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커다란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대한 과학적인 데이터를 가지고서 답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풀어내는 저자의 능수능란한 말쏨씨를 쫒아가다보면, 우리 스스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함을 새삼 느낀다.

 

물론 이러한 성찰이 인류라는 종이 가진 무의미함을 더 풍요롭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가지고 있는 힘을 어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에 일말의 덧붙임이나 덜어내기의 역할만이라도 수행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 또한 마찬가지로 따라오고 말이다.

 

세계사를 하나로 읽어내는 것을 통사라고 한다면, 거시적인 관점과 담론에서 인류사를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새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허구의 신념을 신봉하고 그걸 지켜내기 위해 인간은 언어를 사용한 가상의 세상을 구축하고, 그걸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언어의 불확실성과 부정확함을 메꾸기(혹은 보충하기) 위한 도구 - 과학 등으로 인해 오히려 창조와 파괴가 가능한 신의 지위에 도달할 정도의 힘을 얻게된 인류의 다음행보가 스스로를 파멸하는 전주족이 된다는 이야기는 섬뜩하면서도 미래를 내다보는 기시감을 갖게하기에 충분하다 할 것이다.

 

인상깊은 구절 몇개를 기억의 창고에 올린다.

 

뱀발......도발적인 통찰과 관념의 유희가 넘치는 유쾌한 책으로 한번씩들 읽음직하다는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평이 올시다.

 

 

 

 

 

 

p170.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상상의 질서가 정확히 어떻게 삶이라는 직물 속에 짜 넣어졌는지를 설명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조직화하는 질서가 자신드르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찰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주된 요인은 세가지이다.

1. 상상의 질서는 물질세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2. 상상의 질서는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
3. 상상의 질서는 상호 주관적이다.

..... 상상의 질서를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우리가 감옥 벽을 부수고 자유를 향해 달려간다 해도, 실상은 더 큰 감옥의 더 넓은 운동장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일 뿐이다.


p178. 진화는 인간에게 축구할 능력을 부여하지 않았다. 물론 킥을 할 다리와 파울을 할 팔, 욕설을 내뱉을 입을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그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혼자 패널티킥을 연습하는 것 뿐일 것이다.

우리가 어느날 운동장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 경기를 하려면 필요한 것이 있다. 상대팀의 열한 명이 우리와 동일한 규칙을 따르며 경기를 한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열명의 팀원(이들은 전에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들과 호흡을 맞춰 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인간의 십대에게는 축구 유전자가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완전히 낯선 사람들과 게임을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들이 축구에 대해 배운 일련의 개념들이 서로 완전히 같기 때문이다. 그 개념들은 완전한 상상의 산물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것을 공유한다면 모두가 축구를 할 수 있다.


p216. 진실을 말하자면,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이라는 우리의 관념은 생물학이 아니라 기독교 신학에서 온 것이다. `자연스러움`이란 말의 신학적 의미는 `자연을 창조한 신의 뜻에 맞는다`는 뜻이다. 기독교 신학에서는 신이 인간의 몸을 창조할 때 사지와 장기가 특정 목적을 수행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사지와 장기를 신이 마음에 그렸던 목적에 맞게 사용한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활동이고, 신의 의도와 다르게 사용한다면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진화에는 목적이 없다.

장기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진화한 것이 아니며, 그 사용방식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인체의 장기 중에 그것이 원형 상태로 수억년 전 처음 등장했을 때 했던 일만을 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장기는 특정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진화하지만, 일단 존재하게 되면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방향으로도 적응할 수 있다.

p238. 중세 문화가 기사도와 기독교를 어떻게든 조화시키는 데 실패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계는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 모순은 모든 인간 문화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사실 이것은 문화의 엔진으로서, 우리 종의 창의성과 활력의 근원이기도 하다.

서로 충돌하는 두 음이 동시에 연주되면서 음악작품을 앞으로 밀고 나아가듯이, 우리의 생각과 아이디어와 가치의 불협화음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고, 재평가하고, 비판하게 만든다. 일관성을 따분한 사고의 놀이터다.

만일 긴장과 분쟁과 해결 불가능한 딜레마가 모든 문화의 향신료라면, 어떤 문화에 속한 인간이든 누구나 상반되는 신념을 지닐 것이며 서로 상충하는 가치에 의해 찢길 것이다. 이것은 모든 문화에 공통되는 핵심적 측면이기 때문에, 별도의 이름까지 있다. `인지부조화`다. 인지부조화는 흔히 인간 정신의 실패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핵심자산이다. 만일 모든 사람들에게 모순되는 신념과 가치를 품을 능력이 없었다면, 인간의 문화 자체를 건설하고 유지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래에 이어서>

<위에서 이어서>

예컨대 기독교인인 당신이 근처 모스크에 참배하러 가는 무슬림을 정말로 이해하고 싶다면, 모든 무슬림이 소중하게 여기는 순수한 가치들이 무엇인지 찾아볼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무슬림 문화에서 가장 극심한 딜레만의 현장을 찾아봐야 한다.

규칙이 서로 충돌하고 규범이 서로 난투를 벌이는 지점 말이다. 무슬림들이 두 가지 지상명제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지점이야말로 당신이 그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다.

p266. 종교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믿으라고 요구하는 반면에, 돈은 다른 사람들이 무언가를 믿는다는 사실을 믿으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철학자와 사상가와 예언자는 수천 년에 걸쳐 돈을 흉보면서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매도했다.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한편 돈은 인류가 지닌 관용성의 정점이다. 돈은 언어나 국법, 문화코드, 종교 신앙, 사회적 관습보다 더욱 마음이 열려있다. 인간이 창조한 신뢰 시스템 중 유일하게 거의 모든 문화적 간극을 메울 수 있다. 종교나 사회적 성별, 인종, 연령, 성적 지향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유일한 신뢰 시스템이기도 하다.

돈 덕분에 서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p298. 오늘날 종교는 흔히 차별과 의견충돌과 분열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개체다. 모든 사회질서와 위계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취약하게 마련이다.

사회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다.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종교는 우리의 법은 인간의 변덕의 결과가 아니라 절대적인 최고 권위자가 정해놓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러면 최소한 몇몇 근본적인 법만큼은 도전받지 않을 수 있었으므로, 사회의 안정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따라서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


p299. 종교는 광범위한 사회정치적 질서를 정당화할 능력이 있지만, 모든 종교가 그 잠재력을 작동시킨 것은 아니었다. 서로 다른 인간 집단들이 사는 광대한 영역을 자신의 가호 아래 묶어두려면, 종교에는 두 가지 추가적인 속성이 필요하다.

첫째, 언제 어디서나 진리인 보편적이고 초인적인 질서를 설파해야 한다. 둘째, 이 믿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달리 말해, 종교는 보편적이면서 선교적이어야 한다.

p342. 그렇다면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 물리학이나 경제학과 달리,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가령 유럽인이 어떻게 아프리카인을 지배하게 되었을까를 연구하면, 인종의 계층은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며 세계는 달리 배열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p386. 대부분의 과학연구에 자금이 지원되는 이유는 그 연구가 모종의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목적을 ㄷ라성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누군가 믿기 때문이다. 예컨대 16세기의 왕과 은행가 들은 세계를 누비는 지리적 탐험대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지만, 아동심리학 연구에는 한 푼도 대지 않았다.

새로운 지리적 지식이 자신들로 하여금 새로운 땅을 정복하고 무역 제죽을 건설할 수 있게 해주리라고 짐작한 데 비해 아동심리는 이해해보았자 아무런 이익이 생기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p407. 최초의 근대인은 아메리고 베스푸치였다. 그는 1499년~1504년 사이에 여러 차례 아메리카 탐험대에 참가했던 이탈리아 선원이었다. 1502년부터 1504년 사이, 그 탐험의 내용을 담은 두 건의 문서가 유럽에서 출간되었다. 저자는 베스푸치로 되어 있었다. 이들 문서의 주장에 따르면, 콜럼버스가 새로 발견한 섬들은 동아시아 연안의 섬들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대륙이었다. 성경이나 고전 지리학자나 동시대 유럽인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1507년, 이런 주장을 확고하게 믿은 존경받는 지도 제작자 마르틴 발트제뮐러는 최신판 세계지도를 출간했는데, 그것은 유럽에서 서쪽으로 항해한 선단이 착륙했던 곳을 별개의 대륙으로 표시한 최초의 지도였다. 대륙을 그려 넣은 발트제뮐러는 이름을 부여해야 했다. 그는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아메리고 베스푸치라고 잘못 알고 있던 터라, 이 대륙에 아메리고를 기리는 이름을 붙였다. 아메리카라고.

...

세계의 4분의 1에, 즉 일곱 대륙 중 두 곳에 거의 무명이던 이탈리아인의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가 유명할 이유라고는 "우리는 모른다"라고 말할 용기가 있었던 점 외에 아무것도 없다.

p463. 자본과 정치의 힘찬 포옹은 신용시장에서 크나큰 의미가 있었다. 어떤 경제가 지닌 신용의 양은 새로운 유전의 발견이나 새 기계의 발명 같은 순수한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체제 변화나 좀 더 대담한 해외정책 같은 정치적 사건들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나바리노 전투 이후 영국 자본주의자들은 해외의 위험한 거래에 돈을 투자할 용의를 더 많이 나타냈다. 외국의 채무자가 변제를 거부한다면 여왕의 군대가 돈을 받아내주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오늘날 한 나라의 신용등급이 천연자원보다 경제적 복지에 미치는 여향이 훨씬 더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용등급은 그 나라가 부채를 갚은 가능성을 가리킨다. 순수한 경제적 데어터 외에도 정치, 사회, 심지어 문화적 요인을 고려해서 매겨진다.

p464. 열렬한 자본주의자는 자본이 정치에 자유로이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하지만 정치가 자본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현명치 못한 투자를 하게 되고 그 결과 경제성장이 느려진다는 것이다.......이런 견해에 따르면, 가장 현명한 경제정책은 정치를 경제로부터 분리하고, 과세를 줄이고, 정부 규제를 최소화하며, 시장의 힘이 자유롭게 제 갈길을 가도곡 하는 것이다......가장 중요한 경제적 자원은 미래에 대한 믿음인데, 이 자원은 도둑들과 사기꾼들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당하고 있다. 시장은 그 자체만으로는 사기, 도둑질,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다. 속임수를 제재하는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집행할 경찰, 법원, 교도소를 설립하고 지원함으로써 신뢰를 보장하는 것은 정치체제가 할 일이다.

p507. 국가와 시장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접근했다. 그들은 말했다.

"개인이 되어라. 누가 되었든 네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라. 부모의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다. 네게 맞는 직업을 택하라. 그 때문에 공동체의 연장자가 눈살을 찌푸리더라도. 어디가 되었든 네가 원하는 곳에서 살아라. 그 때문에 가족 만찬에 매주 참석할 수 없게 되더라도, 당신은 더 이상 가족이나 공동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우리, 즉 국가와 시장이 당신을 돌볼 것이다. 식량과 주거, 교육과 의료, 복지와 직업을 제공할 것이다. 연금과 보험을 제공하고 당신을 보호해줄 것이다."

낭만주의 문학은 곧잘 개인을 국가와 시장을 대상으로 투쟁하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사실 이보다 진실에서 먼 이야기는 없다. 국가와 시장은 개인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이며, 개인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들 덕분이다.

p509. 현대사회에서도 핵가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국가와 시장은 경제적, 정치적 역할의 대부분을 가족에게서 뺏았으면서 일부 중요한 감정적 기능은 남겨두었다. 현대 가족은 국가와 시장이 (아직은) 제공할 수 없는 사적인 욕구를 제공하기로 되어 있다.

하지만 가족은 심지어 이 영역에서도 점점 더 많은 개입을 겪고 있다. 시장이 사람들의 연애 및 성생활 방식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가족이 중매쟁이의 역할을 맡았지만, 오늘날 연애와 성적 선호를 조종하고 그것을 얻도록 도와주는 것은 시장이다.

다만 그 비용이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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