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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한기택
한기택을 기억하는 사람들 엮음 / 궁리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판결에 불만을 품은 전직 대학교수가 판결을 내린 재판관에게 석궁을 쏘는 초유의 법관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언론은 불난 호떡집의 왕서방마냥 전직교수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석궁을 쏘았는지에 대해 과하다 싶은 정도로 호들갑을 떨어주었다(범죄관련 뉴스에 있어서 세밀한 범죄행위 묘사는 모방범죄 등이 우려되기에 재연화면을 보여줌에 있어선 신중에 신중을 거듭 기했어야 했는데 말이다.쩝) 물론 석궁의 살상 위력이 어느 정도 인지를 실제 실험으로 보여주는 친절함(?)까지 보여주었다.
그런데 보도를 보고 있노라면 가장 궁금한 부분인 왜 석궁을 쏘았는지에 대한 왜 부분은 철저하다 못해 간략하기 그지 없다. 판결에 불만을 품은이란 상투적인 어구만이 '왜' 라는 부분에 대한 답변인 셈이다.
물론 신문은 지면을 통해 왜 쏘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소설들(?)을 펼쳐 보여주었다. 여러기사의 행간을 통해 알게된 여러가지 사실들(팩트)을 꿰어 맞추더라도 정말로 궁금한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기사 속에서 찾긴 어려웠다.
제대로된 언론이라면 석궁을 들게 만든 시초라 할 수 있는 시험문제에 대한 이의제기와 관련하여 주장이 엊갈린다면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주었어야했을 뿐만 아니라, 사법부 판결을 통한 이의제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이유, 그와 더불어 교수 임용제와 교수 신분 등등...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들에 대한 답을 주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아무튼 석궁테러를 통해 우리사회의 무엇인가가 정말로 잘못 되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는 사실만을 확인한 셈이 되어 버렸다. 결국 어느 부분이 잘못되어 사회적 약자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사법부의 판사가 석궁 한방을 배에 맞아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찾아내야 할 몫으로 남게 되었으니 말이다.
석궁사건을 보면서 책장에 고이 모셔두었던 이 책을 다시금 꺼내 들게 되었다. 일반인에게 한기택이란 이름은 생소하기 그지 없는 이름일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한창 일할 시기에 이국 땅에서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한 차관급 부장판사에 불과하기도 하지만, 판결로서만 이야기 하는 판사의 신분에 너무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기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엮은 이 책은 한기택이란 한 인물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과 더불어 한기택의 생각을 알수 있는 편지와 일기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판사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기도 하지만, 각종 판결들을 곱씹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장 짠한 판결은 아마도 한강대교 위에서 목숨걸고 투쟁했던 시각장애인들을 막을 수도 있었던 그의 혜안이 빛났던 판결이다.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 안마사의 생존권이 우선한다는 인간미 넘치는 판결을 보고 있노라면 국무총리보다 서열이 더 높은데도 불구하고 뒷자리에 배치한 의전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출한다고 신년 인사모임에도 불참한 헌재의 재판관들께서 내리신 직업의 자유를 침해했기에 위헌이라는 판결보다는 훨씬 더 사법정의에 부합하는 듯 보인다.
역사에 만약이란 단어가 허락된다면 한기택 그는 죽지 말고 좀더 살아서 더 많은 유익한 판결을 내려주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석궁테러와 같은 사법불신을 극명하게 표출하는 사건은 최소한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목숨걸고 재판하는 판사들이 더 많았다면 과연 석궁테러가 발생했을 수 있었을까? 머릿 속을 떠나지 않고 맴도는 질문이다. 한기택 그가 너무 그립다.
뱀발.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둘 수 없다'는 고 조영래 변호사와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법조인 목록에 한기택이란 이름을 추가하려한다. 노파심에 한마디 덧붙이면 안경환 교수가 쓴 짝퉁 조영래 평전은 제발 읽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