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라는 이정향 감독의 영화를 보았을 때....어릴적 아프시기만 했던 외할머니가 아주 잠깐 생각이 났다. 그저 아픈 몸 때문에 어린 내가 다가서기엔 좀 유별나게 어려웠던 분이라고만 생각될 뿐이었다.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렇게 받아주시기만 하는 외할머니를 가진 상우가 부럽기만 했다. 오히려 동화책 속의 엄한 할머니와 인자한 할머니의 중간 정도의 상상속의 할머니를 내 외할머니 였겠거니 하는 관념속의 할머니를 창조해 놓고 그분을 내 외할머니라고 여기면서 산 것이다. 그러다가 신문의 단신기사를 통해 이 영화를 만나게 되었다. 침을 튀겨가며 극찬하는 기사에 '한번 속아주는 셈치고 보자'면서 영화를 예매했고 명동의 한 소극장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봤다. (참고로 관객이 정말 없었다) 외국인이 많았던 건 순전히 자막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어자막으로 영화의 부실한 사운드를 감내하면서 보았고, 좁은 좌석에서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와 숨죽여가면서 함께 보았다. 영화를 보고난 뒤에는 나는 감히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머리속에 들어있던 관념속의 할머니가 아닌 살아숨쉬는 한 인간으로서의 외할머니를 떠올릴 수 있게 됐다고...젊은 시절의 병으로 인해 한평생 앉아서만 생활해야 했던 한많은 삶을 감내했던 그 한 여인을 내 외할머니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고...어린시절 무섭기만 한 그 외할머니도 나와 같은 욕망을 가지고 살아숨쉬던 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감히 말한다....그들에 대해 섯불리 안다고 하기 전에 먼저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을 발견하라고...말이다...
꼭 떠나야만 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