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이건희 지음 / 동아일보사 / 1997년 11월
절판


성공을 거두었던 수많은 변화들의 공통점은 세 가지다. 나는 지금까지 이 공통점을 올바른 변화의 계명으로 삼아 기업 경영에 적용하려 애써왔다.

첫째, 모든 변화는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동심원의 파문이 처음에는 작지만 점점 커져 호수 전체로 확산돼 나가는 것과 같이 모든 변화의 원점에는 나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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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변화' '너부터 변화'는 비록 획 하나의 차이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전부와 전무의 차이인 것이다.
-54쪽

둘째, 변화의 방향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큰 배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노를 저의면 배는 꼼작도 하지 않을 것이다. 변화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변화가 가져올지도 모를 불편, 불이익에 저항하는 이기주의 전형적인 에가 바로 '총론 찬성, 각론 반대'다. 그러므로 변화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공감대를 확보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시적인 관점에 입각하여 부분 최적화에 집착하게 되고 그 결과 나갈 길을 찾지 못한 채 미로 속을 열심히 뒤어다니기만 하는 모르모트와 같은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변화의 방향을 올바르게 제시하고 속도를 조절하는 '변화의 관제탑'으로서 사회 지도층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꺼번에 모든 변화를 이루려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보아도 혁명이 성공한 예는 거의 없다. 아무리 실력있는 산악인도 처음부터 에베레스트를 오르지는 않는다. 인수봉을 비롯하여 비교적 덜 험난한 국내의 산악을 두루 거친 후에야 티베트로 향한다. -55쪽

변화란 쉬운 일, 간단한 일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라가야 한다. 작은 변화라도 지속적으로 실천하여 변화가 가져다 주는 좋은 맛을 느껴 보고, 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55쪽

소를 기르게 되면 사료 생산과 저장법뿐 아니라 우생학, 수의학 등이 발달하면서 인간과 동물의 공생이라는 공동체 원리가 사회 전반에 자리잡았을 것이다. 더구나 소를 많이 기르려면 사람들이 말을 타게 되고 쉴 곳을 위해 그늘이 필요하니 식목도 하게 되었을 것이다. 말과 소가 소득을 가져와 목축업이 부흥할 뿐만 아니라 전시에는 기마병을 만들어서 전투력이 높아졌을 것이다. -80쪽

사회생활에서도 남보다 바쁘게 열심히 일하면서도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와 반대로 성공한 사람들은 대체로 여유가 많아 보이는데 거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한가해 보이지만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당장 시급하지 않더라도 사전에 준비해두는 습관이 있다. -85쪽

나는 자동차 사업 진출을 두고 오랫동안 고심했다. 반도체를 비롯한 기존 사업들이 잘되고 있는데 왜 어려운 사업을 새로 시작하려 하느냐는 반대도 있었고, 막대한 투자에 따른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더욱이 기존 업체들이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 진출하려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는데다, 사회 일각에서는 자동차 사업이 마치 큰 이권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사실 나 개인이나 삼성의 처지만 생각하면 자동차 사업 때문에 고생을 사서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 경제구조와 자동차 산업 수준을 볼 때, 누군가는 반드시 새로 참여해서 그 수준을 한 차원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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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교육,지식,기술 수준을 볼 때 우리나라가 집중해서 육성할 전략분야가 전자,반도체,자동차,조선, 철강 등 중화학공업이다. 이들 산업의 기초가 되는 것이 기계 공업이고, 기계 공업의 꽃이 바로 자동차 산업이다. 자동차 산업이 발달하면 공작기계, 산업전자, 제어기술이 발전해 전체 산업의 기술 수준이 향상되고, 국가 경쟁력이 한 단계 높아질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90쪽

나는 이렇듯 국가적 차원에서 자동차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굳히면서도 과연 삼성이 해낼 수 있을지를 곰곰이 따져 보았다.

자동차에서 전장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므로 삼성이 그간 축적해 온 전자 분야의 기술력을 성능 차별화의 포인트로 삼고, 전세계에 걸친 수출망과 관련 분야에서 폭넓게 확보한 내부의 기술인력을 제대로 활용하면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삼성이 이러한 기술력과 인력을 바탕으로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면, 기존 업계에 선의의 자극을 주어서 국내 기술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소비자 복지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렇게 나름대로 21세기 국가 장래를 위해 애국심으로 시작했던 자동차 사업이 세간에서 정경 유착이니 개인적 취미에서 시작한 것이니 하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자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90쪽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산품에 대한 과보호가 아니라 소비자들의 엄정한 평가와 까다로운 품질 개선 요구, 그리고 이에 대응하려는 기업들의 진지한 노력이다. 까다로운 소비자가 있어야 일류 품질과 제품이 만들어지는 법이다.

일류제품은 불량률이 적다. 가령 전자산업의 경우 불량률이 3%라면 그 회사는 망한다. 그래서 나는 삼성 임직원들에게 "불량은 암이다. 불량은 악의 근원이다."라고 되뇌면서 일하라고 강조한다.

혼다가 미국에서 생산된 차를 일본으로 역수출 할 때의 일이다. 미국의 품질 기준에 합격했던 차가 일본에서는 소비자들의 클레임으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그 이유는 문을 열었을 때에만 보이는 문 안쪽에 묻은 먼지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본의 소비자들은 국삼품을 구입해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기업이 품질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99쪽

국제화에 제대로 적응하려면 현지인과 골프도 쳐야 하고, 술도 마셔야 하고, 식사 초대를 하거나 초대에 응하기도 해야 한다. 사소한 에티켓을 소홀히 해서 중요한 상담을 망쳤다면 국제화된 기업이라고 할 수 없다.
-101쪽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복잡한 문제일수록 단순화해 보려고 한다. 두 기술을 두고 단순화해 보니 스택은 회로를 고층으로 쌓는 것이고, 트렌치는 지하로 파들어가는 식이었다. 지하를 파는 것보다 위로 쌓아 올리는 것이 더 수월하고 문제가 생겨도 쉽게 고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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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5라인을 8인치 웨이퍼 양산 라인으로 결정한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반도체 웨이퍼는 6인치가 세계 표준이었다. 면적은 제곱으로 증가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6인치와 8인치는 생산량에서 두 배 정도의 차이가 난다. 그것을 알면서도 기술적인 위험부담 때문에 누구도 8인치를 선택하지 못했다. ...... 월반하지 않으면 영원히 기술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하리라고 판단했다.
-133쪽

정보화 시대에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는 생활 주변의 사소한 것이라도 챙겨서 기록하는 습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선 주부들은 가계부라도 매일 매일 꼼꼼히 적어보자.

직장인들은 타임 다이어리를 작성해 1년쯤 뒤 평가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매년 정월 초에는 지난해 나의 스케줄에 대한 통계를 내보곤 한다. 해외여행 몇건, 거래서 면단 몇건, 경영회의 몇건, 골프회동 몇건 등 지난해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일별하기만 해도 금년엔 무엇을 해야겠다는 큰 그림이 머리에 들어온다.
-136쪽

정보사회는 서로 나눔으로써 득이 되는 '상생의 사회'라고 할수 있다.

예를 들어, 친구 네 사람이 각자 100원씩 갖고 카드게임을 한다면 전체 파이는 400원에서 한푼도 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 읽고 따는 셈이 되지만, 100원짜리 정보를 네 사람이 서로 나누는 게임을 생각하면 네 사람 모두 자기 정보를 잃지 않고 다른 사람의 정보를 고스란히 자기 것으로 할 수 있으므로 각자가 300원씩, 전체적으로는 1200원이라는 파이의 증가를 가져올 수 있다.

이와 같이 앞으로의 정보사회에서는 갈등과 대립이 지양되면서, 나눔과 상생의 정신이 공동체의 기본 가치관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또한 경제적 가치관도 산업사회에서는 규모의 경제에 입각하여 싸게 많이 만드는 양적 사고, 효율 중심의 생산성 논리가 중요시되었지만, 앞으로는 고객의 만족도를 높여 주는 효과 중심의 질적 사고와 서로의 장점이 합쳐지면서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복합화 논리가 중요시될 것이다. -153쪽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어떤 방법으로 기술을 도입하든 명심해야 할 것은, 그저 돈 주고 물건 사오듯 할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진지한 자세와 열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울 때에는 머리를 숙여서 겸손하게 가능한 최대치를 끌어낼 수 있도록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배우는 처이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 뛰지 않거나, 심지어 귀찮아하며 '내가 오너인데'하는 값싼 자존심만 내세운다면 그는 앞선 기술을 가질 자격이 없다. -172쪽

애벌레 시절의 마지막 무렵, 그러니까 와세다 대학에 다니다가 방학을 맞아 돌아왔을 때, 그는 다시 한번 나(홍사덕)의 기를 죽여 놓고 갔다. 손수 운전으로 드라이브를 즐기던 우리가 제2한강교(지금의 양화대교)에 닿았을 때다.

"이게 우리 기술로 만든 다리다. 대단하재?"
"이눔아,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봐라. 한강을 장차 통일되면 화물선이 다닐 강이다. 다리 한복판 교각은 좀 길게 잡았어야 할 것 아이가?"

실로 괴이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 홍사덕 장관이 본 이건희 - -238쪽

지름 100cm짜리 파이프의 중간 부분이 50cm로 줄어 있으면 그 파이프는 결국 50cm짜리 파이프 구실밖에 할 수 없다. 또 총연장 10km인 10차선 도로에서 어느 부분이 2차선으로 줄어들면 그 도로 역시 2차선 도로에 지나지 않는다.

파이프는 입구에서 끝 부분까지 지름이 일정해야지, 어느 한 부분이라도 좁아지면 바로 그 좁아진 부분을 기준으로 이 파이프 용량의 최대치가 결정된다. 이 예를 기업 경영에 비추어 보면, 경영관리, 생산, 유통, 판매 등 모든 부문의 최저 기준을 고르게 높여야 전체 수준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265쪽

미국에서 신약을 시판하려면 FDA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매우 길고 복잡하다. 그래서 미국의 제약업체들은 신약 개발이 완료된 후에 승인을 신청하는 게 아니라, 단계마다 결과를 FDA에 보고하여 합격하면 개발을 계속하고 불합격하면 거기서 중단해버린다. 기업 내부를 병렬식으로 통한하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FDA라는 외부 기관의 판정까지도 연구개발 프로세스에 통합시킨다.
-270쪽

21세기 미래 경영자가 갖춰야 할 조건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사물과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보면서 미래 변화에 대한 통찰력과 직관으로 기회를 선점하는 전략을 창조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관리의 실패는 언제라도 회복이 가능하지만 방향을 잘못 잡은 전략의 실패는 회사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현상에 안주하기보다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변화 추구형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는 변화 기피형 경영자가 더 많다. 스스로 혁신에 앞장서기는커녕 부하기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까지도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좌절시킨다. 결국 부하들은 지시받은 일에만 매달리고 조직 전체적으로는 나 몰라라 하는 분위기가 만연된다.

또한 위기와 기회가 교차하는 환경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경영자 스스로가 고감도, 고부가가치 정보의 수.발신자 역할을 해야 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남보다 많은 정보를 먼저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해답을 알고 시험을 치르는 것과 같다.

-276쪽

마지막으로 미래의 경영자는 비좁은 국내시장에 얽매이기보다 넓은 세게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적 감각은 미래의 경영자가 갖추어야 할 필수 요건이다.

나는 21세기를 대비하는 경영자라면 최소한 지혜, 혁신, 정보력, 국제감각의 네 가지 조건은 꼭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276쪽

18만명이 하루 1시간식 출퇴근 시간을 절약하면 국가 전체에 이득이 된다. 또 개개인은 어느 분야든지 하루 1시간씩 10년만 계속하면 그 방면에 도사가 될 것이다. -277쪽

장수기업으로 가는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내가 보기에 다음 세 가지를 갖추면 최소한 기업 수명 30년설은 깨뜨릴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위기의식이 높아야 한다. 진정한 위기의식은 비록 사업이 잘되고 업계 선두의 위치에 있을 때라도 항시 앞날을 걱정하는 자세다. 경영난에 빠져 부도를 걱정하는 것은 공포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위기의식을 가지려면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파악하고 그 속에서 우리 기업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변화에 대응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우선 조직과 사업에 있어서 필요없는 군더더기를 없애야 한다. 아무리 효율적인 조직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몸이 불면서 관료주의가 된다. 이런 불필요한 군살을 줄이고 그 힘을 미래 변신 쪽으로 돌려야 한다.
-283쪽

다음 단계로는 장기적,미래지향적으로 사업을 경영해야 한다. 단기적인 안목으로 사업하다 보면 변화하는 환경에 시달려 결국은 탈진하고 만다. 시류에 편승하여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업의 본질을 차근차근 구현해 나아가는 경영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율과 창의가 발휘되는 기업문화가 필요하다. 기업은 성장할수록 중앙집권적으로 되기 쉬운 속성이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결코 창조적 변화가 생겨날 수 없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생정보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한 조직만이 미래를 얻을 수 있다.
-283쪽

선친은 사업 성공의 요체로 운,근,둔의 세 가지를 꼽으셨다. 여기에 내 나름의 해석을 보탠다면 먼저 운이란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데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운의 이면에는 남모를 고뇌와 노력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근이란 고객의 신뢰를 얻어내기 위한 끈기와 집념을 의미하고, 둔은 잔꾀를 부리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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