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4년의 과거시험 문제는 '인재를 구해 쓰는 법'이었다. 세종에 따르면 '인재는 천하 국가의 지극한 보배'이며, '세상에 인재를 들어서 쓰고 싶지 않은 임금은 없다' 하지만 진짜 인재와 인재인 척하는 자들은 늘 섞여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것을 구분해 쓰는 방법이 중요하다.
세종은 세 가지 이유 때문에 국왕이 인재를 등용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첫번째는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요, 그 둘째는 인재를 절실하게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그 셋째는 국왕과 인재의 뜻이 합치되지 못할 경우이다. 만약 국왕이 두루 인재를 구하되 절실한 마음을 갖고, 비록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더라도 국가를 위해 등용한다면 인재는 언제든지 구해 쓸 수 있다는 것이 세종의 생각이었다. 한마디로 인재 등용의 요체는 국왕의 마음먹기와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87쪽
장원으로 급제한 강희맹의 답안이 걸작이다. 그는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따라서 적합한 자리에 기용해 인재로 키워야 한다. 그리고 전능한 사람도 없다. 따라서 적당한 일을 맡겨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 사람의 결점만 지적하고 허물만 적발한다면,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는 것"이 인재를 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데, 이렇게 하면 "탐욕스러운 사람이든 청렴한 사람이든 모두 부릴 수"가 있다.
강희맹에 따르면, "한 시대가 부흥하는 것은 반드시 그 시대에 인물이 있기 때문이요, 한 시대가 쇠퇴하는 것은 반드시 세상을 구제할 만큼 유능한 보좌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아무리 뛰어난 인재라할지라도 다른 세상에서 빌려올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시대의 문제는 당대의 인재로 해결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정치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88쪽
그러면 국왕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인재를 분류해야 한다. 국가의 운명을 맡길 만한 뛰어난 인재와 반드시 물리쳐야 할 인재를 구분하는 일이 그것이다. '마음의 중심을 확고하게 세워 자질구레한 절도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과, 누구보다 바쁘게 일하면서도 자기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조심하는 사람'은 모두 국가의 운명을 맡길 만한 신하이자 한 시대의 뛰어난 인재이다. 이에 비해 재주가 있더라도 반드시 물리쳐야 할 사람도 있다. 여색을 밝히고, 끊임없이 재물을 긁어 들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그 예이다.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에게는 개선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89쪽
둘째, 인재를 기르는 일이다. '뛰어난 인재'와 '물리쳐야 할 인재'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교화 대상이다. '견문이 많고 총명하나 탐욕스러운 사람, 행정처리를 잘하나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사람' 등이 그 예이다. 교화의 초점은 이들의 총명과 행정 처리 능력을 기르는데 있다. 이들의 '말'을 듣고, 적합한 자리에 배치하면서, 그 장점이 활성화될 때까지 가르치고 기다려야 한다.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모험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 있는 모험이다. -89쪽
첫째, 지식경영이란 관련된 사안 내지 사건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어떻게 획득하고, 획득한 것을 최대한 활용해 최상의 결정을 내리는 경세의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지식경영은 최고경영자 내지 최종 판단자의 경영방침과 결정 내용을 조직구성원들이 '권위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지적 능력을 뜻한다. 아무리 좋은 방침과 결정이라 할지라도 구성원들의 신뢰와 지지를 얻지 못하면 추진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99쪽
집현전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인재 교육 기능, 서적 수집과 편찬 기능, 국왕을 위한 조언과 자문 기능이 그것이다.
첫째, 집현, 즉 인재를 모아서 기르는 기능이다. 세종은 '한 시대가 부흥하는 것은 반드시 그 시대에 인물이 있기 때문이요, 한 시대가 쇠퇴하는 것은 반드시 세상을 구제할 만큼 유능한 보좌가 없기 때문'이라고 보고, '국가의 인재가 모인 터전'인 집현전에서 유능한 인재를 기르는 데 정성을 기울였다. 그래서 재위 16년부터는 집현전 학사들이 경전,역사,자서,시부 가운데 강독한 분량을 기록했다가 월말에 보고하게 했다. 매월 열흘에 한 차례씩 당상관으로 하여금 시,문의 글제를 내어 시험 치르게 하고 '일등으로 입격한 시와 문을 가려서 월말에 모두 등사해 보고'하도록 하기도 했다. 고전에 정통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100쪽
둘째, 서적 수집과 보관, 그리고 편찬 기능이다. 세종은 집현전 학사들에게 치국에 도움이 되는 서적을 편찬하는 일은 물론이고, 국가의 일을 기록하고 보존하게 했다......
셋째, 집현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역시 경영 등에서 국왕과 함께 학문적 토론을 하고, 정책적 자문을 하는 것이다. 세종은 그 때까지 형식적이던 경연을 본격화하고 국정토론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경연은 말을 맡은 언관과 일을 책임진 재상들이 함께 앉아서 당면 과제를 풀어가는 독특한 회의 방식인데, 세종은 경영니란 공론장을 집현전 학사들의 힘을 얻어 이끌어갔다. -100쪽
수성의 지도자는 조직에 자기 지속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지속성을 지니면서도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거듭하여 발전해가는 생명체와도 같은 조직을 만드는 일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자기 지속적인 성장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수성의 군주는 세 가지 일을 수행해야 한다....한마디로 시스템에 의해 국가가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말인데, 세종시대 사람들은 이를 권도의 정치에서 경도의 정치로 전환이라고 불렀다.
두번째 목표는 제도화다. 앞에서 말한 경도의 정치란 결국 누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조직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좌사간 허성에 따르면 그것은 곧 좋은 제도의 수립을 가리킨다.....
세번째 목표는 인재를 기르고 고르게 사용하는 일이다.....마지막으로 수성의 지도자는 중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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