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달까지 - 파리에 중독된 뉴요커의 유쾌한 파리 스케치
애덤 고프닉 지음, 강주헌 옮김 / 즐거운상상 / 2008년 4월
절판


여행자에는 두 유형이 있다. 볼 것이 있는 것을 보러 가서 정말로 보는 사람과, 머릿속으로 어떤 상상을 한 후에 그 상상을 실현해 보려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다. 전자는 편하게 여행을 하겠지만, 내 생각에 두 번째 여행자가 더 많은 것을 보는 듯하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과 원하는 것을 끊임없이 비교한다.

따라서 그는 머리로 본다. 어쩌면 가슴으로도 보려할지 모른다. 주변 시야가 줄어들어도, 내면에 담고 있는 나라에 맞춰 보려는 안타까움 때문에라도 그는 계속 뭔가를 보게된다. 이런 이유에서 그의 눈이 간혹 흐릿해지기도 하지만 거꾸로 예민해지기도 한다.

내 머릿속은 대부분이 흑백이기는 했지만 파리의 사진들로 가득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파리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뉴욕이 구체적이라면 파리는 추상적이고, 뉴욕이 단순하다면 파리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27쪽

미국의 가전제품이 모두 자동차가 되기를 바랐다면 프랑스의 가전제품은 전화기가 되기를 꿈꾸는 듯했다. 프랑스의 냉장고에서 냉동실은 거의 아래쪽에 비치되었고, 옛날 책상처럼 서랍과 비밀 칸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미국의 냉장고처럼 다음 주에 먹을 저녁거리 대신에 완두콩과 같은 작은 먹거리와 요리의 비법으로 채워야만 할 것 같았다.

파리 사람들은 전화기를 좋아했다. 온갖 종류의 전화기를 미국인들과는 다른 식으로 사용했다. 미국인들이 자동차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파리 사람들은 전화기를 '사랑했다'....길을 걷다 보면 모두가 전화기에 입을 대고 뭐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뉴욕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 워크맨을 귀에 꽂고 다니던 때가 무엇보다 그리웠다. 혼자서 음악을 듣는 기분, 사운드 트랙처럼 맑게 흘러가는 삶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파리에서는 누구도 도시와 장막을 치고 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들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지 조용히 듣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73쪽

외국에 거주하는 사람의 외로움은 약간 색다르고 복잡하다. 자유롭고 탈출했다는 기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날 마사는 루크가 팔레루아얄 내의 정원과 이어지는 작은 문을 여닫는 것을 지켜보며 아침나절을 보냈다. 나중에 마사가 전해 준 바에 따르면, 루크는 문을 열고 걸어 들어가 문을 조심스레 닫았다.

곧 루크는 문을 열고 걸어 나왔다. 루크 뒤로 가지런히 늘어선 보라색 꽃들이 보였다. 마사는 죽어서 천국에 온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외톨이라는 기분은 동떨어진 세계에 있다는 기분이다. 우리만이 사는 공간에서 통용되는 언어와 관습이 바로 문 밖의 언어와 관습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이주자만이 절감할 수 있다....

또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그 일에 대해 아무런 선입견을 갖지 않고, 반사적으로 어떤 쪽을 편드는 본능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위안이 되면서도 겁나는 깨달음이었다.-128쪽

특히 버스 기사의 심술에 마사보다 내가 더 열을 받아, 결국 모든 것이 남자의 문제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프랑스 남자처럼 생각하는 것이 화근이었다. 나는 모든 충돌을 신분 경쟁으로 해석해서, 싸움에 지면 화가 났다. 시오랑이 말했듯이, 모두가 나만큼 화를 잘 내는 나라에서 나는 살기 힘들었다. -139쪽

나는 프랑스 문명을 조그만 가게에 비유하고, 프랑스의 공식문화를 큰 건물에 비유하고 싶다. 조그만 가게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단 하루도 감사하며 지나가지 않는 날이 없었다.

가령 보나파르트 거리에 있는 빵가게에 들어서면 글라르동 부인이 루크 오든의 초콜릿 에클레르를 작은 종이 피라미드 모양으로 정성스레 포장해서 꼭대기에 리본을 달았다. 그것도 어린 꼬마가 어렵지 않게 리본을 떼어내고 종이 피라미드를 열어 초콜릿 에클레르를 꺼낼 수 있도록 배려했다.

반면에 큰 건물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실망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잘난 체하는 공허한 오만이 시작되는 세상이었다. -142쪽

1997년 여름에 얼어난 에페탑 사건은 두 문화권의 기질적 차이, 심지어 지적인 차이까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구입하는 물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반면에, 프랑스인은 종사하는 일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미국인이 흔히 '프랑스인의 무례함'이라 생각하는 것과, 프랑스인이 '미국인의 오만'이라 생각하는 것은 이런 차이에서 비롯된다.

에펠탑 사건은 미국인은 여자 관광객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했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프랑스인은 안내원이 자신의 일에 충실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또 미국인의 생각에 엘리베이터 안내원은 관광객을 에펠탑 꼭대기까지 데려다 주는 수단에 불과하지만, 프랑스인의 생각에 관광객은 엘리베이터 안내원에게 적절한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람에 불과하다.-168쪽

파리의 고급 패션소가 갖는 관례와 매력을 소개하려면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머리를 살짝 기울인 모델 스텔라 테넌트가 어깨를 뒤로 젖히고 엉덩이를 약간 앞으로 당긴 자세에세 좌우로 실룩이며 걸어나왔다. 앞 열에 앉은 부인들, 즉 부자 고객들이 다시 부채질하기 시작했다.....추운데도 부채질하는 불합리한 행동은, 결코 입지도 않겠지만 우리와 조금도 닮은데가 없는 모델에게 입혀 놓은 옷을 보겠다고 파리까지 달려오는 행위만큼이나 부조리하다는 뜻이었다. -173쪽

유명 디자이너의 패션쇼는 이상하게도 가슴을 뭉클하게 하며 희망을 안겨준다. 패션 기자들은 모델들이 입은 옷 중 하나가 그들에게 쓸 만한 소재를 주기를 바라고, 의류 상인들은 패션쇼에서 소개된 옷 중 하나를 적절하게 변형시켜 돈덜이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패션 애호가들은 그런 옷 중 하나가 쿠튀르 모멘트를 멋지게 장식하기를 바라고, 사진작가들은 모델들의 옷이 흘러내리기를 바란다. 기자들은 아무렇게나 써 대고, 사진작가들은 야유를 보내며 부인들은 부채질해대는 곳이 바로 패션쇼장이다. -178쪽

요리의 아름다운 멋은 매일 똑같은 행동 원리를 반복하는데 있다. 말하자면, 무슨 요리를 할까 계획을 세우고 쇼핑해서 잘게 썰고 구워서 먹는다. 그리고 다시는 그처럼 거창한 요리를 만들지는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하지만 새벽에 해가 뜨고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또 다른 멋진 요리를 머릿속에 그린다.

허기는 여기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222쪽

...나는 이야기의 힘을 믿게 됐다. 이야기가 사물의 단계를 넘어 감동의 단계로 발전되느냐 않느냐는 움직이는 단어의 힘이라 믿게 됐다. 때때로 단어들이 담장을 훌쩍 넘어 감정의 단계로 치닫는다. 개인적 관계에서는 세번 중 한번만 성공해도 재밌는 이야기꾼이나, 잠자리 이야기를 끝내주게 해주는 아버라는 명성을 얻는다. 한편 대중을 상대로는 세번 중 세번 모두 담장을 넘겨 감동을 주어야 마크 맥과이어나 찰스 디킨스가 된다.

나에게도 그런 단어들이 필요했다. 파리에서 4년을 지내자, 생각했던 것보다 미국 스포츠가 훨씬 그리웠다.....실제로는 스포츠 자체보다 신문의 스포츠란이 그리웠다. -252쪽

축구는 보고 즐기자고 만들어진 스포츠가 아니었다. 직접 공을 차며 경험하는데 의미가 있는 스포츠였다. 힘든 상황, 실패가 거의 확실한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월드컵은 숙명의 축제인 듯하다.

누구도 승리하지 못하고 누구고 골을 넣지 못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삶과 닮은 점이 있다. 0대 0은 삶의 득점표이다. 여전히 운동장에서 에덴 동산을 찾는 미국인들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운 철할일 수 있다.

그러나 축구는 삶의 도피 수단으로 만들어진 스포츠가 아니다. 뭔가 불공평하고 답답하다는 점에서 축구는 곧 삶이다. 우리는 부당한 이익을 구하고, 조그만 기쁨의 순간을 최종적인 승리인양 좋아하며, 또 상대편의 실수를 바라지 않는가!

....축구에서 내일은 너무 멀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내일은 아득히 멀고, 특별한 경우에는 4년 후이다. 그때쯤이면 모든 게 달라질 수 있다. 월드컵에서 다음 기회는 없었다. 부당한 판정에 대한 불만이 수년, 수십 년, 아니 영원히 가슴이 사무쳤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거역할 수 없는 균형 감각이 있었다.

-294쪽

패배를 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그런 굴레에서 해방되어 작은 승리, 행운의 킥에서도 짜릿한 기쁨을 얻었다. 미국의 스포츠가 낙원에서 행해진다면 축구는 추락 이후의 스포츠였다. 축구에서는 사소한 입씨름가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그 선수가 혼자 넘어졌는가, 아니면 밀려서 넘어졌는가? 축구에서는 끊임없이 풀어야 할 해묵은 문제였다. -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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