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어 - 의사에서 보호자로, 치매 간병 10년의 기록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 시공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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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억 속으로 책을 배달해드리는 2분 퀵서비스! <케어> 시작합니다.


우선 최선생님의 책 선정이 아주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경쟁자, 의사들이 하는 팟캐스트 중에 가장 오래된 팟캐스트인 <나는 의사다>에서도 저번주에 이 책을 선정해서 2주에 걸쳐서 다루더라고요. 치매 전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선생님을 모셔놓고 말이죠. 우리가 살짝 전문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우리의 안목이 의사 선생님들 정도는 된다 이렇게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책 전반부와 후반부가 분위기가 아주 다릅니다. 전반부는 간병기를 실은 생활 에세이라면 후반부는 저자 아서 클라인먼의 ‘학술적’ 자서전에 가깝습니다. 전반부는 나이대에 관계없이,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님이 함께 생활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친구들이라면 초등학교 5~6학년이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후반부를 이해하기 위해선 중학교 3학년이나 고등학생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두 단어로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돌봄의 윤리’입니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의학사회학, 의료인류학의 관점에서 돌봄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철학 특히 윤리학의 관점에서 ‘돌봄’ 개념에 접근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봄의 윤리’는 아마 수능에서 윤리와 사상이나 생활윤리를 선택하는 학생이라면 현대윤리사상 파트에서 접하게 되는 단어일 것입니다. ‘배려윤리’라고 부르던가요? 넬 나딩스나 <다른 목소리로>의 캐롤 길리건 같은 이름과 함께 배우실 겁니다.


돌봄의 윤리는 두 가지 방향에서 인간의 행동에 접근합니다. 첫째, 이 책에서도 나온 것처럼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다는 형이상학적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필요한 것을 완전히 다 갖춘 사람도, 모든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명민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도, 삶에서 언제나 행운만이 가득한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불완전한 상태로 불완전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삶의 근본적 조건입니다. 이 불완전함들이 우리의 삶을 고통에 빠뜨립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면에서 부족한 게 아니라 모두 다른 방식으로 불완전하기에 서로가 서로의 불완전함을 보완하며 협력을 통해 모두의 삶을 모두와 함께 지지해 나갑니다. 이런 관계망이 가능하려면, 다른 사람의 불완전함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것이 ‘돌봄’의 철학적 의미입니다. 넘어지면 일으켜주고, 내가 잘 그린 그림과 네가 잘 만든 음식을 교환함으로써 서로의 행복을 지지하는 관계망의 핵심인 것이죠.


이것은 이른바 ‘데카르트적’이라고 불리는, 자기완결적인 또는 내적으로 완전한 주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에 대한 반대입니다. <성찰>이나 <방법서설>을 통해서 데카르트가 주장하는 개인은 기본적으로 외부와 소통하지 않습니다. 내면에 드러나는 것은 ‘그렇게 보인다’는 의미에서 모두 참입니다. 내가 외부세계에 관심을 쏟으려고 시도하지 않는 한 존재하기 위해 그 어떤 도움도 요구하지 않고, 그러니 나도 남을 또는 남도 나를 돌볼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말이 지닌 함축입니다. 돌봄 윤리가 가정하는 불완전성의 형이상학은 이런 생각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내면이 아니라 인간의 실제 삶을 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접근방법은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보편적 규칙은 없다는 윤리학적 신념입니다. 각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불완전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항상 다르고, 돌봄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지워지는 의무 또한 그 필요에 따라 달라집니다. 돌봄을 받는 사람에 대해 상대적이라고나 할까요. 또 그렇기 때문에 돌보는 사람은 돌봄을 받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잘 헤아리는 능력이 윤리적 능력에 대한 평가의 중심에 들어섭니다. 이는 도덕적 행위에 관해서 예외없는 보편적 규칙을 찾으려고 했던 시도와 그 규칙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에 따라 한 사람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윤리학적 입장, 특히 칸트주의 의무론과 공리주의에 완전히 반대되는 견해입니다.


돌봄의 윤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능력과 의무가 특히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제되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합니다. 그래서 이런 ‘여성의 실천’, 또는 ‘여성적 실천’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데카르트, 칸트주의 의무론, 공리주의와 같은 ‘남성적 실천’을 정당화하는 윤리학 이론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돌봄의 윤리는 페미니즘 정치이론/정치운동과 접점을 이루게 됩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애드온 서비스,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이 책을 읽고, <케어>의 내용을 영상으로 구현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각난 게 <아이리스>라는 영국 영화입니다. 리처드 이어 감독, 주디 덴치 주연의 2001년 영화입니다. 영문학자이자 비평가인 존 베일리라는 작가가 쓴 같은 제목의 자전적 에세이를 원작으로 삼는 영화고, 이 에세이도 번역돼있습니다.


<아이리스>는 <케어>처럼 알츠하이머 병을 앓는 아내를 남편이 돌보는 이야기입니다. 영화와 에세이 제목인 아이리스는 베일리의 아내의 이름인 ‘아이리스 머독’에서 따온 것입니다. 1919년에 태어난 머독은 20세기 후반 영어권을 대표하는 철학자이고 특히 앞에서 말씀드린 ‘돌봄의 윤리’를 비롯한 윤리학 분야에서 탁월한 저술을 여럿 썼으며, 1978년 ‘바다여 바다여’로 맨부커상을 받고, 학술적 공로를 인정받아 왕실로부터 작위를 받은 사람입니다. 1994년에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고 1999년에 사망합니다. 지적 매력에 빠져 서로를 사랑하던 부부인데, 그중 한 사람이 더 이상 지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의 상황과 심정을 사랑에 한창 빠져있던 젊은 시절과 계속 교차해 담담히 보여주며, 사랑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하는 꽤 괜찮은 영화입니다.


케이트 윈슬렛이 젊은 아이리스를, 주디 덴치가 노년의 아이리스를 맡아 열연했고요. 2002년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여우조연상 후보작, 남우조연상 수상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영화를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구할 경로가 없다는 점인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존 베일리의 에세이 또한 너무 오래 전에 번역돼 절판 상태이고, 근처 도서관에서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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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 - 우리 민주주의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
김육훈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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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억 속으로 책을 배달해드리는 2분 퀵서비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 시작합니다.


8번 바뀐 역사를 거쳐 1987년 10월 29일 전부개정되고 1988년 2월 25일부터 시행된 대한민국 헌법의 제1조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문장을 한 단어 한 단어 뜯어보신 적이 있나요? 민주, 공화, 주권, 국민, 권력, 그리고 대한민국. 단 한 차례의 역접 없이 여섯 단어가 이어진 이 문장은,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땐 참 어색합니다. 인류의 역사엔 공화정도 민주정도 아닌 나라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민주정이지만 공화정이 아니거나 반대로 공화정이지만 민주정이 아닌 나라도 있었고, 국민의 일부만 주권과 권력의 원천으로 인정하는 나라도 있었습니다. 한반도는 역사시대 대부분이 왕에게 주권을 부여한 정치체제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그런 지역이 짧게는 10년 길게는 100년에 걸쳐 이 여섯 개의 구슬을 느슨하게 꿰 작품으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는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거라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념을 배우려 외국어를 익히고 외국문물을 배워야 했고, 왕정이 자연스럽다는 역사적 경험에 맞서야 했으며, 구시대의 체제에 알맞게 만들어진 정치경제적 힘의 구조를 바꿔야 했습니다. 즉,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성장하도록 우리 스스로를 훈련시켜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민주공화정 개념의 소개에서부터 민주공화국에 관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비전, 나아가 민주주의적 형식의 첫걸음인 선거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민주시민이 되기 위해 어떤 길을 밟아왔을까요? 김육훈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에서 확인하시죠.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두 단어로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독립운동’입니다.


지난해, 2019년은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난지 딱 100년 되는 해였습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많이 했던 농담 중에 하나가 “올해는 2019년이 아니라 민국 100년이다” 였거든요. 이 책에서 언급된 내용처럼, 그리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취임식 때 ‘단기’니 ‘서기’니 하지 않고 ‘민국 30년’이라고 분명히 밝혔던 것처럼 말이죠. 저 혼자 이렇게 주접을 떠는 게 아니에요. 대만에서 서점 가보시면, 혹은 대만에서 출판된 중국어 번체 원서 보시면 책 맨 뒤에 다 ‘민국 XX년’ 이렇게 써있어요. 그만큼 대만은, 최소한 대만에서 책을 보는 사람들은 1911년 신해혁명이 자기들의 뿌리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만세운동으로부터 민국 100년을 주장하는 이유는 이 운동이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시작한 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당하게 차별하는 제국 정치체제에 저항하기 위해 시민들이 스스로를 조직했고, 그 운동이 특정 몇몇 지역과 계층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퍼졌으며, 결정적으로 그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동일한 목표를 가진 평등한 주체로서 서로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이전에 있었던 정치운동과는 확연히 다른 이른바 근대적이고 민주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잘 생각해보면, “13도 창의군”이 “근왕병”이 되어 서울 진공을 해갖고 일본놈들을 때려잡네 마네 하는 순간에 총사령관이 “아버지 돌아가셨다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그 와중에 천민 출신 의병장은 상종 못하겠다고 차별하던 게 이로부터 딱 10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게, 이 책에 나와있는 것처럼 만세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이 단순히 “쪽바리 싫어!” “우리 민족의 손으로!” 같은 구호로 축약되는 민족 개념 기반의 정치활동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서슬퍼런 시대에 민족 개념 기반의 독립운동을 전개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독립운동가들은 하나같이 독립 이후의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을 했던 시민들도 노동자, 농민, 학생 등 각자의 위치에서 투쟁을 이어나갔고요. 이들에게 독립은 중요하긴 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나은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독립이 중요했던 이유는, 이 땅을 지배한 일본의 정치체제가 그 환경을 제공해주지 않았고 결코 제공해줄 생각도 없다는 게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독립 뒤에 더 이상 왕정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데, 왕정이 더 이상 이 땅의 사람들의 경치/경제/사회/문화적 열망을 담아낼 수 없다는 것도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만세운동에서 표출된 열망이 결합해 모인 것이 바로 대한민국 임시헌장인데, 이 때에도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입니다. 그 모든 비전이 경합하고 충돌함에도, 이 나라에 소속감을 느끼는 모든 구성원이 동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어가 바로 “민주공화국”이었던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해를 ‘민국 원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1948년 형식적으로도 갖춰진 국가인 대한민국의 제헌헌법 2조에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덧붙은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독립운동을 통해서 민주, 공화, 주권, 국민, 권력, 대한민국이라는 여섯 단어를 하나로 이은 문장을 갖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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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헌법 전문부터 130조까지 한 번 쭉 읽어보십시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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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7
소포클레스 지음, 강대진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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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억 속으로 책을 배달해드리는 2분 퀵서비스! <안티고네> 시작합니다.


중학교 저학년 학생이 읽으면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우선 희곡이라는 형식이 산문에 익숙한 우리 학생들의 읽기 문화와 약간 거리가 있고, 또 대사 곳곳에 등장하는 수많은 은유를 이해하려면 끈기가 필요합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중학교 3학년 정도면 무난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두 단어로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윤리의 좌표”입니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이 정당한지 고민합니다(또는 고민해야 합니다). 정당성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 그 이유가 얼마나 강력하고 권위가 있는지 검토합니다. 폴리네이케스의 장례식을 둘러싼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대립은, 장례식을 치르는 게 정당한 이유와 부당한 이유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대결하는 겁니다. 이 대결은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는 개인의 법과 공동체의 법이라는 축입니다. 안티고네는 남자형제의 장례식을 지내려고 하는데 크레온은 그게 공동체를 배반하고 파괴하려고 했던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대우이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의 필요성과 규칙에 연연하지 않고 가족을 돌보는 마음씀씀이 모두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평범한 상황에서는 둘이 양립하겠지만, 이 작품의 상황은 읽는 사람에게 두 선택지 중 하나를 강요하는 듯 보입니다.


다른 하나는 신의 법과 인간의 법이라는 축입니다. 안티고네는 장례식을 지내는 것을 신이 내린 사명이니 인간의 능력으로 이해하거나 제지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충고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반면 크레온은 이 공동체에 대한 지배권을 정당하게 갖고 있는 내가 말하는 것이 곧 법이며, 공동체의 구성원을 통제하는 문제에서 자신의 지배권보다 더 높은 권위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예언자의 충고에 대해 처음에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신의 뜻을 말하는 안티고네의 말을 거부하는 데서 그가 초월적 권위를 거의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두 축을 고려하면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대립에는 생각을 요구하는 묘한 지점이 발생합니다. 세속과 공동체 중심의 시선으로 보면 안티고네의 주장은 터무니없습니다. 철학자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크레온을 이성을 대변하는 인물로 배치합니다. 하지만 세속과 공동체의 법은 얼마만큼의 효력이 있고, 또 어느 정도로 정당한 것일까요? 공동체는 특수하지만 가족은 보편적입니다. 가족 없이 태어나는 인간은 없기에 인간의 존재는 가족의 존재를 함축하지만, 공동체의 존재를 함축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크레온의 명령이란 그저 좁은 지역에만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낱 통치자의 편견일 뿐이지 않을까요?


작품은 둘 중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분노한 안티고네는 자살하고, 크레온의 아들이자 안티고네를 사랑하는 하이몬도 자살합니다. 안티고네에게 부여됐던 “가족의” 장례라는 신의 뜻을 거부한 댓가를 가족의 상실로 치른 셈이죠. 아마 크레온은 자신이 내린 명령의 일관성을 위해서, 자신의 아들의 장례를 지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공동체의 명령을 거부한 사람에 대한 장례는 부당하다는 것이 자신의 의견이니까요. 저는 한 마디로 엉망진창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만, 조금 더 고상하게 표현하는 그리스 비극이 지닌 일반적인 특징이기도 합니다. 운명, 필연, 신의 뜻에 대항하다가 좌절을 맛보는 스토리야말로 “비극”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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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같이 하면 좋을지 도통 떠오르지 않았지만, 가족의 죽음에 대한 애도가 사회적으로 억압당한다는 스토리에 초점을 맞춰보면 영화 <사울의 아들>이 떠오릅니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이고 대단히 잔인해서 ‘아이랑 투게더’라는 코너의 취지엔 약간 벗어나지만,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그랑프리),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부분 수상작이니만큼 예술영화로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일하는 유대인이 가스실에서 아들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랍비를 찾아 장례를 치르러 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줄거리에요. 배경이 배경이기도 하고, 1인칭 촬영기법과 사실적 재현, 화면 처리 등을 통해 관람자에게 수용소 안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심어준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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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호크니 리커버 에디션)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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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억 속으로 책을 배달해드리는 2분 퀵서비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마지막으로 감상한 SF 영화는 무엇인가요? 소설은 무엇인가요? SF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시나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내용 때문에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장황한 과학용어가 주루룩 늘어질 때마다 영 모르는 내용일 것 같아서 SF에 다가가지 않으시나요? 당신이 SF를 읽지 않는,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러면, 다음과 같은 SF소설이 있다면 믿으실 건가요? 지구로 떠나는 우주여행에서 사랑을 깨닫는 게 성인식 행사인 소설, 미지의 존재와 조우해 소통하면서 공감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 우리가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인간다움을 부여하는 외계의 존재 때문이라고 말하는 소설, 더 멀리 갈 수 있는 기술의 발견 때문에 갈 수 없게된 가까운 행성에 사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소설, 추모공원을 대신하는 마인드 업로딩 센터에서 사라진 엄마를 찾아 헤메는 소설, 감정을 찾아 헤메다 감정을 드러내는 물건을 옆에 두려 하는 소설, 굴레를 벗어나 바다로 가버린 소수자 이모를 생각하며 우주로 나아가는 소설. 여기에 사랑, 공감, 그리움, 두려움, 상실감을 전면에 내세운 SF 소설이 있습니다.


2019년 휩쓴 화제의 소설, 인터넷 서점 알라딘 선정 2019년 올해의 책, 한국 SF 소설이 쌓아올린 성과를 보여주는 따뜻한 소설, 김초엽의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입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두 단어로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감정입니다.


다른 존재들과 구별되는 인간의 특성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전통적인 대답은 이성입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정설처럼 여겨졌던 답인데, 동물과 비교했을 때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그렇게 생각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최근 다양한 연구가 인간이 결코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죠. 진화론 기반의 연구가 그렇고, 우리가 저번주에 보았던 뇌과학 기반의 심리학 연구가 그렇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 인간보다 훨씬 더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인공지능 기계의 출현이 인간의 정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인간의 본질이 합리성이라면, 그와 비슷하게 합리적인 기계 또한 인간으로 대우해야 하는 것 아니야? 라고 말이죠.


그래서 최근엔 인간에게 고유한 비합리적 측면, 즉 감정을 인간의 본질로 이해하자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더 정밀하게 말하면 인간은 “합리적 감정”을 지닌 존재라는 주장입니다. 동물처럼 마구 반응하는 것도 아니지만 기계처럼 지나치게 합리적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우리에게 주어진 신체적 조건에 따라 반응하는 것이 인간의 핵심이라는 겁니다. 때로는 그 감정을 “합리적으로” 통제할 줄도 아는 능력, 즉 내 감정을 드러내는 적정선을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고려하며 탐색해나가는 능력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안에 들어있는 여러 단편엔 이러한 감정이 기술적 발전을 만나서 그 적정선을 새롭게 찾아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수록된 단편 [스펙트럼]을 볼까요? 주인공은 우주여행 중 불시착한 어떤 행성에서, 인간과 비슷하지만 같지만은 않은 어떤 무리를 만납니다. 무리 중 한 사람이 주인공을 구해주고는 자기 동굴에 머물게 하죠.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기호체계는 이 무리를 아는 데는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색채 등을 조심스럽게 분석하며 주인공은 나름대로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고, 그 무리의 한 사람 또한 주인공을 바라보면서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지 알아갑니다. 이렇게 서로 표현을 맞춰가는 거죠.


인간의 본질이 이성이 아닌 감정이라는 위의 논의를 이어가보면, 표현은 의미의 전달 활동이 아니라 감정의 전시입니다. 즉, 표현을 맞춰가는 것은 감정을 맞춰가는 것입니다. 이 감정이 서로가 생각한 적절한 선에서 마주칠 때 우리는 [스펙트럼]의 마지막 문장에서처럼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낍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이 책에는 [감정의 물성]에서 감정의 돌을 바라는 사람들처럼 이런 행복의 기회를 잃어버렸거나, [관내분실]의 주인공처럼 그 행복의 기회를 찾아서 헤매는 인물들도 등장합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데 실패하거나 성공하고, 각자가 원하는 일정 정도의 행복을 성취하거나 그렇지 못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미래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한다고 해서 훌륭한 SF작품이 되진 않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소설이 그렇듯이 SF 또한 인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문학입니다. 발전된 기술과 그에 따른 사람들의 행동의 변화가 주요한 소재가 된다는 점이 다를 뿐이죠.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모든 단편에서 감정의 변화와 적절함을 핵심 주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감정이란 인간의 뿌리를 이루는 요소이기에, 이 책 또한 우리에게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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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넷플릭스의 드라마 시리즈인 블랙미러를 추천하려고 합니다. 블랙미러를 SF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기술을 소재로 다양한 서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제가 생각할 때는 SF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흔히 SF는 엄청난 기술이 발명/발견된 먼미래를 다룬다는 편견이나 선입견과는 달리 블랙미러는 이미 어디에선가 개발된 기술, 조금 있으면 사람들이 접할 수 있을법한 기술을 소재로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한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이어지는 시리즈는 아니고 각 회차가 모두 독립된 에피소드이기 때문에, 아무 화나 골라서 보셔도 되고요. 저도 다 보진 못했고 틈 날때마다 생각날때마다 눌러서 챙겨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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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과학 - 운명과 자유의지에 관한 뇌 과학
한나 크리츨로우 지음, 김성훈 옮김 / 브론스테인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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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 퀵서비스


여러분의 기억 속으로 책을 배달해드리는 2분 퀵서비스! <운명의 과학> 시작합니다.


전반적으로는 뇌에 관한 연구와 그 의미에 관한 소개로 이뤄져있어서 인간에 관한 자연과학적 접근에 관심이 많다면 중학교 1학년, 책읽기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2~3학년부터는 읽기에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 연구성과가 많이 반영돼있다는 것도 장점이고요. 가장 마지막 챕터에서 다양한 실용적/윤리적 함의를 이끌어내는 부분은 약간 난이도가 높아서 고등학생 정도는 되어야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두 단어로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업데이트입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를 때 우리는 보통 베스트셀러나 고전을 찾게 됩니다. 과학 분야에도 <코스모스>나 <이기적 유전자>같은,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들이 분명히 있죠. 하지만 과학 분야 책을 읽으면서 고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가급적 최신의 연구성과를 빠르게 습득하는 것입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논문이지만, 우리가 오늘 보는 <운명의 과학>처럼 그래도 최근 4~5년 동안 발전한 현황을 재빠르게 보여주는 책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우리 입장에선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지만, 신경과학과 자유의지 이론 사이의 관계, 개인이 자신의 선택에 얼마만큼 개입할 수 있고 책임져야 하는가 뭐 이런 얘기, 인문계열 논술에서 단골로 나오는 주제 아니겠습니까? 저 또한 제 공부를 위해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한동안 열심히 팠던 주제인데. 이 책을 보면서 내가 많이 뒤쳐졌구나 하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제 경험에 기반해서 말씀드리면, 10년 전만 해도 뇌를 관찰하는 가장 정밀한 방법은 fMRI였어요. 무슨 생각을 하면 뇌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고 이런 거 판독하는 기계입니다. 이게 해상도가 1세제곱밀리미터에요. 그래서 뇌에 대해 아주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획기적인 장비다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 시기에 봤던 철학 책 중에서 두뇌 연구를 통해서 철학의 거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철학자인 패트리샤 처칠랜드 UC 샌디에이고 교수가 2011년에 쓴 책 <브레인 트러스트>에도 fMRI 연구에 대해 이렇게 비판하는 구절이 있었어요. “1세제곱밀리미터면 그 안에 뉴런이 10만 개도 더 들어간다. 뉴런끼리 연결 가능한 경우의 수까지 따지면 형태의 가능성은 무한대로 올라간다. 겨우 그 정도 정밀도로 어떻게 뇌 연구를 할 수 있겠나? 우린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에 보면 재미있는 연구방법이 나오죠. 유전자를 조작하는 크리스퍼 기술을 이용해서 신경세포에 형광물질을 입히고 그게 어떻게 활성화되는지를 보면서 뇌를 연구하는 기법을 개발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신경세포 회로의 모양을 더 정확하게 파악함으로써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아주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밀도가 올라간 것은 그 자체로 연구에 대단히 큰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후에 이 연구방법을 이용한 후속연구들이 막 쏟아지기 시작했고요.


그리고 이런 업데이트는, 이 책이 강조하는 것처럼 다소 맥빠지는 결론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유전과 뇌가 다 결정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 또한 거의 없다는 식이죠. 저는 이것이야말로 첨단의 연구와 가장 과학적인 시각이 보여줄 수 있는 겸손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어느 한 쪽의 편을 들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는 것이야말로 비과학적인 태도라고 봐야겠죠. <운명의 과학> 저자인 크리츨리는 이런 업데이트된 결과를 바탕으로, 결정론이냐 자유의지냐 하는 철학적 논쟁에 매이기보다는 실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실용적 고민을 해야할 때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애드온 서비스,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권해드리고 싶은 책은 이상희의 <인류의 기원>입니다. 이 책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의견이지만, 인간의 현재를 이야기하면서 이 현생인류가 만들어진 과정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우주나 세포의 탄생부터 시작하기엔 이야기가 너무 길고 방대하고, 그렇다고 현대와 미래까지 예측하겠다고 달려드는 <사피엔스>같은 책을 읽자니 너무 두껍고. 딱 현생인류의 기원 전후 시기로 끊으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인류의 기원>입니다. 우선 잡지 연재분을 묶은 책이라 쉽게 읽히고요. 저는 아이들보다 오히려 부모님들에게 권해드리고 싶은데, 부모님 세대에 배웠던 인류의 기원과 생활방식에 관한 지식 가운데 수정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기원설만큼이나 다지역 기원설이 힘을 얻고 있다는 내용이나,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한 게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와 짝짓기를 해서 그 유전자가 현생인류에 남아있다는 내용 같은 것들이 대표적입니다. 마치 공룡에 깃털이 있는 것처럼, 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는 부모님들이 배웠던 게 더 이상 과학적 진실이 아닌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 그건 우리 인류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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