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자본주의
로버트 라이시 지음, 형선호 옮김 / 김영사 / 2008년 5월
절판


세 가지 상황 변화를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것들 모두 그와 같은 냉전 혁신들의 간접적인 산물이었다.

첫번째는 이른바 말하는 '세계화 globalization'이다.

두번째는 새로운 생산 방식의 출현이다.

세번째는 탈규제 deregulation 이다. 이것들 모두 규모의 경제와 20세기 중반의 민주주주의적인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다. -88쪽

세계화에 불을 당긴 핵심적 요소는 운송과 통신의 새로운 기술이었고, 이것들은 대개 냉전의 대결과 관련이 있었다. 대형 화물선과 대형 수송기, 해외로 이어지는 케이블, 강철 컨테이너, 그리고 나중에는 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으로 전기적인 신호를 반사시키는 인공위성 등이 세계의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무언가를 이동시키는 비용을 극적으로 줄였다.

컨테이너는 (길이가 6미터에서 12미터에 이르는 강철 상자로서 28톤 이상의 화물을 실을 수 있는데) 기차나 트럭으로 쉽게 이동시켜 선박이나 비행기에 올리고 다시 기차나 트럭에 옮겨 실어 최종 목적지로 보낼 수 있다. 이것은 힘들게 짐을 부릴 필요도 없고 화물이 손상되거나 도난당할 염려도 없다. 컨테이너는 1950년대 중반 이후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사용은 월남전이 일어난 후였다. 그때 미군은 베트남의 정글에서 엄청나게 사용되는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대규모 수송 시스템이 필요했다.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운송용 바구니들은 너무 작고 취약했다. 그래서 해군은 캄란 만에 컨테이너 부두를 만들었고, 미국에 있는 항구들은 컨테이너 화물을 지원할 수 있도록 개선되었다. -89쪽

자신들의 역할이 직원들, 자신들이 사업을 하는 공동체의 시민들, 그리고 전체 국가를 포함해 모든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균형맞추는데 있다고 보았던 업계의 정치인들도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었다. 전에 코카콜라의 CEO였던 로베르토 고이주에타는 그와 같은 상황을 아주 명료하게 표현했다.

"기업체는 경제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기업들이 "모두에게 모든 것이 되려고 애쓸 때 그들은 실패한다....우리에게는 한 가지 임무가 있다. 즉, 기업의 주인들에게 적정한 수익을 올려주는 것이다.....우리는 우리의 핵심적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 즉, 장기간에 걸쳐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회사의 주가를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109쪽

오늘날의 CEO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이들은 '수치'를 달성하지 못할 때(그러니까 투자자들의 돈을 대신 관리하는 뮤추얼펀드, 연금펀드, 헤지 펀드, 그리고 사모 펀드의 관리자들이 기대하는 주당 수익을 달성하지 못할 때) 교체되고 만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CEO들이 주주들이나 기관투자자들과 만나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들의 자리는 확보되어 있었다. 매년 열리는 주주총회는 단순히 형식적인 절차로서, CEO들이 사업실적서를 제출하고 몇가지 질문을 받은 후에 헤어지는 모임이었다. 오늘날의 CEO들은 지속적으로 (직접 대면하여, 전화로, 혹은 모임이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주요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고, 월가의 분석가들을 감동시키고, 은해들과 신용평가 기관들의 있을 수 있는 걱정을 무마시켜야 한다. -109쪽

월마트의 CEO는 2007년 리 스콧 2세였다. 그리고 스콧은 1950년대에 GM의 최고경영자로서 미국의 운명과 자기 회사의 운명을 같이 보았던 '엔진 찰리' 윌슨과 달랐다. 스콧은 월마트의 역할에 대해 가진 시각은 훨씬 덜 원대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일부 동기가 순수한 비판가들은 오늘날의 월마트 점포들이 큰 규모 때문에, 전에 GM이 수행했다고 여겨지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 역할은 미국이 큰 자랑으로 여기는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중산층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소매점이 미국 경제에서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는 없다" 스콧의 말은 옳았다.

진짜 문제는 그가 만들지 않은 것으로서, 이제는 거의 어떤 것도 그런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월마트에 대한 비판과 논쟁은, 거기에 무엇이 관련되어 있는지를 알아차린다면 생각보다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다. 수백만의 우리들은 월마트의 낮은 가격이 마음에 들어서 그곳에서 쇼핑을 한다. 많은 우리들은 또 연금이나 뮤추얼펀드를 통해서 월마트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월마트는 사실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비난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132쪽

월마트의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복지혜택의 문제는 (그리고 월마트의 소비자 및 투자자로서의 우리의 암묵적인 공범자적 행위는) 더 큰 경제에서 수천만의 다른 근로자들의 임금과 복지혜택에 월마트가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오히려 사소한 문제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의 공범자적 행위는 더 큰 중요성을 갖는다. 월마트는 공급자들을 쥐어짜서 고객인 우리에게 더 좋은 거래를 제공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기업으로서 월마트는 업청난 협상력을 갖고 있다.

"우리는 공급자들이 공급 체계에서 비용을 낮출 것을 기대한다"고 월마트의 대변인은 말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는 공급자들이 미국과 해외에서 그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과 복지혜택을 쥐어짜기를 요구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경쟁자들로부터 물건을 사겠다. -133쪽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월마트가 기존 세제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세제를 팔 수 있단 말인가? 텔레비전은 50달러에 팔고 프린터는 30달러에 팔 수 있단 말인가? 월마트는 말하자면 거대한 증기롤러로서, 세계 경제를 밟고 지나가며 그 과정에서 모든 것들의 비용을 내리누른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당연히 임금과 복지혜택도 포함될 것이고, 그렇게 이 증기롤러는 전체 생상 시스템을 쥐어짠다. 그리고 이와 같은 압박이 월마트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에게 1년에 1천억 달러 이상을 절약시켜 준다. 일부 연구 결과는 이렇게 절약되는 금액이 2천억 달러에 이른다고 말한다. 이것은 가구당 600달러 이상을 뜻하는데, 이 정도면 2005년 평균 가구 소득이 3만5천달러인 월마트의 일반적인 고객들에게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다. -134쪽

우리가 더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 이 펀드에서 다른 펀드로 저축을 옮길 때도 임금과 복지혜택을 간접적으로 끌어내린다. 기업들에게 과감하게 비용을 줄이라고 요구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큰 자선단체의 재단 관리자, 대학 교수들의 은퇴 연금과 노조의 연금 기금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수혜자들을 대신해서 투자하는 엄청난 돈을 놓고 말 그대로 죽기살기 식의 경쟁이 벌어진다.

그러면 누가 이들에게 더 높은 수익을 압박하는 것일까? 바로 나다. 그리고 당신도 그럴 것이다.

대학 교수로서 내가 납입하는 교원 연금의 펀드 매니저가 최대한의 수익을 올리지 못한다면 나는 다른 펀드로 갈아탈 것이다.....펀드 매니저는 누구나 그것을 알고 있고 그에 맞게 행동한다.

따라서 바로 내가, CEO들이 임금과 복지혜택을 쥐어짜도록 간접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CEO들이 노조와 싸우도록 압박하는 것일 수도 있다. -146쪽

개인적으로 나는 대중문화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다루고, 폭력적인 행위를 찬양하고, 이런 쓰레기를 우리의 가정에 보내는 것을 혐오한다. 그러나 이것은 할리우드의 책임이 아니며 자유주의의 책임도 아니다. 대중문화의 타락은 미국의 거대 미디어 제국들이 뒷돈을 대는데, 그 가운데는 (우연히도 우파 억만장자인 루퍼트 머독 소유의) 폭스 엔터테인먼트도 포함되어 있다.

그 밖에 대기업들은 섹스나 폭력을 보여주는 광고를 사용해서 스포츠용품부터 주방용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을 판매한다.

이런 회사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도덕성을 타락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섹스와 폭력을 원하며, 이런 것을 판매하는 회사들에 돈을 넣은 투자자들은 그보다 기쁠 수가 없다.

이런 것을 즐기는 미국과 그 외 다른 곳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시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성적 유혹을 이용하는 광고들에 거부감을 보인다면 그런 광고는 나올 수가 없다.

이번에도 우리가 만나는 적은 우리 자신이다. -172쪽

선정적인 미디어에 분개하면서 '가족의 가치'를 옹호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세히 보면, 자유시장을 예천하고 정부의 규제를 의심스럽게 보는 바로 그 사람들이다.

아쉽지만 그들은 둘 모두를 가질 수가 없다. 그들은 선택의 자유와 정부의 규제 가운데서 하나만은 택해야 한다.

미국의 미디어 재벌들이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춰 그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도덕성을 옹호해야 하는 이들은 정부가 판매자들을 규제하고 구매자들은 통제하게 해야 한다. -173쪽

대부분의 사람들이 슈퍼자본주의에 대해서 두 마음을 갖고 있다면, 왜 거의 언제나 소비자-투자자 측면이 이기는 것일까? 그 답은, 시장은 더 좋은 거래를 원하는 개인들의 욕구에 엄청나게 효율적으로 반응하고 있지만 우리가 함께 달성하려는 목표들에 대해서는 반응이 시원치 않기 때문이다.

월마트와 월가가 소비자와 투자자의 욕구를 한데 합쳐 막강한 힘의 덩어리로 만드는 동안, 전에 시민적 가치들을 결집시켰던 사회적 기관들은 쇠락했다.

이제 더 이상 거대 과점기업들과 거대 산별노조 사이의 협상은 더 넓은 정치경제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제 더 이상 지역의 자발적인 협회들은 입법자들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제 더 이상 규제 기관들은 예전처럼 폭벏게 공익을 규정하지 못한다.

이제 더 이상 CEO들은 '업계의 정치인'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181쪽

여기에 아리러니가 있다. 슈퍼자본주의가 너무나도 효율적이고 역동적이기 때문에, 시민으로서의 욕구는 전보다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기업들의 의료보험과 연금혜택을 줄임에 따라 그것들을 공적으로 제공해야 할 필요성은 더 커졌다. 일자리와 소득이 더욱 불안정해지면서 사회안전망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기업들이 실적과 수익의 압력을 받으면서, 경영자들이 무시할 수도 있는 공공의 건강, 안전, 환경, 그리고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좀더 엄격한 조치들이 필요해졌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황금기에 가까운 시대'의 민주주의적인 자본주의를 부활시킬 수 없고 부활시키려 해서도 안된다. 당시 우리는 소비자와 투자자로서 너무 많은 것을 희생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와 반대되는 쪽으로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오늘날 사회는 소비자와 투자자가 주도하는 사회이고 이런 사회에서 공동선이라는 이상은 거의 사라졌다. -181쪽

문제는, 우리가 시장에서 행하는 선택이 시민으로서의 우리의 가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하는 구매나 투자의 사회적 결과를 이해하고 직시한다면, 그러는 동시에 다른 모든 소비자와 투자자들도 그 사회적 결과가 너무도 혐오스러운 일부 거래들을 자제하는 데 함께 동참할 것임을 안다면, 그와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만이 소비자나 투자자로서 그런 거래를 자제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같은 희생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혼자만의 희생은 마음착한 바보나 할 수 있다.

우리 안의 시민이 우리 안의 소비자와 투자자를 억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법과 규제를 통해서 우리의 구매와 투자가 개인적인 선택일뿐 아니라 사회적인 선택이기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182쪽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IBM, 선, 그리고 오라클이 매년 워싱턴에 수천만 달러를 쏟아붓는 이유는 로비스트 로렌 매독스가 말한 바대로 이들이 '정책 입안 과정은 시장에서의 싸움이 연장된 것'임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시장에서 점점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게 만드는 치열한 경쟁과 똑같은 이유로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공하면 이들의 수익은 늘어나고, 주가는 높아지며, 최고 경영진은 많은 돈을 벌고 월가와 업계 전문지의 찬사를 듣게 된다.

이것이 실패하면 이들의 수익은 줄어들고, 주가는 떨어지며, 최고 경영진은 자리에서 밀려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경쟁자들과의 군비경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점점 더 많은 돈을 워싱턴에 갖다바친다. -210쪽

때로는 그냥 기존의 사실에 의혹을 던져, 기업이나 산업이 '전문가의 의견 불일치'나 '열띤 토론'을 제기하고, 따라서 대중의 행동은 (혹은 대중의 행동을 위장한 반대자들의 활동은) '모든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식품업계는 아동 비만이 성인기의 건강 문제로 이어지고 설탕과 기름진 음식이 체중 증가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를 뒤집기 위해 일단의 전문가들에게 자금을 대었다. 이들이 후원하는 연구 조사가 반드시 다른 결과를 낼 필요는 없다. 그냥 식품업계의 편을 들고 싶은 입법자나 규제자가 다른 쪽 편의 조사 결과에 동조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의문을 제기하면 된다. -228쪽

전화 회사들이 각 가정에 TV 프로를 내보내도 좋은지에 관한 전화외 케이블 회사들 간의 싸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전화 회사들은 소비자들이 매달 30 내지 40달러를 절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케이블 회사들은 그런 주장을 반박하면서 화면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애기했다. 여기에서 거의 완전히 배제된 것은 사회적 책임성과 공정성이라는 기본적인 문제,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배려이다.

케이블 회사가 아니라 전화 회사가 화면을 보낸다면, 현재 케이블 회사들이 읍과 시에 넘겨주는 요금은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재산세나 다른 공과금을 인상해서 그것을 대체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많은 빈곤 가정들은 전화 회선을 통한 화면 송출로 요금 인하의 혜택을 보지 못할 것이다. 전화 회사들은 케이블 회사들과 달리 빈곤 가정을 우대할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문제는 규제냐 탈규제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어떤 규제가 효율성과 공정성을 모두 담보하느냐의 문제이다. -231쪽

왜 대기업들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받아들이는지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것은 좋은 홍보가 되고 이미지를 개선시킨다.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겠다는 기업의 선언은 몇몇 기업이 잘못된 행동으로 대중의 염려를 야기한 분야에서 정부의 입법이나 규제를 저지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부주의한 석유 운반으로 기름을 유출시켰거나 해외에서 인권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등의 행동 말이다. 사회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기업들의 약속은 더 엄격한 법률이나 규제로부터 대중의 관심을 떼어놓을 수 있고, 혹은 처음부터 문제 같은 건 별로 없었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다.

바른 행동을 약속하는 행동 수칙을 받아들인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성을 향해 중요한 걸음을 내디딘 것 같지만 소비자와 투자자를 끌어모아 유지해야 하는 기업들의 압박감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슈퍼자본주의에서 기업들은 애초에 사회적인 책임을 질 수가 없으며 적어도 의미가 있는 정도로는 그럴 수가 없다. -244쪽

기업들이 고급 인재를 유치하고 유치하기 위해 좋은 임금과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사회적 책임과 무관하다. 이것은 단지 좋은 경영의 실천일 뿐이다.

스타벅스는 자신들의 특별한 사회적 헌신을 자랑하는 한 광고에서 '숭고한 이상이 기업의 수익성과 반드시 다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시간제 직원들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하기 시작하자 이직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바로 혼동하는 것이다.

스타벅스가 시간제 직원들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수익이 높아진다면, 이 회사의 그러한 행동은 숭고한 이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스타벅스는 자신의 소비자와 투자자를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비용은 더 들겠지만 수익은 그보다 더 높아진다. 이것은 영리한 경영이라고 불린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제품 가격을 높이지 않고 품질을 개선하거나,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여서 가격을 낮추거나, 혹은 투자자들에게 더 높은 수익을 올려주는 기업의 활동은 사회적인 책임과 관계가 없다. 이런 것들은 사회적인 혜택이 얼마이건 간에 해야 할 좋은 경영의 실천일 뿐이다.-247쪽

소비자들은 사회적 책임을 고려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더 많은 돈을 낼 만큼 고려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2004년 유럽에서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설물에 답한 소비자들 가운데서 4분의 3은 기업의 사회적 내지 환경적 실적 때문에 구매 결정을 바꿀 의사가 있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얘기한 사람은 3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들은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공동선이 아니라 소비자의 개인적인 만족 측면에서 답을 했다. -256쪽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거래하는 기업들이 해외에서 인권을 존중하기를 원한다고 얘기한다.

1993년 천안문 광장 사건이 있은 후,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낮은 인권 보호 수준 때문에 중국에서의 생산을 단계저으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이와 같은 결정은 당시 큰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리바이스의 고객들은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들에서 더 높은 비용에 생산된 청바지에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지 않으려 했다.

1998년 결국 이 회사는 방침을 바꾸고 말았다. 중국 생산에 의존하거나 아니면 세계적인 의류 사업의 경쟁적 게임에서 패배하는 위험을 택해야 한다고 이 회사의 사장인 피터 자코비는 설명했다. -257쪽

슈퍼자본주의는 수익을 악회시키는 착한 기업의 행동을 허용하지 않는다. 어떤 기업도 경쟁자들이 함께 하지 않는,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행동을 자발적으로 할 수는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슈퍼자본주의에서는 규제만이 기업들이 수익에 해가 되는 일을 하도록 유도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데이비드 보겔 교수가 미국과 유럽에서 이른반 자발적인 기업들의 환경보호 활동을 조사한 후 결론을 내렸듯이, 규제가 없거나 규제가 곧 생길 것이라는 위협이 없는 상태에서 그런 활동을 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요청만 하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기업선행에 관한 엄청난 보고가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대중을 심각하게 호도하는 것이며, 이 역시 어떤 규제를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중요한 일로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는 것이다.

실제로 지구 기후 변화에 관한 기업들의 수많은 자발적 노력은 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엄격한 법률과 규제를 만드는 것으로부터 대중의 관심을 돌리고 있다. -291쪽

기업들은 인간처럼 의도를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범죄적인 의도로 행동할 수가 없다. 아서 앤더슨은 마침 사람인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이 회계법인은 법률상의 허구였을 뿐이다. 대법원이 평결을 뒤집은 이유는 하급심 판사가 배심원들에게 앤더슨이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를 찾으라고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배심원들이 어떤 회사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겠는가?

기업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기업에는 무언가를 아는 능력이 없다.

기업은 또 스스로 행동을 하지도 않는다.

오직 사람들만이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며 오직 사람들만이 행동을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명제이다.

-315쪽

반명 기업의 민사적 책임(기업에 속한 일부 중역이나 직원들이 불법행위를 통해 기업에 이득을 주는 경우에 기업에 벌금을 매기는 것)은 개인적인 책임의 개념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주주들이나 일반 직원들이 설사 그것을 몰랐다 하더라도, 불법적인 행위로 이득을 취해야 할 합당한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나 기업에 매기는 벌금은 불법적인 이득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 불법적인 이득을 훨씬 넘어서 기업의 존폐 자체를 위협할 정도의 징벌적 벌금은 형벌에 가까운 것이고 따라서 허용되지 말아야 한다. -315쪽

슈퍼자본주의의 승리는 뜻하지 않게 민주주의의 쇠퇴를 초래했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피한 현실이 아니다. 우리가 활기찬 자본주의와 함께 활기찬 민주주의도 누릴 수 있다. 이렇게 하려면 이 두 영역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목적은 소비자와 투자자에게 좋은 거래를 제공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목적은 우리가 개별적으로 이룰 수 없는 목표들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 둘 사이의 경계는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것처럼 보이거나 자신들의 경쟁력을 위해 정치를 이용할 때 무너진다.

우리는 모두 소비자들이고 대부분의 우리는 투자자들이다. 그리고 이런 입장에서 우리는 가능한 최대의 이득을 얻으려 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시장 경제에 참여하며 슈퍼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린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인적 혜택은 종종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가 있는 시민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그런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구매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진짜 가격을 최대한 낮출 수 있는 힘이 있다.

-322쪽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더 큰 성과를 달성하려면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종종 가장 힘든 것인데) 우리의 생각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322-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