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하려면 기득권과 더불어 살면서도 그 달콤함과 안일함에 젖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불의와 타협하거나 악에 가담하지 않고 살려면 강력한 내면의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 것 없이도 나를 지킬 수 있는, 고생은 되지만 마음은 편한 방법을 선택했다. 그것은 아예 기득권 근처에 가지 않는 것이다. 법학과 진학과 사법시험을 포기한 것은 악과 싸워 세상을 바꾸기 위한 결단이라기보다는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내 자신을 확실하게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성인聖人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도 나름 의미 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35쪽
'닥치는 대로' 산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원망할 수 없다. 세상은 제 갈 길을 가고, 사람들은 또 저마다 자기 삶을 살 뿐이다. 세상이, 다른 사람이 내 생각과 소망을 이해하고 존준하고 배려해준다면 고맙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세상을 비난하고 남을 원망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소극적 선택도 선택인 만큼, 성공이든 실패든 내 인생은 내 책임이다. 그 책임을 타인과 세상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 삶의 존엄과 인생의 품격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죄악과 비천함에서 자기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훌륭한 삶을 살 수 없다. 악당이나 괴물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훌륭한 것은 아니다. 무엇이 되든, 무엇을 이루든, '자기 결정권' 또는 '자유의지'를 적극적으로 행사해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는 인생을 살아야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37쪽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자기 결정권'이란 스스로 설계한 삶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의지미여 권리이다. 철학자 손 스튜어트 밀의 표현을 가져다 쓰자.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사람마다 인생을 다르게 산다. 평생 공부하는 사람,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 돈을 버는 데 골몰하는 사람, 일만하는 사람, 권력을 좇는 사람, 신을 섬기는 사람 등 백 사랑이 있으면 백 가지의 삶이 있다. 어느 것이 더 훌륭한지 가늠하는 객관적 가치는 없다.
스스로 설계하고 선택한 것이라면 어떤 삶이든 훌륭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자유의지로 만들어낸 삶이 아니면 훌륭할 수 없다. -37쪽
하지만 내가 예외적인 노인이 된다고 해도 젊은 세대에 나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연장자를 공경하는 문화가 있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의사 결정권을 쥐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말을 하지 못할 뿐, 젊은이들은 언제나 세대교체의 순간이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니 나이가 많이 들면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으면서 후배들이 지혜를 구하러 오면 조심스럽게 조언을 하는 선에 머무르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 조언을 할 때도 꼭 옳은 생각은 아닐지 모른다는 단서를 붙이면 더 좋을 것이다. 예전에 이런 생각을 부적절하고 과격하게 표현했다고 '노인 폄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마흔 살이었을 때도 쉰다섯 살이 된 지금도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하고 싶다. -77쪽
"죽을 용기가 있다면 그걸로 살아볼 일이지!" 그러나 자살ㅇ르 용기로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삶도 용기만 있다고 해서 마냥 잘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사는 데도 죽는 데도 다른 것이 있어야 한다. 삶의 그리고 죽음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다. 그것이 없으면 삶도 죽음도 주체적인 선택일 수 없다. 삶은 습관이고 죽음은 패배일 뿐이다.
그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혹시 지금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더라도 자신을 지나치게 책망할 필요는 없다. 그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평생 한번도 해보지 않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한민국 국민 여섯 가운데 하나가 1년에 한 번쯤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60대는 넷 중 하나, 70세가 넘은 노인들은 셋 중 하나가 그렇다. 생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자살을 생각한 사람의 다섯 가운데 하나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은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철학적 신존적 선택이다. 특별히 못나서 자살을 생각하는 게 아니다. -83쪽
욕먹는다고 뭐 죽는 건 아니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지냈다.
내 나름의'비법'이 있기는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거리감'이다. 세상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좋은 세상을 원하지만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을 저주하지는 않는다. 좋은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믿지는 않는다.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경우에도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내가 하는 일들은 의미가 있다고 믿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임을 인정한다. 삶이 사랑과 환희와 성취감으로 채워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좌절과 슬품, 상실과 이별 역시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요소임을 받아들인다. -88쪽
인생은 소망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냉혹한 과정인지 모른다. 원대한 꿈과 낭만적 열정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대통령, 과학자, 장군, 의사, 영화배우, 축구 선수, 교사, 판검사, 변호사, 외교관, 소설가, 기업가.... 아이들은 마음대로 꿈을 정한다. 스스로 정하든 부모가 권하든 백지에 그림 그리듯 할 수 있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그려도 좋고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다른 것을 그려도 된다. 아이들의 그림은 흔히 명예, 부, 권력, 지위를 성취하는 것과 연관되지만 청소부, 간호사, 수녀를 그리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그림은 가치와 관련된다. 지구를 깨끗이 한다든가, 아픈 사람을 도와준다든가, 슬픔에 빠진 사람을 위로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 자라고 사회를 배우면서 아이들은 알게 된다. 어떤 것은 자신의 능력과 재능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을, 다른 것은 생각했던 것만큼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또 다른 것은 자신과 맞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스무 살쯤 되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170쪽
괜찮겠다 싶은 직업 가운데 자기의 환경과 능력에 비추어 현실성이 있어 보이는 쪽으로 마음을 싣는다. 마흔 살쯤 되면 인생을 크게 바꾸는 선택은 하기 어려워진다. 마흔 이후에도 인생을 바꾸는 결단을 할 수 있다면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결단이 너무 늦는 법은 없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자신의 일상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쪽으로 직업을 바꾸는 것은 언제나 바람직하다고 본다.
직업을 잘 선택하려면 열등감을 극복행 ㅑ한다.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어디를 가든 나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 원하는 사람이 적은 직업도 있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직업도 있다. 남들이 어떤 직업을 선호하는지 의미식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고르면 된다.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해서 열등감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나 만약 내가 좋아서 선택한 그 직업이 다른 사람들도 많이들 좋아하는 것이라면 부득이 경쟁을 해야 한다. 그렇게 경쟁해서 그 직업을 가지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만사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170쪽
거기서 더 잘하기 위해서 또 경쟁해야 한다. 이 경쟁에서 뒤떨어지면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삶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악물고 있는 힘을 다해 이기는 게 정답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즐기는 게 아니라 이기기 위해 일하게 되면, 이겨도 남는게 없고 지면 최악이 된다. -171쪽
열정과 재능의 불이치는 회피하기 어려운 삶의 부조리이다. 재능이 있는 일에 열정을 느끼면 제일 좋다. 그러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이기만 하다면, 재능이 조금 부족해도 되는 만큼 하면서 살면 된다. 경쟁은 전쟁이 아니다. 져도 죽지는 않는다. 이겨서 꼭 행복한 것도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가진 것으로 인생을 산다.
가진 것이 많다고 꼭 행복한 것 아니다. 적게 가져도 행복할 수 있다. 끝없는 경쟁 속에 살아야 하지만, 즐기면서 경쟁에 임하면 이겨도 이기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174쪽
재단 업무 혁신을 추진하면서 그 사람들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다. 필요하고 옳은 일을 하는 것만 생각했을 뿐, 그 일을 친절하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뢰를 받지 못했고 일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좋은 혁신 아이디어와 제도 개선책을 만든다고 해서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층의 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고 혁신의 동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옳은 개혁도 실패한다. 훗날 열린우리당 국회의원과 참여정부 국무위원으로 일하면서 나는 똑같은 실패를 다시 겪었다. -182쪽
제대로 정치를 하려면 가치관이 뚜렷하고, 정책에 밝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기본일 뿐이다. 정치를 잘하려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자기의 마음을 잘 다스려 다른 사람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모아 함께 사회적 선을 이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옳은 일을 하려고 했지만 폭넓은 공감과 신뢰를 얻지 못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두가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로서는 무엇보다 먼저 내 잘못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은 내 마음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왕왕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해 적대감을 느꼈다. 남이 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주기를 원하면서도 남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적게 했다. 그렇게 하면 소통과 협력을 이루어내기 어렵다. 어디 정치만 그렇겠는가? 사업을 하든, 기업이나 정부에서 조직 생활을 하든, 일을 잘 하려면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뜻이 아무리 옳아도 사람을 얻지 못하면 그 뜻을 이룰 수 없다. -185쪽
정치는 본질적으로 이상과 비전, 정책과 아이디어 경쟁이다. 그러나 단지 그것뿐인 것은 아니다. 정치는 열정과 탐욕, 소망과 분노, 살수와 암수 맞부딪치는 권력투쟁이기도 하다. '건너온 다리를 불살라 버렸다'고는 하지만, 과연 권력투쟁으로서의 정치가 내포한 비루함과 야수성을 인내하고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정치는 사회적 연대의 가장 차원 높은 형식이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제대로 하려면, 그것도 그냥 국회의원 정도가 되는 게 아니라 대통령 자리를 목표로 삼는다면, 권력투쟁을 놀이처럼 즐거운 일로 여기면서 그 안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인생을 통째로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높은 지지율은 이런 것과는 관계가 없다. 그것은 그저 인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지표일 뿐이다. 그런데 인기란 아침 안개와 같아서 저 혼자서 밀려왔다가 때가 되면 저 혼자 녹아 없어진다. '좋은 생각'과 '착한 이미지'로 인기를 잠시 붙잡아 둘 수는 있지만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운영할 수 있는 세력을 구축할 수는 없다.
-189쪽
아이를 사랑해주고 부모 스스로 좋은 사람을 사는 것, 그것이 양육의 핵심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의도적으로 가르치고 보여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것까지 느끼고 이해한다. 부모의 꿈, 정서, 가치관, 감정, 부모가 외부 환경의 자극에 대응하는 방식. 이 모든 것이 아이의 뇌에 영향을 준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도를 닦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두 가지만 이야기하다. 따지고 드는 아이를 존중해야 한다. 공정성에 대한 인식이 일찍 발달하는 아이일수록 지적 재능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회성은 가장 높이 발달한 생물학적 재능이다. 끌없이 "왜?"를 쏟아내는 아이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더 창의적인 아이들은 덜 창의적인 아이들보다 부모를 더 힘들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기존의 규범으로 길들이면 아이는 호기심을 버리고 창의적이기를 그만둔다. 어떤 부모도 자기에게 없는 것을 자식에게 줄 수는 없다. 자녀에 대한 사랑과 훌륭한 삶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 부모만이 그것을 자녀에게 줄 수 있다. -216쪽
최악의 훈육 방법은 아이를 때리는 것이다. 폭력은 어떤 것이든 정서 발달을 왜곡한다. 승복할 수 없는 폭력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는 경험은 소통과 공감 능력 발달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언어로 대화하는 것이다. 사람은 언어로만 소통하느 ㄴ존재가 아니지만 소통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언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말을 하기 전에 아이들은 먼저 말을 알아듣는다. 뱃속에 들어 있을 때부터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완전한 문장으로 아이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아이의 뇌 속에 음성 정보를 처리하는 뉴런과 신경세포가 제대로 자리 잡게 하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갓난아이 때부터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집중해서 듣는 아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노력애햐 한다. 아이를 씻길 때도 지금 목욕을 할 것인지, 아니면 조금 더 놀다가 할 것인지를 물어보는 게 좋다. 어느 쪽이든 큰 문제가 없는 경우 아이의 선택의 존중해주어야 한다. -216쪽
자년를 사랑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아이들 스스로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설계하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살게 하는 것이다. 어떤 인생을 선택하든 믿고 격려하면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조금 도와주는 것이다.
많이 사랑하고 그 사랑을 최대한 표현함으로써 작은 일에도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제대로 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나 스스로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사람은 아주 작은 일에도 쉽게 행복을 느끼게 된다. -218쪽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들은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일까? 왜 일부 사람들은 진보적인 것일까?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일을 하지만, 진보주의 그 자체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임이 확실하다. 크게든 작게든, 급격하든 점진적이든 생활환경은 늘 변화한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행동 방식이 필요하다.
모두가 예전의 상황에 맞는 익숙한 생각과 행동만 한다면 개체뿐만 아니라 집단도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해 절멸할 수 있다. 모두는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새로운 생각을 하고 새로운 행동을 해야만 한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은 인간의 일반 지능을 진화시켰다. 이것이 일반 지능의 발전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이다.
-256쪽
만약 그렇다면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럽고 진화적으로 새로운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일반 지능과 관계가 있어야 한다. '사바나-IQ 상호작용 가설"이라는 것이 둘의 관계를 설명해 준다. 이 가설에 따르면 지능이 낮은 개인은 지능이 높은 개인보다 조상의 환경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진화적으로 새로운 존재와 상황을 이히해고 처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연애, 출산, 육아, 긱 찾기처럼 진화적으로 전혀 새롭지 않은 일을 하는 능력에는 일반 지능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실증적 연구가 '사바나-IQ 상호작용 가설'을 뒷받침한다. 나이, 인종, 교육수준, 소득수준, 종교 등의 영향을 배재할 경우 IQ가 높은 청년일수록 진보 성향이 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었을 때의 정치적 진보성과 청소년기의 IQ는 단조증가 관계를 나타냈다. 강한 진보적 정체성을 가진 미국 시민은 강한 보수적 정체성을 가진 시민보다 평균적으로 11점 이상 청소년기의 IQ가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정치적 이념에 대한 지능의 형향력은 성이나 인종보다 두 배나 강력하다. -256쪽
운동도 정치도 하다 보면 성과를 얻기도 하고 얻지 못하기도 한다.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경우에도 참여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훌륭한 일을 하면서 훌륭하게 살고 있다는 확신을 얻는다면 실패는 아니다. 그런 노력이 쌓여 언젠가는 승리를 손에 쥘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여하는 사람의 행위를 비루하게 만든다면 그런 운동, 그런 정치, 그런 정당은 목표를 달성하는 경우에도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 일시적인 성과를 거둔다 해도 오래 가지 못한다. 민족 자주, 한반도 평화, 민중 생존권 보장 등 그 어떤 아름다운 이념과 목표도 그 운동 속에서 사람을 더 훌륭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의마가 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훌륭한 운동이 아니다. 그런 운동은 사람을 이념의 도구로 만들 뿐이다.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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