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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최병수.김진송 지음 / 현실문화 / 2006년 4월
평점 :
'목수, 화가에게 말걸다'란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머리속에 떠오른 단어가 바로 386이었다.
386은 처음에는 최신형 컴퓨터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286과 486 사이에 존재했던 기종으로 당시에 출시되었을 때만 해도 환상(?)의 성능을 갖춘 최신 기종이었다. 물론 486이 출시되면서 구식으로 전락되긴 했지만 말이다. |
하지만 386이란 단어가 다른 뜻을 품게 되었다. 80년대 학번, 30대의 일군의 젊은 세대를 기성세대들이 구별지어 부르기 시작하면서 한 세대를 지칭하는 보통명사가 되어버렸다. (물론 이러한 구별짓기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대다수가 사용하는 그 단어의 함의에는 동의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386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목수이자 화가인 이 책의 주인공 최병수는 그러한 진퉁 386이 아니다. 그는 전수학교를 다녔을 뿐, 미술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다 연행되면서 경찰에 의해 짝퉁 386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제도권 교육을 받지 못했다 뿐인 그에게 삶의 체험을 통해 체득한 소중한 경험은 그의 미술활동의 소중한 자양분이 되어준다. 제도권 교육을 뛰쳐나가 몸뚱아리 하나로 밑바닥 세상의 각가지 직업을 몸소 겪어내온 경험이야말로 현장에서 누구에게나 통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게 해준 원천적인 힘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그 결과, 누가 봐도 피를 끓게 만들었던 "한열이를 살려내라!"라는 그림과 장산곶매 등등 80년대의 치열한 현장의 배경그림을 도맡아 제작하기에 이른다.
역사의 종언이라는 어느 학자의 건방진(?) 주장이 세상을 횡횡하고, 후일담류의 고백들이 넘쳐났던 시대를 지나, 여전히 현장을 지키고 있는 그에게서 80년대 치열했던 고민과 성찰이 어느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나아가고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어 좋다. 더불어 살아가야 함에는 인간과 자연,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다 읽은 뒤에는 목수였다가 관제 '화가'가 되어버린 최병수와 이 글을 쓴 화가였다가 '목수'가 되어버린 김진송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된 점은 덤이었다. 목수와 화가의 건강이 더욱 나아지길 바라면서 소감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