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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잎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0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6년 12월
평점 :
지난 주에 네다섯번째로 '백년의 고독'을 읽은 후 우연히 도서관에서'썩은 잎'을 발견하였다.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최근에 번역되었다. 해설에도 있지만 이 작품은 예전에 '낙엽'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된 적이 있는데, 역자는 이전 번역에 문제가 많다며 감히 초역임을 자부하고 싶다고 한다.
'백 년의 고독'에 비한다면 1/4 정도의 분량일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읽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작품의 문체 때문인데 역자의 해설에 따르면 20대 초반의 마르께스가 의식의 흐름 기법을 쓴 버지니아 울프 같은 작가들을 모방한 형식이라고 한다.
돌이켜보면 이야기의 줄거리조차 정확히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자살한 의사의 정체와 '풋내기'라는 신부의 정체가 무엇인지, 왜 둘은 같은 날 마콘도에 왔고, 왜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비슷한 사람처럼 보였다는 것인지, 왜 의사는 군인들의 총에 맞은 마을 주민들의 치료를 거부했는지 알 수 없다. 어떤 의문들은 왜 그런지 조금 짐작이 가는 바도 있지만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전혀 답할 길이 없다.
'백 년의 고독'과 동일하게 마콘도가 있고, 천일전쟁이 있고, 바나나 회사는 마콘도를 유흥과 낭비의 도시로 만들었다가 폐허로 만들었고, 이후 빈 기차는 매일 같이 무의미하게 마을에 왔다가 떠나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등장하고, 레베카도 고독한 과부로 그려지고 있다.
주인공들이 고독한 인물로 그려진 것도 유사하다. 대신 '백 년의 고독'에서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주인공들에게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에 비해 여기서는 마을 사람들이 적대적이고, 그들의 시선이 주인공들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실험적인 소설의 형식과 마콘도라는 이름으로 펼쳐질 그의 작품 세계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겠는데 쉽게 읽히지 않기 때문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를 처음 접하고자 한다면 '백 년의 고독'을 선택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반대로 '백 년의 고독'을 읽었다면 '썩은 잎'을 통해 마콘도와 콜롬비아의 근현대사를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