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어 - 의사에서 보호자로, 치매 간병 10년의 기록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 시공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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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 퀵서비스


여러분의 기억 속으로 책을 배달해드리는 2분 퀵서비스! <케어> 시작합니다.


우선 최선생님의 책 선정이 아주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경쟁자, 의사들이 하는 팟캐스트 중에 가장 오래된 팟캐스트인 <나는 의사다>에서도 저번주에 이 책을 선정해서 2주에 걸쳐서 다루더라고요. 치매 전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선생님을 모셔놓고 말이죠. 우리가 살짝 전문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우리의 안목이 의사 선생님들 정도는 된다 이렇게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책 전반부와 후반부가 분위기가 아주 다릅니다. 전반부는 간병기를 실은 생활 에세이라면 후반부는 저자 아서 클라인먼의 ‘학술적’ 자서전에 가깝습니다. 전반부는 나이대에 관계없이,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님이 함께 생활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친구들이라면 초등학교 5~6학년이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후반부를 이해하기 위해선 중학교 3학년이나 고등학생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두 단어로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돌봄의 윤리’입니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의학사회학, 의료인류학의 관점에서 돌봄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철학 특히 윤리학의 관점에서 ‘돌봄’ 개념에 접근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봄의 윤리’는 아마 수능에서 윤리와 사상이나 생활윤리를 선택하는 학생이라면 현대윤리사상 파트에서 접하게 되는 단어일 것입니다. ‘배려윤리’라고 부르던가요? 넬 나딩스나 <다른 목소리로>의 캐롤 길리건 같은 이름과 함께 배우실 겁니다.


돌봄의 윤리는 두 가지 방향에서 인간의 행동에 접근합니다. 첫째, 이 책에서도 나온 것처럼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다는 형이상학적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필요한 것을 완전히 다 갖춘 사람도, 모든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명민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도, 삶에서 언제나 행운만이 가득한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불완전한 상태로 불완전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삶의 근본적 조건입니다. 이 불완전함들이 우리의 삶을 고통에 빠뜨립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면에서 부족한 게 아니라 모두 다른 방식으로 불완전하기에 서로가 서로의 불완전함을 보완하며 협력을 통해 모두의 삶을 모두와 함께 지지해 나갑니다. 이런 관계망이 가능하려면, 다른 사람의 불완전함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것이 ‘돌봄’의 철학적 의미입니다. 넘어지면 일으켜주고, 내가 잘 그린 그림과 네가 잘 만든 음식을 교환함으로써 서로의 행복을 지지하는 관계망의 핵심인 것이죠.


이것은 이른바 ‘데카르트적’이라고 불리는, 자기완결적인 또는 내적으로 완전한 주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에 대한 반대입니다. <성찰>이나 <방법서설>을 통해서 데카르트가 주장하는 개인은 기본적으로 외부와 소통하지 않습니다. 내면에 드러나는 것은 ‘그렇게 보인다’는 의미에서 모두 참입니다. 내가 외부세계에 관심을 쏟으려고 시도하지 않는 한 존재하기 위해 그 어떤 도움도 요구하지 않고, 그러니 나도 남을 또는 남도 나를 돌볼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말이 지닌 함축입니다. 돌봄 윤리가 가정하는 불완전성의 형이상학은 이런 생각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내면이 아니라 인간의 실제 삶을 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접근방법은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보편적 규칙은 없다는 윤리학적 신념입니다. 각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불완전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항상 다르고, 돌봄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지워지는 의무 또한 그 필요에 따라 달라집니다. 돌봄을 받는 사람에 대해 상대적이라고나 할까요. 또 그렇기 때문에 돌보는 사람은 돌봄을 받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잘 헤아리는 능력이 윤리적 능력에 대한 평가의 중심에 들어섭니다. 이는 도덕적 행위에 관해서 예외없는 보편적 규칙을 찾으려고 했던 시도와 그 규칙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에 따라 한 사람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윤리학적 입장, 특히 칸트주의 의무론과 공리주의에 완전히 반대되는 견해입니다.


돌봄의 윤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능력과 의무가 특히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제되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합니다. 그래서 이런 ‘여성의 실천’, 또는 ‘여성적 실천’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데카르트, 칸트주의 의무론, 공리주의와 같은 ‘남성적 실천’을 정당화하는 윤리학 이론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돌봄의 윤리는 페미니즘 정치이론/정치운동과 접점을 이루게 됩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애드온 서비스,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이 책을 읽고, <케어>의 내용을 영상으로 구현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각난 게 <아이리스>라는 영국 영화입니다. 리처드 이어 감독, 주디 덴치 주연의 2001년 영화입니다. 영문학자이자 비평가인 존 베일리라는 작가가 쓴 같은 제목의 자전적 에세이를 원작으로 삼는 영화고, 이 에세이도 번역돼있습니다.


<아이리스>는 <케어>처럼 알츠하이머 병을 앓는 아내를 남편이 돌보는 이야기입니다. 영화와 에세이 제목인 아이리스는 베일리의 아내의 이름인 ‘아이리스 머독’에서 따온 것입니다. 1919년에 태어난 머독은 20세기 후반 영어권을 대표하는 철학자이고 특히 앞에서 말씀드린 ‘돌봄의 윤리’를 비롯한 윤리학 분야에서 탁월한 저술을 여럿 썼으며, 1978년 ‘바다여 바다여’로 맨부커상을 받고, 학술적 공로를 인정받아 왕실로부터 작위를 받은 사람입니다. 1994년에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고 1999년에 사망합니다. 지적 매력에 빠져 서로를 사랑하던 부부인데, 그중 한 사람이 더 이상 지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의 상황과 심정을 사랑에 한창 빠져있던 젊은 시절과 계속 교차해 담담히 보여주며, 사랑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하는 꽤 괜찮은 영화입니다.


케이트 윈슬렛이 젊은 아이리스를, 주디 덴치가 노년의 아이리스를 맡아 열연했고요. 2002년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여우조연상 후보작, 남우조연상 수상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영화를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구할 경로가 없다는 점인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존 베일리의 에세이 또한 너무 오래 전에 번역돼 절판 상태이고, 근처 도서관에서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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