 있다. 어떻게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치는 길에 접어들게 되는가? 어떻게 해서 뇌에서 자기통제, 자기보존, 양심 등의 도구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가? 어떻게 왜곡된 사고를 확인하고 조기에 교정할 수 있을까? 연속체의 여러 지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무엇인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어떤 환경에서든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게끔 할 수 있을까?

뇌건강을 건강 문제로 바라보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밝혀나가지 못하는 상태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까?

이런 문제들은 긴급한 관심을 요하는 문제들이다. ‘왜‘만 물으면 무기력한 상태로 남는다. ‘어떻게‘라고 물으면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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