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사세요? - 부동산에 저당 잡힌 우리 시대 집 이야기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지음 / 사계절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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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건설사들은 소비자보다는 공급자 위주의 제도인 아파트 선양제를 활용해 막대한 수익을 남겨 왔다. 아파트를 다 짓기도 전에 분양하면서 분양가를 주변 시세에 맞춰 수익을 남긴다. 택지는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구입하고, 건축비는 분양대금을 미리 받아 충당한다. 여기에다 공사기간에 발생하는 세금과 이자는 모두 분양가에 반영한다. 선분양제는 원래 '분양가 규제'와 맞물려야 제 기능을 한다. 하지만 정부가 1998년 외환위기 직후에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수도권의 분양가를 완전 자율화 하면서 선분양제를 그대로 유지시켜 건설사들만 이중 삼중의 특혜를 누리는 기형적인 제도가 되었다.

건설사들은 택지비와 건축비, 산접비용(설계,감리비,보상비 등)을 부풀려 분양가를 높이고, 이윤을 축소해 신고하는 행위를 버젓이 해왔다. 경실련이 2006년 화성 동탄 신도시의 건설비용과 이윤을 분석해보니 건설업체들은 택지비를 거짓 신고하고 건축비와 간접비를 부풀려 숨김으로써 얻은 이익 규모가 1조 2229억원에 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분양가도 원가보다 20% 높게 책정했다.
-90쪽

도심의 초고층 주택은 서울 주변의 '베드타운'형성에 따른 도심공동화, 수도권 출퇴근난 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외환 위기를 거치며 분양가 자율화, 양도세 감면 등 규제 완화에 따라 건설사들은 용적률 1000%에 달하는 초고층 주상복합을 지을 수 있었다. 그 후 높아봐야 15층~20층이던 아파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김홍식 명지대 교수(건축학과)는 "서민 주택은 지어봐야 큰 이익이 남지 않으므로 대기업들이 고급 아파트와 초고층 건축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했다"며 "초고층 건축을 허가받아 변두리 땅을 상업지구로 바꾸면 용적률을 200%에서 800%까지 올릴 수 있으니 땅값으로만 이미 네배의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사들은 초고층 건물을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시켜 이미지 광고 효과를 얻고, 주택가격의 '프리미엄'도 챙길 수 있다. 경기 일산에 위치한 59층짜리 '두산 위브더제니스'가 "도곡동 타워팰리스, 목동 하이페리온에 이은 수도권 3대 랜드마크 주상복합단지"라고 선전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고층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이 '사회 상위계층'인 것 같은 환상을 생산하는 것이다.
-101쪽

우리 사회에서 '주택정책'은 늘 표심을 좌지우지하는 현안이다. 이런 독특한 현상에 대해 프랑스 지리학자ㄴ인 발레릴 줄레조는 저서 [아파트 공화국]에서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은 인구 증가를 관리하고 봉급생활자들이 경제발전에 헌실할 수 있도록 가격이 통제된 아파트를 대량 공급했다. 중간계급들을 대단지 아파트로 결집시키고, 이들에게 주택 소유와 자산소득 증가라는 혜택을 줌으로써 정치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주택개갑 렂ㅇ책은 '어떤 사화를 만들 것인가'보다 '얼마만큼 이익을 창출할 것인가'에 집중했다. 2003년에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상 80%인 용적률을 250%까지 상향 조정했고, 2006년에는 '뉴타운 특별법인 '도시 재정비 촉진 특별법'이 시행에 들어가 재개발로 5~7배 이익을 남길 수 있는 틀이 마련되었다. 이법에 따르면, 강남의 경우 재건축할 경우 일부 용지를 임대주택 용도로 환수하지만, 강북의 경우 호히려 국공유지를 얹어주고 용적률도 상향 조정해 준다. 여기에다 기반시설 개발까지 국가가 맡아줌으로써 재건축에 따른 이익을 한껏 부풀렸다.
-119쪽

'집'은 작게는 개인의 사적 공간이지만 크게 보면 주택정책을 통해 자본주의 국가가 노동자인 구성원에게 갖는 가치관이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전상인 서울대 교수(환경대학원)는 "주택정책은 기본적으로 체제의 안정과 재생산과 관련하여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갖는다"며 "아파트 공급 위주로 전개된 우리나라의 주택정책 또한 이런 시각에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저서 [아파트에 미치다]를 통해 지적한 바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열악한 주거는 노동자의 생산성을 떨어뜨려 장기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득이 되지 않는다. 또한 정치적으로 볼 때에는 1980년대 이후처럼 중간계급이 국가 주도의 주택공급 정책에 따라 아파트를 보유하게 됨으로써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지지를 유지하게 되는 것처럼, 정치체제 유지 수단의 성격을 갖기도 한다.
-122쪽

최은영은 공저 [주거 신분사회]에서 "전세금의 레버리지 역할은 양질의 주택공급 부족과 주택가격의 급상승을 수차례 경험한 사람들이 전세를 끼고 주택을 구입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면서 "투자자의 경우 전세금을 활용해 주택 한 채 값으로 여러 채를 구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다주택자가 양산될 수 있는 조건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전세제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집을 구매하고도 그 집을 사용하지 않는 이들이 꾸준히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기 때문에 안정적인 민간 임대로 기능하기에는 한계를 갖는다.

또 거주기간이 2년밖에 보장되지 않는 민간 부분의 전세 제도는 임대차보호법이 있어도 실제 집주인과 관계에서 세입자에게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임대료를 수천만원씩 올리거나 집을 빼달라는 요구 앞에 속수무책이다.
-127쪽

'주택분양 제도'는 ㅈ비이 투기의 대상으로 자리잡게 된 구조적 계기로 꼽힌다. 한국도시연구소 서종균 책임연구원은 "1970년대 대기업들이 주택을 짓기도 전에 다 할 수 있게 함으로써 대량 공급의 조건을 만들어준 것이 분양제도의 탄생"이라며 "일단 추택분양을 받으면 집값이 올라 목돈을 챙길 수 있어 사람들이 줄을 서게되니 사회 전체적으로 굉장히 비합리적인 구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진 것일까. 아파트 분양은 공공택지 및 신도시 개발사업을 통해서 이뤄져왔다. 이 과정에서 주택계획이 발표되는 시점부터 해당 땅값이 급격하게 상승하는데, 이렇게 오른 땅값은 기존 땅 주인과 정보를 입수해 투기에 뛰어든 이들이 토지 보상을 통해 챙기게 된다. 당초 신규 분양주택은 기존 주택보다 통상 낮은 가격에 판매되었지만 그나마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주택 규제가 완화된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건설업체들이 각종 명목으로 부풀린 건축비만큼 분양가가 올라 주택 소비자들이 덤터기를 쓰게 되는 상황이다. 결국 집값은 오르고, 집값에 바탕한 주택임대료 역시 오르면서 무주택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130쪽

재개발 사업단계별 부패,갈등 취약 지점

예정구역 지정 - 건설업체 개입, OS요원 동원해 동의서 매수, 지분쪼개기 조장

정비구역 지정

추진위 구성 - 서면동의 위주의 주민총회, 조합설립 동의서 부실, 비대위 난립

조합설립

사업시행 인가 - 시공사 선정 과열 경재

관리처분 인가 - 세입자 보상 갈등 및 강제 퇴거, 추가 부담금 갈등

철거 및 착공 - 공사비 증액, 정보 미공개에 따른 갈등 발생

준공

-146쪽

우리의 대도시에는 사람이 소통하는 공원과 광장 등의 공공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시민들은 돈을 주고 사유화된 공간 서비스를 소비하게 된다. 찜질방, 노래방, 카페 등의 각종 '방'의 문화가 한국에서 성행하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밀도 높은 도시 생활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원래는 정부 등 공공 영역에서 했어야 하는 그 공급을 민간이 유로로 제공하는 민간이 자신의 비용을 내고 이용하는 것이다.

전진삼 건축평론가는 "공공 공간이 부족한 도시일수록 더 좁고 갑갑하게 느껴져셔 개인이 더 넓은 사적 공간, 더 넓은 집을 욕망하도록 만든다"며 "서구의 경우 공공 공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집이 다소 좁다 하더라도 공원과 광장, 박물관 등 집 밖에 너른 공간을 통해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한다.

또한 공공 공간을 가꿔나갈 재원인 세수는 지방자치에 따라 각 도시, 구별로도 차이를 나타내면서 도시의 균형적인 발전을 저해한다. 서울의 경우 자치구 가운데 강남구와 다른 구는 최고 여섯 배 가까운 재산세 수입의 격차를 보인다.
-167쪽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 출판기념회에서 "오늘날 한국 정치는 대표된 영역과 대표되지 않은 영영 간의 갈등, 사회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중산층 이상의 제도 내로 통합된 사회계층과 서민으로 통칭되는, 제도 내로 통합되지 못한 노동자,사회적 약자,소외 세력 간의 갈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므로 한국 민주주의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참여의 위기'다. 이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참여의 불평등과 중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고 지적했다. -238쪽

우리나라 부동산 투기 열풍의 진원지는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과다한 유동자금이다. 무역수지 흑자로 해마다 막대한 수익금이 국내로 유입되어 소수의 부자들 손에 집중되면서 유동자금의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렇게 투기성 자금이 천문학적 규모일 경우에는 아파트 공급 물량을 최대한으로 늘린다고 해도 투기 수요의 극히 일부분만 충족시킬 수 있을 뿐이다. 예컨대 500조원 규모의 가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5억원짜리 아파트를 100만 채 지어야 한다. 가수요의 대부분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데, 1~2년 사이에 수도권에 아파트를 100만 채 짓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공급을 늘려 봐야 가수요의 극히 일부분만을 충족시킨다면,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리지도 못하면서 일부 투기꾼들의 투기 욕구를 충족시키는 정도로 끝나게 된다. 오히려 투기에 성공한 사람의 수를 늘림으로써 투기를 더욱 더 부추길 우려가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 부동산 투기 성공담이 널리 퍼져 있고 이것이 부동산 투기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249쪽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들은 자산의 90% 이상을 부동산에 투입하고 그 이외 자산은 거의 없다. 한국 베이비붐 세대들은 33평형 아파트 하나 가지면 사회적으로 중간층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의 95%가 융자를 끼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정부가 고금리 정책을 쓰면 실질소득이 활 줄어 경제를 지탱하느 ㄴ중간층이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더라.

반면 네덜란드, 영국, 일본은 안 그렇다. 이들 나라의 베이비붐 세대는 자산의 55%만 부동산이고 나머지는 펀드 등 다른 투자처로 포트폴리오를 짜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점을 보면 한국이 대세 하락기라 하더라도 급격히 꺽어지는 걸 정부가 놔두지도 않을뿐더러 우리 시장이 그런 충격을 받아낼 여력도 없을 것 같다.
-259쪽

1997년 금융위기 이후 고용 불안, 소득 불평등 등의 문제와도 무관치 않다. 40~50대면 노동시장에서 퇴출되는데 수명은 늘고 자식은 어려 임금소득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된다. 부동산, 주식, 펀드에 대한 투기적 욕망이 커가기 쉬운 살므이 조건이다. 자산 증식에 대한 욕망이 현실적인 불안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돈 나올 곳이 없으니 자산 시장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재테크 베스트셀러들을 보면 직장인들이 스스로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도록 하고 있다. 대기업의 30대 과장이지만 40대면 퇴사 압력, 50대 초면 회사를 나와야 하는데 80세까지 어떻게 먹고살 것인지에 대한 답을 묻는다. 매달 먹고사는 돈 외의 돈이 있어야 미래의 리스크를 대비할 수 있는데 그에 대한 공적 안전망이 부재하다 보니 사람들이 자산 증식에 몰릴 수밖에 없다. -269쪽

보통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집값, 즉 건물값이 오른다고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는 건물이 위치한 '땅값', 즉 토지 가격이 상승하는 것이다. 서울 강남의 낡은 아파트가 지방의 새 아파트보다 비싼 이유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토지공개념'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토지는 다른 자본과 달리 공급이 제한되어 있어 가격이 게속 오를 수밖에 없고, 토지를 소유함으로써 '불로'이익에 대한 권리가 보장된다면 너도 나도 토지, 또는 구체적 형태인 '주택'을 보유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구조가 곧 '투기'의 원인이다. -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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