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인 정보의 입력은 기계적으로 행해질 수 없다. 귀를 통해 음성이 들려오고, 눈의 망막에 문자의 모양이 비치는 물리 현상이 일어나는 것만으로는 아직 입력이라고 할 수 없다. 그와 동시에 정보가 가진 의미를 이해하지 않으면 입력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이 인간의 대뇌가 컴퓨터와 근본적으로 차이나는 지점이다.
....인간이라는 의미계에서는 의미가 부여되지 않아서는 정보로서 성립할 수가 없다. 인간의 사고는 의미라는 것과 떼려야 뗄수 없는 관계에 있다.
따라서 입력 능력은 눈이나 귀의 생리적 정보수용 능력 이상으로 정보의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 후자는 정신의 집중력과 함수 관계에 있다.......속독에 필요한 것은 오로지 정신의 집중뿐이다. 그 이외에 어떤 훈련도 필요치 않다.
-15쪽
최대한 잡념을 떨쳐내고 눈앞의 문장에 정신을 집중한다. 그 외의 어떤 것도 시야에 담지 않고, 아무리 시끄러운 장소엥 있어도 귀에는 어떤 것도 들리지 않고, 문장의 의미 이외의 사념은 머릿속에 전혀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까지 이르며, 갑자기 놀랄 만한 속도로 눈동자가 내달리기 시작한다. 눈동자가 문자 위를 달리는 속도가 생리적 한계에 이를지라도 느려터진 것으로밖에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의미를 읽어 들이는 속도가 가파르게 상승한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시선이 문자 위를 자연스럽게 건너뛰며 내달리는 상태가 된다. '지금 나는 눈으로 글을 읽고 있다'와 같은 자의식조차 사라진다(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간간이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의미는 일관성과 연속성을 유지하면 흘러들어온다. -16쪽
처음부터 속독을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속독은 결과다. 오히려 정신집중 훈련에 도움이 되는 것은 난해하기로 정평이 난 글을 골라 그 의미를 아무리 많은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철저히 생각을 거듭하면서 읽는 것이다. 문장 한 구절을 읽어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다. 이해가 안 되면 비지땀이 나올 정도까지 어쨌든 생각해보는 것이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오직 그 의미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왜 나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하는지, 자신의 머리가 지독히 나쁘다는 것에 절망하면서 그래도 결코 책을 내던지지 않고 반쯤은 자학적으로 최후 순간가지 끈질기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다.
철학서가 이런 훈련에는 적당할 것이다. -16쪽
모든 단게에서늘 유의해야 할 점은, 가능한 한 스크랩북의 양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신문 스크랩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모든 자료의 정리와 보존에 들어가는 품은 저게 들어갈수록 좋다. 시간은 가능한 입력과 출력에 할애해야 한다. 나중에 자신이 다시 한번 입력할 가능성이 없는 정보는 보존해 두어봤자 의미가 없다. 미래의 출력에 도움이 될 성싶지 않은 정보 같은 것도 보존해둘 의미가 없다. -36쪽
신문기사에 색인이 있듯이 잡지기사에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색인이 있다. 국립국회도서관이 정기적으로 간행하는 [잡지기사 색인]과 [오야 문고 분류카드]가 일본의 2대 잡지색인이다. 딱딱한 기사라면 전자, 그렇지 않은 가변운 기사라면 후자의 색인에서 대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도 한국잡지정보관 www.kmpa.or.kr/museum에서 목차 및 색인검색 작업이 가능하다 - 옮긴이)-57쪽
우선 좋은 입문서를확보하는게 중요하다. 좋은 입문서는 다음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첫째, 읽기 쉽고 알기 쉬울 것. 둘째, 그 세계의 전체상을 적확히 전해줄 것. 셋째, 기초개념, 기초적 방법론 등이 깔끔하게 정리 및 제시되어 있을 것. 넷째, 장차 중급, 상급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공부하면 되는지, 무엇을 읽으면 되는지가 제시되어 있을 것 등이다.
-98쪽
입문서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므로 예산이 있고 권수도 그리 많지 않다면 나와 있는 입문서를 전부 사버리는 것도 좋다(물론 훌훌 넘겨봐서 너무 심한 것은 제외). 어쨋든 입문서는 한 권만이 아니라 몇 권은 사는 편이 좋다. 그때 될 수 있는 한 경향이 다른 것을 고른다. 정평 있는 교과서적인 입문서를 빠뜨리지 않음과 동시에 새롭고 의욕적인 입문서 또한 빼놓지 않도록 한다. 전자는 출간 판수를 거듭하는 방식으로 표가 나고, 후자는 머릿말 등에 제시된 저자의 패기에 의해 드러난다.
입문서를 몇 권가량 잇따라 읽는 것이 그 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가장 좋은 트레이닝이다. 잘 모르는 대목은 뛰어넘어도 괜찮으니까 척척 읽어나간다. 이 단게에서는 잘 모르는 대목을 이해해보겠다고 파고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입문서에서 잘 모르는 대목이 나오는 것은 대체로 저자의 설명부족에 기인하는 것이어서, 다른 입문서를 읽든가 중급서를 읽으면 곧 알 수 있게 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 대목들은 입문서 자체만 가지고는 아무리 파고든다해도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한권의 입문서를 세번 반복해서 읽기보다는 입문서 세권을 한번씩 읽는 쪽이 세배는 유익하다.-98쪽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간행물판매센터 사이트 http://www.gpcbooks.co.kr 나 각 지역의 대형 서점에서 구할 수 있다 - 옮긴이)-110쪽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그 상대로부터 들어야 할 것을 미리 알아두는 일이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으려고 할 경우의 당연한 전제인지라, 뭐 특별히 주의를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관점에서는 본질적으로 이보다 더 중요한 사항은 아무 것도 없고 그 나머지는 대부분 지엽적인 테크닉론이다.
"문제가 정확히 설정되면 반은 답을 찾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흔히들 말한다. 마찬가지로 인터뷰에서도 뭘 들어야 하는지 이해하고 있다면 반은 알아낸 것과 마찬가지다. -122쪽
물어야 할 뭔가가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첫째, 알고 싶다는 욕구를 격렬하게 가지는 것이다. 욕구가 정열의 경지로까지 고양되면 더 말할 게 없다. 욕구가 충만하면 다양한 물음이 연달아, 그것도 저절로 나온다. 그에 반해 욕구가 없으면 임시변통의 질문밖에 나오지 않는다.
다음으로 알고 싶은 욕구는 질문의 형태를 취하여 정리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때 우선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이 어떤 범주에 속하는지를 분석, 검토해두는 게 필요하다. 그럼으로써 질문을 제기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째, 알려고 하는 것이 어떤 사실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 사실 이외의 것, 예컨대 상대의 의견이나 판단 같은 것인가를 구별하는게 중요하다.
사실을 알려고 할 경우, 그것이 객관적 사실인가, 아니면 주관적이고 내적인 사실인가를 구별한다. 심경니 심정 같은 것은 후자에 해당한다.
객관적 사실은 나아가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한다. 역사적, 경험적 사실이든가 아니면 보편적, 추상적 사실이다. 기억과 지식이라고 분류해도 좋다.
-125쪽
질문을 받는 사람은 묻는 사람에게 민감하게 반응한다. 당목(撞木)과 종(鐘)의 관계와 같다.
종에서 어떤 소리가 나느냐는 당목을 어떻게 두드리느냐에 달려 있다. -142쪽
가장 중요한 부분, 즉 머릿속의 발효 과정, 머릿속에서 생각이 정리되어가는 과정 그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방법론도 없다. 술을 만드는 것은 통에 재료와 효모를 넣으면 나머지는 효모가 분발하여 발효가 일어나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생각의 소재가 되는 것들을 이것저것 머릿속에 채워 넣은 다음, 그 나머지는 머릿속에서 뭔가 생각이 숙성되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만한 뭔가가 나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146쪽
어떻게 하면 무의식의 능력을 고양시킬 수 있을까?
가능한 한 양질의 입력을 가능한 한 다량으로 해주어야 한다. 그 이외의 수단은 아무 것도 없다.
좋은 문장을 쓰고 싶으면 가능한 한 좋은 문장을 가능한 한 많이 읽어야 한다. 그 이외에 왕도는 없다.
문장을 쓰는 방식에 대해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 ...... 좋은 문장을 즐기면서 읽는 게 최고다. -153쪽
연표를 작성함에 있어 유용한 주의사항을 두 가지만 들어두자. 하나는 연표라는 것은 균일한 시간축 위에 작성하라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에는 시간축을 늘리고 특기할 만한 일이 일어나지 않은 부분에는 시간축을 압축하는 방식으로 연표를 만들곤 하는데(시판중인 연표는 모두 이렇다) 이는 절대로 금물이다. 그런 짓은 연표를 만듦으로써 가시화되는 것들이 드러나지 못하게 만든다. 연표를 만든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시간축을 균일하게 설정한 연표를 만드는 것은 대단히 간단하다. 우선 선 하나를 긋는다. 만들어야 할 연표의 첫 번째 시간과 마지막 시간을 선의 처음과 끝에 기입한다. 다음으로 선의 길이를 시간별로 잘라 균등 분할하고 시간을 써넣는다. 요컨대 균등한 시간축을 우선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음, 기입할 사항이 시간대에 따라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어 때로는 큰 차이가 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라도 균등한 시간축 위에 각 사항들을 기입한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시간의 흐름이 가진 의미가 시각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183쪽
그리하면 공백 부분이 많이 생겨날 것이다. 그 공백에도 의미가 있다. 연표를 보고 있으면 그 의미가 또한 느껴지기 시작한다. 혹은 공백을 보고 있는 가운데 이곳은 공백일 리가 없을 성싶은 경우가 있다.
그곳이 공백인 것은 내가 무지하기 때문일 수도 있으니, 그 공백 부분에서 실제로 어떠한 일이 생겼는지 조사해보게 될 수도 있다. -184쪽
또 하나 주의할 것은 하나의 연표에 이질적인 것을 쑤셔 넣지 말라는 것이다. 연표를 만드는 것은 동질의 요소가 시간의 흐름에 다라 보이는 변화를 추적하기 위한 것이다.
이질적인 것을 혼재해 넣으면 역시나 연표로부터 읽어낼 수 있었을 것을 읽어내지 못하게 된다.
또 하나 주의할 것은 전체를 압축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한눈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크기가 좋다. 한눈에 조망함으로써 드러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185쪽
잘 만들면 한장의 차트를 풀어 설명함으로써 그대로 한 편의 논설을 쓸 수도 있다. 차트를 만들 경우 평면도보다 입체도를 그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다. 현실 속의 여러가지 일들은 입체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작업을 시작할 경우, 나는 대체로 스타트 시점에서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을 정리하고 동시에 취재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하여 한장의 가설차트를 그려본다.
차트는 재료 메모가 아니라 개념도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그것을 뒷받침할 재로가 없어도 그릴 수 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차트를 그림으로써 어떤 재료를 모아야 할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다만 스타트 시점에서 그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설'차트다. 재료가 모였을 때 그 가설대로 가나고는 보장할 수 없다.......취재가 진행됨에 따라 차트는 몇번이고 다시 그려진다. 뭔가를 쓴다는 것은 끊임없는 가설검증 과정이다. 좋은 가설을 세우기 위해서도 또 그것을 사실로 검증하기 위해서도 차트는 실로 쓸모가 많다. -186쪽
나는 주문받은 매수보다 더 많이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잡지 기사로 나갈 때 몇백 줄이나 잘라내야 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대개의 경우 일독을 해보면 어느 부분도 잘라낼 수 없을 것만 같다. 잘라내기는 커녕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어 더 보충해 넣을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몇 군데씩 발견하곤 한다. 그럴 경우 우선 잘라내야 한다는 걸 잊어버리고 내가 납득이 될 때가지 보충해 넣는다.
그러고 나서 다시 어딘가 잘라낼 부분은 없을까 하고 이번에는 잘라내는 일만 염두에 두고 다시 읽어본다. 이처럼 보충 작업과 잘라내기는 병행하기보다는 따로 하는 게 좋다.
-197쪽
이 순서가 대단히 중요하다. 잘라내기가 목적인데 보충을 한다는 건 목적에 역행하는 일을 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잘라내기와 보충은 전혀 다른 목적하에 이뤄지는 행위다. 잘라내기는 양적인 삭감, 보충은 질적인 향상이 목적이다.
질의 수준을 변화시키지 않고 잘라내는 것은 가능하니까, 일단 질적 향상이 추구될 여지가 발견되면 우선 그 작업을 먼저 해야 한다. 가능한 한 질을 향상시켜두고 나서 가능한 한 질을 저하시키지 않도록 양을 줄여가는 것이다.
어딘가 잘라낼 순 없을까 하며 매의 눈으로 열심히 찾다보면 반드시 잘라낼 부분이 나온다. 일독해서 안 나오더라도 두번, 세번 다시 읽어보면 반드시 나오니까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다. 커다란 단락을 통째로 싹둑 잘라내 버리는 일도 있고 각 단락에서 몇 줄씩 자르는 경우도 있다. 어쨋든 적어도 이만큼은 자르지 않을 수 없겠다는 전제가 있으면, 심지어 마지막에는 울며불며 잘라낼지라도 어쨋든 간에 잘려나가게 되어 있다.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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