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안수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4월
구판절판


자녀를 공부시켜 가난을 벗는 시절이 있었다. 그 모형은 어느덧 과거형이다.

지난해 전국 초,중,고 학생의 75.1%가 사교육을 받았다. 이들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31만원이다. 성적이 상위 10%인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87.7%에 육박한다. 하위 20%는 절반이 사교육을 못 받았다.

갈수록 계층 간의 벽이 견고해진다. 식당 아줌마의 아들딸들이 다시 식당일을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녀가 다시 비정규직 노동의 수렁에 빠진다.

가난한 중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낙오'하지 않고 '탈출'할 수 있을까? 약해지는 육신을 고된 노동은 봐주지 않는다.
-58쪽

빈곤을 쳇바퀴 도는 '뫼비우스의 띠'는 영철의 가족에서 그치지 않는다. 오직 한달 동안 A마트에서 지냈을 뿐인데도 나는 그런 이야기를 끝없이 들었다. 끝없이 여기에 적을 수 있다. 뫼비우스의 띠 위에서면 오직 한가지 법칙만 통한다.

미래는 과거에 의해 무력화된다.
-122쪽

식약청 단속반의 현미경에 잡힌 그 미생물은 돼지를 기른 사람, 도축한 사람, 포장한 사람, 보관한 사람, 그리고 진열한 사람을 거치며 증식했을 것이다. 포장지에 찍힌 유통기한에 따라, 정해진 보관온도 아래, 밀봉된 돼지고기를 목이 쉬도록 구워가며 팔았을 뿐인 마트 노동자에게 그 일은 불가항력이다.

식약청이 제 할 일을 하고, 업주가 제 사업의 활로를 찾는 동안, 마트 노동자는 제 하던 일을 통째로 잃어버린다. 영업정지 처분은 먹이 사슬을 따라 마트 노동자의 실직으로 가중처벌된다. 식약청 단속으로 문을 닫게 된 대형마트는 지끔껏 없었다.

그런데 오늘 집어간 돼지고기에서 대장균과 타르와 아질산염이 검출되면, 내 이익 누가 지켜줄까?

......

투명인간이 되어 마트에서 일한 뒤에야 나는 의자가 절실한 더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몸으로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129쪽

'노동'의 목적이 노동이 될 순 없다. 그러나 종종 헷갈린다. 밤 9시 야근을 마치고 집에 가면 항상 10가 넘어싿. 들어가면 대체 할 수 있는게 없다. 8시간 뒤엔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 말곤 없다.

막장 노동자의 여가가 더 적은 이유가 있다. 대체로 일터가 멀다. 공장은 더 값싼 부지를 찾아 점점 더 멀리 간다. 본래 내가 사는 경기 성남의 공단 역시 도시의 가장자리에 있어, 거주 시민들도 보통 40~50분 통근 시간을 감수해야 했으나 이마저도 하나둘 근처 광주로 이전했다. -272쪽

밤 9시 퇴근을 알리는 종이 친다. 여기저기서 "휴~" 소리가 낮게 퍼진다. 오늘 산 자는 내일 다시 온다. 일을 그만둘 즈음 새벽은 차가와졌다.

출근길마다 보았다. 새벽이 사람을 깨우지 않는다. 사람이 언제나 새벽을 깨운다. 그런데도 악몽을 좀체 깨지질 않는다.

어떻게 해야할까. 답을 알수 없으나 그 몫은 위정자에 달렸고 경영진에 달렸으며, 나머지가 노동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273쪽

독자 : 많은 이들이 그 구조를 넘어서는 길을 찾아주기를 기대하더라.

안수찬 : 기사에 등장하는 노동자들을 보고 '이렇게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생각을 오래 품다 보면, 막상 그렇게 살게 되었을 때 그 부당함을 절감하고 행동하게 될 것이다. 대안을 보고 싶다는 독자도 있었는데, 굳이 변명하자면, 교육.빈곤 대물림.일자리.실업복지.주택.육아.의료.노조 등을 한 두름에 꿰뚫을 수 있는 간단하고 강력한 대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문제를 단순화해 풀어나가는 건 오히려 무책임하다는 생각이다.

임인택 : 쉬운 완결을 제시받고 위로받으려는 일종의 '대안 콤플렉스'가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내가 일한 공장에는 오후 5시 30분 때때로 퇴근버스가 없었다. 대안은 '퇴근버스를 만들라'다. 그런 걸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노동 OTL'자체가 1차적인 대안이다.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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