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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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인적인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들로 고민하던 터에, 우연히 지인의 선물로 다시 읽게 된 책이다. 고민을 풀어보면 의자뺏기 놀이를 한 셈인데...결과적으로 보면 의자를 뺏긴셈이 되어 심란했던 모양이다.

대학교 초년에 이책을 읽은 듯 싶은데....사실 기억에 그닥 남아있지 않는 걸 보면 울림을 얻을 만큼의 경험이 부족했던듯 싶다. 중고교 시절의 독서라는 간접경험만으로 쌓아올린 경험만으로는 아무래도 역사의 소용돌이 한 복판에서 그저 견디어 나갔다고만 표현할 수 밖에 없는 한 가정의 다사다난한 가족사에 공감을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36살이 된 지금 다시 읽은 이 책은 내게 여러가지 울림을 주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하고 한 아이의 아비가 되고, 또 다른 아이가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고, 한번의 물을 먹어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고 생각한 나에게 이렇게 어려운 시절을 견디어낸 나(서경식)도 있는데 왜 그리 힘들어하나라는 위로(?)의 속삭임을 듣기도 했다.

또한 내가 잊고 있었던 세상읽기의 치열함은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다는 사실을 부디 잊지 말기를 바라네라는 저자의 속삭임도 들었다. 이건 신문이란 매체를 통해 세상을 읽어내고 싶어했던 풋풋한 청년시절의 내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한데....이걸 생활이란 용광로 속에서 녹아내리면서 잊어버리고 있었던 싶다. 

미술관에 걸려있는 그림을 읽어내려가고 있는 20대 중반의 저 청년은 이제 생활이라는 세상으로의 출발을 앞두고 너무나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자신의 앞날에 대한 고민만 하기에도 벅찰텐데, 그는 감옥에 있는 두 형을 옥바라지 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숙명적으로 앉고가야 하는 복잡한 심정일 것이다(이러한 복잡한 심정을 36살 생활전선의 한복판에서야 비스무리하게 느끼는 걸 보면 역시 경험이라는 내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낀다). 그림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 아래에는 그 그림이 탄생하기까지 화가의 뒷 편에서 말없는 희생을 치렀어야 했을 화가의 주변사람(저자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과 그러한 희생을 바탕으로 걸작을 그려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그림그리기라는 힘든 노동을 직접 감당하는 화가에 대한 애틋함이 바탕에 깔려있기에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글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좋은 책은 읽는 이와 함께 성장하는 책이라고 한다. 10여년 전에 읽었던 책을 여차여차한 과정을 거쳐 다시 읽게 되었는데... 20대에는 도저히 느끼지 못했을 저자의 애처로움을 이번 독서를 통해 맛볼 수 있었다. 앞으로 10여년 뒤에 다시 읽을 이 책에서 나는 무슨 맛을 느낄 수 있을까? 부디 성장한 나와 마주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긴뱀발을 붙이자면......나의 서양미술 순례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아무래도 나(서경식)일 것이다. 이 책을 단순히 유럽 미술관에 걸려있는 유려한 문체의 그림감상문만으로 읽어내려가기엔 그냥 지나치는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의 두형은 유명한(?) 사상범인 서승과 서준식이기 때문이다. 서승과 서준식은 이 땅의 모순이 만들어낸 비극의 상징일텐데, 너무 유명한 분들이기에 자세한 설명은 피하려고 한다. 궁금하신 분들은 서승의 옥중 19년, 서준식의 옥중서한을 구해서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상징으로 가두어 두기엔 우리와 너무나 같았던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절절히 알게 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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