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7
벌이 없으면, 도망치는 재미도 없다.
2. 9 Dr
8월 어느 날, 한 남자가 행방불명되었다.
3. 61
"그렇게 입을 꾹 다물어버리는 것이 가장 안 좋아요. 그런 아이들이 흔히 있는데, 나는 늘 이렇게 말해 줍니다...... 자기를 꾸짖는 척 하지만 실은 가장 비겁한 태도라고 말입니다...... 뭐라고 할 말이 있으면, 빨리빨리 좀 해봐!"
4. 64
단, 공복은 의욕을 앗아간다. 정신 집중에 좋지 않다. 그렇기는 하나 현상을 거부할 작정이라면 식사를 포함한 모든 것을 철저하게 거부해야 하지 않는가. 화를 내면서 밥을 받아먹으면 우스꽝스러워진다. 개도 먹이를 입에 넣는 순간 꼬리를 내리고 만다.
5. 81
그러나, 지금 화를 내면 끝장이다. 중환자는 신문 따위로 흥분하지 않는다. 물론 신문은 읽고 싶다. 풍경이 없으면 그나마 풍경화라도 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풍경화는 자연 경관이 살벌한 지방에서 발달하고, 신문은 인간 관계가 소원한 산업 지대에서 발달한다고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6. 110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은, 즉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쪽이 되고 싶다는, 자기를 꼭두각시와 구별하고 싶은 에고이즘에 지나지 않죠.
7. 120
그러나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 바다에 표류하는 사람이 기아와 갈증으로 쓰러지는 것은 생리적인 결핍보다 오히려 결핍에 대한 공포 탓이라고 한다. 졌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패배가 시작되는 것이다.
8. 147 Dr
"미쳤어...... 제정신이 아니야...... 모래 퍼내는 것쯤, 훈련만 받으면 원숭이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 난 좀더, 나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인간에게는 자기가 갖고 있는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의무가 있단 말이야......"
9. 180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 청년의 마음도 이해가 가잖아. 농부란 것은, 일해서 땅을 늘리면 일거리가 더 늘어나는 셈이니까...... 결국 고생에 끝이 없고, 그런 나머지 얻어지는 것은 더욱 고생이 늘어날 것이란 가능성뿐이야......"
10. 198
"납득이 안 갔어...... 어차피 인생이란 거 일일이 납득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만, 저 생활과 이 생활이 있는데, 저쪽이 조금 낫게 보이기도 하고...... 이대로 살아간다면, 그래서 어쩔 거냐는 생각이 가장 견딜 수 없어...... 어떤 생활이든 해답이야 없을 게 뻔하지만...... 뭐 조금이라도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이 많은 쪽이 왠지 좋을 듯한 기분이 들거든......"
11. 203
고독은 환영을 좇기에 충족되지 않는 갈증이었던 것이다.
12. 208
놓친 물고기는 언제나 크게 보이는 법이지.
13. 옮긴이의 말
학교 선생인 한 남자가 어느 날, 곤충 채집을 위해 사구로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은 사구라는, 생명의 근접을 허용하지 않는 땅에서도 모질게 살아남은 곤충을 채집하여 '이 세상'에 이름을 남기려는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여행은, 남자 스스로를 <생명의 근접을 허용하지 않는 땅에서 모질게 살아남은 곤충>으로 변신하게 하였고, 이 세상에서 그의 이름은 실종되고 만다. 이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자 한 그의 행위가 그 자신을 채집함으로써 완성되는 대신, 존재를 증명하는 이름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다.
...
사구의 모래 구멍에 갇힌 남자의, 이 세상의 자유를 향한 몸부림과 절규는 이 모순을 각성시키려는 모래의 노래처럼 우리들의 귀를 간질인다.
너는 이 세상의 부자유와 답답함을 회피하려 2박3일 간의 실종을 연기하지 않았느냐고. 왠지 덧없어 보이는 이 세상에서 너는 존재의 의미를 찾아, 네 이름을 또렷이 남길 수 있는 일을 찾아 여기로 오지 않았느냐고. 그러니 너의 실종을 완성시키고, 너 자신이 네 존재의 의미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모래는 절대적인 단절과 폭력으로 복종과 수용만이 너의 존재를 유지시킬 수 있는 길임을 가르친다.
...
<여기>는 그 안에 있으면서 밖을 동경하고, 동경을 찾아 안을 버리면 그 밖이 다시 안이 되는 공간, 즉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이 없는 공간이다.
따라서 모래로 양분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던 이 세상과 모래 구멍 속 세계는 실은 한 공간의 서로 다른 모습이며, 인간은 다른 세계를 꿈꾸느라 바로 여기가 다른 세계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절대적 모순을 사는, 그리하여 늘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
비스듬히