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앨런 튜링 지음, 노승영 옮김, 곽재식 해제 / 에이치비프레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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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을까요? 이른바 인공지능의 시대라는 지금도 이 질문에는 선뜻 긍정적으로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계는 생각이 아니라 계산을 한다느니, 정해진 것만 하는 기계에게 생각이라는 표현을 붙일 수 없다느니, 과연 기계가 창의성을 지닐 수 있냐느니 등등 아주 고전적이고 직관적인 반론이 여기에 따라붙습니다. 오히려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소수입니다.

20세기 중반의 수학자 앨런 튜링은 이런 반론에 답하기 위해 논문을 썼습니다. 이 논문에서 그는 이렇게 제안합니다. 인간 노릇을 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수 있는지 아닌지 묻지 말고, 인간이 기계인지 아닌지 물어보면 어떨까? 인간의 정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생물학적 특성 일부가 기계적이라면, 인간도 일종의 기계로 봐야 하는 것 아닐까?

‘기계는 생각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인간도 기계다’라고 답한 이 논문, 모두 이해하려면 어렵지만, 기술적으로 어려운 내용을 떼어놓고 보면 그 아이디어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모든 인공지능의 기원으로 대우받는 현대의 고전을 한 번 같이 읽어보면 어떨까요. 앨런 튜링의 지능에 관하여 입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기계학습, 머신러닝입니다.

이 책에는 논문 세 편과 강연록 두 편이 실려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 학술지인 ‘마인드’에 실린 ‘지능을 가진 기계’와 ‘계산 기계와 지능’이라는 논문, 체스 두는 인공지능 코드를 실은 ‘체스’가 논문이고요. 앞에 두 논문의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대학/방송 강연록 각각 한 편이 실려 있습니다. 책은 매우 얇지만, 컴퓨터과학과 심리철학 분야의 전문적인 논의를 담고 있기에 읽기에 수월하지만은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차근차근 읽어나가보죠.

지능을 가진 기계라는 글은 ‘기계는 생각할 수 없다’라는 주장에 대한 답변입니다. 튜링은 이런 사고방식의 대부분이 비합리적이고 종교적인 신념에 따른 거부감이라고 주장하고, 당시 과학이 밝혀낸 신경세포의 전기 작동을 논리 회로 그러니까 전기 회로로 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집중합니다. 그리고는 덧붙입니다. 이런 전기 회로가 엄청나게 많이 필요하겠지만, 그에 드는 비용이나 물질의 양만 신경쓰지 않는다면 인간의 두뇌를 기계로 재현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이죠.

계산기계와 지능이라는 글은 인공지능을 다루면서 꼭 한번은 짚고 넘어가는 그 개념인 ‘이미테이션 게임’, 흉내 게임을 소개하는 글입니다. 신체를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채팅만으로 메시지를 교환하는 사람과 기계가 있을 때, 인간 입장에서 누가 기계이고 누가 사람인지 가려낼 수 없다면 그 게임에 참여한 기계를 사람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어차피 다른 사람이 마치 ‘나처럼’ 정말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생각을 하는지, 사람인지 알아내는 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하고, 그러면 사람처럼 보이면 사람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게 튜링의 핵심 주장입니다.

그런 기계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바로 ‘학습’입니다. 모든 인간이 천상천하 유아독존 외치면서 세상에 튀어나오자마자 인간 구실을 하지 않듯, 기계 또한 자신의 작동방식을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이 땅에 태어난다면 수많은 자료를 자체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고유한 반응방식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튜링은 비유가 아니라 정말 일대일대응이라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간에게 기억이 있다면 기계에겐 입력과 저장이 있고, 인간에게 반응이 있다면 기계에겐 출력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에게 실수가 있다면 기계에겐 무작위/임의성이 있죠. 이렇게 ‘배우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면 또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 기계에게 ‘생각한다’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다는 게 튜링이 이 논문에서 내리는 결론입니다.

그렇기에 이 논문이, 현대의 고전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앨런 튜링의 전기인 앤드류 호지스의 ‘앨런 튜링 이미테이션 게임’입니다. 수학자이자 철학자로서, 당대의 지적 흐름 속에서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는 건 튜링을 깊게 이해하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호지스의 전기는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상세하고 풍부하게 쓰인 튜링의 전기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다소 두꺼운 책이긴 하지만 그래도 튜링이 쓴 논문보다는 읽기가 수월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또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니 함께 감상해보시는 것은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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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위한 경제학 - 주류 경제학이 나아갈 길에 관하여
로버트 스키델스키 지음, 장진영 옮김 / 안타레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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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어떤 학문일까요? 경제를 알면 돈을 번다고 하지만, 경제를 연구하는 학문을 공부한다고 해서 돈을 버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학의 관점은 그것보다 더 넓습니다. 사람들이 물건을 어떤 동기에서 어떤 방식으로 교환하는지, 그런 교환이 쌓이면 사회 전체에 어떤 효과를 일으키는지, 그 효과가 부정적이라면 어떤 방법으로 없애거나 줄여나가야 하는지 대안을 제시하는 일종의 종합적 학문이 경제학입니다.

적어도 스키델스키의 관점은 그렇습니다. 이 시각에서 그는 신고전파라고 불리는 현재의 주류 경제학이 경제학의 이념에서 매우 이탈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현재 경제 상황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된 처방을 내리고 있으며, 심지어는 자신들의 처방이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도록 사람들의 행동을 교정하고 세계 자체를 경제학적으로 바꿔버리도록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이데올로기의 단계로까지 변질됐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는 경제학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자연과학의 지위에 오르려는 욕심을 버리고 심리학, 사회학, 역사학, 거기에 윤리학의 도움까지 받으면서 경제학 자체를 역사화, 상대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저같은 일개 유튜버가 아닌 전 세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저술가이자 연구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포함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입을 빌어서 이야기하고 있으니 들어보지 않을 수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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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꼽은 키워드는 다원주의 경제학입니다.

이 책은 2019년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책입니다. 1년 만에 번역된 셈이니 우리나라에도 거의 동시에 들어온 셈이죠. 저자인 스키델스키는 2019년 시점으로 그 때까지 매우 자주 인용되고 또 쓰이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유명한 연구와 그 때문에 생겨난 경제학 학파들의 학문적 특징과 강점, 단점을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우리가 비판적인 시선을 갖고 경제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안내해줍니다.

그러나 다양한 목소리를 이것저것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진 않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경제학이 과학이 되어선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저자는 20세기 경제학의 역사는 과학이 되려는 노력으로 점철돼있다고 비판합니다. 마치 인간 사회도 자연과학처럼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원인을 일정정도 또는 거의 모두 통제한 상황에서 우리가 보고 싶은 부분만을 관찰할 수 있는 통제실험이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는 근거없는 자신의 직관이나 편견을 연구의 대전제로 삼고, 연역적 논리체계를 도입해 순환논증을 제시하고, 수학을 동원해 마치 정말로 과학인 것처럼 그럴싸하게 포장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회 속 개인은 동시대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역사로부터, 그리고 절대로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 하지 않는 인간 본연의 생물학적 도덕적 성향으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자연 실험에서처럼 원하는 부분만을 보는 실험은 인간에게선 불가능하므로, 경제학은 애초에 자연과학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경제학은 학문이 아닌 걸까요? 스키델스키는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합니다. 통제실험이 가능하고 연역적 논리체계를 도입해 수학으로 표현돼야만이 학문은 아닌 것이죠. 앞에서 말씀드린 시간적, 공간적, 생물학적, 도덕적 자장 아래 놓여있는 인간을 고려하는 다른 학문, 역사학과 사회학과 심리학과 윤리학의 도움을 받아 여러 주장이 꽃피는 ‘다원주의 경제학’이 돼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경제학을 처음 창시했던 애덤 스미스가 추구했던 경제학의 목표, 즉 사람들이 더 나은 부를 향유하는 데 더 많은 도움을 주는 본연의 모습, 더 나은 삶을 위한 경제학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결론입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한때 경제공부 입문용 동영상 1순위로 꼽혔던 다큐멘터리인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입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4부 ‘세상을 바꾼 철학’5부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우리 책과 관련해서 추천드리는데요. 우리 책이 경제학의 역사와 경제학 학파를 전반적으로 조망하는 책인 만큼, 이 책과 비슷한 정보를 영상으로 보면서 한 번 되새기시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경제에 관해 완전히 상반된 두 견해를 대표하는 짝, 애덤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입장을 서로 비교해가며 경제에 관한 교양을 이 기회에 쌓아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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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그날 - 6.10민주항쟁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유승하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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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승은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사고로 죽은 언니를 그리워하며 엄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친구인 진주는 공부도 열심이며 운동에도 열성적인 혜승의 절친이죠. 진주와 같은 서클에서 활동하던 종철은 어느 날 경찰들에게 끌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합니다. 혜승과 진주가 놀러갔던 상계동 떡볶이집에서는 미술을 하고 싶어하는 나리가 가게 주인인 언니와 다투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 어떻게 돈 많이 드는 미대를 보내겠냐면서요. 나리는 언니 몰래 미술학원에 다니며 목수 출신 미술가 병철에게 그림을 배우며 친해지기 시작합니다. 언니의 상계동 가게가 올림픽 조경 미화 작업 때문에 철거대상이 되어 공격당하자, 병철은 가게의 집수리를 도와주곤 합니다. 목수라서 판화에도 재능이 있던 병철은 한 대학의 만화동아리에서 학생들에게 판화 양식의 민중미술을 가르치고, 그 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멤버 중엔 한열도 있습니다.

대부분 낯선 이름이지만, 가끔 익숙한 이름이 등장하죠? 이 이름이 등장하는 그 사건 또한 다가옵니다. 1987년 6월 항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바로 그 현장입니다. 서로 가느다란 끈으로 이어져있던 이 사람들이 어떻게 역사의 순간 속에 하나로 뭉치는지, 실화에 기반해 그려진 이 만화를 통해서 확인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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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연결입니다.

이 만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각자 1987년 6월 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아주 가느다랗게, 혹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전국민적인 분노를 촉발했던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당사자와 친구였고 자신도 경찰에서 조사를 받는 진주, 올림픽을 빌미로 환경을 정화하겠다며 판자촌을 치워버리는 국가의 폭력 앞에 노출된 나리의 언니, 병철이 시킨 심부름을 하러 담을 넘어 대학 캠퍼스에 들어갔다가 5월 광주항쟁의 잔혹함을 알게 되고 만화동아리에서 이한열을 마주친 나리, 다소 소극적인 데다 운동권인 언니의 죽음을 보며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결국 세상의 변화에 동참하는 혜승까지.

이런 풍경은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라는, 1987년 6월 항쟁 당시 울려퍼졌던 구호의 의미와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사람만 열 걸음을 나아가면, 그 한 사람과 나머지의 고리는 그 거리를 견디지 못하고 언젠가 끊어지고 맙니다. 그러면 그 한 사람의 행복은 나머지 아홉 사람에게 어떤 의미로도 가닿지 못하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6월 항쟁이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을 압니다. 최종학력 국민학교 졸업의 목수 출신 미술가가 대학생들을 만나 미술을 가르치고,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고등학생과 운동권이 만나고, 건물 안에서 일하는 사무직 노동자와 거리에서 일하는 택시 버스기사가 같이 목소리를 내고, 정치적 민주화를 바라는 시민들과 경제적 안정을 바라는 상계동 철거민들이 명동성당에서 악수를 나누는 그런 그림이 6월 항쟁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변화는 누가 주도했고 누구에게 공이 있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만한 사건이 아닙니다. 모두의 변화가 모두와 연결돼 세상을 바꾼 사건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겁니다. 그렇게 우리의 작은 행동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며, 또 그런 경험이 있다는 걸 우리가 역사에서 그것도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아있을 때 몸소 겪은 아주 최근의 사건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게 이 만화 그리고 바로 내일 34주년을 맞는 6월 항쟁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교훈일 것입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영화 1987입니다. 꽤 흥행한 영화니 이미 보신 분도 많을 텐데요. 6월 항쟁에 관해 이야기하는 데 이것보다 더 좋은 콘텐츠가 있을까요? 우리 코너가 책을 소개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이 영화를 가져왔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듬새가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오늘 우리가 읽은 만화와 마찬가지로 ‘작은 변화 서로 이어지면 얼마나 큰 사건을 만들어내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올바른 일을 할 때 어떤 메아리가 돼 되돌아오는지, 책과 함께 영화를 보시면서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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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시민 - 끝내 냉소하지 않고, 마침내 변화를 만들 사람들에게
강남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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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잡혔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여러분은 어디에 있었나요? 2020년 4월 이천의 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나 노동자들이 죽었을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고 있었나요? 국회가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저녁을 먹으며 친구들과 함께 정치와 정치인을 욕할 때, 실제로 우리 삶을 바꿀 만한 좋은 법안들은 혹시 어떻게 처리되고 있었는지, 기억하시나요?

이런 순간들을 우리가 모두 기억할 필요는 없고, 잊고 지내는 것이 도덕적으로 큰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지 못했다고 자신을 또는 다른 사람들을 책망하며 욕해서는 더더욱 안될 것 같고요. 하지만 우리 기억속에서 잊혀질 법한 이런 사건과 순간들에 제대로 의미를 부여해 되살려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런 글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면 큰 행운이겠죠.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칼럼니스트라고 부릅니다.

좋은 칼럼니스트를 곁에 둔다는 건 그래서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하나 더 얻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정치, 사회, 노동, 언론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포착해 여러분께 전달해드리면서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해나가야 할지 알려주는 예리한 눈을 지닌 칼럼니스트의 책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강남규의 지금은 없는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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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꼽은 키워드는, 이번주는 키워드가 아닌 문장인데요, “우리 탓이야, 우리가 만든 세상이야”입니다.

이 문장은 이 책에 실린 글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어스 앤 이어스>라는 드라마에서 세상이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탓하는 딸과 손주들을 향해 할머니가 소리지르는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라고 하는데요. 무언가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그런 세상이 오는 것을 막지 못한, 또는 그런 세상을 오도록 재촉하는 데 힘을 보태기까지 한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이 구절을 듣고 학부모 청취자 여러분 중에 신해철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넥스트의 노래 중에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라는 노래가 기억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사를 보면 시대차는 있지만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죠.

우리의 사회적 삶을 이루는 세계를 만드는 요소는 결국 우리의 행동입니다. 왜 택배가 빨리 오지 않는지 상상하는 순간 택배기사는 과로로 쓰러져가고, 배달이 빨리 오지 않는다고 재촉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배달오토바이 사고는 점점 늘어만 갑니다. ‘2인분 같은 1인분 주세요’나 ‘이 세상에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있어’라고 상인에게 말하는 순간 동네 이웃인 자영업자는 최저생계비조차 벌지 못해 빚에 허덕이고, 옷 가격이 비싸다고 탓하는 우리의 목소리는 미얀마의 노동자들의 저임금이라는 결과를 낳습니다. 우리는 내 이웃과, 우리 동네에서, 우리 나라에서, 전 세계와 얽히면서 우리가 행동하는 만큼의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태도는 그렇지 않은 쪽에 좀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어른들은 젊은 애들이 고생을 안 해봐서 약하다고 하고, 젊은 사람들은 고금리 시대에 혜택을 입고 큰 어른들이라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절대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어디서는 차별철폐정책 때문에 역차별을 당한다 소리를 지릅니다. 내가 힘든 것, 내가 억울한 것, 내가 잘못된 것은 오로지 다른 사람들 때문이며, 나는 절대적으로 옳으니 내 잘못은 없다는 식입니다.

하지만 이 사회를 더 나은 더 옳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태도일까요? 저자인 강남규가 책 전체를 관통해서 서문에 제시한 질문은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책임은 없는가?”, 이 세상이 이렇게 만들어지기까지 내 책임은 없었는가 하는 것이죠. 작가가 직접 쓴 표현을 빌리면, 이것은 세상 모든 잘못이 내 책임이라는 숭고한 태도를 지니는 ‘의인’이 되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단지 내 행동이 때로는 거대한 사회의 일부로 얽혀있을 수 있다는 시민으로서의 윤리를 의식하라는, 일종의 쪽지 같은 것이죠.

“우리가 만든 세상이야”라는 말은, 이런 작지만 큰 의미를 담고 있는 한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경향신문의 ‘직설’이라는 칼럼란입니다. 앞에 퀵서비스에서 좋은 칼럼니스트를 곁에 두는 것은 새로운 눈을 하나 갖는 것과 같다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오늘 책을 쓴 저자 강남규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글을 엿볼 수 있는 코너입니다. 특히 좋은 글쓰기나 논술에 관심이 있는 학생 청취자 여러분이라면 꼭 한번 들어가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가장 신선한 감각으로 글쓰기의 최전선에 있는 저자들의 글과 함께 다양한 방면의 지식을 쌓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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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의 역사 - 절대 측정을 향한 인류의 꿈과 여정
로버트 P. 크리스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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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의 길이를 잴 때 어떤 도구를 사용하시나요? 너무 당연한 질문인가요? 자를 사용하시겠죠. 우리 주변 자에는 눈금이 있습니다.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단위는 밀리미터와 센티미터, 킬로미터죠. 밀리미터는 1000분의1미터, 센티미터는 100분의1미터, 킬로미터는 1000미터죠. 집에 체중계 하나씩 놓고 쓰시죠? 아니면 요리할 때 쓰는 요리저울도 있겠고요. 체중계는 킬로그램, 요리저울은 보통 그램으로 표시합니다. 킬로그램은 1000그램이죠. 그러면, 1미터는 어느 정도의 길이인가요? 1그램은?

이렇게 미터와 그램을 비롯해 몇몇 기본단위로 구성된 측정단위체계를 SI라고 합니다. ‘국제적 측정체계’라는 프랑스어의 줄임말인데요. 이 구상은 무려 17세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에 프랑스에서 만들어져서 서서히 전 세계로 퍼집니다. 경쟁하는 다른 측정단위체계와 비교해, 특히 산업혁명 시기 산업선진국 영국이 사용하고 있던 야드파운드법에 비해 계산에서 간편하기가 이를 데 없이 깔끔하다는 최고의 장점을 지녔어요. 하지만 영국은 프랑스산이라는 이유로 미터법을 받아들이는 데 100년이 넘게 걸렸고, 미국은 아직도 야드파운드를 쓰죠.

이런 모습에서 우리는 측정이 단순히 과학이나 정확성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측정법의 확산은 사회문화적 경향과 강하게 결부돼 있는 것이죠. 미터법의 탄생에서부터 기본단위인 미터와 그램을 더 정확히 규정하려는 여러 사람들의 노력, 프랑스 영국 미국을 중심으로 미터법 확산 과정에서 있었던 웃기지만 웃지 못할 여러 에피소드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책 ‘측정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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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꼽은 키워드는 미터법입니다.

과학계 농담으로 “어떻게 야드파운드법을 쓰는 “미개한” 미국이 전 세계 과학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게 미스터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터법이 만들어진 지 300년이 넘었고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다 이 단위를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야드파운드를 더 많이 사용하는 현상을 꼬집는 말인데요. 우리나라도 이런 현상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평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집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3.3제곱미터를 기준으로 이야기하고, 평수로 부동산을 이야기하는 걸 국가에서 금지하려고 하자 한때 P라고 하는 괴상망측한 단위체계도 등장했죠. ‘근’이라는 것도 있는데, 한 근은 200그램인데 고기 한 근은 600그램이죠.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수량화나 측정 표준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는 사람들은 정확한 단위가 사물들의 ‘교환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고기를 팔면서 야채 한 근 무게를 한 근이라고 우기는 상인들이 넘쳐난다면 결코 상업이 번성할 수 없겠죠. 다른 단위와 비교했을 때 미터법의 장점은 측정 대상이 되는 사물의 특성과 무관하게 적용된다는 것, 그리고 10진법 숫자체계에 맞게 모든 배수단위를 센티, 밀리, 킬로 등 10단위로 쪼개 계산편의성을 극대화했다는 것입니다. 단위가 지닌 ‘교환가능성’이라는 목적에 최적화된 단위체계인 셈입니다.

그래서 미터법의 확산은 표면적으로는 과학의 활동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묶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활동과 결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프랑스처럼 시민혁명이 일어날까 두려워서 미터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영국 정치인들의 결정이나, “프랑스 무신론자들의 문화적 침탈”을 우려해서 미터법에 저항하는 “종교적 신념이 굳건한” 미국 정치인들의 모습, 세계 시장에 반강제로 편입되면서 또는 편입되기 위해 전통적으로 쓰던 단위를 다 버리고 미터법을 채택하는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모습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 1미터와 1그램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정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미터법이 확산될수록 이들을 정하는 과학자들의 활동의 무게 또한 비례해서 무거워지는데요. 잘못했다가는 미터법을 따르는 전 세계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난리가 날 테니까요. 그래서 이 책은 자연표준으로 접근했다가 인공표준으로 바뀐 뒤에 다시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자연표준으로 돌아가는 ‘미터’의 의미 변화도 함께 보여줍니다. 사회문화적 활동임과 동시에 분명히 과학적 활동이기도 하다는, 과학적 활동을 바라보는 시선에 균형을 잃지 말라는 작가의 배려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앨프리드 크로스비의 ‘수량화 혁명’입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이 책은 미터법의 성립과 확산 과정에 어떤 사회문화적 역사가 있었는지 주목하기에 17세기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데요, ‘수량화 혁명’이라는 책은 후기 중세에서 시작해 이 시기 바로 앞까지 무언가를 ‘잰다’는 관습 자체가 어떻게 사람들의 일상에 자리잡았는지 다루는 책입니다. 특히 음악이나 그림처럼 잰다는 것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활동이 어떻게 숫자라는 체계 아래 포섭되면서 측정의 대상이 돼가는지를 아주 상세하게 보여주는 역사책이라 ‘측정’이라는 행위 자체를 역사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데 이 책 만큼이나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청취자 여러분께 권해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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