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 중인 배의 경도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그리니치 표준시를 계속 가리키는 시계를 배에 두고 정오(해가 자오선 위에 도착했을때)가 되었을 때 그리니치 시간과 현지의 시간차를 계산하면 쉽게 알 수 있었다.
지구는 360도이고 하루는 24시간이므로, 어떤 해상에서 해가 자오선상에 있을 때(즉 역시 정오)에 배에 실린 그리니치 표준시를 가리키는 시계가 오후 2시를 가치키면 그 배는 그리니치의 서쪽 30도상에 있는 것이다. 얼마나 간단한가? 즉 시간은 경도이고, 경도는 시간이라는 간단한 이치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이제 문제 해결의 관건은 시간을 정확하게 잴 수 있는 시간측정기였다. 그러나 바다 위에서는 배의 움직임과 기온차, 습함과 건조함의 변화, 위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중력의 차이 등으로 말미암아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정확한 시간을 측정할 시계가 없었다. 뉴턴도 그런 시계가 나오리라고 확신하지 못했다고 한다. -25쪽
런던 시내에서 배를 타고 동쪽으로 50분 남짓 가면 그리니치 부두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과거 영국의 해양정복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해양박물관, 해군사관학교 건물, 그리니치 왕립천문대박물관 등이 있다. 그 가운데 유명한 건축가인 크리스토퍼 렌(C. Wren)이 천체관측을 위해 팔각형 돔으로 건축한 플램스티드 하우스 지하에는 해리슨의 시계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을 찾은 <경도>의 작가 소벨은 해리슨은 시계들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한 천재의 지난한 탐구의 소산인 그 시계들이 2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작동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숙연한 느낌이 들게 한다. 누구든 런던을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시간을 내어 그곳에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28쪽
가상현실 기술은 '미래'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경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정보기술을 이용해서 우리는 어떤 대안을 창출하기 위해 필요한 경험으 미리 구성할 수 있다. 미래를 시뮬레이트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시간틀을 필요에 따라 길거나 짧게 조정할 수 있다.
여기서 시간틀은 변형이 없는 과거의 단순한 반복이 더 이상 아니다. -38쪽
인터넷, 특히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으로 우리는 정보기술이 시간에 영향을 미치는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밤 9시 뉴스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적어도 시사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날 하루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소식을 총정리한다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들은 가능하면 9시까지 집에 들어가 텔레비전을 시청하고자 한다. 특히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밤 9시라는 시각은 시간을 조직하는데 있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준거점으로 기능한다.
그런데 CNN과 같은 유선TV 뉴스 전문방송은 매15분 또는 30분마다 최신 뉴스를 내보냄으로써 이 밤 9시라는 시간이 갖는 준거점으로서의 의미를 점차 상실하게 했다. 인터넷을 이용하면 유선 TV 뉴스가 내보내는 것보다 더 짧은 간격으로 업데이트된 뉴스를 찾아볼 수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업데이트된 뉴스를 방송국이 내보내는 때가 아니라 시청자가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밤 9시라는 시각은 8시 17분과 별 차이가 없고 그 시간을 하나의 시간 준거점으로 사용하던 생활양식은 사라질 것이다. -39쪽
"시간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사람들은 보통 벽에 걸린 시계나 손목시계 등 시계를 떠올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을 생각할 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머릿속에 갖고 있는 생각이 바로 시계시간 개념이다.
시계시간은 그 구조가 동질적이고 나눌 수 있으며, 선형적이고 일정한 흐름이 있다. 또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로서 사물이나 사건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측정할 수 있고(또는 양화할 수 있고), 유일한 것이어서 오직 하나의 '정확한' 시간만이 존재한다는 특징이있다.
-69쪽
시간의 양화(즉 시계시간)는 시간의 역사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을 낳았다. 노동이 시간에 의해 그 대가를 지불받고, 기업가들이 시간이 분모가 되는 공식으로 계산되는 생산성에 민감해짐에 따라, 시간은 하나의 자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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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념은 '시간은 돈이다'라는 한마디로 표현된다. 이 비유에 따르면 시간은 돈처럼 소비되고, 절약할 수 있고, 낭비될 수 있으며, 소유할 수 있고, 예산을 세울 수도 있고, 다 써버릴 수도, 투자할 수도 있는 것이다....시간은 '조직 효율성과 효과성을 위해서 측정되고 조작되어야 하는 하나의 자원으로 여겨진다. -69쪽
근로자와 관리자가 갖는 서로 다른 시간규율의 기대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근로자의 자율적 결정과 회사가 정한 틀 내에서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플렉시 근무제도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널리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경영자들이 종업원이 이런 유연한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꺼린다. 그들은 '나인 투 파이브'로 상징되는 엄격한 시간규율이라말로 피고용인을 감독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그들은 이 시간규율을 권위의 상징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89쪽
결과적으로 직원들은 시간을 더욱 희귀한 자원으로서 인식하게 되었고, 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작업 방식을 끊임없이 찾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런 모든 벼화는 조직 전체뿐만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에게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불어넣었다. -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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