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적, 정의를 훔치다 - 박홍규의 세계 의적 이야기
박홍규 지음 / 돌베개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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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나의 무지부터 고백해야겠다.

 의적이란 이름의 우산 아래 이렇게 많은 종류의 도적들이 앉아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깐.


 의적이라는 우산은 꽤나 방대하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황량한 벌판에도, 항해술이 미치지 못할 것 같은 대양의 한복판에서도 그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도를 펼쳐놓고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 어딘지를 살펴본다면 바로 그곳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의적들이 존재했던 곳이다. 가장 넓은 땅덩어리를 자랑하는 러시아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인도, 이탈리아의 작은 섬 시칠리아까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라면 그들이 존재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을 몰랐다는 사실은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는 경구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몰랐던 인물에 대해 알게 되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역사인물들에 대한 인식이 깨지는 기쁨이야말로 이책의 진정한 백미일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천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바르톨로뮤 로버츠 해적선의 자치규약과 영화로만 알고 있었던 풀란데비의 이야기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해골과 뼈다귀로 상징되는 해적선에서 선장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전진과 후퇴 그리고 전투 뿐이었고 나머지 소소한 것들은 전부 선원들과 함께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결정했어야 했다는 사실은 해적에 대해 알고 있던 기존의 인식이 얼마나 빈약한 것이었는가를 새삼 알게해주었다.


  의적이라는 인물과 그의 활약상을 통해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희망을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러한 의적붐이 일어나게끔 하는 부조리한 사회현실 등은 그 당시 사회를 읽어낼 수 있는 새로운 키워드로 충분하다 할 것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지구상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공간 어디에도 존재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그들에 대한 무지를 깨트리게 해준 바지런한 법학자에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 저자는 그냥 가벼운 읽을꺼리로 각 지역별로 수집한 이런저런 자료를 풀어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하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고하며 살아가야 하는 법학자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들에 대한 자료를 모아 한권의 책으로 묶어낸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저자의 말만 곧이곧대로 듣고, 이 책을 집어든다면 좀 골치 아플 것이다. 이야기와 역사를 구분하기 위해 저자는 다양한 자료들을 게걸스럽기까지 하게 모아 두었기 때문이다. 이 자료에는 책, 연구논문 그리고 최신 영화에 이르기 까지 정말로 다양하다. 책의 곳곳에서 묻어나는 정의, 요건, 효과를 논하는 법학도식 글쓰기의 유형을 벗어나지 못해 자못 딱딱한 느낌을 주는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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