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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시민 - 끝내 냉소하지 않고, 마침내 변화를 만들 사람들에게
강남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평점 :
2분 퀵서비스
여러분의 기억 속으로 책을 배달해드리는 2분 퀵서비스!
2019년 9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잡혔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여러분은 어디에 있었나요? 2020년 4월 이천의 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나 노동자들이 죽었을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고 있었나요? 국회가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저녁을 먹으며 친구들과 함께 정치와 정치인을 욕할 때, 실제로 우리 삶을 바꿀 만한 좋은 법안들은 혹시 어떻게 처리되고 있었는지, 기억하시나요?
이런 순간들을 우리가 모두 기억할 필요는 없고, 잊고 지내는 것이 도덕적으로 큰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지 못했다고 자신을 또는 다른 사람들을 책망하며 욕해서는 더더욱 안될 것 같고요. 하지만 우리 기억속에서 잊혀질 법한 이런 사건과 순간들에 제대로 의미를 부여해 되살려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런 글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면 큰 행운이겠죠.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칼럼니스트라고 부릅니다.
좋은 칼럼니스트를 곁에 둔다는 건 그래서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하나 더 얻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정치, 사회, 노동, 언론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포착해 여러분께 전달해드리면서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해나가야 할지 알려주는 예리한 눈을 지닌 칼럼니스트의 책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강남규의 지금은 없는 시민입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이번주는 키워드가 아닌 문장인데요, “우리 탓이야, 우리가 만든 세상이야”입니다.
이 문장은 이 책에 실린 글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어스 앤 이어스>라는 드라마에서 세상이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탓하는 딸과 손주들을 향해 할머니가 소리지르는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라고 하는데요. 무언가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그런 세상이 오는 것을 막지 못한, 또는 그런 세상을 오도록 재촉하는 데 힘을 보태기까지 한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이 구절을 듣고 학부모 청취자 여러분 중에 신해철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넥스트의 노래 중에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라는 노래가 기억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사를 보면 시대차는 있지만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죠.
우리의 사회적 삶을 이루는 세계를 만드는 요소는 결국 우리의 행동입니다. 왜 택배가 빨리 오지 않는지 상상하는 순간 택배기사는 과로로 쓰러져가고, 배달이 빨리 오지 않는다고 재촉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배달오토바이 사고는 점점 늘어만 갑니다. ‘2인분 같은 1인분 주세요’나 ‘이 세상에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있어’라고 상인에게 말하는 순간 동네 이웃인 자영업자는 최저생계비조차 벌지 못해 빚에 허덕이고, 옷 가격이 비싸다고 탓하는 우리의 목소리는 미얀마의 노동자들의 저임금이라는 결과를 낳습니다. 우리는 내 이웃과, 우리 동네에서, 우리 나라에서, 전 세계와 얽히면서 우리가 행동하는 만큼의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태도는 그렇지 않은 쪽에 좀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어른들은 젊은 애들이 고생을 안 해봐서 약하다고 하고, 젊은 사람들은 고금리 시대에 혜택을 입고 큰 어른들이라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절대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어디서는 차별철폐정책 때문에 역차별을 당한다 소리를 지릅니다. 내가 힘든 것, 내가 억울한 것, 내가 잘못된 것은 오로지 다른 사람들 때문이며, 나는 절대적으로 옳으니 내 잘못은 없다는 식입니다.
하지만 이 사회를 더 나은 더 옳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태도일까요? 저자인 강남규가 책 전체를 관통해서 서문에 제시한 질문은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책임은 없는가?”, 이 세상이 이렇게 만들어지기까지 내 책임은 없었는가 하는 것이죠. 작가가 직접 쓴 표현을 빌리면, 이것은 세상 모든 잘못이 내 책임이라는 숭고한 태도를 지니는 ‘의인’이 되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단지 내 행동이 때로는 거대한 사회의 일부로 얽혀있을 수 있다는 시민으로서의 윤리를 의식하라는, 일종의 쪽지 같은 것이죠.
“우리가 만든 세상이야”라는 말은, 이런 작지만 큰 의미를 담고 있는 한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경향신문의 ‘직설’이라는 칼럼란입니다. 앞에 퀵서비스에서 좋은 칼럼니스트를 곁에 두는 것은 새로운 눈을 하나 갖는 것과 같다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오늘 책을 쓴 저자 강남규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글을 엿볼 수 있는 코너입니다. 특히 좋은 글쓰기나 논술에 관심이 있는 학생 청취자 여러분이라면 꼭 한번 들어가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가장 신선한 감각으로 글쓰기의 최전선에 있는 저자들의 글과 함께 다양한 방면의 지식을 쌓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